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가 미식의 수도라는 칭호를 얻은 것은,
그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특이하게도볼로냐는 음식과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끝을 생각했던 것 같다.
프로슈토도, 치즈도, 파스타도 그렇다. 서양 요리와 음식 문화의정점인 와인에 있어서도 그렇다. 볼로냐는 언제나 이탈리아 음식의시작과 끝에 서 있으려 한다. 그래서 볼로나는 ‘뚱보의 도시‘라는별명과 ‘현자의 도시‘라는 별명을 동시에 자지했나 보다.
- P61

볼로냐의 독특한 살루미는 그런 열망을 잘 반영한 음식이었다.
이 음식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 섭취하는 칼로리만이 아니었고, 한단계 격이 높아진 시민의 취향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적당히고귀하고 적당히 서민적이고 적당히 현학적인 볼로냐식 음식이탄생한 것이다. 그들은 돼지를 방목해서 도토리를 먹여서 키우고,
치즈를 1년 이상 숙성시키는 노력이 맛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시민의지위에 걸맞은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 P97

더욱 대단한 건 볼로냐의 자부심이 실체 없는 구호로 끝나지않는다는 점이다. 전통을 고집하는 원리주의자들은 대체로 시대에뒤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볼로냐는 그 반대다. 아마 도시가 생긴이래로 교회와 황제에 계속 맞서오면서 공허한 구호로는 그들의단단한 갑옷을 뚫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토마토에서도이런 열정적인 볼로냐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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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오래된 집 - 근대건축에 깃든 우리 이야기
최예선 지음 / 샘터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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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짐이라 뛰지는 못하지만 걷는걸 좋아한다.

오래된 집이든, 종교 공간이든, 현대의 멋진 건물이든 모든 아름다운 건축물을 좋아한다.

건축물을 보며 걷는걸 가장 좋아한다.

다만 전문적인 건축용어들은 너무 어려워서 패스

건물들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삶과, 그곳에 배어 있을 삶의 흔적들을 찾아 읽고, 보고,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가령 이런 사진- 15쪽 최순우 옛집

 

 

이 단정한 방에서 어쩌면 최순우 선생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에 나오는 글들을 간간히 썼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가 좀 잦아들면 서울 나들이를 해야겠다.

저기 최순우 옛집에 가서 선생이 생전에 어루만졌을 책상을 보고, 그가 거닐었을 뜰을 거닐면서 우리 미술에 대한 최순우 선생님의 그 마음을 잠시라도 느껴보고 싶다.

 

최순우 옛집이 좋은 건 사람 사는 집다운 온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떠나고 문화재가 된 집들은 삶의 온기가 주는 애틋함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곳은 내셔널트러스트 사무국과 회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많은 정성과 노력으로 살뜰하게 매만지며 정성을 기울인다. 그리하여 가을에는 빨갛게 익어가는홍시를 볼 수 있고 사철 따뜻한 감잎차를 마실 수 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품격 있는 집 한 채를 지키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움은 그토록 애써서 지켜야 하는 일이다.- P21

 

어쩌면 이 책의 저자도 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 책에 나오는 오래된 집들을 같이 따라 여행하다 보면 그런 저자의 마음이 한껏 느껴진다.

 

때로 집은 주인이 바뀌면서 완전히 다른 삶과 마음들을 품기도 한다.

친일파의 집이었다가 민족주의자의 집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60여년을 지킨 아내로 주인이 바뀐 백인제가옥은 얼마나 많은 눈물과 의지와 희망을 품고 있을까?

친일파 한상룡의 그 허영에 찬 과시욕이 남아있을 테고, 그곳을 용도 변경하여 흥사단원들이 모임을 가졌던 흔적도 집은 가지고 있으리라... 무엇보다도 납북된 남편 백인제씨를 기다리며 60년간 그 집을 지켰을 아내의 한 평생이 녹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삶의 흔적이 어딘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집은 알게 모르게 주인을 닮아간다.(126쪽 장욱진 가옥)

 

 

저 집의 풍경에 매달린 물고기 한마리에서 장욱진 화백의 그림 냄새가 물씬 풍긴다.

