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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을 벼렀다.

꼭 보고싶은데 일년에 한 번밖에 개방을 안하는지라 초파일외에는 갈 수 없는 곳

바로 문경 봉암사다.

요 절은 부처님 말씀대로라면 연이 닿지 않은 건지 꼭 초파일에 집안행사가 생기거나 다른 조건이 다 되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거나....

그리도 안맞던 연이 올해는 드디어 맞아떨어졌나보다.

새벽 6시. 잠이 덜깨서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그냥 후려쳐서 집을 나섰다.

문경까지는 참 먼길. 3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하니 네비게이션에는 아직도 절은 7 km나 남았다는데 경찰들이 나와 교통정리중이다. 갓길에 차를 대란다. 헉~~~

다행인건 거기서 조금만 걸어가니 사람들이 셔틀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있다. 30분정도 기다려 셔틀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도, 내려서 걷는 길도 정말 사람 천지다.

이 외진 문경골짜기에 하는 말이 쏙 들어간다.

 

 

저 만큼 희양산이 나타난다.

순간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흰 봉우리를 안고 있는 희양산은 옛부터 '절이 들어서지 않으면 도적이 들끓을 자리'라 했다는데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바로 든다.

크지 않음에도 저런 장쾌한 기상을 내보이는 산 아래에 어떤 집이 기를 펴고 번성할 수 있을까?

산의 기세에 눌리기 십상이다.

 

 

 

아직 아스팔트 길이 이어지는데 길 오른편으로 너럭바위들과 너른 계곡이 나타난다.

이런 곳은 절대 그냥 못 지나치는 해아가 조르르 달려가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다.

나중에 보니 올챙이를 데리고 놀고 있다.

조심스럽게 올챙이를 가져오더니 자랑삼아 내밀고는 다시 조르르 달려가 물에 놔준다.

 

드디어 흙길이 나오고 일주문을 지나 본격적인 산사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유난히 솔향이 진하다.

절 초입이 공기가 좋고 풀내 나무내음이 좋은건 당연하다해도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갑자기 해아가

"엄마 공기에서 맛이 느껴져"란다.

"무슨 맛?"

"음.... 시원한 맛"

하하... 오늘의 표현이구나! ^^ 정말 공기가 달고 시원하다.

철쭉은 예쁘게 피었고 꽃내음보다 더 진한 솔내음을 맡으면서 해아는 엄마랑 공기타령을 하고,

예린이는 휴대폰 대신 얼마전에 얻어낸 갤럭시 플레이어 삼매경에 빠졌다가 혼나고...

예린이는 이제 커서인지 이런 산책보다는 갤럭시가 더 좋다.

 


 

 

이제 절이다.

절 바로 앞에 이렇게 돌다리를 놨는데  자연석 돌다리 위에 흙을 깔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길을 내어서 이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이런 예쁜 다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절쪽으로 가서 돌아봐야만 절묘하게 예쁜 이 모습이 그제서야 보인다.

걷는다는 것은 이렇게 돌아봄을 포함할 때 더 많은 것들을 주는게 맞나보다.

 

이 나이가 돼서 겨우 깨달은건 산다는건 일직선이 아니라는 것, 앞만보고 달리는게 아니라는것 하나다.

좀 주저앉아도, 남들보다 천천히 일어나도, 아니 아예 뒷걸음을 좀 친다해도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작용을 할지는 살아봐야 아는거라는 것.

그러니까 푸시킨이 그랬잖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고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

(앗! 푸시킨에 대해서 나에게 뭘 묻지는 마시라. 내가 아는 푸시킨 시는 이것 하나뿐이니....)

 

 

드디어 봉암사 경내로 들어서다.

그런데!!

아 저게 뭐냐?

봉암사 3층석탑이 수리중이다.

내가 왜 봉암사를 오고싶었냐고?
언젠가 봤던 다큐에서 봉암사 3층석탑을 보고 홀딱 반했었다.

아 저렇게 예쁜 탑이라니, 저걸 꼭 보고말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봉암사는 아직도 내게 완전한 인연을 허락하지 않은거였던 것이다.

 

에잇! 해아야 선크림이나 발라라....

가려진 3층석탑 앞에서 예린 해아 얼굴에 철퍼덕 철퍼덕 선크림을 발라주면서 슬픔을 달랜다. ^^;;

 

 

 

봉암사 대웅전.

새로 지은 건물인데다 대웅던 앞은 사람으로 가득차서 산사의 아늑함이나 고즈넉함과는 거리가 멀다.

봉암사의 역사는 저 산세 때문인지 정말 구구절절히 사연들이 많다.

신라말 선종이 이땅에 들어올때 지증대사에 의해 희양산문으로 개창되어 선종9산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곧 후삼국 시대가 되고 문경은 그 위치로 인해 견훤과 왕건의 격전장이 되고, 봉암사는 폐허가 되어 겨우 극락전 하나만 남기게 된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또다시 큰 불이 나 역시 극락전을 빼고 다 타버렸고, 1908년에도 대웅전에 불이 났던 것.

이런 큰 난리들을 겪으면서도 절이 완전히 버려지지 않았던 게 어쩌면 신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다른 건축이 들어서기 힘든 저 희양산의 기세 때문이지도 모르겠고....

 

 

 

원래는 희양산 바로 아래에 위치한 요 금색전이 절의 본당이었던듯 하다.

건물의 앉음새도 그러하고, 삼층석탑도 지금의 본당인 대웅전이 아니라 금색전에 위치한걸봐도 그러하다.

금색전 역시 새로 지은 건물이라 특별한 느낌은 없으나 하늘과 희양산과 어우러진 모습은 옛적의 모습을 짐작케한다.

 

금색전 옆으로는 절의 창건조인 지증대사의 부도와 부도탑비가 전각안에 자리해있다.

 

 

 

 

 

 

지붕돌이 좀 커서 약간 무거워보이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조각들이 대담하고 아름다워 지방 산사의 부도라고 무시하지 못한다. 창건당시에는 봉암사의 세가 만만찮았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해준다.

 

 

 

 

부도 옆에 있는 지증대사 부도비 역시 거북받침의 거북이 준수하고 대담한 조각 솜씨를 보인다.

또한 비석의 글씨 역시 단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비석의 글은 최치원의 4산비문 중의 하나인데 불행히도 나의 한자실력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고, 최치원의 유려하다는 문장을 못느낀다. ㅠ.ㅠ

 

신라 말의 작품인데도 희화화 되지 않고 진지한 거북이의 모습이 당당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봉암사 극락전

극락전이 앉은 돌기단은 창건당시의 것이니 1,000년을 이어온 것이다.

저런 정방형의 기단으로 보아 원래는 목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에 또다시 불에 타고 난 이후에 다시 단층의 건물로 태어났다.

그런데 참 놀라운 건물이다.

지붕과 건물의 비례를 보라. 정말 말도 안되는 비례지 않은가 말이다.

저 비례면 건물이 눌려도 한참을 눌려 짓눌리고 억눌린 느낌이 들어야 당연하다. 지붕은 2겹이기까지 한데 말이다.

그런데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건 무슨 조화일까?

