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경씨의 신작 소설 <서라벌 사람들>을 재밌게 읽었다.
처음엔 이거 뭐야? 하다가 정말이지 한줌도 안돼는 짧은 글에서 상상력의 나래를 활짝 펴는 작가의 입담을 들으면서 아! 이야기꾼의 능력은 참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이야기들의 원래 기록이 궁금해졌다.
옛날에 머리싸매며 보던 책이 뒤지니 나오네...^^

<연제태후>와 <삼국유사 제1권 기이편 1 지철로왕> - 지철로왕은 지증왕을 가리킨다. 지증은 시호
....왕은 영원 2년 경진에 즉위하였다. 왕의 음경의 길이가 1척5촌이어서 좋은 짝을 구하기가 어려웠으므로 사신을 보내 3도에서 구하게 하였다. 사신이 모량부 동로수 아래에 이르렀을때, 두 마리의 개가 크기가 북만한 한 덩이의 똥 양쪽 끝을 물고 싸우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을 찾아가니 한 소녀가 있어 알려주기를 "이 고장 상공의 딸이 그 곳에서 빨래를 하다 숲속에 숨어 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집을 찾아가 조사해보니 신장이 7척 5촌이어서, 이런 사실을 왕에게 보고하였다. 이에 왕이 수레를 보내 맞이하여 궁중으로 들어오게 해 황후를 삼으니 모두 하례했다.

<변신>과 <삼국유사 제1권 기이편 1 태종 춘추공>
왕은 하루에 3두(斗)의 쌀밥과 수꿩 9마리를 먹었는데, 경신년 백제를 멸망시킨 후부터는 점심을 들지않고 다만 아침과 저녁만 들었으니, 계산해보면 하루에 쌀 6두, 술 6두, 꿩 10마리였다.

<혜성가>와 <삼국유사 제5권 감통 제7 진평왕대 융천사의 혜성가>
 제5  거열랑, 제6 실처랑, 제7 보동랑 등 세 화랑의 무리가 풍악(금강산)에 놀이를 가려고 하는데 혜성이 나타나 심대성을 범하므로, 낭도들이 의혹을 느껴 가는 것을 그만두려고 했다. 그때 융천사가 노래를 지어 부르니 혜성의 변괴가 즉시 사라지고 일본의 군사가 물러가 도리어 복이 되었다. 대왕이 듣고는 기뻐하여 낭도들을 풍악에 놀러 보냈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 동쪽 물가의
건달바가 놀던 성을 바라보고
왜군이 왔다고
봉화를 올린 변방이 있도다.
세 화랑이 산 보러 간다는 말을 듣고
달도 부지런히 밝히려는 터에
길 쓰는 별을 바라보고
혜성이여! 말한 사람이 있다.
아! 달이 아래로 떠가고 있더라.
어사와! 무슨 혜성이 있을꼬.

<천관사>와 <삼국유사 제4권 의해 제5 원효불기>
.....원효가 계율을 지키지 않고 설총을 낳은 이후부터는 속복으로 바꾸어 입고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라 호하였다. 우연히 어릿광대가 굴리는 큰 박을 얻었는데, 그 모양이 기괴하였으므로 그 형상으로 도구를 만들어 <화엄경>의 일체(一切) 무애인(無碍人)은 한결같이 생사를 벗어난다라는 구절로써 무애라 이름하고, 인하여 노래를 지어 세상에 유포시켰다.
  일찍이 이를 지니고 수많은 부락을 돌아다니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화영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가난하고 무지 몽매한 무리까지도 모두 불타의 이름을 알고 나무의 칭호를 부를 수 있게 되었으니, 원효의 교화가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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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8-08-15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라벌 사람들 읽으려고 빼두었는데 빨리 읽어야 겠습니다.
역시 역사샘 다우십니다~~~

바람돌이 2008-08-15 23:12   좋아요 0 | URL
읽다보면 좀 황당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뒤로 읽어갈수록 각 단편들을 이어가는 솜씨가 정교해지면서 어쩌면 진짜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ㅎㅎ

hnine 2008-08-16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며칠 전에 서라벌 사람들 읽으면서 삼국유사에는 어떻게 쓰여 있을까, 설마 작가의 과장은 아니겠지 생각했더랬습니다. 이렇게 찾아보고 글을 올려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

