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건축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관계를 만들고 사회를 형성하는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남, 자연과 인간, 개인과 사회,
안과 밖 등 다양한 관계성을 통해 우리 문화와 사회는 발전했습니다.
- P7

강연회에 연사로 초청받을 때마다 나는 청중에게 공통된다음 2가지 질문을 받는다. 하나는 창의적 설계들이 탄생하는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두 번째는 아무 제약이 없다면 만들어 보고 싶은 건축물은 어떤 것인가이다.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약‘이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무 제약도 주어지지않았으니 뭘 한다 해도 특별하게 만들 수 없다‘ 이다.
똑같은 사람이 없듯 무릇 똑같은 장소란 없는 법이다. 모든 땅에는 각기 다른 제약이 존재한다. 대지 조건과 규모의 제약, 법규적인 제약, 예산의 제약, 시간의 제약 등 매 프로젝트는매번 다른 제약들을 내포하고 있다. 건축설계란 늘 새로운 장소에서 생활하게 될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새로운 꿈을 잇는작업이다.
- P13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각기 다른 장점만큼이나 각기 다른 약점을 지니고 있다. 나는 개인의 개성은 장점이 아닌단점들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라 본다. 단점이 치명적이고 복잡할수록 그만큼 발휘되는 개성은 남들과 차별화될 잠재성이있는 것이다.  - P14

건축가로서 건축주에게 새로운 계획을 제안할 때마다 항상논점이 되는 것은 특정한 기능을 가지지 않는 중정이나 넓은 복도와 같은 공용공간의 쓰임에 관해서이다. 왜 쓸모없는 공간을크게 만드는 것이냐고 물으면 이것이 전체적인 건축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여백‘이라고 나는 대답한다. 여기서 여백의 의미는아무 목적도 없는 ‘무의 공간‘이라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개입과 아이디어에 의해 ‘무한하게 가능성이 확장되는 시작으로서 비워진 공간‘이다.
- P30

비움으로 인해 건축은 단순히 주어진 기능을 담는 도구의틀을 초월한다. 진정한 완성은 미완을 품음으로써 사용하는 사람들이 채울 수 있는 생동감 있는 여백을 만들고, 또 우리를 그속으로 이끄는 것이다.
- P37

놀이와 학습에 경계를 두지 않고, 이 둘을 서로 연속된 것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입구에는 이런 놀이터 사용법이 적혀 있기도 하다. 작게, 자주 다쳐야 크게 안 다친다. 아이들이 놀다가 다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아직도 우리 도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모든 것이 딱딱하기만 하다. 이들의 주체성과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는다양한 틈에 대한 시도가 더욱 다양하게 펼쳐지길 기대한다.
- P81

건축은 우리의 생활과 주변과의 관계, 나아가 생각하는 방식 전반을 바꾼다. 좋은 건축 속에서 살면 좋은 사람이 되기 마련이고좋은 도시공간에서 살면 보다 공감하며 소통하는 개방적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마련이다.
- P100

장소로서 지속되는 것이다. 좋은 랜드마크는 땅에 심은 것이 아니라 땅에서 자라난 것이어야 한다. 도시의 매력은 랜드마크로형상화되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사건과 행위가 일어나는 집합적인 관계성에 있다.
- P128

건물과 길로 이루어진 도시, 그것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는관계를 통해 내 것과 모두의 것 간의 경계가 모호하게 될 때 전체적인 도시공간이 풍성해진다고 믿는다.
- P152

완결된 형태가 아닌 것은 주변을 위한 배려이며, 그 의도된 부족함을 통해 주변을 포용하면서 비로소 그것은 하나의 완성된 풍경이 된다. 이러한 관계성을 토대로 한 공간적 가치는 사실 우리 건축이 가진 고유한 작동원리이자 본질이다.
- P157

수려한 산수가 주된 도시의 랜드마크인 우리 도시의 건축은 자연의 위대한 질서를 훼손하지 않도록 잘게 나누고 서로 연결하여 만드는 것이 옳다. 마치 자로 그은 듯한 외국 평지 도시의 질서와는 달리 다양한 틈과 흐름이 좋아야 한다. 작은 건축과 사이골목길들이 만드는 아기자기하고 느슨한 질서의 어울림이 우리도시공간의 정체성이다.
-승효상 - P224

 로마네스크, 르네상스, 고딕, 모더니즘, 미니멀리즘 등의 유행 순서대로 양식을 나열해 나가면 그럴듯한 건축사의 체계가 정리된다. 하지만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예술이 표현의 문제인 반면 건축은 우리 삶 속 다양한 관계들에 대한 해답을찾는 일이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새로운 삶이 조직된 설계도를
‘본다‘가 아닌 ‘읽는다‘고 한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건축이 표현하는 시각적 디자인이 아닌, 그것이 조직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건축의 표피를 절개하여 스타일이라는 화려한 치장물을 발가벗기면 비로소 관계성이라는 속살이 드러나는 것이다.
- P232

