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못마땅한 사람,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본 이후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여기‘가 아닌 ‘저기 어느 곳의 매혹에 사로잡힌다. 파리의 시인 사를 보들레르 Charlos Pierro Baudeiarra 의 영혼은 이렇게 소리지른다. "마침내 나의 영혼은 폭발한다. 영혼은 현명하게나에게 외치는 것이다. 아무곳이라도 좋소! 아무곳이라도! 그것이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3 가장 손쉬운 "이 세상 밖은 내가 살고있는 도시가 아닌 다른 도시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을 때 우리는현실이 각인되어 있는 여기를 떠난다. 그리고 거기로 간다. 거기가어디든 좋다.  - P259

점점 베르사유는 루이 14세의 거처가 아니라 궁정 귀족사회 전체의 전시장이 되었다.
베르사유 궁은 궁전이 아니었다. 1744년 베르사유에는 하인을 포함해 1만 명 정도가 살았다고 한다. 베르사유는 파리를 대체하여왕의 궁정 예술을 찬양하는 ‘하나의 도시‘였다.
- P266

베르사유 궁정에 유폐되어 있던 세련됨은 이제 파리로 옮겨졌다. 모든것이 시각적으로 통제되었고 시각적 효과를 위해 동원되었던 베르사유의 전통은 파리로 이어졌다. 중세도시에 불과했던 파리는베르사유 몰락 이후 베르사유를 승계했다. 무조건 아름다워야 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심상이 아니라 시각적 자극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베르사유의 철칙을 물려받자 우리가 아는 파리, 우리가 사랑하는 파리가 등장했다. 잠시 베르사유에 주인공 역할을 넘겨주었던 파리는 다시 프랑스의 중심이 되었다. 파리는 베르사유를 그저 하나의 궁전으로 만들었다.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도시다.
운 도시는 오로지 파리뿐이었다.
- P268

자본과 예술은 숨바꼭질한다. 예술은 충격을 주지만, 자본이 예술을 흡수하면 예술의 충격은 사라진다. 도발의 장소가 힙한 장소가되면 보헤미안과 그의 친구 댄디는 다른 거처를 찾아야 한다. 현대의 예술가는 19세기 제2제정기의 파리 현장에는 당연히 없다. 그들은 지금 파리의 어딘가에 숨어 있다.  - P320

히틀러는 군중을 움직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빈에서바그너의 음악에 매료되었던 것처럼, 군중이 자신에게 매혹되기를 원했다. 그는 시민들이 정치 지도자에게 열광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자신의 예술체험으로부터 터득하고 있었다. 이성이 아니라감성에 의해, 논리의 힘이 아니라 열광이라는 경험에 의해 정치에몰입할 수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그는 자신을 전시할 수 있는 발코니가 필요했다. 발코니에 서서 자신을 내보이면, 군중은 그를 바닥에서 올려다본다. 한번 그를 올려다본 사람은 그를 단순히 지지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 열광한다. 유명인을 직접 마주친 사람, 더욱이 그 유명인과 한번 악수라도 한 사람은 곧 그 유명인에게 빠져든다. 총리의 발코니에 모이는 군중이 늘어날수록 히틀러에게 열광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 P338

"바그너를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극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바그너음악이 자기 안에 만들어내는 그 특별한 상태, 그 황홀경,
신비스러운 꿈의 세계로 벗어나는 그 탈출의 기회를 뜻했다. 17 바그너 음악이 제공하는 판타스마고리아 Phantasmagoria (환등상)는 종국에 "청취자를 국가주의적 자기 신격화와 잔인한 유머로 유혹 18한다. 히틀러의 바그너 애호는 한 권력자의 사적 취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로 위장되고 미화된 정치였다.
- P357

1942년 8월 9일의 연주는 현재의 콘서트홀 실황 연주나 레코딩된 음반으로 듣는 연주, 그러니까 오랜 기간 갈고 다듬은 수준에는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교향곡 7번은 100여명의 대규모 교향악단 편성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연주시간이 결코 짧지 않은 교향곡이다. 그러나 연주의 수준과 음악회의 감동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1942년 8월 9일 레닌그라드 오케스트라는 유흥이나 교양의 표식으로의 교향곡이 아니라 히틀러가 야만적인 전쟁을 벌일 때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았던 레닌그라드를 소리로 표현했다. 교향곡7번 연주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행위였다.
- P378

 베를린에서 태어났지만 베를린을 떠난 벤야민이 물었는데, 베를린은 벤야민에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야만스러운 과거를 망각하지 않고 기억함으로써 다시 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고, 베를린은 그런 의미에서 파리처럼 아름답지도 빈처럼 웅장하지도 않지만 가장 독창적인 예술적 도시라고,
이곳에서 예술은 진실에 다가간다. 진실에 근접한 예술을 베를린은 품고 있다. 베를린의 천사는 이 또한 목격하고 있을 것이다.
- P393

