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에포크,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 - 셀럽과 스타가 탄생하고, 백화점과 루이 뷔통과 샴페인이 브랜딩의 태동을 알리던 인류의 전성시대
심우찬 지음 / 시공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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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목에 대해서 딴지부터 걸고 싶다.

19세기말, 그 시대를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라고 부르는 건 그들 맘이겠지만,

그게 꼭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언제든 아름답고 또 언제든 추하다 

딱히 어느 시대라고 해서 특별히 더 아름답지도, 특별히 더 추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19세기말의 유럽 역시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하는 시대일 뿐이다.

산업혁명의 성과가 본격적으로 향유되었고, 또 한편으로 그것은 아시아 아프리카의 무수한 식민지를 착취한 결과였던 시절.

모든 것이 넘쳐나고 여기저기 돈이 뒹굴고 다니지만, 그 맞은편에는 극단적인 빈부격차로 가난한 이들의 삶은 비참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였던 시절.

거기다가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경쟁과 대립 역시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그래서 특별할 것 없는 시절.

다만 신흥계층인 부르조아들의 넘쳐나는 돈으로 인해 온갖 문화투자와 상품소비가 과하게 넘쳐 흘러 문화적 성취들만큼은 활발하던 시절이라고 할까?

산업이 그러했듯 문화에서도 온갖 실험과 새로운 생각, 새로운 표현들이 나오고 또 용인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을 뿐인 것이다.

다른 시대보다 좀 더 역동적이엇던 시대 이미지를 제목으로 붙이는 것이 오히려 책의 내용에 더 맞지 않을까?

그러면 책이 안 팔리려나? 


그래도 제목에 비해서 실제 책의 내용은 어느정도 균형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목에 딴지를 걸고 싶은 것은 제목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 덕분에 이 책과 이 시대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의외로 책은 벨 에포크 당시와 그 시대를 살았던 셀럽들에 대해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오히려 당시의 분위기를 맘껏 느끼며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당대를 풍미했던 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다행히 이 인물은 알폰소 무하를 읽으면서 익숙한 인물이다.

코르티잔인 어머니의 삶을 반복하거나 수녀가 되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한다는건 이 시대 여성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보석세공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르네 랄리크처럼 처음 듣는 이도 있지만 명품의 대명사처럼 얘기되는 루이 뷔통이 여행용 트렁크를 만드는데서 시작되는 탄생과정을 읽는 것도 흥미롭다. 

페미니즘의 태동과 각기 다른 운동들의 형태, 거기에 관여한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더더욱 흥미롭다. 

구시대의 유물이면서 벨 에포크를 활짝 피게 만든 살롱문화를 이끌었던 여성들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이고...

언제든 인간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온전히 그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또다시 느끼게 해준다.


메리 메콜리프의 예술가들의 파리 4권짜리를 읽기 전에 워밍업삼아 선택한 책이었지만 이 책대로 이 시대의 분위기를 즐겁게 맛보기에 적절한 책이다.

또한 책의 곳곳에 당시의 음악과 영상들을 찾아볼 수 있는 QR코드를 같이 올려주어서 동영상과 음악과 함께 책을 읽는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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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10 17: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벨 에포크˝라는 어감이 멋진것 같아요. 프랑스어는 왠지 좀 고급스럽게 느껴져요 ㅎㅎ

바람돌이 2021-10-11 20:41   좋아요 2 | URL
그래서 프랑스어가 18세기 19세기 유럽 궁정어가 됐겠죠. 그 때는 궁정인들은 프랑스어로 얘기할 줄 알아야 제대로 된 귀족이라고 햇대요. ^^ 하지만 프랑스어가 성조가 좀 세잖아요. 그래서 말을 빨리하거나 하면 굉장히 시끄럽더라구요. 영화볼 때요. ㅎㅎ