 

두겹으로 지붕을 만들어 지붕의 화려함을 더하고 날렵한 선으로 한 곳에 모이는 사모지붕을 선택해 지붕의 무게 압박을 시각적으로 날려버린다.

또한 건물의 주변을 활주로 둘러싸고 가운데 자그맣게 본당을 들어앉혀 아래 공간이 좁은 공간임에도 좁은 느낌이 들지 않도록 배려한 것. 이런 것들이 모여 이 건물의 느낌을 완성하는게 아닐까?

건물이라기보다는 목탑을 재현한 것이 확실한데 보는 나에게는 이제 막 수줍게 봉오리를 내미는 연꽃 한송이를 보는 느낌을 준다.

 

며칠전에 읽은 책 <구본준의 마음을  픔은 집>에 보면 건물은 작은 건물이 가장 짓기 어렵다는 구절이 나온다.

큰 건물은 무엇이든 만들어넣고 배치할 수있으나 작은 집은 그 작은 공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집어넣고 아름다움도 갖춰야 하는 지라 더 어렵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다가 나는 바로 여기 극락전을 떠올렸었다.

 

하지만 봉암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극락전이 아니다.

극락전을 2위로 밀어낸 주인공은 바로 요기.

 

 

지증대사 부도비 옆의 공터에 누군가 갖다놓은 돌멩이들.

누가 조각한 것도 아니고 그저 맞춤한 작은 돌 몇개를 가져다 얹었을 뿐인데 영락없는 아기부처다.

어찌나 절묘한지 이 돌을 쌓은 이도, 그것을 버리지 않고 여기에 배치한 이도 최고의 예술적 감각이라 감탄하지 않을 수없다.

보는 순간 저절로 입끝이 올라가며 미소짓게 하는 저 마음이 부처의 마음일게다.

 

해아는 토끼풀을 열심히 뜯어 자그마한 꽃다발을 만들더니 나중에 극락전에서 절하고 불상앞에 공양으로 올린다.
내가 절밥 얻어먹는다고 한 지폐공양과 해아의 꽃공양 중 어느 것이 더 귀할까? ㅎㅎ

갤럭시플레이어에 잡아먹힌 예린양은 등장할 타이밍을 못 찾는구나.... ㅠ.ㅠ

 

점심을 절에서 내주는 비빔밥으로 얻어먹고 절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공기는 여전히 맛나다.

꽤 걸어서 도착한 백운대마애보살좌상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람 없는 장면은 도저히 찍을 수가 없었다.

뒷모습이 찍히신 저 분은 모르는 분.... 얼굴이 안보이니 여기에 등장해도 괜찮으실거야라고 자위하면서....

고려시대의 마애불이라는데 옷의 주름이나 아랫쪽의 조각을 보면 신라말 고려시대가 맞는데 얼굴은 좀 아닌듯...

지나치게 현대적이랄까?

뭔가가 딱히 맞지 않는 느낌인데 뭐라고 콕 집어 말하기가 참 애매하다.

 

마애불 앞으로는 넓은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고 시리도록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안 뛰어들수가 없다.

그러다가 철퍼덕 넘어진 해아

 해아는 지금 옷 말리는 중.....

 

에잇! 물고기들아 우리 발냄새나 맡아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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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3-06-05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아는 여전히 개구장이군요. ㅎㅎ 이렇게나 자랐다니! 예린인 숙녀가 다 됐어요. 반가워라~~~^^

바람돌이 2013-06-05 11:23   좋아요 0 | URL
많이 크긴 했어요. 근데 갈수록 말을 안들어먹어서.... ㅎㅎ

세실 2013-06-05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어머 예린, 해아가 이렇게나 컸군요^^ 숙녀가 다 되었네.
봉암사 일년에 한번만 개방을 해요? 이런.....대체 왜? ㅎㅎ
용궁사도 좋던데 이리 멀리까지 다녀가셨군요^^

바람돌이 2013-06-05 11:29   좋아요 0 | URL
1982년부터 조계종 종단에서 특별수행도량으로 지정했대요. 그야말로 스님들만의 공간이 된거죠.
이렇게 된데는 여러가지 과정의 일들이 있겠지만 저는 잘 모르고요.
조계종 정도의 규모 종교라면 이런 공간이 하나쯤은 필요하겠다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덕분에 이 곳의 자연환경이 다시 살아난다고 하네요.
실제로 가본결과 공기가 정말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순오기 2013-06-0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예린이와 해아, 정말 많이 컷네요~ 쑥쑥!!
바라만 봐도 흐뭇하겠어요~~ @@

절은 조망하는 즐거움에 찾아가는 곳~ 바닷가의 용궁사는 그래서 좋았어요.^^
부산 가기 전에 바람돌이님 만날까 생각했는데 한창 수업중일 듯해서...
전에 핸드폰 고장으로 저장된 번호도 사라졌고요.ㅜ

바람돌이 2013-06-05 11:31   좋아요 0 | URL
핸드폰 고장은 저랑 같네요. 무려 2년전에 쓰던 핸폰이 액정이 고장나는 바람에 있던 전화번호를 몽땅 날렸어요. ㅠ.ㅠ

용궁사는 풍경이 좋은 절이죠?
다음에 부산오시면 저녁에라도 잠시 얼굴볼수 있게 해주세요. ^^

꿈꾸는섬 2013-06-05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해아와 예린이 정말 많이 컸네요.ㅎㅎ 하긴 우리 애들도 그새 엄청 자랐어요.
문경 봉암사가 초파일에만 개방을 하는군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가기에 셔틀버스가 운행되는 건지, 신기해요.

바람돌이 2013-06-05 23:29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크는걸 보면 내 나이 먹는게 느껴진다죠. ^^
다들 참 어떻게 아는지 정말 사람이 많더라구요. 근데 셔틀버스가 수도 작고 운행체계도 잘 잡혀있지 않아 정말 엄청 기다리고 우여곡절도 많았어요. 올때는 거의 2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구요. ㅠ.ㅠ

마노아 2013-06-06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락없는 아기 부처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할 만해요. 예술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이 있네요.
해아는 여전히 지구 아이로 잘 크고 있군요. 해아답고 예뻐요. 예린이는 숙녀 분위기가 물씬 나네요.
꼬꼬마들이 이렇게 자랐다니 세월이 머쓱해요.^^

바람돌이 2013-06-07 11:04   좋아요 0 | URL
아기부처는 저렇게 쌓은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죠? 예술을 뛰어넘는 아름다움 맞아요. 음 좋은 표현, 적어놔야지... ^^
예린이는 예측이 가능한데 해아는 예측불가인게 여전합니다. 외계인이 되는건 아닌지.... ^^

무스탕 2013-06-06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들이 이렇게 크도록 안 보여주시다니욧-! 바람돌이님은 새삼 반성하셔야해욧-! ㅎㅎ
오랜만에 예린이랑 해아 보니까 참 조타~~ :D

바람돌이 2013-06-07 11:05   좋아요 0 | URL
아 무스탕님!! 반성은 하고 있어요. ㅎㅎ
애들이 근데 옛날처럼 예쁜 맛은 사라지고 있어요. ^^

책읽는나무 2013-06-08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울집 아이는 안컸다고 하던데 말이죠?!^^
저렇게 숙녀로 다 키워놓으시곤....ㅡ.ㅡ;;

님 생각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좀 그리웠다고나 할까요?
한 달음에 달려왔지만 좀 늦었죠?
암튼..그동안 무탈하게 더 건강하게 귀환하시어 반갑습니다.^^

바람돌이 2013-06-10 08:46   좋아요 0 | URL
제 눈에는 민이랑 둥이들 큰 것만 보이더라구요. ^^
반가워요. 나무님...^^

2013-06-08 0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내 한복판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거대한 무덤들이 있어 경주는 고도의 모습을 완성한다.
21세기에 일상과 맞닿아 있는 곳에서 죽은 자들의 사이를 거니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무덤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낭산자락의 선덕여왕릉이다.
요즘은 드라마때문에 다소 북적이게 됐지만 원래는 정말 고즈넉한 곳이다.
특별한 것 하나 없이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곳이지만 말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그래서 잠시 안겨 잠들고 싶은 그런 곳... 