막 그린 듯 천진한, 그러면서도 애잔한 그의 그림과 이 풍경은 이토록이나 어울린다.

슬핏 스쳐지나가면 그냥 집일 뿐이지만 기둥 하나 서까래 하나 문짝 하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옛적 전라도 장성의 필암서원을 갔다가 기겁했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강당이 대문쪽 정자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당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속깊은 뜻이야 모르겠지만 그 건물배치가 보여주는 갑갑함이라니...

"학생 너희들은 자나 깨나 오로지 선현을 공경하고 배우고 익히거라.

헛된 풍경이니 풍류니 하는 삿된 것에는 눈도 돌리지 말거라"라고 건물이 엄숙하게 훈계하는 느낌이었달까?

이처럼 건물에 스며있을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하면 오래된 집들을 산책하는 즐거움은 더욱 커진다.

장욱진 화가의 집에서는 구불구불한 기둥들이 그의 그림과 꼭 닮아서, 사랑스럽다.

 

집만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다.(162쪽 영천 임고초등학교)

 

오랜 역사를 가진 시골의 초등학교는 숲을 품고 있다.

건물은 오래되어 낡고 불편해서 리모델링을 들어갈 수 밖에 없겠지만 이 숲을 저 아름드리 나무를 가진 것 만으로도 이 학교는 보존되어야 한다.

저 나무들 아래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유년을 추억을 쌓았을까?

내 기억 속 학교 하나는 목련나무 하나로 남아있다.

봄이 되면 아름드리 크게 훌쩍 솟은 나무에서 목련꽃이 피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나무만큼 아름답게 목련꽃을 피우는 나무를 본적이 없다.

매일 등하교길에 한참을 꽃을 바라보던 순간은 또한 내 삶이 그래도 아름다웠을 것이다.

 

이 책속에 아름다운 공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쓸쓸히 쇠락해가는 소록도의 공간에서는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이 만져지고, 그들을 위해 봉사했던 오스트리아인 간호사 2분의 희생과 봉사가 같이 잊혀지는 안타까움도 전해진다.

식민지 시절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지어졌던 영단주택지역의 흔적, 김구선생의 최후를 간직하고 있는 경교장, 피난민들의 고달픔을 품고 있는 부산 아미동, 감천동지역들......

 

적산 가옥인 부산의 정란각의 구조를 보면서는 예전에 다녀왔던 군산의 적산가옥을 떠올린다.

군산 지역 최대 지주로 군림했던 일본인의 집을 보면서 성채를 떠올렸었다.

이들은 돌아갈 생각이 없었구나, 영원히 이 땅에서 조선의 농민들을 부리며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겠구나라는게 건물 전체에서 풍겨나왔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적산가옥들이 그렇지 않았을까?

 

구룡포의 일본인 거리를 보는 마음은 작가도 씁쓸해하듯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자고로 집이든 거리든 이야기를 품고 있어야 한다.

관광지화 되어버린 그곳에 그 시대를 살았던 어민들의 삶이 없음으로 해서 생명없는 복원이 되어버렸고,

이대로라면 아마도 얼마 안가 찾는 이 없는 쓸쓸하게 퇴락한 관광지가 되지 않을까?

부산의 용호동 일대는 옛적에 백합조개 산지로 유명했었다.

그곳의 어민들은 그 조개를 캐는 것으로 그럭저럭 살만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이 들어오고 어업령이 내려지면서 백합조개를 캐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하게됐다.

졸지에 조선인 어민들은 조개를 캘 수 없게 되어버렸고, 일본인 업자 밑에서 임금노동자로 일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였다.

지금 용호동에는 그 때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그 삶의 거리를 복원하지 못한다면 구룡포 지역은 반대로 삶의 자취들은 남아있으나, 그곳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빠짐으로 해서 죽어가는 거리가 되어가는 것이겠지.

 

많은 건물들을 소개하면서 각자의 이야기들이 너무 짧다는 것이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다.

깊은 울림을 느끼기에는 짧은 분량들이 방해한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건물을 보는 작가의 시선은 제목처럼 따뜻하다.

어딘가 거닐고 싶은 봄이다.

