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서 다름없는 자신의모습을 목격했다면 그것은 그림자, 그림자라는 것은 한번 일어서기 시작하면 참으로 집요하기 때문에 그 몸은만사 끝장, 일단 일어선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으니 살 수가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아무 곳에서나 불쑥 말하곤 하다가 그는 귀신 같은 모습이 되어 죽고 맙니다.
- P21

차마, 차마, 하고 내 목소리가. 하여간에 얼마 못 가고 집으로 돌아갔어. 어처구니가 없었지. 나라는 놈은 그림자도 따라가지 못하고, 하면서. 그 밤에 달이 어찌나 둥글고 밝은지 분화구가 다 보이고,
라면서 여씨 아저씨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분화구 윤곽이 선명한 달이 뜬 밤에 구불구불 늘어진 그림자를 거느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씨 아저씨의 모습을 나는 생각해보았다.
- P50

문턱에 코를 댄 채로 나무 결이라고 짐작되는 어두운 얼룩을 들여다보며 젖은 듯 마른 듯한 문턱 냄새를 맡고있었다. 차라리,라고 생각했다. 어두운 것이 되면 이미어두우니까, 어두운 것을 어둡다고 생각하거나, 무섭다고 생각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아예 그렇지 않을까, 어둡고 무심한 것이 되면 어떨까, 그렇게 되고 나면 그것은 뭘까,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 P99

그러다 한참 만에 말씀하시길, 가지고 가는 길에 깨질 수도 있고, 불량품도 있을 수 있는데, 오무사 위치가 멀어서 손님더러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한개를 더 넣어준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것을 듣고 뭐랄까, 순정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나 할까,  - P104

오른쪽으로는 조명 가게나 공구 상점들을두고 걷다가 오른쪽으로 첫번째 골목이 나타날 때 발길을 틀어서 그 길로 접어들면, 이십년째 그 자리에서 별다른 도구도 없이 드럼통 하나를 세워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순대를 찌고 있는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었고, 회중시계, 구리 자명종, 낡은 손목시계, 빛바랜 은수저를유리장 안에 진열해두고 졸고 있는 남자를 앞을 지나 담배와 음료와 삶은 계란을 파는 구멍가게를 지나서 부품상점이나 구식 라디오를 손보는 수리실 등을 지나가게되어 있었는데, 어느 곳이든 책상 하나 더는 들어갈 여지가 없을 만큼 비좁았다. 그런 가게들 틈으로 난 골목,
이라기보다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 정도로 보이는 어둡고 좁다란 통로로 들어서면, 오른편에 간판도 탁자도없이 점심배달 메뉴로 백반 한가지를 만들어서 파는 허름한 식당이 있고, 그 맞은편에 오무사가 있었다. 칠십년대 이후로 손을 본 적이 없는 듯 낡고 어두컴컴한 곳이었다. - P112

할아버지가 죽고 나면 전구는 다 어떻게 되나. 그가 없으면 도대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까. 오래되어서 귀한 것을 오래되었다고 모두 버리지는 않을까. - P115

 작네요,라고 멍하게 말하자 무재씨가 빈 우유갑을 반으로 접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좁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잖아요.
다 어디로 갔을까요..
- P123

언제고 밀어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 P126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사정인 걸까, 하고,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 P159

따라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 P184

어둠에 잠겼다가 불빛에 드러났다가 하며 천천히 걷고있었다.
은교씨,
하고 무재씨가 말했다.
노래할까요.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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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은 ‘왜‘라고 묻죠. 그게 왜 당연하냐고 묻는 순간 래디컬해져요.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근본적입니다.
래디컬해요. 여기에서 근본적이라는 건, 인간적이라고 이야기하는 모든 규준에 도전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페미니즘은인간 조건의 기초라고 믿어온 견해를 흔들고, 특히나 근대 인간의 정상성에 문제 제기를 하기에 래디컬하죠. 그래서 래디컬이라는 의미는 모더니즘 이후의 사유들과 접속하게 되고요.  - P175

제1물결 페미니즘이 동일성, ‘우리가 같은인간이다‘라는 걸 외쳤다면, 제2물결 페미니즘에서는 남성이 말하지 않는 여성성에 대해서 여성인 내가 이야기할 것이라고 선인하고, 남성이 규정했던 그 여성성이 신화라는 걸 밝히고 그 신화를 깨는 운동들을 해요.
- P176

보편화시킨다는 건탈시간적인 것, 탈공간적인 것, 맥락 초월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인간이라면 이래야 한다‘, ‘여자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게 어떤 시기의 발명품일 수 있어요. 어떤 시기에는 그럴 수 있겠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 모든여성은 이래야 한다‘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질문해야 한다는 거죠.
- P191

이런 걸 주체성이라고 불러요. 자율이라고 하죠. 스스로자기의 규범을 만드는 존재가 되는 거죠. 제2물결 페미니즘의 중요한 목적이 뭐죠? 여성이 주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거죠.
자기 설명을 통해서 ‘여성이 어떻게 해야만 한다‘라는 당위마저도마련해내는 자율과 주체성의 내용들을 만들어내는 게 제2물결페미니즘의 큰 관심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 전의 여성들은 다 타율적 존재예요. 왜 타율적 존재죠? ‘여자가 이래야만 한다‘고 하는 여성성을 남성과 가부장제가 규정했잖아요. 그래서 여성들이남성과 가부장제가 규정한 당위를 따랐는데, 행복하지 않은 거죠. 왜 행복하지 않죠? 여성 자신에게 주체성이나 자율이 있었던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 P195

