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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레 전쟁 -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알아야 한다 오늘의 청소년 문학 7
진 메릴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목적은 전쟁이 뭔지를 알아야 평화를 알 수 있다고...
그런데 전쟁이란게 항상 너무 거창하기만 해서 보통의 사람들은 그 본질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동화의 형식으로 이런 책을 쓰게 되었노라고 저자는 서문에서 얘기한다.
손수레 전쟁이란 다소 웃겨보이는 제목도 이런 의미에서 탄생한 것일게다.

배경은 뉴욕!
대도시가 그러하듯 이곳도 교통혼잡이 장난이 아니다.
이런 교통혼잡의 원인을 대형트럭들은 모두 길을 막는 조그만 손수레들 - 우리나라로 치면 노점상들이다.-에게 돌리고 늘 손수레들을 그 육중한 덩치로 위협한다.
그러던 와중에 아주 의도적인-그러나 실수를 가장한  대형트럭의 횡포에 의해서 한 손수레가 박살이 나고 꽃을 팔던 손수레 상인이 다친다.
이제 뉴욕시의 손수레 상인들은 트럭을 향해 전쟁을 선포한다.
하지만 명시적인 선전포고는 아니고 아주 은밀한 선전포고다.
그 방법이 아주 기발한데 이런바 콩알탄 작전!
새총에 장전한 뾰족한 콩알탄으로 트럭의 타이어를 펑크냄으로써 교통혼잡의 주범이 누구인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는 것.
작전은 대성공이었지만 힘없는 그들에게 승리는 순간이었다.
곧 대규모의 트럭회사 삼인방이 움직이고 이 모든 교통혼잡의 원인을 손수레상인들에게 돌리려는 음모가 진행된다.
동시에 손수레 상인들을 지도하는 이를 찾아 납치하려는 계획까지.....

하지만 아주 우연한 이유에 의해 그들의 음모는 사전에 손수레 상인들의 귀에 들어가고 손수레 상인들의 반격이 시작된다.
결국 은밀하게 시작되었던 전쟁은 공공연한 전면전으로 번지게 되고....
결론까지는 책을 읽을 사람을 위해서 남겨두자.

이런 과정들이 전쟁의 어떤 면들을 반영하는 걸까?
전쟁이란 것이 평소의 여러가지 누적된 불만과 서로에 대한 불신 증오 이런것들이 어떤 한 도화선을 만나면 예기치 않게 폭발하듯 일어난다는 것.
거기에 권력을 가진자들은 그렇지 못한 자들보다 오히려 더 비겁한 수를 쓰며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나선다는 것. - 이책에서처럼 그들은 자신의 죄를 힘없는 자에게 전가시켜 버리고 그것이 어려우면 심지어 납치라든지 하는 말도안되는 짓들조차 서슴없이 저지른다는 것.
그리고 전쟁의 종결이나 평화는 억압당한 자의 희생적인 저항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열심히 찾아내면 이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점도 많다.
평화를 얘기하기 위한 전쟁이야기인데 그 전쟁의 실질적인 시작은 이 책에서 보면 손수레 상인들이 시작하는 듯 보인다.
잘못보면 억압당하고 힘없고 그래서 생존권을 위협당하는 이들이 전쟁의 시작자라는 얘기가 되어버리는 것.
물론 이 책은 끝까지 손수레 상인들을 지지하고 옹호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서문을 그런식으로 즉 평화를 위해서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위해 이 책을 썼다고는 얘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저자의 서문대로라면 평화를 깨뜨리고 전쟁을 시작한 책임이 트럭의 횡포에 의해 생명마저 위협받는 손수레 상인들이 져야 한다는 얘기다. 아주 잘봐줘봤자 양비론이다.
오히려 저자의 서문은 진정한 평화는 자신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얘기되어졌어야 한다.
오늘날 누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나 이라크 침공과 한국 농민들의 반FTA싸움을 같은 전쟁이라고 하는가!