서울은 콘스탄티노플이 아니다, 그런데 생로병사를 피할 도리가 없는인간의 운명을 생각하는 한 여기는 콘스탄티노플이다.
- P405

서울은 빈이 아니다,
그런데 세계로 열려 있는 도시는 어디나 세기말 빈을 닮았다.
- P415

서울은 파리가 아니다, 그런데 우정이 경쟁을 압도하면그곳은 어디든 19세기의 세계수도 파리가 된다.
- P419

서울은 베를린이 아니다. 그런데 예술은 비록세상을 구원하지 못해도 고통을 기억함으로써 인간의 편이 되어준다.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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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에선 유난히 발걸음이 가볍다. 아무리 걸어도 도통 지치지 않는다. 눈은 호기심으로 빛나고, 코는 그 도시 고유의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각 도시 특유의 습기와 공기는 피부에 와닿는 감촉으로 내게 말을 건다. 보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상의 자극이 필요할 때는 그 도시의 예술이 가장 좋은 친구가 돼준다. 어느 도시는 그 도시만의 예술을 품고 있고, 예술은 도시를다른 방식으로 느끼게 해준다. 예술을 품은 도시의 매력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며, 여행하며 읽는 책은 그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끌어준다.
- P5

 여행과 예술탐닉은 서로의 동반자이다. 로베르트 무질 robert Musil 이 말했듯이사람들이 현실감각을 얻으면 꿈을 잃는다. 여행은 현실감각으로비추어보면 미친 짓이다. 현실감각에 의존한다면, 여행은 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실감각을 얻은 대가로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더이상 나무 아래서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로 하늘을보지 않으며, 오로지 일을 만들어내기만 한다. 유능해지기 위해서는 굶주리거나 꿈을 꾸어선 안 되고, 스테이크를 먹고 움직여야 한다. 4 여행의 이미지를 이처럼 선명하게 잘 보여주는 문장이 또 있을까?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나무 아래서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로 하늘을 보는 것", 나는 발가락 사이로 하늘을 보고 싶었다. 이 책은 발가락 사이로 보았던 하늘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여행에서 인류의 보편언어인 예술을 만났고, 그 보편언어를 내가태어나고 자란 한국어라는 모국어로 옮겨놓는 번역자이다.
- P31

감을 도구를 사용해 다듬었다. 생존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 그 행동을 우리가 노동이라 부른다면 네안데르탈인도 호모 사피엔스도 노동했다. 그들은 모두 노동하는 인간 즉 호모 파베르다. 그런데 여기 지금 우리가 있는 쇼베는 호모 파베르의 작업 현장이 아니다. 쇼베는 먹을것을 저장하는 저장고가 아니다. 주술적 목적이든장식적 목적이든 상관없이, 쇼베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생존이라는 틀을 벗어난 행동이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차이는 "생존에 목적을 둔 세계에 대한 항의 여부에 달려 있다. 쇼베는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무엇을 통해 구별되는지를증명하는 행위가 탄생한 공간이다. 쇼베의 호모 사피엔스는 현재의 예술 인간‘ 호모 사피엔스와 다르지 않다.
- P73

예술을 통해 지금 현재의 한계에서 벗어나기를 상상하고, 경제적 유용성이라는 좁은틀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인류의 보편언어로 의사소통하면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여행을 시작하는 첫 장소는 당연 쇼베여야 한다. 쇼베에서 우리는 인류 보편언어로 이야기하는 법을 배운다. 쇼베에서 나는 가장 오래된 예술 인간‘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를 만났다. 호모 사피엔스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섬이 아니다.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와 기원전 3만 7천년의 호모 사피엔스는 ‘예술-인간‘ 이라는 공통점으로 이곳 쇼베에서 인사를 나눈다.
- P74

모든 아름다운 것은 쇠락한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영원성이 아니라 쇠락에 있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무한한 존재가 아니기에 세상을 창조할 수 없다. 대신 인간은 유한하기에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예술은 신의 몫이 아니라 인간의 몫인 것이다.
- P116

피렌체의 ‘논-피니토‘는 돈으로 후원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돈을 필요로 하는 현실 속 예술가의 입장으로 예술을 보아달라는 메시지다. 그런데피렌체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으로 후원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피렌체를 해석한다.
- P175

그는 지금 껍질을 깨려 한다. 잘츠부르크를 벗어나는 것은 신하 예술가의 지위를 거부한다는 뜻이었다. 빈에서 그는 신하 예술가 이외의 또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예술가는 새로운 가능성을 문득 느꼈을 때 보통 사람보다 기민하게 반응한다. 빈에서 모차르트는 궁정 밖의 사람들, 즉 관객을 발견했다.  - P203

황제는 미래를 보지않았다. 황제에게 미래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불편한 것일뿐이었다. 한 사람이 68년 동안 황제였다. 68년의 시간은 그의 감각과 동시대인의 감각 사이의 거리를 점점 더 멀어지게 한다. 충분히 넉넉한 과거를 만끽했고 현재에서도 어떤 부족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굳이 미래에 기대를 걸 필요가 없다. 도무지 링슈트라에서는 미래가 느껴지지 않는다. 고딕 스타일로 설계된 시청사, 고대 그리스 스타일을 모방하여 온갖 조각상으로 치장된 제국의 사당은 건축양식으로만 보자면 고전적인 건물처럼 보인다.  - P226

