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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풍속화와의 비교_김홍도와 샤라쿠
둘다 남성적이지만, 자연주의와 감각주의로 대별

2006년 04월 25일   정병모 경주대 이메일 보내기

조선후기에 풍속화가 유행한 것은 조선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중국의 니엔화(年畵),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와 오츠에(大津繪), 베트남의 테트(Tet)화 등 17~19세기?동아시아를 휩쓴 추세였다. 나라마다 약간 차이가 나지만, 풍속화 혹은 민화와 같은 민간 회화가 성행했다. 비슷한 시기 동아시아에 민간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민간의 문화가 발달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청명상하도 ©

중국은 이미 북송 때 수도인 카이펑(開封)의 도시풍속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그린 ‘淸明上河圖’라는 명품을 낳은 전통을 갖고 있다. 명나라 때 구영(仇英, 1494~1552?)이 다시 그린 ‘청명상하도’는 조선에 전래되어 조영석의 풍속화와 정조 때 제작된 ‘城市全圖’에 영향을 주었다. 명대에는 소설의 삽화를 중심으로 풍속화가 발달했다. 그런데 정작 청나라 들어서면서 국가의 기반을 바로 잡는다는 명목으로 퇴폐적인 소설을 탄압하는 바람에 풍속화 제작이 주춤해지고 대신 우리의 민화에 해당하는 니엔화가 유행하게 됐다. 


동아시아 국가 중 풍속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17세기 후반 에도(江戶)를 중심으로 전개된 서민회화인 우키요에가 꽃을 피웠다. 사창가인 遊里의 遊女를 그린 미인와 가부키의 인기 있는 배우를 선전하는 브로마이드 사진과 같은 야쿠샤에(役者繪)가 에도시대(1603~1867)에 인기를 끈 풍속화의 주제다.


도슈사이 샤라쿠(東州齋寫樂, 18세기말 활동)는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호평을 받을 만큼 우키요에를 대표하는 화가다. 한 때 어떤 소설가에 의해 김홍도가 일본에 가서 샤라쿠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는 주장이 화제가 됐으나, 생애와 화풍으로 보아 그가 김홍도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지만 에도시대 최고의 미인상을 그린 우키요에 화가 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 1753~1806)가 신윤복에 해당한다면, 샤라쿠는 김홍도에 비견할 수 있다. 우타마로의 작품이 신윤복처럼 여성적이라면, 샤라쿠의 작품은 김홍도처럼 남성적인 면모가 강하기 때문이다.

▲'오타니 오니지가 분한 하복 에도헤이' ©
샤라쿠는 강렬한 필선으로 매우 독특하고 미묘한 성격의 캐릭터를 즐겨 나타내었다. 그의 대표작인 ‘오타니 오니지가 분한 하복 에도헤이’는 금품을 빼앗으려는 악한을 그리고 있다. 음흉한 눈빛과 꾹 다문 입에서 결코 선한 배역이 아니고 목을 앞으로 쭉 내밀고 양손을 활짝 펴고 달려드는 자세에서 긴박한 순간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치카와 에비조가 분장한 다케무라 사다노신’는 가부키 배우의 내면적인 성격을 강하게 표출한 작품이다. 이마에서 미간으로 쏠린 눈썹, 은행잎 모양의 눈에서 발산되는 눈빛, 그리고 굳게 담은 입의 모습에서 강인한 인상을 받는다.


김홍도가 등장인물의 ‘관계’를 극화시켰다면, 샤라쿠는 등장인물의 ‘개성’을 표출하는데 주력했다. 전자가 질박하고 자연스러운 조형을 창출했다면, 후자는 세련되고 정제된 작품세계를 보여줬다. 조선의 사회적이고 자연주의적 미의식과 일본의 개인적이고 감각주의적 미의식이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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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딸기 > 비너스와의 인터뷰

`살아있는 비너스'.


영국의 구족(口足) 화가 겸 사진작가 앨리슨 래퍼(41)는 스스로를 `현대의 비너스'라 부른다. 래퍼의 사진 작품이나 영국 런던 시내 중심가에 세워졌다는 그의 동상을 본 이들은 모두 래퍼를 `밀로의 비너스'에 비유하는 데에 동의할 것 같다. 래퍼는 팔이 없고 다리도 일부분 밖에 남지 않은 장애인이다. 날 때부터 치명적일 수 있었던 장애를 안고 태어난 그는 그러나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예술가가 되어 있다.

