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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등장배경

 아프가니스탄인들은 굶주림을 피해 300만의 사람들이 바로 옆나라인 파키스탄으로 떠난다. 파키스탄의 경우 이들을 위해 이슬람 신학교를 건설하는데 이들이 바로 탈레반이다. 그러면 파키스탄은 왜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아프간 난민대책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섰을까?

첫째는 듀란드선(line of Durand). 인도로부터 파키스탄이 독립하기 이전, 아프가니스탄은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는데 파슈투니스탄 지역을 둘러싸고 두 나라간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영국은 듀란드 선을 그어 그 지역을 두 나라로 나누면서 백년 후 인도지역의 파슈투니스탄이 아프가니스탄에 반환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이 지역은 이후 파키스탄이 된다) 국제법에 따르면 이 지역은 1994년 아프가니스탄으로 돌려졌어야 했다. 이에 따른 파키스탄의 대책이 바로 굶주린 아프간 무자헤딘을 훈련시켜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게 만드는 것. 따라서 탈레반이 바로 그 백년기한이 끝나갈 무렵에 등장한 것이다.

두번째, 서구와 관련한 파키스탄의 국가적 역할 - 파키스탄은 동측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서방의 첫 번째 방어기지였다. 하지만 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파키스탄의 전략적 중요성은 떨어지고 이는 파키스탄 내의 실업문제와 관련된다. 즉 이제 파키스탄의 군사력을 어디에 팔아먹을 것인가? 이에 탈레반을 만들어냄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을 보이지 않게 통제하고 파슈투니스탄 지역에 대한 아프간 인의 요구를 저지하기 위해서이다.

세번째 탈레반에 대한 아랍국가들의 지원. 사우디 아라비아나 아랍 에미리트 같은 국가들은 이란과 경쟁관계에 있으며 이들은 이란에 맞설만한 종교적 세력을 찾고 있었다. 이들 나라는 자국의 현대적 이익이 이슬람 회귀주의자(이란)들에 의해 위협받는다고 생각함으로써 자신들을 대신해 이란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으로 탈레반을 지목, 지원한다. 아마도 여기에서 이란을 경계하는 미국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졌으리라...

미국의 지원으로 성립된 정부였다는 정도의 탈레반의 성립배경에는 보다 주요한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었다. 이제 그 이용가치를 다하고 폐기처분되어진 탈레반 이후의 아프가니스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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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 다양한 생명체와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

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근대에 대한 바른 이해. 계몽주의나 근대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치적 근대도 이루지 못한 우리같은 나라에서, 더구나 그 근대를 실현하기 위해 한참더 버둥거려야 할 나라의 사람들이 근대를 비판하고 나설때는 신중하고 사려깊은 자세가 필요하다.(사회적 근대란 결국 수직성의 사회를 수평성의 사회로 바꾸고 합리성을 확장하는 일이라고 볼 때 우리 사회는 아직 속속들이 수직서열사회에 머물러 있다.  - 반드시 근대를 통과해야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는 의문시되지만 새겨들을 만한 말이다.)

한국인, 한국사회의 여러 특징들에 들어가서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한국인이 변화에 굉장히 빨리 적응하지만 실제 속으로는(여러가지 이데올로기, 관습같은 것들?) 잘 바뀌지 않는 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변화에 빨리 적응한다는 것이 분명 적응력이긴 하지만 그게 정말 개체 생존이나 종족 보존에 유리한 적응인가 하는 문제는 남는것.

인간의 탁월성이란? - 첫째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지만 동시에 그 이기적 성향을 거스를 줄아는 존재이다. 둘째, 인간이 '지금 여기'에 매여 있으면서도 그 결박을 넘어 다른 것을, 지금 여기의 '너머'를 보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최재천)

진화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바로 '다양성 증가'로볼 수 있다. 근데 지금의 인간의 모습은 바로 이 다양성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문제점을 보인다.지금 인간은 자기가 아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는 명민하지만, 모르는 문제들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굉장히 둔감하다. 그러다가 몰랐던 문제가 터지면 그 때 해답을 구하고자 하겠지만 스스로 다양성을 파괴한 상황에서는 그 해답을 찾을 길 자체가 파괴되고 없을 수도 있다.(광우병이나 조류독감의 위력이 세계적이 된것도 생물종의 다양성을 인간이 끊임없이 파괴해온 결과로 볼 수 있다.)