랑슈트라세와 빈 대학 그리고 빈의 세련된 모든 외양은 황제의 확장이다. 그 황제는 하수도가 없다고 시침떼고 있다. 프로이트는 프란츠 요제프1세에게서, 그리고 확장된 황제의 링슈트라세에서 거시적 아버지‘를 느낀다. 그는 그 아버지를 살해하고자 하는 오이디푸스의 충동을 물려받는다. 모차르트가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대담한 행위를 프로이트는 구체적으로 실행한다. 츠바이크는 가장 함축적으로, 하지만 가장 정교하게 프로이트적 충동을 이런 문장으로 표현했다. "모른 체하지 말고 확인하라는 것이다. 돌아가지 말고 들어가라는 것이다. 눈 돌리지 말고 깊이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외투를입히지 말고 벗기라는 것이다. 27 그 요구에 제일 먼저 답하는 사람들이 예술가다.
- P233

탐미는 탐욕보다는 교양적 행동으로 보이나, 모든 탐미가 탐욕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다. 차라리 탐욕은 때로 생존을 위한 인간 본성이라고 정당화될 수도 있지만, 이유없는 탐미는 탐욕보다 때로는 더 위선적이고 속물적이다.
크라우스는 그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예술이 신분을 표시하는 도구로 전락한 빈의 탐미주의에서 위선을 느낀 것이다. 침을 뱉고 돌아서거나 위선적인 세계와 담을 쌓고 살 수도 있었지만 크라우스는 예술가이자 작가로서 이 도시의 감추어진 위선을 문장으로 폭로한다. 그의 무기는 논쟁과 풍자다.
예술이 과잉 인정되거나 과대 포장될 경우 예술은 본연의 해방적 힘에서 멀어진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탐미적 광풍이빈을 휩쓸 때 예술가의 목표는 형식적 완성이 된다.  - P243

장인도 신하도 아닌 자율적인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모차르트의 꿈은 이렇게 한참 후 빈에서 다른 예술가에 의해 이뤄졌다. 아버지로부터 분리되고 싶었던 그의 열정, 자율적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그의 충동, 그의 이른 죽음으로 완성하지 못했던 그 기획을쇤베르크가 완성했다. 비록 빈은 여전히 그의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차르트가 부활한다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완수했다고 쇤베르크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모차르트를 발견하기 위해 빈에 왔지만, 빈을 떠날 때는 쇤베르크와 함께 떠난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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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말들 - 일상을 다시 발명하는 법 문장 시리즈
이다혜 지음 / 유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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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거리의 여행을 했던건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지만) 5학년때가 처음이었다.

우리집 뒷집의 언니와 외삼촌이 엄마의 중매로 결혼을 했던 것. 

그런데 결혼식 장소가 내 외가였는데, 문제는 내가 사는 곳은 경상남도 거제도라는 섬의 궁벽진 시골 섬이었고, 외가는 전라남도의 거금도라는 더 궁벽진 시골 섬이었다는거다.

당시 우리 부모님은 외삼촌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 먼길을 갈 형편이 안되었던듯하다.

그래서 우리집 대표로 12살로 집안의 어엿한 장녀였던 나를 파견하기로 한것이다.

문제는 갈때는 곧 외숙모가 돌 뒷집 언니와 함께 갔지만, 돌아올 때는 나 혼자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당시 외가를 가기 위해서는

우리집에서 버스를 타고 통영으로, 통영에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순천에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녹동, 그리고 녹동에서는 배를 타고 거금도로 들어가서 거기서 다시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는거다. (이 여행이 얼마나 인상적이었으면 나는 아직도 그 경로를 다 외우고 있단말이다.)

갈 때의 기억은 사실 잘 안난다.

오히려 처음 가본 외가가 너무 신기했다.(사실 처음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5살 때였으므로 사진으로만 기억에 있지 기억에 남은게 하나도 없으므로 패스!!!)

전라도는 음식의 고장 맞다.

나는 닭으로 그렇게 많은 요리를 할 수 있다는걸 처음 알았고, 보도 듣도 못한 음식들의 향연에 눈이 휘둥그래해질 뿐.

거기다 외가쪽 동네는 김양식을 주로 하는 곳이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대나무 발에 김을 말리는 모습은 너무 신기해서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아무것도 없는 동네가 나에게는 마치 엘리스가 들어간 이상하고 신기한 세계였다.

돌아올 때는 녹동까지 누군가 어르신이 데려다줬었다.

그리고 녹동부터 집까지는 몇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어쨌든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온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받은 용돈을 두둑히 안고..... ^^

우리 엄마는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어린 나를 그 먼곳까지 혼자 보냈으며, 나는 또 무슨 배짱으로 혼자서 돌아와야 한다는데 겁도 하나 안내고 갔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돌아오던 길은 경로며 버스안에서 보던 풍경이며, 혼자 다음 행선지 버스를 찾던 내 모습이며가 제법 또렷하게 남아 있는데 하루종일 걸렸던 그 시간들이 지겨웠던 기억은 없다.


그 첫번째 여행이 좋아서였을까?(일단 무사히 왔고, 온 동네 어르신들에게 멀리서 왔다고 귀여움을 잔뜩 받았고 - 그 동네 집성촌이니까 다 친척이다 - 귀여움의 실질적 표현인 용돈도 잔뜩 받았고....ㅎㅎ)

지금의 나는 어디든 떠나는 여행에 대해서는 거의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지금의 팬데믹 이전에는 여행을 위해 1년을 산다고 해도 좋을만큼 1년 내내 나는 여행 준비 중이었다.

한달의 여행을 위해서 1년을 쏟아붓는 준비의 수고가 하나도 어렵지 않고 즐겁기만 하다.