장애인의 달인 4월을 맞아 래퍼가 한국에 온다. `혼혈 스타' 하인스 워드의 방한이 한국인들에게 혼혈 문제를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면, 팔다리 없는 예술가 래퍼의 방문은 장애인들의 현실을 돌아보고 장애인-비장애인의 장벽을 허물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8일 경기 파주 영어마을에서 열릴 `영 챌린저 포럼' 강연을 위해 방한할 예정인 래퍼는 11일 딸기와의 단독 이메일 인터뷰에서 "고구려 벽화에서 현대미술까지 한국 예술에 매력을 느낀다"며 "다이내믹 코리아의 젊은이들과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 2005년11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휠체어를 타고 월드어워드 시상식장에 들어서는 래퍼.

(사진: 월드어워드 홈페이지)

[다음은 래퍼와의 인터뷰 내용]


한국을 방문하게 된 소감은.

"아시아 국가를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아시아가 문화적, 경제적으로  극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 가능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싶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낯선 곳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이번 한국 방문도 흥미진진한 모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애를 딛고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일궈내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장애인에 대한 전반적 편견 때문에 내 작품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다.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아무 일도 잘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은 세상에서 중요한 어떤 목소리를 가졌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예술가로서 나는 점점 유명세를 얻어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예술계 언저리에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 현실이 힘들게 느껴지곤 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작품들을 봤다. 주로 당신의 몸을 이용해 작업을 했는데, 사진 촬영은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나. 작업에서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는 부분이 있는지.

"내 스튜디오에서 사진작가와 함께 일을 한다. 사진작가는 내가 내 생각과 비전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진작가가 나를 모델로 찍도록 하는 작업이 아닐 때에는 특수 제작된 컴퓨터로 혼자 일한다."


혼자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나는 항상 아들을 내 집에서, 다른 엄마들과 똑같이 키워야 한다고 다짐하곤 한다. 하지만 어려움도 많다. 내 주변에는 날 도와주는 의료진을 비롯해 전문가들이 있지만 사람들은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지방정부는 내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지 관찰하고 보호한다. 내가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하면 언제라도 아이는 정부 보육시설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점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길까 항상 두렵지만, 한 아이의 엄마가 되려는 내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결혼에서 남편의 폭력 때문에 이혼을 했다고 들었다. 가정폭력을 막기 위한 국제앰네스티 전시회에도 출품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정 폭력이 장애인이고 여성인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결혼 생활 동안 항상 육체적으로 폭력에 시달렸고, 너무나 공포에 질리고 두려웠다. 어느 사회에서나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폭력이 존재하지만 가정폭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균형 잡히고 조화로운 사회를 가꾸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임신한 당신을 묘사한 조각상이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까지 세워졌는데, 당신이 살고 있는 영국 사회에서 당신의 존재가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런던의 조각상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장벽이 많이 깨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 조각상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말한다. 아마 실제 조각상을 보기 전에는 장애인을 묘사한 그 조각이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조각상의 모습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그 조각상이 여성과 같은 소수자의 사회적 수용과 평등을 상징하는 21세기의 한 아이콘이 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세상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자랑스럽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한국 젊은이들을 상대로 연설할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나는 한국의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매우 진취적이고 다이내믹 코리아를 창조해가는 주인공들이라고 알고 있다. 이들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격려가 되고 싶다. 나처럼 극한상황에 처한 사람도 무엇인가를 열심히 갈구하고 최선의 노력으로 나름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따지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한군데 이상의 장애를 갖고 있다.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사람은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로서 약간씩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육체적인 장애인은 물론이고, 정신적·지적·현실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좌절감을 느끼는 한국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나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 영 챌린저 포럼에서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을 고취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전시회를 한다고 들었는데, 전시하게 될 작품들도 소개해 달라.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이래 내 예술세계는 내 몸을 탐험하고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무언가를 발견해내는 것에 집중돼 있었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방식을 알아보고 싶었고, 타인의 시선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과 편견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것이 힘든 과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심각하게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는 (장애인의) 신체들을 밝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작업이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스스로의 느낌과 기분을 생각해볼 기회를 주고 싶고, 좀더 편하고 평화롭게 장애인을 바라볼 수 있게 됐으면 한다. 나는 잘 웃는다. 유머감각이 내게 주어진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내 작품도 그런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다. 관객들도 함께 즐길 수 있길 바란다.

한국과 한국 예술의 매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현대미술가 김범과 최정화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한국 예술에서는 오랜 전통과 현대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국 이외의 국가에서 본격적인 작품전을 여는 것은 처음인데 한국에서 그 기회를 갖게 돼 매우 흥분된다."