13장 -21세기형 인간, 호모 심비우스의 번식을 위하여

종 다양성이 중요한 것 처럼 인간 세계에서는 문화의 다양성이 중요하다. 이런 문화의 다양성은 지금의 세계화와는 어떻게 관계지어질까? 지금의 세계화는 시장의 원칙이 교육과 언론을 포함해서 사회의 공영역과 사영역을 모두 휩쓰는 것, 따라서 다양성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화를 반대한다고 해서 멈출수 있을 것 같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래도 기대를 거는건 세계가 단일시장으로 간다 하더라도 그 시장속에서는 자연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수한 다양성드링 보존되고 살아 숨쉴 수 있는 구석들이 여기저기에 생겨나고 존재하게 될거라는 믿음이다.(지나친 낙관주의? 하지만 이런 희망이라도 없다면 너무 암울하지 않은가?)

소련 붕괴 이후 현재 세계는 지나치게 단극화 되고 얇은 사회로 나아가는데 생태계에서 이런 사회 - 번식이 지나치게 너무 한쪽으로 기울면 사회가 붕괴한단다. 그러면 인간사회에도 희망이?

도정일씨가 주장하는 사회는 '두터운 세계' - 다양성, 다수성, 다원성의 세계이다. 이 3다의 세계를 유지하는데는 무엇보다 '관용의 윤리학'이 필요한데 이때 관용이란 것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자비가 아니라 다른 것, 타자, 타인, 차이에 대한 존중을 말한다. 나라는 존재, 나라는 주체가 타자에 대한 책임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필요한 것.

최재천 -호모 심비우스(공생 인간) -농업혁명이라는 것도 어찌보면 공생이다. 자연에서 혼자 사는 식물들을 데려다 키워주고 그 식물들이 공생을 통해서 굉장한 번식을 이룬 것. 바로 이 공생 덕택에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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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1-19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숙제로 내줘도 이런 글 쓰기 싫을텐데.... 아무튼 대단하십니다. ^^

2006-01-19 0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6-01-19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저도 누군가 숙제로 내준다면 절대 못하죠... ^^
이 책이 진짜 대담이다 보니 읽을 때는 읽히는데 도대체가 정리가 하나도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잖아요. ^^
 

10장 섹스(sex), 젠더(gender), 섹슈얼리티(sexuality)

자연계에서 생물학적 성(sex)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꽃식물들은 처음에는 수컷에서 시작하여 암컷으로나아가며, 산호초에 사는 물고기는 우두머리 수컷이 죽으면 암컷들 중의 한마리가 수컷으로 전화한다. 인간 역시 처음에는 모두 암컷의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가 어느순간 어떤 조작에 의해서 암컷의 생식기로 발달하려던게 갑자기 수컷 생식기로 발달하는 과정으로 넘어간다. - 이러한 생물학계의 발견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동성애에 대해 가하는 주요한 공격 -자연에 위배된다는-을 무효화 시킬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동물계에서는 거의 30%정도까지 개체들이 동성애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동물들도 있다면 이걸 비정상/비자연으로 보는 것 자체가 웃기게 되는 것 아닌가? 누가 30%나 되는 개체군을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최재천씨는 조심스럽게 인간은 누구나 동성애적인 성향을 갖고 있을것이다라고 제기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두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사회적 성 (gender) -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 신화는 여성의 탄생이 남성의 탄생이후 한참이 지난이후 판도라라는 최초의 여성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여성의 탄생이 아닌 '여성성'이라는 사회문화적 젠더의 탄생에 관한 신화적 처리라고 봐야한다. 또한 이것은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는 것의 시작인데 결국 이 분리는 권력분할의 시작이라고 봐야한다.

