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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크로코스모스
아스카 후지모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역사소설을 가장한 황당하기 그지없는 뻥의 잔치다.
멀고먼 아스카시대 권력을 한손에 쥐고 주물렀던 소가가문(이 소가가문은 백제계의 도래인이라는 설이 많다)에서 지은 악업이 후대 일본 군국주의 시대로 이어진다는 말도안되는 설정을 기본으로 하는 이 소설은 설정이 너무 황당하다보니 뭐 만화도 아니고 이게 뭐야라는 심드렁한 반응을 가져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하도 기가막히게 좋다보니 나중에는 이거 실존인물 아냐? 일부러 코믹하게 만든거 말고 나머지는 모두 실존인물 아냐?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실제로 나 역시 책속의 주인공 소가 히토시나 가구야 공주를 구글에서 검색해보기까지 하게 되었다.결과는 소설얘기외엔 안나오더만.... ㅠ.ㅠ
가구야 공주는 그나마 일본 전설속의 주인공이라도 되었지만 소가 히토시란 인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책을 두고 일본역사를 통렬하게 비꼬았다고도 하는데 솔직히 통렬하다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통렬하다는 말은 정확한 인식으로 그 본질과 허위를 제대로 짚어낼때 쓰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는 방향이 좀 다르다고나 할까?
그저 역사를 가지고 논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실제와 허구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면서 전혀 말도 안되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것.
그럼으로써 역사가 가지는 무거움을 싸그리 벗겨버리고 무한히 가벼운 놀잇감으로 재창조하는 것.
따라서 모든 무거운것들에 대한 조롱은 함뿍 지니고 있지만 그 조롱이 지나치게 희화화되다보니 그것이 풍자라는 영역의 통렬함으로 가기엔 모자란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것을 이 책의 단점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런 통렬함을 포기함으로써 이야기의 재미는 몇배나 강화시켜 놨으니말이다.
소설의 재미만으로 따진다면 이 책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다만 마지막의 소가 히토시의 소우주(미크로 코스모스)의 정체는 조금 뜬금없다 하겠다.
그것을 연결하는 소가가문의 마지막 몰락도 같이....
스포일러의 가능성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겠지만 앞의 재미를 완전히 반감시키는 느닷없는 반전이라고나 할까? 이해도 공감도 별로 안가는.... 아 이런데서 작가의 내공이 드러나는구나 싶은 안타까움....
내가 작가라면 이 마지막 장면은 필생의 사업으로 다시 고쳐쓰고 싶겠구나!!

덧붙여서 이 책의 작가에 대한 한마디
아스카 후지모리라는 이름의 이 작가는 처음 <네코토피아>라는 책을 낼때는 일본인 여성이라고 했다가 이 책을 내면서는 30대 프랑스남성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일본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일단 소설에서 프랑스문화 특유의 느낌이 안난다는 것. -이건 그냥 내가 받는 느낌인데 하여튼 프랑스인들은 별거아닌것을 갖고도 유난히 폼을 많이 잡는 느낌이 들때가 많다.
뭐라 딱 집어 말하기는 뭣하지만 일본 작가 특유의 글쓰기의 특징들이 많이 나타난다는게 내 생각.

그러면 그는 왜 프랑스인이라고 바꿔서 자신을 소개했을까?
일단 이 역사가 비틀어대는 인물들이 심상치 않다.
모든 사람은 다 제끼더라도 쇼토쿠 태자에 대한 비틈은 심각한 수준이다.
쇼토쿠 태자는 백제 문화와의 관련과 불교문화의 부흥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우리 나라에선 쇼토쿠 태자가 일본의 유명한 역사인물일뿐이지만 일본에서 쇼토쿠 태자가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하다. 오늘날 일본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낸 인물로 거의 국조(國祖)처럼 떠받들어 지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 쇼토쿠 태자에 대한 비틀기는 이 사람 이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심하다.
진짜 멍청이에 마마보이에 무모하기 그지없는 얼간이로 그려놨으니말이다.
이 소설을 보는 일본인들은 과연 어떤 심정으로 볼까 싶다. 우익들이라면 이 작가를 살만 루시디처럼 만드는거 아냐 싶을 정도.
그러면 작가는 왜 이렇게 쇼토쿠 태자를 비틀어놨을까라는 의문도 잠시 든다.
내 나름대로의 생각은 쇼토쿠 태자는 그 자신과는 상관없이 항상 정치적으로 이용당해왔다.
일본의 위기시대마다 국가의 단결과 통합의 구심점으로서 활용되어왔던 것.
그 정점이 일본 군국주의임은 말할 것도 없고...
어쩌면 작가는 이런 상징으로서의 쇼토쿠 태자를 해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느닷없이 프랑스인이라고 자기를 숨긴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같이 들고....

