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역사가들이 문자로 쓴 역사에서는 그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그들이지만, 사진 속 인물들은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그들의 역사를 써 내려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각자가 만든수많은 인생의 이야기들이 서로 상호 작용을 하여 오늘날의 역사가 만들어졌겠지요. 이렇듯 사진은 수많은 인생의 드라마를 기록하여전달하는 중요한 역사 기록의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 P215

간신히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은 피부가 녹아 버린 것 같은 화상을 입었으며, 핵폭발로 발생한 열기는 히로시마의 대기를 마치사막처럼 바싹 말려 버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화상으로 뜨거워진고통을 참지 못해 강물로 몸을 던졌고 강은 곧 시체로 가득 찬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그검은색의 방사능 비였습니다. 타는 듯한 갈증 속에 이 검은 빗들을받아 먹은 이들은 고농도의 방사능에 오염되어 죽어 갔습니다. 당시 히로시마에서는 약 9만 명에서 16만 명 정도의 사상자가 나온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사망자 중 절반은 원자 폭탄이 투하된 당일에 발생하였고, 나머지 절반은 방사능 피폭과 합병증, 부상 등으로 죽어 갔습니다.
- P224

하지만 초창기의 우려와 달리 회화는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진은 회화를 사실적 묘사에만 천착하던 고전주의에서 벗어나게끔 도와주었고 화가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선사하였습니다. 화가들은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자신들의 재능과 에너지를 낭비하는대신 보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감성과 느낌을 화폭에 담는다양한 방법을 찾아냈고, 이것은 20세기 다양한 현대 미술 사조의발전으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 P261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은 더이상 피사체의 밝기, 초점, 색깔 등을 제대로 재현해 내는 능력은아닙니다. 초점과 노출을 손으로 맞추던 인간의 능력을 훌쩍 뛰어넘는 카메라들의 등장으로 이제는 누구나 (심지어 원숭이까지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면서 좋은 사진, 잘 찍은 사진의 기준은 사진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어떤 느낌을 전달하며, 보는 이들에게 어떤감정을 느끼게 하느냐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 P263

소설 속의 언어를 뽑아내어 시를 만든다면 그 시는 과연 시로서의 맛을 지닐 수 있을까요? 동영상에서 추출해 낸 사진도 바로그러한 사진 본연의 맛이 없기에 동영상에서 추출된 이미지가 절대로 사진을 대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한 한 장의 좋은사진을 찍는 즐거움과 성취감이 동영상을 촬영하는 기분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요? 따라서 동영상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사진은 결코사라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소실의 시대에도 시는 절대로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 P280

보도 사진 취재의 의미가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의 소리를 자신의 사진을 통해 다른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그의 사진 한장이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시해 줄 수도 없고 사회를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도 없지만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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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고유한 속성은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여 영원히 남긴다는 것입니다. 사진에 찍힌 뒤 현실 속의 피사체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하거나 소멸되어 가지만, 사진 속에 정지된 채로 담긴 피사체들의 이야기는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한 장의 사진 속에 포착된 수많은 디테일(인물, 인물의 표정과 행동, 장소, 조명, 프레임 안에자리 잡은 수많은 사물들)은 이러한 정지된 화면 속에서 마치 뮤지컬무대의 주연과 조연 배우들이 함께 화음을 만들어 내듯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우리에게 전달하고, 우리는 여기에서 이야기를 읽어 내며 사진만이 줄 수 있는 맛을 음미하게 됩니다.
- P25

"내 사진에서는 두 사람이 죽어 있다. 장군은 베트콩을 죽였고, 나는 카메라로 장군을 죽였다. 그리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사진으로 나는 돈을 벌었다."
"사진 속 두 사람의 삶은 파괴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 사진으로 영웅이 되었다." - P40

이미 우리는 이미지가 언어가되어 버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거짓말을 판별하며 살아온 것처럼 이미지라는 언어의 진실 여부를 들릴휘어 사아야 하는 것이 21세기 인간의 숙명이 된 것일 뿐입니다.
- P83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아동 노동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하는단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가 사진을 통해 달성해야 했던 성과는 아동 노동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대부른아동 노동자들은 직업 교육을 받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자회의 잘못된 인식을 깨는 일이었습니다. 사진을 통해 아동 노동으로 우리의 아이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으며, 우리 사회는 어떤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감시켜야 하는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의 본질이었습니다.
- P134

그는 사진의 역사에서도 묵직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나가말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면 나는 카메라를 메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라는 말을 남긴 루이스 하인은 사진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포토 스토리 Photo Story‘란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피사체가 카메라를 쳐다보는 초상 사진 스타일의 표현 방식을 정립하기도 했습니다.  - P140

그녀는 이 사진이 자신과 같은 사람들과 자신이 살던 지역에대한 관심을 높여 준 것에는 감사하지만, 이 사진에 대해 복잡한심정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이 보여 주는 이미지는 자신의 실제 모습의 한 단면밖에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플로렌스의 자녀들이 기억하는 그들의 어머니는 음악과 춤을 사랑하고 훗날 농민들의 노동 운동이 우도적으로 참여했던 적극적인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굶주림에채 아이들과 함께 초라한 텐트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 나서던 진취적인 여성이 그녀의 실제 모습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플로렌스와 그녀의 가족들은 사진에 투영된 그녀의 이미지가 그녀의 실제 모습과 많이 달랐기에 사진을 볼 때마다 화가 나고 슬픈 감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 P155

민주화의 격동기에서 수많은 아까운 목숨들이 희생되었지.
그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공력의 폭력에 대한 정보는 말과 활자로만 전달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만약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시위 연대생 1명 중태"라는짤막한 사회면 기사로만 국내에 보도되는 것에 그쳤다면 우리 사회는 그의 죽음에 어떻게 반응하였을까요?
- P170

아우슈비츠에서 소장을 지냈던 루돌프 회스Rudolf Hoess 중령은 자신의 고백록(Commandant at Auschwitz: The Autobiographys ofRudolf Hoess)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총살에 관여할 때 군중이나 여자들과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혹함과 혐오감에 사로잡히고는 했다.
그러 이제는린내 나는 광경을 보지 않아도 되고, 한편으로는 희생자들을 최후의 순간까지 친절하게 돌보아 줄 수도 있게 되어서 나로서는 마음이 편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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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리뷰를 쓰거나 평가를 하는 것 자체가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 경우가 있다.

어떤 어려움에서 책을 만들었을지, 얼마나 공이 들어갔을지, 그 의미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생각하다보면 이런 저런 비평을 얹는 것이 실례가 된다는 느낌이랄까?

오랫만에 그런 책을 만났다.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는 독립운동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이름조차 알려지지 못한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에 들어서 이런 책들이 몇권 나오긴 했지만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의 책은 책의 만듦새에서 부터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까지 굉장히 많은 공을 들이고 잘 만들었다.


