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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가물해지는 기억을 붙잡아....
일본 중세를 떠돌다가 마지막날에 일본 고대사의 현장을 가다.
글에 들어가기전에 먼저 이 날의 답사는 나에게는 가장 충격적인 날이었음을 미리 밝혀두자.
일본의 고대사라고 하면 우리나라와의 교류관계를 무시할 수 없고, 심지어 우리 교과서의 서술은 일본의 고대문화란게 거의 한반도의 영향을 일방적으로 받은 것으로 서술함으로써 일본은 독자적인 문화내용이 거의 없었던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라의 유물들은 이런 식의 생각이 얼마나 자아도취에 불과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나라역에 내려 먼저 동대사로 향했다.
동대사(도다이지)는 745년 쇼무천황의 명령으로 세운 나라 최대의 사찰이다.
버스를 내리자 마자 소문에 듣던대로 사슴들 천지다.




유유히 건널목을 건너는 아기 사슴. 이곳의 사슴들은 길 건널때 횡단보도로 건너나보다. ^^
부처가 최초의 설법을 행한 곳이 녹야원이니 딴엔 불교사찰에 어울리는 동물이기도 하다.
또한 고대시절 이곳은 천황권을 능가하는 권력을 휘둘렀던 후지와라 가문의 영향이 컸는데 그 집안의 상징 동물이 사슴이기도 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일본의 전설에서 사슴은 하늘에 사는동물이라고도 한다. 뭐 이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곳에 사슴을 방사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쨌든 관광상품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이놈의 사슴도 너무 많다 보니 성가시고, 게다가 야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늘어질대로 늘어진 사슴들의 모습은 금방 식상해진다.

사슴의 무리를 지나고 지나 드디어 동대사 입구, 남대문이다.


남대문을 들어와서 입구에서 찍은 사진.
바깥쪽에서 찍은건 어찌된 일인지 건질게 별로 없다. ㅠ.ㅠ
남대문은 화재로 소실된 것을 1199년 가마쿠라 막부가 정통 중국양식으로 재건했다고 한다.

남대문의 모습은 멀리 입구에서부터 방문객들을 압도하듯 엄청난 크기가 먼저 다가온다.
하지만 일본의 특징인듯 안쪽이든 바깥쪽이든 전체의 모습을 한 눈에 보여주지는 않는다.
건물의 구조상 가릴만한데가 없으니까 양쪽에 소나무를 울창하게 심어 바로 그 소나무가 양쪽을 가려놓도록 한 것.
그래도 어쨌든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익숙한 절 풍경이 펼쳐지는 건 반갑다.
그동안 다녔던 절들이 기본 입구에서부터 우리나라 사찰과는 너무나도 구조가 달라 왠지 절같다는 느낌이 안났었는데 동대사는 절 입구의 문을 시작으로 확트인 공간으로서의 길과 본전이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어 익숙한 절의 구조를 보여준다.
남의 나라에서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이기도 하고.... ㅎㅎ

하지만 남대문에서부터 나를 전율케 하는게 있었으니 바로 남대문 양쪽에 세워진 인왕상이다.





저 거대함! 하지만 거대함만으로 이 인왕상을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
크다고 해서 아름다운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앞에 서면 금방이라도 보호투망을 뚫고 뛰쳐나올 것 같은 저 생동감 넘치는 조각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나무라고는 하나 키가 8.4m나 되는 조각을 저토록 유연하고도 강렬하게 조각하는 솜씨라니....
인왕상은 석굴암이 최고라고 생각하던 내 고정관념을 와르르 무너지게 만든다.
오랜 세월속에 박제된 인왕상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불법수호를 외치며 뛰쳐나올것 같은 인왕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무리 조각이 상대적으로 쉬운 나무라 할지라도 이정도의 조각을 남길수 있는 일본고대문화라면 그 역량이 만만치 않았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어쨌든 인왕상 중에서는 여태까지 내가 본 인왕상 중에 최고라는 찬사를 남긴다.(인도를 안가봤으니 뭐 나중에 고쳐질지라도.... )

인왕상의 충격으로 한참이나 남대문을 떠나지 못하다가 겨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남대문을 들어서면 멀리 중문이 보이고 그 중문은 이런 회랑으로 둘러져 있다.
우리 나라에서 자주 보던 구조다.
하지만 이정도 크기의 회랑을 우리나라에서는 만나기 어려우니, 황룡사나 미륵사의 회랑이 이렇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된다.
여기서는 가끔씩 일본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저기 까만옷 입은 분)
그동안 일본의 절이 절같은 분위기가 거의 안났던데에는 관광객이나 관리자들 외에는 이런 스님을 만나기 힘들었던데도 원인이 있었던듯...
우리나라의 절과는 달리 일본의 유명한 절들은 스님의 수행공간으로서의 의미는 거의 없는듯했다.



이곳이 중문이다. 저기 옆쪽이 앞 사진의 회랑이고.... 이문을 들어서면 동대사의 본전이 일직선으로 보이게 된다.
팔작지붕의 단정한 폼새는 당시 우리나라와의 교류의 흔적을 보여주듯 눈에 익숙하다.




유명한 청동대불이 있는 동대사의 본전이다. 높이 47.5m, 가로 57m, 세로 50m.
한때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라는 명성을 누렸던 건물이다.
나라시대 원래의 건물은 헤이케와 겐지 가문의 전쟁때 불타버리고 이후 가마쿠라 막부때 재건되었다가 다시 소실, 결국 에도 시대인 1692년에 재건된 것이다.
그 뚜렷한 증거가 에도 시대에 많이 차용되었던  저 투구모양의 가라몬이다.
저 가라몬은 보면 볼수록 무사적 풍모를 닮아있다.
모양부터 그렇고 상대방을 압도하는 듯한 분위기 또한 그러하다.
저 가라몬이 있는 건물들은 여지없이 방문객을 위압하고 건물을 장대하게 보이게 하는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이 본전이 다른 비슷한 건물보다는 덜 위압적인 것으로 느껴졌는데 아마도 그것은 저 건물의 크기를 능가하는 넓게 텅 비어있는 앞 공간의 힘인 듯 느껴졌다.
이런 저런 건물이 들어서도 충분할 법한 넓은 공간을 텅 비운 채로 둠으로써 건물의 크기와 균형을 맞추고 있는 감각이 훌륭하다.



건물 자체의 크기를 실감하기에는 이렇게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 효과적인듯.....




본전 앞에는 이렇게 청동으로 만든 등 하나만 살짜기 놓여있다.
등 자체의 균형감은 떨어지고 워낙에 넓은 공간에 덩그렇게 놓여있다보니 영 분위기가 안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각의 훌륭한 솜씨는 충분히 감상할만하다.

드디어 본전으로 들어갔다.
본전의 공간은 신발을 신고 그냥 들어갈 수 있고 내부는 통째로 트인 하나의 공간이다.
전면에 높이 16m의 청동대불을 안치했다.




