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는 않고 읽기만 해서 쌓인 책들

올해부터는 정말 읽는 족족 리뷰를 쓰든 페이퍼를 쓰든 독서기록을 남기리라 다짐했건만

예상치 않은 엄마의 병간호는 읽은 책만 쌓이게 만들었다.

뭐 이럴 때는 살짝 페이퍼로 퉁치고 넘어가도 될거야!!

사람이 어떻게 결심한대로 계획한대로 살수 있겠어라고 마음편히 눙치고있다.

그래도 <파씨의 입문>은 리뷰를 꼭 써야지 하면서 살짝 빼놓고 남은 책들을 간단하게 정리한다.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한 때 알라딘마을에서 선풍적인 화제와 인기를 뿌렸던 책인데 이제야 읽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5만개가 넘는 유전자 중에 단 한개가 삐끗해도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무너질 수 있는지, 또 그 변화의 방향이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기괴해 보일 수 있는지 상상도 못해봤던 사례들을 보면서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의 몸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한다.

이 책의 미덕은 그 삐끗한 삶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그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여전히 유지하고자 하며, 유지할 수 있음을 또한 같이 얘기함으써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는데 있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영화가 더 유명한데 난 영화를 안봐서 그저 평범한 우편배달부와 네루다의 우정정도로 예상하고 봤다.

사실 책이 얇아서 병원에 들고가기 딱 좋았던 것도 있고.....

대단히 웃기고, 겁나게 섹시하고, 그리고 너무 암담하고 슬픈 결말까지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책이라고 표현하면 될까?

감정의 파고가 너무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바람에 홀린듯 읽었다.

이슬라 네그라라는 시골구석으로 이사온 위대한 시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된 마리오(왜냐하면 이 마을에는 아무도 글을 못읽기 때문에 편지가 오는 사람이라고는 네루다 한 명 뿐이다.)

이 위대한 시인에게 어떻게든 인정받아 보려는 그래서 시인이 되고싶은 마리오의 모습이 어찌나 실감나던지...

또한 네루다를 뚜쟁이로 만들어 아름다운 소녀와의 결혼 과정에서 표현되는 시골마을의 사람들의 모습은 어찌나 생생하던지 내가 바로 이 마을 이슬라 네그라에 가 있는듯하다.

아 그리고 가장 매력적인 인물 중 하나가 아름다운 소녀 베아트리스의 엄마인데 마리오같은 허황되고 게으르고 미래가 암담해보이는 사내와 딸의 결혼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그녀의 욕들은 그대로 시가 된다.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걸! 퍼질러 잠이나 자!"- P67

욕이 시가 되는 경지라니, 어쩌면 네루다를 뛰어넘는 시인은 그녀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며 웃는다.

하지만 알다시피 칠레의 현대사는 이 소설을 이렇게 유쾌한 시골의 일상으로 가만두지 않는다.

일상의 평화가 거대한 폭력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는 순간을 읽는 것은 참담하다.

아옌데가 대통령궁에서 피노체트에 의해 살해당한 순간 이 시골마을에도 참담한 침묵과 죽음의 순간이 닥친다.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어"라고 절규했다는 네루다, 그리고 결국 어느날 찾아온 자동차에 탄 이후 사라져버린 마리오, 그리고 남은 사람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싶지 않은, 이게 아니라고 이 마을의 그 평화로움과 사람들의 웃음을 찾아달라고 뒷이야기가 더 없냐고 작가에게 애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5권 유윤중 <푸치니 - 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음... 음악을 글로 배우려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방법이다.

그 어리석은 방법을 내가 하고 있구나....

일단 오페라에 큰 관심이 없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유튜브로 나오는 음악들을 틀어놓고 들어가면서 읽었으나 역시 별 감흥이 없다.

많이 들어본 몇 개의 곡만 음.....

푸치니라는 인물 자체도 딱히 이야기가 될만한 면을 못가진 것 같고....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중에서 음악가들을 빼야 할까? 고민중.

 

 

 

 

 

 

 

 

 

 

 

 

 

 

 

박노자 <미아로 산다는 것>

한 때 박노자씨의 책들은 무조건 구매해서 읽었었다.

그의 독특한 이력 덕분에 한국사회를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시각이 신선했고, 그 시점에서 날카롭게 드러내는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가 좋았다.

다른 눈을 통해 나를 더 잘 인식하게 되는것, 이것이 박노자씨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이었다.

그런데 오랫만에 읽은 이 책에서는 그런 날카로움을 보기는 어려웠다.

저자가 한국사회를 떠나 있는 상황이라서인지 일반론적인 문제제기 외에 특별히 예리한 비평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수정, 이다혜, 최세희, 조영주의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범죄 심리학자인 이수정씨가 이 방송을 시작하면서 했다는 말

"범죄 영화 장르를 엔터데인먼트로 소비하는 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 않겠다. 그러나 범죄 영화에 숱하게 등장하지만 대부분 피해자로 소비되다 마는 여성이나 아이의 입장에서 분석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의향이 있다"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 말이 책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올렸고,

중간에  나오는 "우리는 결국 연대하기 위해 이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이 책과 방송의 가장 중요한 결론이다.

생각과 다르게 영화는 정말 소재일 뿐이고,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범죄의 피해자들 - 많은 경우 여성 또는 아이들인-에 대한 보호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심한가를 얘기하고, 현실과 대책을 얘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주장 중에 하나인 의제강간연령(성관계 동의 가능연령, 이 연령 이하의 아동과의 성관계는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범죄이다)은 지난 해 n번방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에 의해 13세 미만에서 16세 미만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나름 관심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실제 사건과 현장의 모습에서는 아직까지도 충격적인 모습들이 많이 남아있어 우리 사회가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들이 모두 마음에 맞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옥타비아 버틀러 <블러드 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의 책으로 세번째.

<킨>은 너무 좋았고, <쇼리>는 이게 뭔가 싶게 실망하고

이후 더 읽을까 말까를 고민하다 알라디너분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에 읽은 책인데, 조금 더 이 작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표제작인 <블러드 차일드>에서는 지구에 생긴 다른 생명체 트가토이들에 의해서 남자 아이들이 번식용 수컷으로 선택되고, 끔찍한 고통을 통과하며 새로운 트가토이들을 출산한다는 설정. 기존의 남녀 관계를 비틀어보는 것과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관계도 비틀어봄으로써 우리가 일반적이다 또는 정상이다라고 하는 개념을 뒤집어 보게 하는 것이 신선하다.

이런 비틀어보기 또는 다른 각도에서 보기가 이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단편들마다 그 재능이 넘쳐난다.

표제작과 함께 인상적인 작품은 <특사>인데 지구에 침입한 우주인들, 그들을 증오하는 지구인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공존을 도모하는 통역을 담당한 인간들의 긴장감 넘치는 갈등의 장면이 인상적이다.

언뜻 테드 창의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의 모티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테드창이 이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언뜻했다.

 

 

 

 

 

 

 

 

 

 

 

 

 

 

박건호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세상에는 참 이상하고 훌륭한 사람이 많다.

이분도 그렇다. 대학 1학년 때 답사를 가서 우연히 빗살무늬토기 파편을 주운 것을 계기로 역사자료 수집을 시작했단다.

빗살무늬 토기 파편 하나 주웠다고 누구나 역사자료 수집을 하는건 아닐텐데 참 신기하다고나 할까?

30여년간 자료를 수집했다고 하니 아마 그 자료들이 한 더미를 이루었을 것이고, 그것들을 이리저리 얽으면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이 모은 자료이니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것들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별거 아니게 넘길 작은 자료들에서 역사 속 개인들을 부활시키고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솜씨가 유려하다.

구한말 실종자 조용익을 찾는 훈련 한장에서 당대의 의병운동을 얘기하고, 한 청년이 고향 집에 보낸 엽서에서 새로운 문물인 자동차가 등장하는 과정과 자동차 운전기사가 되기 위한 당시 젊은이들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것, 베를린 올림픽 당시 손기정씨의 사인 한장에서 그가 느꼈을 참담한 심정을 유추하는 것 등 역사의 작은 조각에서 찾아낸 개인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역사라는게 개개의 인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짐에도 어느새 만들어진 역사에는 개인들이 사라지고 인간의 삶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거대 서사와 이론만 남게 된다.

그 틈을 파고들어 역사속 사람의 냄새를 되살려 내는 이런 책들은 늘 언제나 반갑다.

 

 

 

 

 

 

 

 

 

 

 

 

 

 

대프니 듀 모리에 <나의 사촌 레이첼>

로맨스 스릴러라는 장르 자체에 별다른 애정이 없어 알라디너들이 대프니를 그렇게 외칠 때에도 쿨하게 지났건만....

이 책은 마지막 몇 페이지에 이를 때까지는 솔직히 말해서 지루했다.

솔직히 세상 물정 모르고 지 잘난줄만 아는 젊은 귀족 필립이 생전 처음 느껴보는 사랑의 열병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꼴을 보는게 뭐 딱히 예쁘지도 않았고, 미스테리한 여주인공 레이첼은 그 인물이 필립의 시선속에서만 묘사되기에 인물의 구체성 자체가 실감이 안나고.....

그런데 이 책의 진가는 정말 마지막 3장에 있다.

따라서 이 책을 보는 사람에겐 경고가 필요하다. <절대 마지막을 미리 읽지 마시오>

이러면 뭔가 엄청난 반전이 있을 것 같은데 바로 그 반전이 없다는게 이 책의 최고의 반전이랄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책의 서장을 다시 읽고 내용들을 다시 찬찬히 되짚게 된다.

그리고 책 전체에 펼쳐진 필립의 시선이 아니라 레베카의 시선으로 그녀와 여러 사건들을 전부 재구성해보게 된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필립의 생각들은 얼마나 어이없고, 자의식 과잉인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아니 필립의 생각이 아니라 18세기쯤 되어 보이는 당시의 남자들의 시선이라는게 얼마나 폭력적이고 부당한가라는 반추를 저절로 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이라고 특별히 달라지진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쓰는 것 보다 읽는게 훨씬 좋다.

왜냐하면 읽는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왜 좋은지 왜 별로인지를 쓰다보면 나의 생각이 자란다는 느낌을 좀 더 많이 받게 된다.

그래서 쓰기 싫다가도 컴퓨터 자판 앞에 앉게 된다.

나는 여전히 세상을 다 알지 못하고, 여전히 더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내 생활의 지침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래도 혼자 쓰고 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내가 쓴것을 공감해주고 읽어주고, 반론도 제기해주고 하는 이런 공간이 있어서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계속 이렇게 잡문이나 간단한 감상문이라도 계속 쓰고 있다.

그래서 알라디너 여러분들에게 늘 감사하다.