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각 챕터마다 윤석남화가의 초상화가 있다.

독립운동가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거나, 그의 활동모습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모습의 초상화들이다. 

표지의 초상화는 정정화선생의 초상화다. 

26년간을 임시정부의 안주인으로 불리우며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를 하신 분이다. 

누군가는 밥하고 빨래하고 병든 독립운동가들의 간병을 하고, 그게 무슨 독립운동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이가 없으면 어떤 단체도 존재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면 그는 임시정부를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유난히 강조된 손의 크기로 표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서 여성 독립운동가의 역할이 남성 독립운동가를 뒷바라지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그것이 정정화 선생의 개인 활동에 대한 폄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시대적 한계속에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런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분들도 또 어떤 면에서는 한계를 고스란히 품고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던 김마리아 선생의 모습은 책과 칠판, 분필과 함께 가르치는 모습으로, 평양노동자 강주룡은 을밀대에 앉아 농성하는 모습으로, 사회주의 혁명가 박진홍은 책을 좋아했던 모습으로 등등 그분들의 삶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초상화도 훌륭한 작품들이다.

대부분의 초상화가 형형한 눈빛과 강조된 손으로 그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특히 손에 많은 관심이 갔다.

이 책의 초상화들은 모두 세로 210cm 가로 94cm의 대작들이다. 

전시회도 가봤으면 좋겠지만 이놈의 코로나가 여행을 허락하지 않으니....


세로로 긴 그림에 맞춰 책의 판형을 맞췄다. 이런 세심함이 마음에 든다.

글을 쓴 김이경 작가의 글 역시 일률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각 독립운동가의 활동 특성에 따라 평전형식, 일기 형식, 인터뷰 형식, 회고록 형식 등 다양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기본 자료가 너무도 부족한 상황에서 얻어낸 자료를 어떻게 제대로 살려낼까를 많이 고심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우리에게 많지는 않지만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되살피고 기억하게 만든다.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그 시작 지점에서 이렇게 세심한 책이 나왔다는 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독립운동가라고 해서 항상 올바르기만 하고, 굳건하기만 하고 흠없는 삶을 살았을까?

그런 삶이 어디 있겠는가?

책을 읽다 보면 각 독립운동가의 삶이나 행동, 생각이 지나치게 이상화되었다는 생각은 분명히 든다.

예를 들면 김마리아 선생의 다음과 같은 말,


"국내 일반 인민은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설립되었다는 말을 듣고 소수의 조직이든 인물이 좋든 나쁘든 상관하지 않고 다 기뻐하여 금전도 아끼지 않고 적의 악형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외지에서 임시정부를 반대하던 자도 국내에 들어와서 금전을 모집할 때에는 다 임시정부의 이름을 파는 것이 바로 국내 동포가 임시정부를 믿는 증거다. 만약 5년의 역사를 가진 정부를 없앤다면 소수는 만족할지모르나 대다수는 슬퍼할 것이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개조하자. - P28


1923년 국민대표대회에서 임시정부의 운명을 놓고 개조파와 창조파의 논쟁이 벌어졌을 때 김마리아 선생의 입장이다.

솔직히 이 말은 지나치게 감상적이며 임시정부라는 중대 조직의 진로에 대해 전혀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언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판은 잠시 미루기로 한다.

도대체가 자신의 모든 삶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에 대해서, 이 나라가 그리고 후손들이 뭐 하나 해준게 없는데 어떻게 감히 비판부터 하겠는가 말이다.

제대로 그들의 삶을 복원하고 기억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바로 그 복원과 기억의 출발점에 위치해 있으므로, 이상화된 서술은 아직은 흠이 아니다.

다만 짧은 글이 아쉬움을 더하므로 내가 읽은 책, 읽고 싶은 책들을 모아보았다.(더 많은 책들이 책의 뒷편 참고 문헌에 나와있다. 이 글은 내가 쓰는 페이퍼니까 내가 읽고 싶고, 읽었던 책, 좋아하는 책들만 모아 보았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책들을 모아보고, 이후 더 많은 책들이 나와주길 기대한다. 

기억의 힘을 믿는다. 




책 속 두번째 주인공 - 강주룡

 그나마 이렇게 소설로라도 되살려지는게 어딘가?

가난하고 이름없는 노동자로, 을밀대 지붕위애 오도마니 앉아있는 오래된 신문기사 하나로만 남아있던 강주룡 선생의 삶이 비록 소설로라도 재구성되고 그녀의 이름 세자가 알려졌으니 감사한 일이다. 다만 이 책에서 윤석남 화가의 강주룡 초상화는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당시 20대였던 강주룡이라기 보다는 지나치게 나이가 들어보이게 그려졌으며, 노동자 투사였던 그녀라면 손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상하게 강주룡 선생의 그림에서는 손이 보이지 않는다. 










책 속 세번째 주인공 - 정정화

임시정부의 안주인 역할을 했던 정정화 선생의 자서전인데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장강일기>, 1998년 나온 책인데 다행히 아직 품절되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는 독립투사 이상용 선생의 손부였던 허은선생의 회고를 구술한 책이다.

두 분의 역할이 어쩌면 비슷해 보일 수도 있는데 한분은 임시정부, 한분은 간도 지역에서의 경험들을 얘기하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허은선생의 회고록과 비교하면서 읽으면 좋을 듯하여 보관함에 넣어본다.





















책 속 네번째 주인공 - 박진홍

여성독립운동가이면서 심지어 사회주의자이고 월북까지 하면 더더욱 자료는 찾기 힘들어진다. 박진홍, 이효정, 이순금 같은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들의 이야기는 안재성씨의 소설 <경성 트로이카>에 제법 나온다. 

이들에 대한 책을 찾다 보니 <조선의 페미니스트>라는 책이 있다. 독립운동가로서의 이들만이 아니라 조선의 일상과 기존 관념과 맞서 싸우던 페미니스트로서의 이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인듯하여 관심이 간다. 

그리고 박진홍이 남편(박진홍은 집사람이라고 불렀던)이었던 김태준과 연안으로 가 조선의용군에 합류했던 것을 생각하면 안재성씨의 소설 <연안행>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읽고싶은 책으로 찜해둔다.

이관술, 이재유, 박헌영의  평전이 나왔듯 박진홍의 평전, 이효정, 이순금의 평전을 보고싶다. 남성들의 서사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오롯이 주인공인.....




책속 일곱번째 주인공 - 정칠성

기생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 정칠성. 나도 처음 알았다. 얼마전에 <신여성이란 무엇?>이란 책이 출간된걸 보고 보관함에 넣으면서 갸웃 했는데 이 책의 정체가 뭔지 이제 알게 되었다. 정칠성 선생 역시 월북하면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독립운동가이다. 하지만 이분은 진짜 관심이 많이 가는게 기생출신이 말해주듯 예술가로 출발했다가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 사상가로 변신해나가는 과정이 정말 아름다운 삶의 궤적을 보여주리나는 느낌이다. 