작년 11월 `월드어워드 여성 성취상' 수상을 통해 한국에서도 당신을 아는 이들이 늘었다. 한국 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은 큰 영광이다. 동서양 문화와 역사의 상호교류는 지난 세기의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였다. 나 자신이 지금도 진행 중인 그런 상호교류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내 미술 작업과 나의 일상생활에도 한국 방문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으로 믿는다. 아직 한국에 가지는 안지만 벌써부터 나를 환영하는 한국인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나를 초청해준 경기 영어마을에 감사를 드린다."


래퍼의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사진작품 몇 점








■ 래퍼는 누구인가

앨리슨 래퍼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고 스스로의 나신(裸身)을 찍는 화가 겸 사진작가다.

래퍼는 1965년 팔·다리가 없거나 일부분 밖에 없는 단지증(短枝症)을 안고 태어났다. 바다표범처럼 사지가 짧다고 해서 해표지증(Phocomelia)이라고도 불리는 이 질병은 임신부가 수면제 등 약물에 중독됐을 때 태아에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천적 신체 결함을 가진 래퍼는 생후 6주 만에 거리에 버려졌고, 보호시설에서 자라났다.

22살 때 결혼한 래퍼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아홉 달 만에 남편과 헤어졌다. 이후 장애인 구호기관의 지원을 받아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해덜리 미술학교와 브라이튼 대학에서 어릴 적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미술공부를 하고 예술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들은 자신의 벗은 몸을 모노톤 화면에 사진으로 담은 것들로, 신체적 이상을 적극적으로 예술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영국 언론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특히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조각 같은 영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는 점, 장애인의 몸도 비장애인의 몸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2000년 런던에서 열린 밀레니엄 전시회에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전시되기도 했다. 영국 가디언지 등은 "신체 결함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화시켰다"고 래퍼의 작품세계를 평가했다.

래퍼는 2년 전 임신해 아들 패리스를 낳았으며, 현재 서섹스에 거주하면서 아들을 키우고 있다. 당시 의료진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며 만류했지만 그는 출산을 고집했다. 작년 9월 조각가 마크 퀸이 만삭의 래퍼를 모델로 삼아 만든 `임신한 앨리슨 래퍼'라는 5m 높이의 조각 작품이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설치됐다. 이 작품으로 래퍼는 `모델'로도 유명해졌다.

젊은 나이에 장애와 폭력, 이혼, 출산이라는 과정을 겪은 래퍼는 자서전 `내 손 안의 인생(My Life in My Hands)'과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장애인 문제를 부각시켰고, 가정폭력을 막기 위한 캠페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지난해 11월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대통령 등이 설립한 월드어워드 여성성취상을 받아 세계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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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水巖 > 파울 클레 展 - 눈으로 마음으로

 

파울 클레 展 : 눈으로 마음으로

전시일정 : 2006년 4월 7일(금) - 7월 2일(일)
전시장소 : 소마미술관(SOMA)


음악의 감각적 리듬과 무한한 환상의 세계를 표현한 
                                                     20세기 서양 미술의 거장

환상적이고, 재치 있으면서, 때로는 괴기스럽기도 한 이미지의 세계를 보여준 파울 클레(1879-1940)는 현대 미술가 중에서도 가장 지적이고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준 작가이다. 스위스 베른 근처에 있는 뮌헨부흐제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화가였으며, 1920년대에는 독일의 조형미술학교인 바우하우스에서 교수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폭넓은 독서를 하였고, 철학, 식물학, 생물학, 인류학 등 학문 전반에 대해 광범위한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풍부한 이미지의 원천은 자연이었다. 그는 바다나 산, 들을 찾았고 조개껍질, 식물, 꽃, 나무 등을 관찰했다. 또 캔버스뿐 아니라 삼베, 천, 거즈, 나무판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으며, 유화, 템페라, 수채, 과슈, 동판, 드로잉 등 다양한 기법들을 실험했다.

클레의 작품은 완전히 추상적이지도, 완전히 형상적이지도 않다. 그의 작품은 고도로 숙련된 드로잉 기법을 보여주는 한편, 색채의 상호 관계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들은 대개 소품들로, 기본적으로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단순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심원한 지성으로 파악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자신이 보고, 읽고, 들었던 것을 바탕으로 그때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원초적인 상징과 형태를 창조해냈다. 그의 미술은 시, 음악, 그리고 꿈에 가까우며, 한눈에 들어오는 미술이 아니라 보고 생각하게 하는 미술이다. 마치 하나하나가 작은 보석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무려 9,100여 점에 달하는 클레의 작품들은 몇 마디로 요약하기 어려우리만큼 다양하고 다면적인 미술세계를 이룬다.


