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며느리로 맞은 이주여성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불만의 내용이 주로 며느리가 ‘불평없이 부지런히 일하고 아껴 쓰며 남편과 자녀를 돌봐야 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며느리의 미덕이란 순종, 공경, 알뜰함,
부지런함이라고 여기는 관점에서 질타와 훈계가 시작된다. 애써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온 유교 가부장제의 질서를, 이제 ‘한국의 예절‘이란 이름으로 이주여성을 통해 재생산하려는 것처럼보인다. - P38

오히려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구호는 이 사회가 평등을 추구한다면 맞서고 해체해야 했을 가족질서가 뿌리 깊게 남아 있음을 간접적으로 일깨운다. 이 구호를 들으며 성소수자에 대해불편한 마음이 생긴다면, 먼저 며느리는 여자, 사위는 남자여야한다는 관념을 의심하고 질문해보면 좋겠다. 며느리의 역할을남자가 하면 왜 안 되며, 사위가 여자이면 무엇이 문제인가? 며느리와 사위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인가? 원치 않는 며느리나 사위를 반대할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은 지키고 보존해야 할 불변의 가치인가? - P40

 지금도 사람들은 누군가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기대하며 "아이는 언제 낳을 거야?"라고 질문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에겐 "그럴거면 왜 결혼했냐?"고 반문한다. 그러니 동성커플 사이의 결혼은 어불성설처럼 들린다. 출산을 할 수 없는 동성끼리의 결혼이라니, 그럼 결혼이 더이상 결혼이 아닌 거다. 결혼은 출산의 기반이라는 이상을 지키려면, 동성결혼을 인정할 수가 없게 된다. - P46

부모가 결혼을 안 했는데도 그 자식을 다른 이들과 똑같이 대우한다면, 그래도 사람들이 지금처럼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질서를 지킬까? 안타까워도 혼외출생자에게 불이익이 있어야 결혼이란 제도가 특별한 의미를 가질 테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차별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의문이 들지 않는가. 이질서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 P55

그러니 의문이 든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무엇을 위해 결혼제도를 수호하는가? 결혼 밖에서 사람이 태어나면 정말 안 되는 걸까? 출산이 결혼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정상이라는 관념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사람을 적법과 불법으로 구분하며 생애의 시작부터 불평등을 만들었다. 이런 불평등을 사회가 모르는 게 아니라 부당하다고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결혼은 출산의 기반‘
이라는 이념이 무너지면 사회의 근간이 붕괴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차별을 정당화해왔다.  - P60

가족질서를 지키기 위해 (안타깝더라도 계속하여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일탈자‘를 탓할 것인가 아니면 이런 구분을 거부하며 평등을 위해 가족제도의 변화를 요구할 것인가? 다음 장으로 이어지는 이 질문은, 사회가 사람의 탄생을 수단으로 여기는지, 아니면 그 자체로 소중한 동료시민의 등장으로 여기는지의 관점과 연결된다. - P67

이상하게 가족제도는 예외였다. 가족에 관해서만큼은 평등보다는 전통을 수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민주주의이념이나 헌법 자체가 서구에서 기원한 것인데, 유독 가족에 대해서만은 한민족의 ‘미풍양속‘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양현아의 분석에 따르면, "가족법 (은) 서구법이 아닌 그 민족 고유의 ‘관습‘을 따라야 한다는 원칙 자체가 일제의 식민정책에 의해 수립된 것" 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하여 평등은전통적 가족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된다는 생각은, 지금까지도 가족제도를 동결시키는 "절대적인 원리"가 되었다.  - P79

때때로 가장 강력한 차별은 온정적인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태어날 아이의 불행을 예고하는 염려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는것이다. 사람들은 출산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온정적인 염려와경고를 보냄으로써, 세상의 차별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속될 - P90

것임을 기정사실화한다. 그리하여 실제로 닥치는 불행은 오롯이출산을 ‘선택‘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결국 그렇게 차별을 보존하고 전승하며 어떤 집단의 미래를 영구적으로 불행하게 만드는 행위에 (의도치 않게) ‘가담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어떤사람들을 이 땅에 오지 못하게 막는 행위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뒤집어 생각하면, 아동의 인생을 생각해 부모가 출산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사회가 변화를 도모하지는 않겠다는 변명일수 있다. 반대로, 부모가 출산에 대한 결정을 자유롭게 내릴 수있는 사회는 이미 아동에게도 좋은 사회일 것이다.  - P91

재생산 권리를 보장한다는 건 임신·출산에 관한 개인의 결정을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여 출생하는 사람을 존엄하고 평등하게 대우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차별을 용인하고 묵인할 때에는 누군가의 출산을 막는 일이 아동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처럼 보였겠지만, 차별과 맞서기로 결정한다면 양육자의 권리가 곧 아동의 권리이고 그 가족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이모든 사람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옹호하는 일이 된다. - P94

학교는 평등한 교육을 한다고 믿으면서 오랫동안 성별분업을 염두에 두고 교육을 실시했다. 그런데 사회가 이렇게 성별분업 이념을 유지하면서 고용상의 불평등만 해결하려 하면곤란한 상황이 벌어진다. 여성에게 가사 책임을 맡기면서 동시에 임금노동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이중의 부담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런 이중의 부담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여성들은 어떤 선택을할까? - P117