누군가 이분의 일대기를 평전이나 소설로 되살릴 수 없을까?
























책속 열번째 주인공-김 알렉산드라

지난 번 페이퍼에서도 간단하게 언급했었던 분. 한국인 최초로 볼세비키가 되어 만주 지역에서, 우랄 지역에서 조선인 뿐만 아니라 중국인, 러시아인까지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 싸웠던 여성. 최근에 읽었던 <피에 젖은 땅>을 생각하면 아마 백군에 의해 살해되지 않았다면 스탈린에 의해 숙청 되었을 것 같은 여성 혁명가. 

그녀의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이고 혁명적 열정에 넘치는 모습들을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책들이 나와 있어 참 다행이다.





















책속 열세번째 열 네번째 주인공 박차정, 이화림

김원봉의 주도로 만들어졌던 조선의용대와 뒤를 이은 조선의용군에서 활동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 직접 총을 들고 싸웠던 분들이다.

박차정선생은 김원봉의 부인으로 더 알려져 있으나 그 자신 뛰어난 독립운동가였으며, 여성의 해방을 설파한 시대를 앞서간 여성운동가이기도 하였다.

<항일무장투쟁과 여성 독립운동가>는 박차정선생과 이화림 선생의 이야기가 모두 실려있어 관심이 가는 책이다.

그 외에 이들이 활동했던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에 대해서 보려면 결국 약산 김원봉 평전이나 김학철 선생의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을 볼 수 있다.

이 중 <최후의 분대장>은 나의 최고의 책 중 하나다. 


지금 밀양에는 박차정 선생의 묘가 있다.

1941년 곤륜산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였던 박차정 선생은 그 휴유증으로 1944년 돌아가시고, 김원봉선생은 귀국할 때 그녀의 뼛가루를 품에 안고 와서 고향 뒷산에 묻는다. 

부부이자 동지였던 이들이 나란히 묻힐 수 있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해방공간에서 김원봉선생의 월북으로 부부는 죽어서도 아직까지 이별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김원봉 선생은 아직도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으며, 박차정선생은 1995년에 가서야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을 수 있었다. 

2년전인가? 찾아봤던 박차정선생의 무덤은 길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였고, 이분이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쓸쓸하였다.




심지어 독립운동가 박차정이 아니라 '약산 김원봉장군의 처 박차정 의사의 묘'라는 저 묘비는 씁쓸하였다.

아마도 살아 생전에는 오히려 선생은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독립운동가 박차정이었을 것인데, 죽은 뒤의 자리가 누군가의 아내라는 것으로 쓰여지는 것은 선생에 대한 부당한 대우라고 생각한다. 설사 그 남편이 아무리 큰 인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 책에는 중요한 여성독립운동가 3명이 빠져있다.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들이 빠진건 어쩌면 아직도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 현실의 반영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다행히 이들의 삶은 소설로 복원되었다. 

















읽고 싶고 읽어야 하는 책들은 많고, 여전히 시간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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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9 08: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해서 잘 몰랐던 역사인데 이렇게 정성스러운 리뷰를 통해 알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가 많이 알려지면 좋겠어요^^

바람돌이 2021-04-29 23:39   좋아요 0 | URL
더 많은 것들이 알려지고 그분들의 공적이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오랜 시간 묻혀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대중적인 책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면 전문가들의 연구도 더 이어질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수이 2021-04-29 08: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세 여자 무조건 강추요.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읽고픈 책들은 하염없고 생활은 무조건 책만 읽기를 말리고, 그러다 가끔 팽 신경질도 부려보고 책이 다 무슨 소용인가 안 읽다가 다시 또 그 길로 돌아가게 되고, 그렇게 계속 읽는 거 같아요. 서울은 꾸물꾸물 거려요. 부산 하늘은 어떠할지?! 오늘도 힘 :)

바람돌이 2021-04-29 23:41   좋아요 0 | URL
조만간 세여자는 볼 거 같아요. 전부터 찜해두었던 책인데 자꾸 보고싶은 책이 있으니까 밀리네요. 다음주쯤엔 세여자 먼저 읽는걸로 불끈 결심합니다. ^^부산은 꾸물거리기도 하는데 점점 더워져요. ㅠ.ㅠ

mini74 2021-04-30 2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밀양에선 친일작곡가 이름을 딴 음악회는 열리면서 김원봉선생님의 생가는 헐어버리려 한 시기가 있었죠. 지금은 음악제 이름도 바뀌었고 생가도 보존하고 한다지만 여전히 이유를 불문하고 좌익쪽 이름이 붙은 독립운동가들을 홀대하는거 같아 속상합니다. 여성운동가들 또한 변절자는 교육자니 뭐니로 남아 떵떵거리고 오히려 진정한 독립운동가나 여성운동가분들은 저조차도 잘 몰라 부끄러워요 ㅠㅠ 바람돌이님 리뷰 보면서 반성도 되고 씁쓸합니다 ㅎㅎ 이 책 찜입니다 *^^*

바람돌이 2021-05-02 01:00   좋아요 1 | URL
그래도 지금은 밀양에 나름대로 독립운동가의 거리가 제법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박물관거리를 산책하며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생각해보기 좋아요. 하지만 박차정선생의 묘소는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일단 찾아가는 것도 너무 어려웠고, 산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서 이거 길 맞아 하면서 찾아갔다는.....
부끄럽기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에 나온 분들 중에는 저도 모르는 분들이 있었는걸요. (저 역사전공이에요. . 그러니가 제가 진짜 부끄러운거죠. ㅠ.ㅠ)

하양물감 2021-04-30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 책 좀 읽었다고 자부하는데 이 분들 성함조차도 낯섭니다. 기회가 될 때 읽어봐야겠어요~

바람돌이 2021-05-02 01:01   좋아요 1 | URL
책은 청소년이 읽어도 좋게 쉬워요. 그분들의 삶은 무겁지만 책은 무겁지 않아서 금방 읽을 수 있어요. ^^

희선 2021-05-03 0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 때 배운 역사에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거의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말이 나온 건 얼마 되지 않았네요 그것보다 제가 잘 몰랐던 거겠습니다 독립운동을 했다 해도 사람이기도 하니 그런 것도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한테는 좋은 점뿐 아니라 안 좋은 점도 있잖아요 김원봉 선생은 들어봤지만, 박차정 선생은 몰랐네요 부인이라고 그렇게 써두다니...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박차정으로 봐야 할 텐데요


희선

바람돌이 2021-05-07 00:24   좋아요 0 | URL
박차정선생이 부산 출신이라 이 지역에서는 그래도 일찍 알려진 편이에요. 그분이 했던 활동과 역할에 비해서 지나치게 과소평가되었지요. 그건 박차정선생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마찬가지인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scott 2021-05-07 16: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작 2관王~~
추카~추카~
서울은 황사 먼지에 앞 시야가 가려 질정도 ,,,
주말 멋지게 보내세요 ^ㅅ^

바람돌이 2021-05-07 18:0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재 대문이 아주 멋지게바뀌었네요.
scott님도 페이퍼 당선 축하드립니다. 아주 멋진 글이었어요.

