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구나, 여행을 하면서 내가 찾는 경험은 ‘살아 있구나‘라는실감이다. 그게 전부다. 일상이 싫고 여행이 좋아서 여행지에서진정한 자유를 찾는다는 뜻이 아니다. 아니라고!
- P9

하지만 팬데믹을 정통으로 경험한 세대가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지리라. 그리고 여행 방식도,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여행하는 방식을 바꾸었고, 독서는 더 즐거운 여행의 체험을 제공하게 되었다. 장소보다 ‘보는 눈‘을 키우는 여행 패턴. 방 안에 앉아서 화성보다 먼 곳까지 여행하는 책 읽기의기쁨.
- P21

소리를 내어 좋아하는 시의 제목을 읽어 본다. "나는 내 인생이마음에 들어." 이 말은 어쩐지 약간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는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문장의 마침표가 내 귀에 들어오기도 전에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근심에 잠긴다. 나는 아직, 그렇지만 나는, 나는 사실, 내가 내 인생을 좋아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가끔은 여기가 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럴 때면 이 시를 생각한다. 나에게는 아직 건너 보지 못한교각이 있고, 던져 보지 못한 돌멩이들이 있다. 이 시에는 이런문장도 있다. "텅 빈 미소와 다정한 주름이 상관하는 내 인생!"
느낌표가 있다. 이 느낌표가 나는 사랑스럽다.
- P27

꿈만 같다. 오늘은 여기 있지만 내일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오늘은 여기 있지만 어제는 저기에 있었다. 갑자기 나는 한국어가한마디도 들리지 않는 곳을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는 사람이 됐다.
있는 장소가 바뀌면 나도 바뀌는 기분. 그러니 집에 돌아오면 모든 게 없던 일이 되는 기분.
- P33

여행 화집에서 키스하는 사람, 눈물 흘리는 사람을 볼 때 동의를 구했을까 궁금해진다. 하지만 개와 고양이, 새라면 언제든안심이다. 그들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 애쓰며 조심스레 사진을 찍는다. 타인의 삶은 구경거리가 아니다.
- P59

사치란 무엇일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사치라고 생각하다.
사회생활 연차가 쌓이자 하고 싶지 않은 걸 하지 않는 것이 사치구나 싶다. 하고 싶지 않은 건 하지 않고 살려 하면 일상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매일 싫은 일을 하면서 하루를 밀어낸다.  - P91

그리고 때로는 길을 잃었을 때 내가 아는 첫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종종 삶이 벅찰 정도로 문제를 양산할 때 역시 원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한없이 갑갑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어딘가로 여행을 떠나 ‘환기‘를 하려고 시도할 때가 있다. 하지만어쩌면 일시적 환기가 아니라 원점이 어디인지 차분하게 찾아내실타래를 다시 풀고자 노력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이미흐른 뒤에 원점은 원점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내가 지금 머무는이곳이 원점이 된다. 그때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잃지 않기, 때로 여행은 답이 아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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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었지만 일본 근현대 소설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전율이 오는 것 같은 세밀함이고, 두번째는 짙게 깔린 허무였다. 커다란 산맥 같은 유럽 소설과 극적 요소가 강한 드라마 같은 한국 소설에 비해 일본 소설이 보여주는 세계는 처음 맛본 ‘이상한 과일‘ 같은 느낌이었다.
- P13

"봄은 꽃, 여름엔 두견새, 가을은 달, 겨울엔 눈雪, 해맑고 차가워라."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소감 첫머리에 도겐의 시를 인용한다. 너무나 선禪적인 이 문장은 『설국이 어떤 출발점에서 쓰인 소설인지를 웅변해준다. 『설국』은 스토리 위주의 서구식 소설 작법을무시한 채 흡사 점선을 찍듯 분절적 기법으로 써 내려졌다. 그 하나하나의 점에는 자연과 계절의 일부가 되어버린 인간사가 인과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줄거리를 따라가는 독서법으로는 『설국의 참맛을 도저히 느낄 수 없다.
- P32