성차를 자연적이고 고정불변이라고 여기는 성별본질주의gender essentialism 의 관점이 교육의 이름으로 지속된다. 우리는 모두가 지구상에 평등하게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1" 라고 여길 만큼 성별에 따라 다른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는 모순된 메시지에 길들여진다. 성별본질주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지금 보이는 성차가 형성된 사회적·역사적 맥락이 지워진다. 대신 가부장제를 위해 설계된 성역할을 ‘원래 그런 것‘ 혹은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게된다. 왜 성별을 이유로 역할이 배정되어야 하는지 질문하기를잊게 된다. - P132

단순히 여성의 교육과 고용의 증진으로 가부장제가 간단히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면 서툰 기대가 아닐까. 가부장제는 가족이 가족에게 행하는 성적인 통제와 잔인한 폭력을 통해서도 연명하고있다. - P140

현대사회의 계급 재생산은 외형적으로는 합법적이고 공정하다. 엘리트 계층이끼리끼리 만나 중산층을 형성하고, 축적된 부와 네트워크를 통해 고소득으로 진입하는 교육 기회를 독점하며, 이로써 자녀에게 계층을 세습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이 가족의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 P159

역사적으로 가족은 상이한 생활조건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구성되어왔다." 한국에서도 가족이 변해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가령 지금의 한국은 과거보다 결혼을 적게 하고 이혼을 많이 한다. 이 사실을 두고 가족의 ‘위기‘나 ‘해체‘라고 묘사하는것과, 가족의 ‘변화‘나 ‘다양성‘의 증가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의 ‘위기‘와 ‘해체‘ 담론은 특정 가족 형태를 ‘옳다‘고 전제한 진단이다. 이에 대해 윤홍식은 이렇게 비판한다. "가족의특정 형태의 변화를 가족의 해체로 이해하는 것은 가족이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고 변화했다는 다양성과역동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 P188

 동성애, 그리고 동성결혼을 반대한다는 것은,
곧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이성과 결혼하고 자녀를 출산해야 한다는 메시지이고, 여성과 남성에게는 서로 다른 역할이 있음을 상기시키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성소수자 반대운동은 가족각본을절대적인 도덕률로 신앙화하는 작업이자, 가족각본에서 벗어난삶의 형태를 부정하고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시키는 핵심 담론이었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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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으면서 흥미로운 대목이 있어서 메모

1890년대 같은 시기에 똑같이 여성교육이 필요함을 주장하면서도 남녀의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독립신문의 남성이 쓴 것이 분명한 사설은 여성교육은 자식 교육을 잘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여성이 쓴 <여권통문>에서는 독립된 인격으로서의 여성교육의 위치를 명시하고 있다.

100여년이 훌쩍 넘는 시기동안도 사실상 남녀의 생각의 간극은 딱히 좁혀지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사나이 아이들은 자라면 관인과 학사와 상고와 농민이 될터이요. 계집 아이는 자라면 이 사람들의 아내가 돌 터이니, 그 아내가 남편만큼 학문이 있고 지식이 있으면 집안 일이 잘 될 터이요, 또 그 부인네들이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 기르는 법과 가르치는 방책을 알 터이니 그 자식들이 충실할 터이요(...) 그런즉 여인네 직무가 사나이 직무보다 소중하기가 덜하지 아니하고 나라 후생을 배양하는 권이 모두 여인네에게 있은 즉 어찌 그 여인네들을 사나이보다 천대하며 교육하는 데도 등분이 있게 하리오.  -110쪽, 1896년 5월 12일 <독립신문> 사설



어찌하여 신체 수족 이목이 남자와 다름없는 한가지 사람으로 심규에 처하여 다만 밥과 술이나 지으리오. (....) 우리도 혁구종신(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따름)하여 타국과 같이 여학교를 설시하고 각각 여아들을 보내어 갖가지 재주와 규칙과 행세하는 도리를 배워 향후에 남녀가 일반 사람이 되게 하려고 곧 여학교를 설시하오니....  - 114쪽, 1898년 9월 1일 이소사, 김소사(소사란 기혼여성을 부르는 명칭)의 <여권통문>



또 하나 흥미로운 인물 발견


125쪽에 등장하는 최활란이라는 여성

김활란이 아니고 최활란? 활란이란 이름이 흔한 이름인것도 아닌거 같은데 뭐지?하고 찾아봤더니 잘 알려진 김활란과 동명이인이다.

그런데 진짜 웃기는게 이 여성의 본명이 심지어 김활란이다.

최씨 성을 가진 남성과 결혼하면서 서양식으로 최활란으로 바꾼 것.

그리고 인천 출신, 이화학당 출신, 개신교 감리회 신자, 여성운동,친일행적 등에서 김활란과 거의 활동이 겹친다.

웃기는 우연은 이화학당 제2대 메이퀸이었단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김활란은 제3대 메이퀸이고.....

이 책에 나오는 그녀의 어록은 다음과 같다.


학교에서는 성교육을 시켜 [여학생에게] 자기네의 정조가 생명[처럼] 중대함을 가르쳐서 (...) 스스로가 공포심이 일게 되어 여자로서의 중대한 정조를 지키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 125쪽


2명의 김활란을 굳이 구별하지 않아도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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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3-09-08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명의 김활란을 굳이 구별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ㅋㅋㅋㅋ
이름도 같고 생각도 비슷하고 소름입니다. 어후

자식 교육을 위해 여자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건, 마치 이 자리는 미래의 어머니가 앉을 자리입니다. 뭐 이런 거랑 느낌이 같네요. 어쩜 변하지를 않을까요...