이번에는 좀 다르게 가기로 했다.
좋아한다고 통일 이전의 무덤들만 자꾸 찾게 되어서인지 통일이후의 무덤들 중에서 안 가본곳이 많았던 것.
전날 일요일에 만나 인라인 타자는 친구네까지 꼬드겨서 경주로 향했다. 

1. 태종무열왕릉과 서악동 고분군 
어쩌다보니 태종무열왕릉의 사진이 없다. 이런..... ㅠ.ㅠ
커다란 봉분에 아래편으로 호석(무덤의 봉분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고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봉분 아래쪽에 세운 돌)을 두른 형식으로 통일 이전 신라의 양식을 보여주는 마지막 무덤일게다.
아마도 태종무열왕릉의 사진을 찍지 않은건 두가지때문이었던듯.
하나는 태종무열왕릉보다 바로 뒤편의 서악동고분군, 그리고 또 하나는 태종무열왕릉비
사실 이 두 가지가 무열왕릉보다 훨씬 좋았다. 


바로 요기, 서악동 고분군의 무덤들
조그만 동산들의 능선인듯 멋진 곡선을 연이어 그리는 모습이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태종무열왕릉보다 언덕 위쪽에 있으니 아마도 선대왕들의 무덤일게다.(일반적으로 후대의 무덤을 더 위쪽에 만들지 않는다.)
사람 하나 없는 곳을 우리끼리 완전히 독점!
어른들은 고즈넉하게 산책을 즐기고 싶으나 아이들이야 어디 그럴까? ^^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눈치 안보고 무덤위로 뽈뽈뽈 기어 올라 미끄럼 타기....
음 안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왠지 여기는 그래도 될 것 같은 분위기랄까? ^^;; 

그리고 태종무열왕릉의 귀부와 이수.
비석은 사라지고 머릿돌과 받침돌만 남은 것 




천 삼백년이 넘는 조각이 어쩌면 이렇게 생동적일까?
거북이 힘차게 땅을 박차고 나아가는 순간의 역동성을 그대로 살린 조각 - 당당히 머리를 치켜올린 모습과 콧김과 입김까지 새겨넣은 조각들, 그리고 몸체의 당초문, 구름무늬들...
머릿돌인 이수는 좌우 세 마리식 여섯마리의 용으로 구성되었다. 뒤쪽을 보면 여의주를 받치고 있는 조각이 좀 더 선명하다.
왜 일찍 보러 오지 않았을까 후회하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집 녀석들은 뭘하고 있을까? 


설마 거북이랑 용을 보고 저리 즐거워하는건 아니겠지? 
사람들이 거북의 머리와 몸체에 동전을 던져둔걸 보고 지들도 열심히 동전을 던지고 있는 중. 

2. 김유신묘

통일 이전의 무덤은 거대하나 특별한 장식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통일기때부터 본격화된 중국 당과의 교류는 무덤 양식에서도 변화를 가져온다.
받침돌을 쌓고 봉분을 둘러싼 호석을 두르고 호석에 십이지신상을 새기는 무덤 양식의 등장이다..
여느 왕릉못지않게 호화롭고 커다란 무덤인데 아무리 김유신이 삼국통일의 주역이라 하더라도 이런 대접을 받은 것에는 한편으로는 의문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당시 왕이었던 문무왕이 김유신의 조카이고 따라서 문무왕으로서는 진골왕으로서 아직 강성한 다른 진골귀족들을 누르기 위해서는 외가쪽으로의 신성화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김유신을 사후 흥무대왕으로 추존하기도 했을테고....
유교가 본격화되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일게다. 

 


김유신묘의 십이지신상들.
보통 무덤에 새겨지는 십이지신상들은 갑옷을 입고 있는데, 이곳의 십이지신은 평복에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됐다. - 훨씬 온화한 느낌
경주에 오면서 아이들에게 십이간지를 외우면 아이스크림 사준다 했더니 신이 나서 외운다.
자축인묘.... 그리고 쥐, 소, 호랑이 연결까지... ^^(하여튼 엄마는 공짜가 없다.. ㅎㅎ) 


엄마의 꼼수에 넘어가 실컷 외우고 아이스크림을 획득한 녀석들..... ㅎㅎ 


생각보다 빨리 외우고 노는 중...
아이들은 작은 언덕이라도 있으면 왜 가만있지 못할까?
여기서도 한참을 놀았던듯.... 

3. 신문왕릉
문무왕 다음의 왕이 신문왕이다. 


잘 정비된 묘역에 누군가가 꽃다발을 얹어놨다.
꽃다발 말고는 역시 우리뿐... 여기서 싸간 도시락으로 간단히 일단 요기.
신문왕의 무덤에서 든 의문 한가지.
신문왕이라면 김유신보다 후대의 왕이고 따라서 이 무덤도 더 뒤에 만들어진 것일터.
그런데 호석의 양식이 통일이전의 모습이다.
물론 통일이전보다 다듬은 돌로 석축을 쌓은건 더 발전한 형태이지만 김유신묘와 비교하면 십이지신상도 없고.....
더구나 신문왕이 권력이 약한 왕이었다면 또 그러려니 하겠지만 신문왕은 그야말로 왕권강화에 목숨을 걸었던 왕이다.
즉위년부터 장인 김흠돌의 난을 빌미로 수많은 귀족들을 숙청하고 전제왕권의 토대를 쌓은이다. 그리고 또한 만파식적의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한 - 이런 이야기로 왕권의 신성화를 도모한 이가 바로 신문왕이다.
그런데 왜 무덤은 김유신묘보다 더 소박해진걸까?(아 사실 소박이란 말은 좀 그렇지만....) 

4. 원성왕릉(괘릉) 



통일신라시대 가장 완벽한 무덤양식을 보여주는 원성왕릉이다.
넓은 묘역에 뒷편으로 소나무 숲이 안온하다.
봉분을 쌓고 둘레돌을 쌓고 그리고 호석에는 역시 십이지신상, 그리고 난간까지 완벽하게 갖추었다  



김유신묘와 달리 갑옷을 입은 십이지전사들! ^^
며칠전에 영화 전우치를 보니 요물들이 십이지의 모습을 하고 나오던데 이런곳에서 모티브를 땄지 싶은데,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들이 인간세상을 괴롭히는 괴물들로 나왔으니 신분하락이랄까?