또 하나 전쟁의 본질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동화의 형식을 취했다고는 하지만 이 책속의 전쟁은 너무 희화화되었다.
전쟁이라기 보다는 무슨 모험담 같은 분위기다.
아무리 그래도 전쟁이 무슨 모험담 같이 또는 뭔가 웃기는 것으로 얘기되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오늘 날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을 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과 같이 이 책을 볼 수 있을까 싶어 열심히 읽었지만 역부족이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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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지의 표본
오가와 요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수첩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오가와 요코의 책은 세번째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과 <임신 캘린더> 그리고 그 다음이 이 책이다.
위에 말한 책이 분위기가 같은 사람이 썼을까 싶게 참 다른데 이 책은 어느쪽이냐 하면 <임신 캘린더>쪽에 가깝다.

뭔가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분위기.
그러면서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두편의 소설로 이루어져있다.
먼저 표제작이기도 한 <약지의 표본>
주인공 나는 21살의 여성이다.
사이다공장에서 일을 하다 기계에 치어 약지의 살점을 약간 떼이게 된다.
이후 새롭게 일자리를 얻은곳이 데시마루의 표본실이다.
이곳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갖가지 추억들을 표본으로 만들기 위해 찾아온다.
그 추억들은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 마음아프고 그렇다고 버릴수는 없는 그런 것들이다. 
그것을 표본으로 만들고 보관해주는 곳.
어쩌면 사람들의 외로움이 모두 모여있는 곳이라고 할까?
그래서일까?
이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무덤덤한듯 하지만 실제로는 고독의 섬에 모두 홀로 떠있다.
주인공 나 역시 어디에도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데시마루가 구두를 선물한다.
그녀의 발에 너무 꼭 맞아버린 그 구두는 그녀에게 최초의 소속감을 준다.
원하든 원치않든 아니 그런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르게 그녀는 그 소속감에 중독되어버린다.
그녀는 데시마루에게 소속되고 싶어하지만 그는 아닌듯하다.
그는 실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에 대해서는 어떤 구체적인 묘사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거기에 존재하는 것일뿐...
어쩌면 그는 인간의 외로움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일지도....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과 그 외로움이 만들어내는 소속에의 열망
이런 것들이 맘에 짠하게 와닿는 이야기다.

<육각형의 작은 방>역시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앞의 이야기보다는 조금 더 따뜻하다.
수영장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주인공은 미도리라고 하는 중년의 여성에게 끌린다.
아무 이유도 없다.
그녀가 의사인 남자친구와 아무 이유없이 헤어졌듯이.....
아니 아무 이유가 없는게 아니겠지
그녀는 외로웠던 거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녀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도 위로해줄수도 없었던 그녀의 외로움.
미도리씨를 따라가서 만나게 된 육각형의 작은 방은 결국 그녀의 내면의 목소리를 털어놓을 수 있는 마음속의 방이었을게다.

인간은 다른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과 고독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일까?
결국 자기 내면에게 묻는 것 외에는 치유방법이 없다는것일까?
두가지 이야기가 모두 그런 외로움들에 대한 얘기다.
뭐 거창하게 얘기한다면 존재의 고독 같은것?
하지만 그렇기에 자신과 같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찾는 인간의 속성.
소통에 대한 열망 이런 것들을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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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5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7-05-25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께/ 저의 작은 댓글에 과한 인사입니다. 늘 님의 글을 보면서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모르는데 님이야말로 저의 감사를 받으셔야지요. 사람의 행복이란게 그리 많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 어느정도는 맘먹기에 달린것도 같아요. 버릴 것을 버리고 가질 것을 가질줄아는데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누군가와의 비교가 아니라 항상 행복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님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신 분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답니다. 힘내세요.
 
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서경식씨 책으로 읽은게 이번이 4번째인가 싶다.
근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그저 한 작가가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잘 아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그의 글 자체보다도 그가 가진 태생적인 슬픔이 내내 나를 끌고 다녔다. 
연인에게 손을 내밀듯 그의 아픔을 다독거려주고 싶은 심정이라고나 할까? 

디아스포라라는 생소한 단어는 원래는 '이산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자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한다.

서경식씨는 이것을 좀 더 확대하여 근대의 노예무역, 식민지배, 지역분쟁 및 세계 전쟁, 시장경제 글로벌리즘 등 몇가지 외적인 이유에 의해, 대부분 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있던 공동체로부터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쓰고 있다.
결국 재일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서경식씨 자신이 바로 그 디아스포라인 셈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강제적으로 벗어난 그들은 무엇하나도 확정적인 것이 없다.
그 사회에 속해있는 다수자들에겐 확고하고 안정적인 것들이 대부분 그들에겐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불안의 원인들이 된다.
나처럼 한국땅에서 당연히 주어진 국적과 모어와 모국어의 일치를 당연시하고 한국내의 공동체에 뿌리내린 삶은 고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원래부터 그렇게 주어진 것일 뿐이다. 

