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당시에 나왔던 구호 중 가장 인상적인건 역시 이게 나라냐다.

그런데 요즘 일본이 하는 꼴을 보면 딱 그 말이 맞는듯한 느낌은 나의 주관일까?

도대체 어떻게 저런 일이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이해하기 힘든 면들이 너무 많다.

예전에 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 외국인인 내게 일본인들의 친절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길에 잠시 서 있기만 해도 먼저 다가와서 뭘 도와줄까요라고 묻는 그들.

그런데 일본어를 무지 잘해서 일본인으로 보였던 내 지인은 독특한 경험을 했는데 서툰 영어로 도움을 요청할 때는 그토록 친절하던 그들이 유창한 일본어로 도움을 요청했을 때는 너무나도 쌀쌀맞았다는....

이게 한 개인의 경험일 뿐인지 아니면 일반적으로 이런 정서가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알다가도 모를 나라다.



어쨋든 이해하기 힘든 이런 일본을 알아야만 그들과 우리 사이의 새롭고 올바른 관계정립도 가능할 것인지라 작년에 이 책이 나올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바로 구입했었다. 이 책도 벽돌책인지라 전체 11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루에 2장 정도씩 6일정도에 나눠서 읽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다. 

내 관심은 오늘의 일본의 그 독특함의 기원과 연원, 그 내면에 깔려있는 일본인들의 집단 심성같은 것인지라 내 관심에 맞춰서 책 내용을 정리하자.


1장과 2장은 이 책을 읽기 위한 도입부에 해당한다.

1장 에도 시대 이전의 일본

2장 근대 국가로서의 일본의 탄생으로 본격적인 주제서술 이전에 대략적으로 일본의 역사를 다룬다.

깔끔하게 정리를 잘해서 간단한 일본사 개론으로 읽어도 좋을듯하다. 


관심을 끄는건 2장 에도막부에 대한 이야기다.

에도막부가 성립하는 1603년을 저자는 굉장히 중요하게 다룬다. 그것은 일본이 에도막부의 성립으로 근대적인 국가 시스템의 핵심적인 특징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의 성리을 말하는 것이고 여기에 더해 일본이 독특한 민족문화를 완성해 일본적이라는 특징이 형성되기 시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막부는 성리학의 도입과 함께 각 신분에 맞는 행동양식을 세세히 지정하고, 현존하는 정치 질서의 틀을 벗어나는 행동이나 주장은 바로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도록 하는 사상을 의도적으로 보급시킨다. 

이런 억압적인 체제는 한편으로 매우 교묘해서 당분간은 성공적인 통치로 이어진다. 

또한 성공적인 통치 뒷편에서 지배층인 사무라이들은 사무라이 본연의 무예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이런 존재의 불안은 오히려 신분의 우월과 사무라이의 기풍을 완고하게 강조하는 쪽으로 강화되어 간다. 군사문화가 사회 전체의 지배이념으로 고착된다고 할까?

이런 전근대적인 막부의 통치방식과 새롭게 생겨나는 신흥 부르조아 계승 사이의 간극, 그런데 이 간극에서 부르조아들이 막부의 회유책에 의해 체제내화되어버리는 것 역시 일본의 독특한 시스템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막부말 개항과 대정봉환, 메이지 유신 역시 혁명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생활의 많은 것이 변했지만 실제 정치권력은 결국 지배계층인 사무라이 계층 내부의 이동에 다름 아니었으므로 혁명이라기보다는 쿠데타에 다름 아니었다.

일본인들을 지배하는 정통성에 대한 강박은 이 새로운 정권에게도 정통성을 요구했고, 그들은 그 정통성을 천환의 존재에서 가져온다. 메이지 유신의 여러 근대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천황이 직접 통치한다는 환상을 매개로 해야만 가능한 정권이었다는데서 그들의 과두정치체제로서의 위상이 있다. 

일본은 여전히 일본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엘리트 지배층은 최소한 한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점차 일본처럼변해왔다. 그것은 상존하는 모순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의동기를 스스로에게 숨기기 위한 심리적 곡예를 연마하면서, 동시에 그숨은 동기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 P39

하지만 헤이안은 정치적, 예술적, 사회적인 면에서 대륙의 모델로부터 갈라져 나와, 그동안 중국의 문화와 제도를 모방하고 흡수하던 것에서 발전해 독자적인 모델을 만들었다. 해외의 제도를 소화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 완전히 일본식으로 바꾸는 이러한 방식은 이후 일본 역사를 통해 계속 반복되어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 P55

1603년은 또한 일본이 세계사의 거시적인 흐름으로부터 의도적으로스스로를 격리시키기 시작한 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유럽의 기술과과학, 제도와 정치사상이 그 흐름에 따라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었다.
그 결과, 16세기에만 해도 군사, 정치, 기술, 경제와 같은 분야에서 유럽국가들과 대등한 국력을 가졌던 일본이 19세기 중반에는 일부 핵심 분야에서 시대에 뒤처진다. 하지만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일본의 은둔은 매우 독특한 민족 문화를 발전시켰다. 단순히 미술, 음악, 언어, 문학같은 것으로 정의되는 문화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 제도의 총합으로서의 문화라는 면에서 그렇다. 일본의 문화는 서양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웃 나라의 문화와도 점점 더 현지히 다른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 P88

