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 - 재생산을 둘러싼 감정의 정치사 Philos Feminism 8
에리카 밀러 지음, 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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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는 유난히 출생의 비밀이 많다. 다른 나라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절대적인 숫자로도 많다.
심지어 전혀 나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최근의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조차도 출생의 비밀을 깔고 간다.
드라마의 개연성을 말아먹으면서까지 왜? 굳이?
어쨌든 그 서사가 흘러가는 방향을 보면 대체로 일관된데 중요한 것은 아이는 생기면 무조건 낳는다. 그 아이가 불륜, 강간, 실수 무엇에 의해서 생긴 아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생명은 무조건 소중한 것이니까 설사 낳아서 어디 고아원에 갖다 버리더라도 아이는 낳아야 한다. (그래서 출생의 비밀이 생기는거다)
왜? 생명은 소중하니까다.
아이를 고아원에 버리는 모성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버리는 것이기때문에 용인되는 안타까운 모성이고, 배속의 태아를 낙태하는 것은 아이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피눈물도 없는 잔인한 모성이 되는 것인가?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잔인한 모성은 없다.
모든 여성은 아이가 생기자 마자 넘치는 모성이 우러나며, 기필코 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투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나는 첫 임신에서 3개월만에 유산을 했었다.
의사가 아이 심장이 안뛰어요라고 했을 때 당황했고, 눈물이 쏟아졌었다.
저 때 나의 눈물은 그러면 모성의 발로였을까?
대답은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아니다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당황해 어쩔 줄 몰랐을 뿐이다. 
유산은 분명 안타까운 사건이었지만, 죽은 태아를 위해 애통해지지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이 이상해, 아 나는 모성애가 없는 사람이란 말인가라며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기까지 해야 했다.
이후 두 명의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에서 역시 나는 배속의 아이에게 모성애를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아이가 그저 빨리 나왔으면 했고, 좋아하는 커피도 술도 못먹고, 내 몸을 내가 맘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이 더 갑갑했을 뿐이다. 
덕분에 나는 임신기간 내내 나는 모성애 인자가 남들보다 작은가봐라는 오해를 키우고 살았다.
이건 사실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여 남편한테 나 정신적으로 문제 있나봐라고 했을 뿐,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도 못해봤다. 
그러면 도대체 나로 하여금 아이들을 물고빨며 지극정성으로 키우게 한 모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었을

적어도 내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모든 인간관계와 똑같다.
아이가 물화되어 내 앞에 선 순간부터, 아이를 안아주고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고, 아이의 똥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고 그 무수한 육체적 정신적 터치와 만남에서 모성애는 생기는 것이었다.
선천적인 모성애는 없었는지 몰라도 책임감은 투철한 인간이었던 나는 아이를 돌보는 모든 노동을 성심성의껏 수행했고, 그 과정은 어느새 노동이 아니라 아이와의 교류, 교감으로 사랑이 싹터는 시간이 된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교류를 하고 우정을 나누다 사랑이 되기도 하는 것은 상대와 내가 잘 맞기 때문이거나, 상대와 내가 서로를 많이 배려해주거나 이해해주는 경험들이 쌓이면서이다.
모성애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아기들은 그 천진난만함과 연약함으로 인하여 어른들이 맹목적인 사랑에 빠지기 훨씬 쉬운 존재라는 것 뿐....
아이를 낳고 친정에서 한달만에 나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편이 아이가 너무 작아서 부서질것 같아 아이 목욕시키고 기저귀 갈고 하는걸 어려워하며 못하겠는데 어떡하지라며 난감해했다. 
그 때 내가 당신과 아기 사이에 사랑의 깊이는 갈아준 기저귀 갯수와 목욕시켜준 횟수만큼이야라고 했던 것은 정말 농담이 아니고 100% 진심이었던 것이다. 
아빠의 손길에도 아이는 아무데도 부러지지 않았고, 아이 아빠는 목욕과 기저귀 갈기의 달인으로 거듭났다.
당연히 아빠와 아이들의 애정은 딱 그만큼 깊어졌다. 
적어도 내 경험에 의하면 모성애든 부성애든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없다.
그것 역시 현실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면 뱃속의 태아 역시 관계가 아니냐고 질문할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감수성은 다르니 딱 잘라 말하기는 그렇지만 어쩌면 현실의 사랑과 관념의 사랑의 차이정도 아닐까?
내가 유산했을 때 죽은 태아는 구체적인 죽음으로 와닿지 않았다.
그저 하혈이 있었고, 그게 아이의 흔적이었구나정도..... 
태아와 나는 허구의 관념속 교류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실제 나와의 감정적 교류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나만 그런걸까싶기도 하지만 또 내 직업군에서 유산의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보는건 너무 흔한 일이다보니 이런 일에 대해서 자주 얘기를 해보게 되는데 그들 중 유산 이후 태아의 죽음을 실제 아이의 죽음처럼 치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는 본적이 없다.

임신중지(낙태)가 아니라 유산의 경험을 가지고 이렇게 장황하게 나의 경험과 감정을 늘어놓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태어나지 않은 생명에 대한 감정, 한때의 약간의 안타까운 마음, 약간의 미련정도일 이 마음에 죄책감, 자괴감, 무책임성, 모성의 부재, 심지어 임신중지의 경우 살인죄라는 이름까지 덮어쒸우는 담론은 어디에서, 누가, 왜 조장하는가가 궁금해서이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재생산과 결합하고, 모성은 여성의 기준점이 되며, 임신은 어머니가 독립적 개체로서의 아이와 맺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런데 임신중지 여성은 자신이 배태한 배아나 태아의 어머니가 되지 않기를 선택하며, 임신에 대한 주체로서 자기 위치를 주장한다. 따라서 임신중지라는 선택은 태아성 모성이라는 규범과 그에 따른 숱한 문화적 산물에 균열을 내려 한다. -28쪽

임신중지가 균열을 내는 문화적 산물이란 무엇인가?