 하지만 모든 기술의 궁극적 목표는 투명함이다. 기술이란만들고자 하는 것의 본질을 가장 명쾌하게 사용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것은 마치 내용물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
혹은 인간이 호흡하기 위한 공기와 같다. 그래서 기술이란 연마할수록 투명해져서 결국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 P260

공간의 지속가능성이란 공간을 통한 관계성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스스로 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건축을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사회와 그것이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삶의 방식, 또는 공간을 매개로 한 관습화된 관계성에 대한비판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건축은 창조적 대안을 모색하는행위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결국 공간으로 말해지고 새로운 건축이 새로운시대를 연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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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괴물들 - 드라큘라, 앨리스, 슈퍼맨과 그 밖의 문학 친구들
알베르토 망겔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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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참 운좋은 사람이 있지. 암 그렇고 말고

하필이면 알바를 하고 있는 서점에 보르헤스라는 대문호가 찾아오고, 시력을 잃어가던 대문호가 그에게 책을 읽어주는 알바자리를 제안하다니.... 이건 뭐 전생에 나라를 3번쯤 구하면 얻을 수 있는 행운이 아닐까?

내가 고등학교 때 서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 그 곳에 박경리 선생이 찾아오고, 나는 박경리 선생에게 4년동안이나 책을 읽어주는 행운을 누렸다면 지금쯤 나도 작가가 되어있지 않을까? ㅎㅎ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단계에서 가장 먼저 와닿는건 역시 캐릭터다.

내 책읽기도 다르지 않아 어린 시절 안데르센 동화, 그림동화속의 공주와 왕자들에 빙의하고자 했던 것들이 시작이었던듯하다.

그래서 지금도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로맨스를 좋아한다.

그 로맨스의 성격이 나이가 듦에 따라 양태를 달리하는 정도일 뿐 어린시절 좋아한 것들은 결국 평생 지고 가는듯하다.

사랑 얘기는 언제나 좋다.

설사 현실에서는 대부분이 고난에 찬 책속의 사랑은 결코 경험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 운좋은 작가는 어떤 캐릭터들에 빙의했을까?

작가라 그런지 그 면모들도 심상치 않다.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그래도 관심이 가는건 역시 내가 아는 또는 읽은 책의 캐릭터들이다.(원래 이런 종류의 책의 치명적인 단점은 내가 읽지 않은 책 이야기를 하면 공감도가 확 떨어지는 것인데, 어쩌랴 그저 나의 독서의 얄팍함을 탓할 수밖에....)


작가의 말대로 흘륭한 캐릭터는 이야기를 창조한 작가보다 더 오래 살아남고, 더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며 우리 곁에 있는다. 그들은 변화할 뿐 죽지도 않는다. 작품 속에서 죽은 캐릭터라면 두고 두고 환생하면서 영원히 죽음을 반복할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라! 얼마나 많이 다시 살아나고 다시 죽는지......

작가는 이렇게 살아남은 유명한 캐릭터만 얘기하지는 않는다. 뜻밖에도 시작은 보봐리 부인인데, 보봐리 부인 에마가 아니라 존재감조차 희미한 그의 남편얘기에서 책을 시작한다. 존재감 희미한 그가 실제로는 소설의 시작과 끝을 모두 담당하고 있으며,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는 운명의 힘을 보여주는 존재로서 말이다. 

의외의 인물은 또 있다.

바로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 왕비.

모든 일의 시작지점에 있지만 아무도 그녀의 생각과 감정에 관심이 없다. 

정작 왕이 죽고 왕의 동생과 결혼하고, 그로 인해 방황하는 아들을 봐야 하는 핵심당사자인데 말이다.

작가는 바로 이 거트루드 왕비의 입을 대신해주겠다는 생각으로 그녀의 생각을 추적하는데 아들이 게이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정말 빵 터진다. 이렇게 사건의 핵심을 정확하게 볼 줄알고 남성 주인공의 우유부단함을 꿰뚫는 그녀지만 사실 햄릿의 크론보르 성의 진짜이자 유일한 유령은 그녀이다. 

아무도 그녀의 생각을 궁금해하지 않고 묻지 않음으로 해서 말이다. 

하이디의 할아버지에게서 스위스라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심상을 짚어나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이렇게 우리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꼭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가끔 모두가 좋아하는 주인공을 두고 왜 나는 그 옆의 친구가 더 좋은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림동화속 빨간 모자에 대한 해석은 유쾌하다. 불복종자로서 자유롭게 숲을 뛰어다니고, 그로써 다른 캐릭터들을 모두 살아 움직이게 하는 빨간 모자는 바로 개인의 자유를 상징하는 표상이다. 