도쿠가와 가문은 세키가하라 전투가 끝나고 나서, 자신들의 승리가 완전한 것이며 앞으로는 어떠한 저항도 소용없음을 과시하기 위해 교토시내에서 3일 동안 10만 명의 병력을 행진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압도적인 군사력을 과시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막부의 관료들은 물리적인 위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현존하는 정치 질서의 틀을 벗어나는 행동이나 주장은 곧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도록 하는 사상을 의도적으로 보급시켰다. 그러한 도전을 자연 질서에 역행하는 금도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 P93

도쿠가와 막부는 1615년 오사카성 함락 이후에 성립된 권력질서를영원히 유지하고자 했다. 맨 아래 불가촉천민부터 맨 위 천황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복잡한 위계질서 안에 정해진 자신의 위치에서, 세세하게 부여된 직무와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 막부가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이러한 공식적인 권력관계는 향후 265년 동안 거의 변치않고 유지되었지만, 동시에 그 표면 아래에서 꾸준히 일어나던 변화를가리는 가림막 역할도 했다.
도쿠가와 막부 체제의 일본이 매우 억압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근대의 감시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런 그기의 사회에서 이토록 억압이 만연했던 사례는 아마 역사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강권 지배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 P97

사실 사무라이들이 무예를 실전에 사용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실전경험이 역사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면서 사무라이들의 기풍은 역설적으로, 상관에 대한 절대적 복종, 어떠한 명령도 죽음을 무릅쓰고 따르는자세. 나약함과 물질적 편안함에 대한 경멸 등을 강조하며 점점 더 완고하게 군대식으로 변해갔다. 특히 마지막 항목은 정치적으로도 유용했는데, 사무라이 계급의 경제 상황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빠졌기 때문이다.
도쿠가와 막부의 첫 한 세기 반 동안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쌀로 지급되는 고정 급료에 묶여 있던 사무라이들은, 공식적으로는 자신들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경제 성장의 혜택을 대부분 가져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 결과 많은 사무라이는 신분의 우월성에만 더욱 집착하게되었다.
- P101

외부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현대 일본의 수많은 모순은, 에도 시대에 존재하던 공식적인 시스템의 구조와 실제 사회의 간극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20세기 말 일본은 역사상 가장 눈부신 경제적 성공을 거둔 나라인 동시에 꽉 막힌 이름 없는 관료주의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성공한 오사카 상인 집안들과 점검 경직화되던 사무라이 계급의 선례를 생각하면 그다지 혼란스러운 일도 아니다. 한편으로는 충성과 자기 부정을 광기의 수준으로까지 가져가면서(사무라이들의 자기희생 퀼트,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의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 과로사할 때까지 일하는 현대의 샐러리맨), 또 한편으로는 기괴한 비디오게임이나 헨타이(변태적 성욕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 망가, 괴상한 패션으로 대변되는 엉뚱하고 전위적인 예술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문화의 뿌리도 에도 시대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인들은 이런 모순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모두가 겉으로만 중시하는 척하는 사회적 평화를 위해 유지하는 가면(다테마에建前)과, 믿을 만한 사람과 술 한잔 나눌 때가 아니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는 그 밑의 현실세계(혼네) 사이의 충돌을 묘사하기 위한 단어들도생겨났다. - P102

왜 일본이 자생적 부르주아 혁명에 실패했는가에 대한 대답의 일부는도쿠가와 막부가 잠재적인 반대 세력들을 회유했던 천재성에서 찾을 수있다. 이러한 회유의 정치 문화는 막부 멸망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일본 정치의 중요한 특징으로 이어지고 있다. 집권층은 상인계급이 부의 축적을 통해 사무라이와 다이묘들에게 점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는 만사의 위계를 중시하는 그들에게 매우 불편한 일이었다. 하지만 막부가 상인들의 일에 직접 관여하고 나섰다면 절대 권력에 대한 잠재적 저항을 일깨워 유럽에서처럼 부르주아 단결의 도화선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 대신 막부는 이부분이 중요한 포인트인데, 상인 조합과 관련 단체들이 스스로를 자율감독하는 것을 전제로 그들을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이러한 자율 감독은 상업활동을 기존 권력 구조에 노골적인 도전이 되지 않는 암묵적인 테두리 안에 묶어두는 역할을 했다.  - P117

 하지만 정치 질서 자체가 신성하게 만들어진 것이고 따라서 의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은 일본에 특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 P119

천황이 직접 통치한다는 환상과, 그런 환상을 이용해 스스로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두 집권층이 통치하는 정부라는현실 사이의 간극은 반세기 후 일본 역사상 최악의 재난을 불러오게 된다. 하지만 새 집권 세력은 그 당시만큼은 그런 정치적 권위를 활용해불과 한 세데 만에 일본을 서구의 제국주의에 대항해서 이기기까지 하는 강대국으로 탈바꿈시켰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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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2-01-24 0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의 글을 읽으며 일본 에도막부의 성립과 도요토미 가문의 몰락을 구분지을 수 없고, 도요토미 가문의 몰락에서 임진왜란의 영향 또한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 봅니다. 전후 도쿠가와 가문이 조선과의 통상 재개를 원했고, 임진왜란 당시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이 일본으로 건너갔음을 고려한다면, 그들의 근대화의 기틀은 조선의 영향이 컸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메이지 유신 뿐 아니라 일본 국가 체계를 정비하는 계기였던 다이카 개신 역시 백제문화의 영향을 컸음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를 대하는 저들의 태도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봅니다. 새로운 문물이나 패자 앞에서는 한없이 굴종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 후에는 안면몰수하는 행태가 일본문화의 본질이 아니었으면 싶습니다...