'임신중지 여성'이라는 상은 커다란 사회불안을 일으키는 다른 근원과 연계되어, 사회체에 대한 위협으로서 구성됐다. '페미니스트'라는 상과 연결될 때는 아이, 남성, 가족에 반하는 존재로, '십대엄마', '복지의존자', '성적으로 무책임한 자'라는 상과 연결될 때는 부주의한 '실패자'로, '이혼 여성', '동성애자', '레즈비언 양육자', '싱글맘'과 연결될 때는 핵가족 제도에 대한 위협으로 말이다. - 249쪽  
 
와우! 임신중지는 현재의 사회체에 대한 위협이 된다.
그 사회체는 당연히 백인 남성을 중심에 둔 핵가족제를 기반으로 하는 가부장제다.(이 말을 한국사회에서는 한국남자를 중심으로 하는 가부장제로 바꾸어도 당연히 맞다)
여성의 당연한 모성을 기반으로 하여 여성이 자녀를 양육해주고, 남편을 뒷바라지해주고, 그럼으로써 남성들이 편안하게 자신만 생각하면서 남성 중심의 사회를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
그것의 이데올로기적인 기반이 바로 여성의 모성에 대한 강조인 것이다.
이를 위해 임신중지는 터무니없이 생명을 비하하고 하찮게 여기는 나쁜 인간 또는 실패한 인간으로 규정되어져야 하며, 다른 여성들에게는 그 사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여성이 모성을 본능으로 느끼게끔 끊임없이 세뇌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동원되는 것이 임신중지를 철저하게 개인적인 선택과 경험으로 위장하는 전술이다.
임신중지를 할 것인가 아이를 낳을것인가를 오롯이 개인의 선택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
심지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아니 낳지 말아야 할 강간에 의한 임신 같은 경우에도 임신중지는 태어날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세상에 나오지 않는게 낫다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인권의 관점에서 어머니의 모성이 발휘되는 것으로 위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술은 여성으로 하여금 임신중지의 경험을 말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을 말하는 순간 임신중지 여성은 모성이 없는 존재,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존재로 수치심을 만방에 까발려야 하는 것이다.
한 때 학교에서 성교육이랍시고 하는 것이 임신중지의 위험성, 낙태되는 태아의 자극적인 영상을 보여주면서, 여학생들에게 너희는 그러므로 함부로 섹스를 하면 안돼, 혹시 섹스때문에 아이가 생겨도 이렇게 임신중지를 하면 안돼, 생명은 소중하니까라고 청소년기부터 미래의 저지르지 않은 잘못으로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것을 교육이란 이름으로 행했었다.
또한 당시 청소년 권장도서중에는 임신한 10대 소녀가 태아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과 감당할 수 없는 현실사이에서 방황하다 자살하는 책까지 있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임신중지에 대해서 지독하게 그것을 여성만의 문제로, 또 개인의 문제로 여겨지도록 조장해왔는지를 절감한다. 그럼으로써 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해왔는지도 말이다.
이 임신중지에 대한 발화의 은밀함은 여성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면서 연대하는 것을 방해하고, 자신의 내면에 우울감과 죄책감을 쌓아가도록 하면서 임신중지를 더더욱 여성 개인의 일로 한정시키고,  남성중심의 사회체제를 유지시키는데 더더욱 일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21세기에, 가부장제는 한물간 과거의 냄새나는 유물이라는 것이 상식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에 지난 6월 24일 미국에서 '로 대 웨이드'판결을 뒤집어 임신중지를 다시 위헌으로 결정한 미국의 대법원 결정이 왜 다시 등장하는지가 충분히 이해되기도 한다.
가부장제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말이다.

이렇게 임신중지를 개인의 선택과 감정의 문제로 개별화 시키면서 사라지는 문제들은 무엇인가?

임신중지 정치가 임신중지를 하려는 혹은 하고 난 여성의 느낌으로 환원되면, 그 느낌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광범위한 사회, 구조, 정치적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이를테면 양육에 대한 결정, 또 그런 결정에 대한 다른 이들의 평가와 판단을 손쉽게 하거나 감추는 '젠더화된 노동분업'과 '계급, 인종에 기반한 불평등', 임신중지와 피임의 구별이나 원치 않은 임신을 막기 위해 여성에게 부여되는 책임 등 역사 사회학적 질문, 임신의 조건에 관한 존재론적 질문 등이 있다. - 255쪽

일단 정말로 중요하게도 임신은 여자 혼자 하는게 아니라는 사실이 빠진다.
임신중지의 문제에서 비난받는 것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모두 여성이다.
함께 책임져야 하는 남자들은 모두 어디갔지?
이 담론에서 왜 남자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일까? 아니 왜 거론조차 되지 않는 것일까?

