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리뷰를 쓰거나 평가를 하는 것 자체가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 경우가 있다.

어떤 어려움에서 책을 만들었을지, 얼마나 공이 들어갔을지, 그 의미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생각하다보면 이런 저런 비평을 얹는 것이 실례가 된다는 느낌이랄까?

오랫만에 그런 책을 만났다.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는 독립운동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이름조차 알려지지 못한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에 들어서 이런 책들이 몇권 나오긴 했지만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의 책은 책의 만듦새에서 부터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까지 굉장히 많은 공을 들이고 잘 만들었다.


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각 챕터마다 윤석남화가의 초상화가 있다.

독립운동가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거나, 그의 활동모습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모습의 초상화들이다. 

표지의 초상화는 정정화선생의 초상화다. 

26년간을 임시정부의 안주인으로 불리우며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를 하신 분이다. 

누군가는 밥하고 빨래하고 병든 독립운동가들의 간병을 하고, 그게 무슨 독립운동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이가 없으면 어떤 단체도 존재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면 그는 임시정부를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유난히 강조된 손의 크기로 표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서 여성 독립운동가의 역할이 남성 독립운동가를 뒷바라지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그것이 정정화 선생의 개인 활동에 대한 폄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시대적 한계속에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런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분들도 또 어떤 면에서는 한계를 고스란히 품고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던 김마리아 선생의 모습은 책과 칠판, 분필과 함께 가르치는 모습으로, 평양노동자 강주룡은 을밀대에 앉아 농성하는 모습으로, 사회주의 혁명가 박진홍은 책을 좋아했던 모습으로 등등 그분들의 삶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초상화도 훌륭한 작품들이다.

대부분의 초상화가 형형한 눈빛과 강조된 손으로 그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특히 손에 많은 관심이 갔다.

이 책의 초상화들은 모두 세로 210cm 가로 94cm의 대작들이다. 

전시회도 가봤으면 좋겠지만 이놈의 코로나가 여행을 허락하지 않으니....


세로로 긴 그림에 맞춰 책의 판형을 맞췄다. 이런 세심함이 마음에 든다.

글을 쓴 김이경 작가의 글 역시 일률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각 독립운동가의 활동 특성에 따라 평전형식, 일기 형식, 인터뷰 형식, 회고록 형식 등 다양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기본 자료가 너무도 부족한 상황에서 얻어낸 자료를 어떻게 제대로 살려낼까를 많이 고심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우리에게 많지는 않지만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되살피고 기억하게 만든다.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그 시작 지점에서 이렇게 세심한 책이 나왔다는 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독립운동가라고 해서 항상 올바르기만 하고, 굳건하기만 하고 흠없는 삶을 살았을까?

그런 삶이 어디 있겠는가?

책을 읽다 보면 각 독립운동가의 삶이나 행동, 생각이 지나치게 이상화되었다는 생각은 분명히 든다.

예를 들면 김마리아 선생의 다음과 같은 말,


"국내 일반 인민은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설립되었다는 말을 듣고 소수의 조직이든 인물이 좋든 나쁘든 상관하지 않고 다 기뻐하여 금전도 아끼지 않고 적의 악형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외지에서 임시정부를 반대하던 자도 국내에 들어와서 금전을 모집할 때에는 다 임시정부의 이름을 파는 것이 바로 국내 동포가 임시정부를 믿는 증거다. 만약 5년의 역사를 가진 정부를 없앤다면 소수는 만족할지모르나 대다수는 슬퍼할 것이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개조하자. - P28


1923년 국민대표대회에서 임시정부의 운명을 놓고 개조파와 창조파의 논쟁이 벌어졌을 때 김마리아 선생의 입장이다.

솔직히 이 말은 지나치게 감상적이며 임시정부라는 중대 조직의 진로에 대해 전혀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언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판은 잠시 미루기로 한다.

도대체가 자신의 모든 삶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에 대해서, 이 나라가 그리고 후손들이 뭐 하나 해준게 없는데 어떻게 감히 비판부터 하겠는가 말이다.

제대로 그들의 삶을 복원하고 기억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바로 그 복원과 기억의 출발점에 위치해 있으므로, 이상화된 서술은 아직은 흠이 아니다.

다만 짧은 글이 아쉬움을 더하므로 내가 읽은 책, 읽고 싶은 책들을 모아보았다.(더 많은 책들이 책의 뒷편 참고 문헌에 나와있다. 이 글은 내가 쓰는 페이퍼니까 내가 읽고 싶고, 읽었던 책, 좋아하는 책들만 모아 보았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책들을 모아보고, 이후 더 많은 책들이 나와주길 기대한다. 

기억의 힘을 믿는다. 




책 속 두번째 주인공 - 강주룡

 그나마 이렇게 소설로라도 되살려지는게 어딘가?

가난하고 이름없는 노동자로, 을밀대 지붕위애 오도마니 앉아있는 오래된 신문기사 하나로만 남아있던 강주룡 선생의 삶이 비록 소설로라도 재구성되고 그녀의 이름 세자가 알려졌으니 감사한 일이다. 다만 이 책에서 윤석남 화가의 강주룡 초상화는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당시 20대였던 강주룡이라기 보다는 지나치게 나이가 들어보이게 그려졌으며, 노동자 투사였던 그녀라면 손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상하게 강주룡 선생의 그림에서는 손이 보이지 않는다. 










책 속 세번째 주인공 - 정정화

임시정부의 안주인 역할을 했던 정정화 선생의 자서전인데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장강일기>, 1998년 나온 책인데 다행히 아직 품절되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는 독립투사 이상용 선생의 손부였던 허은선생의 회고를 구술한 책이다.

두 분의 역할이 어쩌면 비슷해 보일 수도 있는데 한분은 임시정부, 한분은 간도 지역에서의 경험들을 얘기하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허은선생의 회고록과 비교하면서 읽으면 좋을 듯하여 보관함에 넣어본다.





















책 속 네번째 주인공 - 박진홍

여성독립운동가이면서 심지어 사회주의자이고 월북까지 하면 더더욱 자료는 찾기 힘들어진다. 박진홍, 이효정, 이순금 같은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들의 이야기는 안재성씨의 소설 <경성 트로이카>에 제법 나온다. 

이들에 대한 책을 찾다 보니 <조선의 페미니스트>라는 책이 있다. 독립운동가로서의 이들만이 아니라 조선의 일상과 기존 관념과 맞서 싸우던 페미니스트로서의 이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인듯하여 관심이 간다. 

그리고 박진홍이 남편(박진홍은 집사람이라고 불렀던)이었던 김태준과 연안으로 가 조선의용군에 합류했던 것을 생각하면 안재성씨의 소설 <연안행>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읽고싶은 책으로 찜해둔다.

이관술, 이재유, 박헌영의  평전이 나왔듯 박진홍의 평전, 이효정, 이순금의 평전을 보고싶다. 남성들의 서사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오롯이 주인공인.....




책속 일곱번째 주인공 - 정칠성

기생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 정칠성. 나도 처음 알았다. 얼마전에 <신여성이란 무엇?>이란 책이 출간된걸 보고 보관함에 넣으면서 갸웃 했는데 이 책의 정체가 뭔지 이제 알게 되었다. 정칠성 선생 역시 월북하면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독립운동가이다. 하지만 이분은 진짜 관심이 많이 가는게 기생출신이 말해주듯 예술가로 출발했다가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 사상가로 변신해나가는 과정이 정말 아름다운 삶의 궤적을 보여주리나는 느낌이다. 

누군가 이분의 일대기를 평전이나 소설로 되살릴 수 없을까?
























책속 열번째 주인공-김 알렉산드라

지난 번 페이퍼에서도 간단하게 언급했었던 분. 한국인 최초로 볼세비키가 되어 만주 지역에서, 우랄 지역에서 조선인 뿐만 아니라 중국인, 러시아인까지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 싸웠던 여성. 최근에 읽었던 <피에 젖은 땅>을 생각하면 아마 백군에 의해 살해되지 않았다면 스탈린에 의해 숙청 되었을 것 같은 여성 혁명가. 