여기서 신화라는 건 아주 이중적인 것 같아요. 자유의지, 자유 선택의 밑에 깔린 그 기제를 신화라고 표현한 것 같고, 동시에여성성이라는 게 원래부터 있다고 하는 본질주의, 즉 여성성이라는게 이런 것이라고 하는 본질주의 자체가 신화적이라는 이중적 의미에서 신화를 말한다는거죠. - P200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건 그 시대의 산물인 건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마치 여성성을 만든 것처럼,
선후와 인과가 전도되었다는 거죠. 한 개인이 겪은 가부장제가강했던 시대의 산물인데 그걸 보지 못하니까 마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게 마치 일반적인 인류사에 존재해온 것처럼 말하고있다는 거예요.
- P210

이러한 프리단의 분석은 제2물결 페미니즘의 중요한 구호,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와 연관됩니다. 이 구호는정치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누가 구별하느냐고 묻는 거잖아요.
다시 말해, 한 개인의 선택이라고 흔히들 말하는 사적인 영역이실은 굉장히 정치적인 일이 발생하는 곳임을 밝힐 뿐 아니라, 이영역이 정치적 영역임을 여성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게끔 은폐하는 구조와 기제들을 비판하는 거예요.
- P216

프리단은 자꾸 여성을 집에 묶어놓고 어머니 역할에 가두면 이렇게 여성들의 존재를 망가뜨릴 뿐 아니라,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정말 한국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이야기죠. 엄마가 애를 키워야 된다고 자꾸들 말하잖아요..
그런데 어머니의 역할이 아이와 머무르는 거라고 하면, 여자들이 아이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자기를 실현할 수 없는 존재인 여자들이, 어머니의 역할로만 자기를 실현하려고 했을때 자기 아이를 좌지우지하려는 거죠. 이 책을 보면 엄마들이 되게 이상한 이야기들을 해요. 애들이 안 컸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떠나면 할 일이 없어지니까요. 또 아이들을 자기 멋대로 하고 싶은 거고요. 그랬을 때만 자기의 자아가 실현되거나 자기가 위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는 거죠.
- P225

"여성성의 신화에 따라 산다는 것은 역사의 되돌림이고, 인간의 진보에 대한 가치를저하시키는 것이다" 라는 거예요. 당연히 그렇다는 거죠.
- P229

그래서 베티 프리단을 비롯한 제2물결 페미니스트들이 능동성과 주체성을 중요하게 말하는 것 같아요. ‘여성이 여성의 입으로 말하게 하라. 저는 이 말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게끔 하라는말만은 아닌 것 같아요. 여성이 여성의 입으로 말하게 하라는 건,
‘여성에게 자유의지가 있으니 여성을 자유롭게 해다오‘라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자유를 막는 권력의 구조, 즉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말 안에서 신화를 통해 주입시켰던 그 구조를 폭로하려는 걸 의미한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우리의입으로 말하게 하라는 뜻이지 우리에게 본능적인 자유를 달라는식으로 이해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 P232

베티 프리단은 1950~1960년대 아이들의 정서장애가 증가하는 현상과 포로수용소에 갇힌 주부들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지적해요. 어린이가 여성성의 신화에 의해 무기력해진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상호 파괴적인 공생으로 나아가고, 이게다시 여성성의 신화를 통해 악순환으로 구축된다는 거예요. 수동적인 의존에 갇힌 주부와 아이들 사이에 통제할 수 없는 폭력이증가하는 징조를 프리단이 목격하는 거죠. 그러니까 아이들을 정서장애에서 해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엄마가 애를 키우지 않아야 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 아이가 더 이상해진다는 이야기예요..
- P233

여성이여, 당신은 계급이다! 그러니까 계급의식을 각성해서 혁명을 일으키자! 이게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책 《성의 변증법》의기본적인 내용이에요.  - P243

가부장제를 비판한다고 하면서 여자가 억압을 당했으니까 하나의 여성으로 모여라!‘ 이렇게 좀 단순하게 접근을 하는 경우가 흔하잖아요. 그런데 파이어스톤이 보편성으로 접근을 한 건 맥락이 달라요. 그리고 역사 전반에 걸쳐서 어느 세계에서든지 존재하는문제로서 여성 억압을 분석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마르크스의 관점이 용이했다는 거예요. 특히 여성을 성 계급으로호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했다는 거고요. 또한 파이어스톤의 이런 보편성을 통한 접근은 여성이 이 세계의 가장 심한 불평등을 겪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봐야 합니다.
- P256

따라서, 파이어스톤의 관심은 여성이 어떻게 불평등한 구조에 묶이게 되었는가를 분석하는 데 있어요. 특히 가족이라는억압의 현장을 분석하는 거예요. 파이어스톤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재생산을 강조하고, 재생산을 이끄는 중요한 단위가 가족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가족 안에서 근본적인 착취가 일어난다고설명합니다.  - P260