바람돌이 2023-09-10 22:01   좋아요 1 | URL
처음에는 최활란이라는 이름이 신기해서 찾아봤는데 찾으면서 둘이 너무 비슷해서 진짜 깜짝 놀랐네요. ㅎㅎ
저 변하지 않는 가족주의와 자식을 위한 어머니상을 강요하는 이유가 이 책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집니다. <가족각본> 강추합니다. ^^

잠자냥 2023-09-09 0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마지막 줄 너무 웃겨요 ㅋㅋㅋㅋㅋㅋ 저런 거 보면 사람 인생이 진짜 이름 따라가나 싶기도 하고 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9-10 22:02   좋아요 1 | URL
최활란 뭐하는 사람인지 찾아보다가 허탈해진 제 마음입니다. ㅎㅎ

책읽는나무 2023-09-09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활란스럽군요.ㅋㅋㅋ

바람돌이 2023-09-10 22:02   좋아요 1 | URL
오 나무님!! 역시 100자평의 귀재는 딱 한줄로 정리해주시는군요. 감격했습니다. ^^

독서괭 2023-09-09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신기하네요!!
여성교육 주장한다고 하면 마치 페미니스트 같지만 들여다보면 완전 반대인..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할지도??

독서괭 2023-09-09 12:03   좋아요 2 | URL
찾아보니 김활란은 본명이 김기득이고 7세에 세례명 Helen의 한자표기인 활란으로 바꾼 거라 하네요~ 최활란은 본명이 활란이고 ㅎㅎ

잠자냥 2023-09-10 22:05   좋아요 2 | URL
김활란 태어날 때부터 기득권 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9-10 22:05   좋아요 1 | URL
저 때 두 활란 모두 자신이 여성계의 선구자라고 생각했을거예요.gg
아 전 김활란의 본명이 김기득인건 처음 알았네요. 그러고 보니 활란이란 이름이 그리 흔한 이름이 아닌데 저렇게 동시대에 같이 있을수 있었을까 궁금했는데 세례명 Helen을 생각하니 알겠네요. 아마 둘다 세례명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바람돌이 2023-09-10 22:07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그러게 말예요. 둘다 태어날 때부터 기득권...... ㅎㅎ

책먹는고란 2023-09-12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명의 김활란을 굳이 구분 안 해도 된다. 정말 와닿네요......

바람돌이 2023-09-13 21:19   좋아요 0 | URL
이름이 같다고 사는 방법도 같아지는게 아닐텐데 말이죠. ^^ 신기하긴 하네요. ㅎㅎ
 



이 책의 핵심은 마녀사냥을 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과정에서의 필수적인 과정으로 연결짓는 것이다.

맑스주의에서 말하는 본원적 축적이란 토지와 같은 생산수단의 사유화와 노동계급의 형성과정을 핵심으로 한다.(이 책에서 그토록 강조되어 말해지는 인클로저 운동과 이를 통해 토지에서 쫒겨나는 농민들이 바로 그 과정이다.)

이 두 과정 모두에서 기존의 공동체를 해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토지는 공동체의 소유에서 해체되어야 하며, 개인 노동자들 역시 봉건적 신분적 구속과 토지에의 구속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인 실비아 페데리치는 이 중세적 공동체를 유지하는 핵심이 바로 여성들의 공동체였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따라서 여성과 그들의 공동체, 그리고 그들이 공유하고 있던 전통적 가치와 관계들이 핵심 공격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마녀사냥은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었다는 것, 그리고 마녀사냥과정에서의 여성들을 죽이는 방법이 그토록 잔인했던 것은 자본의 공격에 대해 함부로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공포분위기의 조성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저자는 오늘 날 특히 아프리카 지역에서 이런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일어나고 있고, 이 지역들에서 과거와 같은 마녀사냥이 다시 일어나고 있음을 얘기한다.

오늘날 아프리카나 다른 제3세계 지역의 자본주의화는 당연히 제1세계의 자본투자에 의한 것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제3세계 지역들에서의 마녀사냥의 재현이 바로 UN을 비롯한 제1세계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음을 지적한다. 

유럽과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조차도 아프리카, 아랍,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마녀사냥의 재현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행동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견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문점이 든다.


1. 근세에 들어 마녀사냥이 본격화하기 이전 중세 공동체 사회의 가치를 유지하고 공동체의 경제를 담보하는 것이 정말 여성이었나? 저자의 견해를 받아들이면 중세가 자본주의보다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 덜했다 내지는 중세에는 여성들의 파워가 더 컸다는 견해로도 소급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물론 대놓고 이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그런 혐의는 보인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면 결론이 여성의 전통적인 공동체를 회복하자 뭐 이런 식으로 갈 수 있다는거다. 중세적 공동체문화의 회복이 정답인가? 아니라는 것 다 알지 않나? 왜냐하면 중세라고 딱히 여성에게 다르지 않지 않은가말이다.


2. 마녀사냥을 자본의 본원적 축적과 연결지어서 설명한 것은 굉장히 독특하고 새로운 해석이다. 또한 자본주의가 농촌의 토지를 사유화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여성들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마녀사냥을 활용했다는 것도 수긍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정말 괴물처럼 모든 것을 먹어치웠고, 자본주의가 나아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것에 공포를 활용하는 것 역시 오래 된 수법이다. 그런데 그것을 마녀사냥의 본질적 원인으로 보는건 좀 생각해봐야 할거 같다. 