바람돌이 2022-01-25 02:10   좋아요 1 | URL
이 책에서는 일본인들의 문화적 특징 중의 하나로 고유문화로서의 일본적인 것에 대한 고집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화든 다른 문화와의 교류나 영향은 기본적인 전제로서 이야기되는데 그점에서는 일본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떤 문화를 들여오든 그것을 일본 특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어떤 고집이 있는듯해요. 때로 그것은 문화적 성취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가 일본의 나라나 교토를 갔을 때 일본 문화를 보면서 느낀 것도 마찬가지였고요.
근대 이전의 문화적 영향력을 가지고 지금의 태도를 논하는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따진다면 우리가 중국에 빚진 것은 일본이 우리에게 빚진것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중국을 대하는 태도는.... ㅎㅎ
이 책은 본격적으로 일본의 역사를 다루는 것은 아니고, 1,2장은 앞으로의 논지 서술을 위한 다이제스트 정도의 내용인지라 일본인이라는 심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논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앞으로 더 읽어봐야겠지요. ^^

희선 2022-01-25 0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국 사람이 쓴 책이군요 미국 사람이지만 일본에 오래 살아서 일본을 알기도 하겠습니다 일본에 살았다 해도 미국 사람이어서 일본 사람보다 일본을 떨어져서 보겠네요 한국 사람은 외국 사람이 한국말로 말을 하면 신기하게 여기고 좋아하는데, 일본 사람은 일본말로 하니 쌀쌀맞았다니... 다 그런 건 아니겠지요 그렇게 믿고 싶기도 합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1-25 02:13   좋아요 1 | URL
저자는 미국인이지만 15살에 처음 일본을 갔고 이후 성인이 되어 일본 내 지사에 근무하면서 대학교수까지 40년을 일본에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또한 외부인으로서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면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구요. 앞으로 계속 읽어봐야겠지만 일단 흥미로운 책인 것 만은 분명하네요. ^^ 일본말로 도움을 구한 제 지인은 일본어가 진짜 유창해서 일본인으로 보였답니다. ㅎㅎ 원래 경상도 사람들이 일본어 발음이 좋아요. 저 일본어 잠시 배웠는데 그 때 발음 좋다는 말 진짜 많이 들었어요. 경상도 발음이 일본어 발음체계와 좀 유사하다 그러더라구요. ㅎㅎ

페크pek0501 2022-01-25 14: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일본을 알기 위해 <국화와 칼>을 읽었어요. 그런데 이 책은 이상하게도 일본이 한국과 비슷해서 일본적인 걸
찾을 수가 없었어요. 신기한 경험이었죠. 같은 동양권이라 그런지...

바람돌이 2022-01-27 02:01   좋아요 1 | URL
그 유명한 국화와 칼을 전 안읽었더랬죠. 지금은 굳이 찾아서 읽기 보다는 요즘의 새로운 시각들을 좀 보고싶어서 이 책을 골랐답니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같은 점을 공유하는 점도 많을테고 다른 점도 많겠죠. 최근에 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한국인이라는 책도 나왔던데 이 책도 한번 읽어보려구요. 최근에 와서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것이 우리의 미래를 대비한다는 느낌도 좀 들어요.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는 달랐다. 정치적·경제적 힘이 커진 시민이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인간의 재발견이다. 이에 따라 인간의고유한 능력으로서 언어에 대한 새로운 관념이 나타난다. 언어가더는 절대적 진리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의 상호작용을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재발견된다. ‘인간의 발견‘에 이어 인간의 언어가 전과 다른 의미를 부여받았다. 인문주의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 P28

모든 사람은 똑같은 시작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동등하게 장구하며 자연에 의해 한 가지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빌거벗으면 우리 모두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옷을 입고 그들이 우리의 옷을 입는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는 고귀하게 그들은 비천하게 보일 것입니다. 왜냐하면오로지 가난과 부만이 우리들을 다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P48

피렌체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두오모는 화려한 외부와 달리 내부 모습은 검소하고, 피렌체의 다른 성당들과 달리 도시의 유력자에게 영면할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두오모는 피렌체 시민 모두의 예배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피렌체의 유력자들은 자기 가문의 예배당을 짓거나 후원하고, 죽은 뒤 그곳에 잠들었다. 메디치가의 무덤만 해도 메디치궁의 뒤쪽에 있는 산로렌초성당에 마련되었다.
- P55

코시모가 대표하는 메디치가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다양한후원 활동을 펼치면서 사람들의 반발을 잠재우는 능력 또한 탁월했다. 공화국을 유지하는 공적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메디치가의 사적인 지배가 중심이 된 피렌체에서는 평능한 관계가 사라지고 지배와 복종, 추종 관계만 남게 되었다. 메디치가가 몇 차례 겪은 추방은명목상 공화국이 사실상 군주국으로 운영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긴장을 보여주는 셈이다.
- P66

 피렌체는 영웅이나 천재 몇 명만 사는 나라가 아니기때문이다. 그러나 메디치가의 코시모나 로렌초가 확인시킨 것쳐럼힘 있는 가문과 개인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같은 시민이라도 모든 조건이 똑같을 수는 없다. 오늘날에는 이를 대중과 엘리트,
일반 시민과 지도자 또는 팔로워와 리더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마키아벨리가 고민한 지점이 생각보다우리와 멀지 않다.
- P83