바람돌이 2008-08-16 03:26   좋아요 0 | URL
과장맞죠. 저정도의 글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뽑아냈으니... 그게 작가의 힘이겠죠? ㅎㅎ

진주 2008-08-16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맛이 화악~당기는걸요~
저 원본을 워떠케~꾸며놓았을지 기대만발^^

바람돌이 2008-08-16 21:37   좋아요 0 | URL
제가 심윤경씨의 팬인건 생각하시고 읽으셔요. 그게 취향차이도 있으니 말예요. ㅎㅎ 근데 참 음~~ 그럴수도 있겠네 싶게 그럴듯하게 썼더라구요. 재밌었어요. ^^

마노아 2008-08-16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에 중고샵에서 주문했어요. 담주 중에 도착할 거예요. 기대하고 있답니다^^

바람돌이 2008-08-16 21:38   좋아요 0 | URL
부지런한 마노아님! 이 책이 벌써 중교샵에 떴단 말이지요. 뭐 읽는데 시간은 얼마 안걸리니 금방 읽으실거예요. 마노아님의 재미난 리뷰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무스탕 2008-08-16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해서는 참 어이가 없다.. 생각하다가 점차 재미있어지더라구요 ^^
어쩜 작가분은 이렇게까지나 상상을 하실수 있는건지..
<변신>을 읽고는 조금 놀랐지요. 우린 여지껏 왕님이라 하면 그야말로 신성시 하며 살았는데 이렇게 뒤집어 읽어내는 왕님의 모습이라니..
<천관사>는 혼자 흐믓해 하며 읽었어요. 유신과 천관녀의 사랑을 보상받는 느낌이었어요 :)

바람돌이 2008-08-16 21:39   좋아요 0 | URL
그쵸? 처음에는 좀 어이없다가 이게 갈수록 수긍이 가지는... ㅎㅎ
저도 김춘추가 진골로서의 열등감을 가졌을거라는 생각은 해본적이 있는데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어지더라구요. 물론 역사책에는 어디에도 안나오는 얘기지만 말예요. ㅎㅎ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들에도 불구하고 '더 저지'는 투쟁 정신을 갖춘 품격있는 신문이며 현 정부는 장기 집권탓에 경제적, 도덕적, 그리고 성적으로 타락했다. 그 대표적 인물인 가머니는 당장 목을 베어 접시에 올려야 마땅한 비열한 인간이라는 여론이 폭넓게 조성되었다. 일주일 사이 판매부수는 10만부 가까이 뛰어올랐다. 버넌은 반대 여론이 아닌 신문사 각 부서장들의 침묵에 맞서 싸우는 기분이었다. 원칙에 입각한 자신들의 반대의사가 회의록에 남아주는 한, 그들도 속으로 버넌이 일을 계속 추진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버넌은 논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왜냐하면 평기자들을 포함한 모든 직원이 이제는 두마리 토끼를 한 손에 넣을 수 있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신문을 구하면서도 양심도 더럽히지 않는 일이었다.(119-120쪽)

번역문젠지 아니면 원래 그런건지 하여튼 딱히 매끄럽게 읽히지는 않는 이 소설을 보다가 이 문장에서 갑자기 심장이 딱 멈추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젠장!! 이거 내 얘기 아냐?
하는 일 없으면서 입만 살았고(아니 내가 생각해도 잘난척 떠들지는 않는것 같으니 이건 좀 봐줄까?) 몇 푼의 자선과 몇 푼의 정치후원금으로 양심을 사고 면죄부를 산듯 슬그머니 나를 용서해버리고....
그런데 그런 나의 양심이란게 결국 대외 선전용일뿐이란걸 이렇게 꼬집어서 말하다니.....
행동없는 비판, 나의 살길을 침범하지 않는 한에서의 적당한 양심의 세탁....

책에서 이렇게 나의 이중성을 만나게 되는 날은 당황스럽고 부끄럽다.
그 부끄러움이 잠시의 부끄러움으로 끝나버린다는게 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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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4-2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 탓인가?
저랑 똑같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계셨군요. ^^
따끈한 코코아라도 한잔 하셈~~

바람돌이 2008-04-23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코아는 없고 커피는 한잔 하고 있어요. ^^;;

Mephistopheles 2008-04-23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그럼 전 쥐구멍이라도 들어가야 하는 거잖아요!