이 공간이 아니라면 난 단 한줄의 글도 쓰지 않을 것이 자명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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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1-27 05:1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마을이 없었으면 단 한줄도 쓰지 않았을 사람 여기 있습니다 ㅎ. 같은 책을 읽어도 다르게 읽는 것이 제일 재밌는 포인트이긴 한데, 남의 생각만 보는건 반칙인것 같아서 저도 써봐야겟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다른 재밌는 점들도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바람돌이님! 잘 읽었습니다.

바람돌이 2021-01-28 23:01   좋아요 1 | URL
전 실제로 서재를 떠나있던 기간 동안은 정말 단 한줄도 안썼어요. ㅎㅎ 역시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책은 같이 읽는게 더 좋은것 같아요. 내가 몰랐던 책, 작가를 알게 되는 것도 진짜 기쁜 일이구요.

다락방 2021-01-27 07: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을 책으로도 읽었지만 그전에 방송으로 몇 번 듣기도 했었거든요. 한 청취자가 사연을 보냈더라고요. 직장내 강간을 당했는데 강간후 피해자가 사무실을 멀쩡하게 걸어나왔으므로 가해자가 무혐의 처리되었다고요. 너무 솏상하고 억울했는데 이 방송을 듣다가 이수정 교수님이 연대하기 위해 방송을 했다 말씀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방송을 듣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이수정 교수님도 사연 듣고 울먹이시더라고요. 이 글 읽으니 갑자기 그 때 생각이 나네요.이수정 교수님이 의제강간 연령에 대해 꾸준히 주장해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하고요.

<나의 사촌 레이첼> 읽으면서 저도 처음에는 왜 하필 필립의 시선일까에 대해 자꾸 생각했었거든요.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야 아, 이러려고 그랬구나 이러려고.. 싶으면서 천재적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저는 중간도 지루하지가 않았어요. 필립이란 젊은 청년이 뭐랄까 이기적이고 철없는 모습 그대로가 보이는게 재미있더라고요. 어휴, 어린놈..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재미있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은 결론이 압도적이죠!

또 많이 읽고 또 많이 써주세요, 바람돌이님. 올리버 색스 책은 저도 한 권 사뒀는데 뭔지도 모르겠고 읽지도 않았네요. ㅠㅠ

바람돌이 2021-01-28 23:05   좋아요 0 | URL
전 방송은 안들었는데 책 읽다가 같은 대목에서 울컥하더라구요. 이런 분들이 계셔 주시는 것이 감사하죠. 이수정박사님 같은 분들을 알게 될때마다 아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구나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요.

나의 사촌 레이첼은 마지막을 읽기 전에는 아 이 작가의 책은 그냥 요거 하나로 끝내야겠구나 생각했는데.... 이제 레베카 읽어보려구요. 그러고보니 뮤지컬 레베카의 원작이 이 책이던데 우리집 둘째가 굉장히 좋아하는 뮤지컬이예요. 불쌍한 둘째는 지금 고3이라 좋아하는 책도 못읽는다죠. 불쌍한 놈.... ㅎㅎ

다락방 2021-01-29 09:00   좋아요 1 | URL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와 [나의 사촌 레이첼]중에 뭐가 더 좋은가에 대해서 독자들마다 의견이 갈리는데(당연하죠!!) 저는 나의 사촌 레이첼의 손을 들어주었거든요. 레이첼 읽기 전에는 레베카가 압권이었죠. 이것도 제가 극찬하는 리뷰를 언젠가 썼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런데 어떤 분들은 레베카의 손을 들어주십니다. 물론 당연하죠! 바람돌이님은 과연 레베카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레이첼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두구두구둥-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이 씐나라~~

바람돌이 2021-01-30 00:34   좋아요 0 | URL
레베카 읽고 나서 결론을 꼭 알려드리겠습니다. ^^

수이 2021-01-27 08: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범죄영화 프로파일 사놓기만 하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계속 미루고 있는데 조만간 펼쳐봐야겠어요. 저도 쓰기보다는 읽기가 더 좋아요. 알라딘 아니었다면 그냥 읽고 또 읽고 그러기만 할 텐데 흔적 남겨놓아야지 하고 어기영차 할 때도 종종. 어머님 건강 얼른 회복되시기 기도할게요. 힘내세요 바람돌이님. 아빠 간호할 때 넘 힘들었는데 케어의 중요성을 절절하게 깨닫기도 했어요. 아자!

바람돌이 2021-01-28 23:07   좋아요 0 | URL
범죄영화 프로파일은 한 챕터씩 천천히 읽어도 부담없겠더라구요. 딱히 어려운 내용이 없고 방송을 책으로 만들었으니 전체 내용도 술술 들어오는 편이라서요. 알라딘 서재가 없어도 책은 열심히 읽겠지만, 쓰는 건 역시 서재와 서재 지인분들 덕분이죠. ㅎㅎ 그리고 저희 어머니 건강도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mini74 2021-01-27 09: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저는 꼭 국민학교 시절 독서공책 쓰는 느낌으로 ㅎㅎ 북플친구님들 좋아요! 눌러주시면 꼭 선생님이 참 잘했어요 하고 도장 찍어서 돌려주시는 기분 ㅎㅎ 그래서 주저리 주저리 글을 쓰나봐요. 바람돌이님! 참 잘하셨어요 *^^* 어머님께서도 얼릉 나으셔서 따신 햇빛 아래 즐거운 하루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울 어머님은 따신 햇빛 드는 쪽으로 옮겨 앉으시며 책도 읽으시고( 큰 활자본책들 좋아요 ~) 드라마도 보세요. 햇빛 따라 다니시는 것 보면 나이드신 울 어머니 꼭 작고 여린 할미꽃 같답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1-01-28 23:19   좋아요 1 | URL
아 예전엔 독서공책도 썼어죠. ㅎㅎ 쓰고나면 제 글씨체 때문에 속삭했었던 기억이 모락모락나네요. ㅎㅎ
몇명이라도 제 글에 공감해주고 얘기 건네주는 분이 계셔서 여기서 계속 글을 쓰는 것같아요. 이것도 일종의 마약이에요.
햇빛 따라 다니는 mini74님 어머님 모습이 떠오르네요. 참 고우실듯.... 저희 어머님도 지금은 기력을 제법 회복하셔서 햇빛따라 다니고 계세요. 참 다행인게 어머니가 오래된 옛집을 버리고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한게 2년쯤 되는데 훨씬 편하고 햇빛 잘 드는 집인거예요. 그 때 이사하길 잘했지 하고 내내 생각한답니다. ^^

scott 2021-01-27 1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마지막 문단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책이 눈에 들어지 않은날에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나의 나의 사촌 레이첼‘영화 강력 추천합니다 (이작가에 단편집도 훌륭해요)어머님 건강 빨리 쾌유하시길 바라며 바람돌이님도 건강 잘챙기시기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1-01-28 23:21   좋아요 0 | URL
전 왜 집에서 보는 영화는 안보고싶은지.... 텔레비전도 큰데 말이죠. ㅎㅎ 그래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보고싶네요. 이 영화 예전에 굉장히 유명했었는데.... scott님도 늘 건강하세요. 님의음악 얘기도 전 잘 모르지만 자주 읽고 싶어요. ^^

페크pek0501 2021-01-27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 팍팍 하고 응원 팍팍 합니다. 응원!!! 응원!!!
박노자 님의 글에 반해서 저도 사 둔 책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 생각해 놓고 찾아 읽으려 합니다. 쌓인 책 중에서 찾느라고 얼마나 걸릴지... ㅋ
제가 모르는 책 세 권이 있어서 꼼꼼히 읽고 갑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페이퍼가 좋다니까요...^^

바람돌이 2021-01-28 23: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런 종류의 페이퍼는 역시 새로운 책을 찾는 재미죠. 저도 여러 지인분들의 글에서 새로운 책을 찾을 때마다 맘이 설렌답니다.

라로 2021-01-28 0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바람돌이님하고 이 페이퍼로 보면 5권이나 겹쳐요!!! 대박!!! 제가 이렇게 많이 읽었나요??^^;;; 대프니 드 모리에 여사의 다른 책도 읽어보세요. 넘 좋아요. 그리고 말하면 입아프지만, 올리버 색스의 다른 책도 추천해요!!!
암튼, 이 글 읽고 반성해요. 저는 제 생각이 자라는 글을 쓰지 않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썼던 것을 반성합니다.
제 생각이 자라날 수 있는 글을 앞으로 쓰도록 노력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람돌이 2021-01-28 23:27   좋아요 0 | URL
라로님과 저는 독서 취향이 비슷한걸로.... ㅎㅎ 대프니 드 모리에 책은 이 다음으로는 레베카 읽어보려구요. 올리버 색스의 책도 예전에 사놓은게 화성의 인류학자 있는데 당장은 아니고, 조금 여유를 두고 읽고싶어요. 좀 벅차더라구요. ㅎㅎ 근데 저도 생각나는 대로 씁니다. 심지어 퇴고도 안해요. 뭔 자신감인지... ㅎㅎ 글을 쓰는게 아니라 그냥 싸질러놓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책을 읽고 어떤 말을 하면 그 말에 묘하게 책임감을 느끼게 돼요. 그래서 말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구요. 라로님 글은 언제든 저는 좋아합니다. ^^
 

 

 

 

 

 

 

 

 

 

 

 

 

 

제목의 공간이 만든 공간이 뭘까 잠시 궁금했었는데, 다행히 책의 서두에 바로 나왔다.

'void' 빈공간이다.

건축이란 뭐라고 어려운 말을 갖다 붙여도 결국 본질은 인간의 거주, 생활을 위한 공간 창출이다.

동양에서처럼 기둥을 중심으로 하든, 서양에서처럼 벽으로 만들든 어쨌든 말이다.

이 책은 그 공간에 대한 인식이 자연환경, 역사에 따라 동서양이 어떻게 다른가에서 출발한다.

대충의 기존 리뷰들을 살펴보니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넘칠 정도로 많아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되지 싶다.

1장에서 4장까지 다소 길게 동서양의 생각의 차이와 그것이 건축에 끼친 영향을 설명하는데 사실 새로운 의견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연구성과들을 정리해놓았다는게 맞겠다.

그런데 굉장히 잘 정리해놓았다. 이대로 강의 자료로 삼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그리고 동서양의 문화를 바둑과 체스의 차이로 비유한다든지, 만화 드래곤볼을 동서양의 문화 융합의 징표로 설명한다든지 하는 부분은 아주 신선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을 수 있었다.

만약 더 궁금하다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나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으면 되겠다.

내 기준으로 사피엔스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고, 총균쇠는 진입장벽이 좀 있어 인내를 필요로 한다.

 

 

 

 

 

 

 

 

 

 

 

 

 

 

 

 

신라와 고려의 문화차이가 수도의 위치때문이라고? 정말???? 

