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 막이 오른다
김주연 지음, 김병진 그림 / 파롤앤(PAROLE&)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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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유럽을 향한 창을 내세우면서 표트르 대제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 도시는 처음부터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설계되었다. 궁전과 성당, 건물과 운하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의 건축 지향점은 오직 하나, 유럽적인 것이었다. 덕분에 온갖 유럽적인 풍경이 도시의 외관을 수놓게 되었지만, 실제로 이곳은 유럽이 아닌 러시아다. 러시아 작가 게르첸은 "페테르부르크는 유럽의 다른 모든 도시들과 유사하기 때문에 그 모든 도시들과 다르다"라고 썼다. 바로 이 간극에서 오는 묘한 부조화와 이중적인 정체성이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무대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6쪽


표트르의 도시 페테르부르크는 이후 성곽을 뜻하는 독일어인 부르크를 대신해 슬라브어의 마을, 도시를 뜻하는 그라드를 붙여 페트로그라드로, 소비에트 혁명 이후에는 이 도시에서 시작된 혁명을 기려 레닌그라드로, 그리고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이 도시. 이름만으로도 역사책 1권쯤은 가뿐히 써낼 것 같은 러시아의 이 도시를 규정짓기에는 아마도 저자의 말처럼 수많은 무대를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무대가 되는 도시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의 러시아 음악, 말리의 드라마극장의 연극들, 에르타미주를 비롯한 미술관들.

이름만 들어도 아 하게 되는 수많은 예술가들과 작품들을 배출한 도시.

하지만 이런 것 정도야 유럽의 다른 도시들도 꽤 있고, 정작 명성으로 따지자면 파리를 따라가긴 힘들것이다.

그러므로 페테르부르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저 유럽적이면서도 유럽이 될 수 없는 수많은 운하의 안개속에 신기루처럼 떠있는 도시 그 자체일것이다.


푸시킨,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에 이르기까지,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금자탑을 쌓아올린 작가들의 소설 대부분은 이곳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펼쳐지거나 이곳을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대부분의 러시아 소설에서 이곳 페테르부르크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이 펼쳐지는 현실적인 도시가 아니라,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거나 매우 환상적이고 신화적인, 비일상적인 공간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93~94쪽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들고 이 도시를 탐험하고 싶은 것은 나만의 꿈이 아니리라. 


무엇보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격동의 역사의 무대가 된 이 도시 자체의 역사이다. 

그 중에서도 2차대전중 레닌그라드 봉쇄기간중 이곳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를 듣는것만으로도 장엄한 인간의 힘과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872일간의 봉쇄기간동안 레닌그라드의 사람들은 굶어죽고 얼어죽어갔다.

길거리에서 시신을 보는건 일상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도시의 도서관은 문을 열었고, 사람들은 열람실에서 책을 펴놓은 채 굶어죽었다.

도시 내의 바빌로스 식물산업연구소의 연구원드은 대부분이 굶어죽었지만 누구도 종자 표본을 건드리지 않았다.

극장은 여전히 문을 열었고, 최선을 다한 음악회와 연극은 여전히 공연되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자 인간의 존엄에 대한 경배가 어쩌면 쇼스타고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도시의 후예들이 오늘날 우크라이나 침략자가 된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그 러시아인들이 자신들의 휴머니티의 뿌리가 되는 그 기억들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의 자신의 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도 있찌 않을까라는 것은 또한 지나친 낙관인걸까? 

세상을 사는 일도, 폭력에 대해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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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2-05-14 18: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부르크가 독일어로 성곽이었군요...;;그래서 독일 여행할 때 ~부르크가 엄청 흔했던 것임을 이제 알았습니다.

정리해주신 도시의 역사를 보니 말씀대로 옛사람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대단합니다. 종자 표본을 보존했다는 이야기도 이 도시의 역사였군요...

바람돌이 2022-06-11 23:14   좋아요 3 | URL
부르크과 성곽이고, 성곽안에 사는 사람을 부르조아라고 했고.... ㅎㅎ
언어의 어원을 찾다보면 이렇게 재밌는게 많더라구요.
종자 표본을 보존한 이야기에서는 저는 좀 전율을 느꼈습니다.

새파랑 2022-05-14 19: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테르부르크는 너무 매력적인 도시인거 같아요~! 그로테스크하고 환상적인 도시~!