바람돌이 2008-04-23 23:49   좋아요 0 | URL
이건 그냥 저를 향한 자조 같은건데 이렇게 댓글 다시면 민망하거든요.ㅠ.ㅠ

순오기 2008-04-23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모르지만, 저도 책에서 나의 이중성을 만나면 정말 쥐구멍 찾고 싶어요.ㅠㅠ

바람돌이 2008-04-23 23:50   좋아요 0 | URL
가끔 책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어떤 문장하나에서 나의 모습을 만날때도 있네요. 그럼으로써 자신을 다시 다잡도록 하는것도 책에서 얻는 보물이겠죠?

클리오 2008-04-23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못한 사람도 있다는 말을 해봤자 위로도 안되고 위로하셔도 안되겠죠? ㅎㅎ 한반짝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얄텐데 말이죠

바람돌이 2008-04-23 23:53   좋아요 0 | URL
진짜 위로는 아니다 그쵸? ㅎㅎ 지금 당장은 그저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것 정도... 더 이상 나아가야 한다면 어디로 어떻게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이유는 알아요. 제가 가진것들을 놓지 않는 선에서 할수 있는 것만 찾기 때문이라는 거 말예요. 아 간사해요.
 

 

 

 

 

일제하 식민지 시대라는 말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말 그대로 암흑이다.
민중의 삶은 피폐하기 이를데 없고, 모든 조선의 백성들은 다 독립운동에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누구나가 다 일제에 저항적인 맘은 다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일본인은 모두 나쁜 놈 왜놈이고......
물론 그 시대가 암흑이 아니었다고 강변할 생각은 전혀 없으나 김학철씨의 책을 읽으면서 이런 고정관념을 거스르는 이면의 장면들이 꽤 인상적이었다. 물론 이 상황들은 절대로 일반화 될 수 없는 예외적인 상황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수많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수많은 예외적인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그 상황의 풍부함을 비주류로 한구석에 치워버리거나 아니면 획일화의 칼 속에 던져 넣을때 억압이 시작된다.

 

일본 해군의 연합함대가 원산항에 기항 했을 때의 장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 선생님 인솔하에 등함한 우리를 깨끗한 수병복을 입은 젊은 수병이 데리고 다니며 일일이 설명을 해주는데 그 설명을 듣고 나니 우리는 절로들 어깨가 으쓱거렸다.
"우리 해군이 세계 제일이다."
"우리 무적 함대 앞에 어느 놈이 감히!"
우리는 긍지감에 가슴들이 부풀 지경이었다.
반일 감정과 친일 감정이 밀물과 썰물처럼 아침저녁으로 갈마들고 섞바뀌는 기이한 시절이었다.(14쪽)

원산대파업때의 풍경 - (조선인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자 항구에서 깡패들이 동원돼 파업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을때) 안벽에 선복을 붙이고 있던 (파업때문에 여러 날째 화물을 부리지도 싣지도 못하고 발이 묶여 있던) '쓰리가마루'라는 화물선의 갑판 위에서 관전을 하고 있던 일본 선원들이 별안간 고함을 지르며 발들을 굴러댔다.
"파업만세!"
"형제들 버텨라!"
이것을 신호로나 한 듯이 안벽에 정박해 있던 다른 일본 기선의 선원들도 모두 다 응원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일제히 우렁차게 기적들을 울려줌으로써 파업자들의 기세를 와짝 올려주었다.
나는 금세 우쭐우쭐 어깻바람이 났다.
- 잘한다. 우리 편이 이긴다!
그러나 다음 순간
- 하지만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 편을?......
하나의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 왜
놈들은 다 악당이어야 하잖는가......(41-42쪽)

이재유의 탈출사건 -  그런데 어찌 알았으리, 이 이재유가 놀랍게도 온 장안의 예상을 뒤엎고 경성제국대학의 한 일본인 교수 댁에 가 숨어 있었을 줄을. 미야케 시카노스케라는 그 교수의 이름이 신문에 선명하게 찍혀 나왔을때
- 제국대학의 한다하는 일본 교수가 우리 탈옥수를 숨겨주다니!
나는 정말이지 제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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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8-01-10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현실이었겠죠. 어쩌다 할머니들에게 일제시대 얘기 들어도 추억처럼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고, 황국신민서사도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거 외우면 식량줘서 달달 외워 지금도 기억한다는 분도 봤어요. 읽어보고 싶네요, 이 책.

