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아무 사고없이 무사히.... (하여튼 이 무사히가 제일 중요해요.^^)

우리반은 담배 한갑을 압수한 것 외에는 별 사고 없었구요. ^^

영천은 여기보다 북쪽이어서 그런지 날씨는 많이 풀려 따뜻한 봄인데 주변 풍경은 여전히 삭막한 겨울이더군요. 봄기운을 느끼기는 좀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길가에 수줍게 핀 산수화가 아주 작은 소리로 봄을 알리고 있더이다. (이번에 깜박하고 디카를 까먹는 바람에 못가져 갔어요.)

수련회 브리핑에서는 교사들의 요구사항은 딱 두개였습니다. 첫번째는 아이들 너무 고생시키지 말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골라줄 것. 두번째는 여학생들 나중에 교관 만난다고 가출 안하게 해달라는것... ^^

2박3일간 많이 힘들었을텐데 그래도 아이들의 표정이 내내 밝아서 참 좋았습니다. 이런 곳 오면 제일 신경쓰이는게 아이들 먹는건데 이번에 간곳은 밥이나 반찬도 푸짐하고 맛있어서 참 다행이었고요. 수련회장 선택이 성공적이었던거죠. 돌아오는 오늘엔 집에 가기 싫다는 애들이 많아서 참......

참 우리반 애들은 반별 단합대회에서 1등을 먹어 엄청 사기가 올랐더군요. 지들 말로는 다른 모든 반을 압도적으로 눌렀다는데.... 그래서 저도 너무 기분이 좋을 뻔 했다가, 1등을 한 이유를 듣고는 애들을 확 패줬습니다. 왜냐구요. 그녀석들이 만들어 부른 반가가 인기독차지 하는 바람에 1등을 했더군요. 그 반가의 내용이 뭐냐구요. 제가 주인공입니다. 주제가 한 마디로 우리 선생님의 공주병이었다나요? 내가 공주병이 아니라 진짜 공주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앞으로 집중 세뇌가 더욱 필요할 듯.... ^^;;

수련회엘 따라오면 한편으로 편해서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없어서 섭섭하기도 합니다. 선생들은 거의 뒹굴뒹굴.... 할 짓어 없어서 수련회장 지하 창고에 마련된 휴게실에 가서 처음으로 포켓볼 배우고 탁구치고..... 것도 지치면 수다떨고....

오늘 돌아오는 버스 타면서 우리 반 녀석이 "우리 수련활동 할때 선생님은 뭐하셨어요?"하길래 속으로 살짝 미안했지만 차마 포켓볼 쳤다고 말은 못하고 그냥 그랬죠.

"음~~ 뒷산에 올라가서 정화수 떠놓고 너네들 잘되게 해달라고 하루종일 빌었다" ^^;;

아이들이 더 예뻐 보이는 수련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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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6-03-24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셌네요..
고생이 없었다니 다행입니다 아이들도 즐거웠다면 더 좋잖아요 수고하셧어요,

아영엄마 2006-03-2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공주님 잘 다녀오셨군요!별 탈 없이 돌아온 것도, 반이 일등 먹은 것도 축하드립니다. 공주님 반인데 어련하려구요~ ^^

세실 2006-03-25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잘 다녀오셨군요~~~
그나저나 바람돌이님이 진짜 공주셨다구요? 흐 라이벌이군~~~

날개 2006-03-25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관 만난다고 가출도 해요? 하하하~

chika 2006-03-25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련회가 안좋은건 그거예요.. 선생님과 함께 하지 못하는 거. 교사도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진행을 해야된다고봐요. 더구나 학년초에는 말이지요;;;
- 근데 공주님 쫓아댕기는 바.람.돌.이 님 아니셨어요? @@

바람돌이 2006-03-2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고마워요. 헤헤~~ 전 고생한게 하나도 없는데도 왜 이리 피곤할까요? ^^
아영엄마님/작은 일인데 그런데서 일등먹은게 그리 좋은지 아이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제가 눈에 띄기만 하면 달려와서 일등한거 자랑한다고 정신이 없더라구요. 중3이라도 역시 애들은 애들이라는걸 확인!!! 근데 그 노래가 아마도 우리반 반가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
세실님/세실님보다 제가 한 수위일걸요. 세실님은 미모를 만방에 고하셨지만 저는 아직 베일에 싸인 공주랄까? ^^;;
날개님/농담같죠? 근데 실제 있었던 일이라니까요. 별별 애들이 다 있으니까 뭐...^^
치카님/근데 전 아이들 체력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같이 하면 억~~~^^;; 근데 저 사실은 공주님 쫒아댕기는 척하지만 위장한 바람돌이였어요. 진짜 공주는 저라니까요. ^^;;

세실 2006-03-2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 공개하라 공개하라~~~~~~~~~

동그라미 2006-03-2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해요 저는 왕자님이신줄 알았어요... 공주님 잘다녀오셧다니 수고하셧어요..좋은 하루되세요..