그러면 서경식씨 같은 재일 조선인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들은 우리와 같은  공동체적 기반을 가진 사람으로 봐야할까? 
아니면 일본땅에 살고있는 그저 타자일 뿐인것일까?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일본 사회, 한국사회 어디에서도 소수자일뿐이며 두곳의 경계 어디쯤에서 늘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는 존재다.
숙명적 슬픔? 나같은 정착민은 근원적으로 이해할 수없는 그런 종류의 슬픔. 
그런 슬픔은 어떻게 안을수 있을까?
손잡음의 연대는 언제나 서로에 대한 동일시의 애정에서 시작된다.
너와 내가 같은 슬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그 연대감.
하지만 재일조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타자에 대한 경계 아니면 연민이다.
연민은 경계보다 낫긴 하지만 그것은 대등한 관계는 아니다.

그러면 정답은 있을까?
서경식씨가 이 책에서 명시적으로 그 정답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이 세계의 수많은 망명자들 - 마르크스, 프리모 레비, 한나 아렌트, 재일조선인 예술가인 문승근 - 을 찾고 소개하면서 그는 그들이 바라보던 세상에 대해 얘기한다.
타자의 눈을 통한 세계 읽기. 그것은 정녕 내부자의 시선과는 다르다. 
이미 가진자의 시선으로 보는것은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무의미하다.
근대적 국가와 민족의 시선으로 무언가를 보는것은 이미 그것이 억압과 배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그는 그의 글을 통해 낮은 톤으로 얘기한다.
그가 목소리 높여서 주장하지 않는것도 어쩌면 그의 태생적 슬픔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진실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전달될 수 있는 힘을 가진다고 믿는다.
그의 나직하고 담담한 말속에서 나는 내부로는 너무나도 강렬한 열망을 만난다.
국경과 민족의 경계를 초월하는 인류애적인 발상. 그것이 세계를 이 암흑의 구덩이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나와 타자의 구별이 아니라 인간임으로 우리는 같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가 존중받아야할 존엄한 존재라는 것 - 그것이 어쩌면 디아스포라적인 가치관이 아닐까?
멀어보이지만 그래도 진리는 나직이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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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2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읽어야 할 책이 또 하나 늘었네요. 감사 ^ ^.

바람돌이 2007-05-25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관심가져주시는데 제가 더 감사하지요. ^^

난데다로 2008-10-02 0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겨레 신문 디아스포라의 눈에서 서경식 교수가 쓴 글에 인용이 됐길래 찾아와 봤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14751.html

바람돌이 2008-10-02 23:32   좋아요 0 | URL
한겨레신문 기사를 보니 1년도 더 전의 글이네요. 전 못보고 지나갔는데 이렇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금은 부끄럽고 또 조금은 기분좋은 하루였습니다. ^^ 근데 이런건 어떻게 찾아내신대요? ^^
 
장건우한테 미안합니다 높새바람 15
이경화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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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참 묘한 일이다.
그 별것 아닌 듯한 행동에 "나는 너에게 관심이 있어"라는 명백한 메시지가 담겨있는걸 보면....
어른은 물론이고 아이들에게는 더욱더 각별하게 다가갈 행동이다.

초임교사시절 내게 이름불러주기는 가장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천성적으로 사람의 얼굴과 이름외우기에 젬병이었던 나는 한 반에 50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이름을 되도록 빨리 외워야 된다는건 고통스러운 임무였다고나 할까?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들의 얼굴이 어찌나 똑같이 보이던지...
그래도 항상 먼저 외우는 아이들이 있다.
일단 사고치고 말썽부리는 아이들.
그 다음에 특별히 공부를 잘하거나 반장이거나 하는 아이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외워지는 아이들은 착하고 얌전하고 성적도 적당히 중간이고 항상 묻혀있는듯 안보이는 아이들.