사실은 지금도 여행중이다.

책을 읽는다는건 사실은 실제로 몸이 움직이는 여행보다 더 큰 여행이다.

책속으로의 여행은 시간도, 인물도, 생각도, 풍경도 모든 것이 너무나 다양하고, 심지어 내가 그걸 마음대로 고를 수도 있다.

이 책은 100권의 책들 속에서 여행과 관련된 문장들을 뽑고 이다혜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옆 페이지에 적은 에세이다.


작가는 책의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살아있구나, 여행을 하면서 내가 찾는 경험은 '살아있구나'라는 실감이다. 그게 전부다. 일상이 싫고 여행이 좋아서 여행지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는다는 뜻이 아니다. 아니라고! - 9쪽



내가 이 가벼운 에세이를 좋아하게 만든 문장이다.

여행은 우리 인생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이 그렇게 극적인 일도 뭔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은 생각보다 무겁다.

수많은 책임과 직장이든 집이든 해야할 일들은 늘 쌓여있고, 때로는 기습적으로 큰 일들도 생긴다.

대부분 그 일상은 아무리 무거워도 지고가야지 회피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내게 여행은 그 일상의 무게를 잠시 벗어나서 내게 다른 시간을 잠시 주고,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어린날 내 첫 여행처럼 이벤트 같은 것.

누군가에게는 여행이 직업이 되고, 여행이 일상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특별한 소수의 누군가들일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실 그렇게 하고싶지도 않고....

그게 이다혜 작가가 표현한대로 살아있구나라는 느낌, 내식대로라면 아 그동안 나 힘들었구나라며 내 머리를 스스로 토닥여주는 느낌이다.


이 책의 에세이들은 그런 평범한 여행의 느낌들에 대해 조곤조곤 얘기해주고 있다.

그래서 그곳이 어디든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이야기들을 해주고 있다.

이 책의 단점이라면 이 팬데믹 시대에 지금이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더 키워주는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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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1-08-21 06: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살아있구나!‘, 맞아요. (무릎 탁 치며 공감) 집와 일을 떠나 편안하다는 느낌보다는 살아있는 나를 확인하게 되고, 계속 살아남아야겠다는 각오를 매순간 다지게 하는 것을 건강을 잃은 순간을 제외하고는 여행 말고 저는 아직 몰라요.
5학년때 혼자 여행을 똑부러지게 해내신 바람돌이님, 그렇게 믿고 보내신 부모님. 저는 집에서 버스로 30분이면 가는 외가집을 버스 반대방향으로 타서 엉뚱한데로 가는 바람에 눈물바람, 콧물바람했던 기억만 있어요 ㅠㅠ

바람돌이 2021-08-23 01:44   좋아요 0 | URL
전 어릴 때부터 겁이 좀 많았던듯요. 그래서 처음 가는 길은 바짝 긴장해서 가는 방법을 다 외우면서 갔던 느낌이에요. 근데 그건 지금도 그래요. 모르는 곳 여행을 가면 골목길까지 죄다 검색해서 머리속에 지도를 다 넣어놓고 가거든요. 뭐 그래도 가끔 길을 잃어버리지만요. ^^
저는 여행에서 살아있다는 느낌도 있지만 일상의 온갖 일들, 밥, 청소 이런거에서 벗어나는 것도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호텔이 좋아요. 다해주니까..... ^^

han22598 2021-08-21 08: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옷! 바람돌이님 거제도가 고향이시구나...저 이번 봄에 한국 가서 부모님이랑 거제도 처음 가봤어요....너무너무 좋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한국에도 이렇게 예쁜 바다가 있는 곳이 있다니...팬데믹 탓인지..사람도 별로 없는 풍경 좋은 거제도 여행이 너무 좋았어요 ^^

잠자냥 2021-08-21 09:30   좋아요 3 | URL
거제도 정말 좋아요. 저도 깜짝 놀랬었다는

바람돌이 2021-08-23 01:45   좋아요 1 | URL
사실 저는 거제도 바다에 별 감흥이 없습니다. 너무 익숙한 곳이라 그런 거 같아요. 중학교 때 다른 지역에서 오신 지리 선생님이 너희들은 정말 행복한 아이들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다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콧방귀 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책읽는나무 2021-08-21 09:1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거제가 고향이셨어요???바람돌이님!!^^
신랑 근무지가 현재 거제에요...워낙 돌아다니는 직업이라 애들 방학이면 아빠 사는 동네 숙소 찾아가 보는 게 좀 재미가 있었는데....거제는 애들이랑 다녀오자마자 코로나 빵~~~~ 그리곤 여적 못가봤어요.
거제는 가족 여행 중 첫 1박 했었던 곳이라 더욱 가슴속에 남는 섬이기도 하구요.몽돌 해수욕장을 밤산책 하면서 들었던 그 독특한 파도 소리가 아직도 귀에 아른합니다.
그 아름다운 곳에서 나고 자라셨군요?^^
왠지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훗날 거제 가서 살까?살짝 고민중이거든요ㅋㅋ
그나저나 5학년때 전라도까지 혼자 여행을???
이슬이의 첫 심부름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첫 독립여행이라 그 기억이 평생 가겠습니다^^
책도 괜찮아 보이네요?일단 보관함으로!!
비가 오지만 그래도 멋진 주말 보내시길~^^