이 거대한 불상을 만들기 위해 대불의 키만큼 땅을 파서 거푸집을 놓았단다.
그리고 공정을 여덟번으로 나누어 아래부분부터 주물을 붓고 굳으면 그 위로 다시 붓는 식으로 해서 조립하고, 머리는 따로 만들어 붙였다고 한다.
비로자나불이라고 하는데 일단은 우리나라의 비로자나불과는 손모양이 너무 달라 조금 의아스러웠다.
동대사의 분위기도 그렇고 이 청동대불의 크기도 그렇고 엄청나게 위압적이리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만큼 위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주 온화한 분위기는 아니고....
크기를 제외한다면 그렇게 특별한 감흥은 없고 무난하다는 느낌이랄까....

본전은 이 불상이 가운데 있고 나머지 빈 공간들이 꽤 넓다.
그 공간들은 또 각종 불상들과 이 절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들의 전시, 그리고 동대사의 역사와 모형을 전시하는 곳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전시 공간이 아니다 보니 약간은 어수선한 느낌을 받는다.




청동불 앞에는 역시 거대한 화병으로 장식을 해놓았는데 화병에 붙어있는 나비 조각이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우아하다.
조각이니까 우아하지 만약 실제로 이런 거대 나비를 본다면? 으~~~ 싫어.... ㅠ.ㅠ



이 익숙한 표정이라니....
흔히 알고있던 일본의 도깨비(귀면)가 아니라 딱 우리나라에서 많이 보던 그 표정이다.
우리 옆지기의 표현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와와 아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준단다.
우리나라의 귀면기와가 푸근한 해학이라고 한다면 이건 아주 세련된 해학의 느낌을 준대나?
그 말을 듣고보니 딴은 그렇기도 하다.

오늘의 보너스 컷!
대불전 안에 기둥들 역시 건물만큼이나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뭐 건물이 크니 당연한거지만....
그런데 그 기둥들 중의 하나에 누구인지 구멍을 뚫어놓았다.
그리고 여기를 통과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대나 어쩐다나....
그런데 이런 신성하다면 신성하달수 있는 종교공간에 이런 귀여운 장난을 펼쳐놓은 유머감각을 가진 사람은 누구였을까? 딱 내 스타일이었을 것 같은데.... ㅎㅎ
어쨌든 여기에 도전을 안할리가 없는게 또 우리 일행이다.
구멍의 크기를 본 순간 나는 나의 푸짐한 덩치를 생각해서 애저녁에 포기!
우리 중 가장 날씬한 남녀가 도전!




일단 어깨만 들어가면 성공한다는 말을 믿고 용감하게 도전한 두 사람!
근데 정말로 성공하더구만.... 주변의 수많은 관광객의 박수도 받고....
그런데 결정적으로 말이다.
통과하면서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이 둘다 통과자체에만 용쓰다가 소원 비는건 새까맣게 까먹어버렸단다. ㅎㅎ

역사상 거대한 건축물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동대사 역시 당시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이다.
동대사가 만들어지기 전 일본은 급부상하며 천황권을 위협하는 후지와라 가문의 위세가 대단했다. 천황의 아들조차도 후지와라에 대립하다가 모반죄를 뒤집어 쓰고 강제 자살을 당했으니...
결국 후지와라에게 쫒겨 다니던 쇼무 천황은 역전을 위한 발판으로 바로 이 동대사를 창건한것.
뭐 부처의 힘에 의지해 후지와라를 이겨보겠다는 심정도 있었을테고, 또 이런 큰 건물을 지으면서 자신의 위세를 과시해보고자 하는 심정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대사가 지어진지 40년도 채 안돼 쇼무천황의 혈통은 끊어지고 뒤에 즉위한 간무천황은 결국 후지와라 가문의 위세를 피해 교토로 천도를 해버리니 나라시대는 끝나게 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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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10-10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를 정말 통과해보는 분들이 계시는군요.

바람돌이 2007-10-11 00:18   좋아요 0 | URL
꽤 있던걸요. ㅎㅎ 제가 조금만 살을 뺐어도 저도 도전해보는건데... ㅎㅎ

전호인 2007-10-1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롭게 거리를 호라보하는 사슴무리가 참으로 인상깊네요, 가까운 나라이지만 쉽게 가보질 못하고 있네요, 온천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습니다. ^*^

바람돌이 2007-10-11 00:19   좋아요 0 | URL
저 사슴무리는 좀 있으면 식상해집니다. 나라 공원이 엄청나게 넓은데 온천지가 사슴이니까요. ㅎㅎ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 해도 직장다니는 사람들이 며칠씩 시간내는거 쉽지 않잖아요. 게다가 자금 역시나.... 저희도 다녀와서 지금 마이너스 통장 한계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ㅎㅎ

홍수맘 2007-10-10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여행기들을 읽으면서 어쩜 이렇게 살갑게 느껴질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마 제가 일본여행을 가게 된다면 제일먼저 님의 글들을 챙겨볼 거예요. ^^.

바람돌이 2007-10-11 00:19   좋아요 0 | URL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저야 고마울 따름이지요. ㅎㅎ

2007-10-11 0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7-10-11 23:38   좋아요 0 | URL
아는 사람은 저기서 몇 명을 찾아내겠네... ㅎㅎ 그리고 울산댁하고 나하고는 다르지... 나야 뭐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는 것들이 반이니... 난 너의 그 낮밤이 바뀐 생활을 이렇게 오래도록 해내는 니가 더 대단하다.

서진호 2012-07-24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동대사를 보면서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충격이 컸습니다.
일본인들은 동대사가 중국의 도움을 받아 일본정부가 지었다하고 있지만
사실 동대사를 짓는데 가장 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은
백제의 양변스님과 행기스님입니다.
가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대불전 옆에 행기당이 있고 가장 높은 쪽에 양변나무가 있지요
아직까지도 일본인들은 양변스님과 행기스님을 기리며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일본놈들이 양변스님과 행기스님을 일본사람으로 소개하고있다는 것입니다!
 

한동안 여행기를 안썼더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한다.
거기다 여행의 흥분도 이제 어지간히 사라져서 좀 시큰둥해진달까?
일단 오늘은 간단하게 사진들로 다시 기억을 되살려보자.

히메지에서 이대로 고베로 갈까 어쩔까를 일행들과 고민을 했는데 워낙에 히메지가 좋았던 때문인지 아니면 고베라는 곳 자체가 별로 우리한테 어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는지 그냥 오사카로 돌아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가서 맛난 저녁먹고 일찍 숙소에 들어가 또 다시 맥주시음의 행렬을 계속하자는 쪽이다.
그 전날도 도톤보리에 가긴 했었는데 어쨋든 우리의 목적은 오사카로 돌아가서 맛난 저녁을 먹자는 정도지 도톤보리가 맘에 들었던 건 전혀 아니었다.



도톤보리 거리는 딱 우리나라 번화가다.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멀미할 것 같은 기분.
왼쪽에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꼭 찍어오곤하는 커다란 게 간판이 보이지만 뭐 대충 시큰둥하다. 별로 볼 것 없고 가게들도 특별히 맘에 드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대도시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번잡한만이 가득인 곳.



아 요 간판도 많이 봤던거지.... 그냥 남들이 다 찍어오니 구색맞춰 한 장




하지만 중심가를 약간 벗어나면 많이 한적해지면서 숨을 좀 돌릴만하다.



아래쪽의 강이 도톤보리 강이라는데.....
예전에는 아래에 내려갈 수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공사중이듯 삭막하기만 하다.
갑자기 교토의 강변의 운치가 그리워졌다.



