그러나 나는 서지현 검사를 만났을 때부터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정권에 대한 비판이나, 대형 참사에 대한 어젠다 지키기는 차라리 단순한 것일 수 있었다. 거기엔용기만 있으면 되었다. 미투는 복잡했다. 젠더 문제였기 때문이다.
용기만 가지고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때로는 도가 지나친 공격들에 모두 대응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가해자의 가족들은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했다. 가해자가 대개 알려진 사람이다보니 아무죄도 없는 그 가족들이 겪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아팠다.
- P198

안 전 지사는 결국 그날 법정 구속되었고, 2019년 9월 9일에 대법원에 의해 3년 6개월의 형을 확정받았다.
아마도 이 사건의 판결은 위계에 의한 위력의 범위와 정도를 판례로 규정하는 사례가 되었을 것이다. 이 판결은 분명 진보한 것이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페미니스트들의승리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의 변화는 조화로움 속에서만 오지는 않는다.
- P205

지금도 미투 보도에 적극적이었던 「뉴스룸에 대한 일부의 비난은 계속된다. 이 장에서 말하고 있는 어젠다 키핑은 그 의도가본질적으로 선한 것이라 해도 현세의 갈등에 의해 얼마든지 폄하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고 있다.
- P206

사르트르는 이 세상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존재인 우리에게어느 길이든 선택할 자유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사람은 그가 가고 싶은 길이면 어떤 길이든 선택해서 갈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선택에 대해 그는 책임을 져야 한다.
- P238

지금에 와서 냉정하게 돌아보면 그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더 있었다. 이례적으로 민정수석에서 곧바로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한 경우의 당위성을 더 따져봤어야 했다. 검찰개혁의 완수를 명분으로 한 그 임명이 결국 무리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짚어냈어야 했다. 동시에 검찰의 전광석화와 같았던 수사가 결국 검찰 기득권의 보호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더 강하게 전해야 했다. 또한 검찰개혁이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면, 왜 그런 것인지,
지난날 검찰의 부조리와 권력지향의 행태들을 좀더 일일이 짚어냈어야만 했다.
- P283

그런데 역시 문제의 핵심, 내 고민의 핵심은 그런 상황에서 언론, 즉 저널리즘의 역할이었다. 내 나름의 결론을 내기까지의 과정은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이렇다. 정치·사회적으로 오랜 억압구조, 혹은 모순의 구조 속에서 일어난 현상을 정파적 이해관계를떠나서 다룰 수 있는 것이 옳은 저널리즘이라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 만일 그런 저널리즘을 막는 세력이 있다면 이를 돌파하기 위한 운동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말미에 태어난, 내가 속했던 언론노조들은 그것을 목적으로 했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저널리즘이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매진한다면, 그것은 운동을 위해 저널리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그 운동 과정에서 나오는 사실들을 보도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저널리즘의 범위를 벗어나 ‘지지‘ 하거나 ‘지원‘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 P288

그러니 언론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체제와 현상에 안주해선 안 된다. 그것을 굳이 우리가 쓰는 언어로 표현하자면 ‘진보‘다. 의심은 변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문제를 발견하고 제기하는 과정은 극단적이어선 안 되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그 ‘합리적인 자세 속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도 있어야 한다는 것.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지혜‘도 아마 그것과 맥이 같으리라고 본다. 나는 ‘합리적 진보‘를 그렇게 정의한다.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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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 성장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

1980년대 고도성장은 일본의 관료적 집단지성이 목표로 삼을 새로운 산업을 파악해내고 공략하는데 거의 실수가 없었다는 점. 어쨌든 일본의 관료집단이 역할을 해냈다는 것이고, 또한 기업에 필요한 자금은 상환의 염려 없이 꾸준히 조달되었고, 집단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살인적인 노동강도라 할지라도 - 하도록 훈련되어 있는 고학력 노동자층이 존재한다는 것에 기인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일본이 지불한 것은 먼저 일본 문화의 질이 하락하고 저속화 되었다는 것이다. 교토타워로 상징되는 교토와 같은 오래된 도시 풍경의 파괴, 삼림들이 파괴되고 일본 삼나무의 숲으로 모두 대체되어 버린 것(이 나무는 내가 알기로 봄철에 엄청난 꽃가루를 뿌려서 알레르기 환자를 엄청 양산해내고 있다고 한다), 해안선의 절반 이상은 거대한 콘크리트 방파제의 벽이 점령해버린 것 등등이다.  대기업 샐러리맨들은 그들의 삶이 워낙에 강한 노동환경으로 팍팍해져버려 더 이상 인간의 조건의 질문을 던질 여력이 없어지고 그저 스트레스를 잊도록 응원해주는 오락들을 향유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른바 샐러리맨 문화의등장인데 익히 알고 있는 퇴폐문화의 발흥, 일본의 야구에의 열광(일본 야구 시스템은 대학 시스템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다. 도쿄대학교에 상응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독주, 고시엔을 통한 선발과정, 팀플레이어를 최고로 치는 문화 등등) 이 그것이다. 