공화정을 옹호하는 현실주의자 마키아벨리는 피렌체가 직면한 메디치가의 군주적 권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메디치가의 권력이 피렌체를 더 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도록 설득하는 방법으로 비판적 지지를 택했다. 바로 이것이 마키아벨리를 군주제의 옹호자로 보이게 했다. 그러나 그는 군주제를 옹호하지 않았다. 자유를 누려온 피렌체에는 공화정이 더어울린다는 생각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는 군주제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메디치 군주 가문이 이미 장악한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기를바라서 『군주론』을 썼다.
- P94

사적인 방법은 다양한 개인들에게 사사롭게 돈을 빌려주고, 그들의딸을 결혼시키며, 행정관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그 밖에도 사적으로 유사한 호의와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이것들은 사람들을시혜자의 파당으로 만들고, 그들이 따르는 사람에게 공공을 썩게하고 법을 어겨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준다.
- P108

다시 말해, 마키아벨리는 노예적 삶이 아닌 자유로운 삶을 강한국가의 근간으로 보았다. 자유로운 삶이 도덕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공동체 내에서 시민 개개인이 역량을 발휘할 환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는 시민들에게 닥친 노예적 삶을 극복하고 공공성을 회복해 조국에 활력을 되찾아주려고 했다.
- P110

저는 신분이 낮고 비천한 지위에 있는 자가 감히 군주의 통치를 논하고 그것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는 것이 무례한 소행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지도를 그리는 자들은 산이나 다른 높은 곳의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래로 내려가고 낮은 곳의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산 위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민의 성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주가 될필요가 있고, 군주의 성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인민이될 필요가 있습니다.
- P148

그는 『군주론』에서 운명과 역량을 주요 개념으로 쓴다. 그에 따르면, 역량은 자신의 힘이고 운명은 타인의 힘이다. 운명은 내 의지와무관하기 때문에 역량에 기반을 둬야 한다. 인간의 의지 영역이 넓어질수록 운명의 영역은 좁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 닥칠지 모를 아르노강 범람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둑을 쌓아야 한다는 말과일맥상통한다. 『군주론』 25장에 이런 대목이 있다.

운명은 자신에게 저항할 역량이 전혀 갖취지지 않은 데서 그 위력을떨치며, 자신을 제지하기 위한 둑이 마련되지 않은 곳을 덮칩니다.
- P164

여기에 마키아벨리의 유명한 조언이 등장한다. 운명은 여성이니,
그녀를 거칠게 다루고 과감하게 대하라는 것이다. 지금 보기에는무모하고 무식한 비유일 수 있지만, 속뜻에 주목하자. 어차피 알 수없는 미래라면, 운명에 과감하게 도전하라는 말이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결과가 좋을 수 있다. 물론 안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운명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으라!
- P165

선덕이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도덕주의 정치만으로는 부족하다는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근대성은 바로 이렇게 도덕주의 정치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 P200

마키아벨리는 시민 문화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공화제를 옹호했다.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해 자기 목소리를 내며자유롭고 공정한 법이 지배하는 나라가 좋다고 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좋다는 것은 ‘힘의 관점‘에 기초한다. 그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윤리나 도덕이 아닌 정치의 관점에서 먼저 생각했다. 즉 옳은 정치가 좋은 것은 그것이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힘을 가져오기때문이다. - P202

『로마사 논고』에서도 마키아벨리는 폭력의 한시적 사용을 인정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사익이 아닌 공공선이다. 지도자가 나라를위해 어쩔 수 없이 비윤리적으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용납되어야한다는 말이다. 즉 적극적인 인정이 아니라 불가피성에 대한 인정이다. 사익과 대비되는 공공선은 마키아벨리가 자유와 더불어 국가의 핵심 가치로 꼽는 것이다.
- P208

결국 마키아벨리가 바라본 피렌체의 문제는 국가의 총체적 부실에 있었다. 그 부실의 핵심 원인은 국가 공동체를 구성한 시민들이무력해진 데 있다. 그리고 시민들이 무력해진 것은 소수 귀족들이권력을 독점하고 공권력과 국가기관을 사사화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의 고질병으로 지적한 분열과 대립은 시민의 연대와 유대를 사라지게 했다. 국가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고, 내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않을 때 국가에 대한 믿음도 사라졌다. 자유로운 삶에 대한 시민들의 희망이 사라지면 국가의 활력도 없어진다. 활력이 없어지는 것은 마키아벨리가 진심으로 걱정하며 올바른 정치를 통해 극복하려고 한 난관이다.
- P224

위기 속에서 국가의 미래를 고민한 마키아벨리는 고대의 목적론적이고 윤리적인 공화주의관을 극복하고 현실주의적 공화주의관을 발전시켰다. 그가 저작에서 보인 가식 없는 서술 때문에 갖가지 오해가 난무하지만, 그는 분명히 시민의 덕성에 기초해 당대 이탈리아의 요구에 부합하는 정치철학과 방법론을 제시하며 서양 공화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의 공화주의는 현대의 공화주의자들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공공선과 시민적 덕성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 P227