특히 러시아 소설을 좋아한다면 더욱 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습니다 ^^

바람돌이 2022-06-11 23:16   좋아요 2 | URL
저도 꼭 가보고 싶습니다. 러시아 소설도 좋지만 전 에르미타주 미술관 꼭 가고 싶어요.
그리고 일리야 레핀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도 꼭 가고싶구요. 코로나가 이제 잠잠해질까 싶으니 또 전쟁이라.... 지구는 정말 바람잘날이 없네요. 우리는 정말 나쁜 지구인인가 봐요. ㅠ.ㅠ

미미 2022-05-14 20: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열람실에서 책을 읽다가 굶어죽다니...종자표본 건드리지 않은것도
어쩐지 경건해지게 만드네요.
러시아는 지금 언론통제와 조작을 아주 효과적으로 하고 있다고 해요.
그래도 인터넷 특히 SNS는 다 통제가 안될텐데 말이죠.
당연한듯 보이던 문제들이 갈수록 복잡해지네요.

바람돌이 2022-06-11 23:18   좋아요 2 | URL
저도 열람실 이야기와 종자표본 이야기에서는 전율을 느꼈어요. 아 인간이 이렇게도 숭고해질 수 있구나 그런 느낌요. 러시아도 중국도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그 체제의 장점은 다 갖다버리고 그 체제의 가장 나쁜 악습들은 고스란이 가져와 재탕하고 발달시키고 있는 느낌입니다.
러시아만이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의 변화를 항상 주의깊게 봐야겟다는 생각을 러시아때문에 하게 되네요.

coolcat329 2022-05-14 22: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즘 러시아 참 싫지만...페테르부르크는 참 가고 싶은 도시에요.
얼마 전 죄와 벌을 읽었는데 이 책 읽고 싶어집니다.

바람돌이 2022-06-11 23:19   좋아요 2 | URL
저도 러시아 싫지만 페테르부르크는 정말 가고 싶은 도시에요. 죄와 벌을읽은 사람들이 라스콜리니꼬프가 걸었던 거리를 그대로 걸어보는 여행자들도 많다고 하네요. ^^

희선 2022-06-10 02: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러 작가가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군요 현실보다 환상 신화 같다니... 2차 세계 전쟁 때는 종자 표본을 지키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 죽었는데...

바람돌이 님 축하합니다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바람돌이 2022-06-11 23:21   좋아요 2 | URL
19세기에는 러시아의 최고 도시였으니 당연하겠죠. 우리나라 서울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많은 것과 같지 않을까요? ^^ 그럼에도 뭔가 떠있는 무대 또는 환상 같다는 이 도시 정말 가보고 싶어요.
축하도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06-10 06: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축하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독서도 많이 하는 주말이 되셨으면 합니다 ^^

바람돌이 2022-06-11 23:22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도 축하드려요. 2관왕 맞지요? ^^
자꾸 외출할 일이 생겨서 책은 거의 못읽고 있네요. 노는데도 생각보다 하루가 짧아요. ^^

mini74 2022-06-10 08: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매력적인 도시네요. 종자이야기는 ㅠㅠ 바람돌이님 축하드립니다 *^^*

바람돌이 2022-06-11 23:25   좋아요 3 | URL
맞죠. 언제쯤이면 아무 걱정없이 이 도시를 여행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는 러시아 가는 아에로폴로트 항공이 연착 이런걸로 악명이 높아서 그렇지 가격은 굉장히 쌌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ㅎㅎ
축하도 감사합니다. mini74님은 2관왕 축하드려요. ^^
 

18세기 유럽을 향한 창을 내세우면서 표트르 대제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 도시는 처음부터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설계되었다. 궁전과 성당, 건물과 운하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의 건축적지향점은 오직 하나, 유럽적인 것이었다. 덕분에 온갖 유럽적인 풍경이 도시의 외관을 수놓게 되었지만, 실제로 이곳은 유럽이 아닌러시아다. 러시아 작가 게르첸은 "페테르부르크는 유럽의 다른 모든 도시들과 유사하기 때문에 그 모든 도시들과 다르다"라고 썼다.
바로 이 간극에서 오는 묘한 부조화와 이중적인 정체성이 도시를하나의 거대한 무대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 P6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정말 부족한 것은 공감입니다. 우리는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연극은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을 하게 만듭니다. 연극을 본다는 것은아무것도 안 하고 무대를 쳐다보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 작가와 함께 위대한 정신적 모험을 하는 것이죠." - P40

마치 <알라딘>에 나오는 마법의 궁전처럼, 페테르부르크는 어느 날 갑자기 솟아났다. 이곳은 오랜 시간을 두고 조금씩 발전해나간 자연스러운 도시가 아니라, 처음부디 완성된 모습으로 짜잔 하고 등장한 도시다. 아무것도 있던 땅에 갑자기 솟아난 이 눈부시게화려한 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기적처럼 보였고, 이를 바탕으로이 도시를 둘러싼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만들어졌다.  - P94