나는 이런 해석이 사실 너무 좋다. 

그림동화속 수많은 캐릭터들이 있지만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되살아나는 캐릭터가 바로 빨간모자인데 왜 그런지 작가의 해석을 보다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다. 

아! 빨간모자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억압과 통제에 저항하는 그리하여 승리하는 캐릭터였구나 하면서 나의 무지의 한조각을 깨게 되는 즐거움, 책을 읽으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일어나는 대목이다.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 불합리에 대해 당당하게 헛소리라고 외치는 엘리스를 보는 즐거움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는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냥 좋다고만 말하는게 아니라 왜 그것이 그토록 오래 사람들의 마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그 캐릭터들이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나 꿈틀거린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책.

이 운좋은 작가의 운을 좀 나눠가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의 독서여행에 동참하게 되는 책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책의 3분의 1쯤은 모르는 캐릭터들이어서 그 유쾌한 상상이 중간 중간 끊어지게 된다는 것인데 이야말로 내 책임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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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30 06:4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이 모르는 캐릭터가 3분의 1이면 저는 2분의 1은 모르겠네요. 뭐든지 계기가 중요한거 같아요^^

붕붕툐툐 2021-07-30 22:59   좋아요 2 | URL
와~ 저는 2/3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새파랑님 댓글보고 소오름~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7-31 00:34   좋아요 3 | URL
아니요 아니요 생각보다 유명한 캐릭터가 많아요. 누구나 다 아는 캐릭터 말이죠. 하이디 할아버지도 다 알잖아요? 슈퍼맨도 다 알고 말이죠. ^^

새파랑 2021-07-31 08:48   좋아요 2 | URL
툐툐님하고 저랑 사고방식이 비슷한거 같아요^^

mini74 2021-07-30 12: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진짜 새롭게 읽는 즐거움 *^^* 주변인물도 주인공만큼 매력적임을 그리고 주인공의 다른 면도 보여주고 ㅎㅎ 저도 이 책 좋았어요. 박경리선생님 ㅎㅎㅎ

바람돌이 2021-07-31 00:35   좋아요 4 | URL
박경리 선생과 그 분의 토지에 대한 저의 존경을 살짝 넣었어요. ㅎㅎ
같은 책을 봐도 감정이입이 되는 인물은 사실 다 다르잖아요. 그 점을 확실하게 나타내주는 점도 좋았고, 유명한 주인공들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해주는 것도 좋았어요. 책을 읽는 기쁨을 다시 발견하는거죠. ^^

붕붕툐툐 2021-07-30 22: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상상만으로도 넘 좋다. 박경리 선생님에게 4년 동안 책을 읽어드리면, 전 골초가 되어있을 거 같습니다~ㅋㅋㅋㅋㅋㅋ
이 책 너무너무 기대가 됩니다!!^^

바람돌이 2021-07-31 00:36   좋아요 4 | URL
골초가 되든 뭐든 박경리선생님인데 뭔들요. ㅎㅎ 다 감수할 수 있습니다. ^^

scott 2021-07-31 01:23   좋아요 3 | URL
전, 그렇다면 토지 문학관에 밭이라도 갈 수 있음요 ᖰ(*‘ᵕ‘*)ᖳ

바람돌이 2021-07-31 02:15   좋아요 3 | URL
저도 그토록 싫어하는 밭도 갈수 있는데 이젠 박경리선생님이 안계셔서.... ㅠ.ㅠ

희선 2021-08-01 0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설 같은 이야기를 보다보면 거의 중심인물을 따라가기도 하는군요 가끔 둘레 사람을 보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하니 이건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네요 이야기에 나온 사람은 거기에 나올 수밖에 없었고 뭔가 있기는 하겠지요 왜 나왔지 하는 사람이 보일 때도 있지만, 그건 작가 마음을 몰라서일지도... 역사에 남은 사람도 다시 생각하기도 하잖아요 이야기에 나온 사람도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1-08-01 18:38   좋아요 2 | URL
훌륭한 작가일수록 필요없는 인물없이 모두에게 적절한 자리를 배치하는 거겠지요. 우리 독자는 또 자기 맘에 맞는 인물에 각각 감정이입하게 되고.... ㅎㅎ 어쨌든 작가님들은 다 위대합니다. ^^

scott 2021-08-06 15: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끝내주는 괴물이 선물 주쉼

이달의 당선작 추카~*

바람돌이 2021-08-06 16:15   좋아요 3 | URL
와우 언제나 제일 먼저 축하해주시는 스콧님 감사합니다. ^^

mini74 2021-08-06 15: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바람돌이님 *^^*

바람돌이 2021-08-06 16:16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 2등 mini74 님! ^^

그레이스 2021-08-06 16: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이 책 주문하려구요^^

바람돌이 2021-08-06 17: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책읽기 시간이 되실거예요. ^^

새파랑 2021-08-06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축하드려요. 저는 언제쯤 이 책을 읽을지~!!