파이어스톤 같은 경우에는 낙태할 권리는 당연하다는 입장이죠. 재생산의 권리를 쥐려면, 낙태할 권리가 없다는 건 여성이 노예 상태에 놓여 있다는 걸 방증한다는 거니까요. 그런데 파이어스톤은 낙태할 권리는 너무 당연하다는 데서 끝나지 않아요.
이 사람은 가족제도를 아예 없애버리자고 나와요. - P264

여성 착취와 업압 위에 세워지는 가부장적 가족에 기초해서 이 사회가 유지, 존속되는 한 아동에 대한 각종 억압도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죠. 아동기가 길어졌다는 건 아동을 잘 돌봐주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건 아동을 착취하고 억압한다.
는 거예요. 그래서 아동기를 철폐하는 것도 가족을 해체하는 데중요한 모티브가 될 수 있고, 아주 중요한 해결점이 될 수 있다고보는 거죠. 그래서 파이어스톤이 아동기를 없애자는 이야기를 강하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아동기를 없애자는 건, 아동에 대한 착취를 없앤다는 의미도 있지만 여성과 아이 사이의 유대도 끊을수 있는 거죠. 왜냐하면 아동을 잘 돌봐야 한다고 하는데, 언제나엄마가 돌보거든요. 특히나 핵가족 사회에서는 더 그렇죠. 아동기를 없애면 엄마의 돌봄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잖아요. 아이들을 그냥 냅두자는 게 아니고, 아동기의 방식이 아닌 사회 집단적으로 아이를 키우자는 거죠.
- P286

그런데 아동이 된다는 게, 아무것도모르고 누구한테 의탁하는 존재인 게 정말로 행복하냐는 거죠.
파이어스톤은 결국 아동기에 대한 숭배와 가부장제 핵가족의 발달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겁니다. 이 아동기의 숭배를지탱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여성들의 양육과 모성애라는 신화인 것이죠. - P289

오히려 가족제도를 공격하면서 아동기를 없애자고 해버리는 이유는아동기, 사춘기 같은 식의 발달 단계를 계속 이야기하면 어떤 인간은 정상적인 인간이고 나머지는 비정상적인 인간이 되기 때문이에요. 결핍된, 모자란, 부정적인 존재. 그래서 그들한테 시혜적입장으로 인권 개념을 제시하죠?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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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의미의 인간, 인간이라고호명되는 단일한 나라는 것은 허구라는 거예요. 그리고 인간을이렇게 규정하는 이상 지식을 얻기도 어렵다는 거고요. 우리의어떤 위치, 시공간을 표시하면서 있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 P24

따지고 보면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름을 갖는 것도 아니고,
‘남성 아님‘ ‘비남성‘이 여성의 지위예요. 여성은 자신의 특길을 이야기한 적이 없는 거죠. 부르기는 여성이라고 부르지만, 여성의특질이라는 건 남성이 아님의 특징인 거예요.  - P31

그런데 괴물monster의 라틴어어원인 ‘monstrare‘의 뜻이 ‘보여주다‘ 예요. 괴물이란 말 자체가
‘보여주다‘ 라는 거죠. 실은 언제나 보여주는 상태로 등장하는 거예요. 동일률로 포착되지 않아서 그렇지, 언제나 등장하는 형태로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괴물이라는 존재는 신화는 성서든,
많은 텍스트 안에서 지혜를 획득해야 할 존재가 거쳐야 할 관문으로 등장했어요. 그런 점에서 타자와 괴물은 굉장히 긴밀하죠.
- P35

그래서 괴물에 대한 서사는 이렇게 봐야 되지 않나 싶어요. 동일자가 알 수 있는 지식의 한계 영역에 괴물, 타자의 영역이있다는 거예요. 타자가 설명되지 못하는 건 동일자의 한계지, 타자 자체가 능력이 없거나, 불운하거나, 아무런 의미도 없거나, 지식과 아무런 관련이 없거나, 무시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이야기 할수 없다는 거예요. 오히려 설명하지 못히고 이해하지 못하니까불결한 것, 나쁜 것, 혹은 ‘not A‘, 즉 A가 아닌 것으로 말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자고 하는 거죠. ‘형상이 이상해. 괴물들이야. 거기에 대해서 더 궁금해하면 너도 전염될 걸?‘
‘너도 괴물이 되고 싶은 거야?‘ ‘비정상성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힘든 일인데 너도 비정상성으로 살고 싶은 거야?‘ 아니면 요샛말로 "아싸로 살고 싶은 거야?‘ 뭐 이런 거요.
- P38

여성들 역시도 자기 자신을 설명하고 재현하려는 노력을하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남성 인간의 위치에서 비남성으로서의여성을 설명하지 않고, 여성이 자기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려는노력을 하게 됐다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거요.. ‘내가 누구인지 내가 스스로 이야기해보고 싶다‘라는 노력들을 하게 되는거죠. - P42

기존에는 철학적 재료가 될 수 없었던 것들을 철학적 재료로 다시 다듬어보려는 거죠. 둘 다 해내는 거예요. 기존의 철학적 도구를 사용하는 동시에 기존의 철학이 무시해왔던 몸이나 감정 같은 것들을 철학의 재료로 가져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 철학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이해를 포함해요. 본래 철학의 일이 세계를 인식하는 틀거리를 만드는 것이라면,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 철학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명하고 새로운 관점들을 고민해보는 철학이기도 한 거죠.
- P46