마키아벨리는 이행기 인물의 특징을 보인다. 그를 흔히 근대 서양 정치사상의 시조로 말하는 것은 근거가 있다. 그는 정지 이론을주장하는 데 종교의 논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정치 현상을 인간의 이성과 욕망에 기초해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그가 "인간이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못한다"는 말로 인간의 욕망을 지나치다 싶을 만큼 냉정하게 평가한 것이 대표적 예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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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상황에 맞는 정치를 주장했을 뿐이다. 악한 사람들 앞에서 몰락하지 않으려면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한다는 그의 제안만 봐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가 의도한 정치사상이 마키아벨리즘은 아니다.
- P274

공화주의적 애국심은 언어, 혈통 등에 기반을 두고 타민족에 대한 우월감을 표현하는 배타적 애국심과 다르다. 공화주의적 애국심은 공화정의 자유 헌정 체제에 대한 사랑이다.
마키아벨리는 고대 로마 시민들의 공화정에 대한 사랑이 자유를 지키고 공공선을 추구하는 시민적 덕성으로 표현된 것을 밝힌다. 로마의 이런 공화주의적 애국심은 공화정의 자유를 찾아 이민한 외국인들에 대한 포용으로 나타났다. 포용으로 인구가 늘어났고, 늘어난인구는 시민군에 편입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공화정에 대한 애국심이 충만하고 규율을잘 지킨 로마 군대가 로마를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즉 공화주의적 애국심은 적대와 배제가아닌 포용과 화합을 가져오는 것이다.
- P275

공공선은 시민적 덕성의 기반이 되는 개념이다. 시민적 덕성은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시민의 자질이자 덕목이다. 공공선의 가치를 높이 사는 이들은, 사익을 추구하는 욕망을 제어하고 공공선을 지향하면 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공존하는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공공선을 지나치게 강요해 서구 사회에서 비극적 결과를 가져온 적이 있다. 파시즘과 나치즘이 공공선을 적극적으로 규정하고 획일적으로 적용해 폭압적으로 악용했다. 따라서 공공선은 사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경향은 제어하되 개인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연대와 공존을 지향해야 한다.
- P276

마키아벨리는 저술에서 포르투나의 이런 상징과 의미를 모두사용했다. 그리고 포르투나를 대하는 인간의바람직한 태도와 행동을 강조한다. 그것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지혜, 다른 하나는제도다. 즉 『군주론』에서는 뛰어난 지도자의 선견지명이나 능력을 통한 대처를, 『로마사 논고』에서는 군대나 공화국의 제도를 통한 대처를강조한다.
- P277

마키아벨리의 비르투는 특히 다른 무엇보다도 포르투나에 대항하는 인간의 능력으로 강조된다.
고난으로 나타나는 포르투나를 극복하는 비르투가 지도자 개인의 탁월한 능력일 때도 있지만, 협력과 연대 속에 드러나는 시민의 집단적 힘이기도 한 것이다.
- P278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비록 『군주론』과 피렌체사를 메디치가에 바치고 그 밑에서 공무를 맡으려고 했지만, 그는 피렌체공화국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피렌체사에는 코시모가 사적인 방식으로 정치를 수행해 파당을 형성하고 권력을 잡은 것에 대한 비판이 있다.
마키아벨리가 공화주의를 지지하면서도 메디치가에 손을 내민 이유는 위기에 빠진 피렌체의 몰락을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메디치 군주국의 강화가 아니라 피렌체의정치 및 군사 제도의 보완을 위한 방법과 대책을 제안했다.
- P278

마키아벨리는 귀족을 인민과 더불어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 세력으로 본다. 귀족은 소수이며 지배욕이 있다. 자유롭게 살려고 하는 인민을 억압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글을 읽을 줄 알고 무기를 쓸 수 있기 때문에 국가에 크게 기여하기도 한다. 마키아벨리는 기본적으로 귀족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그들의 능력을 바르게 쓰며 공존해야한다고 보았다.
- P280

마키아벨리는 인민을 두 가지 의미로 쓴다. 하나는 공동체 구성원 전체고, 다른 하나는 귀족과 대비되는 계층적 의미에서 일반 시민 또는 평민이다. 마키아벨리는 두 번째 인민 개념에 좀 더 관심을 쏟는다. 인민이 귀족과 더불어 국가 구성의 핵심 세력이기 때문이다. 다.
수를 이루는 인민은 귀족과 달리 자유롭게 사는 데 만족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에서
"인민의 목포는 귀족의 목표보다 더 명예롭다"고 말한다. 그는 인민에 기반을 둔 나라를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로마사 논고, 초반부에서 말하듯 자유의 수호자가 바로 인민이기 때문이다. 자국군을 채우는 인력 또한 인민이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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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라키라 2022-01-19 0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용보고 궁금해 책을 검색해 봤더니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였네요 여기 시리즈의 책도 재미있을것 같아요 구매해봐야 겠어요^^ 덕분에 좋은 책 소개받은 느낌이네요

바람돌이 2022-01-27 02:48   좋아요 1 | URL
클래식 클라우드 같은 기획시리즈는 저자에 따라서 책의 완성도가 차이가 좀 있는 편이에요. 하지만 일단 기획이 참신하고요. 전체적으로 각 책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섭외해서 만든지라 퀄리티가 좋은 편이에요. 저는 한 군씩 열심히 보고 있는데 대체로 다 만족하는 편입니다. 별점 4개에서 5개사이에 다 분포해 있더라구요. ^^

키라키라 2022-01-27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권씩 사 볼려구요 요즘은 알라딘 배송이 안되어 주문자체가 불가능해서 넘 슬프네요
 
벨 에포크,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 - 셀럽과 스타가 탄생하고, 백화점과 루이 뷔통과 샴페인이 브랜딩의 태동을 알리던 인류의 전성시대
심우찬 지음 / 시공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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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목에 대해서 딴지부터 걸고 싶다.

