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로 내가 누누히 주변에 열심히 얘기하는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 <권선징악, 인과응보. 사필귀정>

내 나이가 어릴 때는 나쁜 놈이 잘 되는거 보면서 안달복달, 분개하면서 왜 세상에 인과응보가 없냐고 분개했고,

지금은 옆에 어린 동료가 분개하면 "야 인생 기다려봐. 저거 어떤 형태로든 다 죄값받아 걱정마"라고 하는 여유를 날려주신다.

사실은 저 사자성어들을 꼭 믿는다기 보다는 믿고싶어하는 쪽에 가깝고, 또 어쩌면 기원에 가깝다고 하겠다.

왜 믿느냐고?

딱히 과학적인 근거가 있기보다는 사실 안 믿는 것보다는 믿는 쪽이 살아가는 데 맘이 조금 더 편해서이긴 하다.

전래동화를 읽는 것도 또는 어린 아이들에게 전래동화를 읽어주는 맘도 딱히 다르지 않으리라.

다만 세상이 달라지니 전래동화 역시 달라진 세상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책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 읽고 들었던 동화들이 생각난다.

저주토끼를 읽다보면 여우누이가 생각나고, 진짜 특이한 단편인 머리를 읽다보면 뜬금없이 빨간종이 파란종이 타령하는 화장실 귀신도 생각나고, 흉터를 읽다보면 아기장수 우투리,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에서는 바리데기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 책의 이야기들은 위의 동화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지은게 아니라서 어쩌면 사람마다 다 다른 이야기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이야기의 서사가 펼쳐지는 과정도 전재동화의 과정과는 전혀 다르다. 

당연히 오래전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일테고, 그 달라진 세계는 작가의 말대로라면 더 외롭고 더 쓸쓸하고, 그래서 더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세상이다. 


 원래 세상은 쓸쓸한 곳이고 모든 존재는 혼자이며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 혹은 복수는 경우에 따라 반드시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로우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을 통해서,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혼자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독자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조그만 희망이다. - 326쪽 작가의 말


그러고 보면 이 소설집의 모든 소설들의 등장인물들은 한없이 쓸쓸하고 외롭고 안타깝다.

단편 <저주토끼>에서 할아버지는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라고 하며 매우 예쁜 토끼 전등을 저주물품으로 만들었다. 모두가 피하던 자신을 친구로 받아주었던 친구의 불행을 가져온 이들을 응징하기 위해서....

할아버지의 저주로 친구를 죽게한 사장은 사업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너무나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다. 이런 복수에 대해서 우리는 후련하다고 해야되겠지만 사실 복수의 뒷맛이 그리 개운하지는 않다. 저주의 여파로 할아버지는 죽어도 죽지 못하고 매일 어느 한 날을 반복하는 할아버지의 영혼은 누가 구제할 수 있을까? 저주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결국 이런 운명을 피할 수 없지 않을까? 누구나 산다는 건 고군분투 그 자체이고, 그런 와중에 나에게 저주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 아니고 불행일 가능성이 더 많겠구나 싶기도 하다.


단편 <머리>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오마주처럼 보인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변기에서 나의 부산물을 먹고 자란 '머리'는 절규한다.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어 네게 부탁한 적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라고..... 어두운 구멍속에서 한없이 쓸쓸하고 한없이 외로웠던 영혼은 결국 복수를 감행한다. 그러나 살아남은 젊은 그녀 '머리'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삶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뒤에 나오는 단편인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에서 사랑을 위해 싸우고 저주를 풀었던 공주가 결국 배신당하는 것도 결국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과 욕망 때문이었던 것처럼, '머리'의 앞으로의 삶도 또 누군가의 배신을 견디고 무관심을 견디고 가야 하는 삶일 것이므로 '머리'는 어쩌면 무한 외로움의 궤도에 올라선 것일지도 모른다. 비단 '머리'뿐이랴? 우리 모두 그런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 


<안녕, 내 사랑>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반려 인조인간 자체인가? 아니면 그와의 기억인가? 그와의 기억을 선택하는 순간 내 사랑의 대상은 내게 안녕, 내 사랑을 속삭이며 내 가슴에 칼을 꽂는 것은 사랑인가? 아니면 증오? 복수인가? 삶에서 이런 것들은 사실 뒤엉켜서 뭐가 우선이고 내게 뭐가 더 중요했는지 알 수 없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것일테고 저 복수 후 하나의 마음으로 살아갈 3개의 인조인간 로봇들은 그들이 또한 배운 사랑을 잃은 후의 공허감을 어떤 식으로 채워나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쓸쓸하고 더 외로운 그런 소설.....


