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에서 혼자 묵독하는 시는 그 감동이 아무리 크다 해도홀로 고독 속에서 적막 속에서 서서히 사라질 것입니다. 시를낭송하면 그 소리는 낭송하는 인간의 몸에서 빠져나와 타인에게로 향합니다.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소통적이고 타인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 청각이라고 합니다. 소리가 인간을 황홀하게 하는 것은 단독으로 소유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시를 크게 소리 내서 읽어보고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물리적 소리도 들어보고 또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숨겨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 필요하지요. 저절로 시의 리듬에몸을 맡기고 하염없이 그 시의 말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고 황홀해지겠지요. 그때 위로가 찾아옵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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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이영채.한홍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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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자 신문기사에는 민경욱이 드디어 백악관 앞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죽었다"라고 하면서 1인 시위를 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일단은 쪽팔린다.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주장할 수도 있고 다 그럴 수도 있는데 왜 시위장소가 미국 백악관 앞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베 수상님 죄송합니다를 외치던 주옥순과 판박이다.

한국의 우익들은 오늘도 이렇게 국민들을 웃겨주려고 열일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는 저 모든 일이 웃기는 일이 아니게 돼버리는게 우리의 비극이라고 할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평소에 이 문제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일본이 진심으로 전쟁을 포기하고 평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이 필요하고, 그 진지하고도 의미있는 첫걸음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전하는 충격적 진실은

 

또 한편으로는 일본의 평화주의가 갖고 있는 명확한 한계도 지적했습니다. 자신들이 아시아에 저지른짓에 대해 속죄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본은 ‘일국 평화주의‘에 머무를 뿐이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P259

 

전후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도 전쟁의 피해국이라는 집단 최면에 홀린듯 하다.

그 이유의 가장 큰 부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으로 인한 것이다.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국이라는 것이 모든 역사적 죄악을 덮어버린 것이다.

내가 피해자인데 전쟁의 책임이나 반성이 어디에 설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일본의 시민사회가 가지고 있는 평화인식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입었던 그 피해를 다시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필요로서의 평화를 넘지 못하고, 이는 전쟁을 일으켰던 주범들과 그 후예들이 계속 일본 사회 내에서 권력을 잡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토대가 된다.

내가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강한 국가의 존재, 전쟁은 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국가는 강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현주소인듯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일본의 평화주의의 한계는 너무도 명백하다.

만약 상황이 변하여 내가 피해를 입는다면 전쟁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는 것은 정말 한순간일 것이므로....

 

한국의 우익은 상당히 아이러니한 존재들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우익들은 강력한 국가라는 환상을 매개로 성장한다.

하지만 한국의 우익의 뿌리는 이승만이 살린 친일파에서 시작되고, 박정희에 의해 광범위하게 다시 살아난 온갖 일제 잔재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주적-북한-을 향해서는 강력한 국가를 지향하지만, 우리보다 강한 국가-미국, 일본-에 대해서는 비굴할 정도로 굴종의 모습을 보인다.

저 코미디 같은 민경욱이나 주옥순이 서있는 지점이다.

 

한국에 있어 친일파의 문제는 단순히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이승만 시절에는 사람의 문제와 사회구조, 문화의 문제가 모두 섞여 있었고, 박정희 시대로 오면 친일파 출신이냐 아니냐라는 문제보다는 그들 집권자들이 만들려고 했던 사회구조와 문화가 더욱 문제가 된다.

박정희와 친일파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지적하는대로 박정희 개인의 친일여부가 아니다. 그는 본격적인 친일파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젊었고,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해방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일본 아베 총리의 정치적 지향이자 외할아버지인 전범 기시 노부스케는 박정희에게도 정치적 아버지이다.