 

4장에서는 동서양의 서로 다른 두개의 문화유전자가 결합된 예를 간단하게 설명하는데 이 때 등장하는 것이 석굴암이다. 사실상 석굴암은 동북아 문화에서 보기 힘든 기하학적 완결성을 보여주는 건축물인데 저자의 논지대로라면 이런 기하학적 완결성의 서양 건축의 특징이다.

저자는 이것을 신라의 수도인 경주가 한반도 남단의 바닷가에 위치해서 대륙에서 오는 문명과 해양에서 오는 문명을 동시에 받을 수 있어서일거라고 추측하는데 이 대목에서부터는 상당힌 난감해진다.

이 시대에 대륙에서 오는 문명과 해양에서 오는 문명이 뚜렷이 구별되었으리라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통일신라의 유물 중에는 로마 교황의 칼이나 사산왕조페르시아의 유리그릇들, 원성왕릉의 아랍인 석인상 등 외래 문물의 영향을 볼 수 있는게 제법 많이 있지만 이것이 육로를 통해 왔을지, 해양을 통해 왔을지는 구분하기 어렵다.

동시에 동쪽 해양으로는 일본 외에는 없는 상황에서 비단길 육로를 통해 오는 상인들이나, 바닷길 해로를 통해 오는 상인이나 사실 그 나물에 그밥이라고 해야 하는게 맞겠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고려에서 석굴암과 같은 서양식 관념의 문화현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수도가 개성이었기 때문에 대륙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던 것으로 설명하는데 이것 역시 문제가 많은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대외무역이 대부분 중국을 거쳐 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통일신라시대는 중국의 왕조가 당나라였고, 당은 외래문화에 대해서 굉장히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당과 교류하던 신라도 그 국제적 감각을 받아들이기가 더 쉬웠던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일것이다.

고려 역시 마찬가지다. 개성이 내륙이라고 하지만 주요 무역항은 벽란도였다. 개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고, 고려는 이곳을 통해 중국과의 무역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경주나 벽란도의 위치가 문화를 받아들이는 종류를 달리할 정도로 큰 차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려시대 중국은 송나라다. 송의 문화는 북방민족의 침입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 상당히 국수주의적으로 변한다. 그를 통해 문화를 수입하던 고려 역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지 않았을까? 중국을 통해 한번 걸러진 문화를 받아들이니 문화의 다양성에서 이전 신라에 비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고 추측하는 것이 역사적으로는 좀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문화의 차이를 수도의 위치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 다음 설명으로 나오는 북한이 대륙문화에 가까워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고, 남한이 해양문화에 가까워 자본주의 국가가 들어섰다는 말은 정말 아니한만 못한 말이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이 좋은 책의 유일한 옥의 티라고 할까? (저자가 개정판을 낸다면 이 부분은 정말 삭제해줬으면 좋겠다. 무식하다고 욕들어먹기 딱 좋다.)

 

 

 

도자기로 보는 문화의 창조와 전파, 융합 - 우리 역사의 안타까운 장면을 들여다보다.

 

5장에서는 삼각돛의 발명으로 공간이 압축되고, 도자기 수출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무역의 등장을 예로 들어 동서양의 문화가 융합되기 시작함을 설명하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다가 역시 옥의 티가 눈에 띈다.

173쪽에 보면 "서양 사람들은 도자기를 만들 수 없었다. 16세기 서양의 그림들을 보면 당시 유럽 귀족들은 금속으로 된 무거운 식기를 사용하고 있었다."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틀린 설명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기와 자기를 구별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쉽게 도자기라고 말하고 사기로 된 그릇을 다 뭉뚱거려서 도자기로 얘기하는데 도기와 자기는 엄연히 다르다.

도기는 보통 1300도 이하의 온도에서 구워낸 그릇을 말하는데 이 때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워내면 토기, 유약을 바르고 구워내면 도기라고 한다.

이 도기는 그리스 시대부터 유럽에서도 만들어졌었다. 그리스의 암포라 같은걸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유럽이 만들지 못했던 건 바로 자기다.

자기는 1300도 이상의 온도에서 유약을 발라 구워내는 그릇으로 도기에 비해 훨씬 단단하고 표면의 광택이 빛나는 그릇이다.

중국 송대에 자기기술이 발명되었고,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청자와 백자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자기를 만든 기술은 당대의 첨단기술이다.

1300도가 넘는 고온에서 그릇을 깨지 않고 구워낼 수 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생산 방법이었을 것이다.

일본이 임진왜란 때 그렇게 조선 자기에 열광하고 조선의 도자기공들을 포로로 끌고 갔던 것은 당시 일본에 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없어서였다.

우리가 고려 때 만들던 것들을 일본은 조선 후기가 되어서야, 그것도 조선에서 끌고간 도공들에 의해서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먼저 했다고 다가 아닌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활판인쇄술이 중국 송에서 최초로 발명되고, 금속활자가 고려에서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 발명되었지만 그것이 르네상스나 종교개혁과 같은 지식의 전파를 통한 사회변혁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오히려 서양에서 활판인쇄술이 사회적 개혁을 이끌어내는 견인차역할을 했던 것은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는가 하는 사회적 조건이 더 중요함을 보여준다.

도자기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는 서양으로 수출되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당대 유럽의 부의 상징은 넒은 픽처레스크 정원에 중국식 정자를 세우고, 그 정자 안에 중국 도자기 티세트를 가득 채워 전시하는 것, 그리고 귀부인들이 중국산 비단 드레스를 입고 중국에서 수입한 차로 만든 홍차를 마시는 오후의 티파티- 영국에서 애프터눈티라고 부르는 그것을 여는 것이었다.

일본의 도자기는 중국의 영향력보다는 약했지만 대신 도자기를 쌌던 종이에 그려졌던 판화 - 우키요에가 서양의 문화계를 강타한다.

서양인들은 중국과 일본 문화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되고, 아마도 이것은 역으로 중국과 일본에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당대 폐쇄적인 문화로 인해 수출이나 무역에 무관심했었던 것이 이런 국제적인 흐름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이후의 문화지체의 한 요인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는 여행을 다닐 때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항상 감탄할 자세를 갖춘 사람인데, 유일하게 감탄하지 않는게 하나 있다.

바로 도자기다.

어느 나라의 도기를 보든 자기를 보든 음 괜찮네 나쁘지 않네 정도 이상의 감탄사가 내 입에서 나오는 경우가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 자기가 세계 최고이기때문이다. 이건 진짜다. ㅎㅎ

평소 박물관 나들이를 자주 하는 덕분에 도자기에 관해서는 약간의 안목이 있는 편이라 생각하는데, 나의 부실한 안목으로 봐도 우리나라의 청자 백자 분청사기를 뛰어넘는 나라는 없었다. 자기 기술의 원조인 중국을 포함해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그리고 전파와 융합을 통과했을 대 문화발전의 시너지가 더 상승한다는 것, 중요한 것은 이것이고 이 책에서 줄곧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서양의 성당이나 궁정 건물에서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서양의 건축 공간은 내부와 외부가 벽으로 확연히 나뉘는 공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안에서 밖을 볼 일이 없으니 건축 디자인을 할 때에도 밖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시점에 더 중점을 두고 디자인하게 된다. 이것이 서양 건축의 입면 디자인이 화려하게 된 이유다. 창문의 비율도 중요하고, 각종 조각으로 건축의 입면을 꾸몄다. 실내에 들어가서도 바라볼 경치가 없기 때문에 그림과 조각으로 실내를 과도하게 꾸몄다. -P74

 

유럽의 교회들을 둘러보다 보면 밖에서 볼 때 위압감, 안에서 볼 때 갑갑함이 공존한다.

아 여기서 쉬고 싶다거나 이곳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은 잘 안든다.

내가 죄가 없을 리 없겠지만 그렇다고 뭐 그리 큰 죄를 지은 것 같지도 않은데, 태어날 때부터 탈탈 털어 죄를 토해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자연과의 어울림을 강조하고 어떻게든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려 하는 한국적 미감에 익숙한 내가 서양의 폐쇄적인 공간에서 느끼는 불편함이다. 이래서 문화적 토양은 중요하다. 나도 모르게 익숙한 공간을 편안하게 느끼고 좋아하니 말이다.

밀라노의 대성당은 정말 아름답다. 앞에 서면 눈이 확 뜨인다. 하지만 오래 보고 있을만하지는 않다.

내부로 들어가면 더하다. 내부 공간이 엄청나게 넓지만 신기하게도 갑갑하다.

밀라노 대성당에서 가장 좋은 곳은 희안하게도 옥상이었다.

옥상 역시 온갖 조각들과 고딕의 부산물인 버팀벽들로 화려했자민 그래도 하늘이 있어 숨통이 트였다.

밀라노 대성당을 보는데 걸린 3시간 정도 중 반을 옥상에서 머물렀다.

 

 

 

성당에서 떨뜨름하던 우리집 애들도 이곳에서만은 신이 났다. (요즘은 이런 사진 올리려면 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초상권자의 허락을 정중하게 받은 사진입니다. ㅎㅎ 처음에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을 보여줬더니 딸이 화냈다.범죄자같다고....)

이 사진의 주인공은 딸이기도 하지만 사실 진짜 주인공은 하늘이다.

한국의 미감에 쩔어있는 나는 이곳 탑들 사이로 하늘이 들어오면서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코르뷔지에, 안도 다다오, 루이스 칸 이들의 공통점은?

 

사실상 6장부터가 이 책의 진짜 본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진짜 내가 사전 지식이 별로 없는 분야라 음음 그렇구나 이런 감탄사를 열심히 뱉어 가면서 읽었다.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된다는 건 언제나 책읽기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결론적으로 서양의 근대 건축은 기술 혁신과 동양 건축 유전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2세대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시작을 연 사람이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르 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다.  - P208

 

건축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 이 두사람은 안나오는 곳이 없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지식들이 있는데, 이 책을 보다 보면 이들이 왜 위대한 건축가로 불리는지 정리가 된다. (그렇다 이 책의 최고의 장점은 일목요연하게 아주 잘 정리된 책이라는 것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서양 건축에 철골이라는 새로운 재료로 기둥식 구조라는 동양 건축공간을 만들어낸다. 내부와 외부의 연결이라는 새로운 건축공간이 서양에서 탄생했다. 르 코르뷔지에 역시 필로티 구조(우리나라에 1층에 주차장을 둔 그 많은 빌라들을 떠올리면 된다.),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을 이야기 하고 건축에 적용하는데 이 역시 동양식 건축 개념이다.

필로티라는건 결국 다른 말로 하면 벽으로 무게를 지탱하는게 아니라 동아시아 건축물처럼 기둥으로 벽을 지탱하는 것이고, 따라서 벽이 건물을 받칠 필요가 없으니 평면과 입면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유리를 통해 외부 공간을 내부로 불러오는 것이다.

사실 미스 반 데어 로에나 르 코르뷔지에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을 보면 뭐가 그리 위대한건지 잘 알아보기 힘들었는데 난 그걸 내가 무식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깨달았다. 내가 무식해서가 아니라 너무 익숙한 구조였기 때문이라는걸.