프레이야 2021-10-10 20: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저자 책 <프랑스여자처럼>을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은 더더 스타일리스트다운 내용이네요.
인간을 통해 시대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늘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되어요. 인간은 개별적이기도 하지만
보편적이기도 하니까요. 그나저나 워밍업 독서라니 계획 세워 읽으시나 봐요.
무조건 화이팅입니다, 바람돌이 님.^^

바람돌이 2021-10-11 20:43   좋아요 2 | URL
아 저는 이 저자 책은 처음이었어요. 패션쪽에서 일하시는 분이시라 그런지 일반 역사가들과는 좀 다른 시각들이 신선했습니다. 계획은 아니고요. 제가 한국인든 외국이든 근대쪽에 관심이 좀 많아서 보려고 찜해둔 책이거든요. 책탑들 사이 사이로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습니다. ㅎㅎ

붕붕툐툐 2021-10-10 21: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바람돌이님 대장정을 앞두고 계시는군요! 이번엔 어떤 작품일까 완전 기대됩니다~!!😍

바람돌이 2021-10-11 20:44   좋아요 1 | URL
대장정이라뇨. 앞에 읽었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에 비하면 다 껌입니다. ㅎㅎ
지금 바로 파리의 예술가들 시리즈를 읽을 건 아니고요. 이번 달에는 제 2의 성을 조금씩 조금씩 매일 매일 읽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책은 아직 배송중이군요. 연휴가 길어서요. ㅎㅎ

초딩 2021-10-12 0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세가를 멋지게 그리고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셨네요~~~
무하에 대해서 저도 읽고 싶어요 :-)
그리고 qr로 자료 링크를 삽입하는거 참 좋은 것 같습니다 ㅎㅎㅎ 편안한 밤 되세요~

바람돌이 2021-10-12 01:22   좋아요 0 | URL
19세기의 화가, 문학작가, 배우, 무희 등등 진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초딩님도 편안한 밤 되세요. ^^

희선 2021-10-12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벨 에포크 들어보기는 했지만 잘 모르기도 하네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본 적 있는 것 같기도... 어느 나라 사람이나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옛날이 좋았어, 하고 말하기도 하니... 사람은 언제나 아름답기도 추하기도 하네요


희선

바람돌이 2021-10-12 01:20   좋아요 1 | URL
벨 에포크시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우디 앨런일까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딱 그 얘기잖아요. ㅎㅎ 저는 뭐 굳이 그 시대로 가고싶다는 생각은 안하는데 그래도 영화속에서 유명 작가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주인공을 보니까 좀 황홀할 거 같긴 하더라구요. ^^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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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두 개의 눈으로 두 곳을 동시에 본다고 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 인선이 기르는 앵무새 아미의 이야기다.


귀를 기울이는 듯 꼼짝않고 갓등 위에 앉은 아미의 얼굴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의 한쪽 눈은 벽에서 움직이는 인선과 아미의 그림자를, 다른 쪽 눈은 유리창 밖 마당에서 저녁 빛을 받으며 흔들리는 나무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두 개의 시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건지 나는 알고 싶었다. 저 엇박자 돌림노래 같은 것, 꿈꾸는 동시에 생시를 사는 것 같은 걸까. (114쪽)


작가 한강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 사랑 맞지...

이것이 어떻게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을까?

새가 가지는 두 개의 시야처럼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또한 참혹한 고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참혹한 경험을 안고 사는 사람은 이렇게 새의 두 눈처럼 사랑과 고통을 동시에 겪으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심부름을 갔다 돌아오니 가족이 모두 사라져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쌓여있는 죽음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가족을 찾아야 한다는, 그래서 죽은 이의 몸이 차가워져 맨 빰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경험한 삶.

어린 여동생은 부상을 입은 채로도 도와줄 언니들을 찾아 집까지 기어왔다가 참혹한 모습으로 언니들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또 어떤 이는 청년이라는 이유로 홀로 동굴속에서 피신했는데 밤에 돌아와보니 온 마을이 불타고, 그 불꽃을 평생동안 기억해야 하는 삶.