그가 만들고자 했던 국가의 모델이 바로 만주국이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아주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기시는 사실상 만주국을 설계한 사람입니다. 이런 만주 경험은만주군 장교로 근무한 박정희와 잘 맞아떨어졌지요. 사실 유신 시대의 국방국가 한국은 만주국 모델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생겨난 한일 간의 유착관계에는 기시와 박정희가얽힌 만주국 인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습니다.
- P108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친일잔재의 청산은 단순히 누가 친일파인지를 가려내는게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일본 군국주의의 유산들, 그들이 퍼뜨린 군국주의의 유령들을 몰아내는 것, 그럼으로써 억압적이고 양비론적인 문화를 바꾸는 것이 진정한 친일청산의 과제일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황국신민학교의 줄임말인 국민학교를 모르고 다녔다.

아직도 황국신민서사를 본뜬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의조차도 불가능하다.

한국전쟁 시기 국군이 운영했던 군 위안소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으며 이런 사실이 자랑스럽게 국방부 공식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베트남에서 우리가 저질렀던 범죄에 대해서도 여전히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고 있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사진이 하나 있었다.

한 초등학교 교사의 전신문신 사진이었는데 솔직히 내가 보기에도 많이 심해서 내아이가 중학생 정도가 아니라 그 초등학교 학생이라면 조금 꺼려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프랑스사회에서는 이 문신 남성이 초등학교 교사로 적합한가 않은가에 대해서 논쟁이 가능하다는 것이 내가 부러운 지점이었다. 우리 사회였다면 무조건 퇴출이었으리라고 본다.

타인에 대한 관용과 다름에 대한 인정 역시 군사주의적인 문화에서는 어렵고도 어렵다.

 

일본은 사실 더 답이 없어보인다. 길이 안보인달까?

혐한을 먹이로 하며 일본 우익은 어떤 악재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고, 오히려 확대되는 듯하다.

지난 9월 아베는 총리에서 퇴임하면서 다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일본의 우익은 어쨌든 야스쿠니신사를 국가 공식 추도원으로 격상시킴으로써 그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죽은 이들을 국가를 위한 희생으로 공식화시키고자 한다. 이는 결국 일본의 헌법 9조 - 자위대의 무력행사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조항의 개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에 일본의 혐한 우익의 득세, 그리고 자위대의 교전권 인정이 가져올 동북아의 새로운 지형 등 갑갑하기 이를데 없는 일본 내부다.

 

사실 일본의 시민사회에 대해서는 항상 궁금한게 많았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는 일본의 여러가지 해프닝들에 대해서도 우리야 바다 건너라고 웃긴다고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왜 일본 국민들은 저 꼴을 보고만 있을까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다.

이런 일본의 상황을 가져오는데는 전후 일본 시민운동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데 이 책에서 상세히 알려주고 있었다.

 

 결국 1960년 6월 19일 자정이 되어 안보조약 개정안이 자동적으로 성립됨으로써 안보반대 사회운동 진영이패배하게 됩니다. 격렬했던 반대운동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지요. 한국에서는 4·19 혁명이 일어났던 바로 그 무렵입니다. 한국이었다면 개정안이 강행되더라도 곧장 폐기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하고 계속 이어갔을 것입니다. 정권을 바꿔서라도 목표를이루기 위해 투쟁했겠지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일단 법이 제정되어 실행되자 완전히 패배했다고 생각하고 포기해버렸습니다. 일본사회운동의 특징일 수도 있는데, 1960년부터 거듭해서 이런 경험을 하며 점점 패배주의가 쌓였고 사회운동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깊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 P241

 

1970년대 일본사회운동의 몰락은 이후 커다란 구조적 문제를 남겼습니다. 우선 운동세력 내에서 연대에 대한 불신이 강해졌습니다. 전학련, 전공투, 적군파 등 큰 조직에서 발생한 모순과 폐해를목격한 뒤로 수평적 연대를 하지 않는 경향이 생겨났지요. 지금도일본 공산당과 사회당은 절대 손을 잡지 않고, 시민운동단체들도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사회운동 조직은 갈수록 작아질 뿐 크게통합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사회운동이 권위주의적 체제 해체나 안보조약 폐지같은 큰 주제를 다루기보다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세울 수 있는과제들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여성운동, 원전 반대, 군사기지 반대, 장애인 해방, 소수민족 차별 해소 등으로 사회운동이 세밀하게 분화되었지요. - P248

 

일본이 자랑하는 역사 중에 만세일계(萬世一系)라는 것이 있다.