오늘의 전쟁같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욕망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것의 붕괴를 다루는 덫, 

타인의 희생 위에 권력자에 기대 안온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과 그들의 붕괴, 자신의 삶이 왜 무너졌는지도 알지 못한채 끊임없이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고통을 당하는 소년이 다른 삶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 흉터.

그리고 여름 밤 읽기에 섬뜩한 즐거운 나의 집

무엇이 되었든 한 여름밤에 이야기의 힘을 만끽하면서 읽기에 손색이 없는 단편들이다.

또한 무언가 익숙한 이야기구조가 더 가독성을 높여준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난 이후의 마음은 쓸쓸하다.

우리는 이토록 외롭고 쓸쓸하구나...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너만 외롭고 쓸쓸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그래라는 작은 마음이 희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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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7-30 10:0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권선징악, 인과응보는 필요한데도 그 뒤끝은 참 씁쓸한 것 같은 느낌이 인간 삶의 딜레마같기도 해요 ㅠㅠ
바람돌이님의 리뷰 읽으며 저주토끼 읽을 때의 기분을 다시 느꼈어요^^

바람돌이 2022-07-30 15:22   좋아요 5 | URL
한편으로는 인과응보의 끝을 봐야할만큼 특별히 엄청나게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 끝을 보고 싶을 정도면 원한을 가진 사람도 얼마나 사는게 고통스러울지 말이죠.... 전 이 소설 앞쪽의 저주토끼보다 뒤로 갈수록 더 좋아졌어요. 다른 책 여자들의 왕도 봐야겠다 싶네요. ^^

mini74 2022-07-30 11: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권선징악 좋아합니다. 결자해지도 좋아합니다. 외로움과 외로움이 서로 등을 기대면 조금 덜 외로울꺼 싶기도 하고 ~ㅎㅎㅎ 저주란 악함이 예쁘고 귀여운 것에 담긴다는 것이 참 오래 남았어요. 아이는 머리가 넘 끔찍한데 한 번 더 읽게 된다고 그러더군요. ~

바람돌이 2022-07-30 15:23   좋아요 2 | URL
아하!! 생각 안나던 사자성어 결자해지도 있군요. 저도 참으로 좋아합니다. ^^ 저도 머리 너무 끔찍한데 자꾸 생각나는 잊기 힘든 이야기예요. 뭔가 단순한거 같으면서도 굉장히 기억에 콕 박히는 그래서 자꾸 생각나는 소설들이네요. 앞으로 정보라 작가도 찜해놓고 책 나올 때마다 봐야겠다 싶습니다. ^^

새파랑 2022-07-30 14: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토끼에 저주를 걸다니 ㅋ 전 이책 북플리뷰에서 많이봐어 이제 읽은것처럼 익숙합니다~!!
저도 사필귀정 좋아합니다 ^^

바람돌이 2022-07-30 15:25   좋아요 3 | URL
귀여워야 가까이 하고 그래야 저주가 먹힌다는..... 귀여운거에 환장하는 저같은 사람에게는 바로 저주 걸리고 마는.... ㅎㅎ 보통 사람들은 다 사필귀정 이런거 좋아하지 않을까요? 우리 착하게 살고 있는거 맞죠? ^^

프레이야 2022-07-31 11: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디오북으로 구매해놓고 앞부분만 듣다가 잠들기 반복 ㅎㅎ 더 못 나가고 있어요. 장편인 줄 알았어요. 듣는 게 집중이 안 되는 이건 무슨 증상인지 ㅎ ㅎ 세상이 원래도 그렇지만 인과응보 권선징악이 안 되는 게 당연지사가 되었으니 작가가 벌을 내려주어 대리만족이라도 하는 걸까요. 그렇다고해도 마음 편하지 않고 쓸쓸한 게 인간한계… 김훈 문장처럼 인간은 참 던적스럽네요. 뒤로 갈수록 더 좋아진다니 오디오북 다 들어야겠어요 어서. ^^