페미니즘은 우리가 이렇게 살 수는없다‘는 각성일 수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할 것인가, 대문자 주체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을 때 이 시공간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어떻게 다시 생각해볼 것인지 기존의 이분법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거죠.
- P50

그런데 우리 사회는 페미니즘이 민주주의 시민의 조건이라는 것, 휴머니즘으로서의 페미니즘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아요. 저는 울스턴크래프트를 보면서, 그게 우리 사회의 굉장히 아이러니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P69

울스턴크래프트는 열렬한 근대주의자예요.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이 신체적으로 어떻다, 남성과 어떤 차이가 있다는 바에 큰 관심이 없어요. 여성도 이성이 있다, 그리고 그 이성을 지닌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거예요. 근대적인 상상 안에서는자유와 평등의 권리가 이성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 P80

이게 제1물결 페미니즘,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기본 사상이에요. 우연적 차이에 불과한 여남 차이가 너무 심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 차이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거고요. 이성에는 여남이없고, 인간의 영혼에도 차이가 없다는 거죠. 인간으로서 같다는걸 주장한다는 거예요. 남녀라는 성차는 굉장히 우연적인 것이고, 남녀는 같다는 걸 말하자는 게 기본적인 내용이죠.
- P84

그리고 울스턴크래프트나 초기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여성의 위치가 사실은 약자와 같다고 인식을 해요. 그래서 울스턴크래프트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노예폐지론도 많이지지해요. 다른 소수자들도 여성들이 겪는 차별을 겪고 있다는 연대의식이 이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한테도 있다는걸 우리가 기억했으면 합니다 - P98

실존철학의 기본 개념은 자유예요. ‘인간이 어떤 식으로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이게 실존철학이 던지는 질문이에요. 아주 간단히 이야기 하면, 자신이 타자의 위치에 놓여 있을 때는 자유롭지 못하고, 주체의 입장에 섰을 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게정말로 보부아르가 이야기하고 싶어 했던 자유의 개념입니다. 그자유란 주어진 게 아니라 실존을 통해 참여를 해서 쟁취하는 거라고 했죠. 그리고 이 자유의 문제를 직접적인 사회적 문제, 특히여성이라는 문제에서 시작했어요.  - P103

그래서 남성 지식인과 저널리스트들은 이 책에 독설을 퍼부어요. 특히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프랑스 남성을 모욕했다.
프랑스 수컷을 조롱했다며 비판했고 프랑수와 모리아크 FrançoisMauriac는 "문자 그대로 천박함의 한계에 이르렀다. 구토약을 먹으면 아이들은 음식물을 토해낸다" 라고 했어요. 구토약처럼 구역질이 난다는 거죠. 교황청에서는 금서로 지정했고요. 그다음에프랑스 공산당에서도 이 책이 좋은 책이 아니라고 했어요. 계급투쟁이 잘되면 그다음에 젠더 문제가 주된 문제가 될 거고 그러면 성차별 문제가 해결되는데 딴 이야기를 한다는 거죠. 계급 문제가 주요 모순이니 계급투쟁에 집중을 해야 되는데 관심을 다른데로 돌린다고 보부아르를 비판해요.
- P114

우리가 페미니즘을, 그 이론을 이해한다는건, 남녀의 성차가 비대칭적인 상태이며 그것들을 교정하려는 어떤 시도가 페미니즘의 출발점이라는 걸 이해한다는 거예요. 시몬드 보부아르가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통해 이것에 대해 일종의논증을 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P127

여기서 보부아르는 페미니즘 운동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언제나 비대칭적이었고 여성은언제나 다자의 위치에 있어왔죠. 그런데 흑백 간, 자본과 노동자의 관계처럼 주객, 주체와 타자, 상호 주체가 될 때 외부를 타자로설정하는 다른 관계들과 남녀관계는 양상이 다르다는 거예요. 남자들은 자기들을 ‘우리‘라고 부르는데 여자들은 왜 스스로를 한번도 ‘우리‘라고 부르지 않는가. "여자들은 남자들이 스스로 양보해 주는 것밖에는 얻지 못했다.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그저 주는 것만 받아 왔을 뿐" 이라는 거예요. 이게 너무 이상하다는 거죠.
- P128

‘우리는 어떻게 해야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나요?‘라고 할 때 ‘경험을 말하고 경험을 경청하라. 그리고 경청을 통해 우리는 페미니즘의 출발을 마련할 수 있다‘라고 하죠. 보부아르도 그래서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고요.
- P135

보부아르에게는 계몽주의자로서의 뿌리가 있어요. 그래서 인간의 진정한 우애를 회복해야 하고, 여성을 타자의 위치에 두는, 즉 여성을 비자유의 위치에 두는 이 제도에 대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부당함을 느끼지 않겠는지 호소하는 겁니다.
- P137

지금 이 여성차별의 현실, 여성을 타자로 만드는 현실, 여성을 제2의 성에 머무르게 하는 현실은 실존주의적으로 모럴리티가 떨어지는 절대악의 실행이다라는 걸, 결론 내지 않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죠.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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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리처 시리즈 이제 4권을 읽었다.