또한 임신중지의 문제의 개인화는 국가의 다양한 책임을 방기하게 한다.
너의 선택이므로 임신중지에 드는 비용, 의료혜택, 아이를 낳아 기를 때의 보육환경과 직업선택의 기회, 빈부격차에 의한 거주환경, 육아환경, 성범죄 노출 정도 등등 국가가 책임져야 할 관련문제의 숫자는 끝이 없다. 
여기에 인종문제, 이주민 문제 등등까지 겹치면 이 문제는 단순히 여성문제가 아니라 한 국가가 자신의 국가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만들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정치철학의 문제와 결국 맞닿게 된다. 
이러한 책임들을 교묘하고 집요하게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수많은 무책임하고 사회에 기생하는 여성들의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물타기를 하는 정치인들.

결국 결론은 '자유롭게 말하기'이다.
언어가 있고, 소통이 있는 곳에 연대가 발생한다. 

'미안해하지 않는' 임신중지 서사는 가치가 있다. 임신중지라는 결정이 이로우며 삶을 고취시키는 결정이 될 수 있다. 이 때 그 여성은 주체의 자리를 정당하게 부여받는다. 이 주체의 자리를 배제하려는 끊임없는 움직임은 임신한 여성이 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아 한다는 발상이 전복적임을 반증한다. -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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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8-31 15:42   좋아요 9 | 댓글달기 | URL
어휴 바람돌이 님, 리뷰가 너무 근사해서 기립박수 치고 있습니다.
이번 책은 진짜 모든 분들이 너무 좋은 글들을 써주고 계시네요. 어휴 ㅠㅠ

읽느라 그리고 쓰느라 고생하셨고, 읽는 동안 숱한 생각들이 찾아왔을 것에 대해서도 고생하셨다 말씀드립니다.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바람돌이 님!

바람돌이 2022-08-31 15:44   좋아요 8 | URL
저야말로 다락방님덕분에 이렇게 좋은 책들을 날로 먹는 기분이에요. 다락방님이 아니었다면 생각만 하고 미루고 미루다 결국 못읽었을 책들을 매달 읽으면서 좀 더 괜찮은 내가 되어가는 근사한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 감사해요.

미미 2022-08-31 16:1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바람돌이님! 읽으면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여성들에게 수치심을 주고 개인적 선택으로 국한시키며 서로간의 연대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징글맞은 가부장적구조! 그래도 이렇게 우리가 같이 읽고 쓰고 있고 그들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여성들은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거라 믿습니다. 심지어 가장 열악한 곳에서조차 여성들이 저항,투쟁하고 있으니까요. 잘 읽었습니다.^^* 함께 읽으며 이곳에서 같이 뒹굴고 있어 영광입니다.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08-31 21:55   좋아요 4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하게 느끼던 것들이 명확해지는 기분이었고, 그럴 때마다 제가 과거에 느꼈던 감정이 새록새록 돋아나서 화가 나고.... 저는 가끔 일베류의 인간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해요. 옛날 같으면 저들이 눈에 띄지도 않을텐데 - 왜냐하면 대부분이 다 그러니까 - 오히려 자신들이 눈에 안 띄고 소수가 되니까 더 격렬하게 발악을 하는 것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요. 세상은 바뀌고 있고 그것이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해도 거꾸로 돌릴 수는 절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망설이다가 늦게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에 참여한게 후회스러워지는 요즘이에요.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눌수 있어서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

거리의화가 2022-08-31 16:4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임신중지의 문제의 개인화가 국가의 다양한 책임을 방기하게 한다‘ 정말 맞는 말이고 제가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느낀 지점입니다. 좋은 리뷰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저도 다시 한번 이 책을 정리하고 가는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2-08-31 21:57   좋아요 5 | URL
이 책은 논란이 될 수 있고, 비난받을 수 있는 지점을 거리끼지 않고 명쾌하게 얘기해주는게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이 저 임신중지의 개인화의 문제점과 여성이 자신의 임신중지를 주체로서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확고하게 얘기해주는 부분이었어요. 여러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거 같습니다. ^^

건수하 2022-08-31 18:2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경험이 어우러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여성을 통제하려고 하는 여러 시도들이 직간접적으로 정말 많네요. 책 읽기가 쉽지는 않았어서 책에 담겨있는 내용이 조금 더 쉬운 책에도 담겨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읽어내니 뿌듯합니다.

바람돌이 2022-08-31 22:01   좋아요 4 | URL
여성주의 책은 읽고 나면 항상 뿌듯합니다. 이런 이론서가 나오고 공감을 받으면 또 이것을 그래픽노블이나 좀 더 쉬운 대중서로 풀어내는 책들이 나오고 하는 것 같아요. 특히 올해 미국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이후 이 문제가 다시 공론의 장으로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더 여러 좋은 책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앞으로 수하님 글도 볼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
아 근데 대문의 저 아리따운 냥이는 수하님네 냥이인가요? 미모가 장난 아닙니다. ^^

건수하 2022-09-01 08:42   좋아요 4 | URL
네 저희집 첫째 냥이랍니다 ^^ 한 십년쯤 된 사진이기는 합니다만.. 지금도 미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coolcat329 2022-08-31 20: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이런쪽으로 참 무지한데 이렇게 바람돌이님 사연을 곁들여 알기 쉽게 책 소개해 주시니 정말 잘 읽었습니다. 여성의 인권을 위해 북플님들 공부하고 책 읽는 모습이 참 좋네요.