특히 페테르부르크가 네바강과 운하, 그리고 늪지라는, 물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사실은 이 도시가 땅에 굳건히 뿌리내린 곳이 아닌 신기루 같은 공간이라는 인상을 남겼고, 이것이 이 도시를 더욱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많은 문학에서 이곳이 초자연적이거나 환상적인 공간으로 그려지고, 도시를 배회하는 주인공 중 유난히 몽상가가 많은 것은 모두 이러한 도시의 태생적인 특성과 관련이 있다.
- P95

또 한 가지, 페테르부르크의 특징은 이곳이 그전까지 러시아에서 찾아볼 수 없던 유럽풍의 도시라는 점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럽이 아니라 유럽 풍의 도시라는 지점이다. 페테르부르크를(유럽을 향한 창으로 만들고 싶었던 표트르 대제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을 불러 모았고, 이들은 강과 운하를 따라 베네치아와 암스테르담, 로마를 연상시키는 장대한 건축물들을 세웠다. 그러나 이렇게 온갖 유럽의 스타일을 가저 왔기 때문에 결코 유럽이 될 스 없는,
이 도시의 또 다른 특징이 생겨났다. 즉, 페테르부르크 전체에 걸쳐흐르는 유럽적이면서 유럽이 아닌, 인위적이면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이 도시에 어떤 특별한 정취를 만들어낸 것이다.
- P95

레닌그라드 봉쇄가 유명한 이유는 단지 참혹한 상황을 오랫동안 버텨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지옥보다 못한 조건 속에서도 사람들은 인간다움을 지키면서 단순한 생존이 아닌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도시의 반 이상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도서관은 여전히 문을 열었고, 사람들은 열람실에서 책을 펴놓은 채 굶어 죽었다. - P159

성 이삭 성당 근처에 있는 바빌로프 식물산업연구소는 소련의세계적인 식량학자인 바빌로프와 그의 동료들이 러시아의 기근을없애기 위해 전 세계 25만 종이 넘는 씨앗을 수집하고 연구한 곳이다. 독소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바빌로프는 스탈린의 숙청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감옥에서 아사했다. 하지만 그가 사라진 뒤에도 그의 동료들은 연구소에서 종자를 지켰다. 극도의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그들은 차례로 쓰러졌지만 아무도 책상 위의 완두콩이나 귀리, 감자 씨 표본을 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결국 봉쇄가 풀린 뒤연구소가 다시 문을 열었을 때, 연구원들은 대부분 죽었지만 바빌로프의 종자 표본에서는 쌀 한 톨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 P160

이처럼 봉쇄 속의 레닌그라드를 진정한 영웅 도시로 만든 것은,
포탄도 탱크도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삶의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시민들의 신념이었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의지가 이 도시를, 끔찍한 파국의 무대가 아니라 고통과 영광이 공존하는 비극적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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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라는 말에서 먼저 떠오르는건 낯설다는 이미지다. 러시아의 민족 또는 1차대전의 한 계기가 되었던 발칸반도의 범게르만주의 범슬라브주의 할 때 그 슬라브?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땅과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인데도 슬라브라는 저 말에서 러시아를 떠올리고 마는 것은 왜일까?
책을 읽으면서 곰곰 생각해보니 1국가 1민족체제에서 살아온 한국인인 나에게는 민족 하면 바로 국가와 연동시키는 자동메카니즘이 있었구나, 머리로는 실제 세계가 그렇지 않다는걸 알지만 오랜 인식습관은 자동인형처럼 그렇게 연결되는구나 싶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슬라브가 생각보다 낯설지 않다. 귀에 익숙한 도시들, 알고있는 역사들, 또한 익숙한 예술가들과 작가들. 생각보다 슬라브인들의 삶의 궤적은 가까이 있었는데 다만 인지하지 못한 것이 더 큰 듯하다.
지도를 보면 슬라브 지역은 크게 3지역으로 나뉜다.
러시아를 포함하는 동슬라브 지역- 지금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가 포함된다.
서슬라브지역은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남슬라브지역은 예전에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 묶여있던 지역들 -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코소보, 북마케도니아, 불가리아가 해당된다.