그런데 사실 원성왕릉을 보는 재미는 무덤 자체보다는 무덤 앞 각종 조각상들 덕분에 이루어진다. 




유명한 무인석!
신라 사람이 아닌 아랍계열이 분명해 보이는 얼굴.
그저 이때 당시 신라가 아랍과도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로 교과서는 얘기하지만, 역사를 잠시 벗어나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면 온갖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조각이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이 조각상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왜 이 아랍인이 이 무덤을 지키게 되었을까에 대한 글쓰기를 꼭 시킨다. 정설은 없으니 소설을 쓰라는거다.
온갖 전쟁에 연애에 천재지변에 하여튼 아이들의 상상력이 빛나 보이게 만들어준다.
유물이 과거에 멈추지 않고 오늘 상상력의 보고가 될 수 도 있음을 절감하게 한달까? 



문인상 - 근데 오늘 보니 얼굴이 왜 장비같냐? 분명히 무인이 아니고 문인인데.....^^ 


아 그리고 놀러온 우리를 천역덕스럽게 바라보는 요놈의 사자. 표정은 완전 고양이... ^^
네 마리의 사자가 무덤을 지키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바라보는 방향이 모두 다르다.
동서남북 네 방향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다.
몸통은 모두 중앙을 향했는데 얼굴만 살짝 돌려 네 방향을 향해있는 생각이 신선하다. 

이쯤되면 무덤 보기에 지친 우리집 녀석들과 친구집 녀석들 뭘하고 있을까? 


예린이가 뭘하고 있지?
예린이 지금 골키퍼다. 바로 축구! 저 사자 조각상이 골문이니 엄청 크다. ㅎㅎ
아이들 넷이 한편 먹고 상대팀은 아빠 혼자. (그래도 아빠가 이겼다. 무정한 옆지기같으니라구...하여튼 이런거 할때보면 아이들한테도 절대 봐주는게 없다. 승부욕은 남자들의 지병이다. 웃겨서 내 참...) 


아 나중엔 골키퍼가 바뀌었구나...
공은 바람빠진 탱탱볼이라 혹시 맞더라도 유물이 손상가는건 아니니 걱정마시고.... ^^;;  

5. 헌안왕릉 


신라가 망조가 들 시기의 왕릉.
오른쪽이 헌안왕릉이고 왼쪽은 조선시대 이 지방 출신 벼슬아치의 무덤이다.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시강원 벼슬이 마지막이었던듯한데, 그리 높지 않은 벼슬에 비해 그 무덤의 위세로는 왕릉을 능가하고 있었다. ㅎㅎ 
왕조의 쇠락이 이렇게 무덤 하나로 극명하게 대비되다니.....  

아! 그리고 이 무덤 근처에서 본 황당한 탑 하나 



경주 서악리 3층석탑!
처음에 살짝 지나가는데 이 탑을 보고는 어느 무식한 인간이 저따위로 탑을 복원해놨을까 흥분했었다.
근데 가서 안내판을 보고 더 경악한건 이게 복원이 아니라 원형이라는 것.
기단석은 전혀 성의없이 저 큰돌을 그냥 2단으로 무작스럽게 쌓아올렸고,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서 너무 무겁고 하여튼 균형이든 뭐든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만든 당대에 아마도 이게 탑이야? 라는 비난을 들어을듯한 모습
그런데 다시 놀랍게도 지방문화재도 안될듯한 저 탑이 무려 보물 65호 되신단다.
기단석의 양식이 모전석탑 계열이라 신라 모전석탑의 연대를 추정하는 지표석이 된다는게 보물 지정의 이유. 역시 국보나 보물의 지정은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연구적 가치도 포함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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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10-01-09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수학여행 갔을 때 왕릉 올라가보고 싶었는데 소심해서 못 해봤어요 ㅠ_ㅠ

바람돌이 2010-01-11 01:02   좋아요 0 | URL
수학여행때는 저도 소심한 학생들이 좋아요. 너무나도 대담해서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엄청나게 큰 불상 기어올랐던 애들도 있었어요. 스님한테 얼마나 욕을 먹었던지.... ㅎㅎ 전 욕먹는것보다 쪽팔려 죽는줄 알았고요. ^^;;

글샘 2010-01-09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저 통일 신라라는 게... 김부식처럼 신라계인 문인이 삼국사기를 적지 않았다면, 과연 통일로 비쳐졌을까요? 한일합방과 강제합병 사이를 저 말 쓸때마다 느낍니다.
그리고 남자들의 '경쟁 심리'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여학생들 데리고 소풍가서 재밌게 노는 건 불가능한데, 남학생들 데리고 가면 모래 사장에 공 하나 던져주면 끝이죠. ㅋ 목숨걸고 놀더군요.
저는 이번 주말쯤 날씨 풀리면 남산 부처님 만나러 한번 갈까 합니다.
지난 주말엔 안동 이천동 부처님이랑 부용대 멋진 경치랑 보고 와서 아직도 마음이 설레거든요. 안동 군자마을이랑 만대루 있는 병풍서원(ㅋㅋ)도 돌아보고 왔습니다. 혹시 가시거들랑 찜닭은 안동 중앙시장 내 첫집, '위생찜닭'이 원조랍니다. ^^

바람돌이 2010-01-11 01:16   좋아요 0 | URL
글쎄요. 묘청과 같은 고구려지역의 사람들이 썼다면 좀 다른 시각을 가졌을수도 있겠죠. 하지만 얼마나 달라졌을지는 의문입니다. 이 시기정도 되면 삼국분립의식보다는 삼한일통의식이 더 지배적이 되어가던 시기니까요.
그리고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데요. 뭐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더 나았을것이다라는 식의....전 요즘들어서는 신라의 삼국통일이나 그 과정에서 김춘추라는 인물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소평가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좀 더 적극적인 평가가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뭐 그렇고 안동찜닭집 이름은 정말 안가고싶네요. 위생찜닭이라니... 무슨 보건소도 아니고... 그래도 이름이 중요한건 아니죠. 다음에 안동쪽으로 가면 여기 기억해두고 갈게요. 절대 안 잊어버릴 것 같은 이름이네요. ^^

조선인 2010-01-09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삼국유사 읽고 있는 중인데, 54대 경명왕 때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추존하며 왕릉이 되었으니 31대 신문왕보다 훨씬 후대양식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나저나 요새 마음이 심란합니다. 애당초 제가 사단이 된 건 아닌가 싶고. 지금이라도 다시 바지가랑이 붙잡고 늘어져야 하나 싶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바람돌이 2010-01-11 01:21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그 때 무덤이 증축되었을 가능성이 크군요. 그렇게 이해하면 저 양식의 시기가 이해가 가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그리고 조선인님이 사단이라니요.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걱정을...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건 알라딘인걸요. 나가신 분들도 결국 알라딘측의 이후 행동을 여전히 지켜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고요. 더 이상 여기서 사람들의 의견을 더 모으고 하는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냥 일단 지켜볼뿐이죠.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뿐이고요.