바람돌이 2021-08-23 01:49   좋아요 1 | URL
아 남편분이 거제도에서 일하고 계시군요. 남편분 없이 혼자서 아이들 데리고 생활하시느라 힘드시겠어요. 물론 남편이 없어서 편한것도 당연히 있겠죠? ㅎㅎ
저 내일 거제도 가요. 벌초하는데 따라가요. .ㅠㅠ
저는 거제도가 살던 곳이라 그런지 거제도 가면 여행간 기분이 하나도 안나요. 항상 뭔가 집안일이나 뭐 그런것 때문에 가는 곳이라 그럴까요?
내일 다시 한주가 시작되네요. 좋은 한주 되세요. ^^

파이버 2021-08-21 09: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와 바람돌이님께서는 어렸을 때 정말 야무지고 똑똑한 소녀셨군요!
책을 읽는다는것도 여행이라는 말씀 너무 멋지십니다 👍

바람돌이 2021-08-23 01:50   좋아요 1 | URL
책을 읽는게 여행이란건 제 말은 아니고요. 이 책에서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고, 다른 책에서도 워낙 많이 하는 얘기인지라 살짝 표절입니다. ^^
야무지고 똑똑하다기보다는 겁이 많아서 열심히 외우고 기억하면서 갔다는게 더 맞을 거 같아요. ^^

잠자냥 2021-08-21 09: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열두 살 때 그 먼길을 혼자 돌아오셨다니!! 그리고 그 경로를 아직 다 기억하다니 다 대단하네요. 전 거제도 및 외도 이제까지 딱 한 번 가봤는데 제주도보다 더 좋다~ 막 이럼서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또 가고 싶으나 참 먼곳…;; 그나저나 책읽기도 하나의 여행이라는 말 공감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팬데믹 시대에 여행대신 그렇게 책을 사는….. 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8-23 01:52   좋아요 1 | URL
저는 제주도를 더 좋아합니다. ㅎㅎ 부산에서는 거제도가 가까워서 가기 쉬운곳인데 위쪽에 사시는 분들은 사실 너무 멀죠. 저는 오히려 서해 바다 보고 그 넓은 갯벌에 깜짝 놀라면서 신기했더랫어요. ^^
이번 달에는 진짜 책 안사려고 했는데 방금 또 주문하고 와서 거실에 쌓아놓은 책탑 바라보면서 한숨쉬고 있습니다. ^^

새파랑 2021-08-21 10: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유유출판사의 말들 시리즈 좋아하는데 이 책 너무 읽고 싶네요.
바람돌이님은 어렸을때부터 바람처럼 다니셨군요. 책을 읽는것도 여행이 맞는거 같아요. 마음의 여행? 🤗

바람돌이 2021-08-23 01:53   좋아요 1 | URL
아 저게 시리즈였군요. 저는 이다혜 작가도 좋아하고 또 소재가 여행이라 냉큼 들고왔는데요. 시리즈인줄은 몰랐어요. 다른 시리즈도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어릴 때는 돈도 없고 상황도 안돼서 못다녓고요. 어른이 되어서 바람처럼 놀러 다닙니다. ^^

페넬로페 2021-08-21 11: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의 언덕‘이 있는곳에서 태어나셔서 ‘바람돌이‘이신가요? 전 바다를 좋아해 하루종일 쳐다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은 사람입니다. 거제와 통영도 물론 좋아하고요. 열 두살때 대표로 버스타고 배타고 먼 길 다녀오셨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재작년에 다 큰 딸아이가 혼자 제주여행 갔을때 집에 올때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거든요.
책을 읽으며 여행중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이 책도 찜합니다^^

바람돌이 2021-08-23 01:55   좋아요 2 | URL
바다가 하루종일 있어도 안 질리는건 맞는거 같아요. 전 어릴 대 여객선 타고 가면 뱃전에 파도가 막 부서지잖아요. 그걸 한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보고 있어도 안 질리더라구요. ㅎㅎ
딸이 혼자 제주여행이라니 당연히 걱정이죠. 혼자는 어떻든 간에 걱정인듯요. 둘이 간다하면 안심이 되더라구요. ^^

붕붕툐툐 2021-08-21 14: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럼 저는 펜데믹 이후에 읽겠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전 평소에는 집순인데 펜데믹 이후 여행이 너무 가고 싶네요. 여행 안가고 개학한게 너무 억울할 정도.
초딩5의 바람돌이님도 완전 멋졌네요~ 역시 멋짐은 타고 나는 건가봐용~👍

바람돌이 2021-08-23 01:57   좋아요 1 | URL
지금 여행 못간지 딱 1년 반입니다. 미치겠어요. ㅠ.ㅠ
작년 코로나 터지기 직전 1월에 대만이랑 발리 갔다왔는데 지금도 계속 그것만 곱씹고 있어요. ㅠ.ㅠ
툐툐님 항상 칭찬해주셔서 저는 맨날 어깨가 으쓱으쓱입니다.
저는 명상하는 툐툐님이 항상 멋짐요. ^^

coolcat329 2021-08-21 15:1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12살에 그 먼거리를 혼자 갔다오시다니...보내신 부모님도 대인배십니다.
저는 거제도 못 가봤어요.ㅠㅠ 부모님도 서울 저도 서울 남편도 서울 ..어릴 때부터 시골가는 친구들 진짜 부러웠습니다.
특히 시골가서 받아오는 두둑한 용돈! 아 정말 그게 참 부럽더라고요~😁