이 책 한권을 끼고 작가가 느꼈던 그곳을 확인하고, 작가가 보지 못한 곳을 찾는 기쁨도 누려보고 싶은

그런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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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1-04-05 09: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런 멋진 풍경의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으나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여고에 다니는 동안 숲에 둘러싸여 초록빛 동산에서 시간을 보낸 것이 그때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많이 스며들었던 거 같아요. 어떻게 살고싶다 어떻게 살아야겠다 그런 꿈을 품은 데 영향도 있었구요. 가슴 아픈 공간도 부러 찾아다니고 싶네요, 봄 기운 맞아서. 부산도 가고 싶어요!!

바람돌이 2021-04-05 10:12   좋아요 1 | URL
저는 섬마을 초등학교를 다녀서 저것과는 또 다른 풍경의 기억을 갖고 있어요. 점심시간에 바닷가 내려가서 굴따고 파래 뜯고..... ㅎㅎ 방학이면 아침에 바다 들어가서 밥먹을 때만 들어오는 생활요. 진짜 어디든 가고 싶은 봄입니다. 마음만 설레발... 수연님 부산 오시면 제가 찐하게 밥살게요. ^^

수이 2021-04-05 10:26   좋아요 1 | URL
저는 밥보다 술과 함께 하는 안주를 사랑합니다 바람돌이님. 말씀만으로도 감사해요. 아 진짜 바람돌이님 만나러 부산 휙 다녀올까요 언제 ^^

바람돌이 2021-04-05 10:28   좋아요 1 | URL
아니 밥 다음에 술은 당연한거 아닌가요? 제가 좋아하는 술집들도 쫘악 ~~ ㅎㅎ

수이 2021-04-05 10:39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자꾸 그러시면 저 날 잡아서 진짜 가요!!! 🤔

붕붕툐툐 2021-04-06 00:59   좋아요 0 | URL
그 날에 전 무족권 낍니다!ㅋㅋ

바람돌이 2021-04-06 11:21   좋아요 0 | URL
수연님도 툐툐님도 무조건 okok ^^

scott 2021-04-05 09: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숲을 품고 있는 학교, 나무그늘에서 맘껏 뛰어노는 아이들,,,,
자연과 함께 숨쉬며 살아가야하는 아이들인데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로
나무는 커녕 뛰어놀 공간 시간도 없고
더더욱 코로나 떄문에 원격 강의를 들어야 하는,,,,
바람돌이님에 리뷰 속 사진들 보며
지난날의 그곳 그나무 떠올려봅니다.

바람돌이 2021-04-05 10:15   좋아요 3 | URL
요즘 아이들의 안타까움이죠. 에휴... 볼 때마다 안쓰러워요.
우리집 애들 어릴 때 보니까 장난감이고 뭐고 다 필요없더라구요. 그냥 아무데나 풀어놓으면 알아서 너무 잘 놀던데..... 요즘 애들은 마스크와 원격수업의 추억을 너무 강렬하게 가질 것 같아 안타까워요.

syo 2021-04-05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가 사진에 붕어빵 올려놨어.....

바람돌이 2021-04-05 11:50   좋아요 2 | URL
지금 배고프시죠? 그래서 포악해지신듯.... 역시 사람은 먹어야죠. 빨리 三씨랑 밥 드세요. ^^

붕붕툐툐 2021-04-06 01:00   좋아요 0 | URL
아~ 놔~붕어빵ㅋㅋㅋㅋㅋㅋㅋㅋ

mini74 2021-04-05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석의 무우징게국 끓이는 냄새 난다던 여우난골족 그 집이 생각나네요. 집이란 생활일땐 몰랐는데 떠나오면 참 그리운 곳이 되는 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1-04-05 21:23   좋아요 2 | URL
전 도대체 그 무우징게국이 뭘까가 궁금해요. 어릴 때 살던 집 놀던 곳 왠지 꼭 한번은 가보게 되더라구요. 뭔가 그립고 애틋해요. 그쵸?