프레이야 2006-03-29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저도 닉네임만 보고는 남자분인줄 알았어요. 근데 수련회 벌써 갖다오셨네요. 큰애 중학교는 4월에 간다고 하네요. 어디로인지는 아직 모르겠구요.

바람돌이 2006-03-29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제 즐찾관리를 위해서 아니되는줄 아옵니다. ^^
동그라미님/저는 바람돌이가 무성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남자같다네요. 이 참에 바람공주나 돌이공주로 닉네임을 바꿀까요? ^^
배혜경님/뭐 학교마다 다르니까요. 다 장단점이 있는것 같아요. 그래도 좀 따뜻한 4월이 더 좋기는 해요. ^^
 

제가 이주의 마이리스트에 당첨됐어요. 그래서 공돈이 2만원이나.... ^^;;

요즘 머리복잡하고 정신없어서 복잡한 건 못하겠고요.

저도 캡쳐 이벤트를 한 번 해볼려고요.

조만간 제 서재 방문 숫자가 12345가 될 것 같아서....

12345 잡아주시는 세번째 다섯분째 분, 두분께 만원 내외의 책 선물 할게요.

원래는 좀 있다가 할 생각이었는데 이게 제가 사흘씩이나 서재를 비우다보니 그 틈에 되면 어쩌나 싶어서.... 사실 제 생각은 아마 제가 돌아올때까지 이 숫자가 안 넘어가지 싶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미리 공지를 하고 갈려고요.

혹시 주인장 없는 캡쳐라고 내치지 마시고 많이 많이 참여해주세요. ^^

아 글구 요아래에 댓글로 잡아주심 됩니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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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은김삼순 2006-03-25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1분 남았다,,참!새벽별을 보며님,,오타났네요~죄송합니다^^;;

내이름은김삼순 2006-03-25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엄마가 저녁준비한다고 부엌에서 부르시네요~김을 바삭바삭 구워놓으래요ㅠ ㅎ
물만두님,새벽별님,,행운을빌어요~그외에 다른 분들도^^
제가 김 맛나게 굽고 온 후에도 아직 진행중이면 저두 도전해볼테야요^^

물만두 2006-03-25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물만두 2006-03-25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12345

아영엄마 2006-03-25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12345

아영엄마 2006-03-25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엣.. 저도 있었는데..@@;;

아영엄마 2006-03-25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엌에 왔다갔다 하는 와중에 한번씩 바꿔주느라(새로고침) 댓글은 못 달고 있었는데... 근데 주말이라 그런지 정말 사람 없네요??


내이름은김삼순 2006-03-25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앙,,갔다왔는데 사람이 없네요?
전 네번째인가?
글믄 안되는거죵?ㅠ
5012345

물만두 2006-03-25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갔다 밥먹고 왔는데도 그대로라니 ㅠ.ㅠ

물만두 2006-03-25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12345

숨은아이 2006-03-25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112346

늦었네요. 축하합니다~! ^^


바람돌이 2006-03-25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제 들어왔어요. 주인장 없는 서재를 지켜주신 분들 고마워요. ^^
그럼 결과가 세번째, 5번째니까 아영엄마님이랑 두더지님이네요. 글구 두더지님은 처음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헤헤~~~ 아영엄마님과 두더지님 요 아래 서재주인보기로다가 받고 싶은 책과 주소 남겨주세요. 앗! 아영엄마님은 주소는 있으니까 그냥 책만 골라주심 되겠네요. 뭐 만원 약간 넘는 정도는 용서해드릴게요. ^^
근데 제 서재를 꾸준히 지켜주신 만두님 새벽별님 김삼순님 어떡해요. 뭐 숫자 잡으신 분이 엄청 많으면 할 수 없지만 딱 5분이니까 기냥 제가 봄선물 할래요. 뭐 이벤트 만든 것도 전데 제맘이죠.... 3분도 아차상을 드릴게요. 만원 안쪽으로다가 요아래 책 골라주세요.
아 상품은 알라딘에서 되는거라면 책 음반 기프트 상품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오늘 봄 기분을 확 내고 왔더니 마음이 들뜬 기념이랍니다. ^^

실비 2006-03-25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들어왔는데 끝났네요.ㅠ

조선인 2006-03-25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아영엄마님, 축하드려요. 두더지님, 반갑습니다. *^^*

내이름은김삼순 2006-03-25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정말 감사드려요! 저 첫 이벤트라 열심히 했는데 안돼서 쫌 서운해하고 있었거든요 ㅠ 선물 받아도 될련지,,쑥쓰럽고 민망해요~
밤이 깊어가는데 좋은 꿈 꾸시고 안녕히 주무세요^^

날개 2006-03-25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112356

흑흑..ㅠ.ㅠ
오늘 친정부모님들이 오셔서 서재에 들어올 수가 없었어요~
다섯분 모두 축하드려요!

