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가물해지는 기억을 붙잡아....
일본 중세를 떠돌다가 마지막날에 일본 고대사의 현장을 가다.
글에 들어가기전에 먼저 이 날의 답사는 나에게는 가장 충격적인 날이었음을 미리 밝혀두자.
일본의 고대사라고 하면 우리나라와의 교류관계를 무시할 수 없고, 심지어 우리 교과서의 서술은 일본의 고대문화란게 거의 한반도의 영향을 일방적으로 받은 것으로 서술함으로써 일본은 독자적인 문화내용이 거의 없었던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라의 유물들은 이런 식의 생각이 얼마나 자아도취에 불과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나라역에 내려 먼저 동대사로 향했다.
동대사(도다이지)는 745년 쇼무천황의 명령으로 세운 나라 최대의 사찰이다.
버스를 내리자 마자 소문에 듣던대로 사슴들 천지다.




유유히 건널목을 건너는 아기 사슴. 이곳의 사슴들은 길 건널때 횡단보도로 건너나보다. ^^
부처가 최초의 설법을 행한 곳이 녹야원이니 딴엔 불교사찰에 어울리는 동물이기도 하다.
또한 고대시절 이곳은 천황권을 능가하는 권력을 휘둘렀던 후지와라 가문의 영향이 컸는데 그 집안의 상징 동물이 사슴이기도 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일본의 전설에서 사슴은 하늘에 사는동물이라고도 한다. 뭐 이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곳에 사슴을 방사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쨌든 관광상품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이놈의 사슴도 너무 많다 보니 성가시고, 게다가 야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늘어질대로 늘어진 사슴들의 모습은 금방 식상해진다.

사슴의 무리를 지나고 지나 드디어 동대사 입구, 남대문이다.


남대문을 들어와서 입구에서 찍은 사진.
바깥쪽에서 찍은건 어찌된 일인지 건질게 별로 없다. ㅠ.ㅠ
남대문은 화재로 소실된 것을 1199년 가마쿠라 막부가 정통 중국양식으로 재건했다고 한다.

남대문의 모습은 멀리 입구에서부터 방문객들을 압도하듯 엄청난 크기가 먼저 다가온다.
하지만 일본의 특징인듯 안쪽이든 바깥쪽이든 전체의 모습을 한 눈에 보여주지는 않는다.
건물의 구조상 가릴만한데가 없으니까 양쪽에 소나무를 울창하게 심어 바로 그 소나무가 양쪽을 가려놓도록 한 것.
그래도 어쨌든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익숙한 절 풍경이 펼쳐지는 건 반갑다.
그동안 다녔던 절들이 기본 입구에서부터 우리나라 사찰과는 너무나도 구조가 달라 왠지 절같다는 느낌이 안났었는데 동대사는 절 입구의 문을 시작으로 확트인 공간으로서의 길과 본전이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어 익숙한 절의 구조를 보여준다.
남의 나라에서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이기도 하고.... ㅎㅎ

하지만 남대문에서부터 나를 전율케 하는게 있었으니 바로 남대문 양쪽에 세워진 인왕상이다.





저 거대함! 하지만 거대함만으로 이 인왕상을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
크다고 해서 아름다운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앞에 서면 금방이라도 보호투망을 뚫고 뛰쳐나올 것 같은 저 생동감 넘치는 조각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나무라고는 하나 키가 8.4m나 되는 조각을 저토록 유연하고도 강렬하게 조각하는 솜씨라니....
인왕상은 석굴암이 최고라고 생각하던 내 고정관념을 와르르 무너지게 만든다.
오랜 세월속에 박제된 인왕상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불법수호를 외치며 뛰쳐나올것 같은 인왕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무리 조각이 상대적으로 쉬운 나무라 할지라도 이정도의 조각을 남길수 있는 일본고대문화라면 그 역량이 만만치 않았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어쨌든 인왕상 중에서는 여태까지 내가 본 인왕상 중에 최고라는 찬사를 남긴다.(인도를 안가봤으니 뭐 나중에 고쳐질지라도.... )

인왕상의 충격으로 한참이나 남대문을 떠나지 못하다가 겨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남대문을 들어서면 멀리 중문이 보이고 그 중문은 이런 회랑으로 둘러져 있다.
우리 나라에서 자주 보던 구조다.
하지만 이정도 크기의 회랑을 우리나라에서는 만나기 어려우니, 황룡사나 미륵사의 회랑이 이렇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된다.
여기서는 가끔씩 일본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저기 까만옷 입은 분)
그동안 일본의 절이 절같은 분위기가 거의 안났던데에는 관광객이나 관리자들 외에는 이런 스님을 만나기 힘들었던데도 원인이 있었던듯...
우리나라의 절과는 달리 일본의 유명한 절들은 스님의 수행공간으로서의 의미는 거의 없는듯했다.