붕붕툐툐 2021-04-06 0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남의 집 구경이 그렇게 좋더라구요! 집엔 그 사람이 고스라니 담겨 있는거 같아요~ 그러니 주인이 바뀌면 집도 변하는거 같아요!
숲이 있는 초등학교 너무 좋아요~😍

바람돌이 2021-04-07 14:00   좋아요 0 | URL
다들 좋아할 거 같아요. 집이란게 참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이나 마음 같은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저는 예전에는 별 생각없었는데 요즘은 내집을 보여주는건 부담스럽더라구요. ^^

희선 2021-04-07 0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품격 있는 집 한 채를 지키려면 많은 사람이 있어야 할 듯합니다 오래됐다고 안 좋게 여기는 사람도 있잖아요 숲이 있는 학교라니 좋을 듯하네요 아직 남아서 여러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곳도 있지만, 이제는 사라진 곳도 있어서 아쉽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1-04-07 14:03   좋아요 0 | URL
사람들마다 생각이나 판단의 기준은 정말 다양해서 한 번씩 깜짝 깜짝 놀라게 되어요. 오늘도 아 이렇게 생각이 다르구나 하는 거 또 실감한 사건도 있네요. 어쨌든 학교는 나무가 있고 운동장이 넓고 좀 그래야 할 거 같아요. 그래서 저 시골학교가 오래 오래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초딩 2021-05-08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앙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작 진심 축하드립니다!
넘넘 멋져요 ^^

바람돌이 2021-05-08 22:5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이 더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데미안으로 쓰신 글 같은걸 저는 못 쓰는 글이라 굉장히 멋지다소 생각하면서 읽었었거든요. ^^
 

내 생각에 한옥의 아름다움은 집이 아니라 공간에 있고, 손맛에 있다. 뒤란으로 가는 좁은 길의 단정함이라던가, 처마와 기둥의 선이 매끈하게 잘 빠지다가도 살짝 틀어진 부분이라던가,
반질반질 윤나는 마루에 비친 맑은 광이거나 툇마루에 햇살이내리 때 느껴지는 따스함 같은 것이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의 감각이라고 할까? 최순우 옛집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그 점 때문이다.
- P14

최순우 옛집이 좋은 건 사람 사는 집다운 온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떠나고 문화재가 된 집들은 삶의 온기가 주는 애틋함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곳은 내셔널트러스트 사무국과 회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많은 정성과 노력으로 살뜰하게 매만지며 정성을 기울인다. 그리하여 가을에는 빨갛게 익어가는홍시를 볼 수 있고 사철 따뜻한 감잎차를 마실 수 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품격 있는 집 한 채를 지키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움은 그토록 애써서 지켜야 하는 일이다.
- P21

1930년대는 한옥실험의 해로 명명할 만하다. 집이 마당을둘러싸는 중정식 구조를 바꿔 방과 마루, 부엌을 내부에 두고 마당을 앞뒤로 배치하는 중당식 구조도 생겨났고, 일식가옥과 한옥의 장점만 섞어놓은 집도, 속복도가 있는 겹집 형태의 한옥도생겨났다.
집의 변화는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새롭게바뀐 삶, 새로운 생각을 담기 위해서는 집이 달라져야 했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불편하고 비합리적인 생활을 개량하자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 P30

집은 가까이 다가가면 삶이 보이고 멀리서는 역사가 보인다. 도시 속 깊숙이 각인된 풍경 속에서 말을 잃었다.
- P77

소설가로서 살아온 세월 바깥에는 시대에 통렬하게 저항하며 견뎌온 개인의 역사가 있다. 노년에 다다른 그는 텃밭을 가꾸고 생명이 깃든 것들에 애정을 주며 살았다. 토지문화관을 만들어 후학에게 창작실을 선물하며 소설가로서 할 일을 다 했다.
큰 산 같은 작가였고 넉넉한 품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러니 그너른 그늘에 잠시 머물다 오면 내 안의 냉기가 녹아내리겠지, 하는 마음도 드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원주를 찾게 되는 것이다.
- P106

막의 감수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되는대로 함부로 한다는 ‘막하다‘의 그 막이다. 기준이나 가치를 세우지 않고 행한 작품이나 작업이 미학적인 완성도를 갖거나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민가에서 일상적으로 쓰는용도로 만든 그릇을 막사발이라 하지 않은가? 막사발도, 막 그린그림도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예술가의 정신에 담긴 특별한막의 감수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감수성은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서야 가치가생긴다. 서툴고 불완전하고 미완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 또한 그런 예술가와 마찬가지의 경지에 있는 것은 아닐까?
- P125