실제로 마녀사냥과정에서 돈많은 과부나 결혼하지 않은 상속녀들이 마녀로 몰린 경우가 많았다. 그 배후에는 당연히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자하는 친척 남자들과 재산몰수에서 이익을 얻을 교회나 재판관들이 있었던 것은 당연하고. 또 마녀사냥은 종교가 최고의 권위를 과시하던 중세가 아니라 중세의 해체기- 종교적으로는 종교개혁으로 인해 카톨릭이 위기에 처했던 시기에 가장 끔찍하게 일어났다. 여기서 보다 주도적이었던 것은 기독교 내의 구교와 신교사이의 주도권 다툼이 희생양을 찾았다는 견해도 가능하다. 사실상 마녀사냥처럼 커다란 역사적 사건을 단 하나의 주된 원인으로 환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면 저자는 왜 무리하게 이런 해석을 시도하는 걸까?


3. 내 생각에 마녀사냥에 대한 이런 해석은 오늘날 아프리카와 인도, 라틴아메리카 일부 지역에서 재생되고 있는 마녀사냥에 대한 근원적인 책임을 묻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지금의 마녀사냥 역시 자본주의의 확산과정과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며 그 책임을 자본에 돌린다. 인도의 지참금 살인, 아프리카의 채굴경제를 위한 다국적기업의 토지강탈은 당연히 돈의 문제다. 그러나 그것만인가? 이 지역들에서의 여성에 대한 억압과 살인이 자본이 철수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이 지역들 내의 빌어먹을 역사적 전통들은 여성억압과 살해와 관련이 없는가? 아니면 적어도 부차적인 문제라고 치부할 수는 있는가? 문제는 저자의 해석을 따르면 오늘날 아프리카, 아시아등의 지역에서의 여성살해의 원인을 너무 좁게 잡음으로써 그 해결책 역시 편협해지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의 해석은 신선했고, 마녀사냥에 대해 새로운 관점과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힘을 줬지만 그 해석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현실을 이론에 맞추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든다. 이 책이 팜플렛의 성격이 강하다는걸 감안하면 나의 기우일 수도 있겠지만 고민을 좀 더 해봐야 할 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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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8-16 0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넘 똑똑하세요.
이렇게 조목조목 설명하고 비판하고 해석해 주시다뇨👍👍
마녀사냥을 자본주의와 연결시킨 저자의 생각도 신선해 보이고 납득이 가는데요.
자본주의가 뭔들 못하겠냐고요.

바람돌이 2023-08-16 11:14   좋아요 2 | URL
헉 똑똑이라니... 갑자기 막 으쓱하다가 그래도 내가 딱히 똑똑하지는 않지 이러면서 막 왔다 갔다리.... ㅎㅎ
그저 책을 읽다가 의문점을 나열한거고, 또 그 의문들이 실천의 방향을 잘 못 설정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좀 많이 들었어요. 제가 이 저자를 좀 더 이해하려면 다른 책을 더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본주의의 무소불위야 말해 뭣하겠어요. 무서워요. ㅠ.ㅠ

독서괭 2023-08-16 0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의 의문 제기, 공감 갑니다! 한번도 생각 못 해봤던 관점이라 신선하고 놀라웠는데, 뒷받침할 논거들에 대해서는 <캘리번과 마녀>를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11월에 읽을 책으로 찜해두었습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3-08-16 11:15   좋아요 2 | URL
아 이렇게 읽어야 할 책이 늘어나는건 한편으로 기쁘면서도 제가 읽고 싶어서 줄세워놓은 책들을 보면 또 눈물이....ㅠ.ㅠ 이 작가의 생각을 좀 더 제대로 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캘리번과 마녀>요. 에휴~~~

페크pek0501 2023-08-16 1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의문점 제기, 잘 읽었습니다. 독서를 할 때의 ‘바람직한 자세‘인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지요.
이런 페이퍼, 환영합니다!!!

바람돌이 2023-08-16 14:29   좋아요 1 | URL
아마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제대로 읽지 못한 면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공부를 좀 더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만 자꾸 드네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도 궁금하고요.

건수하 2023-08-16 14: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런 문제제기 넘 멋집니다 ^^ 2년 전에 읽었지만 기억과 발췌했던 것을 더듬어 댓글을 달아봅니다.

1번은 저도 <캘리번과 마녀> 읽으면서 좀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는데.. 중세가 지금보다 나았다니 말이죠. 말씀하신대로 중세에 지금보다 생활 수준이 높았던 것은 아니고 여성의 자립도가 높았다는 것입니다. <캘리번과 마녀>에서도 공유지, 공동체를 강조하고, 페데리치가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공동체 운동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번은 <캘리번과 마녀>에서도 아주 구체적인 근거가 제시되지는 않고 (당시의 사료들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고 하네요) 자본주의가 태동하는 시기와 마녀사냥이 많이 일어났던 시기가 같다, 그리고 그 시기 이전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식민지배와 노예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가톨릭과 청교도 국가가 종교적으로는 대립했지만 마녀를 박해함에 있어서는 뜻을 같이 했다 라는 말도 있었어요.