무스탕 2010-01-09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넓은 골대 지키느라 예린이 고생했습니다 ^^
바람돌이님 다니신 이야기 적어주신거 보면 참 쉽게 잘 읽히는데 배우는 학생들은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울 동네로 오셔서 울 애들 가르칠 의향 없으세요? ㅎㅎㅎ

바람돌이 2010-01-11 01:22   좋아요 0 | URL
골대는 번갈아가면서 지켰습니다. ㅎㅎ
저희 학교 학생들은 별로 그런 생각 안하던데요. 여전히 수업하면 싫어하고 놀면 좋아하고.... ㅎㅎ

BRINY 2010-01-0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린이 나이 또래 학생들은 12지신 전사 만화를 모르는군요. 고등학생들은 그 만화 주제가 덕분에 12지신 줄줄 외워요. 12지신 얘기 나오면 그 노래 한번 불러야 끝을 보는데 ㅎㅎ 근데 올해 입학하는 아이들은 모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드네요.

바람돌이 2010-01-11 01:22   좋아요 0 | URL
12지신 전사 만화는 저도 모르는데요. 제가 모르는건 그렇다치고 그러면 울 동네 애들은 왜 모르는거여요?

미설 2010-01-09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린이랑 해아 부럽습니다. 언제나 역사샘이 붙어서 모르는 사이에 여러가지 알려주시니 나중에 역사공부할때는 엄마를 정말 고마워해야할 거옝요. 저는 생각해보면 어려서 책은 많이 읽었느데 이런 쪽으로는 영 접해보질 않았어서 국사가 너무 어려웠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래서 울애들은 좀 신경써주어야지 하는 중인데 제가 잘 모르니 뭐..

바람돌이 2010-01-11 01:25   좋아요 0 | URL
우리 어릴때 여행이니 뭐 이런거 체험해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먹고 살기에도 벅찼던 시대였는걸요. ^^
전 이런데 여행갈때도 아이들한테 뭐 이것저것 안 가르켜요. 가르쳐줘봤자 금방 잊어먹을테고 지나치게 가르치려 들다가 아이들이 여행이나 이런곳을 보는 것 자체를 싫어하게 될까봐요. 저 12지신 외우라고 한건 순전히 가는 자동차 안에서 저를 귀찮게 하지 않게 하려는 수법이었다죠. ㅎㅎ 그저 아이들이 즐겁게 놀면서 좋은것들을 좋게 생각할수 있으면 좋겠어요.

순오기 2010-01-09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 글보고 심란했는데, 바람돌이님 역사기행에 마음이 좀 안정되었어요.
김유신묘의 십이지신상은 아이들 그림책 '열두 띠 이야기'에 소개가 되었어요.

바람돌이 2010-01-11 01:28   좋아요 0 | URL
열두띠 이야기는 그러고보니 안보여줬네요. 음 이 책 보여주면 아이들이 좋아하겠군요. ^^ 항상 아이들 책은 순오기님덕분에 좋은 책을 많이 알게되네요.

Mephistopheles 2010-01-09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라시대 능은 여타 다른 능들과 달리 주변과 조화로와서 정겹게 다가옵니다. 권력자의 능이라는게 대게 권위적이며 엄숙해야 하는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왠지 신라의 능들은 정겨워요. 사람이 죽은 후 만들어진 축조물인데도 말이죠..^^

바람돌이 2010-01-11 01:30   좋아요 0 | URL
삶과 죽음의 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같이 존재하는 것의 묘함? 뭐 그런것이겠죠. 한쪽으로 가게들이 늘어서있고 자동차들이 빵빵거리는데도 그 속에 들어찬 고분들은 또 그들대로의 질서와 고요함을 가지고 있는 곳. 하여튼 그래서 저도 경주를 좋아합니다. ^^

전호인 2010-01-10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는 좋은 학습체험이 되었겠군요.
옆지기가 역사체험학습을 하다보니 늘 애정을 갖고 볼 수 밖에 없는 곳들입니다

바람돌이 2010-01-11 01:31   좋아요 0 | URL
학습체험보다는 놀이죠. 무덤에서 미끄럼탄것만 기억하니까요. ㅎㅎ
전호인님 옆지기님도 저랑 같은 직업인가봐요. ^^

꿈꾸는섬 2010-01-12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바람돌이님 기행문은 정말 재밌어요. 무덤만 봐도 볼게 참 많네요. 현안왕릉은 가본 적이 없었는데 사진만 봐도 망조가 확실히 든게 보여요.

바람돌이 2010-01-13 01:07   좋아요 0 | URL
조선시대 무덤이야 워낙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동선이 길어지니 이렇게 한꺼번에 보기가 힘들죠. 경주니까 가능한거죠 뭐... ^^
 

무지막지하게 추운 날
이런 저런 일들로 미뤄져오기만 했던 경주박물관 <관음과 정병>특별전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늦게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날이라 서둘러 집을 나왔다.
오늘은 브루마블 게임하면서 놀고싶다는 애들을 갔다와서 하자라는 말과 휴게소 우동으로 꼬드겼다. ㅎㅎ  

가는 길에 대화
엄마 뭐 보러가?
관음보살님 보러가. 그 분은 소원을 들어주시는 부처님이야. 너희들 소녀시대 노래 소원을 들어봐 좋아하잖아. 가서 소원 한 번 빌어보지?
엄마 그럼 휴대폰 사달라는 소원도 들어줘?
..........(윽!!! 이건 아니야)
얘들아 소원은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거라야한단다라고 얼버무림.... ^^;;



정병은 깨끗할 정(淨)자를 쓴다.
말 그대로 깨끗한 물을 담는 그릇이다.
물을 담는 그릇이야 많지만 저렇게 물을 넣는 주입구와 물이 나오는 주둥이가 따로 있는 주전자와 비슷하나 훨씬 날씬한 모양의 저런 병을 정병이라 한다.
원래 인도에서 승려가 마실 물을 담던 일상용기였다.
그런데 <청관음경>이란 경전에 관음보살이 버드나무 가지와 맑은 물로 병을 고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정병은 관음보살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정병에 버드나무를 그려넣는 것도 일반화되었다. 


국보인 물가무늬 정병
버드나무와 오리, 기러기 그리고 각종 물가풍경을 그려넣은 정병.
그림은 흔히 보는 청동에 은입사인데 뚜껑과 주둥이, 그리고 아래부분은 은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흔히 보던 정병들과 제작 방법이 좀 달라보이던데 알수가 없었다. 


주둥이의 뚜껑부분의 은세공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이런 청동정병은 푸른 색 녹으로 인해 더 아름다워보이는데 가끔은 만들어졌을 당시는 어땠을까 참 궁금하다.
청동의 색깔은 원래 붉은 빛을 띠는 황금색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보다는 오랜세월동안 녹슨 이 푸른색이 더 예쁠듯.... ^^
근데 저기 의자에 서 뒹굴고 있는 두 녀석은 뭘하고 있는 걸까? ^^ 


요즘 박물관에 가면 나름 진지하게 보면서 자기 생각도 곧잘 적어내는 예린.
노는것만큼은 아니지만 요즘은 조금씩 이런 저런 문화재에도 관심을 가져준다.
책 보다가 엄마 나 이거 보러가고싶어라는 말을 던져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하는... ^^
요즘은 장래희망에 여행가가 추가되었다.
그에 반해 전혀 아무 관심없는 해아 


어디서든 장난이다.
지금도 아래에 숨었다 나타났다 게임중.... ^^ 


통일신라때의 관음보살상
작은 보살상인데도 관음보살이 계신 보타락가산을 그대로 받침으로 앉은 모습을 형상화한 상상력의 크기가 놀랍다. 


