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경씨의 책을 읽다보면 중세 미술에 대한 평가가 잠깐 나온다.

 

유럽의 미술관에서 중세 시대의 그림들을   우리는 어떤 인상을 받는가아마도  처음 드는 인상  하나는 갑갑함 것이다안료를 구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중세 시대의 그림들은 사용된 색상이 얼마 없으며예외 없이 성서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또한 중세의 화가들은 원근법 2차원 평면 안에 3차원 공간을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 때문에 그림의 주인공들은 어떠한 공간감도 양감도 없이 묘사되어서 그저 평평하게 보인다결정적으로 중세의 그림들특히 성모나 예수를 그린 작품에는 예외 없이 금칠이되어 있다이런 공통점들 때문에 중세의 그림이 우리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P121

 

미술 작품에 대해 어떻게 느끼냐는 각자의 자유이긴 하지만, 이 평가의 경우 지나치게 편향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심지어 지나치게 단정적이다.

한국미술이든 서양미술이든 나의 경우는 근대 미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르네상스기의 그림들이나 그 인기좋은 인상파의 그림들도 별 감흥을 못느끼는 편이다.

오히려 중세 미술에서 훨씬 더 많은 감흥을 느끼는 편이다.

이건 그냥 취향의 문제다.

그런데 그 취향의 문제를 모든 사람이 그런 것처럼 '우리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일반화시켜 버리는 것은 저자의 실수였을까? 아니면 독선이었을까?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 아니니 내가 알 수 있는건 아니지만, 한국미술이든 서양미술이든 중세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마디 변명쯤은 하고싶다.

 

중세미술이 색상도 얼마 없고, 2차원 공간을 넘어서지 못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들의 미술은 예술로서의 미술이라기 보다는 종교적 신념과 신에 대한 경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능성이 더 강조되는 예술이었다.

그러므로 중세미술은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을 오히려 경계했다.

고대에도 표현할 수 있었던 사실적 표현을 중세가 못했을 리가 없다.

중세 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질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미술의 목적 자체가 다른 것이고, 따라서 표현기법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작품이 감동을 주지 않는다고?

나는 기독교인도 아니지만 중세의 미술에서 감동을 받은 경험을 여러번 가지고 있다.

중세 미술이 평면적인 것은 맞기에 사실 사진으로는 그 감동을 느끼기 어렵다는 한계는 분명 있다.

 

 

이스탄불에 있는 키리예박물관의 성당입구를 들어서면 저 예수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저 모자이크 앞에서 갑자기 숙연해졋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두 옷깃을 여미고, 신을 경배하며, 예수의 심판에 겸허하라는 그 메시지가 천상에서 들리는 듯한 경험이었다. 전원경씨의 말과는 다르게 예수를 표현한 저 금칠이 예수의 신성을 오히려 부각시키고 있기도 했다.

예술이 기독교인도 아닌 나에게 겸허함과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이 뛰어난 예술이 아니고 무엇일까?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라는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만큼 아름다운 수태고지를 본적이 없다.

모든 것이 투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강조하는 수도원 2층으로 계단을 올라가면  벽면에 그려져 있던 저 그림의 황홀함은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수태고지만 보면 이제 토나올것 같아"라던 아이들도 저 그림앞에서는 말을 잊었었다.

저 그림이 보여주는 감동은 이제 막 표현되기 시작한 입체감이 아니라 색채가 뿜어내는 빛이었다. 많은 색을 쓴다고 해서 그림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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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10-12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2층 올라가는 그 자리가 아니면 절대로 그림의 아름다운 맛이 않날것 같아요!ㅎ

바람돌이 2020-10-12 19:14   좋아요 0 | URL
그곳에 있어 더 아름답지요. 하지만 사진과 달리 산마르코수도원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포스터는 아름답더라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