우와 하고 감탄을 하려면 기존에 전혀 못보던 것이어야 하는데, 이들의 새로운 건축공간은 동양인인 나에게는 그리 새롭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걸 살짝 돌려 서양인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는 아주 경이로운 전환이었을거라는걸 쉽게 짐작할 수 있기도 하다.

 

2차대전후 부흥의 시대를 거치면서 건축이 잠시 국제주의 양식 - 다른 말로 하면 세계 모든 곳에서 똑같은 오로지 효율성과 기능성을 우선적으로 강조한 건축물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시기를 거치고 난 이후 이에 반기를 드는 건축가들이 등장한다. 루이스 칸과 안도 다다오가 대표적이다.

루이스 칸의 건축같은 경우 '소크 연구소'가 워낙에 강렬해서 인상에 남는 건축가였다.

"이 공간에 나무나 잔디 대신에 돌로 포장된 중정을 만드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소크 연구소의 입면으로 하늘을 갖게 될 것입니다."라는 멕시코 건축가 바라간의 조언을 받아들여 만든 소크 연구소의 중정은 사진만으로도 강렬하다.

동시에 이런 공간이 그리 낯설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동양의 여백의 공간이 그 곳에 아주 강렬하게 메워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동양의 여백 공간이 아득함과 깊이를 강조한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루이스 칸의 경우 여기에 더해 강렬함이라는 요소를 더 얹어놓았다.

이 건물은 꼭 직접 보고싶은데 이거 하나를 보자고 텍사스를 가자니 여행지로서 미국이 너무도 안 끌려 고민이다.

언젠가 남미를 간다면 중간 경유지로 들러볼까 희망 중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 철학을 잘 보여주는 말이 이 책에 나온다.

 

"건축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의 존재감을 느끼게끔 해 주는중간 장치다. 중정을 바라보면 그 안에서 자연은 매일 매일 다른 면모를 보여 준다. 중정은 집 안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핵이며 빛, 바람, 비와 같은 자연의 현상을 전달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 P307

 

가장 서양적인 재료인 콘크리를 소재로 노출형태로 사용하는 그의 건물 자체는 지극히 서양적이다.

하지만 그가 만든 건축물은 건물은 일부에 불과하다.

진입로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시작된다.

인공과 자연의 조화로 안도 다다오의 건축관을 요약할 수 있는데, 여기서 자연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란 의미도 있지만, 인공적으로 배치되고 만들어진 자연까지를 포괄한다는데서 안도 다다오의 뛰어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사실상 체험형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설명이나 도면, 사진만 봐서는 그의 건축의 뛰어남을 다 알기가 힘들다.

그가 만들어놓은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익숙함과 낯섬을 동시에 느낄 수가 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 이질적인 감정의 조합이 어디서 유래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안도 다다오에 대한 저자의 평가에 그 답이 나와 있다.

 

그의 건축은 20세기의 대표적인 재료인 콘크리트를 사용하는데, 큰 창문과 복잡한 진입동선으로 적극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자연과 교류한다는 면에서는 동양적인 성격을, 벽 구조를 가지면서 기하학적으로 구획된 평면과 단면을가지고 있다는 면에서는 서양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안도 다다오는 동서양 문화 유전자의 교배를 통해서 새로운 생각을 만들 수 있었다.- P328

 

결국 이 뛰어난 4명의 건축가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해냈다는 것이다.

그 창조의 연원이 무엇인가를 따라가면 결국 서로 다른 생각의 교배와 동서양 건축관의 독창적 조합에 그 연원이 있다.

새로운 생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답이다.

 

현대로 오면 더 이상 공간적 조합의 여지가 남아있지 않다.

세계는 이미 하나로 뭉칠만큼 뭉쳐서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어져버렸다.

그렇다면 새로운 생각은 이제 어디서 오는가?

저자는 그것을 이제 지역이 아니라 학문간의 경계를 뛰어넘는데서 창조의 힘이 나온다고 전망한다.

더불어 디지털이 창조하는 신세계와 어떻게 접합하고 통합하느냐 역시 새로운 화두이다.

그런 시도들은 현대의 건축가들 중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나 동대문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같은 건축가들에게서 어느정도 열매를 맺고 있다.

그들의 건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를 소개한 글도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찔끔거리며 건축에 관한 이런 저런 책을 보았지만 이 책으로 인하여 기존의 내 지식들을 하나로 정리해낼 수 있었다.

훌륭한 스승이 있으면 역시 배움이 깊어진다.

 

 

덧붙이는 글 - 국내에 있는 안도다다오의 건물 중 '뮤지엄 산'에 대하여

 

앞에서 나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체험형 건축이라고 얘기했다.

그걸 절감할 수 있는 건축물이 다행히도 국내에 있다.

제주도에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3개나 있지만,(나는 그 중 1개만 가봤지만)

안도 다다오의 건축관이 아주 잘 반영되어 있는 것은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 안에 있는 '뮤지엄 산'이라고 생각한다.

백양나무 산책로, 조각과 물과 바람이 어우러지는 진입로는 동양적 미적 체험의 공간이다.

미로처럼 돌다보면 도대체 구조를 짐작하기 어려운 건물 내부는 다양한 외부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여 실제보다 훨씬 넓은 공간을 돌아다닌 듯한 느낌을 준다.

전시물마다 다르게 빛을 끌어들인 면 역시 예사롭지 않다.

미술관을 나와 제임스 터렐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는 아 여기가 경주인가 싶은 고분군을 형상화한 정원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이 미술관의 유일한 단점은 미술관 아래로 골프장이 풍경으로 들어오는거다. ㅠ.ㅠ)

이 책에 소개 된 물의 교회나 바람의 교회는 당분간 가기 힘들테지만, 뮤지엄 산은 특히 수도권에 계신 분들이라면 하루 나들이로 충분히 다녀올만한 곳이다. 강력 추천한다.

아 그리고 기왕 뮤지엄 산을 간다면 또하나 강력 추천하는게 제임스 터렐관 전시 관람이다.

이름도 생소한 이 사람은 설치미술가 또는 대지미술가라고 분류할 수 있는데 전시 작품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여기까지 가서 제임스 터렐을 안본다는건 말이 되지 않는다.

난 설치미술이나 대지미술에 관심도 없고 뭘 모르겠더라라는 사람이 대부분일거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이곳 제임스터렐의 설치 미술은 좀 다르다.

역시 일종의 체험형 미술인데 뭣도 몰라도 즐겁게 느낄 수 있다.

내가 여기 데려갔던 사람중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도 좋아한다. 너무 어린 아이들 말고 초등학생 이상 정도면 즐겁고 신기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진짜로...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이곳의 관람료가 만만치 않아서이다.

뮤지엄 산의 입장료가 19,000원으로 엄청 비싼데,  제임스 터렐관 입장료는 따로 내야 한다. 무려 16,000원이나 더....

합계 입장료가 35,000원이다. 미취학 아동은 무료고, 학생은 30%정도 할인해준다.

그래도 비싸긴 하다. 하지만 제임스 터렐관이고 미술관이고 들어갈 때는 돈 생각이 나지만 나올 때는 돈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보장한다.

 

내가 찍은 사진 중에는 이곳을 제대로 표현한 사진이 별로 없다.

그나마 건질만한건 요정도인데 뮤지엄 산의 홈페이지 들어가면 훌륭한 사진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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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05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이 직접 발로 뛰며 찍으신 사진이 더멋지네요.제임스 터렐 와이프가 한국인여서 한국에 미술관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하네요. 저는 구겐하임하고 휘트니에서 열렸던 회고전 정말 인상 깊었는데 이분 작품은 전혀 정보 없이 가야 더 감동적인것 같아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바람돌이 2021-01-05 23:46   좋아요 1 | URL
아... 제임스 터렐의 부인이 한국인인건 처음 알았네요. 국제적인 스콧님 부러워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은 정보없이 가야하는거 맞아요. 그래서 저도 저 글에 강력추천하면서도 전시 내용이나 이런건 하나도 안쓴거구요. ^^

cyrus 2021-01-05 2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에 따님의 모습이 있는 사진을 보면서 검은색이 따님 머리카락으로 생각했어요. 바람돌이님이 따님 얼굴을 가린다고 검은색으로 처리한 거 맞죠? ^^;;

바람돌이 2021-01-05 23:48   좋아요 1 | URL
엇 검은색 딸 머리카락 맞는데요. 저 사진은 아무것도 처리하지 않은 사진이예요. 이날 옥상이고 바람이 좀 불었었거든요. 제 뽀샾능력이 저정도만 되도 울 딸이 제가 모자이크 처리한걸 거부하지 않았을걸요. ㅎㅎ

mini74 2021-01-05 2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뮤지엄 산. 너무 가고 싶어요 *^^* 저도 사실 이 책을 읽다가 덮었다가 다시 또 읽다가 덮다가 반복중입니다. 뭔가 거슬리고 찝찝해서 다시 총균쇠를 들었다가( 이 책이 한국의 총균쇠? 저자도 총균쇠 인용이 많아서요 ㅠㅠ) 바람돌이님 글 읽으니 어떻게든 다시 읽어내겠다는 의지가 생깁니다.~

바람돌이 2021-01-05 23:52   좋아요 2 | URL
뮤지엄 산은 찾아보니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휴관중이네요. 미술관이 어디 가는거 아니니 상황이 좋아지면 언제든 갈수 있겠죠. 안의 전시도 그때 그때 다르겠지만 제가 갔을 때는 첫번째는 별로였고, 두번째는 좋았어요. 건축만으로도 여긴 충분히 가볼만해요.
이 책을 한국의 총균쇠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연구의 스케일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달까? 이 책은 연구서라기보다는 기존의 연구성과들을 굉장히 잘 정리하고 설명해주는 친절한 책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mini74 2021-01-05 23:54   좋아요 2 | URL
출판사에서 이 책을 한국의 총균쇠 라고 ㅠㅠ 선전 하더군요 좀 과하죠 ㅎㅎ

바람돌이 2021-01-06 00:50   좋아요 1 | URL
광고란 정말.... 과하다에 한표 던집니다. 아마 저자님도 같이 한표 던질듯한데요. ^^

라로 2021-01-06 00: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캬!! 따님 사진 예술이에요!!! 따님 입은 옷이랑, 하늘이랑, 두 탑이 양쪽으로 대칭을 이수는 것 하며, 따님의 표정까지!!! 작품으로 어디 출품해보세요 ~~~!!👍

바람돌이 2021-01-06 00:52   좋아요 1 | URL
저 옷 중에 위에 분홍색 스웨터는 제옷입니다. 이 때 너무 추워서 얼어죽을뻔해서 현지 조달로 사입은거였는데 녀석이 뺏어 입은거였어요. ㅠ.ㅠ 출품은 무슨.... 여기서 칭찬받으면 그게 저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

psyche 2021-01-06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사진이 예술이네요! 너무 멋져요
그리고 도기와 자기에 대한 설명 감사합니다. 저 두개가 다른 건지 몰랐어요.
말씀하신 뮤지엄의 산은 한국에 가면 꼭 가봐야겠네요. 언제가 되어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ㅜㅜ

scott 2021-01-06 09:46   좋아요 0 | URL
프쉬케님 진짜 사진 잘찍으셨죠
저도 페이퍼 보면서 구도와 각도에 놀람!