그 삶을 놓지 못해 그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에도 죽은 오빠의 뼈라도 찾고 싶었던 인선의 어머니.

이런 고통에 대해서 우리는 감히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소설 속 인선과 경하 역시 감히 그 기억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손가락이 잘려나간 고통을 3분마다 다시 겪어야 하는 끔찍함이 필요했고, 경하는 눈보라에 갇힌 제주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헤매는 순간에서야 진심으로 마주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어쩌면 나같은 평범한 독자가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현실을 살아가지만 항상 과거의 기억을 꿈속에서 반복하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끊어내기 위해 이불 밑에 줄톱을 깔고 잠이 들어도 기어이 찾아오고야 마는 기억들.

그래서 결국은 죽은 이들의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 작은 단서라도 있으면 어떤 곳이든지 달려가 버리고 말게 되는...

인선의 어머니가 대구 형무소에서 죽었을지도 모를 오빠의 흔적을 찾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을 헤맸듯이, 인선의 아버지가 작은 단서라도 있으면 어린 여동생의 시체가 떠밀려왔을지도 모를 제주 어느 바닷가의 이야기를 찾아 헤매듯이, 그렇게 사랑은 고통이지만 그래도 사랑이므로 끊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두 개의 시야를 살아가는 새들처럼 늘 사랑과 고통, 현실과 꿈의 세계를 부유한다.

두 개의 세계를 언제나 동시에 살아낼 수 밖에 없는 것일테다.


소설의 제목이 <작별하지 않는다>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제대로 작별 인사조차도 못한 죽음들에 대한 슬픔, 그래서 작별하고 싶지 않은 가슴속에 꽉꽉 넣어두고 기억해야 한다는 의지, 그럼에도 너무도 고통스러워 차라리 버리고싶지만 결코 버려지지 않는 강렬함.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작별하지 못한다가 아니라 작별하지 않는다가 되었지 싶다.

작별하지 못하는 것은 고통이기만 하지만 작별하지 않는 것은 고통이면서 또한 사랑이기에.....


전작인 <소년이 온다>가 80년 광주의 기억을 길어올렸던데 비해,

이번 작품은 1948년 제주 4.3의 땅으로 독자를 이끌고 간다.

주인공 경하는 소설의 첫머리에서 광주를 쓰고 난 이후 겪은 고통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오롯이 작가 자신의 이야기로 읽힌다.

그의 소설을 볼 때 이 작가가 얼마나 예민하고 섬세한지를 느낀다.

이런 사람이 오롯이 광주의 기억을 더듬었던 것은 그 시절을 스스로 살아낸 듯한 느낌이었지 싶다.

읽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기억을 마치 스스로 살아내는 것처럼 반복했다면 작가의 소설 이후 고통이 짐작가기도 한다.

어쩌면 이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작가에게는 글을 쓰는 과정이 그 경험들을 자신의 경험으로 겪어내는 과정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왜 작가는 이렇게 고통을 스스로 체험하는 것일까?

책 뒷표지에서 문학평론가 신형철씨는  "누구나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작가들도 물론 그렇다. 그러나 한강은 매번 사력을 다하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그 사력을 다한다라는 표현이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 중앙에 콱 박혔다.

작가가 정말 사력을 다해 이 글을 썼구나....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작가는 정말 죽을 힘을 다했구나....

그리고 앞으로 오랫동안 또 많이 참 많이도 아프겠구나....