이곳이 중문이다. 저기 옆쪽이 앞 사진의 회랑이고.... 이문을 들어서면 동대사의 본전이 일직선으로 보이게 된다.
팔작지붕의 단정한 폼새는 당시 우리나라와의 교류의 흔적을 보여주듯 눈에 익숙하다.




유명한 청동대불이 있는 동대사의 본전이다. 높이 47.5m, 가로 57m, 세로 50m.
한때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라는 명성을 누렸던 건물이다.
나라시대 원래의 건물은 헤이케와 겐지 가문의 전쟁때 불타버리고 이후 가마쿠라 막부때 재건되었다가 다시 소실, 결국 에도 시대인 1692년에 재건된 것이다.
그 뚜렷한 증거가 에도 시대에 많이 차용되었던  저 투구모양의 가라몬이다.
저 가라몬은 보면 볼수록 무사적 풍모를 닮아있다.
모양부터 그렇고 상대방을 압도하는 듯한 분위기 또한 그러하다.
저 가라몬이 있는 건물들은 여지없이 방문객을 위압하고 건물을 장대하게 보이게 하는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이 본전이 다른 비슷한 건물보다는 덜 위압적인 것으로 느껴졌는데 아마도 그것은 저 건물의 크기를 능가하는 넓게 텅 비어있는 앞 공간의 힘인 듯 느껴졌다.
이런 저런 건물이 들어서도 충분할 법한 넓은 공간을 텅 비운 채로 둠으로써 건물의 크기와 균형을 맞추고 있는 감각이 훌륭하다.



건물 자체의 크기를 실감하기에는 이렇게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 효과적인듯.....




본전 앞에는 이렇게 청동으로 만든 등 하나만 살짜기 놓여있다.
등 자체의 균형감은 떨어지고 워낙에 넓은 공간에 덩그렇게 놓여있다보니 영 분위기가 안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각의 훌륭한 솜씨는 충분히 감상할만하다.

드디어 본전으로 들어갔다.
본전의 공간은 신발을 신고 그냥 들어갈 수 있고 내부는 통째로 트인 하나의 공간이다.
전면에 높이 16m의 청동대불을 안치했다.




이 거대한 불상을 만들기 위해 대불의 키만큼 땅을 파서 거푸집을 놓았단다.
그리고 공정을 여덟번으로 나누어 아래부분부터 주물을 붓고 굳으면 그 위로 다시 붓는 식으로 해서 조립하고, 머리는 따로 만들어 붙였다고 한다.
비로자나불이라고 하는데 일단은 우리나라의 비로자나불과는 손모양이 너무 달라 조금 의아스러웠다.
동대사의 분위기도 그렇고 이 청동대불의 크기도 그렇고 엄청나게 위압적이리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만큼 위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주 온화한 분위기는 아니고....
크기를 제외한다면 그렇게 특별한 감흥은 없고 무난하다는 느낌이랄까....

본전은 이 불상이 가운데 있고 나머지 빈 공간들이 꽤 넓다.
그 공간들은 또 각종 불상들과 이 절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들의 전시, 그리고 동대사의 역사와 모형을 전시하는 곳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전시 공간이 아니다 보니 약간은 어수선한 느낌을 받는다.




청동불 앞에는 역시 거대한 화병으로 장식을 해놓았는데 화병에 붙어있는 나비 조각이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우아하다.
조각이니까 우아하지 만약 실제로 이런 거대 나비를 본다면? 으~~~ 싫어.... ㅠ.ㅠ



이 익숙한 표정이라니....
흔히 알고있던 일본의 도깨비(귀면)가 아니라 딱 우리나라에서 많이 보던 그 표정이다.
우리 옆지기의 표현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와와 아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준단다.
우리나라의 귀면기와가 푸근한 해학이라고 한다면 이건 아주 세련된 해학의 느낌을 준대나?
그 말을 듣고보니 딴은 그렇기도 하다.