바람돌이 2021-08-06 17:3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책이야 쌓이고 쌓인게 책인데요 뭐.... 천천히 읽어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게 또 책의 매력이잖아요. ㅎㅎ 무서운 속도의 새파랑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니까 또 제가 너무 게으른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뒤통수를 확 치고 지나갑니다. ^^

초딩 2021-08-06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바람돌이 2021-08-06 18: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1-08-06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바람돌이 2021-08-06 18: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1-08-07 06: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새로운 책과 새로운 작가를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2021-08-08 00:03   좋아요 1 | URL
제가 늘 북홀릭님 서재에서 새로운 작가와 책을 알게 되어서 고마운걸요. 감사합니다. ^^

희선 2021-08-08 0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축하합니다 팔월 한주가 다 갔네요 지난 한주 빨리 간 듯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어제 입추여서 조금 시원해지려나 했는데 여전히 덥네요 더위 조심하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바람돌이 2021-08-08 00:1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12시 지났으니 말복이네요. 말복 지나면 이 더위가 좀 나아지려나요? 올해는 비도 정말 너무 안와서 비라도 한번 시원하게 쏟아졌으면 싶습니다. 태풍은 말구요. ㅎㅎ
희선님도 더위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
 
아리스토텔레스 - 에게해에서 만난 인류의 스승 클래식 클라우드 9
조대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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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라니...

이 분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만 보던 분이 아닌가?

철학공부를 한다면 딱 데카르트, 근대 철학부터 시작하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기 어디 그리스 신전 어디에 모셔두어야 하는 분 아니었나?

솔직히 책을 읽는 동안도 이런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2,400년전의 인물을 찾아가는 여행이 가능하기나 한것일까?

돌더미속에 묻혀있을 흔적같지도 않을 그 흔적들을 찾는 여행이라니....


그럼에도 이 책은 글을 쓰는 작가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2,400년 전의 인물이 살았을 공간들을 찾아가면서 여전히 변함없는 하늘과 바다와 땅에서 그 시절의 분위기를 찾아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느꼈을 마음과 생각들의 실마리를 풀어내는 능력이 경이롭다.


그리스에서도 변방 북부 칼키디케 반도의 작은 도시국가 스타게이라에서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였던 아버지덕에 마케도니아 왕실과 인연을 맺고, 이 인연이 마케도니아가 급부상하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그의 인생을 이끌어가는 한 축이 된다.

책을 읽어가면서 느낀 바로는 당대의 영웅이었던 알렉산더의 스승이었다는 그의 입장은 어쩌면 공부하는 학자로서 조용히 삶을 살아갔을 이에게 정치적 격랑에 시달리게 하는 족쇄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저자가 생각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위치는 아테네에서도 마케도니아에서도 늘 현실과 어느정도 거리를 둔 '관찰자' 내지는 '국외자'였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 한 발 떨어져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할 때 더 잘 보이는 것이 분명히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찰자로서 탁월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아테네에서 플라톤이 세웠던 아카데미아에서 수학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나 스승의 성취를 따라가지 않는다.

영원불변한 본질, 이데아의 세계를 탐구하고자 했던 스승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눈에 보이는 자연, 감각의 세계, 실재에 본질이 존재하고 그것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중요성을 부과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아테네의 반마케도니아 분위기를 피해 떠났던 레스보스섬에서 그 지역의 동물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생물학의 시원을 열기도 한다.

그의 생물학은 단순히 동물을 식용이나 약용이라는 인간의 이용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 우주의 근본 원리가 존재함을, 그러므로 인간이나 동물이나 모두 이론적 탐구의 대상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관찰하듯이 동물을 관찰했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아테네로 돌아온 아리스토텔레스는 새로운 학교인 뤼케이온을 연다.

이곳에서 그의 본격적인 철학, 정치학과 윤리학이 펼쳐진다.

그의 4원소설이나 좋은 정치의 요건에서 중용을 얘기하는 것 등은 분명 오늘날에 우리가 되새겨야 할 부분이 있지만 그것은 원칙적으로 그러하다는 면에서이지, 현 시점에서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고전을 읽는 것, 또는 오래 된 시기의 사상가를 기억하는 것은 그들이 상기시키는 인간 삶의 원칙 때문일 것이다.

책 속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다양한 사상이 펼쳐지지만,

책을 읽는 내게 각인 된 것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하는 아래의 경구이다.

"우리는 정의로운 일을 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절제 있는 일을 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며, 용감한 일을 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된다."