소설 속 인선과 경하, 인선의 어머니가 겪은 그 고통들은 온전히 작가의 고통이겠구나 싶어 이 책을 이리도 쉽게 읽고, 마음이 아프다는 말만으로 맺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작가님이 건강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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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10-10 17: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소년이 온다‘를 넘 힘들게 읽었는데 이 책도 읽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얼마 전 제가 페이퍼 올리면서 한국 작가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많이 써 줬으면 하고 바랬는데 한강 작가가 해주셨네요^^

바람돌이 2021-10-11 20:39   좋아요 1 | URL
저도 소년이 온다를 정말 힘들게 읽었는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문학적 완성도에서는 소년이 온다가 좀 더 좋았던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조금 아쉬움이 남았지만 워낙에 고통을 서술하는 방식이 리얼해서 뭐라 다른 말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붕붕툐툐 2021-10-10 2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중반쯥 보다 일단 손 놓고 있었는데, 한강 작가는 사력을 다해 쓴다는 말이 너무 와닿네요.. 다시 손에 들어야겠어요~~

바람돌이 2021-10-11 20:39   좋아요 0 | URL
다 보고나면 음..... 우울합니다. 그래도 읽어야 한다는데 동의합니다. ^^

희선 2021-10-14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잊고 싶지만 잊지 못하고 잊을 수 없는 일이겠네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주 4.3 때도 많은 사람이 죽었군요 같은 나라 사람이고 사상 같은 것과 상관없는 사람도 많았을 텐데...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겠지요 그때에서 시간이 지나고 또 일어났네요 앞으로는 정말 같은 일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1-10-17 12:41   좋아요 0 | URL
정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죠. 더 문제는 그 후로도 오랜 세월동안 희생자들이 오히려 죄인처럼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는 거겠죠. 제대로 작별조차 못하고 추모조차 못하면서 말이죠.
 

새처럼 가볍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오른쪽 어깨 위, 스웨터 올 사이로 가칠가칠했던 아마의 두 발이 떠오른다. 내 왼손 집게손가락을 횃대 삼아 앉아 있던 아미의가슴털은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전까지 내가 닿아보았던 어떤 생명체도 그들만큼 가볍지 않았다.
- P109

그렇게 두 개의 시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건지 나는 알고 싶었다. 저 엇박자 돌림노래 같은 것, 꿈꾸는 동시에 생시를 사는 것같은 걸까.
- P114

여기쯤 멈춰 서서 엄마는 저 건너를 봤어. 기슭 바로 아래까지차오른 물이 폭포 같은 소리를 내면서 흘러갔어. 저렇게 가만히있는 게 물 구경인가, 생각하며 엄마를 따라잡았던 기억이 나. 엄마가 쪼그려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 P311

.자료가쌓여가며 윤곽이 선명해지던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가 변형되는걸 느꼈어,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심장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이미떨어져나갔으며, 움푹 파인 그 자리를 적시고 나온 피는 더이상붉지도, 힘차게 뿜어지지도 않으며, 너덜너덜한 절단면에서는 오직 단념만이 멈춰줄 통증이 깜박이는.......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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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0-04 0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나온 한강 소설, 바람돌이 님도 오랜만이네요 구월보다 시월엔 가을이 깊어가겠습니다 바람돌이 님 건강 잘 챙기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바람돌이 2021-10-04 15:30   좋아요 2 | URL
한강작가님 소설이 오랫만에 나와 기대 잔뜩이었는데..... 읽어내기가 좀 많이 힘들었어요. 독자보다 작가가 더 고통스러워하는 느낌이랄까? 그게 너무 직격으로 느껴져서요.
시월인데 왜 요 며칠 날씨는 여름인지.... ㅎㅎ 희선님도 건강하게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유부만두 2021-10-04 1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강 작가 소설... 힘들 것 같아서 시작을 못하고 있어요. (소년은 온다, 도 못 읽...)

바람돌이 2021-10-04 20:59   좋아요 0 | URL
이 책 각오하고 읽어야 해요. 한강작가님 글 잘 쓰시잖아요. 솔직히 책은 소년이 온다보다 못하고 비유와 상징이 지나치게 복잡한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럼에도 작가가 느끼는 고통이 너무 절절하게 이입되어서 좀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는 읽으신다면 소년이 온다를 추천하고싶어요.
 