근데, 저 숫자도 넘 좋지 않아요? 4만 빠졌는뎅~


동그라미 2006-03-26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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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갔다가 이제사 들어왔더니... 축하드려요..좋은 하루되세요...


마늘빵 2006-03-26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이런 깜빡 했다. ㅠ-ㅠ

2006-03-26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03-26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뉘 이런~ 바람돌이님 파산하시는거 아냐요? 파산하시기전에 골라야쥐~
암튼 축하드려요~

2006-03-26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6-03-26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6시가 다 된 무렵이었나 봐요. 전 어차피 안됐네요. 누굴 좀 마나고 있었거든요. 선약이라...어쨌든 되신 분들 축하해요. 숨은아이님도요.^^

바람돌이 2006-03-26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님 조선인님 아프락사스님 날개님 동그라미님 스텔라님 다들 제 이벤트에 관심가져 주셨는데.... 고마워요. 제가 로또 당첨되면 아주 거하게 쏠게요. ^^
새벽별님 김삼순님 물만두님 책 접수했습니다. 지금 집 치우고 와서 바로 주문들어갈게요. 근데 정작 진짜로 당첨되신 아영엄마님이랑 두더지님은 바쁘신가 봐요. 빨리 빨리 안들어오시면 당첨 취소해버립니다. ^^

바람돌이 2006-03-29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 접수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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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워낙 드문 드문 서재에 들어오다보니 별로 궁금해 하실분도 없겠지만 그래도....

내일부터 사흘간 경북 영천으로 수련회 떠납니다. 수학여행이야 잠못자고 차에 시달리고 아이들에 시달리고 괴로움 일색이지만 수련회는 사실 너무 편합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냥 교사들은 별 할일없이 간간이 아이들을 둘러보는 정도고, 수련회 측에서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해주니 뭐....

여기는 봄 매화가 활짝 피었는데 위쪽으로 가니 봄 기분은 여기보다는 덜날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랫만에 야외로 나간다니 기분은 좋네요. 알라딘 서재를 체크못하는게 아쉽긴 하지만.....

3월은 정말 너무 바빠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더니 이제 대충 일도 마무리가 되어가고, 정리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오랫만에 제 전공 찾아서 하는 국사 수업도 재밌구요. 제가 하도 재밌어 하며 재밌으라고 강요하니 아이들도 열광은 전혀 안하지만 그래도 아주 쬐끔 호응을 해주네요. 그냥 이 맛에 삽니다. ^^

아픈 아이들 없이 아무 탈없이 무사히 잘 다녀오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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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03-2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수련회 가셔서 푹 쉬었다 오세용~~~~
봄내음 물씬 담아 오시겠군요~~~~

아영엄마 2006-03-22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수련회 가셔서 잘 보내고 오시와요~~(잠시 컴퓨터를 떠나 있는 것도 좋습니다~^^)

바람돌이 2006-03-22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아마 봄내음은 좀 무리가 아닐까 싶은데... 내일부터 또 추워진다나 어쩌나... ^^ 어쨋든 잘 놀다 오겠습니다. 근데 놀다온다고 하면 안되는데... 무조건 학생지도라고 우겨야... ^^

바람돌이 2006-03-22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네 잘갔다 올게요. 무사히.... ^^

울보 2006-03-22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다녀오세요,,

바람돌이 2006-03-22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도 고맙습니다. 잘갔다올게요. ^^

월중가인 2006-03-22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교관한테 굴리는 저희는 수학여행이 훨씬 좋은데 ㅜㅜ 처음와서 쌩뚱맞지만 잘 다녀오세요~~

바람돌이 2006-03-22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일라님 처음뵙네요.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맞아요. 학생들은 당연히 수학여행을 좋아하지만.... 저는 체력의 한계를 느껴요. 특히 밤에 잠 못자고 애들 지키는거.... ㅠ.ㅠ 남녀공학 되고 난 이후 제일 안좋은 점이 수학여행 가면 밤에 잠 안자고 번갈아가며 지켜야 한다는거지요. ㅠ.ㅠ 그래서 수련회가 좋아요. ^^

paviana 2006-03-22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세요. ㅎㅎ

2006-03-22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6-03-2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으시겠습니다. 건강히 잘 다녀오십시오. 그나저나 딸래미 보고 싶으셔서 어쩌신담.ㅜ.ㅜ

클리오 2006-03-2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련회 프로그램도 극기훈련말고 좀 재미있는걸 할 수도 있을텐데 말이죠.. 하여간.. 저희 신랑도 오늘부터 수련회 갔습니다. 슬퍼요, 흑... ^^ 잘 다녀오세요!!