조선시대 수종사 아미타 삼존불
가운데가 아미타부처이고 오른쪽 정병을 들고 계신분이 관음보살
왼쪽은 아마도 지혜의 보살인 대세지보살인듯....
근데 이 삼존불을 보는 순간 딱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유행했던 못난이 인형 삼형제... 
조금 못생기긴 했지만 그만큼은 아닌데 앉은 자세나 크기 등이 바로 연상작용을 일으킨듯... 


백제 관음보살
백제불상은 항상 저렇게 긴 허리가 눈길을 끈다.
얼핏 불균형으로 보일수도 있는데 묘하게 눈길을 끌며 감동을 준다.
다시 예전 일본 나라박물관에서 봤던 백제관음상의 감동이 떠올랐다.
사진으로는 절대 느껴지지 않는 백제 관음상의 감동이라니.... 


예전 통도사에 잠시 나들이를 해줬던 수월관음도의 영인본이 걸려있었다.(원본은 일본에..)
영인본이라 해도 그 감동이 덜하지 않다. 

해아가 선재동자가 귀엽다길래 해아도 선재동자처럼 흉내내면서 소원을 빌어보랬더니 


잠시 요랬다가 곧 .... 에휴~~

 

날이 조금만 덜 추웠다면 바로 옆의 안압지에라도 가서 뛰어놀까 했더니 어찌나 추운지....
고고관에 잠시 들렀다 집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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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2-07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주박물관에 가보고 싶네요.^^ 정말 갑자기 추워졌죠. 그래도 추워야 겨울같고 좋아요.^^

바람돌이 2009-12-07 14:06   좋아요 0 | URL
전 따뜻한 남쪽 나라에 사는지라 몸이 월동준비를 잘 못해요. ㅎㅎ
귀 시리면 큰일 나는 줄 알아요. 여긴 귀가 시릴 정도로 추운 날이 얼마 안되거든요. ^^

마노아 2009-12-07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더 재미난 시간을 가지셨어요. 해아도 머지 않아 예린이만큼 진지해질까요? ^^

바람돌이 2009-12-07 14:07   좋아요 0 | URL
뭐 진지하다고 해도 잠시예요. 어제는 너무 너무 심심했다더군요. ㅎㅎ
아마도 해아는 글쎄요. 워낙에 가만히 있는 걸 못견디는 녀석이라 어떨지... ^^ 아마 예린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관심을 가지겠죠. ^^

무스탕 2009-12-07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병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

바람돌이 2009-12-07 14:08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 ^^;;
늘 이런 얘기들만 즐겁게 올릴 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

2009-12-10 0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9-12-11 11:15   좋아요 0 | URL
이게 도난당했었다구요? 이런... 몰랐네요. 어떻게 돌아오게 됐는지도 궁금 궁금.... ^^
 


경주들판은 온통 황금물결이다.
벼가 익은 이 아름다움을 당할 수 있는게 어디에 있을까? 




선각마애 육존불 바위 위에서 아이들은 마냥 신난다.
이만한 놀이터가 없다는 듯이... 



남산은 가을도 이렇게 고운 빛깔로 찾아든다. 


오늘 우리가 어디까지 갔냐하면.... ㅎㅎ 



사천왕사터에서 없어진 거북 대신 장난감 거북을 올려놓고 머리라고 우기기!! 


그러고는 금방 관심이 없어진 녀석들은 네잎클로버찾기 작전에 나섰다. 


네잎클로버는 하나도 못찾고 세잎만 잔뜩 뜯어서는 이런 포즈라니.... ㅎㅎ 

그래도 오늘 힘들다 불평 한 번 안하고 온 산을 놀이터로 만들어버린 녀석들.
대견하긴 한데 좀 많이 시끄러웠다.
조금 부끄러웠어 얘들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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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10-26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카메라 렌즈 좀 닦으셔야겠어요~~ ㅋㅋ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지만, 세잎클로버는 '행복'의 상징이랍니다.
가끔 행운이 오기를 바라는 것보다, 저렇게 그냥 행복한 아이들이 얼마나 이쁜지요. ^^

바람돌이 2009-10-26 22:10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요 사진 올리면서 깨달았어요. 렌즈에 우리 애들 지문이 잔뜩 묻어있다는걸.... ㅎㅎ
세잎클로버의 상징이 행복인건 처음 알았네요. 맞아요. 행운보다는 저렇게 그냥 행복한게 최고죠. ㅎㅎ

BRINY 2009-10-2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아이티를 벗어가는군요...

바람돌이 2009-10-26 22:11   좋아요 0 | URL
그래서 조금 섭섭합니다. ^^;;
저것들이 좀 더 크면 뺀질뺀질거리며 반항할거 생각하면 아 크는 것도 싫어져요. ㅎㅎ

2009-10-26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6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울보 2009-10-26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렌즈 탓일까요,아니면 안개가 저렇게 자욱히 끼어서 일까요,저만 그렇게 느낀것이 아니군요,,ㅎㅎ
아이들은 역시 쑥쑥 자라네요,
멋져요,
와 나도 가보고 싶어요 경주,

바람돌이 2009-10-26 22:13   좋아요 0 | URL
렌즈에 애들 지문 묻었습니다. 그것도 한 백개쯤... ㅎㅎ
윗쪽분들은 경주 오기가 쉽지않죠. 저희들이 서울 구경하기 힘든것처럼.... ㅎㅎ

꿈꾸는섬 2009-10-27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주는 언제나 좋아요.^^ 또 가고 싶어요.

바람돌이 2009-10-27 01:26   좋아요 0 | URL
제가 여지 남쪽 끝이 살아서 정말 좋다싶을때가 아무 때나 마음내키면 경주에 갈 수 있을때예요. 아무리 가도 좋은 곳 경주예요. ^^

순오기 2009-10-27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렇게 멋진 페이퍼에 추천이 하나도 없다니욧~ 추천 꾹!^^

바람돌이 2009-10-27 22: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추천도 칭찬도... ^^
 

한때 경주 남산은 계절마다 찾는 곳이었으나 한동안 아이들이 어려서라는 이유로 한구석에 밀쳐두게되었다.
모처럼 지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남산등산길에 나섰다.
한 3년만쯤 되나? 하여튼 너무 오랫만에 남산등산을 나서니 처음인듯 맘이 설레기까지 한다.
아 근데 남산은 때깔 단장을 많이도 했다. 좋은 점도 나쁜점도 있지만 딱히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대목이 더 많은건 내 맘속의 남산때문인건까? 