그녀의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이고 혁명적 열정에 넘치는 모습들을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책들이 나와 있어 참 다행이다.





















책속 열세번째 열 네번째 주인공 박차정, 이화림

김원봉의 주도로 만들어졌던 조선의용대와 뒤를 이은 조선의용군에서 활동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 직접 총을 들고 싸웠던 분들이다.

박차정선생은 김원봉의 부인으로 더 알려져 있으나 그 자신 뛰어난 독립운동가였으며, 여성의 해방을 설파한 시대를 앞서간 여성운동가이기도 하였다.

<항일무장투쟁과 여성 독립운동가>는 박차정선생과 이화림 선생의 이야기가 모두 실려있어 관심이 가는 책이다.

그 외에 이들이 활동했던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에 대해서 보려면 결국 약산 김원봉 평전이나 김학철 선생의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을 볼 수 있다.

이 중 <최후의 분대장>은 나의 최고의 책 중 하나다. 


지금 밀양에는 박차정 선생의 묘가 있다.

1941년 곤륜산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였던 박차정 선생은 그 휴유증으로 1944년 돌아가시고, 김원봉선생은 귀국할 때 그녀의 뼛가루를 품에 안고 와서 고향 뒷산에 묻는다. 

부부이자 동지였던 이들이 나란히 묻힐 수 있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해방공간에서 김원봉선생의 월북으로 부부는 죽어서도 아직까지 이별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김원봉 선생은 아직도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으며, 박차정선생은 1995년에 가서야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을 수 있었다. 

2년전인가? 찾아봤던 박차정선생의 무덤은 길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였고, 이분이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쓸쓸하였다.




심지어 독립운동가 박차정이 아니라 '약산 김원봉장군의 처 박차정 의사의 묘'라는 저 묘비는 씁쓸하였다.

아마도 살아 생전에는 오히려 선생은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독립운동가 박차정이었을 것인데, 죽은 뒤의 자리가 누군가의 아내라는 것으로 쓰여지는 것은 선생에 대한 부당한 대우라고 생각한다. 설사 그 남편이 아무리 큰 인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 책에는 중요한 여성독립운동가 3명이 빠져있다.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들이 빠진건 어쩌면 아직도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 현실의 반영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다행히 이들의 삶은 소설로 복원되었다. 

















읽고 싶고 읽어야 하는 책들은 많고, 여전히 시간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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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9 08: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해서 잘 몰랐던 역사인데 이렇게 정성스러운 리뷰를 통해 알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가 많이 알려지면 좋겠어요^^

바람돌이 2021-04-29 23:39   좋아요 0 | URL
더 많은 것들이 알려지고 그분들의 공적이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오랜 시간 묻혀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대중적인 책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면 전문가들의 연구도 더 이어질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수이 2021-04-29 08: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세 여자 무조건 강추요.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읽고픈 책들은 하염없고 생활은 무조건 책만 읽기를 말리고, 그러다 가끔 팽 신경질도 부려보고 책이 다 무슨 소용인가 안 읽다가 다시 또 그 길로 돌아가게 되고, 그렇게 계속 읽는 거 같아요. 서울은 꾸물꾸물 거려요. 부산 하늘은 어떠할지?! 오늘도 힘 :)

바람돌이 2021-04-29 23:41   좋아요 0 | URL
조만간 세여자는 볼 거 같아요. 전부터 찜해두었던 책인데 자꾸 보고싶은 책이 있으니까 밀리네요. 다음주쯤엔 세여자 먼저 읽는걸로 불끈 결심합니다. ^^부산은 꾸물거리기도 하는데 점점 더워져요. ㅠ.ㅠ

mini74 2021-04-30 2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밀양에선 친일작곡가 이름을 딴 음악회는 열리면서 김원봉선생님의 생가는 헐어버리려 한 시기가 있었죠. 지금은 음악제 이름도 바뀌었고 생가도 보존하고 한다지만 여전히 이유를 불문하고 좌익쪽 이름이 붙은 독립운동가들을 홀대하는거 같아 속상합니다. 여성운동가들 또한 변절자는 교육자니 뭐니로 남아 떵떵거리고 오히려 진정한 독립운동가나 여성운동가분들은 저조차도 잘 몰라 부끄러워요 ㅠㅠ 바람돌이님 리뷰 보면서 반성도 되고 씁쓸합니다 ㅎㅎ 이 책 찜입니다 *^^*

바람돌이 2021-05-02 01:00   좋아요 1 | URL
그래도 지금은 밀양에 나름대로 독립운동가의 거리가 제법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박물관거리를 산책하며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생각해보기 좋아요. 하지만 박차정선생의 묘소는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일단 찾아가는 것도 너무 어려웠고, 산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서 이거 길 맞아 하면서 찾아갔다는.....
부끄럽기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에 나온 분들 중에는 저도 모르는 분들이 있었는걸요. (저 역사전공이에요. . 그러니가 제가 진짜 부끄러운거죠. ㅠ.ㅠ)

하양물감 2021-04-30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 책 좀 읽었다고 자부하는데 이 분들 성함조차도 낯섭니다. 기회가 될 때 읽어봐야겠어요~

바람돌이 2021-05-02 01:01   좋아요 1 | URL
책은 청소년이 읽어도 좋게 쉬워요. 그분들의 삶은 무겁지만 책은 무겁지 않아서 금방 읽을 수 있어요. ^^

희선 2021-05-03 0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 때 배운 역사에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거의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말이 나온 건 얼마 되지 않았네요 그것보다 제가 잘 몰랐던 거겠습니다 독립운동을 했다 해도 사람이기도 하니 그런 것도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한테는 좋은 점뿐 아니라 안 좋은 점도 있잖아요 김원봉 선생은 들어봤지만, 박차정 선생은 몰랐네요 부인이라고 그렇게 써두다니...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박차정으로 봐야 할 텐데요


희선

바람돌이 2021-05-07 00:24   좋아요 0 | URL
박차정선생이 부산 출신이라 이 지역에서는 그래도 일찍 알려진 편이에요. 그분이 했던 활동과 역할에 비해서 지나치게 과소평가되었지요. 그건 박차정선생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마찬가지인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scott 2021-05-07 16: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작 2관王~~
추카~추카~
서울은 황사 먼지에 앞 시야가 가려 질정도 ,,,
주말 멋지게 보내세요 ^ㅅ^

바람돌이 2021-05-07 18:0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재 대문이 아주 멋지게바뀌었네요.
scott님도 페이퍼 당선 축하드립니다. 아주 멋진 글이었어요.

오늘 여긴 바람이 장난 아니에요. 황사먼지는 그래도 서울하고는 비교도 안되죠. 그래도 동쪽 끝이니까요. ^^
scott님도 멋진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1-05-07 16: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2관왕 축하드려요~!!

바람돌이 2021-05-07 18:06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이번 주말도 즐겁게 보내세요. ^^

모나리자 2021-05-07 16: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당선작 추카 드려요~바람돌이님~^_^!!

바람돌이 2021-05-07 18:07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모나리자님도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

초딩 2021-05-08 18: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관왕 축하드립니다~
페이퍼와 리뷰 모두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바람돌이 2021-05-08 22:5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 데미안 글 저도 참 좋았는데 역시 당선 축하드려요. 남은 휴일 즐겁게 보내시길...
 















나는 좋은 책, 알려진 책, 많이 팔리는 책에 서평이 몰리는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서평(크리틱)이 가장 필요한 책은 '바람직하지 않은 내용 혹은 별 내용이 아닌데' 많이 팔려서 비판으로 판매량을 줄여야 하는 책이다. (11쪽)


어떤 책의 서평을 쓸 것인가에 대한 정희진 작가의 생각!


잠시 나는 어떤 책에 리뷰를 쓰는지 생각해보니...


기준이 딱 하나 뿐이다. 내게 좋았던 책!! 또는 내 생각이 다른 사람과 너무 달라서 뭔가 얘기를 해야 할 거 같은 책 정도!