2,000년간 천황의 혈통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는 것인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한번도 역성혁명을 겪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1,000년이나 이어졌던 무사정권도 천황을 허수아비로 두었을지언정 천황의 집안을 유지했다.

임진왜란에서 일본군이 조선에서 절대로 이해할 수 없고 두려워했던 것이 의병의 존재였다.

일본의 경우 어떤 전쟁이든 전투가 벌어지고 우두머리가 항복하면 그것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인데, 왜 조선에서는 왕이 도망을 갔는데도 백성들이 싸우냐는 것이다.

강력하고 영원불멸한 권력에의 의지, 그에 대한 복종이 일본인 내면 유전자에 새겨져버린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희망은 결국 일본과 한국의 시민세력이다.

그들의 역사와 현재를 이야기 하는 이유도 한일관계를 제대로 협력과 평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양국 시민사회의 연대 이외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일관계의 어려움과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 역시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 시민사회에서 No아베로 방향전환을 한것은 옳았지만, 그것이 국민의 전반적인 정서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느낌이다.

많은 이들에게 No아베는 여전히 No일본이다.

지금은 코로나사태로 수면 밑으로 살짝 가라앉아 있는 듯 하지만, 오히려 그 수면 아래서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와 극일주의 적대적 감정들이 모락모락 키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한때는 시기와 부러움, 증오의 대상이었던 일본이 지금은 약간의 우월감과 냉소, 비웃음의 대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결국 한일 양국에서 저 우익들과 국가주의 민족주의가 강화되어지는 토양이 될 뿐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의 한일관계에서 일본과 한국의 사람들은 서로를 거울처럼 따라하며 닮아가고 있는듯도 하다.

어디에서부터 이 두 이웃나라의 문제를 풀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데 결국 희망은 시민사회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결론을 곰곰히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때다.

 

만약 한국이 계속해서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전면에내세운다면 일본 시민사회는 한국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극우주의에 전부 포섭될 것입니다. 그런 흐름은 일본의 헌법개정 및 동아시아 평화의 위협으로 이어지겠지요.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은 갈등과 혐오가 필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한국과 공통점이 많은 덕에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일본을 직시하고 배울 건 배우면서 연대해야 합니다. 그랬을 때 비로소 우리는진정한 과거사 청산은 물론이고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향해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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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문재인정부를 포함해서 남북 협상이 그렇게 많이 이루어졌지만 그 속에서 재일조선인 문제를 제대로 논의해본 적은 한 차례도 없습니다. 이제라도 바뀌어야 합니다. 재일조선인들에게는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언어 능력만이 아니라 양국의문화를 직접 체험하면서 국경과 민족의 고정된 정체성을 넘어 다양한 자아실현이 가능한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남북한이 통일되고 식민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초월한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가 실현된다면, 한국 또는북한 또는 일본의 정체성을 강요받아왔던 재일조선인은 한 국가나민족의 정체성이 아닌 아시안(Asian)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을것입니다. 그때야말로 재일조선인의 불안정했던 법적 지위와 정체성은 자연스럽게 해결되겠지요.
- P219