말이 나를 행동하게 하고, 행동이 나라는 인간을 만든다. 

2,400년전의 철학자가 오늘날의 나에게 알려주는 지혜다.

저자가 흔적도 제대로 남지 않은 땅들을 여행하면서 알려주는 여러 이야기들 속에서 무언가 단 하나라도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 있다면 그래 그 여행은 할 만한 것이었어라고 생각하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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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25 08:0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말이 나를 행동하게 하고 나를 만든다는 말 좋네요. 철학책은 어려워서 직접 읽지는 않지만 이렇게 리뷰로 조금씩 지식을 알아갑니다 😊

바람돌이 2021-07-27 00:58   좋아요 1 | URL
저도 철학은 어려워요. ㅎㅎ 늘 해설서나 뒤적이지.... 원전들은 엄두가 안나요. ^^
그리고 아르테 출판사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여행기를 겸하면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쉬워요. ^^;;

초딩 2021-07-25 09:1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니코마코스가 아들이었던 것 같은데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끌리고 또 현실적인 것 같아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1-07-27 00:5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버지 사후에 아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원고를 정리해서 저런 이름이 붙었다더군요. 그것도 이 책에 나와요. 아 저는 너무 질문만 해대서 얄밉긴 하겠지만 그래도 소크라테스가 가장 끌립니다. 이유는 음.... 그나마 알아듣기가 제일 나아서요. ㅎㅎ

붕붕툐툐 2021-07-25 16: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단 하나라도 얻었다면 그 경험은 가치있는 것이겠죠~ 저도 누구라도 찾아가는 여행을 해보고 싶네요~~

바람돌이 2021-07-27 01:01   좋아요 0 | URL
그럼요. 하나의 가르침도 찾기 힘든게 삶인걸요. ^^ 그래서 저는 영화나 책도 하나만 좋으면 좋다고 합니다. 영화는 배우가 끝내주게 예쁘거나 메시지가 좋거나 음악이 좋거나 등등..... ㅎㅎ

mini74 2021-07-25 2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행동이 나라는 인간을 만든다 ㅠㅠ 막 찔리는데요 ㅠㅠ 나무늘보처럼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신이 확 듭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1-07-27 01:02   좋아요 2 | URL
나무늘보는 요즘의 접니다. ㅠ.ㅠ
하루종일 집에서 책 좀 보다가 올림픽 보다가 게임하다가.... 아 이제 게임은 그만해야 하는데.... ㅠ.ㅠ

희선 2021-07-27 03: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게 아니고 행동해서 그런 사람이 되는군요 그게 가장 좋은 거면서 어려운 거기도 하네요 생각하고 그걸 실천하면 그것만큼 좋은 건 없을 텐데... 큰 건 못해도 작은 거라도 하면서 살면 좋을 듯합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1-07-27 23:23   좋아요 2 | URL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말했다는군요. 근데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것 같아요. 정의롭고 용감하면서 절제할 줄 아는 인간! 완벽한 인간이겠네요. ^^
 

이런 이야기 속 괴물들의 주요한 매력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들의 다중적이고 다변적인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마다 고유의 내력을 가진 허구의 인물들은 자기들이 등장하는 책이아무리 길든 짧든 간에 그 안에만 갇혀 있지 않는다. 햄릿은 헬싱외르 성의 기둥과 아치 들 아래에서 이미 청년인 상태로 태어나, 성 안연회장에 나뒹구는 시체들 사이에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았지만,
수 세대에 걸친 독자들은 책에 쓰여 있지 않은 어둠 속에서 햄릿의유년 시절을 프로이트 이론으로 조명한다든지 그의 사후 정치적 이력을 밝혀내기도 한다 예컨대 제3제국 시대 독일에서 햄릿은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른 인물이 되었다. 엄지손가락 톰은 몸집이 커졌고, 헬레네는 쪼글쪼글한 노파가 되었으며, 발자크의 라스티냐크는국제통화기금에서 일하고, 오디세우스는 람페두사 해안에서 난파당하고, 킴은 영국 외무성에 채용되며, 피노키오는 텍사스의 아동 강제수용소에서 쇠약해져가고 클레브 공작부인은 빈민가에서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처지가 되었다. - P16

빨간 모자의 신조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마찬가지로 시민불복종이다. 독재자 같은 어머니의 명령은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따르기는 하되,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달콤한 시간을 추구하는 것이다. A부터 Z까지 한 번에 가는 지름길이라든지 정도正道를 걷는것은 그녀의 방식이 아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라면빨간 모자를 지지했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가 탈선하는 게 좋아.
그편이 더 재미있고 하여튼 여러모로 낫잖아"라면서, 빨간 모자가 탈선하는 덕분에 숲이 살아 움직이고, 늑대와 나무꾼이 나타나고, 할머니의 낭만적인 모험이 시작된다. - P40