『설국』에서 애타게 시도한 자신의 문학적 실험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작품의 형태를 정비하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적인 필연을 죽였다"는 것이다. 절대미의 완성이라는 주관적인 필요를 위해 현실성을 희생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P49

『설국은 줄거리의 소설이 아니라 이미지의 소설이다. 『설국』에나오는 모든 배경은 일종의 논리가 아닌 이미지다. 시마무라가 살고있는 도쿄라는 현실 세계가 아닌 터널 밖의 세계, 즉 에치고유자와라는 이미지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도입부부터 우리가이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 P82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제자이자 동시대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 三島由紀夫는 "어떤 시대관념도 가와바타 씨를 기만하지는 못했다"라고말한 바 있다. 근대, 신감각파, 지성, 국가주의, 실존철학, 정신분석등 온갖 관념이 우리 시대를 백귀야행처럼 나돌고 있으나, 그는 그어느 것에도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 P75

터널 밖 세상은 환상에 기반한 모자이크 같은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소설은 독자들을 힘들게 만든다. 독자들은 습관적으로 인과관계를 통해 하나의 전체상을 포착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설국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한 행 한 행, 시를 읽듯 이미지로 읽어나가는 것이다. - P82

이 무렵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적어도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서구의 자기장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그가 발표한 수상 소감문의 제목은 「아름다운 일본의 나였다. 그는 진짜일본의 미가 전쟁 이전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서구 문학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고전의 미학을 설국』에 적용시키고 싶어 했다.
소설에 하이쿠가 등장하고, 노벨상 시상식장에서 13세기 승려 시인인 도겐의 시를 읊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 P112

사실 ‘체념‘이라는 단어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흔적을 찾아다.
니는 내내 나를 따라다닌 화두였다. 체념한다는 것, 그리고 그 체념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체념에는 체념이 주는 힘이 있다. 깊은 체념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안다. 체념이 힘이 된다는 것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내가 원고의 첫 행을 쓰는 것은 절체절명의 체념을 하고 난 다음이다"라고말하기도 했다.
- P138

1968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자신의 삶과 문학에 관해 "고독과 죽음에 대한 집착으로 삶을 살았고 글을 썼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동시에 그는 "작품을 통해 죽음을 미화하고 인간과 자연과 허무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고자 했다"며, 자신은 "평생 동안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애썼다" 고도 덧붙였다. 어떤주장도 힘주어 말하지 않는 습관이 있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말치고는 꽤나 단정적인 발언이었다. 이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철학과문학적 지향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고백이다. 그에게 현실은 죽음이었고, 죽음은 자연과 동일한 것이었으며 허무하고 아름다운 궁극같은 것이었다. 이런 세계만을 바라본 그에게 현세에서 통용되는법칙이나 승패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 P243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거리 두기의 천재다. 「천 마리 학 에서는죽음도 외설도 한낱 멀리 있는 대상이나 현상에 불과하다. 그는 이야기에 직접 뛰어들어 개입하지 않는다. 어떠한 가치 평가도 하지않는다. 그가 그리는 모든 장면은 그저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상황일 뿐이다. 이런 고도의 장치 속에 소설을 집어넣는 것은 그만의 특출한 마술적 재능이다.
- P247

그는 훗날 "다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보다는 비속화된 다도문화를 비판하기 위해시 이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늘 아름다.
워 보이는 것에서 추함을 찾는 악취미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민낯이라는 걸 알려주려는 듯. 그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결국 죽음은 죽음일 뿐이라고 일깨워준다.
- P248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신비주의와 마성은 현실에는 아름다움도깨달음도 없다는 그의 가치관과 맞아떨어지는 문학적 경향이다. 그에게 현실은 이미 죽은 것이었다. 젖먹이 때 부모가 죽고, 소년이 되기도 전에 누나,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그에게 현실은 이미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원체험을 가진 그에게는 다른 작가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 부정의 욕망이 이글거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을 보편적인 시각에서 보면 안 되는 이유다. 보편적인 시각으로 그의 내면을 만나기란 불가능하다.
- P261