19세기말, 그 시대를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라고 부르는 건 그들 맘이겠지만,

그게 꼭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언제든 아름답고 또 언제든 추하다 

딱히 어느 시대라고 해서 특별히 더 아름답지도, 특별히 더 추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19세기말의 유럽 역시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하는 시대일 뿐이다.

산업혁명의 성과가 본격적으로 향유되었고, 또 한편으로 그것은 아시아 아프리카의 무수한 식민지를 착취한 결과였던 시절.

모든 것이 넘쳐나고 여기저기 돈이 뒹굴고 다니지만, 그 맞은편에는 극단적인 빈부격차로 가난한 이들의 삶은 비참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였던 시절.

거기다가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경쟁과 대립 역시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그래서 특별할 것 없는 시절.

다만 신흥계층인 부르조아들의 넘쳐나는 돈으로 인해 온갖 문화투자와 상품소비가 과하게 넘쳐 흘러 문화적 성취들만큼은 활발하던 시절이라고 할까?

산업이 그러했듯 문화에서도 온갖 실험과 새로운 생각, 새로운 표현들이 나오고 또 용인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을 뿐인 것이다.

다른 시대보다 좀 더 역동적이엇던 시대 이미지를 제목으로 붙이는 것이 오히려 책의 내용에 더 맞지 않을까?

그러면 책이 안 팔리려나? 


그래도 제목에 비해서 실제 책의 내용은 어느정도 균형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목에 딴지를 걸고 싶은 것은 제목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 덕분에 이 책과 이 시대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의외로 책은 벨 에포크 당시와 그 시대를 살았던 셀럽들에 대해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오히려 당시의 분위기를 맘껏 느끼며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당대를 풍미했던 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다행히 이 인물은 알폰소 무하를 읽으면서 익숙한 인물이다.

코르티잔인 어머니의 삶을 반복하거나 수녀가 되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한다는건 이 시대 여성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보석세공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르네 랄리크처럼 처음 듣는 이도 있지만 명품의 대명사처럼 얘기되는 루이 뷔통이 여행용 트렁크를 만드는데서 시작되는 탄생과정을 읽는 것도 흥미롭다. 

페미니즘의 태동과 각기 다른 운동들의 형태, 거기에 관여한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더더욱 흥미롭다. 

구시대의 유물이면서 벨 에포크를 활짝 피게 만든 살롱문화를 이끌었던 여성들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이고...

언제든 인간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온전히 그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또다시 느끼게 해준다.


메리 메콜리프의 예술가들의 파리 4권짜리를 읽기 전에 워밍업삼아 선택한 책이었지만 이 책대로 이 시대의 분위기를 즐겁게 맛보기에 적절한 책이다.

또한 책의 곳곳에 당시의 음악과 영상들을 찾아볼 수 있는 QR코드를 같이 올려주어서 동영상과 음악과 함께 책을 읽는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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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10 17: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벨 에포크˝라는 어감이 멋진것 같아요. 프랑스어는 왠지 좀 고급스럽게 느껴져요 ㅎㅎ

바람돌이 2021-10-11 20:41   좋아요 2 | URL
그래서 프랑스어가 18세기 19세기 유럽 궁정어가 됐겠죠. 그 때는 궁정인들은 프랑스어로 얘기할 줄 알아야 제대로 된 귀족이라고 햇대요. ^^ 하지만 프랑스어가 성조가 좀 세잖아요. 그래서 말을 빨리하거나 하면 굉장히 시끄럽더라구요. 영화볼 때요. ㅎㅎ

프레이야 2021-10-10 20: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저자 책 <프랑스여자처럼>을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은 더더 스타일리스트다운 내용이네요.
인간을 통해 시대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늘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되어요. 인간은 개별적이기도 하지만
보편적이기도 하니까요. 그나저나 워밍업 독서라니 계획 세워 읽으시나 봐요.
무조건 화이팅입니다, 바람돌이 님.^^

바람돌이 2021-10-11 20:43   좋아요 2 | URL
아 저는 이 저자 책은 처음이었어요. 패션쪽에서 일하시는 분이시라 그런지 일반 역사가들과는 좀 다른 시각들이 신선했습니다. 계획은 아니고요. 제가 한국인든 외국이든 근대쪽에 관심이 좀 많아서 보려고 찜해둔 책이거든요. 책탑들 사이 사이로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습니다. ㅎㅎ

붕붕툐툐 2021-10-10 21: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바람돌이님 대장정을 앞두고 계시는군요! 이번엔 어떤 작품일까 완전 기대됩니다~!!😍

바람돌이 2021-10-11 20:44   좋아요 1 | URL
대장정이라뇨. 앞에 읽었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에 비하면 다 껌입니다. ㅎㅎ
지금 바로 파리의 예술가들 시리즈를 읽을 건 아니고요. 이번 달에는 제 2의 성을 조금씩 조금씩 매일 매일 읽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책은 아직 배송중이군요. 연휴가 길어서요. ㅎㅎ

초딩 2021-10-12 0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세가를 멋지게 그리고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셨네요~~~
무하에 대해서 저도 읽고 싶어요 :-)
그리고 qr로 자료 링크를 삽입하는거 참 좋은 것 같습니다 ㅎㅎㅎ 편안한 밤 되세요~