바람돌이 2021-01-06 13:35   좋아요 0 | URL
완전 완전 칭찬 감사합니다. 근데 한 천장쯤 찍으면 저런 사진 하나 나옵니다. 우연히 얻어걸리는거지요. ㅎㅎ

scott 2021-02-10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멋진 사진이 들어간 리뷰 이달의 당선작!
2관왕 ㅋㅋㅋ
추카~*추카~*
설연휴 가족 모두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0^

바람돌이 2021-02-10 23:45   좋아요 1 | URL
scott 님도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상금이 들어오면 항상 책을 사는데 상금보다 더 들더라구요. ㅎㅎ
scott 님도 설연휴 가족분들과 행복하게 보내시고 새해 복도 듬뿍 받으세요.
 

개인적으로 2020년을 평가하라면 평범해서 고마웠던 늘 있어왔던 그런해?

남에게 욕먹지 않고 내 할 일 열심히 하면서 살았고,

남편과는 늘 투닥거리지만 아직 이혼할 생각은 안드는 가장 친한 나의 반쪽이고,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 모두 별일없이 그렇게 살아줘서 다들 고맙고,

연말에 마음아프고 부당한 일을 당한 지인에게 충분히 도움을 못줘서, 해줄 수 있는게 얼마 없어서 속이 좀 많이 상했었고....

그리고 올 한 해를 지배한 코로나는

이런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유리바닥위의 삶인지, 위기는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서 이런 평범한 생활을 깰 수 있다는 걸 절감하게 한 한해였고....

 

새해 계획이라고 거창한 뭔가를 세우지 않은지 오래됐다.

평범함을 유지하는게 얼마나 힘든지를 알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가족들과 앉아서 그냥 케익하나 올려놓고 와인 한병을 땄더니 큰 딸은 난 와인 싫어 맥주를 꺼내고, 미성년자 둘째는 난 술 싫어 콜라를 꺼낸다. 다들 입맛대로 맛나게 먹으면서 새해 계획? 별거 없다. ㅎㅎ

 

나 홀로 거창하게 얘기했다.

초딩님 말처럼 약속도 없고 누구 만날일도 없고 여행갈 일은 더더욱 없고.....

새해 전체는 모르겠고 이번 1월 방학동안 난 30권의 책을 읽을거야!!!

근데 가족들 반응이 응원 격려 이런거 하나도 없고,

헉 우리 밥은? 엄마가 30권 볼려면 밥은 못먹겠네라며 셋 다 뜨악한 표정이라니!

 

아니 당연히 책보다 밥이지.

설마 밥을 안하려고? 나도 먹어야 책을 보지. 인간들아-(우리집은 철저한 가사분업화를 일찍이 이룬 관계로 밥은 오로지 나의 임무다. 가끔 아이들이나 남편이 라면은 끓인다. 아니 라면만 끓인다)

 

어쨌든 1월에 우선적으로 볼 책을 쌓아놓고 뿌듯해하고 있는 중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있고, 산 책도 있고(책은 안산다 안산다 하면서도 결국 제법 샀다. 어쩔수 없나?)

이렇게 찍어놓고 보니까 도대체 기준이 뭔지 나도 모르겠지만 뭐 어차피 나는 잡식성이니까 뭐.... ㅎㅎ

20권의 책을 우선 정했고, 저기에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보탤 예정이다.

예전에  5부까지 보고 멈췄었는데(너무 긴 호흡을 필요로 했다. 5부까지 15권), 이번 1월에 6부와 7부를 마저 보고 마스터 할 예정

 

 

 

 

 

 

 

 

 

 

 

 

 

 

나머지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몇권이 들어가지 싶다.

 

책을 읽을 계획은 계획만으로 뿌듯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심지어 쌓인 책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볼때마다 뿌듯하다는...

 

ps 앗 빼먹었다. 또 중요한 목표

열심히 운동해서 살을 5kg만 딱 5kg만 빼는거다.

5kg 빼봤자 나는 여전히 똥똥하지만, 경험상 저 5kg만 빼면 허리통증과 다리 통증이 없어진다.

열심히 홈트레이닝하다가 11월 12월 바빠지면서 쉬었더니 또 허리가 아프기 시작. ㅠ.ㅠ

올해는 꾸준히 운동해서 12월쯤이 되면 5kg을 빼고 말리라. (5kg 빼는데 무슨 1년이냐 하실 분들도 많겠지만 절대 다이어트를 못하는-먹는게 너무 행복해서- 나에겐 다이어트 없이 저 몸무게를 빼는건 1년이 걸린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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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1-02 1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뿌듯해집니다. 책은 쌓아놓고 뿌듯해지라고 사는 거지요 ㅎㅎ 즐독하세요 ~저는 간단하게 점심은 떡국 떡만둣국 떡라면으로 돌려막기 할 예정입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1-01-02 16:15   좋아요 1 | URL
악 저도 오늘 점심 때 떡만둣국 끓여 먹었는데.... 겨울에는 역시 떡국이 최고의 간편식품이죠. ㅎㅎ

막시무스 2021-01-02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밥한끼쯤 안 드신다고 큰 일 나는것도 아니잖아요!ㅎ 라면만 먹어도 좋아요! 꼭 목표달성 하시길 응원합니다! 화이팅!

바람돌이 2021-01-02 16:31   좋아요 2 | URL
막시무스님 댓글을 저희집 식충이들에게 꼭 전하겠습니다하다가 밥은 저도 먹어야해서... ㅎㅎ

stella.K 2021-01-02 16: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성한 따님이 계셨군요.
열심히 사신 느낌이 팍팍 듭니다.
열심히 일한 후의 휴식은 정말 꿀맛이죠.
그런데 정말 저렇게 많은 책을 한 달 동안 다 읽으시나요?
저에겐 거의 부지런히 읽는다면 반년치에 해당합니다.ㅠ
암튼 즐독하십시오.^^

바람돌이 2021-01-02 16:37   좋아요 2 | URL
작년에 대학 들어간 20살짜리 -아 이제 새해니 21살짜리가 첫째예요.
1월은 방학이라 한번 도전해볼려구요.
저의 결심은 항상 하다 안되면 되는데까지만이라 다 못읽어도 별로 실망안해요. ㅎㅎ
그런 너무 간단하게 2월로 넘기면 되니까요. ㅎㅎ

scott 2021-01-02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콜린 읽기전에 영상으로 먼저 추천! 바람돌이님 이럴때 배달의 민족은 앱을 켭니다.아! 보부아르책이 저리 두껍다니 도전이 망설여지는 1人

바람돌이 2021-01-02 16:40   좋아요 1 | URL
마스터스 오브 로마가 영상도 있나요?
배민은 항상 애용합니다. ㅎㅎ
레 망다랭은 사놓고도 두께 때문에 미리 겁먹었으니 올 1월 도전해볼만하지요? ㅎㅎ 제생각에 이번 1월에 안 읽으면 못읽지 싶습니다. ^^

scott 2021-01-0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넷플릭스에 있어요 이거 보고 활자로 읽으면 재미 두배 다른 책은 눈에 안들어오실지 몰라요 ㅋㅋㅋ

바람돌이 2021-01-02 17:02   좋아요 1 | URL
넷플릭스 뒤졌는데 못찾겠어요. 로마제국 말씀하시는건가요?

얄라알라 2021-01-02 16: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2020년, 알라딘 서재에서 다른 분들 쌓아놓고 읽으시는 책 보며 덩달아 배불러하고 덜 외로워하며 2020년 보냈네요. 1월에 읽으실 책들이 압박스럽지만 바람돌이님 다 읽으시리라^^ 리뷰 읽으러 간혹 놀러오겠습니다.

바람돌이 2021-01-02 17: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응원만으로 배가 불러요. ㅎㅎ 책을 읽고 항상 리뷰를 쓰자 다짐하지만 그건 책읽는것보다 더 어렵더라구요. ^^ 하지만 결심만은 불끈입니다. ^^

scott 2021-01-02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master of rome (다큐드라마2016년도 시즌12019시즌 3 칼리큘라까지) 시즌 3까지 나왔는데 혹시 못찾으시면 Ancient Rome: The Rise and Fall of an Empire 2006년도 작품이에요

바람돌이 2021-01-02 17:12   좋아요 1 | URL
아 찾았어요. 로마제국이라는 이름이 맞네요. 이 책하고는 시기가 안맞는것 같네요. 콜린의 책은 마리우스 술라를 거쳐 로마의 공화정이 무너져 가는 마지막 시기를 대상으로 하는데 드라마는 제정시대와 카이사르의 시대가 섞여 있네요. 그래도 재밋을것 같아요. 아 영상까지 보면 독서계획에 지장 생기는데 그래도 올 겨울에 꼭 챙겨볼게요. 좋은 드라마도 추천해주시고 감사합니다. ^^

쎄인트saint 2021-01-02 17: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문동꺼를 초이스하셨군요...
다른 출판사꺼는 안 읽어봐서 모르지만...
가독성이 좋았던 기억이...
아마도 번역이 잘 된 듯 싶습니다.