실비 2006-03-22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다녀오셔요. 좋은 추억 만들어오시구요^^

바람돌이 2006-03-24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이번에 저희들은 애들이 더 만족스러운 수련회여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다들 좋아해서 다행이었어요.
파비아나님/잘 다녀왔습니다. 전 사학과는 아니구 사범대니까 역사교육과죠. 뭐 거기서 거기지만....
스텔라님/맞아요. 매일 예린이 해아 전화 목소리 들으면 얼마나 보고싶던지....
클리오님/이번 수련회는 프로그램 고를때 요구사항 딱 하나였어요. 애들 좀 재밌게 해달라고.... 그래서 그런지 어쨌든 아이들이 참 재밌어하며 집에가기 싫다던데요.^^
실비님/덕분에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
 
 전출처 : 바람구두 > 한홍구 - 현대사 공부하지마 다쳐!

현대사 공부하지마 다쳐!

그들은 대한민국을 비하하기 위해 지워진 역사를 찾아가는 열정을 불태웠을까… <인식>과 <재인식>논란을 계기로 더듬어보는 70~80년대 ‘한국사 연구’의 추억

요즘은 대학입시 수석 합격자를 인터뷰하는 관행이 사라졌지만, 과거 우리는 판에 박힌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과외는 받지 않았고, 오직 학교 수업만 충실히 했다고…. 가물에 콩 나듯 그런 성실한 학생도 있었겠지만, 들리는 소문은 그와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았다. 학교 수업만 성실히 받았다는 말만큼이나 믿기 어려운 말이 ‘아무런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는 말이다. 지금 “어떤 현실정치적 함의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자임하는 책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이 바로 그 책이다.

친일문제 다시 거론하기도 힘들어

이 책의 머리말에서 박지향은 “1980년대에 출간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하 해전사)을 읽고 ‘피가 거꾸로 흘렀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을 지면을 통해 접하고, 우리 사회의 역사 인식을 이대로 두고 본다는 것은 역사학자의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 군사독재가 판을 치던 1970~80년대의 현대사 연구는 지워진 역사를 찾아가는 작업이었다. 1987년 4월28일 검찰이 압수한 이념서적들. (사진/ 보도사진연감)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8월25일 독립유공자와 유족 초청 오찬에서 “반민특위의 역사를 읽은 많은 젊은 사람들이 거역할 수 없는 어떤 시대적인 흐름 때문에 직접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아무 실천은 못하지만 가슴속에 불이 나거나 피가 거꾸로 도는 경험을 다 한 번씩 한다”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누구 피가 거꾸로 돈 것인지, <재인식> 편집위원은 역사학자의 기본인 사실확인에서부터 오류를 범한 셈이다.

대단히 공격적인 머리말과 권말의 대담, 그리고 몇 편의 뉴라이트 경향의 논문이 문제이긴 하지만, <재인식>에 실린 다수의 논문은 가벼이 볼 수 없는 논문들이다. 역사가 짧은 현대사 연구의 깊이와 폭을 더한 글들로, 이 논문들의 문제제기는 학계에서 진지한 토론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편집진의 과도한 ‘사명감’과 수구언론의 호들갑으로 인해 이 책이 뉴라이트나 수구 진영의 성전처럼 포장되면서 정작 이 책에 논문의 재수록을 허락한 몇몇 필자들은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임대식이 <역사비평> 2006년 봄호 머리글에서 적절하게 평한 것처럼 <재인식>은 뉴라이트와 탈근대론의 부적절한 만남의 산물이라고 할 것이다. <재인식> 자체에 대한 비판은 임대식의 글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이미 나왔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처음 나온 1970년대 후반 이래의 현대사 연구가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한국에서는 현대사와 근대사를 칼같이 구분하지만, 우리가 애써 구분해보아야 영어로는 둘 다 ‘modern history’가 된다. 현대사를 ‘contemporary history’라고도 하지만, 이는 우리가 쓰는 의미의 현대사라기보다는 ‘당대사’ ‘동시대사’라는 뜻이 더 강하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근대와 현대의 구분에 대해서도 고찰을 해보아야겠지만, 한국에서 유달리 근대와 현대의 구분에 집착하는 것은 분단과 전쟁과 학살의 현장인 한국에서 현대사 연구가 태생부터 지녀야 했던 정치적 숙명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국사 찾기’를 하는 사람들이 흔히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란 말을 쓰지만, 군사독재가 판을 치던 1970·80년대의 현대사 연구는 정말 지워진 역사를 찾아가는 작업이었다.