오늘 여긴 바람이 장난 아니에요. 황사먼지는 그래도 서울하고는 비교도 안되죠. 그래도 동쪽 끝이니까요. ^^
scott님도 멋진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1-05-07 16: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2관왕 축하드려요~!!

바람돌이 2021-05-07 18:06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이번 주말도 즐겁게 보내세요. ^^

모나리자 2021-05-07 16: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당선작 추카 드려요~바람돌이님~^_^!!

바람돌이 2021-05-07 18:07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모나리자님도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

초딩 2021-05-08 18: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관왕 축하드립니다~
페이퍼와 리뷰 모두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바람돌이 2021-05-08 22:5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 데미안 글 저도 참 좋았는데 역시 당선 축하드려요. 남은 휴일 즐겁게 보내시길...
 















나는 좋은 책, 알려진 책, 많이 팔리는 책에 서평이 몰리는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서평(크리틱)이 가장 필요한 책은 '바람직하지 않은 내용 혹은 별 내용이 아닌데' 많이 팔려서 비판으로 판매량을 줄여야 하는 책이다. (11쪽)


어떤 책의 서평을 쓸 것인가에 대한 정희진 작가의 생각!


잠시 나는 어떤 책에 리뷰를 쓰는지 생각해보니...


기준이 딱 하나 뿐이다. 내게 좋았던 책!! 또는 내 생각이 다른 사람과 너무 달라서 뭔가 얘기를 해야 할 거 같은 책 정도!

요즘은 별 4개가 되지 않으면 거의 리뷰를 안 쓴다.

이건 특히 한국 저자들에게 그러한데 내가 뭐라고 내게 안 맞다고 이 사람이 힘들게 쓴 책을 깔까 싶은 마음이 확 드는거다.

그래서 소심하게 별 3개 주고 책을 내려 놓는거다.

별도 3개 반정도가 딱 적당하겠다 싶을 때는 그냥 4개를 주는 편인데, 별이 4개임에도 리뷰가 없다? 거의 3개 반이라서 그런거다. 

이런 나의 소심함은 이미 돌아가신 작가거나, 외국 작가들일 때는 좀 나아진다.

그들이 한글을 번역해서까지 내 글을 읽지는 않을거 같으니까....

아 역시 나는 너무 소심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까 내가 좀 찌질해보인다. 별로다. ㅠ.ㅠ


그런데 정희진 작가의 말을 읽자면 쓸데없이 많이 팔리고 별로인 책에도 리뷰를 써야 한다는 거 같은데...

아 이거 어렵다.

나는 한국의 독서 시장에 영향력 1도 없는 개인이지만, 그래도 의무감을 가지고 좋은 책을 위해 나쁜 책을 밀어내자라는데 동참해서 진짜 아니었던 책에도 리뷰를 쓰야 하나?????


쓸 말이 욕밖에 없는 책의 리뷰를 어떻게 쓰지?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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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7 11: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올해부터 리뷰를 쓰기 시작하는데 일단 읽은 책은 다 리뷰 쓰는 걸 원칙으로~!! 올해 읽은 책은 다행이 안좋은 책이 없었던것 같은 ㅎㅎ
근데 안좋은 평가도 필요한데 저같은 경우는 성격이 그래서 안좋게 쓰기는 어려울거 같아요. 안쓰고 말듯 ㅎㅎ

바람돌이 2021-04-27 20:43   좋아요 2 | URL
저도 비슷해요. 특히 작가가 살아있고 한국인인 경우에는 더더더요.... ㅠ.ㅠ
일단 읽은 책은 다 리뷰를 쓰자고 저도 결심한 적은 많은데 정말 그게 어렵더라구요. 일단 쓰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어떤 책은 무슨 말을 쓰야 할지 진짜 모르겠고 뭐 다양한 경우이긴해요. 그래서 저는 요즘 좀 마음 편히 쓸 수 있는것, 쓰고 싶은 책만 쓰자 뭐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ㅎㅎ

모나리자 2021-04-27 11: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은 책은 빠짐없이 쓴다, 를 원칙으로 삼고 있네요. 글쓰기 휸련엔 도움이 되니까요.ㅎ 좋은 하루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1-04-27 20:44   좋아요 3 | URL
와우 역시 알라디너들은 책에 대해 다들 엄청 진심이군요. 설사 다 못쓰더라도 빠짐없이 쓰겠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러번 생각했는데 안되더라구요. ㅎㅎ 모나리자님도 댓글 감사합니다. 남은 오늘 편안한 휴식의 시간 되세요. ^^

잠자냥 2021-04-27 11: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생각해 보니, 주로 좋았던 책, 그래서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어쨌든 리뷰로 남겨서 기억해 두고 싶은 책을 위주로 쓰는 것 같아요.
가끔은 정말 너무 싫어서 비판할 점이 많은 책도 쓰는 것 같습니다.

정희진 선생의 저 말에도 공감이 가네요. ㅎㅎㅎ

바람돌이 2021-04-27 20:47   좋아요 3 | URL
저는 너무 싫은 책은 한 30페이지쯤 읽으면 결판이 나니까 그냥 안 읽어요. 내가 왜 나한테 자해를 해야 해? 이러면서요. 그리고 너무 시시한 책도 30페이지쯤 읽으면 던집니다. 올해도 몇 권의 책이 그런적이 있네요. ㅎㅎ
그래서 안 좋은 책의 리뷰가 없기도 한거 같구요.