또한 고도성장기에 일본의 여성들은 한번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거의 유일한 집단이다. 적당한 전문대를 나와 OL을 거쳐 적당히 전도유망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이 회사의 노예로 잡혀 주7일노동을 하는 동안 집안경제와 자녀교육, 시부모 봉양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것이 전형적인 일본 여성의 삶이다. 결국 여성들이 기댈 수 있는 단 하나의 대상은 보통 자신과 같은 처지의 다른 여성들인데 이 세계는 일본 샐러리맨 세계의 복사판이다. 대표적인 사친회를 봐도 일본의 다른 모든 조직에 나타나는 특징 - 겉으로 끝없이 강조하는 화합과 협력 뒤에 숨어있는 고질적인 파벌주의와 '수동적 공격 성향(고도로 계산된 비방 전술) 등 말이다. 그러나 고도성장 이후에 와서는 여성의 4년제 대학 입학이 늘어나고, 이들은 노골적으로 이들을 차별하는 국내 회사가 아니라 외국계 회사에 취업하기 시작하며, 정해진 길을 따라 결혼하는 것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증가한다. 그것의 결과는 일본 출산율의 붕괴로 이어진다. 


7장 경제와 금융

아 이부분 어렵다. 경제만 해도 어찌 어찌 맥락을 파악하겠는데 금융이 들어가면 미치겠다. ㅠ.ㅠ

일본의 고도성장기 무제한적인 대출 - 심지어 대출을 하면 이자를 오히려 대출자에게 주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있었다고 한다. -은 두가지 전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일본의 토지가격은 절대 하락하지 않는다는 것과 관료기구인 재무성이 부동산과 주가를 부양할 수 있고, 재무성 감독하의 모든 금융기관을 보호할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전체를 찰떡같이 믿는다면 마이너스 대출도 가능하겠구나 싶기도 하다. 금융기관들이 기업의 성장가능성이나 기술 이런 것과 상관없이 자신들이 담보로 받은 부동산이 절대 하락하지 않고 계속 오를거라고 생각하면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또한 이것을 국가기관이 보장한다는데 말이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붕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미국과의 무역마찰, 환율 조정, 선진기술과 제조업에서 자신들이 절대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자부한 것이 환상으로 드러나는 현실 등으로 인해 결국 버블의 폭발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만 이 부분은 정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말이 더 많았으므로 일단 패스....ㅠ.ㅠ



이 모든 것은 고도성장의 제도들이 예상대로 작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본의 관료적 집단지성은 목표로 삼을 새로운 산업을 파악해내고 공략하는 데 거의 실수가 없었다. 기업에 필요한 자금은 상환의 염려없이 꾸준히 조달되었고 집단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하도록 훈)련되어 있는 고학력 노동자층이 존재했다. 일본 기업들은 성공에 성공을 거듭했다. 노동 강도에 대한 요구는 끝이 없어 보였지만 노동자에 대한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어 있었다.  - P248

가장 심각한 것 중 하나는 일본 문화의 질이 하락하고 저속화된다는점이었다. 예술과 문학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도 그랬고, 더 넓은 의미에서도 그랬다. 이런 것은 산업 공해에 비하면 알아차리기도 어렵고 되돌리기는 더더욱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눈에 매우 잘 띄고, 수식어를 일부러 고르자면 구체적인concrete‘ 사례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훼손되어가는 교토의 경관이었다.  - P249

하지만 대기업 샐러리맨들의 문화가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면서, 인간의 조건에 질문을 던지던 이런 예술적 탐구들은 점점 뒤로 밀려난다.
그 대신, 회사 일과 사회적 스트레스를 잊도록 응원해주고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오락들이 사람들을 잠식해갔다.
- P251