바람돌이 2008-01-11 00:17   좋아요 0 | URL
김학철씨의 자서전인데 그 힘들었던 시대의 자신의 삶을 이렇게 낙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게 경이롭게 느껴지는 책이었어요. 무엇보다 지겨운지 모르고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것도 이 책의 장점이고요. 근데요. 이 책 알라딘에서는 품절이라니... ㅠ.ㅠ 다른데는 모르겠어요.
 

 

 

 

 

 

원시기독교는 동서로마제국의 분열 이후 분리가 시작되고 특히 8-9세기에 일어난 성상숭배문제를 둘러싼 논쟁과 동로마제국의 성상파괴운동을 계기로 분리가 심화된다.  여기에 기독교계의 주도권을 둘러싼 로마 교황과 비잔틴 황제와의 대립으로 결국 카톨릭과 동방정교로 분리된 것.


1453년 비잔틴 제국의 멸망은 동방정교에게는 시련의 시작이었다. 이슬람세력의 지배를 받게 된 동방정교는 이후 각 지역별로 특색을 가지는, 중앙집권성보다는 지방성이 강한 종교가 되기 시작하였다. 카톨릭이 위계적인 질서가 엄격한 종교로 발달한 반면 정교에선 각 교구의 주교들은 수평적인 관계를 이루고 성직자와 평신도 역시 개인적인 권위는 갖지 않는 수평적인 관계가 발달한다.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시절 오스만제국은 동방정교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그 관리를 그리스에 위임, 그래서 동방정교를 그리스정교라도 한다.



하지만 이 시기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발칸지역과는 달리 독립하고 있던 러시아 정교회가 그리스정교회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 - 때로는 러시아정교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종교를 주도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지역전체를 아우르는 특성으로 파악하고자 한다면 동방정교라고 부르는게 타당할 듯....


카톨릭의 신학이 이론적이고 추상적이며 논리적으로 파고드는 학문적인 성격인데 비해, 동방정교의 핵심은 신앙, 즉 믿음을 몸소 체험하는 것을 중시하며 기독교 신앙 안에서 몸소 하느님을 배우고 체험하는 것을 중시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세계가 곧 하느님의 세계임으로 성속은 일치한다고 믿는다.


그리스정교는 크리스마스보다는 예수의 부활절을 가장 큰 축일로 여긴다.(기독교의 원죄의식보다는 구원을 더 중시함으로 해서) 그리고 성가라는 것 자체가 마음의 기도이기 때문에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로 부르는 성가만이 허용된다. 그리고 가장 특징적인 것 중의 하나고 이콘의 숭배인데 교회 가정 등 어느곳에서나 예배때 사용하고 있다. 이콘은 초기 기독교때는 없었고 2-4세기에 유행하다가 8-9세기 성상파괴때 거의 대부분 파괴되었다. 하지만 9세기 중엽 이후 북쪽의 슬라브족이 대거 비잔틴 제국내로 이동해오면서 이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다시 유행, 동방정교의 중요한 예배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 외 발칸반도에는 큰 교회가 드문 편인데 그것은 오스만제국이 동방정교도들에게 정교자체는 금지하지 않았지만 이슬람교회보다 크고 화려하게 짓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문높이를 1M로 제한해서 그 낮은 문으로 기어들어가도록 했다. 따라서 이 지역의 교회는 땅을 파 지면보다 낮은 곳에 교회를 지은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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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9-2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 정교라고 배운 기억이 나네요. 러시아도 이 종교를 믿었더랬죠?
그래서 한국엔 알려지지 않은 듯...

바람돌이 2007-09-29 23:38   좋아요 0 | URL
저도 아무 생각없이 그냥 그리스정교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그리스정교라는 말의 유래는 오스만제국이 통치의 효율을 위해 동방정교도들의 본산을 그리스에 두면서 생긴 말이더군요. 이에 대해 러시아가 반항하면서 동방정교의 전통은 오스만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러시아정교라는 말도 있구요. 근데 실은 이 동방정교는 믿어졌던 곳들이 이전 비잔틴 제국 지역이었는데 제국의 쇠약과 더불어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따라서 지방색을 강력하게 띤답니다.
거기다 동방정교자체가 오스만 제국하에서 오랫동안 탄압을 받다보니 카톨릭과 같은 공격적인 세계포교는 생각할 수 없는 처지였고요.
현대 제국주의 시대에 와서야 러시아는 혁명의 성공으로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 되었으니 더더욱 타지역에서의 선교같은건 성립될 수가 없었겠죠. 그러다보니 원래의 지역의 종교로 남게된거고요.
근데 종교의 생활과의 밀착은 굉장히 강해서 오스만제국의 그 오랜 통치기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지역에서는 압도적인 종교로 남아있었답니다.
 