이 책은 이런 이름불러주기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누구의 이름을 먼저 불러줄것인가에 대해서 사람들은 모두 생각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속에 나오는 김진숙 선생님처럼 힘들고 어렵고 말썽 많은 아이들을 먼저 보듬어안고 그들의 이름을 더 많이 불러주고 해야 하는다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자기가 편한대로 공부잘하고 모범적인 아이들만 열심히 감싸고 부르는 좀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면 보면 김진숙 선생님은 아주 훌륭한 선생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런식의 규칙이나 규정이 또다른 역차별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듯하다.
아이들은 전체가 아니라 항상 하나 하나 소중한 개인이라는 것.
그들은 어느 하나 빠짐없이 관심과 애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
교사의 또는 어른의 잣대에 의해 쟤는 나 말고도 관심가지는 사람이 많으니까 내가 좀 신경을 덜쓰도 될거야라는 생각이 그 아이에겐 정말로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아이들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데는 어떤 규칙이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귀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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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05-23 0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도 좋은 선생님 같은걸요

마노아 2007-05-2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점을 반개만 줄 수도 있어요??? 처음 봐요.

홍수맘 2007-05-23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생각을 하는 선생님이 담임인 님의 반 아이들은 자신들이 복 받은 아이들이라는 걸 알까요?

바람돌이 2007-05-2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좋은 교사인지 아닌지는 아이들한테 물어봐야지요. ㅎㅎ
마노아님/고쳤어요. 이게 서재 2.0에서 작성했더니 별점주는 칸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올렸더니 세상에 이 좋은책에 반개라니....ㅠ.ㅠ 어쨌든 원래 서재에서 다시 고쳤어요.
홍수맘님/모든 아이들에게 맞는 교사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같은 사람이 맞는 아이들도 있지만 아닌 아이들도 언제나 있었거든요. 어찌보면 그게 정상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모든 아이들이 자신을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무리가 따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07-05-23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은 분명 좋은 선생님 같아요.^^

바람돌이 2007-05-24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나쁜 선생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좋은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 현대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에프라임 키숀 지음, 반성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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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을 보러 가서 당혹감을 느끼는건 뭐 누구나가 경험하는 일이다.
국제적인 비엔날레전같은 곳에서 뭐라도 예술적인 감각을 개발하고자 하나 도대체가 이걸 뭐라고 만들어놓은건지....
보고 뭘 느끼라는거냐?
그러면서 제목은 또 뭐이리 어렵냔말이다.
이런 경험은 현대미술전을 한 번이라도 본 보통사람들은 누구나가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런 전시를 앞에 뒀을때 사람들의 반응이야 천차만별이겠지만 나의 경우는 뭐 무시다.
흥! 이러고 돌아서는 것.
하지만 맘 한구석으로는 그런 감정도 없지 않다.
아! 숭고한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무지함이여 같은.....

이 책은 현대 미술전에서 이런 경험을 한번이라도 느껴본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죽었다 깨놔도 나는 잭슨플록의 물감뿌리기가 아름답다 내지는 뭔가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으며
마크 로스코의 그 사각형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도 않으며
요셉 보이스의 그 낙서들에서 한 번도 친밀감이나 감정의 떨림을 경험할 수 없었던 그런 나같은 사람 말이다.

이 책은 나같은 감상자들에게 괜히 주눅들것 없다고 얘기한다.
그것들은 모두 사기라고...
뭔가 있어보이는듯 만들어서 대중을 바보로 만들고 엄청난 돈을 챙겨가는 사기꾼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내가 속았던 거였군
비로소 나의 무지가 아님을 증명하는 저명한 원군을 얻고 안도하는 나!
뭐 이정도면 책의 내용은 충분히 전달되겠다.
하지만 속았다는데는 변함이 없네....

그런데 문제가 되는건 사기와 예술의 경계를 어디까지 둘건가의 문제이다.
저자가 사실적인 작풍만을 주장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추상화 전체를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현대예술가들 중에서도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같은 경우 그 의미를 인정하는 경우인데,
뭐 결국 사기냐 예술이냐의 경계는 결국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에 현대 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라고 부제를 달았는데
풍자라고 하기에는 아주 직설적이다.
제목만 풍자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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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3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법천자문 2007-05-13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읽어도 뭔 소린지 이해가 안되는 소리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철학자, 작가 나부랭이들도 전부 사기꾼들일 뿐입니다.

바람돌이 2007-05-14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66억님 - ㅎㅎㅎ 속지말자구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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