3번의 날카로운 지적은... 아프가니스탄을 생각하면 꼭 자본주의와 연결하여 생각할 수는 없을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이슬람 이야기는 나오지 않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도 결국 돈은 자본주의로부터 가져오겠지만요... 전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을 읽었는데 이 지역 역시 경제와 정치가 매우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더군요.


그래서 결론은... 바람돌이님이 <캘리번과 마녀>도 읽으시고 날카롭게 지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바람돌이 2023-08-16 15:24   좋아요 2 | URL
와우 2년전에 읽을걸 기억하시다니요. 역시 공부하는 수하님 너무 멋져요.

1번에서 중세에 여성의 자립도가 높은 것도 노동의 남녀분업이 확고하게 분리되는게 자본주의에 와서부터이잖아요. 그래서 중세의 농업노동사회에서는 사실상 남녀 모두 더 열악한 처지였던 걸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싶더라구요. 공동체의 복원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을공동체 하는 식으로 많이 이야기되고 추진되어지는데, 그 의도에 대해서는 저도 충분히 공감하시만 그것의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2번과 3번 모두 사실상 자본주의의 발흥과 확대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거 같아요. 이렇게 설명해버릴 때 세계의 너무 많은 여성살해,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여성협오살해가 점점 늘어나고 있잖아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오히려 제대로 원인을 파악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 드네요.

<캘리번과 마녀>는 올해가 가기전에 읽는걸로요. 노력해보겟습니다. ^^ 그리고 다시 한번 저의 글을 진지하게 읽어주시고 이렇게 의견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

건수하 2023-08-16 16:39   좋아요 2 | URL
확실히 뭔가 적어둔 걸 보니 기억이 잘 나더군요 ^^ 그땐 아직 서재 안 쓸 때인데 나중에 서재에도 옮겨뒀습니다. 요즘 쓰는 것도 나중에 찾아볼 일이 있겠지요. 읽으면 몇 줄이라도 꼭 남겨둬야겠습니다 :)

희선 2023-08-17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녀사냥, 그런 게 일어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지금은 그런 일을 당하는 게 여성이 아닐 때도 있군요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여성한테 더 많이 일어나기도 하겠습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같은 사람으로 여기면 좋을 텐데...


희선

바람돌이 2023-08-17 08:57   좋아요 2 | URL
저는 지금 일어나는 여성 혐오살인도 결국 마녀사냥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도 외국도 왜 이렇게 더 나빠지는지 안타깝네요

꼬마요정 2023-08-18 0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본이든 종교든 늘 약자를 귀신같이 알아보는 것 같아요... 여자는 타자이면서 소유물이라는 관념이 무의식까지 있나봐요. 그러니 경제권이 없으면 없는대로 희생되고, 있으면 있다고 희생되고, 이건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는 듯 하네요. 마녀 사냥도 사실 처음엔 남녀 구분 없이 정적 제거나 재산 탈취용으로 자행되다가 점점 여자들 위주로 행해졌잖아요. ‘마녀‘란 단어가 여자에게 부정적이라 ‘마인‘이란 단어를 쓰자는 말도 있었는데 어쨌든 여자들이 아주 많이 희생된 건 사실이라 참 그렇습니다. 마법사는 괜찮은데 마녀는 부정적인 거 좀 슬픕니다ㅠㅠ 마녀 좋은데... 능력자잖아요.

사회에 부정적 이슈가 많아지거나,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하면 꼭 희생양을 찾는단 말이죠. 치사하게. 그러면서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가봐요. 무리에 속했다는 느낌도 가지고 싶고... 다음 타겟이 자신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냥 다 초크로 목을 졸라버리고 싶어요 쳇 (아, 폭력은 안 돼!!!ㅠㅠ)

바람돌이 2023-08-18 08:53   좋아요 1 | URL
약자를 찾아내는건 본능일까요? 심지어 애들도 귀신같이 알아내거든요. 누가 약자인지...... 그걸 이성으로 눌러주는게 교육인거 같기도 하고...약자에 대한 폭력이 없었던 시절이 없었잖아요. 사실 여성만 그런것도 아니구요. 독일의 유대인 학살도 그렇고 각 지역의 소수민족 학살도 그렇고.... 폭력은 안되지만 요정님의 초크로 목을 졸라버리고 싶은 심정은 똑같이 공감합니다. 하지만 초크로는 좀 힘들지 않을까싶기도..... ㅎㅎ

꼬마요정 2023-08-18 16:1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유대인도 집시도 이방인도 다 뭔가 약해 보이면 먹잇감이 되는 것 같아요. 무서운 일이죠ㅠㅠ 초크로 목 조를려고 열심히 전완근, 이두근, 삼두근 열심히 근육 키우고 있습니다. ㅎㅎㅎ 요즘 턱걸이 5개 해요!!
 