정희진 선생의 저 말은 공감은 가지만 문제는 저런 책을 제가 안 읽는다게 문제인 것 같기도 하구요. ^^

han22598 2021-04-27 11: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읽었던 [팩트풀리스]가 그랬습니다 ㅎㅎ 책 전체로 봤을때는 비판할거 백만 가지였는데 그냥 머리말만 가지고 비판글 썼습니다 ㅋ 개인적으로 저는 비판글이 호평글 쓰기보다 쉬운 사람이라서 좀 그래요ㅠㅠ

바람돌이 2021-04-27 20:55   좋아요 2 | URL
[팩트풀니스]가 어떤 책인지 보고 왔어요. 제가 즐겨보는 책 종류는 아닌 것 같고, 소개글들이 좀 맘에 안드네요.
특히 이거, 한스 로슬링과 3분만 함께 있으면, 당신의 세계관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다. - 네이처
아 이거 너무 오만한 말이에요. 아무리 책을 팔아먹는게 중요하다 해도.... 평생을 같이 살아도 한 사람의 세계관도 바꾸기 힘든데 말이죠. han22598 님의 되도록 사람들이 이 책을 안 읽었으면 좋겠다는 돌직구도 잘 읽고 왔습니다. ^^

청아 2021-04-27 12: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별3개 주는 책은 좀 비추하는데다 읽고 화도 약간 나는 책인데 그래도 리뷰를 막상 쓰고나니 좋다는 댓글(아마도 별3개의 의미를 좋은 쪽으로만 보신)분들 보면 미안하고 난감해요. 게다가 그 책을 읽겠다고 하시는 분들보면 저의 멘붕은 이미 안드로메다에..당당하게 자기식대로 살죠뭐! 각자가 자기 인생의 우주인데용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4-27 21:00   좋아요 4 | URL
그래서 별 3개는 리뷰를 안 쓰는 걸로.... ㅎㅎ 아 최근에 저는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이 좀 난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알라딘의 많은 분들이 이 책을 격찬 또 격찬을 해서 저도 열심히 읽었는데요. 솔직히 너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별 3개 반인데 4개를 줬던가? 싶은데 그건 맞춤법 공부를 위한 실용서로서의 이 책의 위치는 괜찮다 정도에 준거거든요. 어쨌든 그래서 리뷰는 안 쓰는걸로..... 오늘 잠시 짬이 나서 정희진씨 책 머리말 좀 읽다가 5분만에 후다닥 쓴 페이퍼인데 반응은 5시간 쓴 페이퍼보다 더 열렬합니다. 역시 알라디너들은 책과 쓰기에 대해서는 다들 진심인 것 같습니다. 각자 자기 식대로요. 그래서 여기가 더 좋아졌습니다. ^^

별족 2021-04-27 13: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쓸 말이 욕 밖에 없으면 욕을 씁니다.
너무 좋은 책이어서 읽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안 생기면, 또는 다른 사람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했으면 쓸 필요 있나, 생각하고 안 씁니다. 그래서 욕이 더 많은 거 같아서 반성하고, 올해는 정말 좋았던 책도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람돌이 2021-04-27 21:02   좋아요 2 | URL
자신의 말에 당당한 별족님 존경합니다. 아 저는 쓸 말이 욕 밖에 없을 때는 자기 검열이 먼저 들어가는거 같아요. 아 이거 내가 제대로 못본거 아닌가? 뭐 이런...... 자신이 없으니 못쓰는거죠. ㅎㅎ

hnine 2021-04-27 14: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리뷰는 읽었다는 기록이라서, 좋든 나쁘든 다 쓰고 있어요.
따라서 1000편의 리뷰가 올라가 있으면 제가 읽은 책은 딱 그만큼 1000편이지, 그보다 더 읽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

바람돌이 2021-04-27 21:04   좋아요 2 | URL
아 오랫만에 오신거 맞죠? hnine님 글은 항상 조곤 조곤 다정하게 얘기해주시는 스타일이라 전 항상 좋아요. 그런데 그게 읽은대로 다 쓰신 글이라니 놀랍네요. 저는 읽고 안쓰거나 못쓰는 책이 점점 더 많아지는데 말이죠. 역시 꼼꼼하고 섬세한 hnine님 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

페넬로페 2021-04-27 15: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웬만하면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남기려고 해요~~
제 기준으로 별점이 좋지 않을 만한건 잘 읽지 않으니 그 책에 대한 비판을 잘 못하는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1-04-27 21:06   좋아요 4 | URL
아 맞아요. 별점이 좋지 않은 책은 잘 읽지 않고, 읽어도 읽다가 집어던지고(이건 저요. ㅎㅎ)....
아 근데 어제 읽은 츠바이크 책 중에서 체스 이야기는 완전 좋았고, 낯선 여인의 편지는 욕 나왔어요. 그래서 이번엔 욕도 한번 써볼려구요. 역시 소심한 저는 작가가 오래전에 돌아가신 분이고 심지어 외국인이라서 그런 결심도 합니다. ㅎㅎ

물감 2021-04-27 18: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비평 위주로 쓰는 저는 호평만 가득한 글을 거의 패스하는 편이에요. 남을 인식해서 내 감정을 속이고 쓴 글들은 다 티가 나더라고요. 별점을 낮게 주기 미안한 경우는 차라리 별점을 매기지 말고 솔직한 평을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알라디너들은 다 착하셔서 그런지 비평글 보기가 정말 힘들어요. 많이 아쉽습니다...

바람돌이 2021-04-27 21:08   좋아요 4 | URL
물감님이 말씀하시는 아쉬움이 뭔지 알겠어요. 사실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가 주례사 비평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서, 어떤 책이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네요. 물감님 말씀 따라 저도 좀 더 자신있게 과감하게 제 생각을 표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stella.K 2021-04-27 19: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재 활동 초기 땐 읽으면 쓴다는 쪽이었는데 지금은 갈수록 안 쓰게 되더군요.
이벤트로 받은 책은 무조건 써야하니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솔직하게 쓰죠.
저는 저자의 말에 원칙적으론 동의하지만 마음에 안 든다면 아예 안 쓰는 게 차라리 낫잖나 싶어요.
별거 아니라고 리뷰 써 봤자 그 이후에도 계속 좋다는 리뷰가 달리면
오히려 나만 뻘쭘해지고 노이즈 마케팅에 역풍을 맞을 수도 있거든요.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었구요.ㅋ

바람돌이 2021-04-27 21:16   좋아요 4 | URL
아니 리뷰때문에 노이즈 마케팅 역풍이라니.... 속상하셨겠어요. 그래도 여전히 열심히 읽고 쓰시는 stella.K님 존경스럽습니다. ^^
저는 요즘 이벤트용 출판사 증정 도서는 아예 근처도 안가고 받을 생각 절대 안합니다. 이게 책이 좋아서 좋다고 쓰도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고, 안 좋은 책은 안 좋다고 쓰면 출판사에 미안하고, 그렇다고 아예 안 쓰는 것도 양심이 찔리고..... 아 진짜 못할 짓이더라구요. 그냥 책은 내돈내산하고, 아니면 우리나라 도서관 완전 잘 되어있으니까 빌려보고요. 그게 맘편해요. ^^

붕붕툐툐 2021-04-27 22: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만의 비밀 병기(?) 【읽다 말은 책】 리뷰가 있습니다! 요게 그나마 좀 비판적인 리뷰인 듯 싶어요. 저는 제가 완독한 책은 별점을 잘 주는 편인데, 내가 읽었잖아요. 내가 선택해서 읽었으니, 가치를 높게 쳐주려는 그런 심리 발동.. 하.. 저는 이렇게 자기애가 강합니다~ㅎㅎ