요즘은 별 4개가 되지 않으면 거의 리뷰를 안 쓴다.

이건 특히 한국 저자들에게 그러한데 내가 뭐라고 내게 안 맞다고 이 사람이 힘들게 쓴 책을 깔까 싶은 마음이 확 드는거다.

그래서 소심하게 별 3개 주고 책을 내려 놓는거다.

별도 3개 반정도가 딱 적당하겠다 싶을 때는 그냥 4개를 주는 편인데, 별이 4개임에도 리뷰가 없다? 거의 3개 반이라서 그런거다. 

이런 나의 소심함은 이미 돌아가신 작가거나, 외국 작가들일 때는 좀 나아진다.

그들이 한글을 번역해서까지 내 글을 읽지는 않을거 같으니까....

아 역시 나는 너무 소심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까 내가 좀 찌질해보인다. 별로다. ㅠ.ㅠ


그런데 정희진 작가의 말을 읽자면 쓸데없이 많이 팔리고 별로인 책에도 리뷰를 써야 한다는 거 같은데...

아 이거 어렵다.

나는 한국의 독서 시장에 영향력 1도 없는 개인이지만, 그래도 의무감을 가지고 좋은 책을 위해 나쁜 책을 밀어내자라는데 동참해서 진짜 아니었던 책에도 리뷰를 쓰야 하나?????


쓸 말이 욕밖에 없는 책의 리뷰를 어떻게 쓰지?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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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7 11: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올해부터 리뷰를 쓰기 시작하는데 일단 읽은 책은 다 리뷰 쓰는 걸 원칙으로~!! 올해 읽은 책은 다행이 안좋은 책이 없었던것 같은 ㅎㅎ
근데 안좋은 평가도 필요한데 저같은 경우는 성격이 그래서 안좋게 쓰기는 어려울거 같아요. 안쓰고 말듯 ㅎㅎ

바람돌이 2021-04-27 20:43   좋아요 2 | URL
저도 비슷해요. 특히 작가가 살아있고 한국인인 경우에는 더더더요.... ㅠ.ㅠ
일단 읽은 책은 다 리뷰를 쓰자고 저도 결심한 적은 많은데 정말 그게 어렵더라구요. 일단 쓰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어떤 책은 무슨 말을 쓰야 할지 진짜 모르겠고 뭐 다양한 경우이긴해요. 그래서 저는 요즘 좀 마음 편히 쓸 수 있는것, 쓰고 싶은 책만 쓰자 뭐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ㅎㅎ

모나리자 2021-04-27 11: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은 책은 빠짐없이 쓴다, 를 원칙으로 삼고 있네요. 글쓰기 휸련엔 도움이 되니까요.ㅎ 좋은 하루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1-04-27 20:44   좋아요 3 | URL
와우 역시 알라디너들은 책에 대해 다들 엄청 진심이군요. 설사 다 못쓰더라도 빠짐없이 쓰겠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러번 생각했는데 안되더라구요. ㅎㅎ 모나리자님도 댓글 감사합니다. 남은 오늘 편안한 휴식의 시간 되세요. ^^

잠자냥 2021-04-27 11: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생각해 보니, 주로 좋았던 책, 그래서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어쨌든 리뷰로 남겨서 기억해 두고 싶은 책을 위주로 쓰는 것 같아요.
가끔은 정말 너무 싫어서 비판할 점이 많은 책도 쓰는 것 같습니다.

정희진 선생의 저 말에도 공감이 가네요. ㅎㅎㅎ

바람돌이 2021-04-27 20:47   좋아요 3 | URL
저는 너무 싫은 책은 한 30페이지쯤 읽으면 결판이 나니까 그냥 안 읽어요. 내가 왜 나한테 자해를 해야 해? 이러면서요. 그리고 너무 시시한 책도 30페이지쯤 읽으면 던집니다. 올해도 몇 권의 책이 그런적이 있네요. ㅎㅎ
그래서 안 좋은 책의 리뷰가 없기도 한거 같구요.

정희진 선생의 저 말은 공감은 가지만 문제는 저런 책을 제가 안 읽는다게 문제인 것 같기도 하구요. ^^

han22598 2021-04-27 11: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읽었던 [팩트풀리스]가 그랬습니다 ㅎㅎ 책 전체로 봤을때는 비판할거 백만 가지였는데 그냥 머리말만 가지고 비판글 썼습니다 ㅋ 개인적으로 저는 비판글이 호평글 쓰기보다 쉬운 사람이라서 좀 그래요ㅠㅠ

바람돌이 2021-04-27 20:55   좋아요 2 | URL
[팩트풀니스]가 어떤 책인지 보고 왔어요. 제가 즐겨보는 책 종류는 아닌 것 같고, 소개글들이 좀 맘에 안드네요.
특히 이거, 한스 로슬링과 3분만 함께 있으면, 당신의 세계관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다. - 네이처
아 이거 너무 오만한 말이에요. 아무리 책을 팔아먹는게 중요하다 해도.... 평생을 같이 살아도 한 사람의 세계관도 바꾸기 힘든데 말이죠. han22598 님의 되도록 사람들이 이 책을 안 읽었으면 좋겠다는 돌직구도 잘 읽고 왔습니다. ^^

청아 2021-04-27 12: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별3개 주는 책은 좀 비추하는데다 읽고 화도 약간 나는 책인데 그래도 리뷰를 막상 쓰고나니 좋다는 댓글(아마도 별3개의 의미를 좋은 쪽으로만 보신)분들 보면 미안하고 난감해요. 게다가 그 책을 읽겠다고 하시는 분들보면 저의 멘붕은 이미 안드로메다에..당당하게 자기식대로 살죠뭐! 각자가 자기 인생의 우주인데용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4-27 21:00   좋아요 4 | URL
그래서 별 3개는 리뷰를 안 쓰는 걸로.... ㅎㅎ 아 최근에 저는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이 좀 난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알라딘의 많은 분들이 이 책을 격찬 또 격찬을 해서 저도 열심히 읽었는데요. 솔직히 너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별 3개 반인데 4개를 줬던가? 싶은데 그건 맞춤법 공부를 위한 실용서로서의 이 책의 위치는 괜찮다 정도에 준거거든요. 어쨌든 그래서 리뷰는 안 쓰는걸로..... 오늘 잠시 짬이 나서 정희진씨 책 머리말 좀 읽다가 5분만에 후다닥 쓴 페이퍼인데 반응은 5시간 쓴 페이퍼보다 더 열렬합니다. 역시 알라디너들은 책과 쓰기에 대해서는 다들 진심인 것 같습니다. 각자 자기 식대로요. 그래서 여기가 더 좋아졌습니다. ^^

별족 2021-04-27 13: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쓸 말이 욕 밖에 없으면 욕을 씁니다.
너무 좋은 책이어서 읽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안 생기면, 또는 다른 사람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했으면 쓸 필요 있나, 생각하고 안 씁니다. 그래서 욕이 더 많은 거 같아서 반성하고, 올해는 정말 좋았던 책도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람돌이 2021-04-27 21:02   좋아요 2 | URL
자신의 말에 당당한 별족님 존경합니다. 아 저는 쓸 말이 욕 밖에 없을 때는 자기 검열이 먼저 들어가는거 같아요. 아 이거 내가 제대로 못본거 아닌가? 뭐 이런...... 자신이 없으니 못쓰는거죠. ㅎㅎ

hnine 2021-04-27 14: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리뷰는 읽었다는 기록이라서, 좋든 나쁘든 다 쓰고 있어요.
따라서 1000편의 리뷰가 올라가 있으면 제가 읽은 책은 딱 그만큼 1000편이지, 그보다 더 읽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

바람돌이 2021-04-27 21:04   좋아요 2 | URL
아 오랫만에 오신거 맞죠? hnine님 글은 항상 조곤 조곤 다정하게 얘기해주시는 스타일이라 전 항상 좋아요. 그런데 그게 읽은대로 다 쓰신 글이라니 놀랍네요. 저는 읽고 안쓰거나 못쓰는 책이 점점 더 많아지는데 말이죠. 역시 꼼꼼하고 섬세한 hnine님 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

