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국시대냐 사국시대냐?
 가야사에 대한 축소는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우리에게 강요된 식민사학의 결과. 19세기말부터 일제의 역사가들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공황후 삼한정토설화(서기 200년 신공왕후가 80척의 배를 이끌고 와서 신라를 치고, 삼국으로부터 조공의 서약을 받았다는 설화)를 비롯한 여러가지 왜곡된 사료들을 토대로 하여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일제 시기에 일본이 우리에게 가르친 역사 교과서는 바로 이런 신공왕후와 왜 왕권의 위대성을 선전. 해방 이후 교과서는 바뀌었으나 가야사 부분은 거의 삭제 되거나 극도로 축소되었다.
결국 가야사에 대한 무지와 연구의 부족 자신감의 결여 등이 삼국시대론을 낳았다는 건데 아직도 안 바뀌고 있는 이유는?

2. 신사유람단???
1881년 일본에 파견된 시찰단.
첫째, 공식사절단은 아니었다. 중견관리로 구성된 비공식 시찰단.
둘째, 일본의 권고에 따라 시찰단을 파견했고 일본의 편의 제공을 받았으나 자의의 성격도 있었다.
셋째, 이들의 보고서는 통리기무아문의 개편에 주요한 참고 자료가 되었다.
이 시대 신사라는 명칭은 관리를 지칭하는데 관리가 아닌 민간인도 시찰단에 많이 포함 되었다는 문제.
거기다 일없는 관광객의 분위기를 풍기는 유람단이라는 호칭은 재고되어야 한다.
'1881년 일본 시찰단'으로 명명함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3. 개화파 용어와 개화파의 성격
교과서에서 흔희 온건개화파 급진개화파라는 구분을 사용하는데 이는 개념의 범주가 다른 두 개념을 사용하는 것으로 부적절하다. (그런데 온건과 급진을 대립시켜 설명하는건 개화파 뿐만 아니라 한두군데가 아닌데.... 고려말 신진사대부도 온건/급진으로 구분하는데.... )
개화사상을 엄밀한 의미에서는 '문명개화론"으로 한정짓자.
* 문명개화론 - 기존의 조선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고 패턴, 즉 조선은 이미 개화된 나라이고 구미열강이 야만'이란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꾼 논리(갑신정변의 주역들 - 김옥균, 박영효 등등),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근대화의 지표
*동도서기론 - 조선이 개화된 나라이며 소중화라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무의 수준에서 사회체제의 변화를 수용. 중국의 중체서용론과 양무운동을 조선 근대화의 지표로 삼음. 엄밀한 의미에서 개화파라 지칭하기 힘듬.

4. 조규와 조약
청의 입장 - 장정, 조규는 조정이 특별히 윤허하는 조규로 상하관계의 나라들이 맺는 것이며, 대등한 관계의 나라들이 맺는 조약과는 그 명칭이 다르기 때문에 그 성질 또한 다르다. 청은 일본 조선과 조규를 맺고, 일본 조선은 서구열강과 조약을 맺게 함으로써 형식적으로 일본, 조선, 서구열강을 모두 조공체제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의도. 결국 조공체제를 전제로, 조약체제를 수요한 조규체제는 이른바 중국판 근대성의 모색이라 일컬을 수 있는 양무운동 실천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1876년 강화도 조약의 정식명칭이 조약이 아니라 조규이다. 그렇다면 이것의 의미는?
  ----- 솔직히 내 생각엔 아무 의미 없음. 조선이 당시 조약과 조규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으며 또한 그 내용의 문제가 워낙에 심각한 마당에 조약과 조규를 따져서 뭐하겠는가 싶음.

5. 을사조약의 제대로 된 명칭
조약이란 1. 주권자의 조약체결 권한 위임 
                 2. 체결 권한을 위임받은 전권대표의 조인
                 3. 주권자의 비준
협약이란 양국 주무대신의 합의와 서명만으로도 효력을 가질 수 있음.
을사조약에서 외교권의 위임은 분명히 조약의 수준에서 거론될 문제. 그런데 일본은 이를 협약 수주에서 처리하고 조인문서에는 정식 명칭이 빠짐.
결국 을사조약은 체결되지 않은 조약이 되며 따라서 명칭은 '외교권 위탁에 관한 한일조약안'정도가 될 것.