바람돌이 2022-07-31 14:27   좋아요 2 | URL
앞부분에서는 좀 뭐야? 시시해 이러면서 읽다가 뒤로 갈수록 이야기에 점점 빠지는 기분이에요. 단편집이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의식이 또 공감이 가더라구요

희선 2022-08-01 00: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착한 사람은 잘 되고 못된 사람은 못 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못된 사람이 더 잘살기도 하네요 그 사람은 그래도 그 사람과 상관있는 사람이 안 좋은 일을 겪을지도... 받은대로 갚아도 그렇게 좋지는 않죠 사람은 외롭고 쓸쓸하네요 서로가 그렇다는 걸 알고 마음을 나누고 살면 좋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8-01 09:37   좋아요 2 | URL
맞아요. 서로 배려하고 마음을 나누며 살아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왜 그렇게 니쯘 사람들이 많은지.... 그래도 늘 생각해요. 세상은 나쁜 사람보다 좋은사람이 더 많다고....

단발머리 2022-08-01 15: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권성징악 시리즈 중에서 사필귀정이 제일 마음에 들더라구요.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그런데도 착한 사람들이 고생하고 나쁜 사람들은 잘 나가는 현실은... 참 그렇습니다.
저는 저번주에 시사인에 정보라 작가 인터뷰 읽었는데 넘 특별한 분이더라구요. 전문 시위꾼이라고 하시던데, 소외된 사람들의 현장에 항상 달려가는 분이라서.... 너무 놀랐습니다. 이런 분(공부 많이 하신 분)이 이런 현장에 나가시고 근데 이렇게 소설까지? 멋진 분이더라구요.
바람돌이님 리뷰을 읽어보니 작품도 엄청 기대가 되는데 제가 무서운 거 즐겨 읽는 사람이 아니라서... 가능할까요? 너무 읽고 싶은데, 단편 <머리> 그런 작품은 몇 문장만 읽어도 무서워서요. 바람돌이님 리뷰 읽으니 더 읽고 싶은데 말입니다.

바람돌이 2022-08-04 15:33   좋아요 1 | URL
저도 시사인 인터뷰보고 급관심 생겨서 읽었어요. 사실 저도 무서운거 못봐서 공포영화 절대 안보고 옛날에 전설의 고향도 못봤거든요. 근데 이 책은 공포물이라기보다는 슬픈 우화랄까 좀 그런 느낌이에요. 별로 무섭지 않습니다. 머리도 막상 읽으면 무섭다기보다 슬퍼요. ^^
 

소년은 쇠사슬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거듭해서 돌에 부딪혔으나 다시는 벌레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소년은 그래서처음으로 흐느껴 울었다. 공포로 범벅된 정신 나간 비명이 아니라, 자신의 고독을 이해하고 슬퍼하는 인간의 눈물이었다. - P173

아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자기 나름대로파악한다. 어린아이의 지각에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에 대한 세상의 호의와 인간의 신뢰 여부를 아이는 어른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한다. 왕자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친절하고 예의 바르지만 진심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왕자가 아는 한, 그것은 세상과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었다. - P271

"저주는 풀 수 있으나 자신의 욕심에 스스로 눈먼 인간을눈 뜨게 할 방법은 없다. 저들이 언젠가는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 할 것을 알고 있었다." - P292

밝은 미래 따위는 믿지 않았다. 먹고 살 수 있을지조차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언제나 지금보다는 조금 전이 가장좋은 순간이었고, 앞날보다는 지금이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
돌아가면 아마도 여기서 이렇게 태평하게 앉아 느릿하게 저물어가는 햇살을 즐기며 시간을 낭비하던 때가 그리워질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애썼다. - P305