△ 현대사 연구의 기폭제가 된 것은 1980년 5월의 광주가 준 충격이었다.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살아남은 모두를 해방 직후로 이끌었다. (사진/ AFP연합)

1970년대의 한국은 ‘에비’가 지배하는 사회, “묻지 마, 다쳐”가 선배가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교훈이었던 사회다. 이 난을 통해 여러 번 강조했지만, 전쟁을 치르면서 어찌나 확실하게 죽여놨던지, 친일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것도 몹시 힘들었다. 제주 4·3 사건처럼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사건을 입에 담아서도 안 됐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이 보여주는 것처럼 현대사의 비극적 진실은 그저 삶을 가위 누르는 악몽이었다.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도 못하는 처지를 그린 <순이 삼촌>도 판금도서 목록에 올라야 했다.

그래도 문학이 조금 자유로웠던지 <창작과 비평>에는 더러더러 해방 직후의 상황을 다룬 소설들이 실리곤 했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1974년에 나오고, 송건호의 <민족지성의 탐구>가 이듬해에 나오면서 이른바 ‘의식화’(아직 의식화란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전이었을 것이다) 교재가 풍성해졌지만, 우리 자신의 역사를 다룬 책은 별로 없었다. <창작과 비평> 등에 실린 논문을 복사·제본해 <현실인식의 기초>라는 학생운동 진영의 기초 세미나 교재를 처음 만든 것이 1979년이었다. 학생운동 진영이 처음으로 ‘커리’(커리큘럼)를 만들어 의식화 교육을 시작할 무렵, 대학가에서는 아직도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존 롤스 같은 보수 사상가의 <정의론>, 얼마 뒤 전두환의 비서실장이 되는 이규호가 쓴 <사람됨의 철학> 등이 세미나 교재로 이용됐다.

광주의 충격이 현대사 연구를 이끌다

나는 1978년 계열별로 대학에 입학해 1979년 국사학과에 배정됐는데, 당시 국사학과에는 ‘현대사’라는 과목은 아예 교과목으로 개설되지 않았다. 현대사는커녕 독립운동사조차 강의가 개설되지 없었고, 아마 ‘한국최근세사’라는 제목하에 의병투쟁에 대해서는 배웠던 것 같다. 서울대가 특히 사정이 나쁜 것이었지만, 다른 대학도 형편이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1979년은 마침 3·1운동 60주년이 되는 해인지라 국사학과를 중심으로 학생들끼리 심포지엄을 하자고 해서 준비했던 기억이 새롭다. 역사가 지워진 시대이다 보니 자료도 많지 않았다. 1977년에 지식산업사에서 그동안의 일제시대에 관한 논문을 모아 세 권으로 엮은 <한국근대사론> 정도가 그나마 쉽게 구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 <한국민중사>는 88올림픽을 앞두고 시행된 운동권 사냥의 희생양이었다. 다행히 6월 항쟁이 터져 발행인이 석방됐다.(사진/ 한겨레)

<해전사>가 나온 것은 바로 이런 때였다. 초판 발행일이 1979년 10월15일로 되어 있으니, 박정희가 죽기 10여 일 전에 나온 것이다. 정말 유신 말기에 나온 책이다. <해전사>는 1989년 제6권까지 나왔지만, 처음부터 시리즈로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왜 분단이라는 비극이 우리 민족과 국토에 닥쳐왔는지를 “논리적으로 인식”하고 이 시대에 대한 해명을 통해 “그 이후의 우리 자신에 대한 사회과학은 비로소 맥락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하에 “하나의 시도 내지 입문서”로서 나온 책이다.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이 유신정권에 의해 죽고 남베트남 정권이 붕괴되던 1975년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언론인들이 대거 해직당한 해이며,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된 해이기도 하다. 많은 언론인이 신문사에서 쫓겨난 뒤 호구지책으로 출판사를 차렸고, 긴급조치로 쫓겨난 학생들은 선배들이 차린 출판사의 직원이 되었다. <해전사>도 이렇게 만들어진 출판사 중 하나인 한길사에서 나온 것이다. 박정희의 갑작스런 죽음이 가져온 허탈감과 기대 속에서 많은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이 <해전사>를 읽기 시작했다. 생생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대부분 여기저기 이전에 발표된 글을 모은 책이었지만, 10·26 직후의 상황은 8·15와 4·19에 뒤이은 또 하나의 전환기가 아니었던가? <해전사>로 새롭게 만난 8·15와 20주년을 맞게 되는 4·19. 그러나 ‘서울의 봄’은 속절없이 끝나고 말았다.