페넬로페 2021-04-27 15: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웬만하면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남기려고 해요~~
제 기준으로 별점이 좋지 않을 만한건 잘 읽지 않으니 그 책에 대한 비판을 잘 못하는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1-04-27 21:06   좋아요 4 | URL
아 맞아요. 별점이 좋지 않은 책은 잘 읽지 않고, 읽어도 읽다가 집어던지고(이건 저요. ㅎㅎ)....
아 근데 어제 읽은 츠바이크 책 중에서 체스 이야기는 완전 좋았고, 낯선 여인의 편지는 욕 나왔어요. 그래서 이번엔 욕도 한번 써볼려구요. 역시 소심한 저는 작가가 오래전에 돌아가신 분이고 심지어 외국인이라서 그런 결심도 합니다. ㅎㅎ

물감 2021-04-27 18: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비평 위주로 쓰는 저는 호평만 가득한 글을 거의 패스하는 편이에요. 남을 인식해서 내 감정을 속이고 쓴 글들은 다 티가 나더라고요. 별점을 낮게 주기 미안한 경우는 차라리 별점을 매기지 말고 솔직한 평을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알라디너들은 다 착하셔서 그런지 비평글 보기가 정말 힘들어요. 많이 아쉽습니다...

바람돌이 2021-04-27 21:08   좋아요 4 | URL
물감님이 말씀하시는 아쉬움이 뭔지 알겠어요. 사실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가 주례사 비평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서, 어떤 책이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네요. 물감님 말씀 따라 저도 좀 더 자신있게 과감하게 제 생각을 표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stella.K 2021-04-27 19: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재 활동 초기 땐 읽으면 쓴다는 쪽이었는데 지금은 갈수록 안 쓰게 되더군요.
이벤트로 받은 책은 무조건 써야하니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솔직하게 쓰죠.
저는 저자의 말에 원칙적으론 동의하지만 마음에 안 든다면 아예 안 쓰는 게 차라리 낫잖나 싶어요.
별거 아니라고 리뷰 써 봤자 그 이후에도 계속 좋다는 리뷰가 달리면
오히려 나만 뻘쭘해지고 노이즈 마케팅에 역풍을 맞을 수도 있거든요.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었구요.ㅋ

바람돌이 2021-04-27 21:16   좋아요 4 | URL
아니 리뷰때문에 노이즈 마케팅 역풍이라니.... 속상하셨겠어요. 그래도 여전히 열심히 읽고 쓰시는 stella.K님 존경스럽습니다. ^^
저는 요즘 이벤트용 출판사 증정 도서는 아예 근처도 안가고 받을 생각 절대 안합니다. 이게 책이 좋아서 좋다고 쓰도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고, 안 좋은 책은 안 좋다고 쓰면 출판사에 미안하고, 그렇다고 아예 안 쓰는 것도 양심이 찔리고..... 아 진짜 못할 짓이더라구요. 그냥 책은 내돈내산하고, 아니면 우리나라 도서관 완전 잘 되어있으니까 빌려보고요. 그게 맘편해요. ^^

붕붕툐툐 2021-04-27 22: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만의 비밀 병기(?) 【읽다 말은 책】 리뷰가 있습니다! 요게 그나마 좀 비판적인 리뷰인 듯 싶어요. 저는 제가 완독한 책은 별점을 잘 주는 편인데, 내가 읽었잖아요. 내가 선택해서 읽었으니, 가치를 높게 쳐주려는 그런 심리 발동.. 하.. 저는 이렇게 자기애가 강합니다~ㅎㅎ

바람돌이 2021-04-27 22:54   좋아요 3 | URL
읽다 말은 책 리뷰라니... ㅎㅎ 붕붕툐툐님 답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참신하고 좋네요.
저도 다 읽은 책에 대해서는 별점이 좋은 편입니다. 역시 다 읽었으니까요. 중간에 안 던졌잖아요. ㅎㅎ 자기애가 강한 우리 화이팅하자구요. ^^

수이 2021-04-27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능하면 읽은 책은 다 써두자 주의인데 음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어요. 제가 쓴 리뷰는 출판 시장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해서 마음 편하게 써요 헤헤

바람돌이 2021-04-27 23:26   좋아요 1 | URL
당연히 좋은거죠. 그걸 하시는 수연님이 대단! 저는 하고싶은데 못하는거구요. ㅠㅠ

psyche 2021-04-28 02: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은 책을 다 쓰고 싶지만,
좋은 책인 경우는 잘 쓰고 싶어서 미루다가 나중에 쓰려고 보면 까먹어서 못 쓰고,
영어책인데 별로였던 책은 그래도 막 별로였다고 쓰는데 한국 작가의 경우는 막 뭐라고 못하겠더라고요. 내가 뭐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요.
남들이 특히 알라딘에서 다들 좋아하는 책인데 저는 별로인 것도 잘 못 쓰겠고...
바람돌이님이 저랑 비슷하셔서 괜히 반갑네요.



바람돌이 2021-04-29 00:16   좋아요 1 | URL
psyche 님 저랑 완전 비슷!!
특히 좋은 책인 경우는 잘 쓰고 싶어서 미루다가 나중에 까먹어서 못 쓰고 있는거요. ㅎㅎ
저 지금 자기만의 방 너무 좋아서 막 쓰고 싶은데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할까만 고민하다가 다 까먹게 생겼어요. ㅠ.ㅠ

- 2021-04-30 00:34   좋아요 0 | URL
비판으로 판매량을 줄여야할 책은 읽다가 말기 때문에 (내가 왜 아까운 시간을 투자해 읽어야 하나...) 안쓰는 것 같고... 산 책 중에서 읽다가 돈 아까웠던 책에는 날카롭게 별로인 이유를 남겨드립니다.. 저도 좋아하는 책은 미루다가 못쓰고, 백자평 정도는 남기자.. 인데 이것도 게으름 부리다가 못쓰고... 독후감은 읽은 책들 정리하다 삘받으면 쓰는 편입니다. 읽느라 진빠져서 독후활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의 책들이 많긴 해요.. 문제는 제 진을 빠지게 하는 책들이 독후감을 쓰는 책들보다 좋은 책들인 경우가 1:4 정도로 많다는...ㅋㅋㅋ
결론: 적당히 좋아한 책에만 독후감 쓴다.

바람돌이 2021-05-02 00:54   좋아요 1 | URL
책읽기와 글쓰기가 동시에 가기는 다른 분들에게도 쉽지는 않은 일이군요. ㅎㅎ
항상 그래도 읽은 책은(다 읽은 책은 제 나름으로는 어느 한부분이든지 괜찮았다는 뜻이므로) 좀 쓰자 싶은데 참 어려워요. 그래도 몇자라도 긁적여서 리뷰든 페이퍼든 쓰고 나면 비로소 읽기가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읽은 책들도 막 쌓아두는데 역시 문제는 그 높이도 자꾸 높아져가고, 이건 어느 정도 높아지면 그냥 책꽂이로 넣어버린다는게 문제예요. 아휴 저걸 언제 다 써? 하면서 말이죠.
적당히 좋아한 책에만 독후감 쓴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인듯요. 진짜 막 좋은책은 읽다가 진빠지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뭔가 좀 더 음미하면서 잘 쓰고 싶어서 미뤄두다가 못쓰는....ㅠ.ㅠ

- 2021-05-02 01:24   좋아요 0 | URL
댓글들 읽으며 서재이웃님들의 스타일을 알아가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네요 ㅎㅎㅎ

하양물감 2021-04-30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내 기준에 안 맞다고 안 좋은 책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 책은 독자 대상을 추천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처음 접하는 분, 좀 아는 분, 관심 많은 분, 어린이나 청소년용, 학부모용 등등... 내가 많이 읽어서 좀 아는 책인데 별로다 싶으면 이쪽 분야 좀 아는 분은 읽지 마시오.... 정도?