바람돌이 2021-04-27 22:54   좋아요 3 | URL
읽다 말은 책 리뷰라니... ㅎㅎ 붕붕툐툐님 답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참신하고 좋네요.
저도 다 읽은 책에 대해서는 별점이 좋은 편입니다. 역시 다 읽었으니까요. 중간에 안 던졌잖아요. ㅎㅎ 자기애가 강한 우리 화이팅하자구요. ^^

수이 2021-04-27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능하면 읽은 책은 다 써두자 주의인데 음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어요. 제가 쓴 리뷰는 출판 시장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해서 마음 편하게 써요 헤헤

바람돌이 2021-04-27 23:26   좋아요 1 | URL
당연히 좋은거죠. 그걸 하시는 수연님이 대단! 저는 하고싶은데 못하는거구요. ㅠㅠ

psyche 2021-04-28 02: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은 책을 다 쓰고 싶지만,
좋은 책인 경우는 잘 쓰고 싶어서 미루다가 나중에 쓰려고 보면 까먹어서 못 쓰고,
영어책인데 별로였던 책은 그래도 막 별로였다고 쓰는데 한국 작가의 경우는 막 뭐라고 못하겠더라고요. 내가 뭐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요.
남들이 특히 알라딘에서 다들 좋아하는 책인데 저는 별로인 것도 잘 못 쓰겠고...
바람돌이님이 저랑 비슷하셔서 괜히 반갑네요.



바람돌이 2021-04-29 00:16   좋아요 1 | URL
psyche 님 저랑 완전 비슷!!
특히 좋은 책인 경우는 잘 쓰고 싶어서 미루다가 나중에 까먹어서 못 쓰고 있는거요. ㅎㅎ
저 지금 자기만의 방 너무 좋아서 막 쓰고 싶은데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할까만 고민하다가 다 까먹게 생겼어요. ㅠ.ㅠ

- 2021-04-30 00:34   좋아요 0 | URL
비판으로 판매량을 줄여야할 책은 읽다가 말기 때문에 (내가 왜 아까운 시간을 투자해 읽어야 하나...) 안쓰는 것 같고... 산 책 중에서 읽다가 돈 아까웠던 책에는 날카롭게 별로인 이유를 남겨드립니다.. 저도 좋아하는 책은 미루다가 못쓰고, 백자평 정도는 남기자.. 인데 이것도 게으름 부리다가 못쓰고... 독후감은 읽은 책들 정리하다 삘받으면 쓰는 편입니다. 읽느라 진빠져서 독후활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의 책들이 많긴 해요.. 문제는 제 진을 빠지게 하는 책들이 독후감을 쓰는 책들보다 좋은 책들인 경우가 1:4 정도로 많다는...ㅋㅋㅋ
결론: 적당히 좋아한 책에만 독후감 쓴다.

바람돌이 2021-05-02 00:54   좋아요 1 | URL
책읽기와 글쓰기가 동시에 가기는 다른 분들에게도 쉽지는 않은 일이군요. ㅎㅎ
항상 그래도 읽은 책은(다 읽은 책은 제 나름으로는 어느 한부분이든지 괜찮았다는 뜻이므로) 좀 쓰자 싶은데 참 어려워요. 그래도 몇자라도 긁적여서 리뷰든 페이퍼든 쓰고 나면 비로소 읽기가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읽은 책들도 막 쌓아두는데 역시 문제는 그 높이도 자꾸 높아져가고, 이건 어느 정도 높아지면 그냥 책꽂이로 넣어버린다는게 문제예요. 아휴 저걸 언제 다 써? 하면서 말이죠.
적당히 좋아한 책에만 독후감 쓴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인듯요. 진짜 막 좋은책은 읽다가 진빠지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뭔가 좀 더 음미하면서 잘 쓰고 싶어서 미뤄두다가 못쓰는....ㅠ.ㅠ

- 2021-05-02 01:24   좋아요 0 | URL
댓글들 읽으며 서재이웃님들의 스타일을 알아가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네요 ㅎㅎㅎ

하양물감 2021-04-30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내 기준에 안 맞다고 안 좋은 책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 책은 독자 대상을 추천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처음 접하는 분, 좀 아는 분, 관심 많은 분, 어린이나 청소년용, 학부모용 등등... 내가 많이 읽어서 좀 아는 책인데 별로다 싶으면 이쪽 분야 좀 아는 분은 읽지 마시오.... 정도?

바람돌이 2021-05-02 00:55   좋아요 1 | URL
오오오~~~ 이런 식의 리뷰도 있겠군요. ㅎㅎ
기준에 맞추어서 추천하는 리뷰도 앞으로 잘 생각해두겠습니다. ^^

희선 2021-05-03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달라서 자신한테 좋은 책이 다른 사람한테도 좋은 책은 아닐 때도 있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좋다고 해도 자신은 별로일 때도 있고... 제가 그럴 때가 많은데, 그럴 때는 제가 이상한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저는 읽은 책은 다 써요 잘 쓰지도 못하면서 다 쓰다니... 쓰고 싶은 것만 잘 쓰는 사람 부럽습니다 그게 더 좋은 듯해요


희선

바람돌이 2021-05-07 00:26   좋아요 0 | URL
읽은 책을 다 쓰는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요. 희선님의 글은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아서 읽고 나면 뭔가 위로받는 느낌이 나요. ^^ 저는 언제 읽은 책은 다 썼다라고 해볼까 싶습니다. ㅠ.ㅠ
 

1. 고조선의 고(古)는 삼국유사에서 처음 보임
   - 삼국유사에서는 고조선(단군조선+기자조선) - 위만조선으로 구분(즉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하여 古자를 붙임
   - 그러나 후의 조선에서는 이런 구분이 별로 사용되지 않고 여러가지로 사용되나 흔히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이 많이 사용 
   - 17세기 이후 기자조선-마한-신라-고려-조선으로 우리 역사를 체계화하려는 사고방식  
   - 특히 대한제국 시기는 기자존숭이 극에 달함. 기자를 중흥군주의 모범으로 삼음 
   -기자를 왕도정치의 모범, 성현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율곡 이이<기자실기>에서이다 

2. 565년 중국 <북제서>에 처음으로 '김진흥'이란 이름이 보임 - 진흥왕
  - 진흥왕때 한강유역 점령 이후 중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외교상 성씨를 쓰기 시작한듯.
    (특히 도당유학생들이나 장보고 같이 당에서 활동한 사람들은 대부분 성씨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이름을 쓰는 방법의 차이에서 유래함)
  - 이후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며 왕실의 계보를 정리
  - 고구려 장수왕때 중국에 보내는 국서에서 고씨 사용
  - 백제 4세기 근초고왕때 여씨 성을, 7세기 무왕때 부여씨를 씀
  -고려 초기 성씨 확산, 하기만 성을 가진 사람은 여전히 소수 지배층 - 적어도 지방의 지배집단 이상 신분의 사람이어야 했다. 여기서 백성(百姓)이라는 말 유래
  - 본관 역시 고려초부터 생김. 본관은 해당 지방에 대한 지배권에서 유래, 이후 국가가 民에게 역을 부과하는데 기초자료가 됨
  - 16세기까지는 전체 인구 중 40%정도가 성이 없음.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 타파, 1909년 일본 통감부 치하에서 새로운 호적제도인 민적법이 사용되면서 성과 본관이 일반화 됨  

3. 고려시대 왕의 측근을 가리키던 내시라는 명칭이 환관과 혼동되기 시작한 계기
  - 무신정권기 의종이 환관 정함을 내시에 임명. 이후 고려에서 원간섭기에 환관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
  - 공민왕 5년(1356) 환관의 관청을 새로 설치하는데 그 이름이 내시부. - 따라서 이후 환관과 본래의 내시가 혼동되어 불리기 시작 - 조선시대에는 내시는 환관과 동의어로 쓰임.