파울 클레 : 눈으로 마음으로

주최 : 소마미술관, 동아일보사, (주)로렌스 제프리스
후원 : 국민체육진흥공단, 주한 스위스대사관
협찬 : (주)KT 협력 : 파울 클레 미술관


< 관람 시간>
* 일,화,수요일 10:00 - 18:00
* 목,금,토요일 10:00 - 21:00
* 매주 월요일은 미술관 정기 휴관일입니다(야외 조각공원은 개방)

< 관람료>
* 성 인(19-64세) : 개인 10,000원 / 단체 8,000원
* 청소년(13-18세) : 개인 8,000원 / 단체 6,000원
* 어린이(4-12세) : 개인 6,000원 / 단체 4,000원

* 무료 : 장애우, 소년소녀가장, 4세 미만, 65세 이상
* 20명 이상부터 단체 요금 적용 / 군인은 청소년 요금 적용

< 단체관람 예약 관련 >
미술관안내 > 관람안내 > 관람예약 코너에서 인터넷으로 접수하시면 담당자가 친절하게 답변하여 드립니다.





파울 클레_연기하고 있는 아이들_판지 위 종이에 펜, 붓과 연필_6.6×16.5cm_1913_1908



파울 클레_색채 띠에 연결된 추상적 색채의 원들_판지 위 종이에 수채_37×52×3.5cm_1914



파울 클레_그리고 아, 나를 더욱 쓰라리게 하는 것은 당신이 내가 가슴속으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겁니다_판지 위 종이에 펜과 수채_7×24cm_1916



파울 클레_병사_판지 위 면에 칼라 페이스트_46.8×34.9×4.1cm_1938



파울 클레(Paul Klee)는 음악가, 화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지적이면서도 다양한 주제와 기법을 보여준 화가입니다. 그는 고도로 숙련된 선과 세련된 색채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미술세계를 이루어냈습니다. "파울 클레: 눈으로 마음으로"는 화가 자신이 ‘미술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듯이 그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과 세계를 마술적이고 환상적인 상징과 형태, 그리고 섬세한 드로잉으로 재현하고 있음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특히 이 전시는 단독으로 클레 작품을 공개하는 국내 최초의 전시로서 무한한 작가의 상상력을 미술에 관심을 가진 모든 분들에게 전달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파울 클레_줄타기 곡예사_석판화_44×27.9cm_1923



파울 클레_동물들의 만남_나무판 위 판지에 칼라 페이스트와 유채_66.4×77.6×6.1cm_1938



파울 클레_눈_삼베에 파스텔_45×64.5cm_1938



파울 클레_무제(균형과 보트)_애벌칠 한 삼베에 칼라 페이스트와 유채_47.1×50.1×4cm_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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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푸하 > 평화 글 쓰기

평화글쓰기(6학년)

폭력
   초 6 정세훈

나는
5학년때 폭력을
좋아하기도 했고
싫어하기도 했다.

폭력은
알을 낳고
또 낳는다.
그렇지만 폭력을 써서
이기면
친구들이 괴롭히지
않는다.

지면
친구들이 왜지냐고
뭐라고 하고
놀리고
장난을 심하게치고
욕하고
때린다.

나는 이기고 싶다.
하지만
폭력을 싫어한다.
그리고 폭력을
휘둘러보지 않았다.

나는
쭉 싸우지 않고
울거나 참았다.

5학년때는
내가 먼저
싸움을
걸었다.

나는 힘도 없고
싸우지도 않아봐서
내가
졌다.

친구들이
모두 “절교하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모두
나를 욕하고
때리고
심부름을
시켰다.

나는 할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나는 그 때일을
다시는 떠올리기 싫다.
상상도
하기 싫다.

왜냐면
친구들이
모두 나를 친구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영환이라는 친구는
나랑 친해지려고
노력 했다.

영환이에게
“너 싸움잘하지?”라고
물어봤다.
영환이가
“나는 이제 싸움
안할 거야“라고 말해서
좋았다.

그래서
나는 가끔
영환이와 얘기도 하고
축구도 해서
좋았다.

나는 나쁜 기억이
있었지만
나는 친구가
다시 생겨서
좋았다.

