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랴에서의 3번째 날.
사실 이 날쯤은 하루를 온통 해변과 카페에서 뒹굴거리는데 써주는게 좋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곳은 안탈랴! 지중해 최고의 휴양지 아닌가 말이다.
유럽애들은 여기 와서 한달씩 뒹굴거리다 간다는데.....
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의 극대화라는 그놈의 빌어먹을 자본주의적 사고습관에 찌들대로 찌든 나는
"또 내가 언제 여길 오겠어, 돈 들여서 이렇게 왔으니 볼 수 있는 건 최대한 봐야지" 뭐 이런 생각이 도저히 판단의 중심에서 떠나질 않는거다.
아 어쨋든 오늘은 안탈랴 근교 도시라기 보다는 시골, 미라와 케코바섬 투어이다.
현지 여행사의 주변 지역 투어로는 페르게 - 아스펜도스 지역 투어가 더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지역의 유물은 모두 로마시대 유물들.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주구장창 로마시대 유물을 볼 예정이기 때문에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좀 색다른걸 보자고 선택한 것이 미라와 뎀레, 케코바섬투어이다. (여기서 미라는 지명입니다요. 이집트 미라 아닙니다. ㅎㅎ)
호텔 앞에서 출정준비 완료!!!
음 해아야 가장 어린 네가 가장 크다니 기특하구나.... ㅎㅎ
하지만 역시 어린건 어쩔 수 없어, 저 터키산 나자르 본죽(=악마의 눈이라는 뜻으로 나쁜 기운을 물리쳐주는 일종의 터키 부적) 쿠션을 더워 죽겠는데도 밤낮으로 끼고 살았지.
해아 네가 저거 어디다가 흘리고 다닐때마다 줍는다고 엄마가 얼마나 짜증나게 신경쓰였는줄 아니?

여행사에서 온 픽업 차량을 타고 출발. 호텔마다 들려 같이 여행갈 사람들을 싣는데 우리가 제일 먼저였다.
뭐 일행은 단촐하다.
우리 일행 6명, 이집트인 가족 4명, 터키인 20대 커플 2명, 터키인 가이드님과 운전사님 모두 14명이다.
오늘 우리가 가는 곳은 고대 리키아왕국의 영역이다.
아 또 듣도보도못한 왕국이라니..... ㅠ.ㅠ
터키는 넓고 역사는 길고도 길구나.....
리키아 왕국의 땅은 높고도 험한 산맥과 가파른 해안절벽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험한 자연환경만큼 굳센 전사부족의 땅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외부의 침입에 대한 저항도 거세서 터키지역 전체에서 가장 늦게 로마의 영토로 편입된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민족은 어떤 문화를 발달시켰을까?
리키아 왕국에 대한 초기 기록들은 거의 신화의 영역에 속한다.
호메로스의 시를 근거로 헤르도토스는 크레타 미노스 왕의 동생이 이곳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웠다고 하며, 트로이 전쟁 때 이들은 트로이의 편에 서서 싸웠다고도 하는데 이는 결국 신화의 이야기이고 정확하게 확인된바는 없다.
건국 이후 오랫동안 독립을 유지하다가 페르시아에 의해서 정복당한다. 하지만 이 때도 리키아 지방의 도시들은 자치권을 잃지는 않았다고 한다.
페르시아 전쟁때는 무려 50척의 배(50척이라니! 이게 사실이라면 리키아 왕국의 세력이 정말 만만찮았던 거다)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했단다.
알렉산더 이후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이집트의 지배를 100년정도 받았는데 이 때 리키아 지방의 그리스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이후 복잡하고도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결국 로마에 편입되게 된다.
저 복잡한 시기동안 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는데 오늘 우리가 보러 가는 것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안탈랴에서 첫번째 목적지인 케코바섬까지는 3시간이 넘는 머나먼 길이었다.
이 도로가 지중해를 끼고 달리면서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라기에 기대했지만 문제는 차를 타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모두는 끊임없는 졸음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는 거다.
잠이 안오던 초반에는 우리 앞자리에서 터키인 가이드님과 이집트 아저씨 둘이서 영어로 대화하는걸 신기해하면서 계속 들었다. 참 영어를 잘하니 저렇게 대화가 되는구나.... ㅠ.ㅠ
대충 들은걸로는 주로 이집트의 정치얘기였던 것 같은데, 결론이 우리 나라 상황과 비슷해서 웃었다.
확 끓어올랐는데 지금은 너무 잠잠해져서 이집트 민주화가 멀고도 멀다 뭐 이런 내용이었던듯한데 남의 얘기가 아닌듯....
워낙 오래 가다보니 중간에 차량을 세워 잠시 쉬었는데 그게 휴게소 같은 곳이 아니고 그냥 길거리다.
왼편으로는 이렇게 산과 산 너머에 해변을 따라 도시가 보이고 그리고 그 너머는 바다다.
어찌 보면 제주도를 닮은 듯도 하다.