바람돌이 2021-01-02 17:14   좋아요 1 | URL
번역의 문제를 논할정도의 내공이 안되는지라 왠만하면 괜찮겠지 하고요. 그리고 대충 살펴보니 쎄인트님 말대로 가독성이 좋다는 말이 참고가 됐습니다. 제일 중요한건 표지예요. 저 문동 전집 표지 매니아입니다. ㅎㅎ

초딩 2021-01-02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반가운 책들이 많네요~~~ 공간이 만든 공간도 저도 곧 읽으려해요 :-)

바람돌이 2021-01-02 23:07   좋아요 1 | URL
공간이 만든 공간은 지금 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책장이 잘 넘어가요. 보기에는 진입장벽이 있을 듯하더니 아니네요.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초딩 2021-01-02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믿고 보는 문동으로 읽었는데 번역이 정말 감칠맛 났는데
약간 우월함을 비교하려고 민음사도 같은 곳 찾아봤는데 .... 흐 민음도 나쁘지 않았어요 ㅎㅎㅎ
허밍웨이도 러시아 문학 볼 때 번역을 엄청 탔다고 하는데, 번역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울나라 러시어 문학 번역하시는 분들 교수님들은 정말 대단 한 것 같아요 존경~

바람돌이 2021-01-02 23:09   좋아요 1 | URL
같은 책을 번역따라 보는 내공은 정말 제가 따라할 수 없는 경지네요. ㅎㅎ 번역도 예술의 영역이 맞다고 생각해요. 좋은 번역자가 많이 나와서 저처럼 외국어라면 질색하는 사람들에게도 외국작품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항상 기원합니다. ^^

수이 2021-01-02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해서 5키로 감량하기! 이거 저도 할래요 바람돌이님, 안 그래도 허리 아파서 고생하고 있어요. 우리 5키로 빼고 2021년 12월에 목표 하나 이루었다! 이거 페이퍼로 쓰면 어떨까요?! 하고 또 새해 소망 하나를 플러스해봅니다! 새해 인사가 늦었는데 아직 며칠 안 지났으니까 ^^;; 새해 항상 건강하시고 원하는 일 가능하면 많이많이 이루시기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1-01-02 23:12   좋아요 0 | URL
나이가 들면서 운동은 이제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라는 느낌이 점점 많이 들어요. 운동하는 동안은 안 아프거든요. 근데 멈추고 몇달 지나면 점점 아픈 부위가 늘어나요. 고통이 온몸을 타고 번져가는 느낌? 수연님이랑 저랑 12월 연말결산 페이퍼에 꼭 5kg줄였다고 쓰자구요. 우리 같이 화이팅해요. ^^ 수연님도 늘 건강하시고 새해 복도 듬뿍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chika 2021-01-03 0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녁 간식을 안했더니 반년에 5키로 감량되더군요. 물론 운동도 했어요. 그래도 여전히 뚱뚱합니다만. ㅎ
전 원래 저녁에 엄청 때려먹고 과자도 많이 먹었었거든요.
건강을 위한 살빼기는 성공을 기원합니다!

마스터스오브로마 시리즈는 새로 시작할때마다 처음부터, 그래서 늘 제자리같아요. 올해 목표중 하나가 로마읽기인데..자극 좀 받고 갑니다요 ㅎ

바람돌이 2021-01-05 00:47   좋아요 0 | URL
아 저녁간식! 저같은 올빼미족에게는 운동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게 밤간식 끊는거예요. 저녁을 제가 6시쯤에 먹거든요. 둘째 학원시간에 맞춰서... 그럼 11시 12시쯤 되면 정말 배가 고파서 잠을 잘수가 없어요. 꼭 뭐라도 먹게 되요. 그래서 살이 안빠진다는거러 알지만.... 아는 것과 실천이 꼭 일치할 수 없다는 걸 요 사소한데서 깨닫습니다. 사실 지금도 구운계란 주워먹고 있어요. ㅎㅎ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올해 완독 기원보냅니다. ㅎㅎ 더불어 저도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1-01-03 0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고 계시죠?
남은 복도 말끔하게 담으시길요^^
와인 싫어~맥주가 좋아!!! 벌써 커버린 큰딸ㅋㅋㅋ 여전히 콜라 찾는 귀여운 둘째!!!!
저희집도 작년 12월부터 분위기가 확 바뀌었어요.
크리스마스때 식구들 간식 먹으면서 큰애랑 맥주를 마셨는데 우리 부부보다 더 술이 쎈걸 보고 우와!!!!! 했네요ㅋㅋㅋ

올 한 해 세우신 목표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저희집은 저는 뱃살 옆구리살을 빼기, 울집 남편은 한 달에 1키로씩???!!!!! 빼는 게 목표이긴한데....살과의 전쟁은 코로나가 끝나야 하는 건가? 핑계를 대곤 하네요ㅋㅋ
콜린 매컬로의 로마 시리즈는 저에게도 늘 숙제? 같은 책이네요....바람돌이님의 완독을 대신 응원합니다!!!

늘 가정에 건강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1-01-05 01:06   좋아요 1 | URL
집에서 먹고 자고 책보고 있으니 복이 온것 같습니다. ㅎㅎ
아이들이 정말 어느샌가 부쩍 자랐죠? 가끔씩 전 아이들한테 너네가 어렸을 땐 예쁘기만 했는데 지금은 왜 이러냐 하면서 시비를 걸어요. 밉상일 때도 많거든요. ㅎㅎ

책나무님도 올해 세우신 목표 다 이루시고 가족들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같이 로마시리즈도 완독해보아요. 저한테 좀 유리한 거같긴 하네요. 저는 마지막 6권만 남았으니... ^^;;
 

격하게 일하기 싫다.

알라딘과 읽은책과 읽고 있는 또는 지금 격하게 읽고 싶은 그리고 저 책들 밑에 수북이 쌓여있는 일더미!!

2개월을 미친듯이 몰아치며 일을 했는데 지금 딱 이틀 남았다.

저 a4용지 더미들만 해결하면 나에게는 2개월의 게으름을 만끽할 수 있는 날들이 온다.

그런데 그 이틀이 딱 이틀이 미치겠다. 아 정말 격하게 일하기 싫다.

 

11월과 12월은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바쁜 날들로, 퇴근해오는 순간 번아웃상태!

갈수록 지능은 떨어져 가는데 책임을 져야 하는 일들은 늘어나고, 이것의 결과는 늘어나는 흰머리와 두통이다.

하루종일 오늘 중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을 계속 머리속에서 굴리면서 다니면 정말 퇴근할 때쯤에는 두통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과 몇가닥 더 늘어난 흰머리를 볼 수 있다.

일상의 스트레스가 상징적인 의미가 아닌 물리적인 신체적 변화로 그대로 나타나는 걸 보는건 아직도 좀 경이롭다.

아! 몸의 늙음이여!

물론 기분은 나쁘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얼죽아의 자세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으며 새 책을 잠시 집었다.

아. 제대로 읽겠다는게 아니라 그냥 커피마시면서 어떤 책인지 훑어보기만 하겠다고 말이다.

 

 

 

 

 

 

 

 

 

 

 

 

 

 

 

그냥 별 생각없이 제목이 끌려서 집어든 책이다.

그런데 첫페이지가 너무 강렬하다.

 

일주일째 눈이다나는 창가에서 밤을 바라보고 추위의 소리를 듣는다이곳의 추위에는 소리가 있다아주 특별하고 기분 나쁜 소리건물이 얼음 속에 끼어 짜부라지면서 끙끙대고 삐걱대는가 싶을 정도로 불안한 신음을 토해낸다 시각 교도소는 잠들어 있다여기서 한동안 지내다보면  건물의 신진대사에 익숙해져 어둠속에서 교도소가 거대한 짐승처럼 숨을 쉬고간간이 기침을 하고뭔가를 꿀꺽 삼키는 소리까지 들을  있다교도소는 우리를 집어삼키고 소화한다우리는 그의  속에 웅크린 채 번호가 매겨진 주름들 속에 숨고 위장의 경련들 사이에서잠을 청한다그저   있는 대로 살아간다.- P11

 

문장이 너무 좋다. 이 책 뭐야?

나의 지금 정신상태와 몸 상태를 표현하는듯.... 홀린듯 한 챕트를 다 읽었는데... 계속 읽고 싶잖아.

난 프랑스 소설이 좋았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아 정말 격하게 읽고 싶다.

그러나 저 일더미는 어쩌지? 너 잠시 제발 내 눈에 안띄는 곳으로 가줘라.

 

사람마다 독서스타일이라는게 있는데 나의 경우 특별한 건 없고, 그냥 한꺼번에 여러 책을 보지 않는다는 것.

보고 있는 책을 끝내지 않으면 다른 책을 시작하지 않는다.

무지하게 마음에 안드는 책이 아닌 이상 시작한 책은 끝까지 읽는다.

그런데.....

 

 

 

 

 

 

 

 

 

 

 

 

 

리베카 솔닛의 <마음의 발걸음>을 3분의 1쯤 읽다가 던져놓았다.

책이 마음에 안들어서?

그럴리가?

너무 좋은데 나의 정신상태가 이 책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매일마다 지끈거리는 두통을 안고 와서 각잡고 앉아 정독하고, 인터넷 검색을 수시로 하며 아 이건 어디지? 이 사건은 뭐지? 찾아가며 성실하고도 경건한 자세로 읽어야 하는 이 책은 지난 2달간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책이었다.

기다려라. 1월만 되면 내가 처음부터 다시 너를 읽어주마.

물론 지금 이 일더미를 끝내고 나서....

 

그래서 피곤의 정점에서 완독한 책은 바로 이 책. <여행 준비의 기술>이다.

 

 

 

 

 

 

 

 

 

 

 

 

 

 

 

이 책은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릴 것 같다.

저자와 코드가 맞는 이들에겐 우와 이럴수가 나의 바이블이야를 외칠 수 있게 해준다면,

맞지 않는 이에겐 그냥 시시껄렁한 책이다.

제목은 여행 준비의 기술이라고 해놓고 실제로 기술은 얼마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고 준비하는걸 더 좋아하는 사람에겐,

"아 맞아! 그렇고 말고, 내가 별종이 아니었네" 이러면서 낄낄거리며 무한 반복되는 동의를 내뱉으며 읽게 된다.

읽다 보면 내가 약간 바보 분위기를 풍기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취미가 여행준비라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작가가 자신의 취미를 자각했듯이....

여행을 격하게 좋아하지만 취미라고 말하기에는 여행의 기회가 많지 않다.

나의 경우 국내는 이제 안가본곳 핀 꽂을데가 별로 없으므로, 국내 여행은 여행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나들이라고 한다.

특별히 뭔가를 볼 목적으로 가기보다는 그냥 코에 바람 좀 쐬자라는 기분으로 다니는게 대부분.

여행이란 말의 설렘을 느끼는건 이젠 해외여행이다.

하지만 해외여행은 항상 돈과 시간이 문제다.

거기다 우리집은 모두가 여행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사람들이라 가족 4명이 움직이는건 그야말로 돈을 뿌리고 다니는것.

따라서 1주일 이내의 짧은 여행일때는 일년에 2번, 10일 내외의 여행일 때는 1년에 1번, 지난 이탈리아 여행처럼 4식구가 한달을 노닐다 오면 2년간은 꼼짝없이 돈을 모아야 한다.

이 정도를 가지고 여행이 취미라고 하기에는 좀 많이 모자란다.

 

하지만 여행 준비는 다르다.

나의 경우 여행을 다녀오면 바로 다음 여행을 준비한다.그러므로 보통 준비기간이 짧으면 6개월에서 2년까지 간다.

큰 목적지를 정하고, 가이드북을 몇 권 사서 어디 어디를 갈 것이며 며칠 정도의 일정으로 갈지를 정한다.

그리고 최소 6개월에서 1년 전에 비행기표를 예약한다. 싸고 괜찮은 항공티켓 구매의 노하우를 제법 쌓았다.