6. 일제시대의 적당한 명칭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성을 드러내면서 국망의 강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용어 - 일제 강점기
문제는 이 용어는 한국민족국가사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정당한 표현이지만, 탈민족주의자들은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용어이다. 사실 일제감정기라는 표현은 '왜정'이라는 국민정서를 학문적으로 포장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탈민족적 성향을 가진 역사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은 경향적으로 '일제시대'라는 표현을 즐겨쓴다. 동아시아적 시각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도 한반도의 경계를 넘어 동아시아 전반으로 시야를 확대할 때, 근대 동아시아사는 곧 일본 젝구주의사라고 볼수 있으므로, 일제시대라는 용어를 선호.

7. 군대 성노예, 정신대, 위안부????
학문적으로 가장 적당한 명칭은 군대 성노예라고 하지만 나조차도 섬뜩한 이 단어가 이 책의 말대로 생존 피해자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가갈까? 이런 경우 학문적접근은 시기상조인것 같다.

8. 친일과 협력
오늘날 친일의 문제는 책임과 과거청산의 문제이다. 또한 그 친일파의 책임을 묻는 주체는 '민족'이 된다. 그러나 이 경우 기간의 근대사 체계가 '민족'의 가치를 절대화하면서 식민지에 존재했던 다양한 삶의 양식을 지배와 저항의 흑백논리로 재단해왔다는 비판이 제기되엇다. 식민지 사회를 '제국주의의 지배 -피억압 민족의 저항'이라는 단순 도식으로 파악하다보니 사회정치적 행위를 저항이 아니며 '친일=반민족행위'로 평가하게 되었다는 비판이다.
  이런 입장에서 친일 대신 협ㄺ의 개념을 도입하게 된다. 식민지나 반식민지 주변부 내부에서 현지 엘리트로 구성되는 협력의 체제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런 경우 행위자 개인의 책임보다는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협력의 구조나 체제가 중요시될 수 밖에 없게 된다.
============= 어려운 문제. 개인의 책임을 어디까지 면제시켜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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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넘어 2006-09-04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난 책 읽고 계시네요. 역사비평에 연재되면서 재미있게 읽은 꼭지였는데 ^^*

클리오 2006-09-04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을만하나요..라고 물을랬더니 폐인촌님이 좋은 평을... 이벤트 하던데 서평쓰세요.. 전 도무지 읽을 시간이 없을 듯해서 포기합니다. 흑..

바람돌이 2006-09-05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인촌님/워낙에 오랫동안 공부를 안한지라 요즘 전공서적들을 이것저것 뒤적이니 재밌네요. 올해 3학년 국사를 7년만에 맡았더니 정말 제 바닥이 보이더라구요. ㅠ.ㅠ 이것 저것 열심히 책은 뒤지고 있는데 하도 오랫만이라 그런지 나날이 힘듭니다. ㅠ.ㅠ
클리오님/저야 워낙 오랫동안 공부에 손떼고 이것 저것 잡스럽게만 보다가 보니 새오워요. 아 그동안 진짜 무식하게 공부안했구나 뭐 그런 생각..... 늘 공부하시던 분들은 보면 뭐 그리 새로울 것 같지는 않아요. 저같이 오랫만에 공부하는 사람을 위한 정리서 같은 뭐 그런 책???? 어쨌든 재밌어요. 이것 저것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이 책 서평 이벤트도 봤죠. 상품이 무지 맘에 들던데.... ㅎㅎㅎ
 

 

 

 

 

1997년에서 1999년 - 그리고 덧붙여 2000년대 이야기 약간.

1997년의 시대의 화두는 IMF였다.
처음엔 그게 뭔지 조차도 몰랐던 그 단어가 우리의 삶을 그토록 절망적으로 만들줄 알았을까?
처음엔 늘 조금씩 있는 경기불황이겠지 하던건 정말 뭘 모르는 소리였었지...
날이면 날마다 이게 도대체 대한민국이 맞냐고 소리치고 싶던 날들.
날마다 도산하는 기업에 길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
생계형 범죄는 자식의 손가락까지 잘라내고, 절망에 자살하는 사람들.
월급이 깎여도 그저 직장 안짤리고 있는것만으로도 고마워 죽을 것 같던 시절.

그런데 그 고통을 온몸으로 맞으며 절망했던 사람이 국민 모두가 아니라는게 문제겠지....
있는 사람은 오히려 이를 기회삼아 돈의 덩치를 더 키워나가고...
빈부격차는 대다수의 사람을 더욱 더 절망으로 절망으로 내몰았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는 엉뚱한 방향에서 엉뚱한 대응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IMF사태는 '믿을 수 없는 정부와 공공영역'이라는 한국인의 기존 신앙을 강화시켰고 기존 가족주의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IMF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과정에서 기존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졌으며, 또 그래서 내 자식을 잘 교육시켜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최준식은 이렇게 개탄했다. "현금의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서 가장 문제 되는것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내 새끼 위주의 무한경쟁 체제이다."(92쪽)

이른바 생존의 논리라는건가?
우리나라에서 교육열이 아이들을 죽여나가지 않은적이 없지만
실제로 IMF사태 이후 더 심각해진 건 맞는것 같다.