곳곳에 나무 계단을 만들고 돌길을 새로놓고 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남산이 굳이 이런게 필요할만큼 험한산도 아니고 자연 그대로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흙길을 걷는 맛이 남달랐는데 말이다.

삼릉골 초입에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목없는 석불좌상,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가사의 매듭이나 풍채의 균형을 보면 정말로 전성기 신라의 멋진 부처상이었을듯....
안타깝게도 머리가 없다. 그 머리는 지금도 삼릉골 어디쯤에 묻혀있을까?
이 부처상도 삼릉골에 뒹구는걸 새로 이 자리에 모셨으니 언젠가는 머리도 돌아오지 않을까?
유교지상주의 조선시대에 저렇게 망가진게 아닐까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굳이 종교를 따지지 않고 멋진 예술품으로 봐도 될 불상을 저렇게 참혹하게 만들어버리는 마음은 어떤 학문적 성취도 어려웠을 것이다. 학문이든 종교든 궁극에서는 결국 통한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왜긴 무식해서 그렇지.. 쯧쯧...
또 다른 가능성은 갈곳을 잃은 부처가 여기저기 내동댕이 쳐있다가 결국 가장 약한 목부분이 자연스럽게 부러졌을 가능성이다. 내 생각엔 이쪽이 더 신빙성이 있어보이는데 글쎄 아마 영원히 알수는 없겠지... 

여기서 살짝 비켜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보이는 관음보살상은 아이들때문에 살짝 패스.. 

넓디 넓은 바위벽면에 그림을 그리듯 여섯분의 부처를 모신 선각마애6존불상에 도착했다. 



앞뒤로 약간 비껴서있는 벽면에 6분의 부처를 마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모셨다.
딱히 그림만으로 따진다면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이런 구도 자체가 흔하지 않을뿐 아니라 이렇게 바위에 선각으로 자유롭게 선을 그어댄 그 발상과 마음이 경이롭다.
굳이 경건하지 않아도 될듯한, 그래서 오히려 이 앞에 서면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가벼워지는 곳이다.   


아이들 마음도 그런가보다.
보자 마자 벽앞에 가서 한 녀석이 포즈를 흉내낸다.
덩달아 두 녀석이 가길래 따라해보랬더니 결국 어정쩡한 포즈라니.... ㅠ.ㅠ 


길을 따라가지 않고 바위암벽위로 올라서면 불상쪽으로 바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큼직하게 바위면을 가로질러 배수로를 파놓은 곳이 보인다.
때로 이런 마음이 사람을 움직이는 부처의 마음일게다. 만드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곳에 기도하러올 사람들을 위해 온전히 부처상을 보존하고자하는 배려!
진짜 부처의 마음은 아래쪽 부처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작은 배수로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위암벽위로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고려불상 하나를 만나게 된다. 


높은 바위위에 앉아 구름위에 둥실 뜬듯 올라앉았으나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누구나가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이 분.
아 어쩌면 이렇게 못생긴 부처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남산에 오다보면 진지한 설명들에 지친 아이들 마음을 확 풀어줘버리는 순간이다.
고려시대 지방 불상들이 전반적으로 인물이 떨어지긴 하나 이 분은 그 중에서도 압권이다.
(아 그래도 사진으로 보니까 오히려 좀 낫네.... ^^)
아이들도 깔깔깔 웃더니 더 신이나서 온 산을 다람쥐처럼 쏘다닌다.
어른들은 전망이 좋은 이곳에서 다리쉼을.... 


위쪽 전망대에 가도 보이지만 이곳에서도 경주 형산강과 배리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주가 분지지형인지라 약간만 올라가도 전체가 이렇게 한눈에 조망되는건 부산에서는 도통 볼수없는 풍경인지라 늘 새롭다. 

아래 마을은 배리- 절하는 마을이다.
옛날 신라적에 어떤 이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위해 스님을 청했단다.
그런데 그 스님이 너무나 옷차림새가 누추하여 무례하게 물리쳤더니 그 스님이 옷소매에서 사자를 꺼내 타고 가버렸단다. 바로 그분이 문수보살이었던 것.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아들은 이미 가버리고 없는 문수보살을 향해 끊임없이 절을 했다나 어쨌다나... 하여튼 그래서 절하는 마을 배리가 동네이름이 돼버렸다.
아이들한테 이 얘기를 해주려고 옆지기가 운을 뗐는데 아이녀석들은 어느새 몽땅 달아나버리고 없다. 온 산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 지들 비밀 기지를 만든다나?
자칭 비싼강사인 옆지기가 이 때 하는 말은 "그래 내가 니들을 델꼬 뭔 얘기를 하냐. 치아라 치아"다. ㅎㅎ 아이들 앞에서는 싼티로 전락하는 순간? ㅎㅎ 

어른들끼리는 아래를 바라보며 여기 저기가 어디고 하다가 저쪽 산너머가 선덕여왕 지기 삼사 중 하나인 여근곡이다라는 얘기에 결국 또 드라마 선덕여왕 얘기로...
여근곡까지 백제 군사가 쳐들어올수 있었던 것이 합천 대야성을 내줬기 때문에 청도, 건천까지 확 뚫려버린 것.  그런데 대야성을 내준데는 김춘추의 사위인 품석의 공이 100%라고 할까?
품석이 부하의 아내를 탐하는 바람에 열받은 부하가 백제의 침략을 받아 성문을 열어줘버린다. 그랬으면 품석은 싸우다 죽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바로 항복해버리니 대권을 노렸을 김춘추로서는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 거리다 품석의 아내인 김춘추의 딸까지 이 때 죽었으니 말이다.
사실상 이건 엄청난 정치적 오점인데 그럼에도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건 역시 김유신의 힘이다. 화백회의에서 모두가 알천을 다음 왕으로 추대할때 오직 김유신만이 당연히 김춘추를 밀었었다. 알천이 나이 많음을 이유로 고사하는 바람에 대안이 없어진 화백회의 귀족들이 결국 김춘추에 얼떨결에 손을 들게 된것인데 앞으로 드라마에선 이 부분까지 갈까? 글쎄??? ㅎㅎ 

다리쉼을 충분히 하고 일어서 다시 길을 가면 삼릉골 석불좌상이 나오게 된다.
아니 근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전혀 못보던 새로운 부처님이 앉아계신거다.
아니 그러니까 



이렇게 생겼던 부처님이 


요렇게 변해있는거다.
처음엔 새로 부처상이 하나 더 발견된건가 했으나 위치가 딱 맞으니 한참을 씩씩거리며 논란을 하다가 결국 같은 부처를 보수공사했다는데 결론을 내렸다.
부서진 곳을 콘크리트로 정말 무작스럽게 보수를 했던 그래서 무슨 마당쇠분위기를 한껏 풍기던 삼릉골 석불좌상이 1년반만의 보수공사로 이렇게 변했단다.
정말 끝내주는 변화다. 

근데 아쉬운 면도 없지 않다. 일단 첫번째로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 답사를 오면 이 부처 앞에서 와르르 깔깔깔 아이들이 넘어간다. 뭐 이렇게 생겼어요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이들에 부처가 왜 이모양이 되었는지를 설명해주고 살짝 코 아래부분을 가리고 나머지 부분을 상상해보라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코 아랫부분을 가리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부처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
난 그 순간에 터지는 아이들의 탄성을 늘 사랑했었는데..... 이젠 그런 상상의 즐거움은 영원히 없어져 버렸구나 싶으니 왠지 섭섭해진달까.... 