내 부모가 자식의 삶을 파괴하고 미래를 갉아먹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무리하게 확장시키려고 애쓰는 것도 이러한 강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키워줬으니 감사하라는 말 앞에는, ‘죽이거나 죽게 내버려두지 않고‘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아마그들에게는 진심일 것이다. 내 부모와 그들의 부모 세대, 한국 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세대에게 가장 큰 화두는 언제나,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세대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이아니라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생존이기 때문이다. - P320

어떤 사람들에게 삶이란 거대한 충격과 명료한 생존본능이 동시에 찬란하게 떠오른 과거의 어느 시간에 갇힌 채, 유일하게 의미 있었던 그 순간에 했듯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되풀이해 확인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 순간은 짧지만, 순간이지나간 뒤에도 오래도록 자신의 생존을 그저 무의미하게 반복해서 확인하는 동안 좋은 시간도 나쁜 시간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간다. 삶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과거에 고정되어버린 사람들, 그도 그의 할아버지도, 그의 어머니도, 나도, 살아 있거나 이미 죽었거나,
사실은 모두 과거의 유령에 불과했다.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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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7-30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 번을 빌릴까 말까 했던 소설인데, 바람돌이님께서 인용해주신 부분들을 보면
소설인지 모르고 봤을 때 에세이라고 생각했겠어요^^

바람돌이 2022-07-30 15:34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진짜 이야기 중심이어서 사실 밑줄 그을데가 별로 없었어요. 대부분 대화나 사건 전개이므로요.
가끔 저런 대목이 나와서 밑줄친건데 오해하시면 안되어요.
이야기의 힘이 전체 소설을 이끌어갑니다. 처음에는 좀 뭔가 싶다가 뒤로 갈수록 이야기에 폭 빠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
 

우리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알지 못했다. 전쟁의 세상이 우리가 아는유일한 세상이었고, 전쟁의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금도 다른 세상이나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다른 세상, 다른 세상 사람들은 정말 존재하기나 했던 걸까?  - P14

하지만 왜? 나는 여러 번 자신에게 물었다. 절대적인 남자들의 세계에서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놓고 왜 여자들은 자신의 역사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을까? 자신들의 언어와 감정들을 지키지 못했을까?
여자들은 자신을 믿지 못했다. 하나의 또다른 세상이 통째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여자들의 전쟁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버렸다……나는 바로 이 전쟁의 역사를 쓰고자 한다. 여자들의 역사를 - P18

이들은 듣는 이와 달리 늘 다른 공간에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둘러싸여 있다.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은 적어도 세 사람이다. 지금 내 앞에서 이야기하는 사람, 지금 내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때그 시절로 돌아가 있는 사람, 그리고 나. - P24

광학에는 ‘집광력‘이라는 개념이 있다. 피사체를 잡아내는 렌즈의 정확도를 말한다. 전쟁에 대한 여자의 기억은 감정의 긴장도나 고통의 지수로 볼 때 그 집광력이 가장 높다. ‘여자‘의 전쟁이 ‘남자‘의 전쟁보다더 처절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남자들은 역사 상황이니 따위의명분 뒤로 숨고, 전쟁은 이념이므로 이해관계를 내세워 그것을 실현시켜야 한다고 또는 그것에 맞서야 한다고 유혹한다. 반면에 여자들은 감정에 사로잡힌다.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언젠가 총을 쏘게 될 상황에 미리 대비한다. 여자들은 총 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아니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다른 것을 기억하고, 그래서 기억하는 방식도 다르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자들의 전쟁에는 냄새와 색깔과 소소한 일상이 함께한다. - P28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우리 남편한테 물어봐. 그 양반은 전쟁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오죽하면 지휘관들, 장군들 이름은 물론 부대번호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생각도 안 나는데, 나는 내가 겪은 일만기억나 내가 겪은 전쟁만, 주위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결국 사람은혼자야. 왜냐하면 사람은 언제나 홀로 죽음을 대면해야 하거든. 나는 그끔찍한 외로움을 알지. - P65

