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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치일까? (리커버 개정판) - 그 누구도 아닌 나로 살기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양지하 옮김 / 현실문화 / 2020년 4월
평점 :
사랑은 사치일까? 설마 그럴리가!
저자인 벨 훅스는 모든 사랑의 출발은 자기애라고 이야기한다.
당연히 옳은 말이다.
내가 나를 긍정하고, 나의 힘과 희망을 믿고 나자신을 아끼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사랑한다 말하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규정에 누구라도 심정적으로는 동의하겠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이런 자기애를 가지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여성이 자신이 여성임에 자부심을 가지기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런 여성의 자기애에 가장 커다란 적은 역시 가부장제이다.
가부장제가 여성들을 어떤 식으로 억압해왔는가를 얘기하자면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만 모아도 3박4일은 얘기하고도 모자랄 것이다.
책에서는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이런 가부장제의 억압을 뚫고 자기 성취를 이루느라 너무나도 힘들어 아예 사랑에 대해 포기해버렸던 1세대 페미니즘에서부터, 이성간에는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냉소하는 레즈비언 여성 페미니스틀까지 아우르며 여성이 자기에 대한 애정을 바로 가진다면 어떤 사랑도 포기할 이유가 없음을 얘기한다.
동시에 사랑은 섹슈얼리티를 동반한 이성애, 섹슈얼리티를 동반하지 않은 이성애, 동성애, 자매애 등 무엇이든 상관없다.
결국 그런 사랑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는 것,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 하나는 섹스를 동반한 사랑에 있어 서로의 동의와 함께 무엇보다 중요하게 견지되어야 할 것은 거부권이다.
많은 여성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섹스, 또는 섹스취향을 강요받는다면 그것 역시 억압이지 사랑이 될 수 없음이다.
여기까지 작가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도 책을 읽고 나면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결국 인정욕구의 충족이다.
나라는 존재의 유의미성, 내가 하는 노동과 수고에 대한 감사와 인정, 나의 성취에 대한 격려
내게 필요한 것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당연히 나 스스로 자신에 대한 인정에서부터 출발해, 내 주변의 가족, 친구, 연인, 배우자 이런 사람들이 나의 모습을 인정해준다면 아마도 나의 삶은 풍요롭고 만족스럽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나도 간단해보이는 것이 사실 쉽지 않음은 세상을 조금만 살다보면 누구나가 느낀다.
현실은 이론보다 훨씬 버라이어티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사람은 뜬금없게도 나의 시어머님이었다.
안동권씨 집안에 8대 장손 며느리로 지지지도 가난한 집안을 꾸려왔고,
그토록 가난함에도 평생 시부모님 봉양에, 시아버님의 9남매 뒷건사를 해오셨던 분, 철철이 끊이지 않는 제사를 수고롭게 수행해온 분이다.
거기다 집안 분위기는 당연히 얼마나 가부장적인지 전혀 그렇지 않은 집에서 시집간 내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 투성이였었다.
(이 얘기도 늘어놓자면 3박 4일도 모자라겠지만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니 비켜간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시어머님의 삶에 대해 가만히 살펴보면 못배우고 가난하고 희생만 해왔던 삶에서 어머니 나름으로 만들어낸 자신의 자리가 있다.
드라마같은 것에서 보듯 모진 시집살이와 희생을 했던 여성이 자신이 시어머니가 되면서 권력을 휘두른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보통 시집살이 모질게 한 여성이 며느리 시집살이 시킨다고 하는데, 우리 시어머니 같은 경우 예외다. 자신은 진짜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듯 모진 시집살이를 했기 때문에 결혼초에 나는 며느리 시집살이 안시킬거다라고 하셨는데 그걸 정말 실천하시는 분이다.)
집안의 큰 행사나 명절, 제사 등등의 행사는 시어머님에게는 자신이 이루어놓은 자리를 확인하는 자리다.
어떻게 보면 시어머님의 사회적 성취라고나 할까?
그게 보인다.
나는 제사가 너무 싫지만 차마 그걸 바꾸자고 하지 못한다.
평생을 희생하고 살아오신 시어머님의 그 자존감이 충족되는 자리를 자식인 내가 함부로 깰 수 없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입장에서라면 우리 시어머님의 저 자기애는 잘못된 기반위에 있다.
그러나 그분의 삶을 생각하면 저 자기애를 비난할 오만이 내게는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모든걸 동의하면서도 그럼에도 그 사이 틈새를 파고드는 아쉬움.
그것은 이 책에서 예로 드는 성취를 이룬 대부분의 여성이 어느정도 교육받은, 자기 생각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는 성공한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중년에 이르러서 가부장제와 결혼이라는 제도의 굴레를 깨고 학위를 받고 강단에 서는 여성, 자신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는 남자를 버리고 전문직으로서의 자기 자리를 찾는 여성.
다 좋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성취를 이루기 힘든 여성들이 훨씬 더 많다.
세상에는 공부를 잘하는 여성보다 못하는 여성이 더 많고, 이런 에세이를 읽어내기도 어려운 여성들이 더 많다.
최소한의 경제적 보장이 없어 하루종일을 힘겨운 노동에 허덕이는 여성들은 더 많다.
내가 도대체 잘하는게 무엇인지 알지 못해, 자괴감에 시달리는 여성은 더더더 많을 것이다.
소수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그런 각각의 버라이어티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을 위한 페미니즘은 무엇일까?
가부장제는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지만 그 자신이 구시대인 여성들은 자기 자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고민을 던져주는 책은 어쨌든 좋은 책이다. 설사 아쉬움이 남을지라도........
페미니즘이 이 다양한 현실을 더 폭넓게 아우를 때 그것이 갖는 현실적인 힘이 더 커질것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