제일 맘에 들었던 간판.
횟집인듯한데 딱 소설 <샤바케>가 떠올랐다. 물고기 요괴들... ㅎㅎ



지나가다 본 호텔 입구인데 저 두상들은 왠지 좀 괴기스럽다.
눈길은 끌지만 별로 들어가고 싶은 기분은 안난다.



도톤보리 거리에서 본 스포츠용품점.
저 창들 하나하나가 모두 상품의 전시공간이다. 건물 벽면을 모두 디스플레이공간으로 활용한게 이채로왔다. 아마도 문을 열었었다면 들어가 봤을 듯....



곳곳에서 본 무료안내소 간판...
일행들간에 도대체 저게 뭘 안내하는 곳인지 의견이 분분하면서 물어볼까 말까를 가지고 싸웟는데 안물어본게 다행이었다.
조금 더 가보니 확실하게 정체를 알 수 있는 무료안내소가 나오더구만...
정확한 내용은 알수없으나 어쨋든 야시시한 여자들이 나오는곳이라는건 알겠더라..




아 그리고 드디어 문어빵 -다꼬야기를 사먹었다.
위에 사진처럼 반죽을 얹어놓고 끊임없이 뒤집기를 반복하면 아래 그림처럼 되던데...
맛은 뭐 그럭저럭 먹을만은 했으나 입에는 안맞았다.
보기에는 참 맛있게 생겼는데 말야....

여기선 별로 사고싶은 것도 없고 걸어다니는 것도 피곤햇던 기억밖에 없는 것 같다.
다만 좀 한적한 곳으로 가서 먹었던 초밥은 정말 맛있었다는 것만 기억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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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07-09-29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구경 잘 하고 갑니다. 다꼬야기는 문어로 만드나봐요??
호텔 입구의 두상 기둥들은 정말 괴기스럽네요.^^

바람돌이 2007-09-29 23:32   좋아요 0 | URL
밀가루반죽 안에 문어를 섞는거죠. 근데 말했듯이 별로 맛은 없더라구요. 그냥 저냥 밍밍하달까... ㅎㅎ 호텔 입구의 두상들도 아마 밤에 봐서 더 괴기스럽게 느껴졌을거예요. 근데 낮에 보면 좀 지저분하게 보이지 않았을가 싶기도 하고.... ^^

다꼬왕 2012-04-29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도농 이마트앞 차량에서 먹어본 다꼬야끼가
정말 맛있었습니당
 



히메지 성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히메지성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저 모습이 마치 백로가 날아가는 것을 연상시킨다 하여 백로성이라고도 불리운다.
저토록 복잡하게 생겨먹은 건물이 균형감을 전혀 잃지 않고 저리도 우아할 수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경이 그 자체이다.
성 바깥에서 저 성을 보던 백성들은 어떠했을까?
범접할 수 없는 우아함과 위압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저 곳.
매일의 고된 노동과 착취에 시달렸을 백성들에게 저 아름다움은 어떤 의미였을지 자못 궁금하다.





천수각의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히메지 성은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곳이 전쟁의 방어를 위한 곳이기도 하지만 통치의 장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히메지 성이 세워진건 1333년 아카마쓰 노리무라라는 이가 히메지 언덕에 요새를 쌓고 일대를 통치한 것이 최초라고 한다.
하지만 현존하는 성의 기원은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가 히메지가 있는 효고현 일대의 모리씨를 격파하기 위해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파견한 것에서 시작한다. 히데요시는 바로 이 히메지 언덕을 모리씨의 동진을 막는 거점으로 선택하고 이곳에 성을 새롭게 만들고 천수각을 세웠다.
이후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이 성을 자신의 사위였던 이케다 데루마사에게 주었고 이후 히메지성은 그에 의해서 확장 증축되었다고 한다.(배낭매고 둘러본 일본역사 중에서)

결국 히메지성은 전국시대 혼란기의 정점에서 건축되었으나 실질적인 현재모습으로의 건축은 전국시대가 끝난 시점이었다.
그것은 이 성이 전국시대의 산물로서 전투를 위한 각종 장치들을 간직한 최고의 요새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하였을 것이며 동시에 이곳이 이후 실제 전쟁터로는 쓰이지 않을 수 있게 됨으로써 원형이 그대로 보존 되는 행운을 누리는 결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성의 최대의 위기는 바로 2차세계대전때였다.
1945년 미국의 전격적인 공습으로 온 일본이 잿더미가 되던 시절, 히메지 역시 공습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인지 일부러 피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주변이 모두 폐허가 되었음에도 히메지성은 기적적으로 무사했다고 하니 후대의 일본인들에게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문을 들어서기 전에는 여지없이 넓은 해자가 자리하고 있다.
이제부터 성을 둘러보는 길은 성의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을 보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성의 최고의 아름다움은 역시 멀리서 조망하는 천수각의 모습이었다.
내부를 들어서면 아름다움보다는 이곳이 얼마나 전투적인 곳인가를 느끼는 것이 더 먼저다.
성을 따라가는 길은 저절로 내가 만약 이곳을 공략하러온 적군이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를 상상하게 하는 길이다.
<배낭매고 둘러본 일본역사>의 저자 임용한씨가 히메지성을 아름다운 공포라고 표현했던 것은 히메지 성에 대한 정말 절묘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먼저 이 해자만 하더라도 이전 니조성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훨씬 넓다.
아마도 공격자는 이 해자에서부터 절망했으리라....

해자위의 작은 다리를 건너 정문을 들어서면 넒은 광장이 나온다.
히메지 성의 구조로 보면 이곳 역시 광장이어서는 안된다.
예전에는 이곳에 각종의 영주의 거주지, 부속건물, 신하와 무사들의 거주지, 그리고 각종 방어장치들이 설치되어있었는데 지금은 철거된 상태라고 한다. (철거의 이유는 알 수 없었는데 어쨌든 지금은 시민공원으로 이용되고 있고 오른편에는 생뚱맞게도 동물원까지 있다. 아 놀이기구도 있더만... )



시민공원을 지나 매표소를 통해 들어가면 처음만나는 공간이 히시노몬이라 불리는 정문이다.
이곳에서는 길이 세갈래로 나뉜다.
정면 연못사이의 좁은 길은 천수각으로 올라가는 중앙통로이고, 왼쪽으로 가면 니시노마루, 오른쪽은 천수각 우측으로 돌아 올라가는 길이다.
공격자는 아마도 이곳에서 잠시 어느길로 가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에 사면에서 쏟아지는 총탄, 포탄, 화살을 맞아야 하리라....
우리는 관광객이니 어디로 갈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동선이 딱 정해져있기 때문에 정해진대로 니시노마루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ㅎㅎ



니시노마루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성벽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뚫린 구멍들의 모양이 제각각이다.
삼각형(총), 사각형(활), 원형(포) 이렇게 대응되는 구조라는데 딱히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 아이들 데리고 왔으면 이런 여러가지 모양의 구멍에 열광하지 않았을까 싶다. ㅎㅎ

이제 니시노마루에 도착했다. 니시노마루는 서쪽 해자를 따라 쌓은 성벽이다. 이곳에 백간랑이라고 불리는 긴 마루 형태의 건물을 올렸는데 일상적으로는 각종 창고와 무사와 방문객의 대기실, 숙박실 등의 용도로 쓰였을 것이고 전투시에는 정문을 통과한 적들에 맞서 싸우는 곳일테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니시노마루의 백간랑으로 들어서면 끝도 없을 것 같은 긴 회랑이 이어진다.
오른쪽으로는 각종 창고와 방들과 비상 출입구들이 이어지고 왼쪽으로는 창과 공격을 위한 각종 장치들이 보인다.