줄거리 진행을 기준으로 그의 작품을 보면 ‘이게 뭐지‘ 하는 의문에 빠지기 쉽다. 그의 소설에는 환희와 분노도, 선과 악도, 적과 동지도 없다. 이런 것들을 일부러 거세한 듯 그의 소설은 무한을 향해갈 뿐이다. 그의 소설에는 궁극이 있다. 궁극의 욕망, 궁극의 삶, 궁극의 관계. 궁극을 찾아간 그의 귀착지는 허무다. 당연한 일이다. 결국 인간의 생은 허무한 것이므로....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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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학교의 경쟁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크세노크라테스는 25년 동안 아카데미아의 수장으로서 플라톤 철학의 기본 방향을 거스르지 않으며 충직한 유산 관리인 노릇을 했다.
하지만 이는 곧 비판 정신이 생명인 철학적 창조력의 고갈을 뜻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뤼케이온에서 철학 연구의 새로운길을 열었다. 그의 관심은 이성의 눈으로 파악하는 수학 법칙의 세계가 아니라 감각을 통해 확인하는 운동과 변화의 세계였다.
. - P185

사람은 ‘필요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삶을 얻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연구한 이론학은 이런 인간 본성의 표현이다. 특히 그의 이론학에서는 자연physis 에 대한연구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그는 자연 세계 전체 · 생명 · 인간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고, 천문학 · 기상학 · 물리학 ·화학·생물학· 심리학 등을 학문으로 정립했으며, 이 모든 학문을 위한 수단으로서 논리학의 기초를 놓았다. 그의 연구에서 진지한 고려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은 아카데미아에서 중시한 기하학이나 수학뿐이다. 그에게 자연에 대한 얇은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리 인식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순수한 학문이었다.
- P191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 중에도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많다. 특히 윤리학 · 가정학 · 정치학 분야 저술이 그런데, 그는 이를 한데 묶어 "인간적인 것에 대한 철학"(니코마코스 윤리학』 X 9)이라고 불렀다. 이 철학의 질문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잘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인간을 잘 살게 하는 정치는 어떤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이런 실천철학의 근본 문제를 다루는 것이 동물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과제였다.
- P224

인간은 지성의 능력 덕분에 자연의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섰지만, 바로 그 능력 때문에 추락의 위험성을 항상 안고 산다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정치와 윤리는 인간의 삶에서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크게아쉬울 것 없는 사치품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최악의 상태로 추락하지 않고 지성적 존재로서 잘 사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과 정치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런 생각에서 출발해 각각 개인과 국가 공동체의 수준에서 어떻게인간이 잘 살 수 있는지를 연구한다.
- P235

가치의 기준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주관적 즐거움을 행복의수단으로 내세우는 행복론은 사회적 불행을 방치하고 조장하는 위험한 이론이 될 수 있다.
- P238

이 즐거움은 자기기만이나 자기 파괴에서 오는 즐거움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 능력을 올바르게 실현하는 데서 오는 자기실현의 즐거움이다. 결국 습성의 탁월성이란 우리가 ‘인간으로서 타고난 능력을잘 실현해서 잘 살게 하는 내면의 에토스고, 이 에토스는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얻어진 행동의 습관적 성향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찾은 것은 욕망이 내 주인이 되는 것이아니라 내가 욕망의 주인이 되는 길이다.
- P248