이 책은 이 지역들에 대한 여행기이자 문화 예술 역사에 대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또한 독일과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다 오스만제국까지 엄청난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사람들의 피와 눈물에 대한 기록이기도하다. 그래서 이들은 나라가 달.게 모두 흩어져있어도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할때 슬라브라는 말을 유난히 강조하는지도 모르겠다.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굶어죽었건 우크라이나의 홀로도모르는 아직도 국제기구를 통해 공식적인 제노사이드로 인정받지 못했고, 체르노빌은 여전히 죽음의 땅이다. 그 땅은 지금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 중이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평화는 언제쯤 찾아올까?
모두가 모른척했고 지금도 모른척하고 있는 이 땅의 비극을 기억하게 한 것은 예술의 힘이다. 우크라이나의 헐로도모르를 취재했던 영국기자 가레스 존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영화 <미스터 존스>, 스탈린에 대한 우화로 읽을 수 있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스베틀라나 알렉예비치의 작품 <체르노빌의 목소리>, 우크라이나의 바비 야르 지역에서 발생한 나치의 이 지역 유대인 학살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오늘 이 지역의 비극은 또 누구에 의해서 기록될 것인가? 여태까지의 기록으로도 고통의 임계점을 이미 넘겨버렸을 이 땅의 사람들에게 부디 빨리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원한다.

서슬라브에서 귀에 가장 익은곳은 역시 체코의 프라하다. 프라하를 가로지르는 블타바강은 독일어로 몰다우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두번째 작품이다. 체코 필하노닉의 연주를 듣고싶었지만 못찾고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로 음악을 들으면서 서슬라브지역을 읽는다. 이 책은 사실 굉장히 쉽고 책장이 잘 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읽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 그 이유가 바로 이런 것 - 곳곳의 장소마다 관련된 음악과 미술 영화 책을 소개하고 있어 도저히 찾아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하는 힘이다. 작가님의 목적은 아마도 이 슬라브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고 싶은듯한데 정감있는 글쓰기랄까, 그런 마음이 글에 곳곳에서 배어나와 아 이책도 봐야지 이 영화도 봐야지 하면서 자꾸 다른 자료들을 찾게 한다.

프라하에 대한 글에서 인상적인 것은 작가이자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를 이끌고 초대 대통령을 지낸 바츨라프 하벨에 대한 프라하사람들의 애정이다.
거창한 기념비가 아니라 프라하 국립극장 한 편에 저렇게
빨간 하트로 표현된 마음은 오히려 간절하여 이방인의 마음조차도 따뜻하게 만든다. 이 하트 하나를 보고싶어 짐을 챙겨 프라하로 가고싶다는 마음을 들게하는 것이다. 더구나 프라하는 카프카의 도시이고 카렐 차페크의 도시이며 자유를 향한 체코인들의 메시지를 담은 존 레논벽의 도시이기도 하니 이 도시 하나를 보는것만으로도 얼마나 벅찰까.

폴란드의 브로츠와프는 난쟁이의 도시이다. 1980년대 억압적이었던 이곳에서 이 도시 사람들은 정부의 공고문과 표어들 위에 난쟁이 그림을 덧붙임으로써 공개적으로 그들을 조롱했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뒤 폴란드인들은 도시 곳곳에 언갖 모습ㅇ 난쟁이 상들을 조각하여 이를 기념한다. 그런가하면 도심에 1980년대 계엄령 기간에 사망한 이들을 기념하는 슬픈 기념비도 존재한다. 혹독한 시절에 대한 기억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한편 아픔을 진정한 아픔으로 표현할줄 아는 이들의 예술적 감수성에 놀라게 된다.

남슬라브는 정말로 낯설다 느꼈었는데 생각해보니 오래전 인상깊게 봤던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 <언더 그라운드>의 그곳이다. 모두가 죽고 영혼들이 흥겹게 떠들며 음악에 맞춰 춤추던 모습이 아릿하게 다가오던 영화였다. 그토록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춤추고 노래하던 이들의 땅. 그러나 20세기에 가장 극악한 비극을 겪은 이들은 지금도 그런 낙천성을 가지고 있을까? 사라예보를 가득 채운 묘지들은 모두 1992년에서 1995년 사이 보스니아 내전 기간에 죽은 이들이다. 이렇게 많은 묘지들을 안고 사는 이들의 땅에 대한 궁금증은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로 나를 이끈다. 보스니아에서 태어나 크로아티아 대학에서 공부하고 세르비아에서 집필활동을 했건 이보 안드리치는 지금은 없는 나라 유고슬라비아인이었다. <드리나강의 다리>를 주문하면서 어쩌면 그토록 오랫동안 고통의 역사를 겪은 이곳 사람들의 마음 한자락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갇을 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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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년 10월 12일 프라하에서
    from 내 인생은 진행중 2022-05-05 05:33 
    오늘 아침 바람돌이님의 <슬라브 막이 오른다> 페이퍼를 보다가 책에 실렸다는 사진이 익숙하여 기억을 더듬더듬. 몇년 전 프라하 여행하면서 책에 실린 것과 똑같은 사진을 찍어놓은 것이 생각나서 지난 사진 앨범을 뒤적거리게 되었다. 프라하 국립극장 아래층 입구에 있던 하트.바츨라프 하벨을 기리는 마음을 나타낸 기념비 같은 것이다. 시내에는 바츨라프 광장이라는 곳도 있다. 관광객들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곳. 여기 바츨라프는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이
 