그리고 논쟁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이 드러나면 앨리스는 최소한 그 상황이 부당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부득부득 지적하고야 만다. 하트 여왕이법정에서는 "저형이 먼저고 평결은 나중" 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자앨리스는 즉시 "말도 안 돼, 헛소리야!" 라고 대꾸한다. 우리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부조리에 걸맞은 유일한 대답이라 하겠다.
- P59

그리고 여자 옷을 주워 입고 왕궁 식당에서좀 아방가르드한 연극을 하는 배우 무리와 어울리는 것도 좋아한다. 아마 게이인 모양이다. 그러면 그놈의 짜증스러운 "사느냐 죽느냐" 하는 고민도 설명이 된다. 이쯤에서 걔가 마음을 확실히 정했으면 좋겠다. 도대체가, 헬싱외르 궁정에서 게이가 자기 하나뿐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 P69

 햄릿의 꿈속 삶은 거트루드가 죽을 때까지 억지로 살아야 하는 현실의 삶과뒤섞인다. 그것은 그녀가 헬싱외르의 지긋지긋한 낮과 밤을 견디기 위해 발휘했던 인내심도, 그녀의 성별과 계급 때문에 주어진 부당한 처사들을 극복하기 위해 동원했던 작전들도, 살아오면서 여러 고통스러운 일을 극복하고 거두었던 작은 승리들도, 시시각각재정의되는 희망이 그녀에게 안겨주어야 할 위안도 모두 부정해버린다. - P72

아담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릴리트는 뱀과 계속 어울렸다. "신이 왜 네가 아담에게 복종하길 바라는지 알아?" 뱀이 물었다. "그리고 어째서 아담에게 생명수의 열매를 못 먹게 하는지 알아? 같은길드의 공예가들은 서로를 미워하는 법이지(이 구절은 훗날 탈무드에 적혔다). 신은 창조와 파괴의 힘을 독차지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 P97

그러나 스티븐슨식 여행관에는 어두운 측면이 존재한다. 예수가 유대인에게 벌을 주기로 마음먹었을 때 염두에 둔 것도 바로 그점이었을지 모른다. 그 관점에서 보자면 유대인이 받은 저주는 여행이 아니라 도주가 된다. 그는 집단 학살이나, 굶주림이나, 실직난을 피하기 위해 집을 떠나야 한다. 강제 수용소, 굴라크, 용병, 다국적 석유 회사, 삼림 남벌 업자, 가뭄과 홍수, 군사적 또는 종교적 독재 정권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그래서 광막한 사막과 거대한 산맥을 건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어깨에 진 채 바다에 뛰어들고,
경찰의 채찍질과 군중의 조롱을 당해야 한다. 저 바깥 어딘가에 있을 자비로운 사람들이 자신을 환영해주고, 인간다운 삶을 허락해주고,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떠맡았던 죄를 마침내 면제해줄 것이라고 애써 상상하면서.... - P104

그러나 공주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다. 저주도, 축복도 거부하고, 잠든 궁정 대신들도, 부모님이 저지른 결례도 거부하고, 끝없이 찾아오는 왕자마저도 거부하는 것. 그리고 입센의 노라나 카르멘 라포레의 안드레아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현대판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처럼, 마법의 성문을 열어젖히고 크게 뜬 두 눈으로세상을 맞닥뜨리는 것 말이다.
- P110

오늘날 우리는 괴물을 믿지만 괴물에 대한 책임감은 외면하고싶어 한다. 이제 키마이라 같은 괴물의 존재는 우리에게 진실이나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을 회피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되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지극히 위대한 행동도 할 수 있고 극도로 혐오스러운 범죄도 저지를 수 있다는 진실 말이다.
- P146

늘 모자란 존재로 남는 것이 그의 운명인 셈이다. 그의 역할은 밭이나 공장이나 사무실이나 저임금 사업장에서 일하도록, 주인을 위해 봉사하도록, 겸손하고 비굴해지도록 훈련받는 것이다. 루소가에밀이 밤마다 읽을 책으로 로빈슨 크루소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바로 이러한 불공정의 기술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 P156

세르반테스가 누구였든, 스페인과 정치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고있었는 궁극적으로는 중요하지 않다. 오늘날 돈키호테』의 독자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배제된 문화는 결코 쉽사리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역사 속에서 부재는 현존만큼이나 견고하다는 것,
그리고 때로 문학이란 세상 그 어떤 지혜로운 문학가보다도 더 지혜롭다는 사실을 시데 아메테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 P186