11장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소설인가 과학인가

인문학에서 프로이트에 주목하는 것은 그가 서구 근대의 합리성/주체 신화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내게는 내가 모르는 내가 있다' , '나는 나의 주인이 아니다', '나의 주인은 나의 무의식이다'라는 것.

그러나 과학자가 보는 프로이트는 과학의 객관성을 뒤집어썼을 뿐 과학적으로 어떤 것도 증명될 수 없는 허구의 산물이란다. 프로이트가 과학이라 부르기에는 검증성, 객관성 모두가 과학적이지 못한 비논리의 왕국을 왜 과학의 영토안에 세우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것. -프로이트의 출발점인 이드나 에고의 존재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신의 존재를 설정하는 것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과학 역시 기존의 패러다임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중요할 수 밖에 없고, 그 패러다임 넘기를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은 예술적 신화적 상상력과 비슷할 수 있다. 따라서 방법은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하되, 머리는 신화적으로 돌리는게 과학의 묘수가 아닐까? 즉 프로이트의 신화들이 비록 비과학적이라 해도, 거기서부터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이 비상할 수 있을 거라는 것(도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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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 동물의 교미와 인간의 섹스

종족보존이 아닌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해 섹스를 하는 동물이 인간말고 있을까? 만약 없다면 이게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하나의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보노보의 경우 - 보노보 두 무리가 하나의 무화과 나무에 도착했다면, 그 나무를 독점하기 위해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의 암컷이 나와서 다른쪽의 수컷과 그 자리에서 섹스를 한단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서의 섹스? 또 발정기 때만이 아니라 매우 자유롭게 여러 수컷과 교대로 섹스를 즐기기도 하고, 자위행위까지... 결국 이러면 성적쾌락을 위한 섹스는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듯... 거기다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어졌던 마주보고 하는 성체위까지 보노보에겐 나타난다고 하니...(나는 이사실이 그렇게 충격적인지 몰랐는데 인문학자들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듯... 특히 기독교계에서..)

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살아남기'와 '번식'이라는 두단어로만 설명된다. 그러나 인문학에서는 이 필연 뿐만 아니라 거기서 이탈하는 행위 - 이를 자유라고 명명할 수도 있겠다.-들도 중요하다. 결국 번식과 필요없는 보노보나 인간의 성행위는 필연에서 벗어난 자유라고 명명할 수도... 그런 관점에서 인간의 피임이나 동성애도 바라볼 수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자유가 동물계에서도 -보노보나 민벌레의 으뜸수컷과 교미하지 않고 2위 3위의 수컷들과 교미하는 암컷들- 존재한다면 결국 사회생물학의 입장에서특별히 인간적이랄 행동의 없게 된다.

인간에게서 보이는 성적 은밀성의 문제 -인문학 쪽에서 본다면 인간이 가지는 성적 은밀성은 신성성의 다른 이름일 수도.. 다른 영장류 동물의 경우 수태 가능성을 광고하는데 비해 인간은 그것을 숨기는 쪽으로 진화했다. 이런 인간 여성의 배란 은폐는 남성의 일부다처제적 성향을 상당히 줄여주지 않았을까? 배란시기를 모르는 상황에서 남성이 찾아낸 가장 좋은 전략은 한 여성이라도 잡아놓고 매일 밤 그 여자와 섹스를 하는 것. 즉 가족과 결혼의 탄생을 이렇게 생물학적으로도 바라볼 수 있구나...(감탄..)

9장 - 판도라속의 암컷, 이데올로기속의 수컷

생물학의 오류들이 역사속에서 학문적 오류로 끝나지 않고 정치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거의 범죄에 가까운 만행의 도구가 되었던 경우 - 백인제국주의, 남성우월주의

최근의 사회생물학은 자연의 질서라는게 결국은 암컷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컷은 암컷이 번식하는데 잉여로 만들어졌다는걸 말하고 있단다. 근데 신화에서도 모든 가부장제 신화에는 남자의 잉여성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단다. 고대신화가 여성을 잉여존재로 강등시킨 것은 사실인즉 남성들 자신이 잉여존재일지 모른다는 공포를 역으로 투사한 거라고 볼수도 있다.(남성들의 거세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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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 인간, 거짓말과 기만의 천재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일단 시작은 '구라'에서 시작한다. 과학은 반드시 입증의 책임앞에 서야 하고 인문학적 이야기는 그런 엄격한 입증을 요구받지 않는다는 차이는 있지만.....