4. 고려장의 유래  
  - 중국 <효자전>에 실린 원곡이야기, <고려대장경>에 수록된 <잡보장경>의 기로국설화
  - 여기서 기로국이 고리국 또는 고려국으로, 기로장이 고려장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 고려장을 고려 때 실제 풍습이라고 두루 믿게 된것은 일제시대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동화집>에 이 이야기를 실으면서 부터 확대재생산 된듯....
 - <조선 동화집>의 편집과장 "오다 쇼고" - 대표적인 식민사학자  

5. 현무양처의 신화
  - 조선시대 이상적 여성은 현모양처가 아니라 열녀, 효부
  - 근대 이후 생산영역과 재생산영역(가정)의 구분이 명확해지면서 새로운 여성상을 요구하게 되면서 등장, 여성은 자녀교육의 담당자이며 따라서 여성의 교육이 강조된다.
  - 동시에 식민지 시절 현모양처는 일본제국주의의 통치이데올로기로 활용됨. 여성교육을 통해 가정에서부터의 사회적 황국신민화 시도. 이를 위해  "현모양처"의 개념이 조선의 전통사회와 닿아있음을 선동. 따라서 현모양처가 근대적 산물임에도 전근대의 산물로 오인받게 되는 것
  - 신사임당의 등장 :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현모양처의 강조. 60년대 초 - 신사임당 전기 출간, 5/17일 신사임당의 날 제정 등... 

6. 온달과 평강공주의 결혼에 대한 평가 - 조선 유학자의 입장에서 보다
  안정복, <동사강목>제3 상 정유년 11월 
고구려 왕의 말이 일시적인 희롱에서 나온 것이요, 처음에 온달과 약혼한 일은 없었으니, 공주가 비록 신의를 지키고자 하였으나 그것은 이른바 껍질이 없으면 털날 곳도 없다는 말과 같다. 하물며 스스로 온달에게 갔으니, 이는 외도(음분)의 일이다. 혼례를 갖추지 않으면 정숙한 여인으로서는 행하지 못할 일인데, 존귀한 공주가 "밤중에 이슬을 맞아가며 찾는 것"을 꺼리지 않고 홀로 산과 들을 헤메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시집갔으니 어찌 정숙하다 하겠는가? 고구려 왕이 딸 하나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방종케 하였으니 국가를 욕되게 하고 풍기를 문란시키고, 윤리를 어지럽혔으며 도의를 그르친 바가 크다. 괴벽하고 비루한 오랑캐 풍속의 소치이니 말할 가치도 없다.  

7. 원효의 오도(깨달음)장면의 전래
  - 국내에는 전하는 기록이 없고, 중국 문헌에 전한다. 961년 연수가 쓴 <宗鏡錄>, 988년 송나라때 찬녕이 쓴 <송고승전>, 1107년에 덕홍이 쓴 <임간록>에 전한다. 
  - <송고승전>은 신라땅의 무덤속에서 귀신을 만난 것으로, <임간록>에서는 해골물을 마신 것으로, <종경록>에서는 시체 썩은 물을 마셨다고 쓰여있다. 그런데 임간록과 종경록은 당나라땅에서 일어난 일로 묘사하고 있어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드라마틱하게 원효의 이야기가 적혀있어 후대에 인상적으로 남지 않았나 추측할 수 있다.  

8. 이이의 <십만양병론>의 진위
  - 선조 실록(광해군대에 제작)에는 율곡의 시무6조의 건의 내용이 실려있으나 여기에 십만양병론은 없다. 다만 양병을 주장하며 양병의 기본이 양민에 있음을 주장.
  - 선조수정실록(인조대에 서인에 의해 제작)에는 율곡의 상소에는 십만양병설이 없으나, 뒤에 나오는 부연설명에 이이가 경연에서 10만 양병을 주장했다고 간략하게 전하고 있다.
  - 최초로 십만 양병론이 나오는 것은 율곡의 제자 김장생이 스승을 추모하여 쓴 <율곡행장>
    <율곡연보> - 송시열 등이 편찬 간행한 율곡에 관한 최초의 공식 전기
  - 결국 서인들이 권력을 잡고 난 이후 서인의 학문적 시조인 율곡 이이에 대한 존숭과정에서 이런 십만양병론이 구체화되고 완성된 것이 아닐까?
  - 현대에 와서는 박정희가 1974년부터 실시한 군 방위력 증강계획에서 율곡을 다시 끌어댄다. 이름도 '율곡사업' 

 9. 김정호와 <대동여지도>
  - 김정호에 대해서는 출생, 신분, 사망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진 기록이 전혀 없다.
  - <대동여지도>역시 김정호가 혼자 전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측량하여 만든 지도가 아니라, 이전에 만들어진 여러 지도를 두루 참조하여 종합, 집대성한 지도다.
  - 김정호의 답사설과 흥선대원군에 의한 사망설의 진위
   - 최남선1925년 동아일보 기고문에서 처음 제시, 잡지 <청춘> 제 1호에서 다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100인 중 지리 분야의 대표 인물로 김정호 선정
    - 이후 <어린이>, <학생>등에 소개되면서 알려지기 시작, 이 과정에서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덧붙여지고 윤색이 가미됨
   - 1934년 조선총독부 발행 교과서 <조선어독본>에 이 이야기가 실림으로써 학교 교육을 통해 널리 보급됨. 조선총독부가  이 이야기를 실은 의도는 결국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의 위대함을 알아보지 못한 조선 정치가들의 무지와 편견을 비난하면서 그 가치를 알아본 것은 바로 일본인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  

10. 고인돌
  - 고인돌의 북방식, 남방식 분류의 문제 -이 분류법은 1926년 일본인 도리이 류조가 처음 정립.한반도를 남부와 북부로 나누고 남부는 순수한 한민족의 영역이지만 북부는 대륙에서 들어온 다른 민족의 영역으로 한민족은 항상 외부세력에 의해 발전했다는 타율성론, 만선사관을 제시
  - 고인돌의 용도는 훨씬 다양했을 듯.. : 지배자의 무덤, 또는 그 가족의 공동묘지(합장, 또는 한 고인돌 아래에 여러개의 무덤방이 있는 경우), 한 집단의 공동묘지, 전사자의 무덤의 가능성
  - 제단으로 쓰인 고인돌 : 다른 고인돌과 떨어져 홀로 우뚝 서 있을 것, 크고 웅장할 것, 주변을 잘 둘러볼 수 있도록 시야가 탁 트인 곳에 서 있는 것
  - 묘표석으로서의 고인돌 - 다른 고인돌과 무리지어 있긴 한데 무덤방이 없는 경우, 아마도 묘역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보인다.  