이번에 읽은건 이렇게 2권
















2번째 권이었던 <탈주자>에서 약간 주춤했다가 단번에 다시 잭리처 시리즈의 매력을 다시 올려주는 책.

<탈주자>가 왜 재미가 떨어졌는지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추리와 하드보일드액션을 결합한 이 시리즈에서 <추적자>는 액션이 좀더 비중있게 다뤄졋던거 같다는게 이유인듯하다. 

3권과 4권이 더 재미있었던건 아마도 액션보다 추리가 비중이 더 많아서였던듯.

이 시리즈를 통해 내 취향이 어느쪽에 있는지 확인한 것도 독서의 성과라면 성과일듯하다.

아 그래서 내가 <링컨 라임>시리즈를 그렇게 좋아하는구나 하고 다시 한번 확인.

그나 저나 <링컨 라임>시리즈는 언제 다시 나오려나????

어쨌든 잭 리처 시리즈 역시 기본적인 재미를 보장하는 시리즈로 아마 앞으로 남은 시리즈를 다 읽지 싶다.

원샷도 그렇고 사라진 내일도 마찬가지로 일면 잔인하지만 너무나 단순해보이는 사건에서 출발한다.

원샷에서는 한 미치광이가 그냥 묻지마 살인을 했고, 무고한 시민이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끝날듯한 사건이고(미국에서야 이런 무차별 총격사건이 워낙에 자주 일어나니 말이다), 사라진 내일에서는 한 여성의 지하철에서의 권총자살이 시작이다.

그냥 불행한 사건으로 잊혀질 사건들이 잭 리처의 뭔가 이상해라는 의구심으로 파헤쳐 들어가면서 점점 배후가 드러나고 사건의 규모가 커지고 해결되어 가면서 잭 리처와 독자가 머리싸움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와중에 헐리웃 영화의 주인공을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잭 리처의 매력을 보는 건 덤!


앞의 책에서 역자 해제를 읽으면서 1인칭 서술과 3인칭 서술얘기를 들었을 때 어 그랬나했는데 이 2권을 연속으로 읽으니 아 맞네 하게 된다. 

리 차일드라는 작가는 굳이 문체의 일관성 이런것에는 신경쓰지 않는듯.

이야기의 구조에 따라 마음대로 시점을 선택하는듯하다. 

하지만 매력적이라는 점에서는 잭 리처의 1인칭 시점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이 덩치크고 온몸이 무기이면서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는 잭 리처라는 인물을 좀 더 가깝게 느끼게 해준달까?



아 <사라진 내일>에서는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소설의 초반 지하철에서 권총자살하는 여자의 목격자가 된 잭 리처에게서 용의자 증언을 들으면서 여자 경찰이 "정말 괜찮아요?"라고 묻는다.

잭 리처는 속으로 난 이보다 더한 상황도 많이 봤어. 이 정도로는 충격따위 받지 않아 뭐 이런 생각을 꿍얼꿍얼 하며 괜찮다고 대답하는데 이 여성 경찰 정말 의외의 말을 하는 것이다.


"나라면 자책감이 들 것 같아서요. 지하철 안에서 그 여자에게 그렇게 접근한 것 말이에요. 당신이 그 여자를 궁지로 내몰았을지도 모르잖아요. 한두 정거장만 더 기다렸더라면 그 여자도 정신을 추슬렀을지 모르죠."


항상 자신만만한 잭 리처에게 한 방을 확 날리는 이 말이 난 왜 이렇게 멋지지?

잭 리처는 항상 정의롭고 멋진 인물이지만 그 역시 수많은 끔찍한 일들을 겪으면서 놓쳤을지 모를 인간의 마음을 잊지 말라는 경구같은 느낌이랄까?

다만 첫번째 책 <추적자>와 다르게 점점 더 여자 주인공의 역할이 줄어드는건 좀 섭섭하다.

이렇게 멋진 여자 경찰도 딱히 주인공을 간간이 도와주는 것 외에는 별 역할이 없으니 말이다.

다음 시리즈들에서는 매회 소비되는 여자주인공 말고 좀 주인공같은 여성은 안 나올까싶어 아쉽지만 이 시리즈의 성격을 볼 때 별로 그렇지는 않을듯.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는 아멜리아 색스라는 매력적인 여주인공과 그녀와 링컨라임의 사랑이 사람을 간질거리게도 해서 더 매력적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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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22-02-24 18: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리처... 리처 드라마를 봐주세요! 여캐들도 잘 나왔고, 에피소드 8개인데, 정말 잘 뽑았어요.

바람돌이 2022-02-24 20:18   좋아요 2 | URL
아 하이드님 진짜 오랫만이네요. ^^ 잘 지내셨나요? 리처 드라마는 저도 하나 봤는데 주인공의 미모가 확 깨더라는.... 약간 헐크 분위기랄까? ㅎㅎ 그래서 일단 책부터 보려구요. ^^

다락방 2022-02-26 19:35   좋아요 0 | URL
헐크 분위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이드 2022-02-24 2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처는 못 생기고 연기 못하는게 더 나은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바람돌이 2022-02-26 01:20   좋아요 0 | URL
책에서 묘사되는 리처를 보면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하네요. ㅎㅎ

희선 2022-02-25 0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이 책을 보실 거군요 잭 리처 한사람만 내세우는 것 같네요 이런 걸 영상으로 만들면 여성도 나름 나오는 듯해요


희선

바람돌이 2022-02-26 01:22   좋아요 1 | URL
시리즈가 16개가 번역되어 나와있더라구요. 아마도 다 보게 될것 같습니다. ^^ 원래 시리즈는 더 많은데 번역이 다 된게 아니더라구요. 뭐 그렇다고 제가 원서로 사보지는 않을거라 번역본만 다 읽는걸로요. ^^ 사실 여성 주인공은 아직은 뭔가 양념같은 느낌이랄까 조금 아쉬운 면이 있어요.