하지만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제주도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가 있음에도 황량하고 메말라보이는 산과 곳곳의 바위들, 그리고 그 바위를 뚫어 만들어놓은 주택들.
옛날 옛적에는 이렇게 바위를 뚫고 사람들이 살았단다.
왜 돌집도 아니고 나무집도 아니고 바위집이었을까?
이건 나중에 카파도키아지역까지 계속 고민을 했었다.
둘러보면 이 지역은 아름드리 나무가 자라는 지역이 아니니 나무집은 불가능하고, 저 나무들을 연료로 해서 벽돌을 굽는 것도 말도 안된다.
그런데 돌로 집을 쌓는 것도 쓸데없는게 여기 돌들을 보면 진짜 약하다.
우리 나라 화강암을 생각하면 안된다. 돌이라고 다 같은 돌이 아니라는 것.
만져보면 그냥 쓱 만지는 것만으로도 돌 표면의 부서러기들이 흘러내린다.
이런 돌을 다듬어 집을 짓느니 그냥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게 맞을 듯하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은 언제나 경이롭다.

여기서 수줍음많던 터키 청년이 갑자기 나무를 오르더니 꼭 강낭콩같이 생기긴 햇지만, 강낭콩과는 달리 아주 못생겨서 색깔도 이상해서 전혀 먹고싶지 않은 열매를 따줬다.
바로 이 나무....

먹어보라는데 정말 안먹고 싶었지만 성의를 봐서 안먹을수가 없고...
근데 뭐 생각보다 맛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달콤하기도 하고, 하지만 계속 먹고싶은 맛은 아니다.
이름도 어찌나 어렵던지 잊어버렸다. ㅠ.ㅠ
드디어 케코바섬이다.
여기서 유람선으로 갈아타니 살것같다.


이곳은 원래 육지였던 곳이나 아주 먼 옛날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가라앉았단다.
그러다보니 좀 높았던 곳은 다 가라앉지 않고 저렇게 섬처럼 떠있다.
그러니까 저 작은 섬들이 예전에는 모두 도시의 산들이었던 것이다.
드디어 케코바섬이다.
유람선은 케코바 섬에 상륙은 하지 않고 섬주위를 돌면서 지진으로 가라앉은 유적지들을 보여준다.
대부분이 로마시대의 유적이다.
지진으로 가라앉기전 이곳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설마 품페이처럼 모두 사라져 버렸을까?

섬 주변의 해안에는 이렇게 고대도시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물속에도 도시의 흔적이....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돌담은 고대 목욕탕은 유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랜세월동안 파도에 모두 휩쓸려갔을것이고 이나마 남아있는것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유적 자체가 볼만하게 남아있는 건 없었다.
다만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과 빠져들듯 아름다운 바다색깔과 무엇보다 이 더운 여름날에 걷지 않아도 된다는 혜택이 너무나도 고마운 투어다. ㅎㅎ
저기 눈앞에 보이는 케코바섬은 정말 예쁜 마을이다.
이 투어 역시 여행사 1일 투어가 아니라 그냥 버스타고 우리끼리 왔더라면 당연히 저 섬에 상륙해보는 건데....
아쉽다. ㅠ.ㅠ

여기서 가이드 아저씨와 잠시 얘기를 나눴었는데 한국에서 왔다니까 당연히 한국인들이 주제다.
한국인들이 이 투어를 생각보다 많이 오는듯한데, 가이드 아저씨가 말하길 한국 아가씨들 너무 너무 용감하다.
아가씨들 대부분이 혼자서 이 먼나라까지 여행을 온다고, 그리고는 성격도 대부분 너무 수줍음을 많이 타서 거의 이야기를 안하고 한쪽에서 조용히 여행한다고....
음.... 그중 많은 이가 수줍음이 아니라 영어울렁증이라고 짐작되었지만 그 얘기는 안했다.
되지도 않는 영어 단어와 바디랭귀지만으로 대화를 하는 우리도 있으니까.... ㅎㅎ
근데 우리나라사람들을 빼고 다른 나라 여행객들은 어쩜 그리 영어를 잘하지????? 신기할세그려....
여기서 잠시 1시간 정도 스페셜타임이 주어졌다.
바로 여기 바다 한가운데서 풍덩풍덩 수영타임....
사전 정보가 있어 준비는 해왔지만 정말 좁은 배에서 옷갈아입을 곳도 마땅찮은 이곳에서 수영이라니...
나와 내 친구는 그냥 포기. 왜냐! 우리는 수줍음많은 한국인이니까....
대신 남편과 아이들은 바다로 풍덩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비키니를 사라고 했건만 말 안듣더니 수영복 갈아입는데만 한참 걸렸다.
같이 배를 타고 있던 러시아 여행객들은 정말 순식간에 원피스를 벗어던지니 안에 비키니다.
그냥 바다에 풍덩풍덩 뛰어드는데, 아! 이 먼곳에 와서도 한국에서의 습성, 아무데서나 옷 못벗는, 또 자신없어 비키니도 못입는 이 쓸데없는 수줍음이라니..... ㅠ.ㅠ

너무 너무 신난 해아! 물이라면 어렸을때 목욕탕물부터 사족을 못쓰더니..... ㅎㅎ
니가 그렇게 파닥거리니 아무도 옆에 안가지....
역시 지중해의 바닷물은 엄청나게 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제 산타클로로스로 더 알려져있는 성 니콜라오스의 마을 뎀레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