 
희선 2022-05-05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라브는 어느 한나라가 아니군요 몰랐습니다 동서남으로 나뉘고... 슬라브 민족은 힘든 일을 많이 겪었지만, 문화 예술을 좋아하기도 했네요 그걸로 힘든 걸 넘었을 듯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한이라고 하는... 그러고 보니 폴란드에도 한과 비슷한 말이 있다고 한 걸 봤는데, 그 말 잊어버렸네요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와야 할 텐데...


희선

바람돌이 2022-05-05 01:59   좋아요 1 | URL
맞아요. 희선님. 슬라브족들의 나라가 진짜 많죠. 또 그런데 이 지역에 사는게 또 슬라브족만은 아니라는.... 게르만족도 섞여 있고 유대인들도 많고... 거기다가 지역별로 종교도 다양하면서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은 지역이기도 하구요. 참 여러가지 생각이 많아 드는 책이었습니다.

hnine 2022-05-05 0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오늘 꼭두새벽부터 추억여행에 빠져보았습니다.
‘슬라브‘ 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지만 저는 슬라브 하면 우선 복잡한 역사, 지리, 정치, 이런 것들부터 연상되어요.
어떤 의미에서 막이 오른다고 했는지, 이 책 저도 읽으면서 더 알아보고 싶어졌어요. 그러다보면 러시아 역사, 문화에 대한 것도 흘끔거리게 되겠지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함께 올리신데는 다 이유가 있으실테니까.
음악 <슬라브 무곡>도 생각이 납니다. 저는 몰다우보다 좀 가벼운 슬라브 무곡부터 들으러 가봅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드려요.

바람돌이 2022-05-05 13:06   좋아요 1 | URL
러시아에 대한건 이 작가의 페테르부르크 막이 오른다라는 책이 있더라구요. 전 이 책도 보려구요. 동물농장은 우크라이나 이야기하면서 스탈린의 말도 안되는 강압정책으로 수많은 우크라이나인이 굶어죽었던 이야기와 연결되어요. 읽기 쉽지만 그렇다고 내용이나 관점이 가볍지 않아서 저는 이 책 좋았습니다

새파랑 2022-05-05 0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체코 하면 카프카, 쿤데라 아닌가요 😆 저도 드리나강의 다리 사놓고 못읽고 있는데 바람돌이님 글 보니 5월에는 읽어야 겠어요 ^^

바람돌이 2022-05-05 13:11   좋아요 1 | URL
국제적인 명성에서야 당연히 쿤데라와 카프카지요. 하지만 이 책에서 체코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작가는 보후밀 흐라발을 얘기하더라구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그 작가요. 암울한 시절에도 체코를 떠나지 않고 평생 체코어로만 글을 쓰면서 신간을 쓸때마다 금서로 지정되어 지하 출판으로만 읽을 수 있었다네요. 이 작가의 책도 제목만 보고 있었는데 빨리 읽어보고싶어졌어요. 제 드리나강의 다리는 지금 열심히 배송중이랍니다. ㅎㅎ

프레이야 2022-05-05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라브족의 수난사. 광범위한데 전 남슬라브 발칸쪽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보니 그런 거 같아요. 드리나강의 다리 강추에요. 미스터 존스 영화 홀로도모르와 연관해 좋은 영화였어요. 무심히 흐르던 블타바강을 내려다보았던 기억도 떠올리며… 체르노빌의 목소리 아직 안 펼쳤네요. 예술가의 흔적과 함께 씹어먹기 좋은 책 같아 담아가요 ^^
표지그림도 참 좋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어서 평화가 오길!

바람돌이 2022-05-05 17:45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이 강추하는 책과 영화 역시 기대만발입니다. 이 책 표지는 저도 참 마음에 들더라구요. 풍경그림도 좋고 뭔가 연극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달까요. ㅎㅎ 지금의 우크라이나 상황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것이 더 각별했던것 같습니다.

scott 2022-05-09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유럽 국가 중에
우크라이나 키예프만 못 가봤습니다(그루지아 몰도바는 가봤는데 ㅎㅎ)

가려고 계획 했던 시기에
코로나-전쟁 터져서 ㅠ.ㅠ

전쟁의 끝도 보이지 않고
전후 재건 과정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비극적인 현실 ㅠ.ㅠ
 