바람돌이 2022-08-31 22:02   좋아요 4 | URL
저도 사실 여성주의 책을 읽기 시작한건 올해부터라 아는게 없어요. 일찍 시작하신 분들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 정말 분발해야겠다싶을 때가 많네요. ㅎㅎ 그래도 이렇게 같은 책을 읽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은 입장, 다른 입장들을 얘기할 수 있는건 정말 좋은것 같아요. 분량도 한달에 한권. 딱 좋은..... ㅎㅎ

단발머리 2022-08-31 21: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 페이퍼의 제목에서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너무 좋네요. 저는 이번 책이 유달리 안 읽히고 안 써져서 여지껏 책읽기 중인데요. 바람돌이님 리뷰 읽고나서 얻은 에너지로 얼른 마저 읽어야겠어요.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말하기‘ 꼭 기억하겠습니다.
좋은 글 읽는 호강을 오늘도 하고 갑니다. 감사해요^^

바람돌이 2022-08-31 22:04   좋아요 4 | URL
좋다고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님 글 읽으면서 항상 저는 아 나는 공부가 더 필요해 이러거든요. ㅎㅎ 저는 책을 읽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글을 어떻게 쓰야 하나 생각을 정리하는게 더 어려웠던거 같아요. 단발머리님 마저 열심히 읽으시고 또 좋은글 남겨주시길 기대 고대 하고 있습니다. ^^

얄라알라 2022-09-01 15: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감사합니다.
혹시 더 올라온 리뷰가 있을까 뒤지다가 바람돌이님의 멋진 페이퍼를 찾았어요

질문을 던지시니, 뜨끔 뜨끔, 물음표를 한참 같이 생각해보게 하는 글쓰기라 더욱 좋습니다.
청소년 권장도서 실례로 소개해주신 줄거리는 황당하네요. 그게 바로 프레임이라는 걸 바람돌이님 덕분에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바람돌이 2022-09-04 13:21   좋아요 1 | URL
같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말이 무엇보다 큰 칭찬이라 저 지금 춤추고 있어요. ^^
그 책은 그 때 읽을 때도 분노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역시 시대적 한계랄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 프레임이 한번 만들어지면 그것을 벗어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읽는나무 2022-09-02 20: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뒤늦게 이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글을 읽다 보니 저도 학창시절 처음 받았던 성교육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은 아녔을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영상이 바로 아이를 낙태시키는 장면이었네요. 너무나 충격이어서 임신중지에 대한 당연한 거부 반응을 은연중 가지게 되었단 걸 알았었는데 바람돌이님께서 잘 짚어주신 것 같아요.
바람돌이님 글은 읽고나면 늘 갈증해소 같은 느낌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바람돌이 2022-09-04 13:22   좋아요 2 | URL
좋은글이라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덕분에 저 바람에 휘날리는 길거리 주유소 인형처럼 막 춤추고 있어요. ㅎㅎ 우리 학교 다닐때 성교육이라고 하면 저런 영상들이 대부분이었죠. 그런 것들이 여성으로 하여금 갖지 않아도 될 죄책감을 한층 한층 쌓아간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면 지금 또 새삼스럽게 분노가 확!!! ㅠ.ㅠ

공쟝쟝 2022-09-10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
돌이
님 ㅋㅋ
저도 추석 맞이 이제사 늦은 리뷰 올리고 이거 좋다는 소문만 듣고 있다가 꼼꼼히 읽었어요. 또 역시 근사!하다니깐요 ㅋㅋ 근사하한
바람
돌이님
귀중한 생각 경험 근사한! 글로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 (근사함과
바람
돌이
에 꽂힌 공쟝쟝 올림)

바람돌이 2022-09-12 16:02   좋아요 0 | URL
뒤끝 낀 공쟝쟝님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어여쁜 여동생님들과 맛난 송편 드셨기를.....
앞으로 계속 제 닉네임은
근사한
바람
돌이로...... ㅋㅋ

추석연휴동안 한번도 서재 못들어오고 내내 먹어제끼다가 이제야 들어와서 보고있어요. ^^
 

임신중지에 대한 국가적 통제는 ‘국민 만들기‘를 목표로,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관리하려는 한 가지 수단이다. 이는 법을 통해 현실화된다.  - P212

여성이 어디에 사는지, 여성의 몸이 ‘국가주의적모성‘이라는 도식을 통해 어떻게 읽히는지에 따라, 임신중지를+ ++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국가를 위기에 몰아넣는 존재로 인식됨을 보여 준다.
‘국가주의적 모성‘이라는 발상 · 이데올로기는 ‘좋은 어머니‘
라는 문화적 상상을 통해 합리화된다. 서방 영어권 전반에 걸쳐 ‘좋은 어머니‘는 백인 중산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밖의 어머니들은 미국의 경우 ‘복지의 여왕‘이라 불리는 흑인 여성이라든지 36 ‘크랙 베이비 crack baby‘ 의 어머니, 37 영국의 경우 ‘차브맘chav mum ‘38 처럼 태만하거나 병리적인 이미지가 계속 나돌았다. 오스트레일리아 39. 캐나다 40. 미국에서 선주민 어머니는 병리화된 모성의 예가 되었다. 20세기를 거치며 우생학적 담론이
‘역기능 공동체‘라는 담론으로 합리화되는 동안, 규범적 모성과일탈적 모성 도식은 식민주의적 기획에 얽혀 잔존했다. - P213

배제(국민으로부터 특정 신체를 배제), 재생산(백인 중산층 여성의 재생산), 부인(식민화 내지는 선주민 주권의 부인)은 국가적불안을 관리하는 교차적 기술이다. 국민은 바로 그 구성 자체 때문에 불안을 준다. 국민은 한 번도 ‘만들어진‘ 바 없기에, 이를 ‘다시 만드는‘ 과정이 계속된다. ‘국민만들기‘의 과정은 결코 끝이없다. 그리고 여기서 국가 주권의 취약함이 드러난다. - P217