나는 돌산을 지나면서 ‘레스보스의 납 자‘가 공정함의 은유일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철학과 실천적 지혜의 모든 것을담은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실천적 지혜는 레스보스의 납 자처럼유연하다. 그것은 탁월성이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개별적 상황에서 적용하는 지혜다. 곧은 잣대를 놓지 않으면서 울퉁불퉁한 현실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실천적 지혜가 있는 자‘의 삶이다.
- P252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정치학과 윤리학은 하나의 연장선위에 있다. 윤리학이 개인적 수준의 행복을 다룬다면, 정치학은 국가 수준에서 행복의 조건을 찾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사람도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한 개인의 행목은 이 공동체를 띠나시 실현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이런 근본 전세히에 국기의 기원이니 구조, 다양한 정체와 동치술, 시민 교육 같은 문제를 다룬다. 물론 그 가운데 핵심은 정체에 관한 논의다. 국가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가 국가의 질료 라면,
그것들을 결합시켜 통일체를 만드는 정체는 국가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건축자재들이 일정한 형상에 따라 조직되어 집이 만들어지듯, 국가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도 정체에 따라 국가를 이룬다. 그럼 행복한 국가를 만들어 내는 정체는 어떤 것일까?
- P259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체론에도 플라톤의 영향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의 정치학 연구는 과거에 존재했고 당대에 존재하는 수많은정체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스승의 연구 방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철학의 논리가아니라 경험적 관찰과 이에 바탕을 둔 이론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연구는 그가 생명체를 연구할 때와 똑같은 태도와 방법을 취한다. 그는 생물학에서 개별 종을 관찰해서 그것들의 신체적,
기능적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동물을 다양한 단위로 분류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개별 정체를 관찰하고 그것의 특징을 분석했으며 유형을 분류했다. 플라톤이 처음 착안한 여섯 가지 정체분류는 이렇게 해서 더 확고한 기반을 얻는다.
- P260

목표를 올바로 세우라! 하지만 현실적 조건을 무시하지 말고 그 안에서 목표를 실현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 숙고하고 이를 실천하라! 동물이 아닌 인간에게는숙고와 선택을 통해 주어진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는 이것이 도시국가의 황혼기를 산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담아낸 미네르바의 지혜고, "인간적인 것에 관한 철학"의 핵심이며,
그로부터 2400년 뒤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사람다운 삶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 P277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눈을 연다는뜻이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배운다는 의미다. 수많은 이론들에 현혹되는 우리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관찰하고 또 관찰하라!‘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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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뜻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학문 전체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현상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인간적인 것에 관한 철학", 즉 인간의 의식활동에 대한 기술, 습성과 행동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 수많은 정치체제에 대한 기록은 그 가운데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그의 현상학적 논의는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우리는 그의 안내를 따라우리 안에서 또는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험이나 측정 기구 없이도 관찰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 읽기의 가장 큰매력이라고 생각한다.
- P17

‘관찰자‘와 ‘국외자‘를 가리키는 그리스어는 ‘테오로스theros‘ 다.
객관적으로 관찰하려면 국외자의 시선이 필요하고, 국외자가 할수 있는 일이 관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명적으로 ‘테오로스‘
의 삶을 살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아테네에서 태어나 그곳 사람들의 운명을 걱정하며 철학을 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 P22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들과 달리 현실에 참여하지 않았으며참여할 수도 없었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인간의 현실과 그를 둘러싼 자연의 현실을 더욱더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생애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각각 비오스 테오레티코 스 bios thedretrikos그리고 비타 콘템플라티바vita contemplativa, 즉 ‘관찰자 삶의 전형을보여준다.
- P23

다채로운 자연이나 사포의 애절한 서정시 말고도 레스보스섬을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다. 레스보스는 서양 생물학의 탄생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섬에 머물면서 물고기와 철새 들을 연구한 것이서양 생물학 연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레스보스는 식물학과 광물학의 고향이기도 하다. 레스보스에 함께 머문 것을 시작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탐구에 동행한 테오프라스토스가 식물과 광물을 연구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자들은 레스보스의 에레소스가 고향인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레스보스섬 체류를 권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에레소스의 해변에 사포를 기리는 조형물과 함께테오프라스토스의 두상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 P94

아테네의 아카데미아를 떠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레스보스는 새로운 아카데미, 노천 아카데미아였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철학적변증술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관찰과 기록이었다.  - P117

카페에서 한 시간 넘게 나눈 대화는 난민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내가 난민 때문에 고민이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럽게 묻자 그가 간단히 대답했다. "우리도 난민이었다." 여행 전 본 기사에서 시리아난민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던 할머니가 했다는 말과 똑같았다. 기사에 따르면 어머니가 "1922년 그리스-터키 전쟁을 피해 레스보스섬에 온 난민" 이었다는 할머니는 "난민 자녀로서 그들을 친절하게대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라고 말했다.
- P131