바람돌이 2021-05-02 00:55   좋아요 1 | URL
오오오~~~ 이런 식의 리뷰도 있겠군요. ㅎㅎ
기준에 맞추어서 추천하는 리뷰도 앞으로 잘 생각해두겠습니다. ^^

희선 2021-05-03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달라서 자신한테 좋은 책이 다른 사람한테도 좋은 책은 아닐 때도 있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좋다고 해도 자신은 별로일 때도 있고... 제가 그럴 때가 많은데, 그럴 때는 제가 이상한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저는 읽은 책은 다 써요 잘 쓰지도 못하면서 다 쓰다니... 쓰고 싶은 것만 잘 쓰는 사람 부럽습니다 그게 더 좋은 듯해요


희선

바람돌이 2021-05-07 00:26   좋아요 0 | URL
읽은 책을 다 쓰는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요. 희선님의 글은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아서 읽고 나면 뭔가 위로받는 느낌이 나요. ^^ 저는 언제 읽은 책은 다 썼다라고 해볼까 싶습니다. ㅠ.ㅠ
 

1. 고조선의 고(古)는 삼국유사에서 처음 보임
   - 삼국유사에서는 고조선(단군조선+기자조선) - 위만조선으로 구분(즉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하여 古자를 붙임
   - 그러나 후의 조선에서는 이런 구분이 별로 사용되지 않고 여러가지로 사용되나 흔히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이 많이 사용 
   - 17세기 이후 기자조선-마한-신라-고려-조선으로 우리 역사를 체계화하려는 사고방식  
   - 특히 대한제국 시기는 기자존숭이 극에 달함. 기자를 중흥군주의 모범으로 삼음 
   -기자를 왕도정치의 모범, 성현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율곡 이이<기자실기>에서이다 

2. 565년 중국 <북제서>에 처음으로 '김진흥'이란 이름이 보임 - 진흥왕
  - 진흥왕때 한강유역 점령 이후 중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외교상 성씨를 쓰기 시작한듯.
    (특히 도당유학생들이나 장보고 같이 당에서 활동한 사람들은 대부분 성씨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이름을 쓰는 방법의 차이에서 유래함)
  - 이후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며 왕실의 계보를 정리
  - 고구려 장수왕때 중국에 보내는 국서에서 고씨 사용
  - 백제 4세기 근초고왕때 여씨 성을, 7세기 무왕때 부여씨를 씀
  -고려 초기 성씨 확산, 하기만 성을 가진 사람은 여전히 소수 지배층 - 적어도 지방의 지배집단 이상 신분의 사람이어야 했다. 여기서 백성(百姓)이라는 말 유래
  - 본관 역시 고려초부터 생김. 본관은 해당 지방에 대한 지배권에서 유래, 이후 국가가 民에게 역을 부과하는데 기초자료가 됨
  - 16세기까지는 전체 인구 중 40%정도가 성이 없음.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 타파, 1909년 일본 통감부 치하에서 새로운 호적제도인 민적법이 사용되면서 성과 본관이 일반화 됨  

3. 고려시대 왕의 측근을 가리키던 내시라는 명칭이 환관과 혼동되기 시작한 계기
  - 무신정권기 의종이 환관 정함을 내시에 임명. 이후 고려에서 원간섭기에 환관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
  - 공민왕 5년(1356) 환관의 관청을 새로 설치하는데 그 이름이 내시부. - 따라서 이후 환관과 본래의 내시가 혼동되어 불리기 시작 - 조선시대에는 내시는 환관과 동의어로 쓰임.

4. 고려장의 유래  
  - 중국 <효자전>에 실린 원곡이야기, <고려대장경>에 수록된 <잡보장경>의 기로국설화
  - 여기서 기로국이 고리국 또는 고려국으로, 기로장이 고려장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 고려장을 고려 때 실제 풍습이라고 두루 믿게 된것은 일제시대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동화집>에 이 이야기를 실으면서 부터 확대재생산 된듯....
 - <조선 동화집>의 편집과장 "오다 쇼고" - 대표적인 식민사학자  

5. 현무양처의 신화
  - 조선시대 이상적 여성은 현모양처가 아니라 열녀, 효부
  - 근대 이후 생산영역과 재생산영역(가정)의 구분이 명확해지면서 새로운 여성상을 요구하게 되면서 등장, 여성은 자녀교육의 담당자이며 따라서 여성의 교육이 강조된다.
  - 동시에 식민지 시절 현모양처는 일본제국주의의 통치이데올로기로 활용됨. 여성교육을 통해 가정에서부터의 사회적 황국신민화 시도. 이를 위해  "현모양처"의 개념이 조선의 전통사회와 닿아있음을 선동. 따라서 현모양처가 근대적 산물임에도 전근대의 산물로 오인받게 되는 것
  - 신사임당의 등장 :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현모양처의 강조. 60년대 초 - 신사임당 전기 출간, 5/17일 신사임당의 날 제정 등... 

6. 온달과 평강공주의 결혼에 대한 평가 - 조선 유학자의 입장에서 보다
  안정복, <동사강목>제3 상 정유년 11월 
고구려 왕의 말이 일시적인 희롱에서 나온 것이요, 처음에 온달과 약혼한 일은 없었으니, 공주가 비록 신의를 지키고자 하였으나 그것은 이른바 껍질이 없으면 털날 곳도 없다는 말과 같다. 하물며 스스로 온달에게 갔으니, 이는 외도(음분)의 일이다. 혼례를 갖추지 않으면 정숙한 여인으로서는 행하지 못할 일인데, 존귀한 공주가 "밤중에 이슬을 맞아가며 찾는 것"을 꺼리지 않고 홀로 산과 들을 헤메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시집갔으니 어찌 정숙하다 하겠는가? 고구려 왕이 딸 하나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방종케 하였으니 국가를 욕되게 하고 풍기를 문란시키고, 윤리를 어지럽혔으며 도의를 그르친 바가 크다. 괴벽하고 비루한 오랑캐 풍속의 소치이니 말할 가치도 없다.  

7. 원효의 오도(깨달음)장면의 전래
  - 국내에는 전하는 기록이 없고, 중국 문헌에 전한다. 961년 연수가 쓴 <宗鏡錄>, 988년 송나라때 찬녕이 쓴 <송고승전>, 1107년에 덕홍이 쓴 <임간록>에 전한다. 
  - <송고승전>은 신라땅의 무덤속에서 귀신을 만난 것으로, <임간록>에서는 해골물을 마신 것으로, <종경록>에서는 시체 썩은 물을 마셨다고 쓰여있다. 그런데 임간록과 종경록은 당나라땅에서 일어난 일로 묘사하고 있어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드라마틱하게 원효의 이야기가 적혀있어 후대에 인상적으로 남지 않았나 추측할 수 있다.  

8. 이이의 <십만양병론>의 진위
  - 선조 실록(광해군대에 제작)에는 율곡의 시무6조의 건의 내용이 실려있으나 여기에 십만양병론은 없다. 다만 양병을 주장하며 양병의 기본이 양민에 있음을 주장.
  - 선조수정실록(인조대에 서인에 의해 제작)에는 율곡의 상소에는 십만양병설이 없으나, 뒤에 나오는 부연설명에 이이가 경연에서 10만 양병을 주장했다고 간략하게 전하고 있다.
  - 최초로 십만 양병론이 나오는 것은 율곡의 제자 김장생이 스승을 추모하여 쓴 <율곡행장>
    <율곡연보> - 송시열 등이 편찬 간행한 율곡에 관한 최초의 공식 전기
  - 결국 서인들이 권력을 잡고 난 이후 서인의 학문적 시조인 율곡 이이에 대한 존숭과정에서 이런 십만양병론이 구체화되고 완성된 것이 아닐까?
  - 현대에 와서는 박정희가 1974년부터 실시한 군 방위력 증강계획에서 율곡을 다시 끌어댄다. 이름도 '율곡사업' 