일본 사회에 샐러리맨 문화를 퍼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미국에서 수입해온 스포츠인 야구였다.  - P254

고도성장기 일본의 야구 스타들은 전형적인 팀 플레이어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단 하나의 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이었으며, 주어진 연봉을 받아들일 뿐 단 한 번도 협상하지 않았다. 일본 야구의 연습은 선수 개개인의 실력을 발전시키는 것보다는 전반적인 노력이나 인내를 강조했다.  - P255

PTA에는 일본의 다른 모든 조직에 나타나는 특징이 다 드러나 있다. 겉으로 끝없이 강조하는 화합과 협력 뒤에숨어 있는 고질적인 파벌주의와 수동적 공격 성향 passive-aggressive‘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새로 해야 할 만큼 고도로 계산된 비방 전술 같은 것말이다.  - P263

일본은 거의 모든 주요 산업을 이미 제패했거나 거의 제패하면서, 세계 산업들의 본사가 일본에 모여 있는 본사 경제 headquatters economy‘로서의 위상을 구축하고있었다. 무언가 바뀌어야 할 시점이었다. 일본은 미국에 협력해 양국 환율의 재조정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경제에서 수출 이외의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결국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다.
- P284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충격이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일본의 핵심 권력층은 일본이 전쟁의 폐허로부터 ‘기적적으로 회복할 수 있었던 주원인이 일본이 제조 기술을 사업화하는 데 탁월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일본의 ‘충격은바로 이러한 이해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일본이 전쟁에 졌던 이유가기술력이 부족해서였다고 생각했다. 미군정이 끝나고부터 일본은 거대산업국가를 건설하고 완벽히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았다.  - P295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를 아마도 가장 당황케 했던 것은 선진기술과 제조업에서 거의 달성한 듯 보였던 일본의 절대 우위, 자부해 마지않던 그 질대 우위가 알고 보니 그게 과장되이 있었거나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깨달음이었다.
- P305

일본에서 과세되지 않는 소득의 가장 큰 부분은 농민, 개업의와 같은자영업자, 종교단체, 주로 건설회사와 같은 중소기업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 P319

일본은 이제 벌써 15년 이상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런 장기적인디플레이션은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경제 성장에는 분명히 좋지 않다. 하지만 장기 디플레이션으로 인해일본 정부는 채권 시장을 붕괴시키지 않으면서도 대규모 적자 재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 - P320

왜냐하면 기업들이 국내에서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어차피 은행들이 너무 겁을 먹어서 대출을 해주지도않았지만), 기업과 가계 저축의 대부분이 국채 및 정부에서 발행한 기타금융상품을 사는 데 쓰였기 때문이다.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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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1-29 2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반쯤 보셨군요 일월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일월에 뭐 하고 지냈는지 모르겠네요 늘 그렇지만... 바람돌이 님 설연휴 편안하게 보내세요 바람돌이 님 한번 더 새해 복 많이 받고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바람돌이 2022-01-29 23:45   좋아요 2 | URL
하루 2챕터씩 읽기로 했는데 그것도 다른 재밌는 책이 끼어들면 또 밀리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ㅎㅎ 어쨌든 반쯤 읽었는데 금융문제가 나오면 또 막 어려워지면서 뭐야 뭐야 이러면서 읽고 있어요. ㅎㅎ 희선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세요. ^^

scott 2022-01-31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야구가 일본 사회 시스템의 축소판이였군요
이책의 저자가 일본이라는 나라의 다양한 모습을 균형적인 시각으로 쓴 것 같습니다
이 책 찜!^^
 

 만일 기사 가치에 따라 시청자나 독자들에게 비용을청구하고 싶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를 써야 하는 시대가올 것이다. 그것은 언론사나 그에 속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저널리즘을 ‘정치운동‘과 맞바꾸어 편 가르기에 몰두하거나, 혹은 ‘끝없는 상업성에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아는 정론 에복무하는 것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런 시대가 온다고어떻게 장담하느냐고? 그러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합리적 시민사회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것과 같다. 그다음은 정말 암흑이다.
이 책이 주로 다룬 것은 저널리즘의 한 방법론으로서의 ‘어젠다 키핑 (Agenda Keeping)이다. - P9

삼성 문건을 보도한 날, 뉴스제작부의 기자 이세영이 늦은 저녁 자리에서 내게 말했다.