물론 어느 나라나 자신들의 뿌리와 신화를 예술로 형상화하그여기서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찾는 예는 종종 찾아볼 수 있지만,
이렇게 대놓고 이름과 제목에서부터 자기 민족을 내세우는 경우는흔치 않다. 사실 이들 슬리브 민족이 꾸준히, 그리고 지얼하게 슬라브적인 무언가를 찾아 형상화하고, 또 이를 드러내고자 한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 P25

이처럼 실제현실에서 진실은 여전히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으나, 조지 오웰의 이야기와 아그네츠카 홀란드의 영화는 전 세계 수많은 이에게비판적인 문제의식을 던지고 각성을 촉구한다. 그런 면에시 새삼 이야기의 힘과 생명력,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 P43

차페크는 어느 날 사람들로 빽빽한 전차를 타고 가다가, 흔들리는 전차 속에 서로 부대끼면서도 무표정한 표정으로 앞만 보는 사람들을 보고 로봇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인간적 감정도없이 그저 일만 하러 가는 존재들 같다는 강렬한 인상은 차페크가어려서부터 들어 온 프라하 유대인 지구의 ‘골렘‘ 전설과 이어지던서 작가에게 구체적인 형상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러한 로봇의 형상에 비판적인 시선이 더해진 것은 그가 대학 시절 직접 목격한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이 컸다.
- P92

인간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또 이야기 듣기를 갈망하는 이유는 우리가 발을 담그고 살아가는 현실이 참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은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 다른 삶을 꿈꾸곤 한다. 그런 맥락에서 슬라브 지역의 예술이, 특히 이야기가 그토록 발달한 이유는 이들이 그것 없이는 견딜수 없을 만큼 잔혹한 역사와 현실을 겪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슬라브의 수많은 이야기에는 언제나 웃음 속에 눈물과 한숨이 뒤섞여 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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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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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내가 아는 중 안나 카레리나와 함게 가장 유명한 첫 문장. 

고속도로를 달릴 때 경탄하는 순간이 가끔 있는데 터널 이쪽과 저쪽의 날씨가 확 달라질때다.

더군다나 그게 겨울의 하얀 눈이라고 하면 터널을 경계로 아마도 다른 세상에 들어선듯한 환상에 젖어들수 있겠다싶다.

어쨌든 저 문장 때문에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을 처음 읽는 내 마음은 그냥 설렘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이라니, 당연히 이 책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듯했던 것이다.

마치 검은 밤의 밑바닥이 하얘지는 것처럼, 나의 세계에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줄 것처럼......


하지만 실제 설국을 읽은 나는 급속도로 혼란에 빠져버렸으니....

아니 이게 뭐야? 

웬 시시한 한량 하나가 온천마을에 가서 이리 빈둥 저리 빈둥하다가 동네 게이샤랑 썸타고, 또 다른 인물한테도 스리슬쩍 썸타다가 그냥 무책임하게 도쿄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다야?  정말?????

아 정말 취향아님 아주 실망임 등등

무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대표작에 왜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지?

이런 경험은 <무진기행>이후 처음이다.

실망의 강도도, 읽고나서 허탈해지는 것도 <무진기행>과 <설국>은 똑 닮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렇게 난리를 치는 이 작품들에서 왜 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을까?

어떻게 보면 이야기의 플롯까지 비슷한 이 소설들은 그래서 이 작가들을 내 취향 아님이라는 도장을 꽝꽝 찍게 만들었다.


그래서 클래식 클라우드의 시리즈 10권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은 이유는 순전히 내 강박이다

이 시리즈를 다 읽기로 했고, 그래서 순서가 되었으니까 읽었을 뿐.....

그런데 결과는 약간 반전이다.

책의 초반부는 설국의 배경인 에치고유자와를 찾아가면서 온통 <설국>을 읽는 법에 할해하고 있다.


<설국>은 줄거리의 소설이 아니라 이미지의 소설이다. <설국>에 나오는 모든 배경은 일종의 논리가 아닌 이미지다. 시마무라가 살고 있는 도쿄라는 현실 세계가 아닌 터널 밖의 세계, 즉 에치고유자와라는 이미지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도입부부터 우리가 이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터널 밖 세상은 환상에 기반한 모자이크 같은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소설은 독자들을 힘들게 만든다. 독자들은 습관적으로 인과관계를 통해 하나의 전체상을 포착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설국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한 행 한 행, 시를 읽듯 이미지로 읽어나가는 것이다. - 82쪽


내가 왜 <설국>을 읽는데 실패했는지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가 시를 잘 읽지 못하는 이유와 똑같다.

<설국>의 세계에서 인과관계를 찾고 서사를 찾았던 나의 실패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설국>은 그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을 절대미를 추구하는 탐미주의로 이야기 한다. 

