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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쿠베, 조금만 기다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초 신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6년 3월
평점 :
어른들은 왜 아이때가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새까맣게 자신의 어린시절을 잊어버리는걸까요? 어른들에게는 하찮게 보이는 것이 그 나이때의 아이들에게는 세상이 무너질 듯한 슬픔이 되기도 한다는걸, 또는 아주 작은 애정표현이나 격려 하나가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쁨이 되기도 한다는걸 말입니다. 굳이 다른 사람을 얘기하는게 아닙니다. 바로 제 자신이니까요. 내가 보기에 아주 사소한 일에도 아이는 세상이 떠나갈세라 슬퍼합니다. 엉엉 울기도 하고 어떤 때는 소리없이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하고..... 그런 아이에 대해 어떤 때는 엄마는 아이의 슬픔을 알아주고 같이 공감해주기보다는 '그깟거에 그렇게 우니?'라고 면박을 주고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어른들이 그 시절을 기억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해 질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의 행복은 돈이나 물건이 아니라 그런 어른들의 이해와 사랑으로 커지는게 아닌가 싶은데요. 물론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로쿠베가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아주 깊고 어두운 구덩이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개가 구덩이에 빠지다니... 바보"하면서 로쿠베를 흉봅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로쿠베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라 자신들과 같은 친구같은 그런 존재겠지요. 굳이 친구가 아니라 하더라도 아이들은 위험에 처한 생명을 앞에 두고 누구도 자신의 책임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로쿠베를 구할 방법을 고민하고 로쿠베가 어두운 구덩이속에서 외롭지 않도록 손전등을 비춰주기도 하고 로쿠베가 좋아하는 비눗방울을 불어주기도 합니다.
처음 이책을 읽어줬을 때 결말을 모르는 우리집 아이도 같이 마음을 모읍니다. "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길다란 줄을 가져와서 내려주면 로쿠베가 줄을 타고 올라오면 되겠다" "예린아 루쿠베는 날카로운 발톱이 없어서 줄을 타고 올라올 수 없단다." "음... 호랑이처럼 그런 발톱이 없어? 그럼 긴 막대기를 내려주면 올라올 수 있어?" "아니 그것도 로쿠베가 잡고 올라올수가 없단다." "그럼 어떡하지?" 아이는 이 책속의 아이들처럼 똑같이 고민하고 슬퍼합니다. 예린이는 결국 정답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결국 로쿠베가 아이들이 내려보낸 바구니를 타고 올라온 순간 예린이의 표정도 너무나 흡족해지면서 그림책의 환한 장면처럼 같이 밝아집니다. 아이의 맘은 다 같은가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예린이가 질문을 던지더군요. "그런데 왜 어른들은 안 도와줘?" 솔직히 말문이 딱 막히는 순간입니다. 나라면 이 책에 나오는 엄마들과 다른 태도를 취했을까요? 어쩌면 나도 이 그림책속의 엄마들 중의 한명은 아닐지....."예린아 여기 나오는 어른들이 잘못한거야. 같이 로쿠베를 구해야 되는데 그치? 엄마 아빠는 이런 일이 있으면 꼭 같이 도와줄게" 약속을 아이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해봅니다. 아빠 엄마의 대답에 아이의 얼굴은 밝아집니다.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부끄럽지 않은 어른은 결국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그 마음을 지켜주는데서 시작한다는 평범하지만 잊고 있었던 교훈을 다시 되살려주는 그림책입니다.
그리고 이야기도 마음에 들지만 <나의 크레용>을 그렸던 초 신타의 초등학교 아이들의 그림일기체같은 삐뚤삐둘한 그림체도 참 맘에 드는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