또 무슨 일이 있었나………… 글쎄・・・・・・ 전쟁이 몇 년 동안 있었지? 4년.
그래, 참 길기도 했네………… 그런데 그 4년 동안 꽃이고 새고 전혀 본 기.
억이 없어. 당연히 꽃도 피고 새도 울었을 텐데. 그래. 그래 ・・・・・・ 참 이상한 일이지? 그런데 정말 전쟁영화에 색이 있을 수 있을까? 전쟁은 모든게 검은색이야. 오로지 피만 다를 뿐, 피만 붉은색이지...….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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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의 대성벽은 합스부르크제국의 심장을 보호하는 갑옷이었다. 정략결혼으로 영토를 획득했고 전쟁에는 지극히 무능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도시 전체를 둘러싼 대성벽을축조하고 바깥에 외성벽을 한 겹 더 쌓았다. - P26

 높고 두꺼웠던 빈의 대성벽은 합스부르크의 권력자들을 지배했던 두려움을 드러낸 건축물이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그런 감정을 이겨냈기에 그 성벽을 길로 바꾸는 결단을 할 수 있었다. - P27

요제프 황제를 오늘의 빈을 창조한 주역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가 통치했던 19세기 후반에 빈은 예술·건축·문학·의학 등거의 모든 분야에서 유럽 최고 수준의 도시가 되었다. 우리가 지금보는 빈은 어쨌든 그가 성벽을 철거한 덕분에 태어났다. 그는 새로운문화를 북돋운 계몽 군주도 아니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역한 반동적 전제군주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백 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빈 시민들은 황제를 잊지 않았다.  - P44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증언하는 초대형 기억 공간을조성한 베를린 말고는 부다페스트만큼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을적극 홍보하는 도시를 찾아보기 어렵다. 부다페스트에서 반드시 그런 것을 챙겨야 하는 건 아니지만, 사연을 알면 부다페스트가 더 정겹게 안겨 오는 느낌이 들 것이다. - P114

오늘의 헝가리 정치도 보수정당이 압도한다. 제1당은 보수당, 두번째는 극우 정당이고 중도 진보 성향의 정당은 그다음 자리다. 그래서 유럽연합 회원국이면서도 시리아 난민 수용을 단호히 거부했다.
자기네가 당했던 부당한 억압의 역사는 분명하게 드러내면서도 이중제국 시절 크로아티아를 비롯한 발칸 민족들의 독립투쟁을 오스트리아와 손잡고 짓밟은 일이나 영토를 회복하려는 욕심에 나치 독일과손잡았던 사실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과거사를일관성 있는 태도로 소화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 P123

카렐 4세가 실제적 국가 창설자라면 성 바츨라프 정신적 국가 창설자이다. 생일이 확실치 않아서 사망한 날을 정신적인 국경일로 삼았다. 통치자로서 거론할 만한 업적도 없고 재위 기간도 짧았지만 도덕적 정치적 비난을 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게다가 보헤미아의 자존을 지키려고 외세에 대항하다가 사악한 동생의 손에 목숨을 빼앗겼다. 긴세월 외세와 종교권력의 억압과 핍박을받으며 자존과 독립을 갈구했던 보헤미아 민중이 역사에서 그를 불러냈다. 영웅은 탄생하는 게 아니다. 민중이 찾아내고 만든다. - P209

드레스덴은 ‘가해자의 몸에 남은 상흔‘이었다. 독일 사람들은 그 상흔을 남몰래 만질 뿐 드러내 보이지않으려 했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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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대한 부정과 긍정

어머니에 대한 부정과 긍정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부정과 긍정

이 마지막 긍정에까지 이르기 위해 넘어서야할 가족이라는 큰 암벽에 대해 차례로 이야기하는 그래픽 노블 시리즈이다.

혹시 이 책을 읽고자 한다면 위의 순서대로 읽어주는게 좋을듯.... (실제 발간된 순서이기도 하다)


어떤 집이든 비밀스런 또는 남에게 말하기 창피한 가족사 하나쯤 가지고 있겠지만 그걸 세상에 다 까발리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창피하기 때문이고 - 특히 우리나라같은 곳에서는 가족의 치부가 나의 치부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하므로 더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엘리슨 벡델의 <펀 홈>은 대단하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이런 글을 어떻게 쓸 수 있었을까?

작가의 아버지를 뭐라고 해야 할까?