바람돌이 2021-10-12 01:22   좋아요 0 | URL
19세기의 화가, 문학작가, 배우, 무희 등등 진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초딩님도 편안한 밤 되세요. ^^

희선 2021-10-12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벨 에포크 들어보기는 했지만 잘 모르기도 하네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본 적 있는 것 같기도... 어느 나라 사람이나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옛날이 좋았어, 하고 말하기도 하니... 사람은 언제나 아름답기도 추하기도 하네요


희선

바람돌이 2021-10-12 01:20   좋아요 1 | URL
벨 에포크시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우디 앨런일까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딱 그 얘기잖아요. ㅎㅎ 저는 뭐 굳이 그 시대로 가고싶다는 생각은 안하는데 그래도 영화속에서 유명 작가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주인공을 보니까 좀 황홀할 거 같긴 하더라구요. ^^
 
작은‘한국전쟁’들 - 평화를 위한 비주얼 히스토리
푸른역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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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작은 한국전쟁들 26페이지)


이 소년들은 누구일까? 동그라미 안의 소년은 왜 저렇게 괴로워 보이고, 오른쪽 끝의 소년은 무언가 눈치를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걸까? 모든 소년이 하나같이 지치고 힘들어 보이는건 왜일까?


제주도의 양일화 할아버지는 1948년 11월 20일(16세 때) 제주읍 친척집으로 가다가 대한청년단에게 잡혀, 제주 4.3무장대를 도왔다는  혐의를 억울하게 뒤집어쓰고 끔찍한 고문을 받은 후 재판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인천소년형무소로 보내졌다.

인천소년형무소로 보내진 소년범들은 166명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1950년 6월 29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천소년형무소에서 후방의 대전형무소로 이감중이던 소년들이었던걸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로 이감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전쟁에서 이른바 사상범으로 분류된 이들 대부분은 흔적도 못 남긴 채 사라졌다.

이곳에 있었던 양일화 할아버지처럼 살아남은 이는 극소수다. 

한국전쟁에서 몇명이 어떤 이유로 죽었다는 통계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이런 구체적인 얼굴들이다.

통계숫자를 대할 때와 달리 사진속 저 소년의 눈빛과 절망어린 몸짓을 대하는 순간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되고, 이들의 고통과 억울함이 가슴을 때린다.




                                                           (출처 - 작은 한국전쟁들 183페이지)


상의를 탈의한 저 청년들은 누구인가?

전쟁포로 교환을 통해 귀환한 국군 포로들이다.

판문점을 통과해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은 북한인민군 복장의 포로복 상의와 바지를 다 벗어버린 채 팬티만 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죽음으로 애국을 입증하지 못하고 살아 귀환한 포로에 대한 이중적 시선을 직감해서인지 이들은 필사적이다.

그러나 그 필사적인 입증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간 곳은 거제도 근처 작은 섬 용초도라는 곳에 있는 포로수용소였다.

포로 교환 이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따로 고위급 또는 열성분자 포로들을 수감했던 곳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사상의 건전성(?)을 또다시 입증해야 했다 

그것을 입증하지 못한 이들은 즉결처형됐다.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고향으로 돌아온 포로들의 이야기는 정말로 처음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강요되고 있는 사상검증, 시도때도 없이 소환되는 좌경용공의 마타도어는 결국 한국전쟁의 결과이다.


사진은 때로 백마디의 말보다 더 빠르게 진실을 전한다.

물론 사진은 그렇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저자가 모은 사진들은 대부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한 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은 대부분 미군의 홍보전을 위해서 찍힌 사진들이다.

당연히 사진들은 원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것이 찍힌 맥락을 읽어내야 한다. 

저자는 각각의 사진들의 맥락을 찾아가면서  잘 못 기록된 것은 무엇인지를 꼼꼼하게 찾아 한국전쟁의 진실을 알려주고자 한다.

무엇을 위해서?

결론은 용산전쟁기념관에 이른다.

한국전쟁은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곳은 아직도 내 생명 영원한 조국을 위해라고 외치면서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끝없이 상기시키는 공간이다.

그 속에서 일제의 군국주의적 자살특공을 살신보국의 애국주의 이념으로 탈바꿈시키면서 전쟁영웅을 찬미하고 있다.


전쟁이 끝난지 곧 70년이다.

우리는 여전히 전쟁이 시작된 날 6월 25일을 기념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그날 새벽 물밀듯이 남으로 내려오던 북한군을 상기하면서 언제나 경계하고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으니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이며, 우리 사회내에서 북한을 이롭게 하는 좌경용공분자들을 경계하고 타도해야 한다는 나라에 여전히 살고 있다.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에 끝났다.

2차대전을 겪은 여러나라가 각각 자국의 종전일을 기념하듯이, 우리 역시 전쟁 시작일이 아니라 전쟁이 끝난 날을 기념하는 것은 언제쯤 될 수 있을까?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해서 -용산 전쟁기념관이 평화박물관이 되고, 상기하자 6.25가 아니라 평화를 기억하는 7.27이 되는 날을 위해서 역사학자들이 여전히 이런 책을 쓰고 있다.

그냥 기억하라가 아니라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되새기는 책읽기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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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8-06 16:5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짜릿합니다.

적어 주신 대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고 생각합니다.