바깥을 향해서는 저렇게 돌기둥을 세워 창을 만들었다. 저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만으로는 내부의 밝기가 충분하지 않아 실내는 다소 어두운 편이다.
그런데 비가 올 경우 유리로 된 창문이 아니니 내부공간으로 비가 들이치는걸 막을 수 없을테고 그로인한 목재들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곳곳에 여러가지 장치들을 해두었다.
저 예쁜 손가락(ㅎㅎ)으로 가리키는 구멍이 바로 물이 고이지 않고 바로 빠질 수 있도록 뚫어놓은 곳이다. 저 구멍은 나무로 만들지 않고 금속으로 해서 부식을 방지할 수 있게 해놓았다. 바깥쪽으로 보면 삐죽이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온게 좀 생뚱맞아 보이기도 한다.
그나저나 저 손 누구손인지 참 예쁘기도 하구만.... ㅎㅎ



백간랑의 안쪽벽에는 당연히 각종의 총구멍, 대포구멍들이 뻥뻥 뚫려있다.
그런데 또 다르게 가늘고 긴 네모모양의 구멍이 나 있는데 그것을 바깥에서 보면 이런 모양이다.
이런 모퉁이는 성안에서 성바깥을 향해 공격할때 일종의 사각지대가 된다.
어느 곳에서도 바로 공격하기가 힘들어지는 지점이다. 그래서 이런 긴 홈을 만들어놓고 여기를 통해 바깥으로 끓는 물이나 끓는 기름 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에고 갑자기 섬뜩해진다. 총맞아 죽는게 낫지 튀긴 통닭처럼 되는건 좀 많이 끔찍하구만....



백간랑을 나가기 직전 사람들이 바글 바글 모여있는 곳이 있다.
바로 이 곳. 여자 두명이 조개껍데기 같은 걸 가지고 뭔가를 하고 있는데 저건 일종의 보드게임으로 조개껍질 안쪽에 그림을 그리고 뒤집어서 그림을 찾는 게임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저 여성이 누구냐 하는 것.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손녀딸이며 한 때 이 성의 여주인이었던 센히메이다.

센히메는 그녀 나이 일곱살에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외아들인 토요토미 히데요리와 결혼한다.
하지만 히데요시 사후 적이된 도쿠가와 이에야쓰에 의해 오사카 성은 함락되고 히데요리는 죽고만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의해 남편을 잃은 센히메, 그 때 그녀의 나이 스물두살이었단다.
이후 센히메는 히메지의 새 영주 혼다 다다토키와 다시 결혼하여 바로 이곳 히메지성에서 살게 된 것이다.  이 방은 그녀의 전용 별장 내지는 별실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보면 조선의 결혼관과는 상당히 다른 일본의 결혼관을 보게 된다.
조선에서는 유교의 영향으로 인해 삼종지도라는 말로 대표되듯이 여자는 일단 결혼하면 시집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여자가 결혼을 하더라도 그 여자의 소속은 여전히 친정쪽이다.
따라서 그녀는 남편을 따라 자살하지도 않았고, 적의 아내였다 하여 핍박받지도 않았다.
여전히 최고권력자의 손녀딸이자 딸이었던 것. - 일본사에서는 이런 식으로 여성들이 여러번 결혼을 거듭하는 풍경을 흔하게 보게 된다.
이곳에서 센히메는 10년 정도를 사는데 그만 10년만에 재혼한 남편도 죽어버리고 만다. 또한 과부가 된 그녀에게 남편의 아들이 반해버리는 바람에 소동도 일어나고 결국 그녀는 이후 에도로 옮겨가서 남은 일생을 홀로 살다가 7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한다.

여기를 끝으로 니시노마루를 나오면 햇빛이 눈부시다.



히메지성에서는 어디를 나오든 항상 이렇게 좁은 길과 만난다.
당연히 침입자에게는 공포스러운 공간이다. 잠시도 쉴틈이 없다.
어디를 통과하든 성 내부에서 집요한 공격에 시달려야 한다. 여기정도까지 밀고 들어오려면 도대체 어느정도의 군사가 있어야 할까?
대신에 관광객에게는 공포스러운 상상과 함께 각종의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성벽도 그냥두지 않는다. 외부의 돌격공격에 성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팀목을 이렇게 댔다.
다만 백로의 성이니 만큼 버팀목도 날것으로 둬서 보기 싫지 않도록 이렇게 다시 회반죽을 바르고 지붕으로 세워 미니 건물처럼 보이는 미적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히메지 성이 정말로 대단해보이는 건 바로 이전 점이다.
철저하게 성곽의 기능을 충실히 따르되 미적배려를 잊지 않는 것.
어찌 보면 전국시대를 끝내고 전국을 장악한 도쿠가와 막부의 자신감이 이런 성취를 낳은 게 아닐까?



성의 전체적인 풍광이 아름다운 만큼 기와의 문양들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런 기와들은 이 성을 건축할때 다른 집안들에게서 기부를 받은 것. 뭐 자발적 기부였는지 권력의 강압에 의한 것인지는 알수 없지만....
이 성의 축조에 참여한 집안들은 기와에 각자 집안을 상징하는 문양들을 새겼다.
각기 문양이 다른 기와들을 한 곳에 모아서 전시해놓았다.



천수각을 들어서기 직전에 이렇게 지붕이 둥그렇게 호를 그리는 이색적인 건물을 만나게 된다.
고시쿠루와 라는 이름의 건물인데 소금과 쌀을 저장하는 창고의 역할을 하였다. 내부에 우물까지 만들어 두어 장기간의 농성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드디어 천수각이다.
정문에 들어오면서부터 어디서도 잠시도 시야를 벗어나지 않더니 이제야 천수각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한 1시간 30분 정도? 아니면 2시간? 하여튼 참 멀기도 멀다.

천수각 내부로 들어서면 바깥의 아름다움에 비해 썰렁하다.
금은 아주 작은 사다리를 타고 6층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이런 구조 역시 전투를 위한 배려다.
뭐 적들이 여기까지 왔다면 이미 전세는 판가름이 난것이겠지만 마지막까지 방어를 위한 장치들을 해놓은 것을 보면 정말 최후의 1인까지 결사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런데 웃기는 건 일본 전국시대에 이런 식의 최후의 1인까지 어쩌고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는 것. 대충 싸워보고 안되겠다 싶으면 대부분이 항복해서 새로운 주군을 맞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가장 강한자에게 복종하는 것 그것이 무사도의 핵심이라고 하니....
그럼 이 결사항전의 장치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내부에는 각 층마다 무기라든가 이 성의 역사적인 자료들을 전시해놓은 공간들로 사용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역시 이곳은 전투의 공간이지 생활공간은 아니다.
전시물들은 뭐 대단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보는 전망만은 일품이다. 게다가 더위에 지친 관광객들에게 창틈으로 무지막지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가뭄의 단비만큼이나 반갑다.