책읽는나무 2022-02-25 07: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잭 리처 탐 크루즈 주인공 영화 한 편 지금 보고 있어요ㅋㅋㅋ
책을 읽었을 때는 리처가 좀 센스 있고, 좀 샤프하고, 농담도 잘하고, 허당기도 있었던 것 같은데...영화에서는 좀 근엄하고, 자상한 느낌이더군요???
책의 이미지가 좀 더 나은가? 생각해 봤습니다^^

바람돌이 2022-02-26 01:25   좋아요 1 | URL
책에서는 계속 잭 리처의 외모를 강조하거든요. 190이 넘는 키이 엄청난 거구로요. 그래서 톰 크루즈가 이 역할 한다 할 때 말이 많았던 듯해요. 뭐 톰 크루즈가 잭 리처 너무 좋아해서 자기가 하고 싶다고 막막 우겨서 했다는데 그래서 잭 리처 좋아하는 분들은 적응이 안되는듯요. ㅎㅎ 이번에 드라마로 나온 잭 리처 보니까 딱 원작에서 묘사하는 외형이더라구요. 그게 또 막 끌리지는 않아서 일단 책 다 읽을 때까지는 드라마나 영화는 안보는걸로 할려구요. ^^

다락방 2022-02-26 19:37   좋아요 2 | URL
저는 책 읽기 전에 탐크루즈 영화를 먼저 보았거든요. 잭 리처 독자들이 탐 크루즈 반대했다는 걸 알고 봤는데, 저로서는 탐 연기 잘만하는데 왜들 그래? 했거든요. 그런데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독자들이 왜그랬는지 알겠더라고요. 탐 크루즈는 멋지지만 잭 리처에는 안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것이 제가 책을 몇 권 읽고 내린 결론입니다 ㅋㅋ 탐, 그건 아니야. 미션 임파서블 찍어요!!

바람돌이 2022-02-27 01:05   좋아요 0 | URL
톰 크루즈가 도저히 잭 리처 이미지가 안된다에는 동의요. ㅎㅎ 그래 톰 아저씨 미션 임파서블 찍으세요.
아 그래도 드라마 잭 리처의 배우는 몰입이 어려워서.....ㅠ.ㅠ 열심히 보다 보면 정들까요? ^^
 
보이지 않는 소장품 -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츠바이크 선집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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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은 항상 몰입감이 대단하다.

읽다보면 작중 인물의 감정에 나까지 휘말려 드는 느낌이랄까?

아마도 주인공의 감정상태를 묘사하는데 이 작가 진정 진심이라는 느낌이다.

온 세계, 온 자연이 주인공의 감정과 함께 부르르 떨고 요동을 친다는 그런 느낌이다.

아마도 그래서 츠바이크라는 작가가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가 싶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는 얼마 전에 읽었던 로맹 가리의 <마지막 숨결>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 책의 첫번째 단편 <폭풍우>가 그랬다.

감정이입으로 최고랄까?

로맹가리와 츠바이크 모두 독자를 주인공의 감정속으로 휘몰아 가는데 있어서는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다만 로맹가리의 단편은 언제나 마지막 강력한 한방 어퍼컷을 날린다는 점, 그럼으로써 너의 그 감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봐라 하면서 판을 깨버리는 면에서 내가 더 좋아하는 작가다.


츠바이크는 다르다. 주인공의 그 고양된 감정속에 계속 독자를 붙들어맨다.

어느쪽이 더 여운이 남는가는 아마도 독자의 취향이나 이들의 책을 읽을 때의 독자의 감정상태 이런 것에 따라 다르지 싶지만 어쨌든 두 작가 모두 독자를 감정의 과잉, 고양으로 이끈다는건 공통점이라 할 만하다.

덕분에 이들의 책을 읽는건 언제나 두근거림을 동반한다.


첫번 째 단편인 <아찔한 비밀>은 내내 피식거리면서 읽었다.

오스트리아 잼머링이라는 휴양도시에 휴가를 온 젊은 남작과 12살 남짓의 아이의 건강 회복을 위해 아이와 함께 휴양을 온 여성. 바람둥이 남작은 아이 엄마와의 휴가철 원나잇을 계획하고 열심히 아이 엄마를 꼬드긴다.

물론 그를 위해서 먼저 아이에게 접근해서 호감을 사는건 기본.