인간사회 모든곳에서는 신화가 존재하고 어차피 신화라는 것 자체가 '구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 구라가 잘못쓰일때- 즉 지배세력의 사회체제를 정당화하거나 정치적 생존과 지배의 전략으로 사용될 때 그것이 미치는 파급효과는 치명적이다. 유대인들의 신화가 시온주의의 배경이 되고 인도의 거인신 신화가 인도의 계급제도의 기초가 되는 것과 같이.... 그런데 곤충세계에서도 개미사회에 그런 개미행세를 하는 곤충들이 엄청 많은데도 개미사회가 무너지지 않는걸 보면서 인간사회나 개미사회나 세상의 충격을 막아내는 점에서는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뇌 발달 과정에서 특이한게 '자기 기만'인데 이건 대표적인 경우가 '난 할 수 있어' '하면 된다'같은 것. 누가봐도 못할 일인데 스스로에게 하면 된다고 하고, 때때로 가끔은 해내는 경우.  세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분명한 의식체계를 발전 시키는 것이 아니라, 틀린 그림을 그려놓고는 그 그림을 정확한 그림이라고 생각하도록 자기를 속이는 능력. -자연계 역시 동물들의 신호체계에 있어 이러한 기만술이 가득하다는 것은 결국 인간과 자연계 모두의 기만술은 자연선택이 갈고 닦은 적응, 번식, 생존술의 일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신화와 과학의 관련성 - 자기들이 처해있는환경과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함으로써 더 강력한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탄생할 것이고, 결국 이것은 과학의 필요성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7장 - 예술과 과학, 진화인가 창조인가

예술의 탄생에 대한 담론 - 구석기인들의 동굴벽화의 예

고래의 습성을 치밀하게 알지않고서는 그릴 수 없는 그림들이 발견되나 중요한 것은 누가 왜 그렸냐인데 그 점에 대해서는 인문학이나 생물학이나 속시원한 대답이 없다.(상징 문법의 상실)

생물학에서는 예술에 대해 자연선택이 아닌 '성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관점을 제시. -공작 수컷의 화려한 꼬리깃털은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불리하지만 성선택의 관점에서 유리함으로 인해 진화해 왔다는 것.

인간에게도 성선택설이 적용될 수 있을까? - 그림 잘그리는 사람이 구석기 시대에 성선택에서 유리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외 신, 죽음, 조상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도 성선택설로는 설명이 힘들지 않을까?

결국 이런 근본적인 질문은 정답이 없음으로 해서 오히려 이런저런 생각을 촉발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예술의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설이 제기될 수 있는데, 인문학에서는 놀이설, 제의설, 실용설 등등...진화생물학에서는 성선택설 뿐만 아니라 ''줄달음 선택".-도저히 실용적이지 못할 것 같은 예술 행위도 처음에는 별로 대단찮은 것에서 시작했다가 갑자기 고비가 풀리면서 그 방면으로 확 진화하는 것 같은 것. 하지만 인문학쪽에서의 반발은 이러한 줄달음 선택도 자연계가 아닌 인간들 사이에서는 생물학적 원인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환경이 원인이 되어 일어날 수도 있다. 즉 성선택에 개입하거나 그걸 제한하는 문화제도들이 인간사회에서는 너무 많다는 것.

과학 역시 최재천씨의 경우 두뇌가 진화의 산물인 이상 과학도 진화의 사물로 볼 수 있다. 우리 두뇌가 과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렇다면 그런 사고를 잘하는 인간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에 비해 진화의 역사를 통해 더 성공적이엇을 거라는 논리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논리를 사회로 확장하면 좀 문제가 있을 듯...) 어떻게 보면 또 이런 논리는 하느님이 과학을 하게끔 인간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과학이 필연이라는 말과 별로 다를바가 없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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