천수각에서는 이렇게 히메지 시의 전경을 사방으로 볼 수 있다.

내부는 충분히 어두워 사진 잘 안 찍히고.... 가운데 저 난간 안쪽이 이 층으로 올라오는 통로다.



천수각은 또한 무기창고의 역할도 한다.
왼쪽은 인상적으로 가지런한 총걸이의 모습.


천수각 지붕의 치미.
화재를 예방하는 기원의 의미로 돌고래의 모양을 본떴다는데 아무리 봐도 돌고래는 아닌 것 같고....
천수각을 6층까지 도는 것도 장난 아닐만큼 체력 소비가 크다.
그래서 밖에서 어느정도는 체력의 여분을 남겨두는 것이 좋은데 그걸 몰랐다.
6층까지 올라가면서 본다고 죽는줄 알았구만....
내려올때는 절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애도의 표시를 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ㅎㅎ

천수각을 나오면 나오는 일만 남은 듯 하나 잠시 한군데 들를곳이 남았다.
하라키리마루라 불리우는 곳 - 우리 말로 하면 할복마당이란다.
일본의 참 특이하고도 전혀 본받고 싶지 않은 문화가 바로 이 할복 문화인데 말이다.
이곳이 정말로 할복처였는지, 그래서 히데요리가 이곳에서 할복을 했는지의 여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할뿐....


그런데 실제로 할복을 실연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할복은 말야 이렇게 배를 찌르는데 그 순간이 진자 고통스럽거든... 그래서 자신의 가장 아끼는 심복이 옆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목을 쳐줘야 되는거야...."라고 궁시렁대면서 할복연기에 몰입한 이 두인간.... 내가 못살아... ㅠ.ㅠ

이후 지칠대로 지친 발을 이끌고 밖으로 나오니 점심때를 훌쩍 넘기고, 배꼽시계는 배고프다고 아우성이고....
하지만 히메지성은 긴 이동 시간을 투자해서 간만큼의 보상을 몇배로 해줬다.
또한 이번 여행지 중에서 가장 일본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면에서도 모두가 만족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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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09-13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메지성은 기차역에서부터 그 우뚝 선 모습이 보이죠.

바람돌이 2007-09-13 16:27   좋아요 0 | URL
맞아요. 고민할 필요가 없었죠. 나오면 바로 딱 보이니.... 근데 그 모습이 좀 경이롭더라구요. ㅎㅎ

묻어가는사람 2007-09-13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멀리 보이는 히메지성...지금 봐도 넘~~아름답네요..계속 좁은 통로를 꺾여들어가던 공포감도 느껴지고...헉헉거리며 천수각에 올라 시원한 바람 맞으며 내려다보는 광경이 아련~~
최고!!!
엄마 입원하고 개학한지도 3주! 이제 몸은 어느정도 적응되는 구만 이놈의 여행의 망령(!)은 떠나질 않네 ㅠ ㅠ


바람돌이 2007-09-13 16:28   좋아요 0 | URL
같이 갔던 사람은 이렇게 같은 호흡을 하는것 같구만.... ㅎㅎ 개학하고 벌써 3주가 지나갔나? 시간가는줄도 모르겠구만.... 병원도 간다 간다 하면서 계속 미뤄지고만 있고 어머님께 죄송하네...

내오랜꿈 2007-09-14 01:37   좋아요 0 | URL
어머님이 많이 편찮으신가? 애들 하고 병관이 챙긴다고 많이 힘들겠다.

너하고 아사히맥주 이야기 들으면, 뭐 이건 우리가 여행을 한 게 아니라 그 어떤 '일탈'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막 든다..-.-

짱꿀라 2007-09-13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고 갑니다. 역시 역사 선생님이시라 역사유적지 자주 다니셔서 부럽습니다.

바람돌이 2007-09-13 16:29   좋아요 0 | URL
ㅎㅎ 산타님은 역사유적지를 직접 발굴하시고 하면서 끼고 사시는 분이잖아요. 오히려 제가 부럽죠.

파비아나 2007-09-13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심각하게 읽으면 내려오다가 맨 마지막 사진에서 웃고 말았어요.
유머있으신 분들과 다니셨네요.ㅎㅎ

바람돌이 2007-09-13 16:30   좋아요 0 | URL
어 글이 이번엔 지나치게 심각했나요? 어젯밤에 잠 설치면서 적어서리.... ㅎㅎ 저 인간들은 유머가 있는건지 철이없는건지 조금 생각해봐야 해요. ㅎㅎ

내오랜꿈 2007-09-14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철이 없어? 생각 잘~ 해서 결론내기 바란다!

바람돌이 2007-09-14 09:30   좋아요 0 | URL
ㅎㅎ 맞는거 같은데....난 오로지 진실만 말한다고요. 뭐 다음에 만날때쯤이면 다 잊어버리시길.... ㅎㅎ 언니는 아직 많이 바쁜가봐요. 언니 글도 보고싶은데 뜸하네요. 안부전해주세요.

동행자 2007-09-14 10:2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동행자의 한사람으로서 이 상황에 한마디 하면 약간 주변인들이 부추겼죠? 자 함 해봐. 리얼하게, 그래, 그래, 여기여기서 아니아니 이렇게 옳지... 뭐 이런 식으로 ...
아닌가요?ㅋㅋ

바람돌이 2007-09-14 11:33   좋아요 0 | URL
부추긴다고 하는 인간들이 철이 없는거지... ㅎㅎ 근데 갑자기 동행자는 또 누구세요. L군인가? 아님 L 언닌감? ^^다시 생각하니 우리집 저 사진속의 또 한명의 주인공같은 느낌이 드누만... ㅎㅎ

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07-09-14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히메지성 구경 잘 하네요. 정말 멋지네요.
할복 실연하시는 두분 되게 재밌어요.ㅎㅎ
님, 오자 하나요,, 위압감..

바람돌이 2007-09-14 09:32   좋아요 0 | URL
오자는 고쳤어요. 찾아보면 뭐 한둘일까요. 제가 쓴 글을 다시 보면서 오자 고치고 뭐 이런걸 해야 하는데 그걸 안해요. 어릴때도 싫어했는데 왜 그렇게 싫은지... 아마 제가 쓴 글을 다시 보는게 부끄러워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제 나라만 남았는데 이게 만만치가 않아서 시작이 어렵습니다. ^^

2007-09-18 0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7-09-18 09:59   좋아요 0 | URL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네... ㅎㅎ 다 까먹기 전에 빨리 써야 할텐데 말이다. 너도 걱정돼지? 원래 내 기억력의 수준을 알고있으니 말이다.

조선인 2007-11-18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출장을 앞두고 스스로 세뇌하고 있어요. 이건 출장이 아니라 여행이라고.
운이 좋으면 히메지성과 청수사를 돌아볼 수 있을 거 같아 님의 글도 다시 읽어보고
책도 조금 찾아보는 중입니다.
그러다 생각난 건데,
일본성의 내부가 철통처럼 꾸며진 건 외부의 침입도 있겠지만 닌자나 내부반란에 대비한 게 더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꾀꼬리복도도 그렇고, 천수각도 그렇고요.