 9. 김정호와 <대동여지도>
  - 김정호에 대해서는 출생, 신분, 사망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진 기록이 전혀 없다.
  - <대동여지도>역시 김정호가 혼자 전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측량하여 만든 지도가 아니라, 이전에 만들어진 여러 지도를 두루 참조하여 종합, 집대성한 지도다.
  - 김정호의 답사설과 흥선대원군에 의한 사망설의 진위
   - 최남선1925년 동아일보 기고문에서 처음 제시, 잡지 <청춘> 제 1호에서 다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100인 중 지리 분야의 대표 인물로 김정호 선정
    - 이후 <어린이>, <학생>등에 소개되면서 알려지기 시작, 이 과정에서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덧붙여지고 윤색이 가미됨
   - 1934년 조선총독부 발행 교과서 <조선어독본>에 이 이야기가 실림으로써 학교 교육을 통해 널리 보급됨. 조선총독부가  이 이야기를 실은 의도는 결국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의 위대함을 알아보지 못한 조선 정치가들의 무지와 편견을 비난하면서 그 가치를 알아본 것은 바로 일본인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  

10. 고인돌
  - 고인돌의 북방식, 남방식 분류의 문제 -이 분류법은 1926년 일본인 도리이 류조가 처음 정립.한반도를 남부와 북부로 나누고 남부는 순수한 한민족의 영역이지만 북부는 대륙에서 들어온 다른 민족의 영역으로 한민족은 항상 외부세력에 의해 발전했다는 타율성론, 만선사관을 제시
  - 고인돌의 용도는 훨씬 다양했을 듯.. : 지배자의 무덤, 또는 그 가족의 공동묘지(합장, 또는 한 고인돌 아래에 여러개의 무덤방이 있는 경우), 한 집단의 공동묘지, 전사자의 무덤의 가능성
  - 제단으로 쓰인 고인돌 : 다른 고인돌과 떨어져 홀로 우뚝 서 있을 것, 크고 웅장할 것, 주변을 잘 둘러볼 수 있도록 시야가 탁 트인 곳에 서 있는 것
  - 묘표석으로서의 고인돌 - 다른 고인돌과 무리지어 있긴 한데 무덤방이 없는 경우, 아마도 묘역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보인다.  

11. 신라의 금관
  - 발굴당시의 모양은 시신의 얼굴을 완전히 덮고 세움장식을 안쪽으로 모아 깔때기 모양으로...
    즉 시신용 마스크가 아니었을까? (일상생활에서 쓰기에는 구조적으로 불가능)
  - 세움장식은 사슴뿔, 또는 나뭇가지(인간과 하늘을 연결해주는 통로 즉 생명나무) , 곡옥은 나무열매 즉 생명체를 상징, 서봉총 금관의 새는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
 - 금관은 5세기 초 - 6세기 초의 약 100년간의 무덤에서 출토 - 이 시기는 눌지 마립간~지증마립간시대. 이 시기 돌무지덧널무덤에서 금관이 출토되는 것. 또한 이 시기 이런 금관은 왕뿐만이 아니라 왕의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의 무덤에서도 출토됨 

12. 광화문앞 해태의 여러 의미
  -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될때 6조거리 사헌부앞에 해태상이 만들어진다. 해태는 시비와 선악을 판단, 옳지 못한자를 문다고 하니 법과 정의를 지키는 동물로 여겨진 것이다. 같은 의미로 사헌부의 대사헌의 관복 흉배에는 해태가 그려졌고, 사헌부 관리들은 해태문양에 장식된 모자를 썼던 것이다. 즉 해태는 사헌부의 상징이었던 것.
  - 두번째 궁에 들어갈때 하마석지표로서의 역할도 같이 한 듯하다.
  - 일제시대에는 철거되었다가 조선총독부 건물 앞에 세워져 조선총독부를 지키게 되다.
  - 1968년 광화문 복원 이후 현재의 자리로 이전, 하지만 원래 의미는 사라지고 관악산의 화기를 누를 목적으로 세워졌다는 이야기만 남게 된다. 

13. 고조선건국기원의 문제
  - 2005년판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B.C2333년)
  - 실제 삼국유사기록 : 단군왕검은 요임금이 즉위한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요임근 즉위 원년은 무진년이니 즉위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 일연이 말한 고조선 건국 연대는 즉, '요임금 즉위 50년 정사년'이다.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284년이다.
  - 그러면 기원전 2333년은 근거는? 조선시대 서거정의 동국통감 "동방에는 최초에 군장이 없었는데, 신인이 단목 아래로 내려오자 국인이 세워서 임금으로 삼았다. 이가 단군이며 국호는 조선이었는데, 바로 당요 무진년이었다. (기원전 2333년)
  - 요임금의 즉위년 자체의 진위여부 불분명, 고고학적 연대와 불일치등의 문제 

14. 백제 왕인에 대한 의문들
  - 현재 천자문은 중국 양나라의 주흥사(인물 생존기간 470-521), 왕인이 일본에 천자문을 전한 시기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 --->그렇다면 왕인이 전한 천자문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자문은 아니다.
  - 왕인에 대한 기록이나 설화가 국내에는 전혀 없다. 가장 오래된 기록인 이덕무의 <청령국지>나 한치윤의 <해동역사>의 기록은 모두 일본의 기록을 그대로 옮긴 것. 일본의 기록의 연원은 <일본서기>
  - 일본의 왕인에 대한 주목 : 18세기 일본국학에서 고대사 연구에 주력, 일본에 문풍을 일으킨 인물로 왕인을 지목, 일제시대 만주사변에서 대동아 전쟁기간동안 왕인에 대한 논문이 가장 활발하게 발표, 왕인의 탄생지를 전남 영암군 구림리라고 지목한 것도 1932년의 일이다. 영암지방에 전하는 왕인 설화도 이 지역 출신인 도선의 설화와 섞여 있어 진위여부가 불투명 ---->일본이 내선일체 선전사업에 왕인을 이용
  - 왕인에 대한 최근 연구 : 왕인은 4세기 인물이 아니라 6세기 인물, 그가 전한 천자문 역시 주흥사의 천자문이 맞다고 주장, 그리고 백제에서 박사라는 호칭이 쓰인 시기가 6세기라는 점. <일본서기>나 <고사기>가 6세기 인물인 왕인을 4세기 인물로 앞당겨 기록한 이유를, 당시의 최고 선진문화였던 유교 문화가 일본에 전해진 시기를 앞당기고 싶어한 일본인들의 소망이 투영된 것이라고 풀이

15. 임진왜란때 궁궐을 불태운 것은 백성? 일본군?
  - 선조실록(광해군때 편찬) - 5월3일자 기사에 이 때 궁궐이 불탔으므로 왜군이 종묘에 들어가 머물렀다. --->백성들이 궁궐을 불태웠다는 기사는 없음. (4월30일 선조 도성 포기, 피난)
  - 유성룡 <징비록> : 돈의문을 나와서 사현에 이르니 동쪽 하늘이 차츰 밝아왔다. 고개를 돌려 도성안을 바라보니 남대문 안 큰 창고에서 불이 일어나 연기가 이미 하늘에 치솟았다.(백성이 궁궐을 불태웠다는 기록은 없음>
  - <선조수정실록> ( 서인에 의해 효종때 편찬) : 거가가 떠나려 하자 도성의 간민이  내탕고에 들어가 보물을 훔쳤고, 거가가 떠나자 난민이 크게 일어나 먼저 공사노비 문적이 있는 장예원과 형조를 불태우고 궁성의 창고를 약탈하고 방화하여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일시에 모두 없어졌다. ---->일제시대 이 기록을 받아들여 정설로 굳어짐
  - 임진왜란 당시 일본측 기록 
     : 고니시 유키나가 휘하의 장수 오오제키의 전기 <조선정벌기> 입성한 5월 3일 궁궐 건재
       가토 기요마사 휘하 승려 제타쿠의 <조선일기>5월 4일 궁궐 건재
       종군승려 덴케이의 <서정일기>5월 7일 "금중에 들어가니 궁궐은 모두 초토로 변해있었다"
       -------> 결국 일본에 의해 5월4일과 7일 사이에 궁궐이 불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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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세살이란 이런 나이야. 반환점을 돌아서 얼마간 그 동안 그랬듯이 열심히 뛰어가다가 문득 깨닫는거야. 이 길이 언젠가 한번 와본 길이라는걸. 지금까지 온 만큼 다시 달려가야 이 모든 게 끝나리라는 걸. 그 사람도 그런 게 지겨워서 자살했을거야. (68쪽) 