11. 신라의 금관
  - 발굴당시의 모양은 시신의 얼굴을 완전히 덮고 세움장식을 안쪽으로 모아 깔때기 모양으로...
    즉 시신용 마스크가 아니었을까? (일상생활에서 쓰기에는 구조적으로 불가능)
  - 세움장식은 사슴뿔, 또는 나뭇가지(인간과 하늘을 연결해주는 통로 즉 생명나무) , 곡옥은 나무열매 즉 생명체를 상징, 서봉총 금관의 새는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
 - 금관은 5세기 초 - 6세기 초의 약 100년간의 무덤에서 출토 - 이 시기는 눌지 마립간~지증마립간시대. 이 시기 돌무지덧널무덤에서 금관이 출토되는 것. 또한 이 시기 이런 금관은 왕뿐만이 아니라 왕의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의 무덤에서도 출토됨 

12. 광화문앞 해태의 여러 의미
  -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될때 6조거리 사헌부앞에 해태상이 만들어진다. 해태는 시비와 선악을 판단, 옳지 못한자를 문다고 하니 법과 정의를 지키는 동물로 여겨진 것이다. 같은 의미로 사헌부의 대사헌의 관복 흉배에는 해태가 그려졌고, 사헌부 관리들은 해태문양에 장식된 모자를 썼던 것이다. 즉 해태는 사헌부의 상징이었던 것.
  - 두번째 궁에 들어갈때 하마석지표로서의 역할도 같이 한 듯하다.
  - 일제시대에는 철거되었다가 조선총독부 건물 앞에 세워져 조선총독부를 지키게 되다.
  - 1968년 광화문 복원 이후 현재의 자리로 이전, 하지만 원래 의미는 사라지고 관악산의 화기를 누를 목적으로 세워졌다는 이야기만 남게 된다. 

13. 고조선건국기원의 문제
  - 2005년판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B.C2333년)
  - 실제 삼국유사기록 : 단군왕검은 요임금이 즉위한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요임근 즉위 원년은 무진년이니 즉위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 일연이 말한 고조선 건국 연대는 즉, '요임금 즉위 50년 정사년'이다.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284년이다.
  - 그러면 기원전 2333년은 근거는? 조선시대 서거정의 동국통감 "동방에는 최초에 군장이 없었는데, 신인이 단목 아래로 내려오자 국인이 세워서 임금으로 삼았다. 이가 단군이며 국호는 조선이었는데, 바로 당요 무진년이었다. (기원전 2333년)
  - 요임금의 즉위년 자체의 진위여부 불분명, 고고학적 연대와 불일치등의 문제 

14. 백제 왕인에 대한 의문들
  - 현재 천자문은 중국 양나라의 주흥사(인물 생존기간 470-521), 왕인이 일본에 천자문을 전한 시기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 --->그렇다면 왕인이 전한 천자문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자문은 아니다.
  - 왕인에 대한 기록이나 설화가 국내에는 전혀 없다. 가장 오래된 기록인 이덕무의 <청령국지>나 한치윤의 <해동역사>의 기록은 모두 일본의 기록을 그대로 옮긴 것. 일본의 기록의 연원은 <일본서기>
  - 일본의 왕인에 대한 주목 : 18세기 일본국학에서 고대사 연구에 주력, 일본에 문풍을 일으킨 인물로 왕인을 지목, 일제시대 만주사변에서 대동아 전쟁기간동안 왕인에 대한 논문이 가장 활발하게 발표, 왕인의 탄생지를 전남 영암군 구림리라고 지목한 것도 1932년의 일이다. 영암지방에 전하는 왕인 설화도 이 지역 출신인 도선의 설화와 섞여 있어 진위여부가 불투명 ---->일본이 내선일체 선전사업에 왕인을 이용
  - 왕인에 대한 최근 연구 : 왕인은 4세기 인물이 아니라 6세기 인물, 그가 전한 천자문 역시 주흥사의 천자문이 맞다고 주장, 그리고 백제에서 박사라는 호칭이 쓰인 시기가 6세기라는 점. <일본서기>나 <고사기>가 6세기 인물인 왕인을 4세기 인물로 앞당겨 기록한 이유를, 당시의 최고 선진문화였던 유교 문화가 일본에 전해진 시기를 앞당기고 싶어한 일본인들의 소망이 투영된 것이라고 풀이

15. 임진왜란때 궁궐을 불태운 것은 백성? 일본군?
  - 선조실록(광해군때 편찬) - 5월3일자 기사에 이 때 궁궐이 불탔으므로 왜군이 종묘에 들어가 머물렀다. --->백성들이 궁궐을 불태웠다는 기사는 없음. (4월30일 선조 도성 포기, 피난)
  - 유성룡 <징비록> : 돈의문을 나와서 사현에 이르니 동쪽 하늘이 차츰 밝아왔다. 고개를 돌려 도성안을 바라보니 남대문 안 큰 창고에서 불이 일어나 연기가 이미 하늘에 치솟았다.(백성이 궁궐을 불태웠다는 기록은 없음>
  - <선조수정실록> ( 서인에 의해 효종때 편찬) : 거가가 떠나려 하자 도성의 간민이  내탕고에 들어가 보물을 훔쳤고, 거가가 떠나자 난민이 크게 일어나 먼저 공사노비 문적이 있는 장예원과 형조를 불태우고 궁성의 창고를 약탈하고 방화하여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일시에 모두 없어졌다. ---->일제시대 이 기록을 받아들여 정설로 굳어짐
  - 임진왜란 당시 일본측 기록 
     : 고니시 유키나가 휘하의 장수 오오제키의 전기 <조선정벌기> 입성한 5월 3일 궁궐 건재
       가토 기요마사 휘하 승려 제타쿠의 <조선일기>5월 4일 궁궐 건재
       종군승려 덴케이의 <서정일기>5월 7일 "금중에 들어가니 궁궐은 모두 초토로 변해있었다"
       -------> 결국 일본에 의해 5월4일과 7일 사이에 궁궐이 불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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