비행기표를 티켓팅하고 나면 그 때부터는 진짜 여행을 떠난 듯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싸고 괜찮은 숙소를 찾아 예약하고, 현지 교통편을 찾고, 어떻게 하면 더 싸게 이용할 수 있는지도 찾고,

예약하기 어려운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하듯이 시계 맞춰놓고 사이트 들어가서 광클릭하고....

이런 과정이 엄두가 안나서 자유여행을 안가는 사람이 많지만,

내게는 이 과정이 모두 희열이다. 너무 즐겁다.

유럽의 고속열차의 1등석 티켓을 일반석 가격도 안되는 돈으로 예약에 성공했을 때라든가,

진짜 예약이 장난 아닌 밀라노의 최후의 만찬 관람 티켓팅에 성공했을 때 같은 경우

오우 나의 훌륭함이여! 자만심이 만랩에 도달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 혼자서 너무 즐겁다.

여행 준비기간동안 여행지 관련 책이라면 가이드북이든, 여행 에세이든, 학술서든 필요한 책은 거의 다 읽는다.

인터넷 서핑과 구글 지도, 관련 카페가입과 활동은 기본이다.

여행에 이렇게 공들이는 사람을 일단 내 주변에서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취향은 다양했으니 <여행 준비의 기술>를 쓰는 이 책의 저자가 바로 나같은 사람이었던것이다.

 

물론 이렇게 가는 여행 스타일이 모두에게 맞는 건 아닐거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그렇게 미리 다 보고 알고 가면 실제로 가서 실망하지 않냐고 한다.

하지만 준비는 눈과 머리로 하는 것이고, 실제 여행은 몸 전체가 하는 것이다.

내 몸의 오감이 모두 열려 몸으로 하는 체험은 정말 다르다.

그래서 여행을 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도 이제 당당하게 나의 취미는 여행 준비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다 이 책의 저자 덕분이다.

나의 여가시간 대부분을 쏟아붓는게 여행준비인데 암 말할 수 있고말고....

 

그나저나 일하기 싫으니까 말도 많아진다.

음 이제 다시 일로 돌아갈 시간이다.

새벽 2시정도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내일로.... 내일 저녁에도 아마 나는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이 책과 일더미 사이에서 갈등과 고민을 하기는 뭘 한다고... 내일은 무조건 끝내야 하는데..... 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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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12-30 0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하기 좋지 않을 때 유독 책에 선이 많이 가네여 ㅎㅎ
아 근데 진짜 이틀 ㅜㅜ 남았네요

바람돌이 2020-12-30 00:32   좋아요 2 | URL
일하기 싫을 때는 평소 별 관심이 없던 것도 좋아지죠. ㅎㅎ
예년 같으면 지금쯤 술약속도 몇 개쯤 잡혀있고, 새해맞이 나들이도 계획하고 이럴텐데 올해는 그냥 집콕이네요. 그래서인지 별로 새해 기분은 안나지만 그래도 초딩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그냥 올해는 개개인의 복을 조금씩 다 떼서 코로나나 빨리 잡혔으면 저절로 행복해질듯도 해요.

초딩 2020-12-30 01:07   좋아요 2 | URL
ㅜㅜ 약속도 없고 맨날 가던 수영도 못 가고
그래서 폭풍 줄넘기 중입니다.
코로나를 원망하며 뜁니다

바람돌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바람돌이 2020-12-30 02:12   좋아요 2 | URL
초딩님의 저 약속도 없고라는 말이 마음에 팍 박히네요.
그러게요. 약속도 없네요. ㅠ.ㅠ

라로 2020-12-30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이 젠장의 연속 같아요. 그래도 일하기 싫으신 덕분에 오랜만에 바람돌이 님 글을 읽네요!!👍😅

바람돌이 2020-12-30 20:31   좋아요 0 | URL
일하기 싫을 땐 뭐든지 왜 다 재밌을까요? 미스테리... ㅎㅎ

mini74 2020-12-30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올해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아이입시 치르면서 선생님들 얼마나 고생 많으신지, 그리고 아이들 합격 불합격 여부에 따라 같이 맘고생 하시는 거 보면서 정말 고마웠어요. 그리고 여행준비 모습이 저희 아버지랑 비슷하세요. 저흰 군사훈련 간다고 ㅎㅎ 그런데 정말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푹 쉬시고 곧 멋진 여행 떠나실 수 있길 바랍니다 *^^*

바람돌이 2020-12-30 20:33   좋아요 1 | URL
mini74님댁도 올해 힘들었겠군요. 코로나로 변수가 너무 많은 해였는데 입시를 치르는게 원래 있던 고생에 다른 마음 고생 몸고생까지 겹쳤을 것 같군요. 부디 내년에는 상황이 좋아지길 우리 모두 빌어요. 집에서 빌어야 한다는게 함정이지만요. ^^ 전 정말 여름 되기 전에 마스크 벗을 수 있기를 간절히 빌고 있어요. ^^

stella.K 2020-12-30 15: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염색해야하는데 딱히 누구 만날 일도 없고
추운데 무슨 염색을 하나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해야하는데...
페이퍼 읽으니까 바람돌이님의 피곤함이 격하게 느껴집니다.
1월 얼마 안 남았으니 쫌만 힘내시기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0-12-30 20:34   좋아요 0 | URL
아 염색. 저도 하고 싶어요. 근데 지금 저희 동네는 미장원 가기도 좀 머뭇거려지는 형편이에요. 아 정말 흰머리 어쩔까요? ㅎㅎ 전 오늘 밤 12시까지 다 끝내고 내일 저녁에는 자유를 찾고야 말거예요. ㅎㅎ

stella.K 2020-12-30 20:51   좋아요 0 | URL
저는 집에서 하는데요?
물론 완벽한 건 아니지만 요즘은 혼자서도 염색할 수 있도록
제품이 잘 나와있어요. 마트에 가면 염색약 코너가 따로 있잖아요.
집에서 하세요.^^

내일 저녁에 꼭 자유를 탈환하시기 바랍니다.ㅋ

초딩 2020-12-30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약속도 없고’
에 이어
‘누굴 만날 일도 없고’
이어집니다~!

바람돌이 2020-12-30 20:35   좋아요 0 | URL
갈수록 더 슬프군요. ㅎㅎ

scott 2020-12-3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2021년 복주머니 하나 놓고 가여 ㅋㅋ

해피뉴이어 !

\-----/
/~~~~~\ 2021년
| 福마뉘ㅣ
\______/

바람돌이 2021-01-02 15: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너무 늦게 받았네요. 하지만 scott님 복주머니는 영험할테니 오래오래 효과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 scott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가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 중 약간 난감해지는 게 딱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람돌이씨는 집에 가면 뭐해?"란 질문이다.

 

이 질문이 나오는 건 항상 전날의 TV프로그램 얘기를 하는 중일 경우인데, 문제는 내가 TV를 보지 않는다는 거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같이 점심을 먹거나, 잠시 틈을 내어 수다를 떨 때 화제의 90% 이상은 항상 TV 드라마거나, 예능이거나, 뉴스거나, 스포츠거나 어쨌든 TV다. 역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건 당연히 드라마고.....

매일 얼굴 보고 사는 사람들한테 매일 아 못봤어요. 안봤어요라고 하다보면

결국 저 질문 "넌 집에 가서 도대체 뭐하고 노냐"라는 질문이 나오는거다.

 

대답이야 "저는 집에 가면 쉬는 시간에 책봐요."인데........

문제는 이렇게 대답할 때 사람들의 대응이 참 묘하다는 거다.

"하루종일 일하고 피곤한데 집에 가서 책이 봐지니?", "tv드라마 그 재밌는걸 어떻게 안보니?" "너 참 훌륭하구나." "우와! 대단하다" 등등 여기까지는 그래도 긍정적인 반응이고, 가끔은 "집에 가서까지 책 읽으려면 머리 안아파?" 내지는 약간은 아니꼽다는 표정도 있다. 진짜로..... ㅎㅎ

 

여기서 긍정이든 부정이든 저  모든 반응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퇴근 후 책을 읽는 행위가 휴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가 tv드라마를 안 보는 것은 뭔가 대단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다.

나도 한 때는 tv드라마 빠순이였다. 한국 드라마 뿐만 아니라 일드와 미드까지 손을 뻗친 적도 있었다.

다만 어느 날 그 드라마와 예능 프로들이 그냥 재미없어진 것 뿐이다.

 tv가 시시해진 순간, 이전 tv와 책이 나눠가지던 나의 시간을 온통 책이 차지한 것 뿐이다.

 

 

 드라마보다 재밌는 책은 너무 많다.

책을 읽는 것은 특별히 고상한 행위가 아니며, 뭔가를 결심하고 각잡고 해야 하는 행위도 아니다.

공부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고 즐거워서 책을 읽는 일이 내게는 훨씬 많다.

책을 통해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도 좋고, 내 주변의 인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도 좋고, 나에게 다른 생각과 시선을 알려주는 것도 신선해서 좋다.

재미없는 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앞부분 30여페이지만 보면 판가름 난다. 그냥 구석으로 슬쩍 밀쳐놓으면 된다.

아무도 나에게 그 책을 읽지 않는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최근에 읽은 책 중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잠을 못자고 새벽까지 나를 붙잡고 있었던 이야기들.

결국 이 글은 이 책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거였는데 하다보니 쓸데없는 서론만 잔뜩인 글이 되어 버렸다.

 

 

 

 

 

 

 

 

 

 

 

 

 

 

 

스티븐 킹의 신작 <인스티튜트 1, 2>

킹 아저씨는 정말 재미난 이야기꾼이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전 세계가 인정하는게 맞을 거다.

그렇지 않다면 이 아저씨가 이렇게 오랫동안 나오는 책마다 화제가 될 리가 없을테니까....

요 근래에는 킹아저씨의 책 중  탐정 빌호지스 시리즈와 느닷없는 휴먼 소설 <고도에서>를 봤는데, 약간은 아 이건 킹아저씨가 아니야?

왜  외도를 하세요. 제발 제일 잘하는걸 해주세요라고 빌기도 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책 <인스티튜트>가 나왔다.

기관 단체 학회의 뜻을 가지는 이 단어는 말 그대로 이 소설 속 악의 축인 어떤 기관을 가리킨다.

이 기관 또는 학회에서는 약간의 초능력을 가진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서 그들을 훈련시키고 정치적 내지는 모종의 목적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한다. 주인공격인 루크라는 소년도 그렇게 납치된 아이들 중 하나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 뒤쪽이 미칠 정도로 궁금하다면 그 책은 훌륭하게 성공한 책이다.

 

도대체 루크를 잔혹하게 납치한 이 단체의 정체는 무엇이고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이들의 진짜 대단치 않은 초능력은 과연 어떻게 그들의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가?