바람돌이 2007-11-18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장으로 해외여행이라 저의 로망입니다. (하여튼 공짜는 좋아해서리.... ㅎㅎㅎ) 시간이 많이 많이 나서 청수사랑 히메지성이랑 다 보고 오시면 좋겠어요. 제가 기합을 좀 넣어드립지요. ㅎㅎ
일본은 우리와는 좀 달라서 봉건적인 구조가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되었죠? 에도 시대가 되어야 중앙집권이 이루어지는데 그것도 우리나라 수준의 강도는 아니었고요. 어느정도는 오랜 지방권력의 영향이 많이 남았었고요. 그런데 에도 시대 이전에는 제대로 된 중앙권력이랄게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이랄까? 특히 16세기의 100년간의 전국시대는 그야말로 지방 다이묘들간의 뺏기고 빼앗는 전쟁의 연속이었고 그것이 저런 철통같은 성곽을 가져온거구요. 닌자를 통한 암살 역시 전국시대 군신이라 불렸던 다케다 신겐때부터 본격적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넷째날 오사카에서의 첫아침이 밝았다.
오사카 비즈니스호텔(치산 인 신오사카호텔)의 무지막지한 좁음이란....
침대를 제외하면 여유공간이 조금치도 없고, 조금만 동작을 크게 움직이면 여지없이 부딪히고 마는... (덕분에 허리에 커다란 멍하나를 달았다. ㅠ.ㅠ)
덕분에 전날밤의 맥주파티도 모두들 침대 두개에 올라가 할 수 밖에 없었고...
거기다 아침 식사 역시 딱 먹을만한 정도.
교토의 코쿠사이 호텔이 절로 그리워진다

히메지는 오사카에서도 꽤 먼곳이었다.
준비해간 스롯트간사이패스가 위력을 발휘하는 날이다.
오사카 난바역에서 히메지로 가는 열차를 타면 열차시간만 딱 1시간 30분.
이동시간을 이렇게 들여서 가는 보람이 있어야 할터인데....
이 날은 바깥풍경은 본게 하나도 없다. 왜냐고? 잔다고....
연일 계속된 음주가 결국 여행자의 호기심을 잡아먹어버리다.
히메지가 종점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지나쳤을 가능성 90% 이상.... ㅠ.ㅠ

히메지 역을 나서서 어느쪽으로 가야하나 고민할 틈도 없이 왼쪽 저 멀리로 하얀성이 뚜렷이 보인다.도시의 크기에 비해 도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넓고, 또한 인도 역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넓어 시원한 느낌의 도시다.


넓은 인도의 한켠은 각종 조각품들이 히메지까지 가는 길을 심심치 않게 해준다.
히메지성의 지붕을 장식한 치미 조각을 비롯해 각종 조각들이 이곳의 사람들이 히메지성에 들이는 정성을 짐작케 한다.

맨홀 뚜껑조차도 히메지성을 상징하는 문양들로 이루어져 있다.



역에서 길을 건너 히메지쪽으로 걸어가다보면 이곳 히메지 관광안내센터를 만날 수 있다.
일본 전통 무사복장의 인형장식이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 한글로 된 히메지 안내팜플렛과 성곽 안내지도를 얻을 수 있다.



또한 히메지성의 모형을 만들어놓아 실제 성곽의 구조가 어떻는지를 미리 예습하고 갈수 있다는 것도 장점. ^^ 꽤 복잡해보이는 성의 구조이긴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구조인지를 아직 실감하지는 못하다.



히메지 성안에는 또한 성곽의 구조를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있는데 요거이 그것이다.
척 봐도 우리나라 성곽과는 확실히 다르다는걸 한눈에 알수 있다.

우리나라의 성곽은 도시나 마을을 둘러싸거나 아니면 산을 둘러싼 산성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성곽은 그 내부가 지배층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본의 성과 같은 저런 미로구조는 나올수가 없다.
단순한 형태로 도시를 둘러싸고 방어를 위해 성벽은 최대한 튼튼하게 지으며 성벽에 몇가지 방어시설들과 공격용 시설들을 설치하는 정도....
따라서 우리나라의 성은 일단 정문이 뚫리게 되면 그 이후로는 대책이 없게 된다.
우리나라 성곽건축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수원화성 역시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성곽은 우리의 성과는 다르다.
일본의 경우 성곽은 지배층의 생활공간일뿐이며 밖에서 백성들이 죽어나가든 말든 마을이 불타든 말든 일단 그것은 성을 지켜내고 난 이후에 고려할 문제이다.
지배층과 무사들은 저 성곽안에 모여 마지막까지 결사항전을 벌여야 하는 곳.
전쟁을 위한 강력한 요새가 되는 것이다.
일본의 성곽에서는 정문이 뚫린다고 해서 성을 점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문을 들어서면 다시 좁은 길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그 길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탄과 화살과 온갖무기들에 대항해 또다시 싸우며 전진해야 하는 전쟁터다.
직선거리로 얼마되지 않는 거리지만 실제로 가는 길은 돌고돌아 멀기도 멀다.
성곽의 심장부인 천수각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도 성을 점령하는 것은 머나먼 일이다.

성곽건축의 기본 용도 자체가 다르고 성곽이 내포하는 패러다임 자체가 다른 한국과 일본에서 평면적으로 누구의 것이 더 우수하냐는 질문은 우문이다.

물론 전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의 성은 일본성에 상대가 안된다.
그 직접적인 증거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우리나라 남부지방 곳곳에 자신들의 성을 지었다.
그리고 그곳을 보루로 하여 정유재란 당시 전투를 벌여나가는데 조명연합군의 승세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함락됐던 왜성은 하나도 없었다.
조명연합군이 왜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쓸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지리한 포위전 외에는 거의없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일본의 성곽은 결국 그들의 역사 - 무사들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막부시대와 전국시대의 산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에 반해 무사들이 거의 주도권과 관계가 없었고 게다가 건국이후 200년간이나 그지없이 평화로왔던 조선의 입장에서는 일본식의 성은 필요없는 과잉대응일뿐이다.
일단 기본적인 방어를 위해 성곽은 필요했으나 그것은 늘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의 성이 아니라 어느정도는 관례적인 건축이었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200년간의 평화는 조선에게 전쟁에 대한 기본 마인드 자체를 없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200년간이나 평화로웠던 나라에서 엄청난 재정을 들여 일본식의 성을 지었다면 아마도 그것 자체가 코미디가 되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렇게 다른 양국의 문화를 느끼면서 히메지성으로 들어섰다.

(본격적인 히메지성편은 일단 내일 2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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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1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국경을넘어 2007-09-11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메지 성 참 멋집니다.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입니다. 다음 글 Coming soon... ^^*

바람돌이 2007-09-12 10:10   좋아요 0 | URL
히메지 성은 정말 먼 이동시간을 감수하고라도 꼭 가볼만한 곳이었어요. 어젯밤에 나머지 사진들이랑 올릴려고 했는데 아이들 재운다고 누웠더니 아침이더만요. ㅎㅎ

파비아나 2007-09-11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헉 내일이라뇨...목빠지겠어요.흑흑

바람돌이 2007-09-12 10:20   좋아요 0 | URL
설마요. ㅎㅎ 그나마도 어제는 자는 바람에... ㅠ.ㅠ 그래도 누군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건 행복한 일이네요. 감사합니다.