바람돌이 2021-08-06 17:26   좋아요 5 | URL
그럼요 그럼요. 기억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가 중요한거 맞죠? 이렇게 제 의견에 동의해 주셔서 제 어깨가 들썩입니다. ^^

mini74 2021-08-06 17:1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종전일에 대해서 정말 별 생각이 없었던것 같아요. 6월이면 붉은 글씨로 분노하며 포스터를 그리라 강요받던 80년대의 교육때문일까요. 평화보단 두려움과 증오를 배운 기억만 ㅠㅠ 그래서 조금 더 커서 접한 다른 이야기들은 충격이 컸어요. 초등 저학년땐 북한군이 정말 돼지머리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참 좋은 글이에요. 7월 27일을 기억하며.

바람돌이 2021-08-06 17:28   좋아요 5 | URL
아무도 종전일을 얘기하지 않으니까요? 그걸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자체를 막은게 여태까지의 우리 사회잖아요. ㅎㅎ 제가 대학 때 불온문서로 북한여행기를 읽었는데요. 아 진짜 저 자신한테 충격이었던게 뭐냐하면요.
그 여행기를 읽으면서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한거예요. ㅎㅎ 우리나라 반공교육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피부로 확 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stella.K 2021-08-06 19:5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바람님도 한국전쟁에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저도 요즘 한국전쟁에 관심이 좀 생겼습니다.
지금까지는 왜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쟁으로 우리가 어떤 피해와 상처를 받았는지 또 그것을 통해 반공만을 고취시킨 것 외엔
우리나라 전쟁임에도 피상적 알고 있다 싶더군요.
이건 아무래도 사상 전쟁이고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이란 생각이 듭니다.

바람돌이 2021-08-07 00:02   좋아요 4 | URL
한국전쟁의 논의에 대해서는 사실상 민감한 부분이 너무 많아요. 조금만 말을 틀어도 다 실정법에 걸리기 딱 좋은 소재죠. 저도 이번에 한국전쟁 수업하고 나서 학부모한테 항의전화 걸려왔다는.... ㅎㅎ(학부모가 일베같던데요. 왜 맥아더의 위대함을 인정하지 않느냐 뭐 이런.... 아 진짜 미치겠어요. ㅎㅎ)
최근에 미국쪽에서 비밀문서로 묶여있던 것들이 많이 풀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쪽에서도 그 자료들을 가지고 연구하고 결과를 내놓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고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이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인 면은 분명히 있지만 사실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은 너무나도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들이 얽혀있는지라 그 한면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해요.
실제로 1948년 남북 단독정부 수립 이후 한국전쟁 일어나기 전까지 38도선에서 일어난 자잘한 전투 횟수가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 520회정도입니다. 거의 매일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다고 봐야죠. 결국 우리나라 내부의 대립도 심각했다고 볼 수밖에 없을 듯해요.

붕붕툐툐 2021-08-06 22:3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한국 전쟁만 생각하면 부글부글합니다. 진짜 우리 민중들이 너무 가여워서요.. 바람돌이님 요즘 이런 책 많이 읽으시네용?^^
아직 한국전쟁이 완전한 종전이 아니어서 그런거 아닐까요? 얼른 종전선언을 해야하는데, 아직도 휴전 중인 거니까요. 그날이 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바람돌이 2021-08-07 00:06   좋아요 4 | URL
나치의 유대인 학살, 보스니아 내전, 시리아 내전, 아프리카의 내전들.... 뭐 이런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종전선언 아마 쉽지 않을겁니다. 미국, 일본 중국 어느 나라도 원하지 않는듯하구요. 실제로 국내의 보수세력들도 원하지 않을걸요. 태극기부대는 아직도 무찌르자 북한이잖아요. 실제로 전쟁나면 자기들은 싸우지도 않을거면서 말이죠. 어쨌든 종전선언과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 세대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새파랑 2021-08-07 08: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설명을 사진으로 보니 더 와닿는거 같아요. 참 사상이라는게 뭔지 ㅜㅜ

바람돌이 2021-08-08 00:00   좋아요 0 | URL
저는 솔직히 한국전쟁을 사상전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 전쟁에서 사상이 중요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었을까요? 그건 전쟁을 일으키고 지속해나갔던 핵심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상은 그 전쟁을 일으키고 지속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레이스 2021-08-07 08:3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분단선을 사이에 두고 마타도어를 양산하고 있고 그것을 이용한 암투가 계속되고 있으니... 전쟁은 지금도 진행중인거겠죠.
종전선언을 한다고 해도 그 상황은 지속되지 않을까요? 분단선은 우리 안에 있어서 그 철조망을 걷어내지 않으면 평화로 나가는 한발자욱은 더디기만 할것 같습니다.
우리안에 있는 미래에 종전 평화 통일이 있는지 ...?!

바람돌이 2021-08-08 00:02   좋아요 2 | URL
분단과 증오로 이익을 얻는 세력이 아직도 너무 많은거지요. 아직도 막대한 국방비만 생각해도 각이 나오는걸요. 그럼에도 다른건 몰라도 평화는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의 생존과 직결된 것이므로 무조건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희선 2021-08-08 0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국전쟁이 끝난 날은 있지만, 아주 끝난 것도 아니군요 여전히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으니... 평화롭게 통일하는 것만큼 좋은 건 없을 텐데,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게 좋겠지요


희선

바람돌이 2021-08-08 01:41   좋아요 3 | URL
통일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통일에 부수적으로 딸려올 문제가 너무 많고 일단 남북이 너무 다르죠. ㅎㅎ 하지만 평화유지를 위한 노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