어쨌든 일본인이 아닌 우리로서는 재밌게 키득거리며 읽을 수 있는 훌륭한 소설이다는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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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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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씨는 참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다. 너무 평범해서 아예 존재감이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
등기사무소에서 일하는 아주 아주 평범한 공무원, 그것도 비정규직 직원이다.
누군가 특별히 여기는 사람도, 주제씨를 특별히 여겨주는 사람도 하나 없는 노총각이다.
사는 곳도 특이하여 이웃하나 없이 등기사무소 옆에 딸려있는 단 하나의 방이 그의 집이다.
작가가 주제씨라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그에게 이름을 지어준것 조차 희안하다고나 할까?
차라리 그냥 "그"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주제씨의 진짜 이름은 어쩌면 '익명'이 아닐까?

그가 그런 자신의 익명성을 보상받기 위해 하는 유일한 취미는 유명인의 기사를 스크랩하는 일이다.
아! 그게 보상심리인지 어쩐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 그가 유명 추기경의 신상서류들을 살짝 빼오다가 우연히 아주 우연히 한 여인의 신상서류를 같이 끼워오게 된다.
전혀 유명하지 않은 그녀.
서류를 통해 알수있는건 그녀의 이름과 태어난 날, 주소, 결혼날짜, 이혼날짜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의 주제씨 여기서 운명을 느낀다.
그녀를 찾아야겠다는.....

찾아서 뭘 어쩌겠다고?
아니 그딴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는 무수한 서류더미들 속에서 그녀의 서류가 그에게 왔다는 것이 중요할 뿐....
이제 그녀를 찾는 주제씨의 모험이 시작된다.

그녀를 찾기위한 주제씨의 노력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무모하고 아날로그적이며 진부하다.
그녀를 찾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모두를 무시하며 어렵고 힘든길만 골라서 가는 주제씨.
하루는 그녀의 흔적과 지금을 추적하기 위해 그녀가 다니던 학교에 침입하기도 하는데, 겨우 그녀의 생활기록부를 추적하기 위해 그가 벌이는 모험은 정말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 후에 그가 들킬지도 모를 온갖 상황에 대해 주제씨가 벌이는 머릿속 상상은 지나치게 심각해서 어이가 없을정도...꼭 엄마몰래 엄마주머니를 털어 사탕을 사먹는 아이가 생각하는 변명들 같다고나 할까?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이 결코 될것 같지도 않은 주제씨의 노력들이 슬슬 지겨워질 즈음 느닷없이 등기사무소의 소장이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한다.
왜인지 모르게 주제씨를 보살펴주는, 그럼으로써 주제씨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겁에 질리게 하기도 하고..
그리고 느닷없이 등기사무소의 전산화에 반대하며 쌓여있는 서류더미들을 옹호하기도 하고, 산자와 죽은자를 같이 있게 해야 한다는 묘한 말을 남기기도 하는 소장.
아 이쯤되면 주제 사라마구가 하려는 얘기가 뭔지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등기사무소로 대변되는 극단의 관료주의사회, 그리고 그속에 이름만으로 존재하는 엄청난 인간들.
모두 잊혀지고 말 인간들의 이름.
어쩌면 현대 사회의 모든 인간이 그렇게 익명의 존재가 아닌가라는 질문...
주제씨가 결국 찾아냈지만 결국 안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녀의 존재의 역설.