그리고 이 변화가 원형을 제대로 살린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보수공사의 모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비슷한 모습을 찾으라면 용장골마애불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아 이건 우리 옆지기가 생각해내고 난 그냥 동의한 것. 이런것 찾아내고 생각해내는 능력을 보면 가끔 자칭 비싼 강사라는 말을 인정해주고싶어진다니까... ㅎㅎ) 


용장사지 삼층석탑 앞에서 만날 수 있는 마애불이다. 삼릉골 석불좌상과는 시대도 대략 8세기로 비슷하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하다.
하지만 이 부처에 비해서도 새로 보수를 한 부처를 보면 


다른 부분보다도 입술아래 턱 하관이 지나치게 좁은 것.
이게 보수공사의 한계였는지는 알 수 없는데 이렇게 하관이 좁은건 조선시대 불상들이 흔히 가지는 특징인지라 시대 고증이 달라져버리게 되는 문제가 있다싶은데...
하여튼 이 복원은 아쉬움이 반이다. 

이제 가파른 길을 좀 힘들게 꾸역꾸역 올라간다.
겨우 상선암에 도착해 빈병의 물을 채우고 상선암 마애불로 




남산에서 가장 잘생긴 부처님이라는 상선암 마애불.
얼마전 선덕여왕에서 문노가 계시를 받는 장면에 잠시 출연하여 내 맘을 다시 설레게 했던 부처님.
근데 오랫만에 본 이 부처님의 모습이 예전같지 않은건 왜일까?
정말 전과 다르게 뭔가 고생에 절은듯한 안타까움을 배어내게 만드는 표정이라니....
그동안 비바람에 의한 손상에 의한 것인지 약간 흐린 오늘 날씨 때문인지...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됐을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이제 정상!
전망대쪽에 가서 도시락을 게눈 감추듯 까먹고 이후 일정을 잠시 논의.
일단 종주는 아픈 아이도 있으니 무리겠고 삼불사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산다람쥐다. 심지어 아픈 녀석조차도.... ^^ 

한참을 내려 삼불사에 도착 


여전히 귀엽고도 온화한 표정의 세분 부처가 사람들을 맞는다.
근데 전에는 이 전각의 뒤쪽과 옆면이 완전히 막혀있었는데 그걸 모두 틔워버렸다.
아! 이건 진짜 잘한 일.
이 부처님들의 표정이 제대로 살아나려면 이렇게 빛이 사방에서 들어와줘야 한다.
물론 전각 자체가 없는게 제일 좋겠지만 그건 정말 보존상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을것이고....
신라 중기 전쟁으로 고통받았을 민중들을 위로하는 부처님은 정말로 이런 모습이었을거야라며 살기에 팍팍해진 내 맘도 언제나 여기서 위로를 받는다.
오늘은 근데 답사팀이 이미 진을 잔뜩 친지라 잠깐 둘러보고 올 수밖에 없었다. 

남산 등반이 쉽지는 않았으나 뭐 그렇다고 딱히 못견딜 정도는 아닌지라 나와 옆지기가 정말 좋아하는 이 맘때의 사천왕사터를 들렀다 가기로 했다.
사천왕사터 위쪽의 선덕여왕릉까지 묶어서....
그래서 가긴 갔는데...
사천왕사터는 지금 딱 이맘때쯤이면 망초꽃이 흐드러지면서 온 천지가 꽃밭으로 화해 넘실대는 곳이다. 그리고 호젓한 것이 맘이 딱 풀리는 선덕여왕릉까지를 기대하고 갔는데 이럴수가!! 

사천왕사터 발굴작업 들어갔다.
그건 좋은데 근데 내가 좋아하던 망초꽃 흐드러지던 작은 언덕이 싹 갈아엎어져버린거다.
거기다 주변 정비를 싹 해서 주차장까지...
예전에는 차 댈곳도 없던 이 곳에 차들이 장난아니게 들어섰다.
이 차들이 사천왕사터 보러 왔을리는 없고 모두 선덕여왕릉을 보러 온 것일테고...(역시 드라마의 힘은 세다!!)
근데 선덕여왕릉은 이렇게 우글 우글 가서는 절대로 그 정취를 느낄 수 없는 곳이라는 문제겠지.
선덕여왕릉에 다녀올 마음이 싹 사라져버렸다. 

잠시 아이들과 사천왕사터 목잘린 거북이(귀부)앞에서 아쉬움을 달래기만.... 


거북이 목을 대신한 해아! 

아 근데 하늘을 보니 


선덕여왕릉 위로 구름 봉황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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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0-26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은 환상의 커플이에요. 그 축복을 아이들이 좀 더 자라야 깨닫겠어요.^^

bookJourney 2009-10-26 08:27   좋아요 0 | URL
환상의 커플이라는 마노아님 말씀에 공감 200%~ 부러움 300%입니다. ^^

Kitty 2009-10-26 13:28   좋아요 0 | URL
환상의 커플 저도 한 표!
직장 다니시면서 주말마다 이렇게...정말 부지런하세요. 존경합니다 ㅠ_ㅠ

바람돌이 2009-10-26 22:15   좋아요 0 | URL
놀러갈때만 환상의 커플은 맞는것 같군요. 근데 이게 집구석에 있을 때는 정반대가 된다는게 문제죠. 최악의 뒹굴이커플이랄까? ㅠ.ㅠ그래서 할수없이 주말이면 집에 안있으려고 하는거에요. ㅎㅎ

BRINY 2009-10-2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처님도 성형수술을 한 건가요?

바람돌이 2009-10-26 22:16   좋아요 0 | URL
성형수술 맞네요. 상처입은곳을 다시 수술했는데 원래 모습하고 좀 달라진게 문제겠죠. ㅎㅎ

꿈꾸는섬 2009-10-27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도 아이들 크면 남산에 꼭 가려구요. 현수가 얼른 크기만을 기다려요.^^
근데 불상이 바뀐 건 정말 별로에요. 저희 동네 근처에 홍유릉이 있는데 거기도 석상이 모두 새것으로 바뀌어 그 분위기가 정말 이상했었거든요. 남산에 오르는 재미가 줄어든 아쉬움이 있네요.

바람돌이 2009-10-27 01:28   좋아요 0 | URL
현수가 6살쯤? 남산은 아이들이 오르기에 만만한 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곳곳에 저런 불상들을 보고 지나는 재미가 있어서 심심하지 않게 오를 수 있어요. 그리고 불상도 모르죠. 지금은 새돌과 옛돌이 확 구분이 돼서 조금 이상해보이지만 점점 비바람 맞고 하다보면 어울려갈지요.

park22y 2009-11-19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연히 다녀가지만, 정말 의미가 담긴 한마디 한마디가 참 깊은 생각을 합니다.
저는 경주출신인데, 그냥 좋아하는 남산이엇는데, 님은 정말 사랑하고 알고 다니시네요
많이 배우고 감사드립니다. 박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