건물은 여러 개의 문을 갖는다. 문은 두 공간을 연결하고이곳을 지나 저곳으로 가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때론 막다른 지점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집이 살아가는 사람의 세계를 담고 있다면 공간이 만들어낸 세계는 무한할 것이다. 하나의 문이 하나의 세계를 연다고 본다면, 여러 개의 방과 거실, 현관, 대문 등으로 이뤄진 우리의 집에도 수많은 세계가 존재하는 셈이다.
- P219

최근 구룡포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우뭇가사리 때문이었다. 부산에서 흔히 먹는 우뭇가사리 (한천)가 든 냉콩국을 다른지역에서는 전혀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 의아해서 찾아보다가 우뭇가사리가 일제강점기 일본에 산업용으로 수출하던 품목이었고 이들을 채취하기 위해 제주해녀들이 원정 물질까지 왔었다는사실을 알게 되었다.
- P261

관광지로 변해 버린 구룡포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서글픔을 느끼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처음 구룡포를 발견했을그때는 거기에 무엇이 있었다. 두루마리처럼 말려 있는 시대의비밀이 있었고, 그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들이 있었다.
분명 그때는 있었다. 복잡하고 슬프고 희망차고 풍부한 무엇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드라마 촬영지 앞에 줄을서서 사진 찍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과 요란한 장식들이 난무하는 거리만 있을 뿐, 굴곡진 골목이 보여주고자 했던 마을은 사라지고 없었다.
- P265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과거와 어떻게 화해하는지, 과거의 아픔을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껏 유보적인 태도로 일관해왔다. 외면하고 망각한다.
해서 그 과거는 없었던 일이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과거는 언제나 흐트러진 현장으로 도처에 있으며 사라졌다가도 다시등장할 것이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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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테오도어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가 존재할 수 없다고 했지만, 참상 속에 나비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세상을 좋게만들기 위해 애쓰는 우리는 세상의 좋은 것을 맛보면 안 되는것일까? 혁명가들과 활동가들이 줄곧 스스로에게 던시고 있는질문이다. 케이스먼트는 대답한다. 좋은 것을 맛보자. 청옥색 &유황색 나비를 잡으러 다니자. 강에서 수영을 즐기자. 일기를 쓰자. 정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끝없는 과업에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 P104

남성성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인종이나 제국이라는 요소보다 훨씬 중요했다.
는 것, 남성성 개념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재정의가 가능하리라는 것을 케이스먼트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당대의 반응은 분명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는 공무와 성애를통해 권위 스펙트럼의 양극, 곧 제국의 권위와 침실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있었던 동시에 남자라는 생물체를 다양성을 가진 존재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잔혹하면서 더 취약한 존재로, 더 달라질 수 있는 존재로 재창조하고 있었다. 아일랜드는 혁명 이후지금까지 교회와 정부가 주도하는 성(性) 보수주의로 유명세를떨쳐왔다. 케이스먼트가 당대에 벽장 안의 게이였듯 아일랜드에서는 지금도 대부분의 게이가 벽장 안에 숨어 있다. 라고 더블린의 한 레즈비언 시인이 나에게 말하기도 했다.
- P117