그런데 이 얘기가 시사하는 바 IMF가 우리에게 정말로 남긴것은 무엇일까?
정부는 벌써 IMF종료를 선언했고 경제는 여전히 어렵다고 죽는 소리를 하지만
그래도 급한 불은 껏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는거 아닌가?
왜 그 때부터 갈수록 빈부격차는 줄어들줄을 모르는지....
왜 지금도 내 주변에는 너무 너무 어려운 아이들이 그 때나 지금이나 숫자상으로도 어려운 정도로도 어느쪽으로 따져도 줄어들지를 않는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던가?
IMF로 놀란 한국인들에게 그것이 남겨준것은 생존본능의 강화가 아닐까?
가난에 대한 사회적 연대는 사라지고,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나와 내 가족으로 모든 것이 환원되고...
'우리'는 사라지고 일단 중요한건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생존의 지상명령!!!
한국인들의 신체에 각인처럼 남겨진 IMF의 흉터가 아닌지.....

2000년대 중반의 한국인에게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 되었다.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라는 걸 인식하는건, 이제 우리의 목표가 '통합'이 아니라 '연대가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자꾸 되지도 않을 통합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갈등과 증오도 일어나는 것이다.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지만, '연대'는 나의 운명이다. 그게 90년대의 한국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지도 모른다.(360쪽)

-----------------------------------

이 글 썼다가 등록하려니 오류떠서 몽땅 다 날렸다.
오기로 다시 쓴다.
기억을 더듬어 썼으나 쓰고 보니 또 좀 다르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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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이 대통령이었던 시절.
우리집은 늘 정치적 견해차이로 티격태격했었다.
그것도 내가 아니고 우리 부모님 둘이서....
김영삼과 같은 고향 출신인것이 무슨 벼슬인양 생각하던 아버지와,
나라에 안좋은 일이 자꾸 생기는건 다 김영삼의 얼굴이 복없게 생겨서 그런거라는 어머니.....

2권을 읽는 내내 마음아픈 장면들의 연속이다.
왜 그리 사고가 많았는지....
구포열차 탈선사건에서는 우리 동네 시장 아줌마도 그 기차를 타고 겨우 살아났다.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공사장 폭발사건, 삼풍백화점.....
오로지 돈과 능률위주로만 치닫던 한국자본주의의 밑바닥이 와르르 무너지는 현장이라고는 해도,
그 결과는 너무 처참하다.

정치에 있어 이합집산이나 온갖 부정부패야 뭐 새롭겠냐만,
김영삼의 정치스타일이야 익히 알고있던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속에 얽혀있던 비화들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경우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계속 산책을 하고 있으나 그 산책이 전혀 유쾌하지가 않다.
이러고도 지금도 살아있으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1994년의 전쟁위기
미군이 북한의 핵시설을 선제 공격할 경우, 북한은 그들의 핵을 사용하지 않고 휴전선 전방에 배치된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 서울을 포함해 안양까지 5-6분 사이에 6,000개의 포탄이 떨어진다. 또한 노동 1호와 노포동 미사일은 주요 기간산업과 고리, 영광 등 원자력 발전소를 겨냥하고 있는데, 마하 5-6정도의 속도로 날아오는 노포동 미사일은 충분히 원자력 발전소의 호벽을 깰수 있다. 만일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남한 전역은 핵 오염지대가 될것이다. 전쟁 발발 후 1개월이 지나면 전선에 배치된 미군 3만 5,000명이 사망하고 8-10만명의 미국인이 죽게 된다. 또한 한국인은 100만명 이상이 사망할 것이다. 2개월이 지나면 북한 정권은 사라지고 전쟁은 끝난다. 그리고 통일은 될 것이다. 그러나 남한 경제는 5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25쪽 유엔군사령관 게리 럭이 미국무성에 보낸 보고서)

아주 현실적인 전쟁상황 예측 아닌가? 북한의 피해는 빠졌지만.....
아마도 북한땅은 아예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바뀌지 않을까?
이러고도 전쟁을 얘기하고 북한과의 평화노력을 거부하는 현실이 갑갑하다.
지금 현재 미국의 하는 양을 보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위기는 오히려 커진것 같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
한반도에서 평화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다.