마흔 세살이 된 해, 처음 잡은 책속에서 이 문장을 만난건 무슨 뜻일까?
내 인생의 반환점을 나도 돈것일까?
이미 왔던 길, 다시 돌아가봤자 별볼일 없을 그 길을 이제 다시 돌아가는 것일까?
처음 지나올때는 모든게 새로운 모든 것이 열정이 되고 열광이 되었구나...
이제 돌아서 보는 길은 그런 열정과는 무관할듯...
그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싶은 약간의 시무룩함과 익숙함, 약간의 불편함 뭐 이런 것들이 내 인생을 지배하겠구나 싶어 먹먹해지는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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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5 0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6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01-05 0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답지 않게 웬 시무룩??? ㅋㅋ
수영에서 터닝 포인트를 찍고 나서도 활기차게 헤엄쳐야 하듯이, 삶도 사는 거기까지는 한번도 익숙한 길 없이 씩씩하게 가야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저 애늙은이의 생각에 단호한 부정 한 표!
요즘 제가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책에 푹 빠져있는데, 같이 빠져 보실려우?

바람돌이 2010-01-06 02:03   좋아요 0 | URL
그쵸?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 하고싶지는 않네요. ㅎㅎ
올 한해도 씩씩하게 살아야죠. 글샘님 말에 살짝 위로가 되네요.
요네하라 마리 참 씩씩하죠? 전 두권 읽었는데 이 사람 참 건강하게 사는구나 싶었어요. 지금은 미식 견문록이랑 대단한책 읽고 싶은데 이번에 도서관 연체해서 좀 기다려야 해요. ^^

세실 2010-01-0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먹해짐...수덕여관에 다녀온 제 느낌이 그렇습니다. 괜히...
님 글 읽고보니 나이탓도 있나 봅니다.
마흔 세살이 되는 해군요. 저도...
올해부턴 제 나이를 애써 부정하고 싶을뿐.
중년의 그 느낌이 싫어요. 잉.

바람돌이 2010-01-06 02:05   좋아요 0 | URL
수덕여관에 계신 그분은 아직도 건강하신가요? 살아계시다면 연세가 아주 많으실듯한데... 집이 어떤 느낌을 갖게 하는건 역시 그곳을 살았던 사람들의 내음때문인거겠죠?
남들은 중년이래도 우리는 그냥 계속 청춘이라고 우겨보자구요. ㅎㅎ

마냐 2010-01-05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년...그 느낌은 싫은데요. 마흔살은 중년이 아닌것만 같아요. 아직 청춘의 연장선이라 빡빡 우기면 안될까요. 전 더 유혹에 흔들리고 싶어요..큭

바람돌이 2010-01-06 02:05   좋아요 0 | URL
우리끼리 빡빡 우기고 인정해주죠 뭐 까짓것.... ^^
마냐님이 저 좀 유혹해주시죠? 제 특기가 부화뇌동인데요... ㅎㅎ

무스탕 2010-01-05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반환점 싫어요. 그냥 직진할래요. 지나온 시간중에 좋은 시간들만 골라 다시 반복하자면 몰라도 싫은 시간들 다시 밟긴 정말 싫거든요 :)
마흔셋의 나이를 마흔세가지의 즐거움으로 채울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구요.
바람돌이님. 세실님. 글구 와서 보실지 모르겠지만 물만두님도요 ^^

바람돌이 2010-01-06 02:07   좋아요 0 | URL
아 여기 가장 전투적인 40대가 납셨군요. 쭉 직진~~~
전 좋았던 시간들도 별로 반복하고 싶지 않아요. 좋았던건 그것이 그때 뿐이었기에 더 좋았던거니까요. 무스탕님 말씀처럼 그냥 쭉 직진에 동참할래요. ^^

순오기 2010-01-0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첫 책에서 만난 문장이라 더 다가왔을 듯하지만, 마흔셋이면 참 좋은 시절입니다요.^^

2010-01-05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10-01-06 02:09   좋아요 0 | URL
앗 순오기님이 계셨군요. 이러다가 수암님까지 오시면 저 부끄러워서 숨을지도 몰라요. ㅎㅎ 아 그리고 제가 어제 밤늦게야 서재에 들어오는 바람에 댓글을 못봤네요. 여배우들 저 못봤어요. 그 정도로 섭섭해하지는 않으니 걱정마셔요. ㅎㅎ 2010년이 있잖아요. 오늘 모처럼 아이들 버리고 영화보러 갔다가 전우치랑 아바타랑 두개나 보고 왔어요. ^^
 

캄보디아
캄보디아 서북부 태국과의 국경을 이루는 당렉산맥. 이 당렉산의 절벽 위에 쁘라삿 쁘레아 비히어라는 발음도 어려운 이름으로 불리는 앙코르시대의 사원하나가 있다.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그런데 그 직후 태국이 이 지역에 특수부대 병력을 급파했고 캄보디아 또한 수비병력을 증원해 군사적 대치가 시작되었다. 왜일까?  원인을 굳이 따지고 든다면 이 지역의 복잡한 식민지 역사까지 올라가야 할 것이다. 현재의 가장 큰 원인을 따져보면 

캄보디아의 집권자 훈센은 베트남괴뢰정부의 수반을 지냈던 정통성과 도덕성을 결여한 인물.
그런 그가 2003년 태국의 여배우가 했다는 "캄보디아가 앙코르와트를 훔쳤다"라고 하는 근거도 없는 말에 주저없이 이를 이용한다. 여배우를 공격하고 반태국 정서를 고무시키며 태국 왕의 초상화를 불태우고... 그야말로 조작된 보도를 빌미로 크메르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해 반태국 폭동으로까지 발전시킨 훈센의 책동은 캄보디아인들 사이에 만연한 반베트남, 반훈센정서를 희석시켰다는 평가를 얻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태국이다. 2008년 8월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때 태국인들을 선동한 세력은 왕인 푸미폰과 군부에 기대고 있는 민주주의 인민연합인 PAD였다. PAD는 엉뚱하게 탁신계의 현 정권을 영토를 빼앗긴 무능하고 파렴치한 정권으로 매도하고 나선 것. 결국 2003년 프놈펜의 반태국 폭동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정권타도의 도구로 재활용하고 나선 것이다. 독재정권 유지에 눈이 먼 훈센과 군부를 포함한 태국 왕정주의자들의 이 터무니없는 대립조장은 어쩌면 동남아시아에서 태국과 캄보디아(캄보디아를 지원하는 베트남까지) 포함시키는 국제적 분쟁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태국
"왕과 왕비, 왕실의 후계자 또는 왕실을 비방, 모독하거나 위협하는 자는 3년에서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남한의 국가보안법에 버금가는 태국의 군주보안법(태국 형법 112조)
비방, 모독, 위협과 같은 모호한 법률적용어로 자의적 해석을 위한 모든 길을 열고 있는 이 같은 법으로 유지되는 왕실이란 결국 밖에서 보듯 태국왕실이 국민의 자발적 충성이나 존경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반증일터....
일례로 태국 정보산업부는 2008년 무려 205억의 예산을 들여서 왕실에 대해 부적절한 콘텐즈의 태국 유입을 막기 위한 국가적 인터넷 파이어월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아마도 남한의 MB가 여기서 한 수 배운듯....) 

국왕 푸미폰, 군부, 그리고 PAD(민주주의 인민연합)
2006년 9월 총리인 탁신의 외유를 틈타 쿠데타 주도, 권력교체에 성공하였다. PAD는 방콕의 중산층(결국 태국의 상류층) 계급을 기반으로 대대적인 반탁신시위를 주도한 연합조직으로 탁신의 축출과 왕의 개입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며 방콕에 노란셔츠(왕실의 상징색)의 물결을 만들었다. 심지어 이 진영에는 이런 중산층뿐만 아니라 기회주의적인 언론자본가, 또 태국의 386이라 할 70년대 학생운동세력까지 포진하고 있다. 중산층은 그렇다 치고 70년대 학생운동세력(공산주의운동 세력)까지 친국왕 군부쿠데타에 가담한다는 건 참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민중운동이나 사회운동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태국의 지독한 엘리트주의의 전형이랄까? 

