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날 오사카에서의 첫아침이 밝았다.
오사카 비즈니스호텔(치산 인 신오사카호텔)의 무지막지한 좁음이란....
침대를 제외하면 여유공간이 조금치도 없고, 조금만 동작을 크게 움직이면 여지없이 부딪히고 마는... (덕분에 허리에 커다란 멍하나를 달았다. ㅠ.ㅠ)
덕분에 전날밤의 맥주파티도 모두들 침대 두개에 올라가 할 수 밖에 없었고...
거기다 아침 식사 역시 딱 먹을만한 정도.
교토의 코쿠사이 호텔이 절로 그리워진다

히메지는 오사카에서도 꽤 먼곳이었다.
준비해간 스롯트간사이패스가 위력을 발휘하는 날이다.
오사카 난바역에서 히메지로 가는 열차를 타면 열차시간만 딱 1시간 30분.
이동시간을 이렇게 들여서 가는 보람이 있어야 할터인데....
이 날은 바깥풍경은 본게 하나도 없다. 왜냐고? 잔다고....
연일 계속된 음주가 결국 여행자의 호기심을 잡아먹어버리다.
히메지가 종점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지나쳤을 가능성 90% 이상.... ㅠ.ㅠ

히메지 역을 나서서 어느쪽으로 가야하나 고민할 틈도 없이 왼쪽 저 멀리로 하얀성이 뚜렷이 보인다.도시의 크기에 비해 도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넓고, 또한 인도 역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넓어 시원한 느낌의 도시다.


넓은 인도의 한켠은 각종 조각품들이 히메지까지 가는 길을 심심치 않게 해준다.
히메지성의 지붕을 장식한 치미 조각을 비롯해 각종 조각들이 이곳의 사람들이 히메지성에 들이는 정성을 짐작케 한다.

맨홀 뚜껑조차도 히메지성을 상징하는 문양들로 이루어져 있다.



역에서 길을 건너 히메지쪽으로 걸어가다보면 이곳 히메지 관광안내센터를 만날 수 있다.
일본 전통 무사복장의 인형장식이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 한글로 된 히메지 안내팜플렛과 성곽 안내지도를 얻을 수 있다.



또한 히메지성의 모형을 만들어놓아 실제 성곽의 구조가 어떻는지를 미리 예습하고 갈수 있다는 것도 장점. ^^ 꽤 복잡해보이는 성의 구조이긴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구조인지를 아직 실감하지는 못하다.



히메지 성안에는 또한 성곽의 구조를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있는데 요거이 그것이다.
척 봐도 우리나라 성곽과는 확실히 다르다는걸 한눈에 알수 있다.

우리나라의 성곽은 도시나 마을을 둘러싸거나 아니면 산을 둘러싼 산성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성곽은 그 내부가 지배층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본의 성과 같은 저런 미로구조는 나올수가 없다.
단순한 형태로 도시를 둘러싸고 방어를 위해 성벽은 최대한 튼튼하게 지으며 성벽에 몇가지 방어시설들과 공격용 시설들을 설치하는 정도....
따라서 우리나라의 성은 일단 정문이 뚫리게 되면 그 이후로는 대책이 없게 된다.
우리나라 성곽건축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수원화성 역시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성곽은 우리의 성과는 다르다.
일본의 경우 성곽은 지배층의 생활공간일뿐이며 밖에서 백성들이 죽어나가든 말든 마을이 불타든 말든 일단 그것은 성을 지켜내고 난 이후에 고려할 문제이다.
지배층과 무사들은 저 성곽안에 모여 마지막까지 결사항전을 벌여야 하는 곳.
전쟁을 위한 강력한 요새가 되는 것이다.
일본의 성곽에서는 정문이 뚫린다고 해서 성을 점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문을 들어서면 다시 좁은 길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그 길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탄과 화살과 온갖무기들에 대항해 또다시 싸우며 전진해야 하는 전쟁터다.
직선거리로 얼마되지 않는 거리지만 실제로 가는 길은 돌고돌아 멀기도 멀다.
성곽의 심장부인 천수각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도 성을 점령하는 것은 머나먼 일이다.

성곽건축의 기본 용도 자체가 다르고 성곽이 내포하는 패러다임 자체가 다른 한국과 일본에서 평면적으로 누구의 것이 더 우수하냐는 질문은 우문이다.

물론 전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의 성은 일본성에 상대가 안된다.
그 직접적인 증거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우리나라 남부지방 곳곳에 자신들의 성을 지었다.
그리고 그곳을 보루로 하여 정유재란 당시 전투를 벌여나가는데 조명연합군의 승세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함락됐던 왜성은 하나도 없었다.
조명연합군이 왜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쓸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지리한 포위전 외에는 거의없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일본의 성곽은 결국 그들의 역사 - 무사들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막부시대와 전국시대의 산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에 반해 무사들이 거의 주도권과 관계가 없었고 게다가 건국이후 200년간이나 그지없이 평화로왔던 조선의 입장에서는 일본식의 성은 필요없는 과잉대응일뿐이다.
일단 기본적인 방어를 위해 성곽은 필요했으나 그것은 늘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의 성이 아니라 어느정도는 관례적인 건축이었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200년간의 평화는 조선에게 전쟁에 대한 기본 마인드 자체를 없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200년간이나 평화로웠던 나라에서 엄청난 재정을 들여 일본식의 성을 지었다면 아마도 그것 자체가 코미디가 되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렇게 다른 양국의 문화를 느끼면서 히메지성으로 들어섰다.

(본격적인 히메지성편은 일단 내일 2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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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1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국경을넘어 2007-09-11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메지 성 참 멋집니다.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입니다. 다음 글 Coming soon... ^^*

바람돌이 2007-09-12 10:10   좋아요 0 | URL
히메지 성은 정말 먼 이동시간을 감수하고라도 꼭 가볼만한 곳이었어요. 어젯밤에 나머지 사진들이랑 올릴려고 했는데 아이들 재운다고 누웠더니 아침이더만요. ㅎㅎ

파비아나 2007-09-11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헉 내일이라뇨...목빠지겠어요.흑흑

바람돌이 2007-09-12 10:20   좋아요 0 | URL
설마요. ㅎㅎ 그나마도 어제는 자는 바람에... ㅠ.ㅠ 그래도 누군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건 행복한 일이네요. 감사합니다.

마노아 2007-09-11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근사하지만 바람돌이님의 글을 읽는 재미가 더 큽니다. ^^

바람돌이 2007-09-12 10:20   좋아요 0 | URL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저는 감사할 뿐이지요. ㅎㅎ

바람돌이 2007-09-11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정묘왜란....머리가 아니라 손이 글을 썼네요

2007-09-12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2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7-09-13 00:40   좋아요 0 | URL
그래 우리 셋 다 생일이 비슷했지... ㅎㅎ 글구 해아의 만행이 아니고 예린이의 만행... 뭐 나도 일단은 웃기니까 용서는 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