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
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 P17

이상하지, 눈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인선이 말했다.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
- P55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 P57

내가, 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안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 헌디 너가 그날 밤 꿈에, 그추룩 얼굴에 눈이히영하게 묻엉으네... 내가 새벡에 눈을 뜨자마자 이 애기가 죽었구나, 생각을 했주, 허이고, 나는 너가 죽은 줄만 알아그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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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10-03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눈
맞아요
한참 눈에 대해 이야기 했어요
정말 음 뭐라고 할까
조곤 조곤 꼭꼭 다지며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바람돌이 2021-10-04 15:31   좋아요 1 | URL
끊임없이 눈에 대해서 얘기하죠? 눈이 주인공인줄 알았어요. ㅎㅎ
작가님이 고통을 어찌나 꼭꼭 다지며 썼는지 읽다가 숨막히는 줄 알았어요.
 

빙켈만이 그리스를 질병 없는 낙원으로 그린 데에는 그리스 대리석조각에서 보이는, 티끌 하나 없는 순백색 표면이 좋은 근거가 되었을 겁니다.  - P26

15~16세기 이탈리아 사람들이 황금비를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기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미술까지도 모두 황금비를 따랐다는 억측이 퍼져나가게 된 거죠. 우리나라 미술 교과서에도 황금비에 대한 서술이 사실인 것처럼 지난 수십년간 실려 있다가 최근에야 빠지게 되었습니다.
황금비와 관련된 사람들의 믿음은 아름다움이 특정한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는, 미의 결정론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 P47

고대 그리스미술에서 보이는 군국주의적 분위기, 다시 말해 그리스 남성 조각들이 보여주는 육체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은 그리스미술에 드리워진 신비를 한꺼풀 걷어내면 드러나는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사실 그리스 남성 조각상은 크게 보면 전사 아니면 은동선수였습니다. 그리스 사회에서 스포츠가 전사의 신체 단련과 관계된다.
는 점을 고려할 때 운동선수조차도 군국주의적 함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많은 단독 조각상들이 전사자를 위로하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리스 고전미술의 고유한 목적은 바로 전쟁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간 고전주의자들이 애써 외면하려 했거나 간과했던 점입니다.
- P65

고전미술로 집약되는 절대적인 ‘미‘
의 세계가 있다는 신념하에 그 세계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 했던것이 르네상스 이후 서양 근대미술의 전통이었습니다. 그것이 18세기부터 한층 더 강화되면서 급기야 ‘벌거벗은 나폴레옹상‘까지 제작된 것입니다.
- P70

이 시기 아테네는민주주의의 실현과 정치적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초상의 제작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인간을 표현하더라도 특정 개인을 결코 연상시켜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관념화, 이상화된 인간 형상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시기 미술은 육체의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의 위대함을 표현하는데 지향점을 두었지만, 이것이 특정 개인을 이상화하는 것은 극히 경계했습니다. - P90

고대 조각상에 보이는 무표정성은 고전의 얼굴로 자리매김했고,
이에 따라 고전적 아름다움은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절제와엄격함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 이렇게 고전미를 한정하다보니 감정이 격하게 표현된 예외적인 작품에 대해서도 결코 그 표현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라오콘 군상 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18세기에 이 조각상의 주인공인 라오콘의 표정을 놓고 심각한논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 P95

이렇듯 17세기에는 유쾌함과 방종의 한편에 참회의 모습이 자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극배우처럼 화려한 옷과 모자를 걸치고 자신의 경제적 번영을 자신 있게 드러낸 그림과 그 옷을 모두내던지고 초라한 행색으로 참회하는 말년을 보여주는 그림의 대리는 르네상스시대와 다른 문명의 깊이를 느끼게 하죠. 특히 박물관에전시된 「돌아온 탕자는 관객의 눈높이가 탕자의 발에 닿게끔 걸려있는데요. 더러운 맨발과 뒤축이 전부 해진 신발을 눈앞에서 마주한관람객은 그 앞에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 P131