 

 

 

 

5부 - 산수보다 아름다움 필묵의 세계 - 19세기의 산수화

1. 산수를 벗어난 산수화   - 19세기의 산수화는 산수경치를 그린 것이기에 앞서 옛 대가의 글씨체나 화풍의 필묵법에 대한 학습과 운용으로 만들어진 조형세계였고, 18세기를 거쳐서야 등장할 수 있었던 다음단계의 회화세계였다. 즉 산수라는 眞과 산수화라는 假(眞에서 빌린 것)를 동질적으로 보았던 관점에서, 산수라는 眞과 산수화라는 幻의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을 거쳐, 독립된 畵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었다. 
  19세기의 산수화가들은 산수를 빌리듯 옮겨 그려내거나 혹은 특정 부분을 강조하여 멋지게 그려야 한다는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나 화면 위에 필묵의 멋을 구현하는데 주력하게 되었다. 그들은 옛 회화의 필묵법을 두루 정리하여 가리고 멋진 서예기법을 탐구하여 산수화면으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2. 옛 대가의 뜻이 담긴 필묵법 - 19세기에 오면 중국의 남종 문인화의 회화양식이 대거 유행하게 되는데 이런 남종문인화로 그린다는 것은 그 기법을 따르는 것이며 동시에 존경할만한 옛 문인화가의 정신세계를 존중하고 계승한다는 의미를 내표하고 있었다. 따라서 19세기의 화가(강세황, 신위같은 이들)들은 이런 남종문인화들을 베끼고 비슷하게 그리는 이른바 <방작>들을 양산하게 된다. 방작의 열성적인 생산과 감상은 그림에서 벗어나 옛 화가들의 기법에 대한 이해와 나름의 변화에 대한 고민으로, 그리고 응용된 필묵의 묘미를 감상하고 비교하는데로 빠져들었다.

3. 기운과 정신을 표현하는 필묵법 - 남종문인화풍이 시대양식으로 부상하면서 동시에 요구된 것이 그림속의 문인다운 기운, 이름하여 士氣, 書券氣 등이었다. 이런 풍토속에서 19세기 조선의 산수화들은 더욱 직접적인 문자의 형상미를 보여주려 하였다. 추사가 그린 산수화들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그의 산수화 대부분은 회화 작품이라고 하기 어려울만큼 서예적 필선들로 구성되어있다. 또한 추사가 이인상 산수화의 산석 표현에 전서와 예서의 획이 사용된 것을 보고 이인상의 산수화에 문자기가 있다고 칭송한 이유의 추론이 가능하다.
  또하나 19세기 산수화의 성격은 선종적 깨달음의 세계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문인들에게 이것은 완전한 선승의 경지였다기보다는 지극한 탈속의 정신적 분위기 혹은 무욕과 초탈함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한 강렬한 욕구에 가까웠다.

제 6부 세속의 소망이 담긴 산수 - 민화산수도

  일반회화와 구별되는 민화라는 그림들의 특성은 세속적 바람과 쓰임을 반영하기 위한 기능적 회화이자 장식적 회화라는 점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단순한 형태와 선명한 색체로 그려졌다. 원래 민화의 전통은 상류층의 풍습에서 시작된 기복의 풍습이 사회 전체적으로 확대되면서 나타난 문화현상이다.  따라서조선의 회화전통및 일상생활의 정서와 소망에 기반을 두고 변화와 창조가 이루어졌다. 특히 민화산수도는 다른 민화들에 비하여 조선 특유의 내용을 가장 많이 보여주고 있다.(상류층의 산수화에서 애용되었던 주제들, 금강산도, 산수유람도, 소상팔경도등이 여러가지 형태로 변형되어 시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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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넘어 2007-05-0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의 핵심을 요약해 주니 좋습니다. ^^

바람돌이 2007-05-02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수록 잊어먹는 속도가 빨라서 이러면 좀 오래 기억할까 싶어 하는거랍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