"선배,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마십쇼.."

그에게 내가 뭐라 대답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처럼 마음이 약한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변한다는 건 그때까지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인데 그게 어디쉬운 일인가. 나는 변한 다음 비난받는 것이 무서워서라도 잘 못 변한다.
- P27

그마저 철수하면 가족들이 너무 고립된 느낌이 들 것같아서 도저히 빼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목포신항을 떠난날도, 마지막 실종자 가족들이 세월호 곁을 떠나고 이틀 뒤였다.
그 여덟달 가까운 기간 동안 기자들은 현장에서 100건이 훨씬 넘는 리포트를 보내왔다. 현장에서의 마지막 리포트는 공중에서 촬영한 세월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해서 팽목항에서의 287일, 목포신항에서의 234일, 모두521일간의, 아마도 전무후무할 현장 체류가 막을 내렸다. 그 시간들은 언론이 왜 존재하는가를 깊이 고민하게 했던 시간들이었다.
또한 언론이 단지 뉴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이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들이기도 했다. 굳이 어젠다 키핑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좀더 많이 부끄러웠을 것 같다.
- P70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이 비극은 한국의 현대사를 바꿔놓은 분수령이 있다. 그 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정권의 부침沈)은 사실 한 장면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 정권의 패망과 또 다른 정권의 출현은 단지 그 흐름 속의 필연적인 한 과정이었을 뿐이다.  - P90

요즘도 회사 앞에서는 시위가 벌어진다. 태블릿PC는 조작됐다는 것이다. 무려 5년이 지나도록 저러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이유는 앞에 말한 대로이다.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그들은적어도 사회적으로 존재하기 어리울 것이다. 즉, 이제는 ‘태블릿PC 조작설‘이 그들만의 ‘존재의 이유‘가 되어버린 것이다.
- P144

그럼에도 평자들이 또다시 우리의 ‘태생적 숙명‘에 대해 논하려 한다면 굳이 논쟁하지 않겠다. 수많은 논쟁의 가운데 있어본 경험에 따르자면 때로 ‘현실은 버라이어티하고, 논쟁은 앙상하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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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로스코가 안전하다고 느꼈으면 했다. 로스코가 내게 주었던 안정감을 생각할 때, 나 역시 로스코에게 그러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녀가 두려움을 느끼는것은 원치 않았다.
- P241

효과가 있었다. 로스코에게 확신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녀는밝고 강인하며 자신감이 넘쳐야 했다. 나는 로스코가 스스로 그 사실을 알아채도록 애쓰고 있었다. 정말 효과가 있었다. 로스코의 멋진눈은 용기로 가득 차 있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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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 경제 기적

패전 후 일본의 보수파들은 국가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군정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서 좌파 세력이 일본을 장악하는 것을 막고 전쟁 전 일본 내 권력구조를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전략을 쓴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 좌파 세력이 성장하면서 1948년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의 당혹감은 이런 일본 보수파와 손쉽게 손을 잡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이 일본의 보수파들은 한편으로는 전쟁의 책임 당사자들이었고, 그럼으로써 일본의 본질로 여겨지는 위계질서를 강고히 끌어안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주권이 천황에게 있는지 국민에게 있는지가 헌법규정과는 상관없이 애매해지고, 전후 막강한 관료들이 자신들의 관할 영역에서 입법, 행정, 사법권을 모두 행사하는 결과를 가져온다.(일본의 관료제에 대해서는 따로 공부가 필요하다.) 과거를 묻고 가는데 있어 미군정과 일본의 보수파들의 이해가 일치하는 지점이다.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군국주의 침략에 대해 잘못했다는 표현이 아니라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아마도 이 지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우익은 전후의 민주주의를 맹렬히 공격하는 것으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햇고, 교사와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에 대한 폭력 및 협박에 점점 몰두했다. 


일본의 방위와 외교를 미국이 책임지면서 일본의 관료들은 대부분의 역량을 경제 문제에 집중한다. 

이후 일본은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산업과 기업을 키우고, 수출주도를 통해 벌어들인 외화는 경제 관료 기구에 의해 관리되고 배분되어 일본의 발전을 가속화시키게 된다. 