<설국>의 도입부가 그렇듯이 책속의 모든 장면은 대비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주인공 중 하나인 요코가 화재가 난 건물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는 장면과 은하수가 내 몸속으로 들어와 뿌리내리는 듯한 장면의 대비 역시 한 순간의 정지화면이 되어 이 세상 것이 아닌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순간을 만든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선악이나 인간의 세속적 기준이 끼어들 곳이 없다.

소설 속 주인공 시마무라는 늘 한 발 물러서서 관찰하는 인간이지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저 관찰하는 인간으로서 그가 순간 순간 느끼는 절대적 아름다움의 순간들이 이 소설을 가득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미지만으로 본다면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할만큼 이 책의 저자의 <설국>에 대한 해석은 공감을 불러온다.

이 책을 읽고 <설국>을 다시 읽는다면 저자인 허연씨가 느낀 것을 나도 느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와 가와바타 야스나리, 또는 이 책 저자인 허연씨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일 거 같다는게 더 강하다.

그러면서 생각한게 어쩌면 지금부터 10년 정도쯤 더 지나면 나도 약간 달관의 경지를 느끼고 도인같은 느낌을 풍기는 사람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 때 읽는 설국은 좀 다르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약간은 그런 기대로 <설국>을 10년 뒤에 다시 읽을 책으로 킵해두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가리켜 "어떤 시대관념도 가와바타 씨를 기만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단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한창 작가로서 활동하던 시기는 일본의 군국주의가 한창이다가,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온나라가 피폐해졌던 시기다. 

이런 역사적 시기를 거쳐오면서도 어떤 현실 정치에도 영향받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 하나만을 추구해온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울끈불끈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는 곳에 존재한다.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다는 것이 호불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평해야 할지 아예 모르겠다는 것이다. 

마치 <설국>을 읽고 당황했듯이, 작가의 삶의 모든 순간들이 나의 인식범위를 벗어난 존재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책은 좋다.

<설국>을 읽고 당황스러웠던 내게 다르게 볼 수 있는 길을 밝혀주었고,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정말로 독특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도 마련해주는 아주 친절한 안내서이다.

이 책의 글을 따라가다보면 내가 모르던 세계 하나를 더 얻는 느낌이다.

마치 터널을 나가면 설국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처럼.....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

이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가 중간 중간에 꼭지를 따로 둬서 보충 설명이 필요한 것들을 서술하는 것인데,

가와바타 야스나리 편에서는 가오바타와 오에 겐자부로를 비교하는 대목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둘 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지만 정말 대조적이다.

심지어 오에 겐자부로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연설 제목인 <아름다운 일본의 나>에 빗대어 <애매한 일본의 나>라고 붙인다. 그러면서 단호하게 가와바타 야스나리이 '아름다운 일본"을 비판하며, 아름다운 일본은 애매하며, 그 애매함이 일본의 폐쇄성과 연결되면서 아시아 침략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연설을 한다. 

이 두 작가의 연설을 비교하는 꼭지도 재밌다. 아 물론 나는 오에 겐자부로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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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21-08-21 08: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울끈불끈!! 🤩 이거는 그냥 못 지나가겠네요. 바람돌이님 짱!!👍👍👍

바람돌이 2021-08-23 01:28   좋아요 0 | URL
아니 그걸 또 콕 찍어내시다니.... 잘잘라님 짱입니다. ^^

페넬로페 2021-08-21 09: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를 잘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 설국 읽기에 실패히는 것일까요? 두 작가를 비교하는 것이 흥미로워요^^
설국을 읽고 이 책을 읽는게 좋겠죠**

바람돌이 2021-08-23 01:30   좋아요 1 | URL
시를 잘 읽지 못하는 사람은 설국을 저처럼 실패할듯한데요. 그냥 이 책을 읽고 저자인 허연씨가 말하는대로 한번 따라가면서 읽어보는게 더 좋을거 같아요. 그럼 좀 다른 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싶어서요. 저처럼 실패하지 마시구요. ^^

새파랑 2021-08-21 09: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설국의 해설집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전 설국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뭔가 눈과 온천의 마을에 온 기분. 저도 이 책을 읽고 설국을 다시 읽어보면 더 좋아질수도 있겠군요 😆