북한은 늘 어떤 식으로건 국내 정치에 개입했다. 남한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을때 북한이 도발의 징후를 보이면 그 목소리는 '국가안보'에 압도되곤 했는데, 북한은 96년에도 그런 '정치행위'를 저질렀으니 그게 바로 잠수함 침투 사건이었다. 한총련에 대한 대응을 더욱 강하게 하라는 뜻이었을까?(286쪽)

가끔 북한이 하는걸 보면 정말 남한의 정권과 짜고 고스톱을 치는게 아닐까 할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물론 남한 정권이 결정적인 시기마다 한 건식 터뜨릴 때가 많지만,
어쩌면 그렇게도 남한 정권에 필요적절한 시기에 북한도 한 건씩 터뜨려주는지....
분단상황에서 존재근거를 찾는 정권의 필요악이란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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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40년대를 읽고 잠시 손에서 놨었는데 90년대가 벌써 나오다니 너무 신기해서 먼저 읽기 시작했다.
워낙에 최근의 일이다보니 거의 대부분의 내용들이 기억에 새록새록하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자의 흥미를 돋굴 수 있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심층적인 분석이나 평가는 좀 많이 약하다.
말 그대로 1990년대 산책이라 할만하다.

나도 산책같은 단상 몇가지.

리영희는 서중석과 가진 <사회평론>91년 6월호 대담에서 "나는 지금 거대한 역사적 변혁 앞에서 지적 사상적 그리고 인간적 겸허의 무게에 짓눌러 있는 심경입니다. 그와 동시에 주관적 오류나 지적 한계가 객관적 검증으로 밝혀질 때, 부정된 부분을 '사상적 일관성'이라는 허위의식으로 고수할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109쪽)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과 소련 연방의 해체라는 역사적 사건들 앞에서 7,80년대 젊은이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리영희 선생이 한 말이다.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나에게도 정신적 지주와 같은 책이었고, 이 때의 리영희 선생의 말은 나에게도 소련이 해체된 충격과 맞먹는 폭탄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지금 다시보니 사람과 학문의 깊이란게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 연세에 이런 성찰을 해내고 자신의 사상과 이론을 재점검한다는 것.
아직도 리영희 선생이 여전히 존경받고 있는 이유이리라...
그나저나 사상적 일관성이란 허위의식 - 깊이 새겨들을 말이다.

 마광수 사건은 실질적으로 한국의 문인들과 대학교수들이 만들어 준 사건이며 그 점에서 한국은 세계의 '민주국가' 중 권력의 권위주의 이전에 지식인의 권위주의가 더 심각한 유일한 국가가 되게 했다.(191쪽)
얼마전에 어떤 잡지에서 마광수교수 사건이 여전히 진행형이란걸 본 것 같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마교수는 이해되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그의 지금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아마도 그가 그냥 소설가였다면 이정도는 아니었으리라.... 문제는 그가 대학교수였다는것일게다.
대학이 학문과 사상의 자유의 보루가 되기를 그만둔것은 아주 오래된 일일터이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 하나쯤 받아들일 수 없는 대학이란.....
여전히 나는 그가 안타깝다.

텔레비전 광고는 텔레비전이 지배하는 대중문화의 지평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제 광고는 상품을 직접적으로 선전하기 보다는 거시적이고 근본적으로 소비자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생활철학을 판매하고 문화적 형태를 재구성하는 차원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시장논리의 지배를 받는대중문화는 광고에 의해 변형된 라이프 스타일과 생활철학을 반영하여 확대재생산하였다.(232-233쪽)
이제는 너무 상식이 되어버린 얘기!
그래도 여전히 저항하고 싶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어느정도는 물들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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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08-08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이런 저런 책에 치여서(?) 기회가 없지만,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이네요.,..

바람돌이 2006-08-08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로님/저는 꼭 읽어야 되는데 막바지가 돼서야 읽는 책이예요. ^^
90년대는 좀 가볍긴 하지만 생각보단 재미있네요. ^^

국경을넘어 2006-08-09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혀졌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소중한 기억들을 잡아주는 책. 그 자체로도 의미있네요 ^^

바람돌이 2006-08-09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런것 같아요 폐인촌님. 책에 나오는 사건들이 하나같이 기억에 또렷한 일들이라..... 근데 문제는 별로 즐거운 기억이 없다는거네요. ^^
 

3. 성적 판타지, 그 홈파인 공간

*변강쇠가의 의문 - 변강쇠가가 사설만 전하고 판소리는 전하지 않는데 대해 그 내용이 당시 집권양반층의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 하지만 역으로 신재효 전집의 판소리 12마당중 6마당이나 소실되고 전하지 않는 가운데 지독한 외설과 하드코어. 그리고 권선징악의 구도도 취하지 않는 변강쇠가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것도 당시에는 열린마당에서 이것이 '말해졌다'는 것 그것이 진짜 미스터리가 아닐까?