 마녀사냥이, 근대 자본주의 세계가 부상하는 길을 열어젖힌 다양한 사회적 과정의 교차점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은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다.  - P35

15세기 말 잉글랜드 각지에서 인클로저 운동이 있었고광범위하게는 유럽에서 농업 자본주의가 부상했다. 그것이 바로 수없이 자행된 마녀 기소의 사회적 배경이었다.  - P40

토지 사유화가 ‘마녀‘ 박해로 이어지는 것은 구체적이고 특정한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만이다. 그러나 공동체주의 체제들communitarian regimes의 해체와 그러한 영향아래 놓인 사회의 성원이 악마로 몰리는 것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 관계로 인해 마녀사냥은 경제와 사회를 사유화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기이한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이장의 목표 중 하나이다. - P41

그렇기 때문에 인클로저는 단순히 토지에 말뚝을 박고 사람들을 쫓아낸 것 이상의 더 광범위한 현상이었다. 지식과 앎, 우리의 신체, 우리가 타인 및 자연과 맺는관계의 인클로저였음을 고려해야만 한다. - P53

 ‘마녀‘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공모자가되고, 이와 관련해서 남자들의 지도력을 인정하면 자신들이 살 수 있다는 것을, 교수형이나 화형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여성들은 배웠다. 무엇보다 여성은 새롭게 태동해 발전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지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여성이악마의 종이 될 수 있다고 널리 인정되어 버렸고 악마 숭배라는 혐의가 언제든지 여성을 옥죌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55

자본주의에서 수용 가능한 사회적인 것의 영역으로 복구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가정적으로 길들여진 섹슈얼리티, 즉 노동력 재생산과 노동자 위무에 복무하는 섹슈얼리티였다.  - P66

내가 『캘리번과 마녀에 썼듯이, 마녀사냥은 여성 전체를 상대로 한 테러 체제였다. 마녀사냥으로부터 새로운여성성의 모델이 출현했다. 여성이 태동 중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수용되려면 새로운 모형의여성성에 순응해야 했다. 그것은 무성적이고 sexless, 복종적이며, 고분고분하고, 남성이 지배하는 세상의 종속적 하위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 P70

 ‘범죄‘를 과장해 끔찍한 처벌Searchgang을 정당화하면, 사회 전체를 효과적으로 공포에 떨게 만들 수 있다. 희생자들이 고립되고, 저항의 열의가 꺾이는것이 다음 수순이다. 그러면 대중은 이전까지는 정상으로여겨졌던 행동들에 참여하기를 저어하게 된다. - P72

화형대에서는 마녀들의 신체가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권능의 기초였던사회적 관계의 세계 전체, 그리고 엄마로부터 딸에게로 세대를 넘어 전승되어온 지식의 방대한 덩어리 - 약초에 대한 지식, 피임과 임신중지에 대한 지식, 남자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마법에 대한 지식-가 파괴되었다. - P73

이 모든 지식 생산에 ‘가십‘이라는딱지를 붙이는 것은 악마연구자들이 만들어낸 정형화된여성상, 즉 쉽게 사악해지고, 다른 사람의 부와 권력을 시기하고,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기 쉬운 존재라는 그러한여성상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서, 여성 비하에 속한다.
이것이 여성을 침묵시키는 방법이다.  - P87

다시 말해서, 새로운 방식의 여성에 대한 폭력이 나타날때 그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언제나 자본주의 발전과 국가 권력을 구성하는 구조적 경향에 있다는 것이다. - P92

 여성을 ‘마녀‘로 지목하고 박해하는것은 유럽 여성을 무급 가사노동에 구속하는 길을 닦았고, 가족 안팎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이 정당화되었다. 마녀사냥은 국가에 여성의 재생산 능력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했고 새로운 노동자 세대의 생성을 보장했다.  - P93

여성이 자원을 확보하여 남성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에만, 그래서 여성이 위험하고착취적인 노동조건과 가족관계를 강제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 P112

페미니스트들이 가장 긴급하게 심판해야 하는 집단은 유엔이다. 유엔은 여성의 권리에 대해 말만 앞세우면서 경제 자유화를 새천년개발목표로 치환하여, 아프리카와 세계여러 지역에서 나이든 여성이 악마화되고 지역사회에서쫓겨나 갈기갈기 찢기고 산 채로 화형당하는 것에 입을다물고 방관하고 있다. - P119

구조조정을 겪은 오늘날의 아프리카에 사는 많은 젊은 남성은 교육받을 기회가 없고, 토지로 생계를 이어갈희망이 없으며, 다른 형태의 수입원을 찾을 전망이 없고,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다할 수도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미래에 대해서 절망감을 가지며 자신들이 속한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전쟁을 벌이도록내몰리게 된다. - P134

아프리카의 마녀사냥이 여성에게 위협이 되고 고통을 부여하며 여성의 신체와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데도 페미니스트들은 이에 맞서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힘을 모으지 않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누군가는 이 이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전쟁, 전지구적 부채, 환경같은 더 광범위한 정치 사안들부터 부차적인 문제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있다. 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프리카 사람들은 후진적이라는 식민주의적 이미지를 더 확산시키게 될까 봐 이 주제를 다루기를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 P151

 마녀사냥은정치적 행동주의의 전면에 위치 지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마녀사냥은 심각한 인권 침해일 뿐만 아니라, 이 박해들은 아프리카의 정치경제의 핵심, 그리고 이 행헝 대부분 지역의 사회적 삶의 핵심을 건드리는 중요한 사안들돠 관련 되어 있기 때문이다
- P153

다시 말해, 아프리카 안팎의 페미니스트 운동은가부장적 공동체주의의 실패와 몰락이 공통 자원에 대한사유화를 정당화하지 않도록 저지해야 한다. 대신에 페미니스트 운동은 완전히 평등한 공통장의 구성에 정진하면서 이러한 길을 걸어온 조직들의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 P157

마녀사냥의 귀환에서 배우는 교훈은 이런 형태의 박해가 역사상의 어떤 특정한 시대로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박해는 자체의 생명력이 있어서, 배척당하고 비인간화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어디에서든지 동일한 메커니즘에따라 생겨날 수 있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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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8-15 0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세에 마녀사냥이 있었다면,
현대에는 이른바 red hunt 가
있었죠.