바람돌이 2021-08-23 01:30   좋아요 1 | URL
설국은 좋아하시는 분은 정말 좋아하더라구요. 저는 좋아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첫문장이 너무 멋지잖아요. ^^

scott 2021-08-21 11:3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가와바타 야스나리 정말 독특한 정신 세계
아베가 처음 총리 되었을때 나의 아름다운 나라 일본 이라는 연설문도 가와바타 노벨상 연설문의 문구를 인용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장이 응축된 시어로 짜여졌습니다 이작가의 손바닥 소설이라는 작품은 딱 한장짜리 스토리로 구성되었는데 사물과 사람을 이미지로 형상화 시켜서 세밀한 묘사에 놀라고 끝까지 읽고나면 한편의 시였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설국은 한 문장 속에 시각-촉각이 혼재 되어있습니다

 [˝거울 속에는 저녁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 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 인물과 배경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한 발자국 물러서 있는 인물이죠 모든 사물 사람 현상 심지어 기억 조차도 약간 비겁하면서도 자조적이고 무기력한 인간

바람돌이님 십년후 꼬옥 설국 완독 하시길 바랍니다 ^^

바람돌이 2021-08-23 01:38   좋아요 1 | URL
스콧님이 설국 해설서를 쓰도 될듯요. 이 책 저자인 허연씨가 말하는게 바로 그런면이었어요.
저는 그런 감각을 모두 느끼기에 감성이 부족한듯요. ^^;;
한편으로 아베가 야스나리의 연설을 인용했다니 잠시 수긍이 가네요. 나쁜 놈들은 꼭 순수한 예술을 논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리잖아요. ㅎㅎ

coolcat329 2021-08-21 15: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소설 인상적인게 고마코 외모 묘사한 부분이에요. 입술이 아름다운 거머리같다거나 양파구근 벗겨낸 듯한 피부 등 유난히 깨끗한 외모를 강조한 그런 묘사가 참 설국스럽더라구요.
한줄한줄 시 읽듯이 장면을 그려가며 읽어야 절대미를 느낄 수 있군요. 저도 언제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바람돌이 2021-08-23 01:40   좋아요 1 | URL
설국은 장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오감으로 읽어야 되는 소설이라는 말인것 같아요.
저의 오감은 언제쯤 완성될까요? ㅎㅎ 저도 10년 뒤에 다시 읽어보기로요. ^^

mini74 2021-08-21 17: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미지의 소설. 딱 맞는 말이네요. ㅎㅎ저도 오에 겐자부로쪽입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1-08-23 01:40   좋아요 1 | URL
소설을 읽는 방법이 다르니 좋아하는 작가나 소설도 달라지는거겠죠? 그런면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좋아하기 쉬운 작가인듯요. ^^

그레이스 2021-08-21 18: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장면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분명 텍스트인데 그림으로 가슴에 들어와 버린!

바람돌이 2021-08-23 01:41   좋아요 3 | URL
설국의 모든 장면이 그렇게 그림으로 시각화해서 읽어야 할 듯하네요. 그레이스님은 오감충만자!
전 마지막 장면도 혼자 도쿄로 튀는 나쁜놈 하면서 읽었거든요. ㅎㅎ

그레이스 2021-08-23 05:20   좋아요 5 | URL
은하수가 그녀에게로 쏟아져내리는..
장면도 !
압권입니다.
죽은 사람을 안고 있는 여인 위로 은하수가 쏟아져내리는 밤하늘의 아름다움이 전달된다는게 놀라울 따름이죠!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유미주의의 끝판왕!

바람돌이 2021-08-24 01:51   좋아요 1 | URL
바로 그 장면이 이해가 안가는 사람이 접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1-08-24 05:15   좋아요 0 | URL
^^

물감 2021-08-23 15: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에 엄청 약한데, 이런 책은 읽다 덮을지도 모르겠군요...ㅜㅜ

바람돌이 2021-08-24 01:52   좋아요 1 | URL
책의 분량이 적은지라 읽다 덮지는 않을듯해요. ^^

희선 2021-08-24 0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은 봤지만 《설국》은 아직이군요 이 글을 쓴 사람처럼 못 볼지도 모를 것 같아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어렸을 때부터 죽음이 가까이 있었더군요 그게 글을 쓰는 데도 영향을 많이 미쳤겠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 하나도 못 봤다고 생각했는데, 하나 읽었어요 《명인》 명인이 마지막으로 두는 바둑을 바라보는 이야기... 명인은 바둑을 예술로 여기는데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실제로 본 바둑 대국을 바탕으로 쓴 거더군요


희선

바람돌이 2021-08-24 01:54   좋아요 1 | URL
저는 달랑 설국 하나 봤는데 명인은 바둑 대국 이야기군요. 저는 웹툰 미생 보면 바둑대국기 나오잖아요. 그거 보면서 와 바둑대국기가 예술이다 하면서 봤어요. 바둑 둘줄 모르는데도 글이 정말 유려하더라구요. 야스나리의 명인도 그렇지 않을까 뭐 그런 느낌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