흔희 <변강쇠가>의 외설은 주로 탈중세적인 것으로 해설되곤 했다.
중세는 성담론을 억압했고 성을 자유롭게 떠들어대는건 근대적인 것이라고 설정한것이다.
바로 여기에 근대적 망상과 편견이 작동한다.
근대에 들어 비로소 성이 해방되었다느 것은 중세를 억압과 질고의 암흑기로 설정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중세 후기와 근대는 불연속적 지대이다.
욕망이 억압되었다가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각기 다른 욕망의 배치가 있는것이다.

근대적 성담론은?
성담론에서 인종론 및 인구론적 관점이 새로운 척도로 작동되기 시작.
우수한 인종의 생산. 인구의 번성이 성의 목표로 설정되고 이제 성은 국가의 통제와 관리대상이 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욕망의 불온성을 경계밖으로 축출하고 그자리에는 '민족'이라는 블랙홀이 등장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랑하라, 단 신과 민족의 이름 아래서만!
기독교와 민족주의가 성욕에 대한 '거룩한 억압'을 유도하는 가운데,
자본은 성을 상품화하면서 성욕의 배설구를 다채롭게 마련하되,
원만한 관리를 위해 경찰과 위생제도를 적극 동원하는 식으로,
이렇게 하여 욕망의 이원적 양극화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

3.1운동 이후 조선은 유례없는 이상 열기에 휩싸였다.
바로 연애열.
중세에서 가치들은 다원적이다.
연애감정, 충, 효, 사제간이나 도반들 사이의 우정과의리 같은 가치들이 백가쟁명하는 것.
하지만 근대에 들어 연애만이 삶을 떠받치는 지고한 가치가 되었다는 것은 연애 이외의 다른 관계들은 다 별볼일 없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존재를 걸고 욕망을 투여할 만한 다양한 경로들이 막혀버린 것이다.
연애열이 자라난 토양은 신과 민족이다.
연애는 신과 민족에 대한 숭배를 대체한 것이므로 거룩해야 한다.
숭고하기 위해 '욕정'을 배제한다.
육체가 지닌 우발적이고 불온한 힘들을 제어하려 한다는 점에서 애국, 신앙, 연애는 동일한 배치를 이룬다.

4. 연애의 정석, 죽거나 권태롭거나

1920년대의 연애 - 이광수의 <재생>을 통해서
근대적 사랑은 오직 영혼의 순수성으로만 승부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능한 한 육체성의 흔적을 지워버려야 한다.
근대적 '순결'관념의 탄생이다.
결국 이것은 연애의 열정과 성적 욕망을 결혼으로 흡수하기 위한 성정치학의 일환이다.
그런데 이러한 연애가 불멸의 위치로 상승하면 할수록 그것은 삶에서 멀어진다.
이제 연애의 위대함을 증명하는데 죽음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부재와 결여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입증한다는 점에서도 연애는 신과 민족이라는 기호와 '구조적 동형성'을 이룬다.

1930년대의 연애 -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를 통해서
1930년대 카프가 결성되면서 욕망은 혁명을 중심으로 재조직된다.
이제 연애는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으로 퇴각해버린다.
그럼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외부와 단절된 자기만의 방, 자의식 속에 갇혀 버린다.
자의식이란 인간이 자연과 단절되는 그 순간 태동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의 타자화'는 가장 먼저 인간들 사이의 견고한 장벽을 낳는다.
단절은 고독을 낳고, 고독은 자의식을 낳고, 자의식은 다시 권태를 낳고 이 악순환의 고리가 바로 근대 도시인의 정체성이다.

멜로의 순정과 씁쓸한 권태, 근대적 연애는 이 두가지 축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1990년대 이후의 상황은 변한 것 같지만 멜로, 권태, 그리고 현대의 변태적인 섹스, 포르노의 범람 등등은 공통점을 가진다.
성적 욕망이 조금도 삶속으로 진입하지 않고 있다는 것.
즉 성이 삶의 능동적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향유되고 있는 것이다.
포르노가 판을 칠수록 멜로 또한 고양된다.
이 죽음 충동으로 가득찬 '홈파인 공간' 자체를 벗어나지 않는 한 출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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