어떤 것을 ‘너무 많다‘고 하는 바로 그 수량화와 공표의 과정은, 임신중지에 대한 도덕적 공황이 ‘어떤 신체가 국민을 형성해야 하는가‘라는 더 광범위한 국가적 불안과 연계됨을 보여 준다. - P224

정치인들과 광범위한 공동체는 임신중지를 ‘우리‘가 판단해야 하는, 관리할 수있는 사회문제로 프레이밍하면서, 임신중지를 통제할 수 있다는환상을 만들었다. 임신중지에 대해 토론하는 행위는, 임신중지를 고려하는 임신한 여성을, 그들을 걱정하고 평가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통제 대상으로 바꿔 놓는다.  - P236

백인 국가라는 환상과 그 핵심 제도인 ‘가족‘의 안정을 위협하는 다른 인물형이 임신중지 여성과 환유적으로 연결될 때, 공포는 더 강력해진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1970년대에는 동성애자와 이혼 여성이, 2000년대에는 레즈비언어머니, 무슬림, 망명 신청자가 있었다. 임신중 여성은 이들과마찬가지로, 국가의 미래란 어떠해야 한다는 환상 - 행복한 백인 이성애 가족‘이라는 날조된 과거를 향수 어린 눈으로 갈망하는 것-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이처럼 공포를 통해 빚어진 환상적인 미래에서라면, 적어도 백인 여성은 임신중지를 해서는 안되고, 156 이주는 엄격히 통제되어야 한다. 백인 여성은 임신중지대신 국가를 선택해야 하며, 국가와 함께 나란히 ‘행복의 대상인미래의 아이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 P238

각본의 규범에서 멀어져 가는 존재였다. 여성이 모성으로부터독립하는 것은 운동 진영에 따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비쳤다. 반면 애통함에 잠긴 임신중지 여성은 어느 쪽에서든 올바른 방향으로 여겨졌다. 안티초이스와 프로초이스는 수사의 주된기조를 모성적 여성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설명했다. 그러므로임신한 여성을 위한 탈출구는 여기 없다. 임신한 여성은 임신중지를 선택할 때조차 모성을 선택한 셈이 되는 것이다. - P243

임신중지를 선택한다는 의미에 들러붙어 그 의미를 바꿔 놓는 감정들은 이미 ‘줄 세워진 ‘ 행동 규범에 여성을 복귀시켜 ‘일직선으로 정렬하는 장치‘다.  - P244

나는 임신중지가 축하받을 일이라고 본다. 임신중지는 의도치 않게 임신을 한 여성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재생산 가능한 연령대의 여성이 재생산과 분리된 이성애 섹스를 보장받을 수 있는일이다. ‘의도치 않게 임신한 여성‘이라는 위치는 담론적인 동시에 물질적이다. 이 책의 초점은 아니지만, 나는 어떤 포괄적인 ‘재생산 정의‘ 프레임 안에서 임신중지를 쟁취할 필요가 있다는 데뜻을 같이한다. 즉 임신한 여성에게 필요한 사회·경제적 지원체계를 제공해, 임신 중지를 하려는 여성이라면 그저 임신을 원하지않는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도록 가능한 한 확실히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 P248

‘임신중지 여성‘이라는 상은 커다란 사회불안을 일으키는 다른 근원과연계되어, 사회체에 대한 위협으로서 구성됐다. ‘페미니스트‘라는 상과 연결될 때는 아이 ·남성·가족에 반하는 존재로, ‘십대엄마‘, ‘복지 의존자‘, ‘성적으로 무책임한 자‘라는 상과 연결될 때는부주의한 ‘실패자‘로, ‘이혼 여성‘, ‘동성애자‘, ‘레즈비언 양육자‘,
‘싱글맘‘과 연결될 때는 핵가족제도에 대한 위협으로 말이다. - P249

임신중지에 자유가 존재하려면, 자율적인(선택하는) 주체에 기반한 자유라는 개념에서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공동체에 살고 있다. 따라서 웬디 브라운이 주장하듯 "개별적 자유라는 건 없다. (・・・) 인간에게 자유란 결국, 언제나 타인과 함께 세계를 만드는 기획이다."" 오늘날 선택의 주체는, 이를테면 여성이 무한한 선택지를 가졌고, 행복의 대상인 아이에게로 향하기 마련이며, 따라서 그저 욕망을 실현하기위해 모성을 선택한다고 하는 식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 P250

임신중지의 감정적 서사에 대해 대항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미안해하지 않는‘ 임신중지 서사가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 예로 유명 페미니스트들의 임신중지 이야기!"
#ShoutYourAbortion 트위터 캠페인, 12 주류 언론의 반응, 13 ‘셋중하나‘ 캠페인‘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임신 중지를 안도, 감사함.
심지어 행복과도 연결한다. 이런 서사는 "미안함 없는, 요구대로하는 임신중지"라는 정치적 슬로건과 함께 등장했다. 여성에게임신중지를 대가로 슬픔이나 비탄을 고백하라고 요구하는, 성문화되지 않은 계약에 똑똑히 되갚아 준 것이다. 임신중지를 ‘대놓고 말하라‘는 주문은 임신중지 낙인 그리고 침묵을 명하는 문화적 지령에 대한 응답이자, 임신중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평범한 일로 다시 프레이밍하려는 시도다.  - P252