결국 1960년 6월 19일 자정이 되어 안보조약 개정안이 자동적으로 성립됨으로써 안보반대 사회운동 진영이패배하게 됩니다. 격렬했던 반대운동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지요. 한국에서는 4·19 혁명이 일어났던 바로 그 무렵입니다.
한국이었다면 개정안이 강행되더라도 곧장 폐기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하고 계속 이어갔을 것입니다. 정권을 바꿔서라도 목표를이루기 위해 투쟁했겠지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일단 법이 제정되어 실행되자 완전히 패배했다고 생각하고 포기해버렸습니다. 일본사회운동의 특징일 수도 있는데, 1960년부터 거듭해서 이런 경험을 하며 점점 패배주의가 쌓였고 사회운동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깊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 P241

1960년 안보투쟁 이래 일본의 사회운동이 거듭 패배하자 등장한것이 ‘적군파(赤軍派)‘ 입니다. 적군파는 1969년 분트의 극좌 세력이독립하여 결정한 조직입니다. 그들은 혁명에 군대가 반드시 필요하며, 오로지 물리적 폭력으로써만 혁명이 완수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일본에서는 혁명이 불가능하고, 일본을 혁명사령부로 삼되 전 세계의 다른 혁명주의와 연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 P246

1970년대 일본사회운동의 몰락은 이후 커다란 구조적 문제를 남겼습니다. 우선 운동세력 내에서 연대에 대한 불신이 강해졌습니다. 전학련, 전공투, 적군파 등 큰 조직에서 발생한 모순과 폐해를목격한 뒤로 수평적 연대를 하지 않는 경향이 생겨났지요. 지금도일본 공산당과 사회당은 절대 손을 잡지 않고, 시민운동단체들도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사회운동 조직은 갈수록 작아질 뿐 크게통합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사회운동이 권위주의적 체제 해체나 안보조약 폐지같은 큰 주제를 다루기보다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세울 수 있는과제들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여성운동, 원전 반대, 군사기지 반대, 장애인 해방, 소수민족 차별 해소 등으로 사회운동이세밀하게 분화되었지요.  - P248

오늘날 일본 시민운동은 자발적 집합 · 자발적 해체를 전제로 삼고 있습니다. 강령이 없거나 있어도 아주 자유롭지요. 시민 개개인이 반전, 환경보호, 장애인 평등 등 자신이 공감하는 목표를 좇는조직에 몸을 담고 스스로 조사와 연구를 합니다. 시민이 자기 돈을들여서 운동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목표를 이루든지 해서의미가 없어지면 미련 없이 조직을 해체합니다. 나중에 필요해지면 다시금 뭉치기도 하지요. 작은 규모의 조직들이 끊임없이 결성과 해체를 반복하는 것은 일본 시민운동의 중요한 특징으로 베평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P253

양기호 교수는 일본 평화주의의 광범위한 잠재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본의 평화주의가 갖고 있는 명확한 한계도 지적했습니다. 자신들이 아시아에 저지른짓에 대해 속죄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본은 ‘일국 평화주의‘에 머무를 뿐이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P259

만약 한국이 계속해서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전면에내세운다면 일본 시민사회는 한국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극우주의에 전부 포섭될 것입니다. 그런 흐름은 일본의 헌법개정 및 동아시아 평화의 위협으로 이어지겠지요.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은 갈등과 혐오가 필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한국과 공통점이 많은 덕에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일본을 직시하고 배울 건 배우면서 연대해야 합니다. 그랬을 때 비로소 우리는진정한 과거사 청산은 물론이고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향해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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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익을 공부할 때는 두려움 같은 게 느껴집니다. 1800년대를 보면 한국은 전혀 근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조슈나 사쓰마라는, 우리로 치면 포항이나 영덕 같은 곳에서 서른 살 남짓한 사람들이 전 세계를 내다보며 전략을 세우고 일본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시아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들이 밀고 나간 궤적을 보면 정말 치열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국의 우익에는 없는 점이지요. 더 중요한 건 일본의 우익이 보여주는 희생과 헌신의 전통입니다. 역시 한국 우익에는 없는전통입니다. - P94