1980년에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는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는 숨겨진 동성애자였다.

이 사실만으로만 생각하면 참으로 애잔하다.

아무리 미국이라 하더라도 1960년대 70년대 친척들이 드글거리는 시골마을에서 가업인 장의사업과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백인 남자가 커밍아웃을 하는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억압된 욕구는 가끔 10대 후반의 남자아이들을 유혹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한번은 이 사건 때문에 재판까지 가기도 한다.

사실 나는 이 대목에서 기겁했는데 10대 후반의 남자아이라니..... 범죄잖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억압할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동정심이 몽땅 다 날아가버리는 대목이다.

아버지로서도 그는 최악이다.

지적인 욕구가 강하고 자기애가 강한 아버지는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고, 오로지 아버지의 역할은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만 진행된다. 

엘리슨이 처음 시를 썼을 때 아버지는 그것보다는 이런 표현이 더 좋잖아라면서 딸의 시를 난도질 해버리고 자신의 시로 만들어버린다. 아버지로서는 솔직히 최악이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정말 솔직한 표현은 오히려 <펀홈>이 아니라 <당신, 엄마 맞아?>에 나온다. 비록 꿈속에서지만......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죽음은 엘리슨이 부모에게 레즈비언 커밍아웃을 하고 난 4개월 후였다.

엘리슨으로서는 인과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명시되지 않는 죄책감에 짓눌린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평생에 걸쳐 자신의 성정체성을 부정당하고 살면서 그것을 숨기고 살았던 삶 앞에, 그 사실을 몰랐던 딸은 당당하게 레즈비언 커밍아웃을 하는 것을 보며 아버지는 어떤 맘이었을까? 딸로서는 당연히 생각해볼 수 밖에 없는 지점이겟지......

이 평범하지 않은 부녀관계는 아버지의 죽음마저 딸의 삶을 짓누르는 억압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딸의 커밍아웃에 대해 침묵했던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그녀의 결정을 인정한다.

각자 따로 자기 세계에 파묻힌 자폐가족같은 이 집안에서 작가가 아버지와의 화해 지점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눈물겹다.'




두번째 이야기는 <당신, 엄마 맞아?>

엘리슨 벡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3권의 책 중 가장 난해했지만 가장 좋은 책이었다.

예상하기로는 아버지와 결혼하면서 시인이든 배우든 뭐든 될 수 있던 빛나는 미래를 모두 포기했는데, 남편은 게이이고,

그녀의 삶은 시골마을에서 붙들려있고, 아이들 양육과 살림이고 뭐고 다 맡겨져버린 어머니의 삶에 대한 비가 정도 아닐까라고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

이 어머니 역시 만만치 않은 자존심과 확고한 자기 삶의 태도를 가진 독립적인 여성이다.(다만 아쉬운건 게이 남편과 이혼할 결심을 하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는 거지만 그건 정말 그 시대의 여성의 위치, 여성의 삶을 생각하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사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엘리슨 벡델 자신의 이야기이다.

우울증과 강박,  누군가가 자신에게 집착한다고 생각되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찾는 자신의 사랑 방식, 어머니 대신이 될 정신과 의사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

이 모든 것의 근원에는 어릴 적부터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있다.

사랑받기 위해서 조용히 해야 하고, 요구하지 말아야 하고, 집착하지 말아야 하고....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너무도 잘아는 그녀는 정신과 상담과 심리 상담을 끝도 없이 하는 와중에 스스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며 그 이야기를 책 속에 풀어놓는다. 



그런 엄마와 화해하는 지점 - 물론 엄마와의 화해가 아니라 작가의 마음속 엄마와의 화해이다.

온갖 결핍을 제공했던 엄마이지만 그녀가 딸에게 준건 어릴 적 "절름발이 아이 놀이"에 진진하게 대응해주면서 상상의 힘을 가르쳐 주었던 것. 즉 엘리슨 벡델이 지금 그림과 글을 통해 가족으로부터 드디어 독립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준것이다.

그것을 작가는 출구라고 표현한다. 