주제 사라마구는 눈먼자들의 도시를 통해서 인간 내면의 폭력성을 무자비하게 드러냈었고,
눈 뜬자들의 도시에서는 현대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허구성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했다면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에서는 거대한 도시속에서 익명화되고 존재감 자체가 없어지는 원자화된 개인을 부여잡는다.
주제만으로는 정말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은 책들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후편으로 갈수록 이야기의 힘이 떨어지는 것이 아쉬울따름이다.
저 책들의 순서대로 내 별의 갯수도 줄어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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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7-28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든 이름들'이란 제목으로 읽었는데요... 저런 제목을 달아서 파는 상술이란... ㅎㅎ 원제목이 모든 이름들이더군요. 정말 주제가 무겁죠. ㅋㅋ 오늘 브이 포 벤테타란 영화를 봤는데... 인간이란 것이 뭔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뭐냐...

바람돌이 2008-07-28 23:21   좋아요 0 | URL
읽고나니 역시 원제목인 '모든 이름들'이 더 적당한 것 같군요. 뭐 이런 책은 저런 상술을 써서라도 좀 더 많이 사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ㅎㅎ
인간이 뭔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면 슬퍼지거나 허무해지지 않나요? ^^
 
책도둑 2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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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을 미워했고
나는 말을 사랑했다.
어쨌든 나는 내가 말을 올바르게 만들었기를 바란다.(2권, 320쪽)

한 소녀가 책을 훔친다.
그녀가 처음 훔친 책은 어이없게도 <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무덤파는 사람을 위해 어떻게 하면 무덤을 잘 팔것인가, 무덤을 파는 도구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따위의 이야기들이다.
소녀 리젤은 이 책을 자신의 남동생을 묻었던 곳에서 훔쳤다.
그녀는 글을 읽지 못한다.
하지만 책을 훔쳤고 그 책을 읽기 위해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다만 소녀는 어이없이 죽은 어린 동생을 그냥 모르는 곳에 두고 오는 것이 아팠을뿐일게다.
무언가 동생의 옆에 있었던 것, 그것이 무덤을 파던 인부들 사이에 떨어져있던 그 책이었을 뿐....소녀에게 책을 도둑질하는 것은 슬픔과 상실을 표현할 그 무엇이었으며 또 때로는 분노나 막막한 안타까움의 표현일수도 있었다.

소녀가 동생을 묻고 도착한곳은 뮌헨 외곽의 힘멜, 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조그만 마을이다.
소녀를 데려다준 엄마는 떠나고 새로운 아빠와 엄마를 만난다.
그녀의 친엄마가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공산주의자였다는 소녀의 아버지가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모르듯이....

힘멜은 그저 그런 작은 마을일뿐이다.
소녀의 양부모를 비롯한 가난한 사람들이 욕지거리를 나누며 삶의 고단함을 나누며 아웅다웅 그렇게 살아가는...
작은 마을의 주민들은 아마도 당시 독일의 축소판일거다.
히틀러-이책에서는 지도자라는 뜻의 퓌러로 더 자주 불리는-의 말은 무섭게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고,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퓌러의 추종자들이다. 적극적, 소극적, 방관자적 어떤 의미에서든.
소녀의 양아버지 한스는 그 90%의 추종자들에서 벗어나있다.
한스 역시 히틀러의 말이 무섭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양심을 지킬 줄 아는 드문 인간이다.
입에 늘 욕을 달고 사는 양어머니 로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의 생에 어느 날 위험이 닥친다.
1차대전에 참전했을때 한스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한 유대인의 아들이 그들의 가난한 집을 찾아온 것.
그들은 그 유대인 막스를 숨겨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막스의 지하실 생활과 소녀 리젤과의 우정이 시작된다.
막스는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소녀를 위해 책을 만들고, 어쩌면 그것이 이 책도둑 소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계기였을게다.