리와 패디에게 걸인의 이야기를 들려준 노인이 자기가 어렸을 때 스키베린에서 그런 일을 입에 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고 한 것처럼, 대기근을 입에 담는 사람들은 대기근을 직접 겪은 이들이 아니라 대기근의 참상에 경악한 목격자들이나 대기근을 정당화하려고 애쓰는 위정자들이었다. 대기근의 목격자들이 끊임없이 언급하는 요소 중 하나가 침묵(죽은 사람들의 침동, 죽은 사람들을 묻고 홀로 살아갈 힘이 없었던 사람들의 침묵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유령의 몰골로 길 닦기 또는 돌 깨기 같은 구호사업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의 침묵)이다. 대기근의 역사를 발굴하고자 했년 어느 19세기 역사가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 아일랜드 귀족들로부터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대기근 이후로 몇 년간 거의 모든곳에 만연해 있던 것, 그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섬뜩한 느낌을안겨주었고, 그들로 하여금 이 나라가 겪은 불행을 가장 깊게느끼게 만든 것은 바로 그 지독한 이례적인 침묵이었다는 이야기였다." 트라우마는 침묵의 형태로 대물림된다. 침묵의 소리를 듣는 법을 알게 되기까지 몇 세대가 걸릴 수도 있다.
- P134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불구가 되고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목숨을 구한 사람, 참혹한 죽음의 틈에서 부활한 사람은 누구일까? 항상 같은 길을 도는 떠돌이, 항상 같은 곳을 떠도는 떠돌이는 누구일까? 다리가 불편한데 걸어 다니는 것이일인 사람은 누구일까? 달이 가고 해가 가도, 온갖 해방운동과희망이 흥망성쇠해도, 수백만 명이 해외로 떠나도, 세상은 광란의 발전과 파괴와 변화의 20세기로 바쒸어도, 내내 같은 길을 떠도는 사람은 누구일까? 리와 패디의 걸인이 그 수수께끼의 대답이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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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1-08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장소, 환대>를 공부하는 것도 벅찬데, 이것도 공부해야 할 목록에 넣어야 할 것 같군요. ㅋ
 

아일랜드 민족 영웅 중 한명인 로저 케이스먼트의 편지 중
자기가 사는 세계를 벗어나지 않고 내부에서만 바라볼 때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한걸음 떨어져 외부에서 더 잘조이는 일들은 허다하다. 그것이 꼭 여행일 필요는 없지만 독서와 함께 여행은 나 자신을 또는 내가 사는 곳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해주는 유용한 도구이다. 물론 애초에 자신의 창을 벗어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뭘해도 다 소용없는 이야기지만.....
케이스먼트라고 하는 이 사람이 아일랜드인들의 운명과 민족운동에 눈뜨는 계기는 영국의 관리인으로 콩고에 파견되어 벨기에 국왕 레오폴의 사적 식민지하에 고통받던-고통받던이란 표현은 정말 터무니없이 약한 표현이지만 -콩고인들의 현실을 보면서였다고 한다. 콩고인의 삶에서 유럽인이 아니라 유럽 내 식민지인으로서의 아일랜드를 자각한 것.

때때로 나의 독서와 여행이 내 삶의 양식을 그리 크게 바꾸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저 나쁜 사람이 되지는 말자라는 것 정도로 괜찮은걸까? 지금 내가 벨기에를 여행한다면 식민지 콩고인들을 처참하게 죽여가며 수확한 고무로 떼돈을 벌고 그 돈으로 건설된 지금의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도시 모습에 감탄하고 다니는건 아닐까?
어떤 계기에서든지 자신의 삶의 지형을 과감하게 바꾸는 사람들의 용감함을 존경한다. 여행을 통해 전개되는 리베카 솔닛의 사색의 발길이 여전히 흥미롭고도 가슴 한쪽을 찌르는 힘이 있다.



한 때 자이르라고 불리었던 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은 벨기에 국왕이었던 레어폴의 개인 식민지였다. 이것에서 그들은 원주민이 당일 고무 채취 할당량을 못채우면 손목을 잘랐고 두 손목이 없으면 그 앞에서 자식의 손목을 잘랐다. 심지어 어린 신생아를 축구공으로 사용했다는 증언까지 있다.

나는 오랜 세월 아일랜드를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내 심장, 내 머리를 고향으로 삼은 모든 감정, 모든 생각으로부터 단절된 채 그저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고, 내가 새 의무를 하나씩 완수할 때마다 내 모습은 영국인이라는 이상에 확실하게 가까워져갔습니다. ] 나는 제국주의자였습니다. 대영제국의 영토를 어떻게든 확장해야 한다. 대영제국의 통치가 세상 만민에게 최선이다.
반대 세력을 쳐부수는 것‘이 정의다,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렇게제국주의의 징고(Imperialist Jingo)가 되어갔습니다. [……] 하지만 결국은 전쟁이 나에게 양심의 가책을 안겨주었습니다. 그곳콩고 밀림에서 레오폴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구제 불능의 아일랜드인이라는 나 자신의 정체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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