일본의 경제 체제에서 주목할 것은 '리스크의 사회화'인데 전략적인 사업에 대해 개별 기업의 리스크를 국가가 보완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제에서도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데, 이 예측 가능성은 도쿠가와 시대의 권력 구조에서 허용된 틀을 벗어나 행동하면 죽을 수도 있었던 것으로부터 일본의 주요 심성특징으로 자리잡았다. 일본의 경제 성장기동안 이 예측가능성 덕분에 개별 기업가나 기업이 모든 리스크를 떠안지 않고, 초기 손해를 감당할 수 있었다. 또한 자민당 정치인들은 관료들이 이러한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대신 관료들로부터 편의를 얻어내는 중요한 파워브로거로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일본은 핵신 남자 직원들에게 평생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으로 상쇄해나간다. 이른바 평생직장, 가족기업개념이다. 



5장 - 고도성장의 제도적 기틀

일본의 기업은 종전 직후의 과격한 노동운동에 대응한 이데올로기적 해법으로 '가족과 같은 회사'라는 개념을 이용한다. 이 원칙은 기업의 생산성이나 품질, 기술력등 모든 요소를 앞서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개념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을 파생시키며 사회 안정에 기여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노동착취에 다름아니다. 

기업간의 모든 경쟁은 산업협회에서 나오는 비공식적인 지침을 통해 통제되었다. 특히 이 산업협회 덕분에 기업들이 손실을 내는 사업에서 철수하도록 강요하는 시장메커니즘의 부재로 이어진다. 경쟁에서 낙오된 회사들도 고용안정성과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율되고 감시되어진다. 이 속에서 일본 기업들은 고용 관행과 손쉬운 융자, 숙력노동자들의 완벽한 조합을 통해 해외에서 확실하게 시장을 점유해 나갈 수 있었다. 

일본의 고도성장의 또 하나의 바탕으로 고용관행이 있는데 이는 회사가 남성 직원에 대해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교육제도와 맞물려있다.

일본과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교육이 제공한다. 여기서 인재는 일본의 동일한 교육과정 속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학교의 스파르타식 분위기를 받아들여 절도있고 획일화된 외관에 대한 강조를 내면화한 체제순응적 인간들을 의민한다. 또한 이들은 일류대학 학부의 졸업자을 손에 넣음으로써 사회 엘리트의 수순을 밟아 나가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할 때 이들의 성적이나 전공은 중요하지 않다. 필요한 기술은 기업에서 가르치면 된다. 일류대학이 필요한 이유는 이들 중 기업을 지도층에 이르렀을 때 학연을 통한 연줄을 잡을 수 있는 대학 출신이간 아닌가에 달렸다. 


일본의 금융시스템은 전시체제와 비슷하다. 전시에 군수업체에 잔략적 산업을 몰아주는 것처럼 수출 주도형 기업에 대출을 집중적으로 제공한다. 그러면 초기 자금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를 위해 일본은 가계의 저축을 강력하게 장려하는 한편 정부가 발행한 금융상품(채권)을 사도록 요구하는 정책을 쓴다. 그럼에도 대출초과로 생기는 공백은 중앙은행이 리스크를 대신 떠안는 형식으로 모든 분야에서 국가의 개입이 두드러진다. 


이 외에 일본의 경제성장에 공헌한 것으로 '현실의 관리'라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여러 제도와 관행이 합쳐져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예측가능한 범위 안에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근무시간은 8시간으로 정해져 있고 모두 그렇게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퇴근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직원이 주 48시간만 근무한다는 정교한 픽션이 존재했다. 이런 현실의 관리가 곳곳에 존재한다. 일본 관료들은 일본의 낮은 관세율을 가리키며 일본 시장이 활짝 열려있다고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회사들은 수입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아는 것 같은 것이다. 또한 사상과 정보의 영역에서도 좌파나 진보적인 생각에 대해 공식적인 탄압은 업지만 누구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소외가 기다린다. 언론 역시 기자 클럽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어야 기사화가 가능하다. 이를 어기면 모든 특종에서이 배제가 기다리고 있다. 결국 현실의 관리라는 것은 모든 일본인에게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용되지 않는지를 상세히 규정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이를 일본인들은 일본적인 문화라고 생각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일본의 보수 지도층은 국가 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까지도 무수히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는 전략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들의 최우선 과제는 미군정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서 좌파 세력이 일본을 장악하는 것을 막고 전쟁 전 일본 내 권력 구조를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미국의 두려움과, 요시다가 사적으로 했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인의 아름다운 오해‘를 이용해서 미국의여론을 조작하는 작업을 포함하고 있었다.
- P179