이 이야기를 책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까 아니면 전쟁이 가져다주는 공포로 읽을까?
아니면 좀 더 나아가 말이든 인쇄형태든 말이라는 것이 주는 힘- 어긋난 선동의 힘,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힘 어느쪽이든 -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야 할까?
어느쪽이든 상관은 없을 듯하다.
어쨋든 이야기는 두쪽을 모두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소녀가 유대인 막스에 공감하는 것은 그들이 결국 같은 고통을 공유하기 때문이었을게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히틀러에 의해서 그 둘은 모두 가족을 잃었고 이 힘멜거리에 오게 된 것이니...
언제나 죽음을 한켠에 두고 살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의 공유가 그들을 이어주었겠지.
막스가 책을 만들고 뒤를 이어 소녀가 책을 만든다.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것으로 그들은 자신의 삶과 가족의 삶을 구원하고 싶었을게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끔찍한 세상이 계속되는 한 그들이 만드는 올바른 말은 언제나 유효할 것이다.

오랫만에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치지 못하게 하는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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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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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아니 제법 클때까지도 바리데기 이야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부모가 아이를 버린다는 설정도 너무 싫었지만 정말로 싫었던 것은 그 멍청한 바리데기가 자기를 버린 부모를 위해서 생명수를 구하러 서천으로 떠난다는 그 설정이었다.
자기를 버린 부모를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을 하다니, 너무 너무 신경질나는 자기희생이었다. 그리고 바리데기 신화를 내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 소설이 나오기 전까지는.....

희망을 버리면 살아있어도 죽은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286쪽 압둘할아버지가 바리에게)

아! 바리데기가 이런 얘기였을수도 있구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배신과 고통과 거짓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 세상에서 바리데기는 우리가 그래도 희망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될수도 있는거였구나!
세상의 고통과 아픔을 비껴가지 않는 그러면서도 믿음과 희망을 잃지않고 싸우는 모습을 신화속에서 보여주는 이가 바리데기였구나!
결국은 해석의 문제겠지만 황석영이 보여주는 바리데기의 모습에서 이제 그녀가 좋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황석영씨에 의해 다시 살아난 바리데기는 오늘날 신자유주의하에 세계화 국제화라는 구호의 허상과 함께 나타난다.
1990년대 북한의 기아는 그의 가족을 산산조각내고, 바리는 그녀가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로 유랑한다.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그녀가 간 영국은 그저 유럽의 영국이 아니라 한때 제국주의의 태두로서 영화을 한 껏 누렸던 나라의 뒷골목이다.
온갖 인종과 종교가 뒤섞여 나름의 꿈을 꾸지만 대부분이 좌절하고 꺾어지는 곳.
그곳은 영국이 아니라 영국안에 떠있는 식민의 섬이며 영국이 다먹고 토해낸 찌꺼기같은 그런 곳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여전히 사람이 숨을 쉬고 살아간다.
무슬림은 무슬림대로, 아시아는 아시아인대로, 흑인은 흑인대로.....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인종이나 종교의 차이로 미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내일이 두려울뿐, 범죄자도 테러리스트도 아닌 그저 사람일뿐이다.

소설의 결말이 보여주듯 바리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 수많은 바리들의 고통 역시 마찬가지일테고....
그래도 압둘 할아버지가 말한, 아니 바리데기가 상징하는 믿음과 희망은 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리라 믿어본다. 아니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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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다시 북한의 소식이 심상치 않다.
수많은 아이들이 다시 굶주림에 시달린다는....
같은민족이고 뭐고를 다 떠나더라도 바로 옆에 있는 이웃이 굶어죽는다는데 그것을 방치하고 인권을 얘기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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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05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리데기는 저도 싫어했어요. 자기를 버린 부모를 위해 죽을지도 모르는 길을 간다는게 말이나 되냐면서...이 나이가 되니까 그럴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영화 '크로싱'이 보여주는 실상도 가슴 아프죠...굶주림이 사람을 얼마나 참혹하게 하는지...