(정말 대단치 않다. 주인공 루크의 초능력은 염동력인데 그 정도가 겨우 빈 피자팬을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피자가 있으면 안된다. 무거워서.... ^^ )

아이들이 수용소에서 다음으로 가는 저 뒷편의 시설에는 과연 무엇이 있으며 이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아 루크는 도대체 언제 탈출하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독자는 물론 주인공인 루크가 탈출할 것을 당연히 알고 있으며, 또 다른 등장인물인 팀과 만나 어떻게든 이 사건을 해결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이 소설에서 나오는 기본 전제가 허구임 또한 알고 있으며 말도 안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의 힘은 바로 그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 보이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스티븐 킹은 가히 천재적이다.

 

책 전체에 비해 결말의 임팩트가 약간 떨어지는 감이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광기 또는 잘못된 신념이 습관적 관행이 되었을 때 그것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나름의 현실적인 결말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다.

너무 재밌는 책을 만나면.....

 

또 하나 요 며칠 째 나를 확 열광하게 한 책

 

 

 

 

 

 

 

 

 

 

 

 

 

 

 

 

 

<시녀 이야기>의 뒷편이 나와주었다. 무려 34년만에!!!!

34년이라니?

책 속의 시간도 겨우 15년 후인데, 실제 시간으로 34년 뒤라니.....

작가는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던 걸까?

34년간 묵힌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즘만으로 후덜덜이라는 말이 안나올 수가 없다.

34년만의 후일담이라는 것만으로도 안 읽을 수가 없는 책이다.

그것도 <시녀이야기>의 후속편이잖아.

<시녀 이야기>를 읽은지 10년도 훨씬 넘은 것 같고, 책장에 있던 내 책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고.....

그럼에도 <시녀 이야기> 속 길리어드라는 가상국가의 충격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상태.

 

사실 나에게 <시녀 이야기>는 엄지 척 하고 싶은 최고의 작품은 아니었다.

옛 기억에 어렴풋하지만 뭔가 2% 부족한 듯한....

그래도 2%만 부족한게 어딘가? 98% 부족한 책도 천지에 널렸는데.

그렇게 <증언들>의 독서를 시작

근데 정말 <시녀 이야기>보다 훨씬 더더더 좋은거다.

작품은 15년후 각자 다른 입장의 3인 - 길리아드 공화국의 여성정책을 전담 집행하는 기구의 리디아 아주머니(여기서 아주머니는 계급), 길리아드에서 체제 순응적으로 귀한 꽃 - 그래봤자 아이를 낳을 도구에 불과하지만 -으로 자란 아그네스, 그리고 인접국가 캐나다에서 자라고 있는 소녀 데이지의 증언들을 모아놓았다.

 

이 중 가장 흥미롭고 공감이 가는 인물은 리디아 아주머니였다.

길리어드 공화국이 만들어질 때 지식인 여성들이 어떻게 공격당하는지, 여성들을 어떤 식으로 모든 정치 사회적 행위에서 배재시키고 말 잘듣는 고분고분한 도구, 꽃으로 만드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책의 서사는 리디아 아주머니의 서사만 따라가도 흥미진진하고 한편의 작품이 될 수 있을 정도이다.

 

아무것도 없는 하층민 가정에서 태어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판사까지 되었던 강한 자존감을 소유한 리디아라는 권력에 굴복하는 과정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책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자동적으로 나라면 어떨까를 생각하는데 절대로 무조건 무너질 수 밖에 없을거다 싶다.

예전에 본 책 중 어딘가에서 유대인 수용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본 기억이 있는데, 그게 의외로 어떤 순간에도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자신을 가꾸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못먹고 굶으면 육체가 죽지만, 최소한의 물과 화장실 시설 등이 주어지지 않아 최소한의 위생이 유지될 수 없으면 인간의 자존감이 무너진다.

분비물의 냄새와 흔적을 온 몸에 묻히고 나와 타인이 모두 서로에게 악몽이 되는 순간 인간의 마음은 죽는 것이다.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길리아드의 남자들을 보면서 이 체제가 만들어진 과정, 이유, 그리고 몰락의 이유까지 이해가 갔었다.

그런 인간의 바닥까지 치고 갔던 리디아가 끝내 복수를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나는 그것이 인간의 신비라고 항상 생각한다.

누구보다 비굴한 것이 인간이지만 누구보다 용감하고 고귀한 것이 또 인간이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의 밑바닥을 겪고도 일어설 수 있는 인간의 존재

<증언들>이라는 이 책을 한 순간도 손에서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강력한 리디아 아주머니라는 캐릭터의 힘이었다.

 

이 책에서는 또 한명의 인상적이 여성이 나온다.

그 여성은 단역이다.

단 한장면, 단 한줄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 여성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복수와 죽음을 택하는 여성이다.

스타티움에서 동료를 살해하라고 명령받았을 때 그 명령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어느만큼의 용기가 필요할까?

그런데 참 역사를 보면 늘 그런 사람들이 있어왔다.

그 아름다운 사람들이 세상을 그래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준다.

 

 

소설이 가지는 흡입력과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2권의 책으로

나는 역시 드라마보다는 책읽기가 더 즐겁다는 것을 한 번더 확신한다.

책 읽는게 뭔가 특별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높여 알리고 싶다.

드라마만큼 아니 드라마보다 더 재밌어서 보는게 책이라고....

책을 읽는다는건 뭔가 그리 거창한 행위도 아니고,

책을 읽는다고 아주 똑똑한 것도 아니며,

그저 아주 많이 즐거운 행위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내 주변에 나와 같이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좀 많아졌으면,

휴식시간에 드라마 얘기 말고 책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좀 더 많아졌으면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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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9-24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퇴근하면 티비 보는 대신 책을 보는데요, 책이 너무 재미있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시간이 저에겐 휴식 시간이에요. 업무 모드, 근무 모드의 저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요. 그래서 저는 책읽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자기 전에 책을 한 장이라도 읽어야 뭔가 오늘 하루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썼구나, 하고 마음이 편안해져요. 제겐 휴식입니다.

증언들 갖춰놓기만 하고 안봤는데 얼른 보고 싶네요.
그리고 스티븐 킹이 이야기꾼이라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바람돌이 2020-09-24 16:03   좋아요 1 | URL
저도 마찬가지예요. 원래 좋아서 하는 일이 휴식이죠. 저는 좀 변화한거 같아요. 책이야 늘 좋아해서 옆에 두기는 하지만 열렬하게 좋아하는 것들은 조금씩 변화해왔어요. 영화에서 드라마로 여행으로..... 그리고 요즘에 이르러 그 열렬함이 책으로 좀 옮겨갔다는 느낌이 들어요. ㅎㅎ

증언들 빨리 보세요. 재밌어요. ㅎㅎ 제 생각에 다락방님도 리디아 아주머니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보실듯해요. ㅎㅎ

stella.K 2020-09-24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드라마든 책이든 좋아서 빠져 들면 좋은 거죠.
둘 다를 좋아하기는 힘들 거라고 봅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긴 하지만...
저는 젊었을 땐 드라마가 시큰둥했습니다.
근데 나이들기 시작하면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드라마도 괜찮은 게 많아요.
저는 드라마를 보느라 영화가 좀 멀어졌어요.
이러다 또 언젠가 책이 좋아지고, 영화가 좋아지는 날이 오겠죠.

저는 뭐하느라 킹 아저씨 책을 못 읽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킹 아저씨의 색다른 도전이 저는 좀 궁금하네요.
암튼 글을 너무 잘 쓰셔서 소개해 주신 책 다 읽어 보고 싶군요.
그러고 보면 바람님은 책을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 저는 요즘 ebs에서 하는 강연 프로 졸면서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어떤 강연은 내 분야가 아니라 좀 듣기 힘든 것도 있는데
자꾸 듣다 보면 어느 날 책 읽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머리에 들어 오든 안 들어 오든 그냥 듣고 있습니다.ㅋ

바람돌이 2020-09-24 16:24   좋아요 1 | URL
드라마 마지막 본게 김혜수 나오던 시그널이네요. ㅎㅎ
아 저 드라마 진짜 재밌었어요.
올 여름에는 네플릭스 드라마 막 추천받고 그랬는데, 한편을 보고 나도 뒷편이 안 궁금하더라구요. ㅎㅎ
그냥 이게 싸이클이 있는거 같아요. 돌고 도는게 인생이듯, 취향도 돌고도는듯... 아 유행가 가사같다. ㅎㅎ

제가 제일 못하는게 강연듣기예요. 귀가 모지리예요. ㅎㅎ
강연 듣고 있으면 최소 3분의 1은 못알아듣습니다. 딴 생각하다가요. ㅎㅎ

stella.K님도 언젠가 킹아저씨를 만나시기를요. 재밌어요. ㅎㅎ진짜루요. ㅎㅎ

파이버 2020-09-24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티비는 잘 안봅니다.... 집에 티비가 없기도 하지만 영상물은 정보가 귀와 눈으로 한꺼번에 들어오다 보니 피곤😪하더라구요ㅠㅠ

스티븐 킹은 영화로만 접했는데 항상 소재가 신선한 것 같아요 바람돌이님 리뷰 덕분에 언젠가 소설책도 도전해보고 싶어졌어요!

바람돌이 2020-09-24 22:49   좋아요 1 | URL
시실 우리들 대부분이 tv와 책을 다 즐길만큼 시간이 안되는게 문제인 것같아요. 전 나중에 퇴직하면 tv와 책을 다 껴안고 살지도 모르겠어요. ㅎㅎ

킹의 소설은 아 피곤하다 스트레스 쌓이네싶을 때 읽기 좋은 것 같아요. 읽다보면 책 말고는 다 잊어버리거든요. 그럼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도 시간이 좀 흘러 거리를 가지고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지요. 어쨌든 결론은 재밌다입니다. ^^

문화향유자 2021-06-28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전 TV를 전혀 안 보는건 아니고, 본방사수는 안합니다. 보고 싶은거는 인터넷에서 다운을 받아서 봐요. 그게 항상 보는게 정해져 있어요. 영화는 많이 보지만 드라마는 잘 안 봅니다. (2시간이면 끝날이야기를 쭉쭉 늘려서 짧게는 10회, 길면 20회 넘게 봐야하는 시간이 아까움)
저도 TV프로그램 잘 모르고, 드라마도 잘 모르니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많이 당했어요. 안보는게 그렇게 이상한가? 모르는게 그렇게 이상한가? 그것말고도 할게 많은데, TV보는거 말고는 다 쓸데없는 일로 보이는거 같아서 의아하더라구요.

바람돌이 2021-06-29 09:15   좋아요 0 | URL
가끔은 tv를 안봐서 내가 부끄러워해야 하나? 이런 느낌 있죠. ㅎㅎ 근데 또 알고보면 그 사람들 대부분이 저한테 별 관심없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는 그냥 가만 있습니다. ^^ 책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는 모임이 딱히 많지 않다는게 가끔 좀 외롭기는 해요. 그래서 여기 서재에서 계속 놀고있는듯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