군사독재가 강화된 1970년대 후반부터 우리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은 분명했지만, 현대사 연구의 기폭제가 된 것은 역시 1980년 5월의 광주가 준 충격이었다.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살아남은 모두를 해방 직후로 이끌었다. 불행하게도 <해전사>는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 1982년 말 돌베개에서 <한국현대사의 재조명>이 나오고, 이어 1983년 초 일월서각에서 <분단 전후의 현대사>가 나왔으며, 1984년에는 사계절에서 <한국 현대사, 1945∼1975>이 나왔다. <해전사>가 철저하게 국내 필진의 글을 모은 것이라면, <한국 현대사의 재조명>은 영어와 일어로 쓰인 주요 논문이나 연구서의 한 부분을 번역해 모은 것이고, <분단 전후의 현대사>도 국내 필자의 글이 2편 실려 있지만, 기본적으로 해외 연구자들의 성과를 모은 것이다. <한국 현대사, 1945∼1975>는 미국의 진보적 한국 연구자들이 펴낸 의 번역본이었다. 이 세 책에는 모두 브루스 커밍스의 글이 실려 있는데, 1981년 미국에서 간행된 그의 <한국전쟁의 기원>은 번역 출간되기 전부터 널리 읽혀졌다.

초기 현대사 책의 출간에서는 현재 열린우리당 소속인 유기홍 의원이 당시 학내 시위로 실형을 살고 나와 출판사에 다니며 큰 구실을 했다. 나도 그 무렵 군대에 끌려갔다 온 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1960년대>(거름출판사), <진보당>(지양사) 등을 선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편집했고, 돌베개에서 이정식·스칼라피노의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1∼3을 번역하면서 현대사 공부를 시작했다.


△ 50대의 대학교수들이 친일파나 독재자들에겐 너그러우면서, 과거청산에 대해서는 자학사관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회 과거사법 발의 장면. (사진/ 한겨레 이종찬 기자)

망망대해에서 목말라 하는 연구자

현대사 공부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다. 보통 고대사는 해당 시대의 자료를 다 쌓아도 무릎을 넘지 않고, 고려사는 문집을 합쳐도 키를 넘지 않는데, 조선시대는 방 하나 가득이 되어 자료가 넘쳐나기 때문에 고려시대사를 연구하는 방법으로 조선시대를 연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조선시대 자료가 방 하나 가득이면 현대사는 그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자료가 많아서 취사선택에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현대사 공부를 하겠다고 나선 우리는 마치 사방을 둘러봐도 물뿐인 망망대해에서 목말라하는 사람들처럼 자료 부족에 허덕였다. 주변에 책 빌려주었다가 문제가 되어 징역을 살고 고문당한 사연을 심심치 않게 듣는 마당이니, 자료를 가진 사람들도 빌려주는 것은 고사하고 여간해선 자료를 보여주려 하지도 않았다. 도서관에 해방 직후에 간행된 자료가 있어도 대부분 특수자료로 분류해 보여주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는 자료를 구해서 읽은 시간보다 헌책방 뒤지거나, 어디에 무슨 자료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어떻게 빼낼까 궁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싶다.

1986년 김남식 선생님과 함께 <한국 현대사 자료총서> 15권을 돌베개에서 묶어 낸 것도 거창하게 말하자면 자료 부족 때문에 현대사 연구를 할 수 없다는 패배주의를 깨버리자는 것이었지만, 자료 접근에 가해진 제약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동안 제목으로만 들었던 단행본, 좌익계 신문과 잡지의 주요 논문, 회의록, 팸플릿 등이 2만 쪽가량 쏟아져나와 해방 3년사에 관해서는 자료 부족 때문에 연구하기 어렵다는 핑계를 대지 못하게 되었다. 또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미군정 자료가 15권 분량으로 일월서각에서 영인본으로 간행됐다. 조선공산당 기관지 <해방일보>나 남로당 기관지 <노력인민>과 같은 자료를 모아서 내다 보니 당국의 단속이 우려됐지만, 다행히 무사히 넘어갔다.

주요 대학 사학과의 학부는 물론이고 대학원에도 현대사 강의나 세미나는 설치되지 않았다. 제목에 ‘현대사’라 되어 있어도 적당히 일제시대나, 심지어 어떤 대학에서는 현대사에서 대원군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현대사를 공부하겠다고 하면 워낙 험한 시대이다 보니 선생님들께서는 다친다고 만류하셨다. 정규과정에 근현대사 강의가 부족하다 보니 사학과 대학원생들이 밖에서 세미나팀을 조직했다. 1984년 망원한국사연구실이 문을 열었고, 여기서도 이듬해에 현대사 팀을 만들어 공부를 시작했다. 1986년에는 역사문제연구소가 만들어졌는데, 망원한국사연구실은 주로 한국사 전공의 석사과정 중심으로 모여 사명감은 충천했으나 논문을 집필할 만큼 성숙하지는 못한 반면, 역사문제연구소는 사학 전공자들에 비해서는 한결 몸이 가벼운 사회과학연구자들까지 포함해 모였고, 이미 연구 역량을 갖춘 장년층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적극 가담해 더 빨리 성과를 내었다.