바람돌이 2021-08-23 01:59   좋아요 2 | URL
저희 어머니가 좀 그렇습니다. 뭐 다 그냥 하면 되지 이런 스타일이랄까? ㅎㅎ
좋은 시절에 태어났으면 뭔가 멋지게 사셨을 거 같은데 어려운 시대에 어렵게 사셔서 항상 마음이 짠하네요.
시골 사는 아이들은 도시로 나들이가는거 너무 부러워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

mini74 2021-08-21 17: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와 경상도와 전라도의 만남. 바람돌이님 화개장터같은 존재군요 ㅎㅎㅎ책의 여행 너무 좋아요 ㅎㅎ 5학년에 혼자 여행! 대단하십니다 *^^*

바람돌이 2021-08-23 02:00   좋아요 2 | URL
그래서 제가 전라도를 좋아합니다. 일단 맛난게 너무 많잖아요. 저희 외가쪽 분들 음식솜씨 장난 아닙니다. ^^

희선 2021-08-24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두살에 먼 곳에 다녀오셨군요 혼자 돌아오는데도 그게 지루하지 않았다니, 어딘가에 가는 거 좋아하실 만하네요 저는 차 타는 거 아주 싫어해서... 어렸을 때는 기차 타면 좋기는 했는데, 기차 타고도 멀미해서... 저는 책으로... 지금 어딘가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답답하겠습니다 다시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희선
 
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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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내가 아는 중 안나 카레리나와 함게 가장 유명한 첫 문장. 

고속도로를 달릴 때 경탄하는 순간이 가끔 있는데 터널 이쪽과 저쪽의 날씨가 확 달라질때다.

더군다나 그게 겨울의 하얀 눈이라고 하면 터널을 경계로 아마도 다른 세상에 들어선듯한 환상에 젖어들수 있겠다싶다.

어쨌든 저 문장 때문에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을 처음 읽는 내 마음은 그냥 설렘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이라니, 당연히 이 책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듯했던 것이다.

마치 검은 밤의 밑바닥이 하얘지는 것처럼, 나의 세계에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줄 것처럼......


하지만 실제 설국을 읽은 나는 급속도로 혼란에 빠져버렸으니....

아니 이게 뭐야? 

웬 시시한 한량 하나가 온천마을에 가서 이리 빈둥 저리 빈둥하다가 동네 게이샤랑 썸타고, 또 다른 인물한테도 스리슬쩍 썸타다가 그냥 무책임하게 도쿄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다야?  정말?????

아 정말 취향아님 아주 실망임 등등

무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대표작에 왜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지?

이런 경험은 <무진기행>이후 처음이다.

실망의 강도도, 읽고나서 허탈해지는 것도 <무진기행>과 <설국>은 똑 닮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렇게 난리를 치는 이 작품들에서 왜 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을까?

어떻게 보면 이야기의 플롯까지 비슷한 이 소설들은 그래서 이 작가들을 내 취향 아님이라는 도장을 꽝꽝 찍게 만들었다.


그래서 클래식 클라우드의 시리즈 10권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은 이유는 순전히 내 강박이다

이 시리즈를 다 읽기로 했고, 그래서 순서가 되었으니까 읽었을 뿐.....

그런데 결과는 약간 반전이다.

책의 초반부는 설국의 배경인 에치고유자와를 찾아가면서 온통 <설국>을 읽는 법에 할해하고 있다.


<설국>은 줄거리의 소설이 아니라 이미지의 소설이다. <설국>에 나오는 모든 배경은 일종의 논리가 아닌 이미지다. 시마무라가 살고 있는 도쿄라는 현실 세계가 아닌 터널 밖의 세계, 즉 에치고유자와라는 이미지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도입부부터 우리가 이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터널 밖 세상은 환상에 기반한 모자이크 같은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소설은 독자들을 힘들게 만든다. 독자들은 습관적으로 인과관계를 통해 하나의 전체상을 포착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설국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한 행 한 행, 시를 읽듯 이미지로 읽어나가는 것이다. - 82쪽


내가 왜 <설국>을 읽는데 실패했는지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가 시를 잘 읽지 못하는 이유와 똑같다.

<설국>의 세계에서 인과관계를 찾고 서사를 찾았던 나의 실패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설국>은 그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을 절대미를 추구하는 탐미주의로 이야기 한다. 

<설국>의 도입부가 그렇듯이 책속의 모든 장면은 대비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주인공 중 하나인 요코가 화재가 난 건물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는 장면과 은하수가 내 몸속으로 들어와 뿌리내리는 듯한 장면의 대비 역시 한 순간의 정지화면이 되어 이 세상 것이 아닌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순간을 만든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선악이나 인간의 세속적 기준이 끼어들 곳이 없다.

소설 속 주인공 시마무라는 늘 한 발 물러서서 관찰하는 인간이지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저 관찰하는 인간으로서 그가 순간 순간 느끼는 절대적 아름다움의 순간들이 이 소설을 가득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미지만으로 본다면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할만큼 이 책의 저자의 <설국>에 대한 해석은 공감을 불러온다.