탁신 총리 그리고 탁신지지 시위대인 반독재민주연합전선(UDD)
탁신은 전형적인 대자본가이며 정권을 이용해 부정부패를 일삼는 신자유주의자. 반인권의 상징
그럼에도 2006년과 2008년의  PAD에 의한 탁신의 축출이 태국의 진보적 발전을 10년 이상 역주행시켰다고 평가한 이유는 탁신은 태국 최초로 가난한 자들을 배려한 복지정책을 실현한 이중트랙 정책의 장본인이라는 것. '3바트로 병원에'로 상징되는 탁신의 의료보장체제, 농촌을 대상으로 한 무조건부 자금지원, 농촌의 특산물을 개발하고 유통판매할 수 있도록 한 오톱(OTOP)
탁신이 원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태국사회에서 탁신은 천천히라도 앞을 향해 나아간 태국사회의 요구를 어느정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완전히 무산시켜 버린 것이 국왕과  PAD의 쿠데타. 

"그 거리의 끝에 두 명의 악당이 버티고 있다. 두 명의 악당을 모두 처단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역사란 언제 어느 때에도 그런 식으로 충동적으로, 유아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지금 태국이 필요한 것은 악당 중에 늙은 악당을 때려눕히는 일이다. 늙은 악당을 없애지 못한다면 젊은 악당을 때려눕힐 기회 또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미얀마 
미얀마의 군사독재정권은 비슷한 군사독재를 겪어온 우리의 입장에서도 으악 할만큼 말종의 군부독재정권이다. 1985년 싹트기 시작한 민주화시위가 1988년에 이르러 8월 8일의 항쟁으로 발전했을 때 이들은 3천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피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1990년 5월 총선은 민족민주동맹이 압도적 의석수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 대신 당선된 의원들을 투옥하고 민주화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서는 것으로 총선을 약속한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했다 2007년 승려들이 주도한 민주화 시위 역시 유혈진압으로 무산되었으면 군정은 여전히 철권을 행사하고 있다.   

태풍 나르기스가 휩쓸고간 미얀마에서 미얀마 군부가 미국과 유럽의 구호물자를 거부하면서 한때 이 나라는 다시 한 번 비인권국가로 외신을 달구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미얀마에서의 인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대로 고쳐 쓰면 그것은 인권이 아니라 '이익'이다. 세계 10위의 천연가스 매장량, 광물과 목재등...거기다 군사적 경제적 가치가 뛰어난 인근의 말라카 해협,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항로를 보장받기 위해서도 서방에게는 미얀마에 친서방국가가 들어서야 한다는 제국주의적 이익도 존재한다.
하지만 미얀마정권은 남한, 태국, 특히 중국 덕분에 미국과 유럽없이도 세계화 시대,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은덕으로 알아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런 미얀마정권에게 미국의 미군함을 통한 구호물자 수송, 일방적인 공중투하방식은 미얀마군부에게는 협박일뿐이다.
이런 미얀마에서 아웅 산 수치와 NLD가 미얀마에 대한 경제봉쇄를 줄기차게 주장하며 그것이 미얀마 정권에 타격을 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판단착오일 뿐이다. 서방의 경제봉쇄는 천연자원에 의존하고 있는 말종의 군정에게 아무런 타격도 미치지 못하고 오직 민중들의 고통만을 배가시키고 있을 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봉쇄로 인해 심화되고 있는 군사적 탄압과 경제적 빈곤, 정보의 폐쇄가 민중적 역량의 조직과 발전에도 또한 장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미얀마 군정의 종식은 미얀마 민중이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을 때 도래할 것이다. 서방의 봉쇄에 대한 NLD의 맹목적 지지는 그 길을 가로막고 있다. 

네팔
2001년 왕정살인극으로 유명해진 네팔.
그리고 2006년 11월 10년간 무장투쟁을 벌이던 네팔공산당(M)이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고 정부구성에 참여했으며 제헌의회 선거에 참여해 승리했다. 평화협정은 네팔정부군과 인민해방군의 무장해제와 적대행위 금지, 왕정폐지, 공화국으로의 이행, 해방구의 인민정부 해산, 과도헌법과 과도정부의 구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네팔은 그 협정을 이행 중이다.
21세기의 드문 공산주의자인 이들 네팔공산당은 새로운 노선을 실험 중이다. 20세기 공산주의의 파탄은 민주주의 파탄에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며 참된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의 부패를 방지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21세기 민주주의는 바로 그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공산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 '다당제' - 선언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 다당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선거에 참여했다.
선거에서 네팔공산당은 일정한 의석을 확보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제 남은 것은 10년간 그들과 같이 싸우고 그들을 지지해줬던 농민들의 가장 큰 요구 토지개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네팔공산당이 선택한 다당제와 의회민주주의가 이 농민의 토지개혁요구를 어느 정도 성취할 수 있을것인지가 이 당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노선의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을것이다.
새로운 21세기 공산주의의 실현? 아니면 의회민주주의의 함정에 빠져 고사할것인가?
네팔에 눈을 집중시켜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티베트
달라이 라마의 나라???
서구의 맹목적인 달라이 라마 신봉자들의 믿음과 달리 이전의 티베트는 90퍼센트의 인구를 차지했던 농노들을 한줌의 라마승과 봉건귀족(지주)들이 지배하는 끔찍한 봉건적 노예사회였다. 1949년의 중국혁명은 10년만에 티베트를 봉건적 노예제로부터 해방시켰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등장은 티베트인들의 종교와 민족감정을 자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더 나은 세상을 약속했다.
그리고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 망명정부. 1959년 달라이 라마의 망명과 함께 구성된 정부이다. 달라이 라마가 수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귀족세력이 의회와 내각을 차지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의 신권정치을 인정하는 시대착오적 조항들로 채워진 헌법을 갖고 있다. 망명 이후 망명정부는 미국 CIA의 원조아래 국경지방에서의 무장투쟁을 지속했으나 문제는 티베트 국내의 민중들이 여기에 화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과연 중국의 탄압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망명정부를 구성하는 구세력의  봉건적 착취를 티베트의 민중들이 기억해서였을까? 1970년데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를 기점으로 한 해빙무드는 망명정부에게는 악몽이었다. 이 시기부터 달라이 라마는 다른 길을 찾게 된다. 즉 대답없는 티베트가 아니라 서방에서 구원의 손실을 찾기 시작한 것. 이 시기부터 본격화된 달라이 라마의 해외순방이 바로 그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이 작전은 너무나도 크게 성공했다.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신비주의를 고무시키며 달라이라마는 신비주의적 라마교와 샹그리라, 반공, 마하트마 간디의 이미지를 차례로 덮어쓸 수 있게 된 것. 

그렇다면 최근 티베트내에서의 잇단 시위와 유혈사태는 어찌 된 것일까? 유혈사태를 빚은 티베트사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것이 중국정부(공산당)에 대한 중국 인민의 저항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문제를 해외 망명세력과 중국공산당의 대결로 보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오늘 날 티베트의 티베트인들은 현재 중국의 통치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이른바 시장개방 이후 개발의 미명아래 티베트 지역의 풍부한 광물과 가스, 삼림, 수자원 등을 수탈하는 대신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인들에게 돌려준 것은 빈곤과 차별이었다. 고작 4%의 외지인 한족 인구가 95%의 토착 티베트인들을 식민통치를 방불케 할 만큼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변화가 티베트인들의 저항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티베트 민중들의 저항이 어떤 식으로 귀결될 것인가? 망명정부의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구세력들이 어디까지 이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할 것인가? 티베트 민중들의 투쟁의 길은 참으로 어렵고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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