이 칙령의 다른 대목을 보면 혁명에 성공한 프랑스는 위대한 국가인 반면 봉건 체제에 머물러 있는 이탈리아는 나약한 국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탈리아 대신 프랑스가 ‘자유의 조국을 수호하면서 미술을 통해 그 위대함을 보여줘야 한다는 논리를 펼칩니다.
그리고 그것의 중심에 ‘국립 박물관‘, 즉 루브르가 있으며 이곳을 인탈한 미술로 채워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 P154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누가 고진을 중심으로 세기의 명작을 차지하는가는 곧 누가 유럽의 정신적 뿌리를 차지하는가의 문제, 즉 유럽 전역에서 권위를 발휘할 정통성 문제와 직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폴레옹이 벌인 이같은 약탈극은 고전의 지위를 한층 더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자유라는 혁명의 이름이 약탈의 정당한 근거로 둔갑한 걸 보면 조금 무시무시한 반전이라는 느낌도 들죠.
- P155

이렇듯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럽의 미술관 중 여러 곳이프랑스혁명과 이후 등장한 나폴레옹 시대에 세워지거나 크게 확대됩니다. 이 과정에서 나폴레옹의 의도는 결코 선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럽 각지에 박물관과 미술관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과정에서 나폴레옹의 역할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참담한 정복 전쟁 속에서 벌어진 부당한 미술품 갈취가 결과적으로 박물관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에서 우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 P164

영국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같은 공공 박물관과 미술관은 세계의주인공이 귀족과 소수 엘리트 집단에서 시민사회로 교체되는 것을보여주는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내셔널 갤러리‘의 명칭을 그대로풀면 ‘국민의 미술관‘이 되는데, 소수 지배층과 대다수 국민 사이의오래된 투쟁의 추가 국민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뚜렷한증거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 P184

이런 점에서 저는 미래의 박물관이 ‘인간성‘을 더욱 추구하리라예상해봅니다. 패권주의는 제국주의든, 그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박물관이든, 인간은 결국 그 공간에서 인간의 창조물을 감상하고 즐거움을 느끼며 새로운 감싱을 발견해왔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저는 형식은 인간성을 따른다‘Fern FollowsHumanity 라는 말로 박물관의 미래적 정의를 내리고 싶습니다.  - P206

흑사병은 서양미술의 흐름을 크게 뒤바꿔놓은, 미술의 역사에서가장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흑사병은 미술의 양식이나도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무엇보다도 미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자체를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 P226

화면 속에 그림을 주문한 사람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들어가는 예가 이제부터 더많아지거든요. ‘그림을 통한 개인의 기억‘ 또는 이미지를 통한개인적 구원‘이라는 세속적 열망은 흑사병이라는 대혼돈 속에서 서양미술의 중요한 표현방식으로 안착하게 됩니다.
- P231

즉 흑사병 시대에 들어서면 중소 상인이나 노동자, 농부, 가난한과부도 미술을 통해 사후 자신의 추모를 기획하게 된 것이조, 이들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소품을 구매했고, 따라서 이 시기 작품의평균적인 가격은 이전보다 많이 낮아졌습니다. 이처럼 흑사병 시기에 미술의 수요층이 확대된 것은 개인 추모에 대한 열망의 결과였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흑사병은 미술의 대중화에 상당부분 공헌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P234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완벽함과 위대함이 아니라 인간적인 고민과 그것에 대한 도전으로부터옵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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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10-04 1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찜 해 두었는데. 어떤가요?! 추천하십니까?

바람돌이 2021-10-04 20:57   좋아요 0 | URL
음.... 뭐라 말할지 좀... 관점도 괜찮고요. 책도 쉽게 읽혀요.
그런데 이런 종류의 책을 많이 읽으신분들한텐 좀 심심한 느낌일듯하고요. 특별한 임팩트가 없달까?
미술관련 서적을 별로 안 읽으신 분이라면 강력 추천하겠으나 유부만두님이라면 딱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