그러나 이 아이 에드가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초기 아이 엄마에게 남작이 접근할 기회를 주었으면 그 다음에는 얌전히 아이답게 찌그러져서 말 잘듣고 잘 자러 가고 해야 하는데 이놈이 글쎄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아직 사춘기에 들어서지도 못한 아이는 뭔가 이상하다는걸 느끼지만 엄마와 남작사이의 성적 긴장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다만 자기와 먼저 친해진 남작이 엄마와 더 친해지는걸 이해할 수 없고, 더욱이 엄마와 친해지기 위해 자기를 이용했다는걸 깨닫는 순간 맹렬한 분노에 불타오르며 어떻게든 어른들을 감시하는 것으로 복수하기 위해 애를 쓴다.

아이의 맹목적인 분노, 어른 둘의 애가 타는 성적 긴장과 아이에 대한 짜증같은 것들이 손에 잡힐 듯 느껴져 읽으면서 아 어떡해 에드가. 그냥 너희 엄마는 오랫만에 한 번 불타보려는거야 잠시만 어른들 좀 놓아주면 안되겠니? 하다가, 또 아니 남작이야 나쁜 놈이니까 그렇다치고 엄마가 아이 앞에서 그러면 안되지 하다가 하여튼 이들의 감정선을 따라 내 감정도 요동을 치면서 갈팡질팡한다. 그래 이 맛이 츠바이크의 맛이다.

아이의 무분별한 모험 이후 나름 평온을 찾는 아이와 엄마의 관계지만 정말 그럴까?

아이는 마지막 엄마의 포옹이 앞으로 자신의 삶에 쓰고도 달콤한 짐으로 남으리라는 얘기를 하면서 이 해피엔딩 아닌 해피엔딩을 맞지만 이제 아이를 졸업한 에드가의 삶에서 이 사건은 아마도 영원한 영향을 주지 않을까?


두번째 단편 <불안>은 정말 불안에 대한 탁월한 묘사를 자랑한다.

별생각없이 불륜에 빠져든 이레네라는 여성이 그 사실을 한 여성에게 들키게 되고 협박을 받으면서 일어나는 이레네의 마음속 폭풍을 잘 묘사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안락한 가정의 편안함을 버릴 생각이 일도 없기에 이레네는 전전긍긍한다.

그녀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풍, 불길한 예감 어느 하나 공감이 가지 않는게 없어 어쩌면 작가가 이런 불안을 실제 겪은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물론 츠바이크의 삶을 생각하면 그건 아닐 거 같지만.....

다만 결말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장르소설같은지라 소설 전체의 완성도는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의 감정의 고양을 묘사하는 능력은 여전하다.


세 번째 단편 <세 번째 비둘기의 전설>은 노아의 방주에서 노아가 보낸 세 번째 비둘기를 모티브로 당시 전쟁에 고통받던 유럽에 대한 평화의 메시지로 읽힌다. 다만 워낙 짧고 소설이라기보다는 에세이로 읽어도 무방할듯....


네 번째 단편인 <모르는 여인의 편지>는 민음사판에서 읽었던 단편이다. 이 소설에 대해서 혹평을 했던게 기억나는데, 내 요지는 이봐요 츠바이크씨, 여자는 이런 식으로 사랑하지 않아요였었다. ㅎㅎ

이 책의 역자해제에 보면 이 소설을 보는 다른 관점이 소개되는데 흥미로웠다. 

실제 츠바이크의 초기 삶이 이 소설 속 남자 주인공 유명 소설가 R과 비슷했다는 것, 첫 번째 부인과 결혼해 있으면서도 일년에 두달 정도는 마음대로 여행을 떠나고 그 동안 온갖 여자들과 연애를 하고, 심지어 그 연애이야기를 상세히 편지에 써서 첫번째 부인에게 보냈다지. 누가? 츠바이크가.... 완전 나쁜 놈!!!! 느낌표 백개쯤 붙여야 할듯.

그래서 이 소설은 자신의 그런 지난 삶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 역자의 해제인데, 츠바이크의 실제 삶을 알고 나니 이 소설이 반성문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좀 들기는 한다.

반성일지, 자랑일지 어느쪽일지는 글쎄 츠바이크씨만 알겠지.


다섯번째 단편인 <보이지 않는 소장품>은 츠바이크 소설에서는 드물게 온화한 휴머니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우화 같은 소설이다. 아 츠바이크가 이런 소설도 쓸 수 있었구나 싶어 신선하게 느껴지는, 그러나 그 덕분에 츠바이크만의 매력을 느끼기는 힘든 소설. 


여섯번째 단편 <어느 여인의 24시간>이야말로 이 소설집의 백미라 할만하다.

그의 장점인 휘몰아치는 감정과 그것의 비정상적인 광기,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생을 한순간에 일탈과 파멸로 몰아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린듯 완벽한 부르조아적 삶을 살던 이 여성, 어느날 남편은 죽고, 아들들은 다 컸고, 어디에도 자신의 존재가치는 보이지 않는 간단히 말하면 돈은 있고 할일이 없어서 삶이 권태로운 40대초반의 여성이 있다.(이 대목에서 솔직히 나도 좀 이렇게 할일이 없어서 권태로워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건 안비밀. ㅠ.ㅠ)

삶의 무료함에 지쳐가던 이 여성이 어느 한 날 몬테카를로의 한 도박장에서 한 젊은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 순간부터 24시간동안 평생 겪었던 것보다 더 격렬하고 더 많은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사실상 우리들이 일상에서 이런 감정을 겪을 일은 그다지 없어 비현실적이다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건 겪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일. 또한 그것을 이렇게 탁월하게 당연하게 그 감정의 진화를 인정하게 하는 것 역시 츠바이크의 작가적 능력일 것이다.