주장컨대, 일본은 이런 게임을 하는 데 이스라엘 다음으로 숙달되어 있다. 연습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더 힘센 존재를 달래고 조종하는 기술은, 유치원 교실에서 시작해서 정부나 기업의 꼭대기에 오르는 데까지, 일본에서 성공하는 데 있어 금과옥조로 여겨진다.  - P180

헌법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비슷한 지적을 할 수 있는데, 가령 주권재민 규정이 그러하다. 헌법은 주권이 일본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아주 명확히 하고 있지만, 적어도 노년층에는 주권의 최종 소재가 사실여전히 천황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헌법은 또 입법권을 국회에 부여했지만, 전후 대부분의 기간에 실제로는 막강한 관료들이 자신들의 관할 영역에서 입법, 행정, 사법권을 모두 행사해왔다.  - P184

일본의 권력자들은 노동조합, 언론 자유, 보통선거권, 법률상의남녀평등이 실현되는 것을 막고, 다시는 학생들을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내보내지 않겠노라 굳게 결심한 급진적 교사들에게 훼방을 놓고,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천황의 신하가 아닌 공무원이라는 개념이 자리잡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이런 제도를에 내포된 사상은 매우 견고해서, 권력의 자의적 행사에 최소한 어느 정도 제동을 거는 역할을 계속했다. - P186

그렇기는 하더라도, 미군정은 초기 멤버들이 이루려고 노력했던 일본사회의 민주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존 다우어는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군사정부가 직접 통치했던 전후 독일과는달리 일본의 미군정은 기존 정부 조직을 통해 ‘간접 통치를 했다. 이는항복 이전의 일본 정치체제에서도 가장 비민주적었던 두 가지 제도에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다름 아닌 관료제와 천황제다."
- P187

전후 수십 년 동안 일본의 일반국민이 전쟁을 얘기할 때 쓰던 가장 흔한 말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중국이라는 진흙탕에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훨씬 강한 상대인 미국의 눈을 고의적으로 찌른것도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일반 국민에게는 이런 어리석음의 원인을 되돌아보고 재발 방지를 위한 논의에 참여할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이들은 정복자인 미국, 일본의 우익 양쪽으로부터 과거의 일은 묻고 잊으라며 적극적으로 주문받았다. 우익은 전후의 ‘민주주의를 맹렬히 공격하는 것으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했고, 교사와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에 대한 폭력 및 협박에 점점 몰두했다.
- P191

 이들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일본은 천황이 정치적 권력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고유하고 신성한 땅이라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회귀한다. 정통성에대한 이론적 바탕이 전쟁 전의 정치체제에서 변한 것이 없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재앙이 다시 생겨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할 수가 없고, 하더라도 신빙성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독일과는 대조적으로, 통치의 정통성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는 문제는 일본의 패배로도, 군정에 의해서도, 전후 헌법의 도입을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국가 정치의 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않으면 언제든 끔찍하고 파괴적인 무질서 상황은 재현될 수 있다.  - P193

일본의 보수 지도층은 CIA의 은밀한 도움을 받아 일본 내에 흩어져있던 보수 세력을 모아 자유민주당(자민당)으로 통합했다. 자민당은 볼테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유주의도 민주주의도 대변하지 않고, 전통적자의미의 정당도 아닐뿐더러, 줄곧 치러진 선거에서 과방을 넘는 득표를하지도 못했다 볼테르가 신성로마제국은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닐뿐더러,
제국도 아니라고 했던 것을 응용한 말 옮긴이), 하지만 자민당은 관료가 경제를 통제하고, 일본이 계속 미국의 방어 체제의 일부로 편입되어간다.
는 두 가지 사실을 정치적으로 눈가림해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 P197

1950년대 초반의 특수한 상황은 그 후 수십 년간 일본의 경제 기적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 전반의 성장 모델의 토대가 되었다. 일본은패전의 폐허를 극복하기 위해 사실상 미국 시장에 의존하는 수출 주도경제를 키우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독립한 많은 신생 개발도상국은 수입 대체‘를 주창하며 과거 식민지 시절 지배국에 의존하던 경제를 개혁하고, 국내 산업을 키우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일본에게 이것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고 애쓰는 대신, 일본은 그 의존도를유리하게 이용해서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산업과 기업을 키우는 다양한 제도를 만들어 발전시켰다. 그렇게 벌어들인 달러는 적어도 고도성장기의 첫 10~20년간은 경제 관료 기구에 의해 관리되고 배분되어 일본의 발전을 더욱 가속화하는 데 쓰였다.
- P198