기시는 사실상 만주국을 설계한 사람입니다. 이런 만주 경험은만주군 장교로 근무한 박정희와 잘 맞아떨어졌지요. 사실 유신 시대의 국방국가 한국은 만주국 모델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생겨난 한일 간의 유착관계에는 기시와 박정희가얽힌 만주국 인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습니다.
- P108

박정희가 1945년 이전에 물리적으로 한 친일은 그렇게 심하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박정희는 친일파가 되기 위해 긴 기간준비운동만 한 셈입니다. 대구사범학교부터 일본 육사까지 문무를겸비해 제국에서 출세하기 위한 발을 내디디자마자 일본제국이 패망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박정희를 ‘원조 친일파‘라고 하는 이유는 집권한 이후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대한민국을 일본 극우파가생각했던 방향으로 끌고 갔기 때문입니다. 바로 일본이 만주국을경영했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 과정에서 박정희의 사상적 지도자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세지마 류조고, 그 배경에 황도파의 사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P112

해방됐을 때열다섯 정도였던 군국소년 중 많은 수가 혼동기에 청년단원이 되었습니다. 서북청년단 같은 단체가 성행했던 이유입니다. 또 이들은 스무살 무렵에 병사가 되어 한국전쟁을 치렀습니다. 정작 일본의 군국소년들은 군대가 해산돼 전쟁을 치르지 않았죠.
군국소년이었다가 청년단을 거쳐서 군인으로 한국전쟁을 치른병사들은 전쟁이 끝난 후 어떻게 됐을까요? 조봉암이 진보당사건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반공청년들이 법원에 쳐들어와서 빨갱이 판사를 타도하자고 외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반공청년 세대가 바로 일제가 키워낸 군국소년들입니다. - P138

해방된 지 벌써 75년인데 아직도 친일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네, 안타깝지만 아직도 친일 타령해야 합니다. 『친일인명사전 이 우여곡절 끝에 2009년, 그러니까 해방되고 64년이 지나서야나왔습니다. 발간 당시 사전에 수록된 인물 4,500여 명이 거의 다죽고 딱 두 명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저항이 심했지요. 친일파 정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일파 정리는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을 정리하면 친일파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입니다. 중요한 건현실입니다. 오늘 친일 문제의 싸움터는 1920년대, 30년대, 40년대의 역사연구가 아닙니다. 친일파를 누가 이어받았는가? 그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 그 힘을 깨버리는 게 친일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연구는 그다음에 숨 돌리면서 하면 되지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주전장‘은 여기, 지금 이 순간입니다.
- P142


많은 이들이 조선학교가 정규학교로 인정을 받으면 일본사회의전반적인 인권 수준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일본의재일외국인 관련 정책이 대부분 재일조선인을 기준으로 세워지기때문입니다. 조선학교를 지원하지 않기 위해 모든 외국인 학교를정규학교로 인정하지 않듯이, 일본은 재일조선인을 배제하기 위해국제인권법이나 아동권리조약 같은 것들을 위반하는 일이 일어나도 방치하고 있습니다. 1992년까지 일본에 영주하는 외국인이 지문을 등록해야 했던 것은 대표적인 예이지요. 재일조선인 때문에모든 외국인에게 지문 등록을 강요했고, 국제적인 비난을 받으면서도 수십 년 동안 제도를 폐지하지 않았습니다.
- P199

재일조선인들은 해방 이래 지금까지 줄곧 똑같은 질문을 받아왔습니다. "당신의 정체성은 일본입니까, 남한입니까, 북한입니까?"
예전 한 재일조선인은 이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정체성이 그렇게나 중요합니까? 왜 정체성에 그 정도로 연연합니까? 밤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수없이 있는데, 어떤 별은 한국 것이고, 어떤 별은 일본 것입니까?" 재일조선인 개개인이 반짝이는 별들처럼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갔으면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 일화는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에만 관심을 두는 편협한 시각에일침을 가합니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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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아베 내각의 혐한정책을 지지하는 일본 국민들의 의식 속에는 1990년대 중반 이후일본사회에 축적되어온 국내외적인 안전보장의 위기의식이 있다.
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그것은 패전 이후 일본의 평화운동과혁신운동, 진보적 시민운동이 실패하고 패배한 결과라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사실 일본회의를 중심으로 하는 아베의 극우보수주의는 결코 일본사회의 대안세력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장기 집권하는 것은 미디어 여론전에서 주도권을 쥐고 음울한일본사회의 패배주의적 국민의식을 전전의 강한 군국주의 일본에대한 향수와 식민지배 의식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 P15