바람돌이 2008-07-05 10:40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 크로싱은 아직 못봤어요. 인간이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지킬수 없다는건 정말 끔찍해요. 바리데기도 이렇게 다르게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렇다고 딱히 그 얘기가 좋아지는건 아니지만... 아직 우리 애들한테 읽어주고싶진 않더라구요.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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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토마스 모하마드 람
주인공의 이름을 이런 식으로 지은 작가의 의도는 뭘까?
기독교와 이슬람교와 힌두교 - 3가지 종교의 이름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이 청년.
이름만으로는 인도의 종교의 대립을 넘어 종교간의 화합과 평화를 기원하는 책으로 착각해도 될 듯하다.

하지만 전혀 아니올시다니 어쩌겠는가?
그가 이런 기이한 이름을 갖게 된 것 자체가 어쩌면 이 청년의 불운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태어나자 마자 버려진 하층민 아이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의 의견과 상황에 밀려 이런 독특한 이름을 갖게 된다.
이름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우리나라의 속설까지는 아니라도 이런 기이한 이름이라면 그 인생 역시 순탄치 않을 것은 뻔하지 않겠는가?

이야기의 시작은 이 토마스 모하마드 람이 어마어마한 상금이 걸려있는 퀴즈쇼에 나가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상금을 받아야 하는데서 시작한다.
아무도 통과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말도안되는 상금을 걸었던 제작팀에게는 정말 청천벽력이 아니겠는가? (상금이 10억루피라는데 이게 우리나라돈으로는 얼만지는 모르겠다. 회사 하나를 파산시킬 정도면 몇백억쯤 되나?)
그것도 그들이 보기에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하층민 웨이터가 그 모든 문제를 맞췄다는건 정말 말도 안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그들은 뭔가 부정이 있었다는 주장을 바로 하고 청년을 구속시킨다.
여기서 짠~~~ 하고 나타난 젊은 여자 변호사.
갑자기 람의 구세주로 나타난 변호사 앞에서 람은 자신이 어떻게 퀴즈 문제를 풀수 있었는지를 이야기 하는데.......

그 이야기들은 람이라는 이 청년의 생애의 재구성이자 동시에 현대 인도사회의 실제생활을 엿보게 해준다.
인도라는 나라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는 얼마나 많을까?
성자의 나라, 명상과 요가, 수행의 나라의 오리엔탈리즘적인 이미지가 반쯤은 인도를 보는 눈을 가려놓아버리지만 이 정도는 이제쯤이면 극복하자.
나머지 반의 눈은 빈곤과 종교분쟁과 더러운 거리와 카스트의 차별이 아직도 존재하는 나라라는 이미지 그리고 반면으로는 군사대국이며 세계 최대의 영화생산국이며 동시에 IT업계의 총아라는 일면 상반돼보이는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니 어쩌면 정말 다양하고도 알기 어려운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의 홍수속에서 어쩌면 오늘의 인도를 살아가는 진짜 사람들의 모습은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람사는데가 다 그렇지 뭐라는 말로 뭉뜽거릴 수도 있는 그저 그런 삶.
람은 이름때문인지 뭔가 정착하고 살만하면 꼭 그곳에서 살수없는 뭔가의 사건이 터지고 그래서 도망치듯 사는 곳을 옮겨다녀야 하고, 그래서 온갖 직업과 장소와 상황을 전전하게 되고.....
그 속에 펼쳐지는 람과 주변인들의 삶은 정말로 뭐 사람사는 곳이 다 그렇지 뭐 성자? 수행은 무슨.... 하고 툭 내뱉게 된다.

소설 한권으로 그런 인도사회의 총체적 모습을 모두 보겠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발상이겠고, 다만 오늘의 인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따라가보는 것은 꽤 재미있는 여행이 되었다.

마지막 결론 부분이 조금 상투적이어서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고생했는데 뭐 이런 보상도 있어야지. 소설인데 뭐 어때? 라며 씩 웃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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