이 소설의 제목에 이름을 내준 건물이 그 어마어마한 아름다움으로 규정되듯, 그는 괴물처럼 흉측한 외모로규정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험한 관점으로서,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등이 구부정하고 이가 들쑥날쑥하고 눈이 비뚤어진 카지모도가 실상 훌륭한 사람이라면, 정교하게세공된 석재와 스테인드글라스로 이루어진 노트르담 이면의 실상은 과연 무엇일까?
- P202

(독서가들이라면 알다시피) 책이란 한 권이든 1만 2천 권이든 간에 읽는 사람이 선택한 길만을 비춰줄 수 있다. 책은 독서가에게 어떤 의무적인 목표를 정해줄 수도, 심지어 특정한 방향을 강요할 수도 없다.  - P237

프랑켄슈타인이 수많은 사람을 짜깁기해만든 괴물은 적어도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 자신의 거울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엄두도 못 내는 무언가를 비춰 보이는 거울 말이다. 우리가 그를 두려워하는 까닭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 P246

그렇다 하더라도, 손녀 하이디를 마지못해 떠맡았던 산 사나이에게서 그가 사는 산간 국가를 연상하는 것이 과연 단순한 착오라고할 수 있을까? 교묘하게 자기 일을 계속하지만, 남모르는 깊은 곳에 폭발적인 정념과 침입자는 쏘겠음" 이라는 경고를 품고 있다는면에서 말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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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이 픽션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가?

인생살이의 많은 것들이 대부분의 많은 남성들은 그저 주어지는 것일 때, 

여성이 그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싸우고  쟁취해야 하는 것이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페미니즘이 출발할지도 모른다.

만약에 우리가 다같이 가난하고, 다같이 자기만의 방이 없으나 다 같이 열심히 일한다면 세상을 향해 여자들이 이렇게 싸우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언제나 불평등이다.


하필이면 이 책이 "글쓰는 여자의 공간"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기인할지도 모른다.

그 힘든 공간을 만들어내고 어쨌든 글을 썼던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말이다.

이 책을 손에 든 것은 왠지 짜릿할 듯한 이 제목 때문이다.

어쩌면 내 안에 내재해 있는 훔쳐보기에 대한 은밀한 욕망의 발현일지도 모르겠다.

좀 더 순화해서 말하자면 궁금증, 호기심이겠지만 어차피 호기심이나 훔쳐보기나 오십보 백보다.


솔직히 책은 실망스러웠다.

제인 오스틴의 유러스러한 말로 시작할 때는 기대감을 잔뜩 갖게 했는데 말이지.

"홀 부인이 어제 아이를 유산했어. 출산 예정일을 몇 주밖에 안 남기고 말이야. 무슨 충격 때문이라는데 내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자기 남편 얼굴을 쳐다보고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어." ㅡ (32쪽)


시작부터 빵 터졌는데 문제는 이게 끝!!!!!


그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얼굴과 그들의 공간, 그리고 그들이 한 말 중에서 인상적인 문장들을 뽑아놓은 장들이 이 책의 재미의 다였다. 

사진만 봐도 별 문제 없을 듯한 책이다.


대부분 평범한 서재였지만 가끔은 특이한 곳들이 눈에 띈다.



거투르드 스타인은 글을 쓰기 전에 그림을 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온 벽을 그림으로 장식해놓았고, 설사 피카소의 그림이라 할지라도 맘에 안 들면 글쓰기에 방해된다고 불평하며 입맛까지 달아난다고 했다니...

부러운 이다.

그림으로 가득찬 벽과 커다란 책상, 나의 로망을 다 실현한 이 분은 그런데 왜 저렇게 불편한 자세로 글을 썼을까?





클로딘 시리즈의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는 말년에 고관절염으로 인해 침대에서 생활해야 했다고 한다.

침대에서 화장을 하고 손톱을 다듬고 사람들을 맞이하며 글을 썼다고 한다.

현대라면 완벽한 외출 또는 출근 복장인 그녀의 모습을 보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언가 외적인 자세를 가다듬는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먹고 치우고 나서 아이 학원을 보내고 잠옷차림(이라고 쓰고 추리닝)으로 식탁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나는 이렇게 잡글만 쓰고 있다.

어쩌면 제대로 된 글을 쓰려면 집에서도 출근하는 것처럼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고 하는 의식같은 경건함이 필요한 걸까?




이 책속 작가들 중에는 이렇게 아예 야외에서 글을 쓰는 작가도 있다.

그 충격적인 죽음으로 인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실비아 플라스.

그녀는 어디서나 글을 썼단다.

집의 구석진 계단에서도 이렇게 야외에서도 타자기를 들고 다녔다는데....

이렇게 치열하게 썼는데도 글쓰기가 그녀 자신을 구원해주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도리스 레싱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 직후에 인터뷰를 하고 있는 노작가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주변의 흔한 동네 할머니처럼 집앞 계단에 걸터앉아 인터뷰를 하는 모습!