이 책을 읽고 <설국>을 다시 읽는다면 저자인 허연씨가 느낀 것을 나도 느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와 가와바타 야스나리, 또는 이 책 저자인 허연씨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일 거 같다는게 더 강하다.

그러면서 생각한게 어쩌면 지금부터 10년 정도쯤 더 지나면 나도 약간 달관의 경지를 느끼고 도인같은 느낌을 풍기는 사람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 때 읽는 설국은 좀 다르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약간은 그런 기대로 <설국>을 10년 뒤에 다시 읽을 책으로 킵해두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가리켜 "어떤 시대관념도 가와바타 씨를 기만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단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한창 작가로서 활동하던 시기는 일본의 군국주의가 한창이다가,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온나라가 피폐해졌던 시기다. 

이런 역사적 시기를 거쳐오면서도 어떤 현실 정치에도 영향받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 하나만을 추구해온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울끈불끈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는 곳에 존재한다.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다는 것이 호불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평해야 할지 아예 모르겠다는 것이다. 

마치 <설국>을 읽고 당황했듯이, 작가의 삶의 모든 순간들이 나의 인식범위를 벗어난 존재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책은 좋다.

<설국>을 읽고 당황스러웠던 내게 다르게 볼 수 있는 길을 밝혀주었고,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정말로 독특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도 마련해주는 아주 친절한 안내서이다.

이 책의 글을 따라가다보면 내가 모르던 세계 하나를 더 얻는 느낌이다.

마치 터널을 나가면 설국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처럼.....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

이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가 중간 중간에 꼭지를 따로 둬서 보충 설명이 필요한 것들을 서술하는 것인데,

가와바타 야스나리 편에서는 가오바타와 오에 겐자부로를 비교하는 대목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둘 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지만 정말 대조적이다.

심지어 오에 겐자부로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연설 제목인 <아름다운 일본의 나>에 빗대어 <애매한 일본의 나>라고 붙인다. 그러면서 단호하게 가와바타 야스나리이 '아름다운 일본"을 비판하며, 아름다운 일본은 애매하며, 그 애매함이 일본의 폐쇄성과 연결되면서 아시아 침략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연설을 한다. 

이 두 작가의 연설을 비교하는 꼭지도 재밌다. 아 물론 나는 오에 겐자부로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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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21-08-21 08: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울끈불끈!! 🤩 이거는 그냥 못 지나가겠네요. 바람돌이님 짱!!👍👍👍

바람돌이 2021-08-23 01:28   좋아요 0 | URL
아니 그걸 또 콕 찍어내시다니.... 잘잘라님 짱입니다. ^^

페넬로페 2021-08-21 09: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를 잘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 설국 읽기에 실패히는 것일까요? 두 작가를 비교하는 것이 흥미로워요^^
설국을 읽고 이 책을 읽는게 좋겠죠**

바람돌이 2021-08-23 01:30   좋아요 1 | URL
시를 잘 읽지 못하는 사람은 설국을 저처럼 실패할듯한데요. 그냥 이 책을 읽고 저자인 허연씨가 말하는대로 한번 따라가면서 읽어보는게 더 좋을거 같아요. 그럼 좀 다른 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싶어서요. 저처럼 실패하지 마시구요. ^^

새파랑 2021-08-21 09: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설국의 해설집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전 설국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뭔가 눈과 온천의 마을에 온 기분. 저도 이 책을 읽고 설국을 다시 읽어보면 더 좋아질수도 있겠군요 😆

바람돌이 2021-08-23 01:30   좋아요 1 | URL
설국은 좋아하시는 분은 정말 좋아하더라구요. 저는 좋아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첫문장이 너무 멋지잖아요. ^^

scott 2021-08-21 11:3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가와바타 야스나리 정말 독특한 정신 세계
아베가 처음 총리 되었을때 나의 아름다운 나라 일본 이라는 연설문도 가와바타 노벨상 연설문의 문구를 인용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장이 응축된 시어로 짜여졌습니다 이작가의 손바닥 소설이라는 작품은 딱 한장짜리 스토리로 구성되었는데 사물과 사람을 이미지로 형상화 시켜서 세밀한 묘사에 놀라고 끝까지 읽고나면 한편의 시였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설국은 한 문장 속에 시각-촉각이 혼재 되어있습니다

 [˝거울 속에는 저녁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 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 인물과 배경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한 발자국 물러서 있는 인물이죠 모든 사물 사람 현상 심지어 기억 조차도 약간 비겁하면서도 자조적이고 무기력한 인간

바람돌이님 십년후 꼬옥 설국 완독 하시길 바랍니다 ^^

바람돌이 2021-08-23 01:38   좋아요 1 | URL
스콧님이 설국 해설서를 쓰도 될듯요. 이 책 저자인 허연씨가 말하는게 바로 그런면이었어요.
저는 그런 감각을 모두 느끼기에 감성이 부족한듯요. ^^;;
한편으로 아베가 야스나리의 연설을 인용했다니 잠시 수긍이 가네요. 나쁜 놈들은 꼭 순수한 예술을 논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리잖아요. ㅎㅎ