지금은 내가
5학년때
왜 그랬는지
왜 싸웠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힘이 세고
강해지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거다.

내게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2004년 9월 15일 수요일 날씨 흐림)



전쟁은 왜 하나요?
        초 6 문주희
전쟁은 왜 하나요?
우리는 즐겁고
이라크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해야 하나요?
하루 사이에 잊어버리고....
전쟁은 하루 사이에
끝나는 게 아니예요.
몇 년 몇 달동안
사람들이 많이 죽어가는데......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죽이고, 죽고, 죽어가고
이렇게 사람들이
죽어가요.
약도 주사도
구하기 힘든데.

밥을 남기면 남기지 말라고
누군가 말해 줬어요.
그 거 살 돈이면
다른 사람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우리도 같은 처지라면
다른 누군가
우리를 도와줄 거예요.
전쟁이 끝나고 없어지는 날엔
우리가 한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2004년 9월 15일 수요일)


  
생각
       초 6 윤진주
한 아이가
아주 약한 아이가
아주 아주 센 아이에게
맞고 있다.

아주 약한 아이가
억울하게
아주 억울하게
맞고 있다.

어떤 아이들이 달려왔다.
아주아주 센 아이가
어떤 아이들에게

아주 약한 아이를
같이 때리자고 한다.

아이들이 그냥 집에 갔다.

그러나 한 아이가
가지 않았다.

한 아이의 마음속에
악마가 나타났다.
악마는 커지고 커져
한 아이에게
아주 약한 아이를
때리라고 그런다.

한 아이는 어쩔수 없이
아주 약한 아이를
때린다.

그런데 그뒤에
아주 뒤에
작고 작은 새가 속삭인다.

그러나 악마가 커져
아주아주 커져
한 아이는 어느새
악마가 되었다.
그래서 악마는 듣지 못한다.

그 작고 작은새의
속삭임을
듣지 못한다.

새가 운다.
새 뒤에는
작은 새들이 가득히 있다.
그 작은 새들도
속삭이고 있다.

악마는 다시
작고 더 작아져
사라진다.

새들이 다시 속삭인다.
하지 말라고.
아이는 멈춘다.

그리곤
아주 약한 아이에게
사과를 한다.
아주아주 센 아이도
손을 멈춘다.

이제는 아무도 울지 않는다
이제는 아무도 아프지 않는다.
(2004년 9월 15일 수요일 날씨 흐림)



평화가 좋아요.
        초 6 홍연정
전쟁은 욕심 때문에 오는 거다.
그게 아니라도 그렇게 믿고 싶다.
전쟁은 서로가 갖고 싶어하는 마음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그렇게 슬픈 전쟁이 찾아오는 거다.

그래서 전쟁이란 단어가 싫다.

평화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오는 거다.
평화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게 평화로워 진다.

힘겹고 슬픈 전쟁따윈
없기 때문에 그렇다.

모든 나라가 욕심이 많아도
평화는 언제나 이긴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처럼
가난하고 힘없어도
힘이 센 나라들은 힘만 셀 뿐
마음으로는 우리가
이길 거라고 믿는다.
(2004년 9월 15일 수요일 날씨 흐림)




        초 6 전유성
오늘 말.듣 책을 가지러 학교에 갔다.
공부방에 오는데 조금씩 비가 왔다.
공부방 오니 엄청나게 내렸다.
책을 읽고 신문을 같이 봤다.
이라크가 아직까지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아테네 올림픽만 나오느라
전쟁이야기는 안나왔다.
그리고 신문에서 미국 사람들이 이라크 사람에 집을
몽둥이로 부수고 때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옆집에선 파티를 하며
논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도 ‘아테네’를 즐기고 있으니
같다고 했다.
이제라도 조금씩 이라크 사람들을 생각해야지라고 생각하니
비가 그쳐 있었다.
비가 올땐 우울하다.
그리고 이라크 사람들도 아직도 우울할 것이다.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
밝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이라크 사람들을 보고 싶다.
(2004년 9월 15일 수요일 날씨 흐림)

 

 

 기차길 옆 작은 학교에서 http://gichagil.saramd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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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0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덕분에 좋은 사이트 알았네요

바람돌이 2006-04-03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의 서재에서 저도 퍼온글이예요. ^^
 
 전출처 : 진/우맘 > 헥헥헥...바람돌이님, 지붕이요!



헌데 어째.....제눈엔 그리 쏙 들어오진 않네요.^^;;
아쉬운대로 쓰고 계세요. 차후 개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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