서로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야말로
정말 무섭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다시 중세로
회귀하는 전체주의적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바람돌이 2023-08-15 21:41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 둘 다 사냥이네요. 인간이 인간을 사냥한다는(물론 동물사냥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말이 성립되는 것 자체가 끔찍하죠.
그런데 역사속에 저렇게 어떤 형태로든 인간 사냥이 중지되었던 적이 있나 싶네요.

페크pek0501 2023-08-16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특히 72쪽의 글은 새겨들을 만하네요.^^

바람돌이 2023-08-16 15:26   좋아요 0 | URL
공포가 가져오는 효과 중 가장 효과적인게 저런 자기검열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권력이든지 저 자기검열기제는 참 일관되게도 잘 쓴다 싶구요.
 

사회의 윤리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자신을 증명하면 된다는 것. 영감을 주고, 욕구를 해소할 수 있고,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여성을 필요로 하는 남성의 행태가 착취가 아닌 사랑으로 일컬어진다는 것, 《달과 6펜스》가 그린 남성예술가의 모습은 아주 최근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발견할수 있지 않았나. 특히나 폴란스키의 수상 그리고 그를 ‘작품‘만으로 평가하자며 두둔했던 프랑스 아카데미의 태도는 《달과 6펜스》가 과연 옛날이야기인지 의심케 만든다. 나는 《달과 6펜스》가 일종의 ‘헤게모니‘로 작용한다고 본다.  - P50

서머싯 몸이 《달과 6펜스》를 출간하기 직전인 1918년, 영국에서는서프러제트 운동으로 비로소 삼십 세 이상의 여성이 참정권을 얻었다. 이렇듯 《달과 6펜스》가 유럽 여성이 자기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던 시기에 쓰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나‘가 티아레와아타의 종속적 태도를 어떠한 분석이나 비판 없이 서술하는 데는일종의 의도가 담겼다고밖에 볼 수 없다.  - P55

참전 용사들은 일하는 여성, 타인 앞에 나서서 매력과 능력을수줍음 없이 과시하는 여성, 남성과 대등하게 맞서거나 심지어대적하려는 여성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여성을 맞닥뜨리고 당혹스러워했다. 그리고 돈과 힘을 직접 갖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점점 분노하기 시작했다. 하드보일드 작가들은 이 젊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대립과 긴장관계를 재빠르게 포착했다. - P71

 결백하지 못한 아름다운 여성들은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라 명명되었다. 탐정이 일단 ‘그 여자‘를 찾아내면, 이 죄 많은 팜므 파탈들을 어떻게든 퇴치하거나 순응시킬 방법부터 찾아내야만 한다. 사건은 이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해결된다. ‘그 여자를 찾아라, 그다음 그 여자를퇴치하라‘의 구조를 취하는 것이다. - P72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누아르 작가로 꼽히는 메건 애벗은
"만약 당신이 유해한 백인 남성성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아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라고 썼다. "미국의 백인 남성들이 누리던 삶은 처음에는 대공황 때문에, 그다음에는 전쟁때문에, 그다음에는 그들이 나가서 싸우는 동안 자신들의 자리를대체한 여성들 때문에 파괴되었다. 누아르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만개했다. 탐정, 형사, 짭새 등 백인 이성애자 남자들의 이야기는자신들이 적법한 권력의 자리에서 축출되었고 여성에게 근본적으로 위협당한다면서 여성을 전능한 위치에 올려둔다. 그런 다음, 이 백인 이성애자 남자들이 저질렀던 온갖 악행의 원인을 여성들에게 돌린다. 누군가를 죽이고 은행을 털었던 모든 것이 팜 - P72

므 파탈이 조종했기 때문에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누아르 소설들은 침입에 대한 격분과 여성의 힘을 저지하겠다는 분노로 끓어오른다.  - P73

하드보일드 작가들이 포착했던 동시대 참전 용사들의 분노, 특히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거나 혹은 자신이 더는 구애하기 힘든 위치로 가버려 자신의 사랑과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는 여성들을 향한 젊은 남성들의 분노와 경멸이, 헬렌을 향한 말로의 복잡한 시선에 투영된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제길, 이 나라에서 남자들이 할 수 있는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니까. 항상 여자들이 끼어들게 마련이죠." - P85

《자》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여자를 ‘수수께끼‘로 보는 시각을 매우 잘 대변한다. 나자만이 아니라 이 작품에서 언급되는여성들은 대체로 수수께끼 같은 모습이다. 그들은 그야말로 ‘발작적‘으로 나타나 홀연히 사라지고, 미래를 예언하는 듯 묘한 말을 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적당히 신비스럽고 적당히 흐트러진 이 여자들은 과연 실체가 있는인물인가. - P145

남성 예술가의 무의식에 따라 서술되고 재현된 ‘초현실적 여성‘과 달리 초현실주의 예술에 직접 참여한 여성 예술가는 적극적으로 배제되었다. 많은 여성이 남성의 작품 속에 박제되었지만, 그 여성들의 창작물은 소외된다. 초현실주의 예술가였던 다른 여성들보다, 갈라가 ‘막스 에른스트의 연인, 폴 엘뤼아르의 아내, 살바도르 달리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기억되는 것처럼 말이다. - P157