솔직히 이 정도 되면 정말 눈물겹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결핍이 지금의 나의 삶을 규정짓고 억압한다면, 제대로 살기 위해서 이토록 노력하는 작가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노력이 이 작가의 삶을 어떻게 규정지었는지가 3번째 최근작인 <초인적 힘의 비밀>로 이어진다.


사실 <초인적 힘의 비밀>을 제일 먼저 읽었는데, 처음 읽으면서 이 작가는 도대체 왜 이렇게 자신을 끝까지 몰아부치지?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런 맘이 들었다.

하지만 앞선 <펀홈>과 <당신 엄마 맞아?>를 읽고 난 이후면 이 작가의 삶의 태도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제대로 수용되고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삶은 무언가 집중하고 몰입할 것이 필요했을 것이고 육체적 활동은 사실상 가장 몰입하기 쉬운 대상이기도 하다.

스키, 요가, 가라데, 크로스컨트리, 권투, 러닝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고강도 운동들에 작가가 아니라 내가 질릴 정도.

불교에 대한 열정도 역시 이해하기 힘들정도로 몰입하고 있고, 

육체와 정신을 모두 초월하고자 하는 삶은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질릴정도다.

그럼에도 지금의 작가가 초월할 것은 초월할 것이 있다는 생각뿐이라는 것들 드디어 깨달았다는데 다행의 한숨을 같이 내쉬게 된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처럼 이 세상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은가?


3권의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너무나도 내밀한 일생을 엿보는 느낌이다.

그러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고 어떤 식으로든 자기 삶의 건강함을 찾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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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2-07-21 00: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같이 보낸 오랜 시간 동안 서로 간 애증의 감정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가족이라 생각합니다. 서로 간 사랑해야 하기에, 당연하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 덮이고 쌓이면서 건널 수 없는 다리를 건너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람돌이 2022-07-21 11:34   좋아요 4 | URL
당신 엄마 맞아는 본인 얘기보다 책 얘기가 더 많은듯요. 그래서 어려웠습니다. 특히 정신분석학은 아 뭔 말이야? 이러면서 읽었어요. 저는 펀홈보다는 당신 엄마 맞아가 더 좋았습니다

난티나무 2022-07-21 07: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펀홈>을 읽었으니 차례로 다음 책을 보면 되겠어요. <펀홈>에도 책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다른 책들도 그렇겠죠?
바람돌이님 글을 읽으니 <당신, 엄마 맞아?>는 왠지 <펀홈>과 비교하며 읽게 될 것같은 느낌이 드네요.^^

바람돌이 2022-07-21 12:27   좋아요 3 | URL
저도 펀홈과 비교하게 되지싶었는데 의외로 아니었어요. 아버징하 관련된 이야기보다는 온전히 엄마와 자신의 관계에 집중한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 어머니는 워낙에 쿨하셔서 작가 혼자 열일하는 그런 느낌입니다. ㅎㅎ 저라면 그냥 상처가 있르면 있는대로 대충 살지 싶은데 예민한 예술가인 작가는 그게 안되더라구요. 정신분석학과 문학을 통해 끊임없이 엄마와의 관계 정립을 시도하네요.

얄라알라 2022-07-30 00:30   좋아요 0 | URL
^^ 저는 <당신 엄마 맞아>부터 읽었는지 <펀 홈>부터 읽었는지 갑자기 헷갈리고 있어요.
<초인적 힘의...>도 단순히 운동 이야기가 아닌 정신분석 내용으로도 생각할 수 있나보네요...

난티나무님, <당신, 엄마 맞아?> 독서 응원합니다.
바람돌이님께서는 책 구매하신 걸까요? 도서관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흑흑

미미 2022-07-21 09: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바람돌이님!^^ 저도 빨리 이 책들 보고 싶네요. 이런 내용일줄은 전혀 예상못했어요.
특히 아버지...우리나라였다면 절대 공개하지 못했을 그런 사연이네요.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가족사를 글이나 만화로 그려낸다면 문학사는 훨씬 버라이어티 할텐데요.