마노아 2007-09-11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근사하지만 바람돌이님의 글을 읽는 재미가 더 큽니다. ^^

바람돌이 2007-09-12 10:20   좋아요 0 | URL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저는 감사할 뿐이지요. ㅎㅎ

바람돌이 2007-09-11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정묘왜란....머리가 아니라 손이 글을 썼네요

2007-09-12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2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7-09-13 00:40   좋아요 0 | URL
그래 우리 셋 다 생일이 비슷했지... ㅎㅎ 글구 해아의 만행이 아니고 예린이의 만행... 뭐 나도 일단은 웃기니까 용서는 해주지....
 

맛난 메밀국수도 먹고 쇼핑도 하고 이제 원기를 다시 회복한 우리.
잠시 헤이안 신궁과 지온인 중에서 고민을 했다.
둘 다 가기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고 하나만 선택하자니 아무래도 절은 많이 봤으니 본격적인 일본 신사 하나쯤은 보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여 헤이안 신궁으로 출발

1. 헤이안 신궁 - 1894년 일본의 욕망

버스를 내리면 바로 앞에 엄청나게 커다란 도리이가 기다리고 있다.



정문격인 저 도리이의 크기는 이 신궁의 건설이 국가적 사업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뭐든지 작고 아기자기한 것들의 조합이라고 흔히 오해되어지는 일본이라는 나라.
19세기 말 제국주의로의 도약을 꿈꾸던 일본의 모습이 이 신궁의 거대함에 스며있는건 아닐까?



신궁에 들어가기 전에 관광객들을 상대로 인력거를 끄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근데 그리 크지 않은 체구인데도 딴딴해보이는,,
보는것만으로도 청춘의 푸르름이 느껴지는 한쌍의 모습 - 지나가는 관광객에 불과한 나를 한 순간 행복하게 해주는 웃음이었다.



또 하나 신궁 입구에서 만난 기모노를 입은 꼬마 아가씨..
무슨 기념촬영인지 부모인듯한 사람이 여기 저기 끌고 다니면서 열심히 사진 촬영중.
처음엔 당연히 일본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잠시뒤에 보니 엄마같은 이가 중국어로 쏼라쏼라~~~
잠시 신궁앞에 주저앉아 이 꼬마의 모습을 지켜봤는데 영 안돼보인다.
이 더운 날씨에 저 옷을 겹겹이 입고 여기 저기 끌려다니는 모습이란...
우리 일행 중 엄마이기도 한 여자 셋 입을 맞춰 " 야 아동학대다"를 외치다.



헤이안 신궁의 본당의 모습.
헤이안 신궁은 1894년 교토의 창립 1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물이다.
1894년이면 우리나라에서 일본의 군대가 동학농민군 10만을 죽이던 바로 그때이다.
그들의 그런 제국주의적 욕망과 이 신궁의 건축은 어떤 관계를 가질까....
신궁 앞의 공간은 전형적인 일본의 공간배치와 사뭇 다르다.
드넓은 공간은 모래들로만 채워져 있고 텅비어있어 오히려 장엄함을 더한다.
여기에 입구의 거대한 붉은 도리이 그리고 본당의 거대함이 합쳐져 섬나라 일본이 아닌 제국주의국가 일본을 상징하는 듯하다.


여전히 헤이안 신궁은 참배의 공간이다.
이방인인 나로서야 전혀 참배하고픈 마음이 들지는 않지만 많은 일본인들이 참배를 하고 뭔가를 기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궁 앞의 저 나무들은 소원을 접은 종이쪽지들을 매달아놓은 것들이다.

헤인안 신궁을 나와 이젠 은각사다.

2. 은각사 - 쇼군이 아니었다면 행복했을 남자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꿈

은각사는 8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에 의해 건립되었다.
그는 그의 할아버지인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금각사에 대한 일종의 경배로서 은각을 지은 듯한데 사뭇 분위기는 금각과 많이 다르다.
쇼군으로서 이들의 업적이나 성격또한 너무나 다르다.
3대쇼군이었던 요시미츠는 천황위까지 노릴정도로 권력욕이 강했던 반면, 요시마사는 끊임없이 쇼군으로서의 자신의 임무에서 벗어나고자한다.
그런 그가 그저 부잣집의 한량 도련님쯤으로 태어났다면 그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화적 도피로만 일관했던 그가 막부의 수장이었던 것은 불행이었다.
그의 치세동안 그는 골치아픈 정치적 일들에서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했고, 덕분에 그의 처가의 권력남용과 부정부패는 극에 달했다.
또한 동시에 후계자를 둘러싼 싸움에서 보인 그의 어정쩡한 태도는 권력다툼을 극대화 시키고 그것은 오닌의 난으로 이어져 교토를 황폐화 시키고 결국 무로마치 막부의 종말을 가져오는데까지 이르게 된다.
이른바 전국의 다이묘(봉건영주)들의 천하를 놓고 한판승을 벌인 전국시대의 시작이다.

정치적으로 무능의 극한을 달렸던 요시마사이지만 그의 문화적 업적은 만만찮다.
그의 치세동안의 문화를 히가시야마 문화라고 하는데 일본 전통문화의 핵이 된 와비(한적하고 검소한 취향)문화의 풍이 완성되는게 바로 그에 의해서이다. 이 시기 일본 다도, 수묵화, 정원, 가면극인 노 등의 분야에서 선의 정신을 구현하나 문화가 발달하고 이후 그것이 에도시대까지 일본 전통문화의 중심핵을 이루게 되는 것.

그래서인지 금각사와 은각사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금각사가 권력을 향해 치닫는 욕망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면 은각사는 권력과 세상으로부터 달아나고자 하는 은둔의 공간이다.



은각사의 입구는 특이하다. 키 큰 동백나무들이 장벽처럼 늘어서 터널을 이루고 있다.
이곳이 바깥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의 입구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그 새로운 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해주지 않는 길.





동백터널을 지나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눈앞에 은각이 나타난다.
금각에 대응해 은각이라 부를뿐 실제로 금각이 금칠한 것처럼 은칠을 한 것은 아니다.
오래된 목조 건물일뿐....
그 목조의 색조차도 손질이 잘돼 반들 반들 윤이 나는 모습이 아니라 왠지 버려진듯한 우중충하고 칙칙한 느낌이다.
그때 당시야 이렇게 칙칙했겠냐마는.....
금각의 화려함에 길든 눈에 이 건물은 언뜻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은각의 앞에서부터 방장건물에 이르기까지는 이런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고산수 정원이 펼쳐진다.
'달을 바라보는 누대'라는 원통 뿔모양의 모래와 '은빛 모래의 파도'라는 평평하게 갈퀴질이 된 모래더미 두개로만 이루어져 단순미를 보여준다.
료안지에서 보이는 바위더미들도 없이 오로지 모래로만 이루어진 정원은 요시마사 사후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데도 그 분위기가 왠지 요시마사라는 인물과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화려한 맛은 없으나 오히려 은각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

고산수 정원을 두고 한켠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가면 요시마사가 직접 나무를 심고 돌을 배치했다는 연못정원이다.

정원을 지나 산책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일본 정원의 또하나의 특징인 이끼의 푸르름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이끼를 키우려면 들어가는 정성이 장난이 아닐텐데....
은각사의 느낌은 어쩌면 이 이끼들에서 더 잘 표현되는지도 모르겠다.
뭐든지 화려함이나 크기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초라하다거나 왜소한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작기에 더 많은 알뜰한 보살핌으로 완성하는 공간이라고 할까?