임신중지 정치가 임신중지를 하려는 혹은 하고 난 여성의 느낌으로 환원되면, 그 느낌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광범위한 사회·구조·정치적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이를테면 양육에 대한 결정, 또 그런 결정에 대한 다른이들의 평가와 판단을 손쉽게 하거나 감추는 ‘젠더화된 노동분업‘과 ‘계급·인종에 기반한 불평등‘, 임신중지와 피임의 구별이나원치 않은 임신을 막기 위해 여성에게 부여되는 책임 등 역사사회학적 질문, 임신의 조건에 관한 존재론적 질문 등이 있다. - P255

 ‘미안해하지 않는‘ 임신중지 서사는 가치가 있다. 임신중지라는 결정이이로우며 삶을 고취시키는 결정이 될 수 있다. 이때 그 여성은 주체의 자리를 정당하게 부여받는다. 이 주체의 자리를 배제하려는끊임없는 움직임은 임신한 여성이 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아 한다는 발상이 전복적임을 반증한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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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중심적 애통함은 다양한 담론장을 가로질러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 감정이 중요한 까닭은 임신한 여성을 이미 자궁안에서부터 자율적인 ‘아이‘의 어머니로 만들고, 임신중지를 여성에게 도덕적으로 문제적이며 해로운 것으로 지칭하기 때문이다. 태아중심적 애통함은 반임신중지의 수사가 숨어들어 그 규범적 효과를 증폭시킨 강력한 수단이다. 이때 정치는 임신중지에 무엇이 뒤따르며 여성이 어떻게 임신중지를 경험하는지를 말해 주는 진실로 둔갑한다. - P131

임신중지는 의료 절차에 추가 단서가 붙는 매우 드문 경우다. 여성이 나중에 후회할 선택을 하지 않도록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는 전제는 여성을 취약하고, 약하고, 착취당할수 있는 잠재적 피해자의 위치에 놓는다. 4 이런 조치는 "여성의판단을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며, 85 여성이 임신중지를 적극적으로 바란다기보다 수동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 86임신 중지를 고려하는 여성은 상담을 받고 국가에서 주는 정보를받아야 한다. 반면 임신을 지속할 여성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런식의 전제는 모성이 임신에서 문제없이 도출될 유일한 결과라는규범적 관점을 반영하며, 이를 재차 말한다. - P147

임신중지의 애통함이 첫째로 불가피하고, 둘째로 태어나지않은 아이의 삶을 끝장낸 여성이 치르는 결과라는 전제는, 임신중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폭을 좁혀 임신 중지 반대론자들의정치와 목표를 지지해 준다. 임신중지는 원치 않은 임신을 끝낸행위라기보다는 자율적 존재를 살해한 행위로 나타난다. 그리고임신중지 여성은 적어도 살면서 한 번은 모성에 ‘아니요‘라고 말한 여성이라기보다는 불가피하게 그리고 언제까지나 어머니인존재로 비친다. 반임신중지 운동 안에서 보자면 태아중심적 애통함의 함의는 더 투명해진다. 그러나 우리가 확인했듯이, 임신중지의 애통함과 트라우마를 알리는 데 전념하는 조직은 자신들의 반임신중지 의제를 숨기곤 한다. 게다가 태아중심적 애통함은 임신중지 경험의 서사를 더 일반적으로 지배하게 됐고, 아마가장 놀랍게는 프로초이스 활동에 얼마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 P152

임신중지의 부정적 효과를 과장하면서 임신·출산·양육의 부정적 효과를 언급하지 않는 이중전략은, 모성이라는 규범적 행복과 임신중지의 애통함 모두를 구체화한다. 빅토리아 주 토론 당시 한 여성 의원은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지지하며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을 뚜렷이 대조했다. "나를 포함해아이를 낳는 순수한 기쁨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 어떤 이유로든 어떤 상황에서든 임신을 끝내는 일이 큰 고통을 야기할 것이다."  - P167

‘상실‘은 임신중지의 문화 지형을 지배하고 있고, 오히려 모성이 가져온 상실, 이를테면 모성 바깥의 삶에 대한 상실이야말로 실제 말해질수 없는 것이다. - P170

임신중지와 원치 않은 임신에 대한 책임감을 개인화하는 것은 임신중지 수치에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 P176

여성이 임신중지를 합법적으로 선택할 수 있고 여기 접근할수 있을 때조차, 이를 선택하는 사람은 ‘실패자‘ 혹은 ‘패배자‘로재현된다. 수치와 수치 주기의 이중 과정이 여성에게 그런 느낌을 심는다. 수치와 수치 주기는 임신 중지를 겪은 여성을 처벌하려 하며, 임신중지 관련 선택을 통해 이들의 품행을 단속하고, 재생산을 기준으로 선택·선택자의 위계구조를 만든다. - P177

규범성, 수치, 비밀로 이어지는 순환적이고 자기영속적인 관계는 깨기가 쉽지 않다. 임신중지를 가득 채우는 수치는 이를 비밀에 부치도록 부추기며, 사실상 자주 위반되는 규범 (의도된 임신‘과 ‘태아적 모성)을 유지하는 데 일조한다. 이로써 임신중지는일상적이기보다 예외적인 일이 된다. 수치 - 침묵 -예외성 - 수치 - P194