윤리적으로승인된 행동은 반복을 통해 내면의 습성으로 굳어진다. "우리는 정의로운 일을 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절제 있는 일을 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며, 용감한 일을 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II 1) 이것이 에토스다. 에토스는 흡혈박쥐의 나눔처럼 고정된 본성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획득된 행동 성향이다. 공동체는 에토스를 공유하며 윤리를 형성한다. "난민 자녀로서그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라는 레스보스섬 할머니의 말은 이런 에토스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 P133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 사람도, 마케도니아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아테네에서 시민권이 없는 거류민이었다. 이런 조건이 정치에대한 거리두기를 내면식 성형으로 굳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강력한 정치적 발언은 대중의 마음과 권력을 얻으려는 의지가 있을때 강해진다. 이소크라테스나 데모스테네스는 그런 권력의지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의지를 품을 처지가 아니었다. 그에게서 앞을 향한 의지는 권력을 향한 의지를 대신했고, 그는 이 의지를 최대한 발휘할 조건을 찾았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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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를 만드는 과정은 이탈리아가 영광스러운 자신의 과거와어떻게 조우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소상이 남긴 유산을있는 그대로 내놓지 않는다. 자신의 조상이 남겨준 유산의 정수를예리하게 잡아내 이를 절차탁마해서 새롭게 만들었다. - P143

볼로냐에는 권력자의 시선에서 가장 골치 아픈 존재인 커피와 대학이모두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비판적이 된다. 그런데 커피를마시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볼로냐는 로마나 나폴리, 교황령의 지배 아래에서 만족하며지내왔던 옆 동네 로마냐와 달리 생태적으로 기존의 질서에반대하는 반골의 기질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라틴어로 자유를뜻하는 ‘리베르다 Alibertas‘를 부르짖어온 것이 볼로냐의 역사였다.
가까운 로마냐에서 세계 최초의 파시즘 국가를 선보인 독재자베니토 무솔리니 Benita Mussolini, 1493~1945가 나온 것과는 매우대조적이다.
- P214

또 볼로냐의 회랑은 볼로냐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볼로냐대학이 시의 승인을 얻고 강의실과 교수에게 급여를 제공받기시작한 것은 13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그전까지 볼로냐 대학은별도의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회랑이 강의실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회랑에는 카페와 음식점의 야외 테이블이 놓여서, 사람들이모여앉아 볼로냐의 맛있는 음식과 자유로운 공기를 즐겼을 것이다.
아이들도 이 회랑에서 뛰어놀았다. ‘볼로냐에서는 아이를잃어버리지 않는다" 라는 속담이 있는 까닭이다. 볼로냐의 회랑은최고 학부의 강의실이었으며, 볼로냐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상인들의터전이었다.
- P248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라는 말이있다. 역사나 신화에서 이기심으로 인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근 성이야기는 참 많다. 그러나 결국 그런 성은 신의 노여움을 사거나자신보다 탐욕스러운 이웃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졌다. 볼로냐는이방인을 위해 성문을 열고 길과 회랑을 만들어 도시를 연결하고, 그회랑을 높은 산으로 이어갔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빛의 교회를세웠다.
- P253

법학 외에도 볼로냐 대학을 ‘모든 대학의 모교‘로 만든 학문은의학이었다. 볼로냐에 오면 꼭 봐야 하는 기념비적인 건물이 있다.
볼로냐 시립 도서관 아르키진나시오 Archiginnasio 이다.  - P276

이렇듯 볼로냐를 뒷받침해준 것은 휴머니즘(인문주의)였다.
그리스에서 만들어 로마로 이어져 내려온 인간 중심의 사고는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유럽에서 사라졌다. 이것이 다시 시작된곳은 볼로냐있다. 기기다 볼로냐의 인문주의는 새롭기까지 했다.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에는 없었던 여성 존중과 노예 해방을추구했기 때문이었다. 볼로냐는 여성에게 인간이 가진 권리를인정해주었을 뿐 아니라 1257년 세계 최초로 노예 해방 법안을만들어 이를 실현한 곳이기도 하다. 어성과 흑인에 대한 사회적인정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신대륙으로 건너간미국인들도 20세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던문제였다. 그런데 볼로냐는 이를 13세기에 이미 시작했던 것이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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