좌파는 패배했다. 파업은 해산되고 안보조약은 개정되었다. 하지만 좌파가 모든 면에서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미쓰이가 노조를 파괴하고 대신 고분고분한 사측 노조를 만드는 데 성공하자, 다른 기업들도 그걸 따라하기 시작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때부터 일본의 대기업들은 핵심 남자 직원들에게 평생의 경제적 안정을 보상할 의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업으로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분기 이익이나 주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최우선 목표가 되있다. 직원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거나 회사가 재정적으로 힘들 때라도, 제대로 된 회사라면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렇게 경제적 안정의 보장이라는좌파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이 충족되면서 노동 투쟁은 점접 일종의 의례적인 절차로 변해갔다. - P207

하지만 근대 일본의 ‘가족과 같은 회사‘라는 개념은 에도 시대의 제도에서 나온 유기적인 산물이 아닐뿐더러 ‘일본 문화의 산물도 아니었다. 이것은 앞 장에서 다룬 종전 직후의 과격한 노동운동에 대응해 나온 이데올로기적인 해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유래의 진실도 일본 기업의 관리자들 머릿속에 자리잡은 가족과 같은 회사라는 개념을 흔들지는 못했다.  - P217

장기적으로 보면, 일본이 이렇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필수 요소인
‘창조적 파괴의 가능성을 억제했기 때문에 일부 산업은 직격탄을 맞는다. 예를 들어 소비자 가전제품 산업은 1990년 이후 애플이나 삼성과같은 해외의 발 빠른 경쟁자들의 도전에 직면한다. 하지만 고도성장기에는 산업협회들이 일본의 가장 첨예한 경쟁력을 해외 시장으로 향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일본 기업들은 고용 관행과 손쉬운 융자, 숙련 노동자들의 완벽한 조합을 통해 해외에서 확실하게 시장을 점유해나갈 수있었다.
- P220

고도성장의 바탕이 된 세 번째 제도는 일본의 고용 관행이다. 고용 관행은 일본 기업들의 행동 및 일본 경제생활에 불문율로 철저히 녹아들어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인 소위 ‘종신고용‘은 실제로는 평생 고용하는것이 아니고, 핵심 남성 직원에 대해 회사가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을 뜻한다.  - P221

절도 있고 획일화된 외관에 대한 강조와 불편을 받아들이는 훈련은,
좀더 광범위한 교육학적 목표의 일부로서, 적어도 언어 수리 능력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졌다. - P224

대학 시절에 형성된 학연이 중간급 이상의 관리직으로 올라갔을 때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본의 조직에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위치에 올라가면, 회사(또는 정부 부처)의 대외 관계를 관리하고 강화하는 것이 업무의 대부분이 되이버린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좋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면, 일본에서 너무나 중요한 인맥(진먀쿠脈)을 만드는 데 크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 P226

현실의 관리란 여러 제도와 관행이 합쳐져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일본인들이모순을 알아차리지 않기로 의도적이고 집단적으로 결정한 듯 보이는 데서 종종 드러난다. 근무 시간이 그 좋은 예다.  - P236

사상과 정보의 영역에서도 비슷한 힘이 작용했다. 세상이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한 현실을 부정하는 내용을 쓰거나 말한다고 해서 잡혀가는 일은 없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결국은 소외되기 마련이었다. 뉴스의 배포는 기자 클럽을 통해 통제되었다. 기자 클럽은 정치인, 정부 부처, 경찰과 같은 주요 정보원을 취재하는 기자들로 구성된 카르텔이다. 대형 보도 기관의 기자들만이 이 클럽에 가입할 수 있었다. 만약특정 뉴스를 어떤 식으로 보도할 것인지에 대한 기자 클럽의 암묵적인동의에 반하는 기사를 썼다가는, 그 기자와 신문사는 앞으로의 특종에서 배제될 것이었다.  - P240

‘현실의 관리‘는 그렇게 가장 아둔한 혹은 ‘일본적이지 않은 이들을밴 대부분의 사람에게,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용되지 않는지를 상세히 알려주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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