의 순환은 규범적 여성성과 임신중지 담론(감정의 기록 등)이 서로를 영속시키는 또 다른 순환을 만들어 낸다. 모성적 여성성은애통함과 수치가 뒤따르는 어려운 임신중지라는 서사를 유도하고, 애통함과 수치는 모성적 여성성을 자연화하는 근거가 된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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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LM은 임신중지를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방편이자, 여성으로 하여금 강제된 모성이라는 구속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해주는 행위로 보았다. - P53

 앞서 말했듯, 임신중지 법 개혁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나 다른 나라에서나 임신중지를 사회적선 혹은 도덕적 선으로 나타내면서 얻어진 게 아니다. 개혁을 외치는 이들은 불법적으로, 규제 바깥에서 행해지는 ‘뒷마당‘ 임신중지보다 규제 아래 이루어지는 치료적 임신중지가 더 나은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 P59

임신중지 여성은 자율적인 선택의 주체라기보다 상황의피해자로 묘사되곤 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모성을 거부할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혹은 잠재적인 아이를 극심한 가난이라든지 ‘미혼모‘라는 사회·경제적 지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행동할 뿐이다. 입법자와 대중에게 연민을 호소하는방식은, 임신중지 여성을 논쟁의 주체 자리에서 타인의 선의에의해 구조받는 ‘절박한 여성‘, 즉 물질화된 객체로 탈바꿈했다. - P63

 WLM의 임신중지 캠페인은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또한 ‘강제된 모성‘을 주입하는 국가로부터성적 주체라는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운동의 목표를 대중에게 전달했다. 학자이자 활동가인 로절린드 페체스키RosalindPetchesky의 말에 따르면, WLM 활동가들은 "임신중지를 규제하는 것이 모성을 강요하는 일이라는, 그리고 모성은 형벌이나 숙명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여야 한다는 강력한 아이디어"를 퍼뜨렸다. 동일임금, 보육, 성적대상화 반대 등 다른 핵심적인 캠페인도 같은 맥락에서 생겨났다. - P65

여성해방론자들은 임신중지권이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의몸과 삶을 통제할 권리‘로 여겨져야 한다고 믿었다.  - P66

여성해방론자들은 임신중지가 모성보다 감정적으로 이롭다는 관점을 전파했다. "당신은 임신중지를 해서가아니라 아이를 낳고서 정신과에 갈 확률이 더 높다. "65 이들은 임신중지를 죽음과 등치하던 기존 관점을 뒤엎으면서, 임신중지를
‘생명을 주는 행위‘로 재현했고 임신중지를 원치 않은 아이를 낳는 일과 대비했다. 원치 않은 아이를 낳는 일은 "희망의 죽음, 혹은 창조적 정신의 실패라 할 수 있었다. "66 WLM은 원치 않은 임신에 대한 긍정적인 해결책으로서 임신중지를 개념화하며, 기존의 수치와 죄책감을 안도의 감정으로 대체했다.  - P68

RTL에게 임신중지를 통해 재현되는 사회질서에 대한 위협은 이전까지 ‘눈에띄지 않은‘ 정체성(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남성)이 가진 특권의 상실 이상을 의미했다. 이는 반대론자들이 무척이나 추구하던 안정적인 정체성(자연히 존재하는 어머니라거나 가부장 등)의 상실이기도 했다. 여성해방론자들도 자기 자신과 다른 여성들을 위해 대안적인 정체성과 삶을 찾는 데 골몰했다.  - P75

RTL은 임신중지의 선택을 태아살해와 연결했고, 뉴스레터에 실린 묘사를 통해 임신중지 여성을 무아적인 ‘모성애‘의 정반대에 위치시켰다. 이 담론의 반대편에 WAAC가 있다. WAAC는 여성중심적 임신중지 정치를 구사하면서, 남성중심적 재현 체계가 임신중지에서 태아중심의 도덕률을 만들어 내고 이것이 임신중지를 비밀과 수치에 연결 지어 여성을 어머니 역할에 묶어 두기 위함이라고 비판했다. 비록ALRA는 임신중지 법의 전면 폐지를 요구했으나, 반임신중지 정치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에 중요한 토양을 내주었다. ALRA의 수사에서 선택은 자기결정권이기보다는 절망에 따른 결과였다. 이들이 보기에 그런 선택은 끔찍하긴 해도 여성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또 과중한 부담에 시달리며 잠재적으로 태만한 어머니로부터 아이를 떨어뜨려 놓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 P83

그러나 여성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 특히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있다는 것은 욕망으로서 모성이라는 환상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미디어, 정부 정책, 정치 담화 등 다양한 맥락에서 여성의행복을 규범화하는 전제는 선택이라는 관용어를 통해 모성을 다시금 자연화한다. 모성이 임신한 여성에게 허락된 유일하게 행복한 선택일 때, 임신 중지는 여성에게 괴롭고도 가슴 찢어지는선택이 된다. - P90

 개인의 선택이라는 수사는 일과 가족이라는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을 다르게 위치 짓는 구조적 장벽과 문화적 규범을 은폐한다. 그런 장벽·규범 - P99

에는 돌봄의 젠더화, 높은 양육비와 양육시설 부족, 성별 임금격차, 가정과 재생산 영역의 책임에 얽매이지 않은 ‘이상적인 노동자‘ 모델 등이 포함된다.  - P100