coolcat329 2021-08-21 15: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소설 인상적인게 고마코 외모 묘사한 부분이에요. 입술이 아름다운 거머리같다거나 양파구근 벗겨낸 듯한 피부 등 유난히 깨끗한 외모를 강조한 그런 묘사가 참 설국스럽더라구요.
한줄한줄 시 읽듯이 장면을 그려가며 읽어야 절대미를 느낄 수 있군요. 저도 언제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바람돌이 2021-08-23 01:40   좋아요 1 | URL
설국은 장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오감으로 읽어야 되는 소설이라는 말인것 같아요.
저의 오감은 언제쯤 완성될까요? ㅎㅎ 저도 10년 뒤에 다시 읽어보기로요. ^^

mini74 2021-08-21 17: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미지의 소설. 딱 맞는 말이네요. ㅎㅎ저도 오에 겐자부로쪽입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1-08-23 01:40   좋아요 1 | URL
소설을 읽는 방법이 다르니 좋아하는 작가나 소설도 달라지는거겠죠? 그런면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좋아하기 쉬운 작가인듯요. ^^

그레이스 2021-08-21 18: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장면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분명 텍스트인데 그림으로 가슴에 들어와 버린!

바람돌이 2021-08-23 01:41   좋아요 3 | URL
설국의 모든 장면이 그렇게 그림으로 시각화해서 읽어야 할 듯하네요. 그레이스님은 오감충만자!
전 마지막 장면도 혼자 도쿄로 튀는 나쁜놈 하면서 읽었거든요. ㅎㅎ

그레이스 2021-08-23 05:20   좋아요 5 | URL
은하수가 그녀에게로 쏟아져내리는..
장면도 !
압권입니다.
죽은 사람을 안고 있는 여인 위로 은하수가 쏟아져내리는 밤하늘의 아름다움이 전달된다는게 놀라울 따름이죠!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유미주의의 끝판왕!

바람돌이 2021-08-24 01:51   좋아요 1 | URL
바로 그 장면이 이해가 안가는 사람이 접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1-08-24 05:15   좋아요 0 | URL
^^

물감 2021-08-23 15: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에 엄청 약한데, 이런 책은 읽다 덮을지도 모르겠군요...ㅜㅜ

바람돌이 2021-08-24 01:52   좋아요 1 | URL
책의 분량이 적은지라 읽다 덮지는 않을듯해요. ^^

희선 2021-08-24 0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은 봤지만 《설국》은 아직이군요 이 글을 쓴 사람처럼 못 볼지도 모를 것 같아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어렸을 때부터 죽음이 가까이 있었더군요 그게 글을 쓰는 데도 영향을 많이 미쳤겠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 하나도 못 봤다고 생각했는데, 하나 읽었어요 《명인》 명인이 마지막으로 두는 바둑을 바라보는 이야기... 명인은 바둑을 예술로 여기는데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실제로 본 바둑 대국을 바탕으로 쓴 거더군요


희선

바람돌이 2021-08-24 01:54   좋아요 1 | URL
저는 달랑 설국 하나 봤는데 명인은 바둑 대국 이야기군요. 저는 웹툰 미생 보면 바둑대국기 나오잖아요. 그거 보면서 와 바둑대국기가 예술이다 하면서 봤어요. 바둑 둘줄 모르는데도 글이 정말 유려하더라구요. 야스나리의 명인도 그렇지 않을까 뭐 그런 느낌이 드네요. ^^
 

음을 삶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가장 어려운 수행은 일상을 새로운 마음으로 매일매일 살아가는 일이다. 이상적인 장소에서는불가능이란 없어 보이지만, 현실은 어떤가. 그렇다고 떠남이 무용하다는 말은 아니다. 혼자 나 자신과 지내 본다. 회의하고 절망했던 외부의 모든 것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내 안에서 고칠 수있는 것을 들여다본다. 언제나 제자리인 것 같은데, 열심히 발걸음을 놀리면 어느새 멀리 와 있다. 그걸 잊지 말고 오늘도 걸으면된다.
- P139

여행이야말로 쓸모없음의 쓸모를 추구할 때 가장 값진 것이다. 왜 여행을 다니느냐, 차라리 그 돈을 저금하라는 말을 자주들었다. 모든 일에 쓸모를 따지고, 나의 쓸모를 극대화하기를 사회에서 늘 요구받는다. 모든 일이 좋을 때는 괜찮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여행 없이 살 수 없었다. 우열이 아닌 다름으로 삶을 가늠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열을 재는 시선에서 놓여 나는 것뿐이다.
- P179

여행지에서는 쉽게 너그러워지곤 한다. 나도 모르게 웃고있다. 평상시에는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있는데,
이상적인 나에 더 가까워지는 방법이 여행이다. 시간을 넉넉하게 쓰고, 좋아하는 일로 하루를 채우고, 많이 걷는다. 숲 근처로, 강이나 바다 근처로 걷는다. 그게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일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여행, 그게 다예요.
- P189

할 수 있다‘와 ‘하고 있다‘는 다르다. 일상을 책임지는 일과여행이 불화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당신에게도 여행이 그랬으면 좋겠다.
- P197

여행 마지막 날 아침에 눈뜨면서 늘 하는 생각이 있다. 벌써마지막 날이네. 왜 여행에는 끝이 있을까. 끝이 없으면 여행은방랑이 되고 일상이 된다. 그러면 아름다움을 잃겠지, 여행도.
- P201

못할까. 해 본 적이 없다면 해 보면 된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은 수월하다.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건네는 격려의 말을 세상의 어머니들이 자신을 위한 응원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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