오늘의 보너스 컷!
대불전 안에 기둥들 역시 건물만큼이나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뭐 건물이 크니 당연한거지만....
그런데 그 기둥들 중의 하나에 누구인지 구멍을 뚫어놓았다.
그리고 여기를 통과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대나 어쩐다나....
그런데 이런 신성하다면 신성하달수 있는 종교공간에 이런 귀여운 장난을 펼쳐놓은 유머감각을 가진 사람은 누구였을까? 딱 내 스타일이었을 것 같은데.... ㅎㅎ
어쨌든 여기에 도전을 안할리가 없는게 또 우리 일행이다.
구멍의 크기를 본 순간 나는 나의 푸짐한 덩치를 생각해서 애저녁에 포기!
우리 중 가장 날씬한 남녀가 도전!




일단 어깨만 들어가면 성공한다는 말을 믿고 용감하게 도전한 두 사람!
근데 정말로 성공하더구만.... 주변의 수많은 관광객의 박수도 받고....
그런데 결정적으로 말이다.
통과하면서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이 둘다 통과자체에만 용쓰다가 소원 비는건 새까맣게 까먹어버렸단다. ㅎㅎ

역사상 거대한 건축물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동대사 역시 당시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이다.
동대사가 만들어지기 전 일본은 급부상하며 천황권을 위협하는 후지와라 가문의 위세가 대단했다. 천황의 아들조차도 후지와라에 대립하다가 모반죄를 뒤집어 쓰고 강제 자살을 당했으니...
결국 후지와라에게 쫒겨 다니던 쇼무 천황은 역전을 위한 발판으로 바로 이 동대사를 창건한것.
뭐 부처의 힘에 의지해 후지와라를 이겨보겠다는 심정도 있었을테고, 또 이런 큰 건물을 지으면서 자신의 위세를 과시해보고자 하는 심정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대사가 지어진지 40년도 채 안돼 쇼무천황의 혈통은 끊어지고 뒤에 즉위한 간무천황은 결국 후지와라 가문의 위세를 피해 교토로 천도를 해버리니 나라시대는 끝나게 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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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10-10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를 정말 통과해보는 분들이 계시는군요.

바람돌이 2007-10-11 00:18   좋아요 0 | URL
꽤 있던걸요. ㅎㅎ 제가 조금만 살을 뺐어도 저도 도전해보는건데... ㅎㅎ

전호인 2007-10-1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롭게 거리를 호라보하는 사슴무리가 참으로 인상깊네요, 가까운 나라이지만 쉽게 가보질 못하고 있네요, 온천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습니다. ^*^

바람돌이 2007-10-11 00:19   좋아요 0 | URL
저 사슴무리는 좀 있으면 식상해집니다. 나라 공원이 엄청나게 넓은데 온천지가 사슴이니까요. ㅎㅎ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 해도 직장다니는 사람들이 며칠씩 시간내는거 쉽지 않잖아요. 게다가 자금 역시나.... 저희도 다녀와서 지금 마이너스 통장 한계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ㅎㅎ

홍수맘 2007-10-10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여행기들을 읽으면서 어쩜 이렇게 살갑게 느껴질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마 제가 일본여행을 가게 된다면 제일먼저 님의 글들을 챙겨볼 거예요. ^^.

바람돌이 2007-10-11 00:19   좋아요 0 | URL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저야 고마울 따름이지요. ㅎㅎ

2007-10-11 0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7-10-11 23:38   좋아요 0 | URL
아는 사람은 저기서 몇 명을 찾아내겠네... ㅎㅎ 그리고 울산댁하고 나하고는 다르지... 나야 뭐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는 것들이 반이니... 난 너의 그 낮밤이 바뀐 생활을 이렇게 오래도록 해내는 니가 더 대단하다.

서진호 2012-07-24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동대사를 보면서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충격이 컸습니다.
일본인들은 동대사가 중국의 도움을 받아 일본정부가 지었다하고 있지만
사실 동대사를 짓는데 가장 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은
백제의 양변스님과 행기스님입니다.
가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대불전 옆에 행기당이 있고 가장 높은 쪽에 양변나무가 있지요
아직까지도 일본인들은 양변스님과 행기스님을 기리며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일본놈들이 양변스님과 행기스님을 일본사람으로 소개하고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