 이런 반응은 많은 의원들이 법안에 반대한 이유가 임신중지란 접근하기 어렵고, 공동체에서 낙인찍혀야 하고,
뭔가를 침해하고, 불편한 선택이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임을 말해 준다. 그래서 임신 중지에 대한 여성의 접근을 막으려 하고, 나아가 임신중지를 행한 여성을 처벌하려 한 것이다. 타냐 플리버섹은 법안 반대자들이 임신중지를 "최대한 어렵게 만들어 여성들을 가르치려 들며 (・・・) 생식을 염두에 두지 않은 섹스를 한 데 대한 벌로 여기게끔 하려고 애를 썼음을 지적했다.  - P118

역사적으로 켜켜이 쌓여 온, 고통받는 ‘좋은‘ 여성과 이기적인 ‘나쁜‘ 여성의 이분법 (1장 참고)이 임신중지 문제에서도 다시등장한다. 이런 이분법은 원치 않게 임신한 여성의 주체로서의위치, 그리고 자기 본위로 행하는 임신중지의 정당성을 퇴색시킨다. 임신한 여성이 곧바로 임신하지 않은 몸이 되는 것, 아이가 없는 것, 혹은 더는 아이가 없는 것이 임신중지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행복일 수 있다는 생각은, 입밖에 낼 수 없게 된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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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지의 ‘감정경제 emotionaleconomy‘를 보면, 임신한 여성은 임신을 중지할지 계속할지를 선택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임신중지는 일탈적이고 해로운 선택이된다. 그래서 여성이 모성을 거부한다는 신호와도 같은 이 절차를 모성이라는 규범에 되돌려 놓고 만다. 선택이라는 수사는 임신한 여성을 자유롭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로 묘사하면서도, 그들의 선택에 따라붙거나 그 선택을 통제하는 감정적효과는 감춰 버린다. - P12

진정한 선택이 가능하려면 임신중지를 합당한 선택으로 인정하고, 임신한 여성이 더 이상 임신상태를 지속하고 싶지 않을때 일상에서 문제없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임신중지가 통계상평범한 일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규범적인 일과는 거리가 멀다. - P18

1970년대 전환기를 맞아 임신중지를 의료화한 나라들에서는 젠더화된 이런저런 권력관계 때문에, 임신중지 여부를 당사자 여성이 아닌 의사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실렸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법은 여성을 감정적이고 성급하고 나쁜 선택을 할 잠재성이 있는존재로 여겨, 가부장적 가르침과 권위·지식 그리고 (남성의 속성인) 합리성을 갖춘 의사들의 관리 아래 두었다.  - P20

내가 이 책에서 ‘태아적 모성‘을 말할 때 드는 도식은 이런 내용을 망라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재생산과 결합하고, 모성은 여성의 기준점이 되며, 임신은 어머니가 독립적 개체로서의아이와 맺는 관계라는 것이다. 뒤에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중요한 건 태아적 모성이 인종 계급 등을 축으로 해 여성을 ‘착하고책임감 있는 어머니‘와 ‘나쁘고 무책임한 어머니‘로 구별한다는점이다. 그런데 임신 중지 여성은 자신이 배태한 배아나 태아의어머니가 되지 않기를 선택하며, 임신에 대해 주체로서 자기 위치를 주장한다. 따라서 임신중지라는 선택은 태아적 모성이라는규범과 그에 따른 숱한 문화적 산물에 균열을 내려 한다. 그렇기때문에 임신중지가 그토록 논쟁적인 사회문제가 된 것이다. - P28

이 책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이라는 주체의 위치가 임신중지를 공론화하는 자리에서 왜, 어떻게 이토록 자주 차단되고 배제되는지를 고민한다. 간단하게는 태아적 모성과 이에 투자되는 문화를 그 답으로 말할 수 있다. 태아적 모성을 둘러싼 제도는, 여성이 임신에 대해 내리는 선택을 노골적으로 금지하는방식으로써가 아니라 그 선택에 주어진 의미를 통해 여성들에게정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선택이라는 담론은 현시대에 임신중를 규제하는 핵심이 되었다. 선택이 가져오는 자유라는 환영이없다면 감정의 규범적 효과 역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 P32

여성은 어떤 선택의 금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선택을 통해 규제되며, 이 때문에 권력과 불평등이 작동하는 바는 잘 보이지 않고 분석되기 어렵다. 로절린드 길 Rosalind Gill이 지적하듯
"힘을 행사하는 것은 외부 억압이 아니라 정신에 깃든 규율과 규제이며, 이는 문자 그대로 새로운 주체성을 만들어 낸다." - P35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임신중지와 임신중지를 겪은 여성에게 부여하는 의미에 어떤 감정이 깊이 박히기까지, 그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과정을 해부한다. 그렇게 해서, 일상적 발화에 나타나듯 마치 선의를 품은 것처럼 보여도 실은 강력한 규범성을 동반하고, 이상화된 여성 주체를 생성하며, 임신중지를 문제 있는여성에 의한 혹은 문제 있는 여성을 만들어 내는 일탈적 선택으로 재생성하는, ‘임신중지에 대한 상식‘을 탈자연화하고자 한다. - P43

여성의 선택이라는 수사와 그것이 합의한 자유에 대한 주장뒤에는, 모든 여성 특히 임신한 여성에게 모성을 정규화하며 태아를 자율적인 주체 (임신한 여성의 아기이자 국가의 미래 시민)로상상케 하는 프레임이 작동한다. 그리고 이 프레임 안에서, 임신과 태아의 가치는 인종이나 계급처럼 정체성을 만드는 축에 따라 달리 매겨진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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