살아간다는건 늘 짜릿함보다는 일상의 무료함과 반복에 지친다는게 더 맞는 얘기일 듯하다.

그러 날, 소설을 통해 일상의 지지부진함을 벗어나고 싶다면 잠시 츠바이크의 책을 들여다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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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24 17: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와 로맹가리의 유사점과 차이점에서 확 공감이 갑니다~! 아 이렇게 리뷰가 흥미로우면 더이상 미룰 수 없겠군요 😅

바람돌이 2022-02-24 20:19   좋아요 4 | URL
저도 하루만에 봤으니 새파랑님이야 순삭하실듯..... ^^ 츠바이크는 일단 재밌잖아요. 근데 최근에 로맹가리를 읽었더니 비교가 많이 되더라구요. ^^

페넬로페 2022-02-24 17:3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와 로맹 가리의 차이점에 밑줄 쫙입니다. 잠시 저는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지 생각해봤어요.
읽을 책이 많아 좀 밀리지만 언젠가는 읽어 봐야할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2-02-24 20:20   좋아요 4 | URL
저는 로맹가리를 더 좋아합니다. 근데 로맹가리는 약간 작품마다 편차가 좀 있달까 근데 츠바이크는 현재까지 읽은바로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거든요.

희선 2022-02-25 0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제 겪기보다 소설 보는 게 더 좋을 듯합니다 소설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있겠습니다 그런 일은 없으면 더 좋을 텐데, 사는 건 마음대로 되지 않네요


희선

바람돌이 2022-02-26 01:17   좋아요 2 | URL
츠바이크가 말하는 일들 실제로 겪으면 좀 곤란해요. 까닥하다간 인생 삐긋..... ㅎㅎ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게 인생이긴 하죠.

책읽는나무 2022-02-25 07: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좋아했었던 한 알라디너분이 츠바이크 극찬했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리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책이나 작가를 접할 때, 책 내용보다 알라디너분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츠바이크는 ㅇㅇㅇ, 로맹 가리는 바람돌이님!!^^
츠바이크는 아직 읽은 게 없어 읽어 보게 된다면 이제는 비교해 보라는 바람돌이님의 강렬한 이 리뷰가 떠오르겠습니다^^

바람돌이 2022-02-26 01:19   좋아요 4 | URL
아 저도 그럴 때 있어요. 아 이 책은 또는 이 작가는 서재의 어느 분이 진짜 강력 추천했었는데 뭐 이런요. 사실 당연한거 같아요. 제가 읽는 책의 반은 제가 관심있고 좋아해서 보는 책이고, 반은 서재분들 추천보고 찾아서 읽는 것들이니 말이죠. 그런데 감히 로맹 가리 접할 때 저를 떠올려주신다니 진짜 영광일따름입니다. ^^ 츠바이크 시작으로 이 책도 괜찮고요. 전 진짜 좋았던 건 <감정의 혼란>이에요. 둘다 읽기 쉽고, 분량도 그리 많지 않은지라 시작하시기 좋을듯해요.

mini74 2022-03-08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방학이 끝나서 바쁘시겠어요. ~ ㅎㅎ 당선 무지무지 감축드리옵니다 ~

바람돌이 2022-03-11 00:24   좋아요 1 | URL
3월이니 바쁘긴 하지만 그래도 올해는 제가 좀 편한 한해입니다. 이렇게 여유있는 3월은 25년만에 처음입니다. ㅎㅎ 축하 감사드려요. mini74 님도 2관왕 축하드립니다. ^^

2022-03-08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11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2-03-08 18: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바람돌이님~~

바람돌이 2022-03-11 00:2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도 에밀졸라 읽기 글 당선 축하드려요. 저도 그 글보고 에밀 졸라를 더 읽어야하는데 하고 있습니다. ^^

책읽는나무 2022-03-08 19: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이젠 츠바이크, 로맹 가리 모두 다 바람돌이님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바람돌이 2022-03-11 00:29   좋아요 2 | URL
나무님 감사합니다. 나무님도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
츠바이크와 로맹 가리 둘 다 너무 좋은 작가인데 그들을 읽을 때 저를 떠올려주신다니 너무 좋네요. ^^

새파랑 2022-03-08 19: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당선 축하드려요 ^^ 저도 곧 이 책 읽어보겠습니다~!!

바람돌이 2022-03-11 00:30   좋아요 2 | URL
저에게 다시 로맹가리를 돌려주신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새파랑님도 이관왕 축하드려요. ^^

희선 2022-03-09 01: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축하합니다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바람돌이 2022-03-11 00:3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희선님도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늘 희선님 위로로 하루를 따뜻하게 마감합니다. ^^

얄라알라 2022-03-10 11: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놓쳤었다니! 이달의 리뷰 선정덕분에 바람돌이님의 츠바이크 예찬의 이유 잘 담아 갑니다
축하드립니다

바람돌이 2022-03-11 00:3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얄라알라님도 당선 축하드려요. 저출산에 대한 얄라알라님 페이퍼도 흥미롭게 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