아 진짜 이 사진 너무 좋다.

어쩌면 이분은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 취재진을 들이거나, 개인 공간을 공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을 듯하다.

그녀가 허락한 공간은 딱 집앞까지...

너희들 "Stop!!!"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이분의 이야기도 읽고 싶었는데 이 책속에는 사진만 있다. 

어쩌면 작가도 도리스 레싱의 공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가 싶은데 그럼에도 이 사진을 앞쪽 화보에 넣은건 나처럼 이 사진이 너무 인상적이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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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24 15:1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도리스 레싱 인터뷰 사진은 진짜 최고네요!!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7-25 02:06   좋아요 1 | URL
멋지죠? 이런 멋진 작가들의 글을 볼 수 있다는데 늘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1-07-24 16:3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ㅋ 도리스 레싱 사진 보고 왠지 친근함이 느껴졌어요 ㅋ 책은 전혀 안그렇던데~!!

바람돌이 2021-07-25 02:09   좋아요 2 | URL
책은 오싹하죠. 공포물도 아닌데 말이죠. ㅎㅎ
런던거리를 거닐다가 어쩌면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은 포즈예요. ^^
아니면 우리 시솔길을 걷다가도 만날 수 있는 할머니같죠? ^^

페넬로페 2021-07-24 16: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실비아 플라스라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어요. 근데 넘 멋지네요^^
그리고 노벨 문학상 작가인 도리스 레싱도요. 그 어디가 되었던 읽고 쓰고자 하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네요.
그래도 좋은 서재는 늘 저의 로망입니다^^

바람돌이 2021-07-25 02:12   좋아요 2 | URL
시인이자 단편소설 작가예요. 알라딘 서재분들이 이 분의 자전적 소설인 ‘벨 자‘를 많이 보시더라구요. 저도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부엌에서 가스오븐에 머리를 집어넣어 자살한 것으로 유명해요.
도리스 레싱은 80대이 나이에도 글을 쓰지 않으면 몸이 아프다고 했다죠?
넓고, 푸른 정원이 보이고, 햇빛이 잘드는 그런 서재는 저도 로망입니다. 현실은 지금도 식탁에서 이러고 있어요. ㅎㅎ

그레이스 2021-07-24 16: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사진들이 너무 멋있어요~♡

바람돌이 2021-07-25 02:12   좋아요 1 | URL
실제 책 자체가 글보다는 사진이 다했다는 느낌이에요.
다른 작가들의 초상 사진도 굉장히 인상적인 사진이 많았어요.

mini74 2021-07-24 17: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도리스 레싱. 저도 좋아하는 작간데 포즈가 딱 울 엄마 같아요 ㅎㅎㅎ

바람돌이 2021-07-25 02:13   좋아요 2 | URL
ㅎㅎ 우리 어머님들 포즈 맞죠?
시골길 가다보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그런 포즈!!

붕붕툐툐 2021-07-24 17:2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제가 글을 못 쓰는 이유는 제 작업실이 없어서라 생각했는데, 실비아 플라스를 보니 그냥 글을 못 쓰는 거였네요. 도리스 레싱 멋져요~

바람돌이 2021-07-25 02:13   좋아요 2 | URL
저는 멋지진 않지만 서재가 있어도 글을 못씁니다. ^^

붕붕툐툐 2021-07-25 16:44   좋아요 1 | URL
와우! 서재 있는 여자시군요~ 멋지십니당~👍👍
그리고 저는 진심 바람돌이님이 글을 잘 쓰신다 생각하는데, 그게 다 서재 덕이라 안도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7-27 01:04   좋아요 0 | URL
서재는 있으나 저는 식탁을 더 좋아합니다. 여름엔 에어컨이 있고, 겨울엔 온돌이 더 따뜻하게 올라와요. ㅎㅎ
서재방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습니다. ㅎㅎ 그래서 남편 줘버렸습니다. 시험문제 낼때만 집중하려고 서재 이용해요. ㅎㅎ

scott 2021-07-24 18: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제 포스팅에 도리스 레싱 작가님 서재와 집필실 사진 올렸습니다
마침 도리스 레싱 작품 황금 노트북 재독 하며 자료들 찾으면서 평전 읽고 있었거든요

새벽에 바람돌이님 포스팅에 댓글 달았는데
사라 졌어 엉 ( ´•̥̥̥ω•̥̥̥` )

바람돌이 2021-07-25 02:15   좋아요 3 | URL
아 스콧님 포스팅 보고 왔어요. 완전 감사 감사!! 스콧님 글 읽으니 도리스 레싱이 더 좋아졌어요.
우와 근데 정말 언제 이렇게 긴 포스팅 쓰고 책읽고 하시는지 궁금요.
혹시 잠은 주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