1965년에 역사문제는 청산하지 못했고, 1998년 체제에서도 문화개방은 했지만 역사문제는 봉합을 했는데, 2018년에 다시 제기된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인정했습니다. 과거 냉전 시대에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과 한일 양국 정부가 덮어둔 역사문제가 공식적으로 대두된 것이지요. 이는이제 한국과 일본의 정부가 식민지 지배의 불합리성 문제를 공식적으로 직면해야 된다는, 그러지 않고서는 한일관계가 진전할 수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P45

이렇게 본다면 북미 및 남북 평화 프로세스는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만약에 이프로세스가 실패하면 일본의 극우보수세력은 두 번 다시 한반도에서 남북 공존 및 북미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미국을 등에 업고 북한과 국지전을 감행할 것입니다. 여기에 한국에 또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선다면 그들 또한 일본의 보수세력과 이해관계가 일치할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한국전쟁의 출구에 서 있는지,
아니면 제2차 한국전쟁의 입구에 서 있는지, 우리의 미래를 가늠할수 있는 시야를 가지고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 P50

다음 사진은 ‘도미다 메모‘라는 것입니다. 도미다 아사히코(富田朝彦)는 천황을 보좌하는 국내청장관으로 천황의 비서였지요. 이메모에는 A급 전범이 합사된 이후 천황이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1989년에 죽은 히로히토(쇼와) 천황과생전 퇴임을 한 현재의 상황(上皇) 아키히토 천황은 1978년 이후 한번도 야스쿠니에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키히토 천황이 평화주의자이고 아버지의 전쟁에 대해서 반성을 했기 때문에 야스쿠니를 안 갔다는 평가도 있지만, 야스쿠니에 전범이 합사된 것에 불만을 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P58

일본이 진정한 군국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쇼만으로는부족했습니다. 절대천황제가 되어 군통수권을 천황에게 주는 것도필요하지만, 현재 일반종교시설인 야스쿠니를 국가시설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장래 벌어질 전쟁에 일본인들이 천황의 명령으로 참전하고, 전몰 장병은 야스쿠니에 합사되어야만 완벽하게 전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쟁을 할 수 있게끔 안보법을 추진하는 동시에 수상들이 야스쿠니를 참배해서 야스쿠니를상징화하고 국가시설화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 P67

야스쿠니는 명부 하나만으로, 수많은 이들이 잠든 미국 알링턴국립묘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유골이 올 때마다 묘지가 하얀 십자가로 덮이고 갈수록 면적이 넓어지고 있는데, 일본에는 그런 국립시설이 필요 없는 것이지요. 야스쿠니는 명부 하나로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죽은 전쟁을 소화해버렸습니다. 그런 식으로 끔찍한 전쟁을 잊어버리게 했지요. - P70

다카하시 교수의 의견은 결국 국가나 민중이 죽음을 주도하고미화하며 계승하는 것 자체가 야스쿠니의 희생의 논리와 연결될수 있다고 원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나 민중이희생자들을 일절 추도하지 않는다면 국가폭력에 의해서 사망한 희생자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가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국의 과거사 청산에서 국가폭력이 저지른 일들의 진상을 규명하고, 국가가 그에 대해 사죄와 보상을 하는 것은 두 번 다시 국가가 동일한폭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하는 과도적 조치로서 필요한 일일지도모릅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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