 브르통이 여성 작가들을 익명으로 소비하며 사랑의 매개로만 다룬 점은여성 창작자를 바라보는 남성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 P158

 이로써 그는 분리된 육신과 정신이라는 ‘영원한 적대자‘를 화해시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육신과 정신을 화해시키지 못한다. 그가설정한 ‘육신의 현현‘인 조르바가 순전히 왜곡된 남성성이라는판타지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거칠 것 없이 페니스를 휘두르며 자유인이라 주장하는 상상 속 남성성, 평생 책상 앞에서 ‘나‘
가 했다는 공부와 성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 P175

‘나‘는 페니스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쇠‘라고 생각하는 조르바와 함께 ‘신도 없고 악마도 없고 오직 자유로운 인간만 있는수도원‘을 꿈꾸었다. 종교의 경계를 헐어 신과 악마가 양면적인하나의 존재라는 점을 볼 줄 알았으며 이성의 한계를 꿰뚫어 보았고 조국이라는 허상도 깰 수 있었지만, 젠더 위계와 불평등은끝까지 알아챌 수조차 없었던 그들의 상상 속 수도원은 얼마나행복한 곳일까? - P181

 작품의 내용은 네 가지 측면에서 진부하다. 첫째,
인간의 조건인 ‘일상의 노동‘과 ‘초월성‘을 대립시킨다. 초월성은노동을 부정하는 부정의이자 젠더화된 언설의 대표적 관념이다.
둘째, 초월적 인간이 되려는 강력한 동기가 경제력을 가진 여성에 대한 분노와 ‘일하는 여성 = 구차한 현실‘이라는 성차별에서 나온다. 셋째, 어성의 도구화로 이를 재현한다. 마지막은 일제시대라는 배경을 강조하며 <날개>를 ‘지식인의 고뇌‘로 읽는 천편일률적 독해다. 읽기의 진부함이다. 식민지 시대에는 지식인 남성만 고통스러운가? 게다가 <날개>의 남성 주인공이 살아가는 방식과 목소리는 어느 시공간에나 존재한다. - P186

성매매와 섹슈얼리티는 한국 사회 그 자체고, 여성의 삶. 젠더 문제의 핵심 이슈인데 성매매 언설은 남성이 독점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스톡홀름 증후군‘을앓고 있다는, 그들의 행위성을 완전히 박탈하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발언이 가능한 사회다. 여성들이 말할 수 있는 영역은 ‘성폭력으로서 성매매‘와 이 구조 때문에 발생한 피해에 국한되어 있다. - P202

‘나(이상)‘는 혼나는 아이다. 이러한 관계는 남성이 공사 영역에서 이중 노동을 하며 힘겹게 사는 아내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고 살면서도, 자신이 아이처럼 취약한 존재라며 피해자 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게끔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전도displacement와 부정의가 의심 없이 수용된다. 이것이 미소지니다.
<날개>에서는 여성의 직업이 성 판매일 때 자연스레 발생하는 미소지니에 지식인 남편을 혼내고 통제하는 강력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미소지니가 더해진다. - P205

종속적인 위치의 남성들은 약자와 연대하기보다 패권적 남성의 자리를 욕망하거나 그들에게 ‘자신의 여자‘를상납한다.  - P206

문제는 거래 대상인 물건 (여성)이 행위성을 발휘하거나 지배계급 남성이 자신을 실제로 구원해주지 않을 때 발생하는 피지배계급 남성의 좌절감이다.
그런 피지배계급 남성의 목소리가 바로 <날개>다. <날개>는치욕의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남성 심리의 원형이다. 자신이 존재가치가 없는 남성임을 깨달은 남성 지식인이 현실에 대처하는방식은 자기 조작 making이다. ‘가난한 천재‘가 대표적이다.  - P207

미소지니가 근본적인 폭력인 이유는 임의성 때문이다. 임의적 재현은 혐오든 숭배든 ‘나는 너희들을 안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자신을 세상을 규정하는 위치에 두고 세계를 창조하는것이다. 남성 문화가 여성을 ‘창녀‘가 아닌 어머니로 숭배한다고해서 여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여성은 어머니나 창녀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이다. 어머니나 창녀는 사회가 부여한 성역할이지, 본질적으로 ‘그런 여성‘은 없다. - P213

나는 한국 문학사에서 이상이 이룬 문학적 성취에 동의한다.
내가 불편한 점은 콘텍스트 context, 즉 그의 작품에 대한 변화 없는해석이다. 그의 문학은 한국 사회에 갇혔다. 그런 의미에서 <날개>는 죄가 없다. 지금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 다시 읽기가 필요할 뿐이다. - P214

메데이아의 매력은 그 성격의 복합성에서 나온다. 그녀는 뛰어난 능력과 진취적, 적극적 성격을 함께 갖춘 여성 영웅으로 여성해방의 상징인 동시에, 남편의 배신으로 생긴 가족 질서의 위기를 본인이 주체가 되어 심판하여 해결하는 가족의 수호자다.
여기에 더해 그녀는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의 피해자로서 서구 사회의 배타성과 야만성을 드러내는 이방인 타자이고, 복수의 의미와 폭력의 정당성을 깊게 성찰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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