바람돌이 2022-07-21 12:31   좋아요 3 | URL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려낸거에 대해서는 저는 아직 판단이 안서요. 아버지가 평생 숨겨왔던 것인데 죽었다고 이런 식으로 까발려도 되나 싶기도 하고요. 심지어 펀홈은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더 좀 막막하더라구요. 작가의 아버지 진짜 싫었지만 아버지나 남편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 보면 좀 짠하더하구요.

mini74 2022-07-21 13: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샘해밍턴이 떠오르네요. 그 분 아버지도 게이였다고 ~ 전 저 욕하는 컷이 확 눈에 들어와요. 금기된 대상에게 욕을 내뱉는 건 치유와 안정을 준다던데요 ㅋㅋ 잘 읽어요 바람돌이님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

바람돌이 2022-07-21 15:20   좋아요 2 | URL
작가의ㅜ아버지는 게이인게 문제가 아니라 그 상대가 10대 후반의 소년들이었던것이 진짜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그 중에는 자기 학교의 제자들이 많았던듯요. 거기다 평생 그걸 숨기면서 아내를 바보 만들었죤. 심지어 자식들에게는 거ㅣㅇ장히 고압적인 아버지이기도 했고... 저라면 저보다 더 쌍욕을 했을듯도.... ㅠㅠ
욕의 순기능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욕해야 할 때 욕해야 하는거죠. 암요. ^^

레삭매냐 2022-07-21 15: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중간 컷이 넘나 적나라해서 그만...

건강한 삶을 향한 여정은 쉽지 않
네요.

바람돌이 2022-07-30 15:28   좋아요 0 | URL
중간 컷? 아빠가 잡아주는 컷인가요? 방치 내지는 귀찮음으로 일색하는 아버지도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있거나 주도하는 어떤 장면에서는 저렇게 딸을 잡아주고 기다려주기도 하더군요. 100% 나쁜 아빠는 아니고 한 70%/쯤 나쁜 아빠? 가족이란 참 너무 어려운거 같아요. 대부분 우리나라 같은 데서는 70%가 아니라 한 20%만 돼도 그런대로 좋을데도 있었던 아빠란 명목으로 다른 가족들에게 맹목적인 희생을 요구하기도 하고....
이 작가 역시 그 가족이란 제도로부터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던듯 보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지 않고는 못배겨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단발머리 2022-07-21 16: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세 권 다 읽었는데, 너무 밀도가 높아서 힘들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부모가 억압으로, 그것도 강력한 억압으로 작동할 때 그 부모를 벗어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뤄야하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그런 생각도 했었구요.
바람돌이님 리뷰 읽으면서는 게이였지만 커밍아웃할 수 없었던, 게이인 남편과 이혼할 수 없었던 백델의 부모님의 상황을 좀 더 이해하게 되네요. 지금의 기준이나 생각 가지고 판단하면 안 될 거 같기도 하구요.

바람돌이 2022-07-30 15:30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래픽 노블이라고 만만하게 보고 시작했다가 헉헉거리며 읽었습니다. 어떤 부분, 특히 당신 엄마 맞아에 주로 나오는 정신분석학과의 연결 부분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도 많아 그냥 넘겨야 했고요. 아 저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한 나오면 너무 싫어요. ㅠ.ㅠ
아무래도 이들이 살았던 시절이 1960년대 70년대이니까요? 그것도 우리로 치면 씨족마을에 사는거잖아요.
여러가지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만들었던 책입니다.

희선 2022-07-22 02: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엄마나 아빠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기는 어렵겠습니다 이 작가는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게 작가한테 도움이 됐겠지요 많은 사람이 그냥 묻어두고 살겠습니다 부모라고 해서 많은 걸 바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처음 만나는 사람이 부모니 부모한테 사랑받고 싶겠지만... 부모도 사람이니...


희선

바람돌이 2022-07-30 15:32   좋아요 0 | URL
대부분 우리들은 묻어두고 그냥 받아들이고 살지요. 부모들 역시 마찬가지겠고요. 어쩌면 이 작가에게는 자신이 커밍아웃을 하고 난 겨우 3개월 후에 아버지가 자살한 것이 깊은 트라우마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그걸 계속 자책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려 한 노력이 이 책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쨌든 사랑이라는건 가족이어서 더 힘들기도 하구나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