운동권 사냥, <한국민중사>를 잡아먹다

1986년 아시안게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군사독재 정권은 1988년 올림픽 이전에 운동권을 싹쓸이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1986년 건국대 사건으로 1천여 명의 학생을 잡아들이더니 1987년 초 박종철이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 살해됐다. 비단 학생운동뿐 아니라 노동, 농민, 종교, 문화 등 전방위에 걸쳐 군사독재의 공세가 시작됐고, 이런 분위기에서 출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대 최고의 공안검사로 유명한 김원치에 의해 풀빛에서 간행된 <한국 민중사>가 표적이 되어 풀빛의 실질적인 발행인 나병식 등이 구속됐다. 민청학련 사건의 무기수인 나병식은 역사를 전공했고, 당시 후배들과 폭넓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한국 민중사>는 유기홍이 중심이 되고 도진순(현재 창원대) 등 대학원생과 제헌의회 사건의 핵심인 최민 등 서울대 국사학과 77·78학번들이 처음에는 정철영어에서 영어로 한국사를 내려 한다며 한국어 저본의 집필을 부탁받아 작업하다가 중간에 정철영어 쪽에서 포기하는 바람에 풀빛에서 내게 된 것이다. 유기홍, 최민 등이 각각 수배되는 등 사고가 생겨 현대 편이 마무리되지 못했는데, 윤대원(현재 역사학연구소)이 마침 군에서 제대해 마무리하여 책이 나왔다. 민중을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역사서는 당시 독자의 상당한 호응을 얻었지만, 공안당국은 더 뜨겁게 나왔다. 그동안 나온 현대사 관련 서적들이 모두 판매금지를 당해 금서 목록에 이름을 올렸지만, 발행인이 구속되거나 필자들이 잡혀가지는 않았는데, <한국 민중사>의 경우 출판사 사주가 구속된 것이다. 다행히 6월항쟁이 겹치면서 나병식은 석방됐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그의 석방을 위해 뛰어다니던 풀빛 주간인 문학평론가 채광석이 이 무렵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해전사>도 1985년에 강만길 선생을 대표저자로 하여 2권이 나왔다. 김광식이나 홍인숙 등 197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니면서 <해전사> 1권을 읽고 ‘피가 거꾸로 도는’ 충격을 받았던 사람들이 필자로 참여했지만, 여전히 40·50대 필자들이 주를 이루었다. 1987년 말에는 박현채 선생을 대표저자로 하여 3권이 나왔는데, 이번 <재인식>에도 논문이 수록된 이완범 등 젊은 필자들이 중심이 되었다. 1989년에는 4, 5, 6권 세 책이 무더기로 나왔다. 최장집 선생이 대표필자가 된 4권은 한국전쟁 이전의 빨치산 운동이나 4·3항쟁 같은 민감한 문제를 처음 다루었고, 김남식 선생이 대표필자가 된 5권은 통일부 장관이 된 이종석 등 젊은 필자들이 북한의 혁명전통과 인민정권의 수립을 주로 다루었다. 6권은 박명림ㆍ이완범 등이 연구사를 정리했다. 1979년 1권이 처음 나온 <해전사>는 이렇게 1989년 6권까지 나오면서 신진 필자들을 대폭 발굴해 국내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했다.

광주의 충격 속에서 현대사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며 신문 쪼가리, 잡지 쪼가리를 모아 논문 목록을 작성해가던 것이 벌써 25년 가까이 지나버렸다. 노동‘현장’에 가는 대신 책상이 당시 현대사 연구를 마음먹은 사람들의 ‘현장’이었고,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공부가 세상을 바꾸는 지식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선생님들은 이렇게 공부해라 가르쳐주는 대신, 현대사 공부하면 다친다고, 한국사에는 아직 연구되지 않은 주제들이 너무나 많이 기다리고 있다고 걱정하셨다. 공안당국은 <한국 민중사> 사건이나 <한국현대 민족해방 운동사 사건>에서와 같이 현대사 연구가 대중화되거나 운동과 결합할 경우 그냥두지 않았다.