관광객을 위한 배려인지 한쪽에는 이렇게 다양한 이끼의 종류들을 모아 전시해놓고 만져보고 이름을 알아볼 수 있게 해놨다. 물론 나는 이름은 모른다. 읽을 줄 모르니까.... ㅠ.ㅠ
다만 이끼의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데 잠시 놀라움을 표할뿐....




산책로를 따라 뒷동산에 오르면 가까이 은각과 고산수 정원, 그리고 저 멀리로는 교토시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하지만 역시 모든 것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는 않는다.
절대로 한 눈에 모두를 파악할 수없도록 하는 일본 건축과 조경의 특징이 놀라울 정도로 잘 구사되어 있다.
또한 이곳에서 보는 은각의 모습이나 정원의 모습은 바로 곁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하는데 훨씬 아름다워 보인다. 은각의 그 칙칙한 색깔 조차도 좀 더 고혹적인 색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요시마사는 이곳에서 오닌의 난때 불타는 교토를 보았을까?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모습을 보았을지가 새삼 궁금해진다.

3. 철학의 길 - 7인의 사무라이?? 아니 여행객

은각사를 나와 조금만 걸어 내려오면 개울이라기엔 조금 크고 강은 전혀 아닌 둑길이 나타난다.
일본의 근대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늘 산책하던 길이라고 하여 '철학의 길'이라는 거창한 명칭이 붙은 길이다.
니시다 기타로라는 사람은 처음 들어봤는데 가이드북에 의하면 일본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린단다. 간단하 소개글에서는 니체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알수는 없고....



은각사에서 철학의 길 가기전에 만난 한 가게.
가게의 정문이 길쪽으로 나 있지 않고 옆으로 돌아서 있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아이디어인것 같은데 지나가는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기에 충분하다.
멋대가리 없는 입간판같은게 아니라 자기 가게의 물건들로 아기자기하게 장식한 모습 - 이게 교토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인듯하다.



여기가 철학의길.
이름에 비해서 썰렁하긴 하지만 산책하기엔 딱 알맞은 길은 확실하다.

여기서 우리 전체 기념사진 한장


7인의 사무라이 흉내를 내볼까 하고 모두 손에다 길다란 것들을 하나씩 잡았는데 전혀 폼은 안나는구만.... ㅎㅎ 7명 숫자만 똑같다. ㅎㅎ



철학의 길에서 만난 조그만 식당. 다른 장식 없이 테디베어에게 낚시를 시키는 것으로 가게 광고가 전부다. 하지만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 아마도 우리가 배가 조금만 더 고팠다면 여기 들어가지 않았을까?



철학의 길 아래 둑의 물은 진짜 얕은데 거기 사는 잉어는 어찌나 큰지.... 잉어가 불쌍해 보일 정도. ^^

4. 자 이제 교토 안녕!

이로써 오늘 교토 여행을 끝으로 우리의 교토 여행은 끝이 났다.
이후 호텔에 가서 맡겨진 짐을 찾아 다음 숙박지인 오사카로 떠나다.



나이도 작지도 않은 인간들이 전부 짐 하나씩을 끌고 다니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보니 꽤 웃기다는...

5. 보너스 컷

교토의 유적지들은 입장권이 참 예뻤다.
처음에는 이게 일본이 다 그런건줄 알았으나 나중에 다른 지역을 돌아본 결과 교토만의 특징이었던 것. 다른 지역의 입장권들은 멋대가리 없는게 우리나라랑 거의 같은 형태다.



왼쪽 부적처럼 생긴건 금각사 입장권, 오른쪽 부적은 은각사 입장권이다.
가운데는 제일 위쪽은 료안지, 다음은 덴류지 그리고 가운데 아래 왼쪽은 청수사, 오른쪽은 고류지의 입장권으로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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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09-0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토는 특히 저런 전통의상 분장 코스가 많은 거 같아요. 중국에는 일본풍으로 꾸미고 사진찍는게 유행인 거 같구. 타이페이 갔을 때 웨딩포토전문점 거리 근처에 숙소가 있어서 가게 앞에 전시된 앨범들 구경했는데, 꼭 일본풍으로 꾸미고 찍은 사진들이 들어있더라구요.

바람돌이 2007-09-04 16:08   좋아요 0 | URL
전에는 일본 전통의상들이 딱히 예쁘다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이번에 가서 유카타 입고 다니는 아가씨들이며 기모노 가게의 그 환상적인 색감 같은 것들을 보면서 진짜 예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마 저러니까 일반인들에게도 저게 하나의 이벤트 상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드팀전 2007-09-04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입장권 저희도 다 모아서 사진 정리할 때 빈 공간에 하니씩 넣었습니다.
교토는 사실 봄이나 가을에 한 번 꼭 가보고 싶어요.사람들로 미어터지겠지요..
사진을 보니까 몇 년전 기억이 나서 마음에 설레네요.

바람돌이 2007-09-04 16:10   좋아요 0 | URL
요즘은 사진 정리 안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따로 모아서 사진찍어서 증거사진으로 남겨두는 수를....ㅎㅎ 우리도 좀 각 문화재나 지역별로 특색있는 입장권 개발 같은 걸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저도 봄 가을 그것도 평일에 교토랑 아라시야마 가고 싶어요.

BRINY 2007-09-04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그런데 나라는 안가셨나요?

바람돌이 2007-09-04 16:14   좋아요 0 | URL
5일째 되던날 나라에 갔었어요. 나라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덩어리였다고 할까?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

2007-09-04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7-09-04 16:19   좋아요 0 | URL
저주받은 10년 모르셔? 작년부터 해서 10년간 추석 설이 모두 토일을 끼거나 아니면 적어도 한개는 토일을 끼게 되어 있는거.... 뭐 나로선 별로 나쁘지 않지만.. 어차피 난 아무데도 못가는걸... ㅎㅎ
한 이틀 이러고 글 쓰다가 늦게 자면 하루 정도는 또 한 9시부터 푸욱 자주니까 뭐 견디지 뭐...

아사히맥주 2007-09-06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전에 교재 연구용으로 사놓았던 '마주보는 한일사'가 그닥 잘 읽혀지지 않았었는데, 이번 여행이후 다시 읽으니 술술 잘 넘어갑니다. 일본 정원, 집, 성의 의미를 잔뜩 설명해 놓은 글이 가보지도 않고 느낌도 없는 내게 별 흥미롭지 않았겠지요.
여러사람들이 지어서 반복되는 부분도 있지만 꽤 재미있게 한일의 문화와 역사를 잘 비교해 놓았습니다.

바람돌이 2007-09-06 15:39   좋아요 0 | URL
누군지 알겠다. 무서워서 글 안남긴다더니.... ㅎㅎ 마주보는 한일사라 책의 관점이나 이런건 괜찮은지.... 나도 뭔가 정리가 좀 필요할 것 같은데-특힌 한일교류사 부분- 이 책이 괜찮을지 모르겠네...

이렇게 써놓고 나서 책 검색 들어가니 전국모임에서 나온거네.... 사야겠다.. 근데 이 책은 나도 모르게 어느새 나온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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