그 공부가 나라를 비하하기 위해서인가

그 질풍노도의 시대에 ‘묻지 마 다쳐’를 뿌리치고 현대사 공부를 시작한 우리는 다듬어지지 않은 20대였다. <재인식> 편집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민족지상주의와 민중혁명필연론으로 무장한 것은 아니지만, 민족과 민중을 소중히 여겼음은 틀림없다. 일제시대를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은 당시에도 알았지만, 독립운동사 연구를 불온히 여기던 상황에서 연구영역의 확보를 위해서라도 치고 나갈 수밖에 없는 면도 분명히 있었다. <재인식>의 편집진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연 우리가 대한민국을 비하하기 위해 어렵게 현대사 공부를 시작한 것이었을까? 1989년의 <해전사> 단계에서는 아직 다가서지 못한 민간인 학살의 진실이 <재인식> 편집진이 “시민의 권리와 의무는 또 무엇인지를 모른 채 나라 만들기의 첫 삽을 뜬 우리 할아버지-아버지 세대”의 “암중모색에서 일어난 시행착오”에 불과한 것일까? 1980년대의 현대사 연구에 분명히 미숙하고 거친 부분은 있다. 그것을 현대사에 관한 한 선생님에게 배워본 적 없는 20대들의 소아병이라 불러도 좋다. 그러나 50대 대학교수들이 친일파나 학살자, 독재자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워지면서, 현재의 과거 청산에 대해서는 독립군이 친일파를 미워하는 것보다 더 강한 격문을 내세우며, 동료 연구자들에 대해 자학사관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떻게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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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괴물딱지야! 하하! 호호! 입체북
키스 포크너 지음, 에릭 스미스 그림, 장미란 옮김 / 미세기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화려하고 예쁜 색깔들로 가득찬 그림책!
예쁜 색깔들속에 너무 너무 귀엽고 웃기게 생긴, 끊임없이 표정이 변하는 잭이 들어있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온갖 말썽을 부리면서 엄마 아빠를 화나게도 하지만 또 엄마 아빠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바로 그 아이들이지요. 이 책의 잭 역시 마찬가집니다.

엄마의 목걸이와 구두, 모자를 다 꺼내놓고 메롱~~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집 아이들과 똑같네요. 아이들도 지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하고 있는 잭을 보면서 너무 너무 즐거워합니다. 그럴때 아이들은 개구쟁이 원숭이랑 똑같지요.  책의 플립을 펴면 너무 웃기게 생긴 원숭이의 얼굴로 잭의 얼굴이 변합니다. 잭의 얼굴은 그렇게 꾀죄죄한 강아지로 변했다가 웃기는 괴물딱지로, 야단스러운 붕붕 벌로,  엉터리 어릿광대로 그리고착한 꼬마 천사로 늘 변합니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우리집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군요. 플랩을 하나씩 펼칠때마다  벌떡 일어나 원숭이 흉내를 내기도 하고 괴물 얼굴에서는 괴물의 뾰족한 이빨에 손가락을 갖다 대면서 "아야야야~~~"하고 비명을 지르며 깔깔대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릿광대의 얼굴을 보면 어릿광대의 빨갛고 큰 코가 혀처럼 보이나 봅니다. 둘이서 앉아 "어 메롱한다"하면서 메롱~~ 메롱~~ 놀이가 또 한참입니다.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인데도 이렇게 책이 펼쳐질때마다 놀다보면 읽는데 글자많은 왠만한 책보다도 오래 걸리네요. 그래도 이렇게 책을 가지고 즐겁게 놀 수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자기 전에 이 책을 꼭 읽어달라는데 늘 마지막 장면에서는 천사로 변해 곤히 잠든 잭의 얼굴을 같이 보면서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는 "우리는 잘때는 천사 아니고 이빨 요정이 돼 그치? 엄마!!!"하며 예쁘게 잠이 듭니다. (이빨요정은 예린이가 지어낸 요정으로 저도 뭔지는 잘모르겠지만 하여튼 예쁘고 날개도 있는 뭐 그런 존잽니다.)

아이들도 저도 이 책이 정말 맘에 들지만 그래도 플랩 부분에서 원숭이나 붕붕벌의 그림이 좀 익숙하지 않은 그림체라 약간은 거리감이 느껴지네요. 특히 붕붕 벌은 너무 무섭게 생겨서 아이들은 이 부분은 그냥 넘겨버립니다. 저도 사실 벌 그림은 좀 무서워요. 약간 더 친근하게 그려졌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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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03-21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예린이와 해아에게 딱 어울리는 책이군요~~~

바람돌이 2006-03-2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이 책을 보다보면 아이들이 아니라 제가 괴물딱지가 되는것 같은 느낌이..... ^^ 예린이에게는 조금 수준이 낮고 해아에겐 딱 맞아요. 근데 둘다 좋아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