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톰으로 향했다.
버스가 이제 거의 왔겠다 싶은 순간 갑자기 버스안에서 한꺼번에 탄성이 일었다.
바로 앞에 전경으로 확 펼쳐지는 바욘사원의 모습!
햇빛속에 빛나는 무수히 많은 사면석불들의 미소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야말로 마음속에 남은 한장면이다. (사진으로는 절대 담아낼 수 없는.....)

앙코르 톰은 '거대한 도시'라는 뜻으로 다른 곳과는 달리 단일 건물을 지칭하는 명칭이 아니다.
1177년 베트남 참족의 침략을 계기로 왕도를 요새화하기 위해 건축된 성곽도시다.
우리나라로 치면 사대문 안의 한양정도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수많은 건물과 사람들이 살았다.
13세기 당시에는 앙코르톰과 주변에 모두 100만의 인구가 살았다니 당시로서는 세계적인 규모다.

당시 앙코르 톰안에는 왕궁이 있었다고 한다.(뭐 당연하지.....)
근데 불행히도 목조건물이었던 탓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목조건물이지만 모두 금칠을 해서 번쩍 번쩍 빛났다니 아마도 장관이었을게다.
현재는 이곳에 바욘사원, 바푸온사원, 피메아나카스, 코끼리 테라스, 문둥이왕 테라스 등이 남아있다.
일단 오늘은 바욘사원만......


앙코르톰의 남문 입구

우유바다젓기 신화를 재현한 조각들의 모습이다. 바수키의 몸통을 잡고 열심히 줄다리기를..... 1,000년동안이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다리 아래로는 해자가 남아있다. 적의 침략을 막기위한 역할이 첫번째였으니 당연히 어마어마한 규모!
폭이 100미터였단다.

 


앙코르 톰의 남문 입구

앙코르 톰의 본격적인 건설은 12세기 앙코르제국의 마지막 전성기때의 왕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앞에서 봤던 따 프롬사원의 건설도...)

그의 시대 건축의 특징은 바로 이 사면석불이다. 관음보살이자 동시에 왕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자야바르만 7세가 등장하기 전 앙코르제국은 궁정의 혼란이 지속되었다.
그 혼란을 틈타 남베트남의 참파국은 앙코르제국을 침략 - 승리하여 왕도를 파괴하고 왕을 살해한다.
이 때 참파에 가있던 왕자(아마도 볼모였겠지? ) 후일의 자야바르만 7세가 귀국하여 4년간 저항군을 이끌고 참파군과 일전을 벌인다.
왕자가 이끄는 저항군은 똔레삽 해전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왕위에 오르게 되는것.

그런데 1177년 참파군의 도성함락 이후 앙코르왕조는 종교적, 도덕적, 정치적 기반을 상실하게 된다.
신정정치의 문제점이다.
앙코르의 왕들은 그 자신이 왕이면서 동시에 시바신, 또는 비슈누신이었다.
그런데 신이란 패배를 모르는자일터....
그런 신이 패배하고 살해당했으니 왕의 신성은 일거에 무너질것은 뻔하다.
따라서 자야바르만 7세에게는 새로운 종교, 사상적 기반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래서 나타난 것이 대승불교다.
자비의 정신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전쟁으로 상처받은 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종교!
자야바르만 7세는 대승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곳곳에 병원과 학교를 건설 - 대승불교의 정신을 실천한다.
또한 동시에 바욘사원을 건립함으로써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을 주불로 하여
자신을 관음보살과 동격화 시킴으로써 왕조의 신성성을 회복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은 있을 수없는 것.
바욘 사원 뿐만 아니라 자야바르만 7세시대의 사원은 불교와 힌두교가 기묘한 동거를 한다.
관음보살 천지인 바욘사원 곳곳에는 시바신의 상징인 링가를 세워두었던 흔적들이 많다.
어차피 한 뿌리에서 나온 종교들이니 그 동거가 뭐 그리 힘들지는 않았을것 같다.


 사원 입구.

아직 복구가 다 안돼 곳곳에 석재가 널려있다.
입구의 사자상과 나가상도 파손이 심한 상태.
하지만 이런 면은 또 다른 면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다만 대낮에 햇볕에서 보기에는 조금 아까운 풍경.







사방 어디를 봐도 관음보살이 나를 쳐다본다.

전쟁에 지치고 궁정의 수탈에 지치고 또한 이 사원과 같은 노역공사에 지친 당대의 사람들에게 저 관음보살의 미소는 위안이 되었을까?

아니라고 하기에는 종교의 힘은 너무 강하다. 믿는자에게는....
과학이 난무하는 21세기에도 종교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무수히 보지 않는가?  부디 위안이 되었기를....




 뭉뜽거려 볼때는 다 똑같은 모습을 조각한 것 같지만 위로 올라가 하나 하나 찬찬히 뜯어보면 다 조금씩 다른 표정들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또 다같이 웃는듯 마는듯 엷은 웃음을 머금고 있다는것도....
여행객의 마음도 여기서 잠시 위로를 받고 간다.









 약간은 엄숙해보이는....
근데 사진을 어떤 각도에서 찍느냐에 따라서 표정의 변화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세월의 흔적이 그의 눈썹을 푸른색으로 물들였다.

그래서일까? 우리네 시골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인상이 연출되는 것은....


 






 곳곳에 새겨진 여신(데비)상들.
문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받아 정숙하게 서있는 여신도 관음보살에 감명한 것일까?

그녀의 미소도 관음보살의 미소를 닮았다. 햇빛을 받은 그녀의 미소가 잠시 문앞에 앉아 휴식케 한다.








 기둥에 새겨진 압사라 조각.
앙코르와트에서는 여신과 압사라의 구분이 잘 안갔었는데 여기서는 확실하게 구분이 간다.

앙코르와트의 그들은 각종 장식이나 그들이 새겨져 있는 위치등을 보고 유추해야 했으나 이곳에서는 여신과 압사라는 한눈에 구분이 가능하다.

이곳의 압사라들은 보다 동적이고 훨씬 섹시하다. 신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본연의 임무에 보다 충실해진 것일까?


 회랑 벽에 부조된 압사라들.
이곳의 벽화들은 주로 생활상을 묘사해놓은 것들이 많으니 이 압사라들은 천상의 압사라들이라기 보다는 당시의 압사라춤을 추던 무희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옆에 있는 악공들의 모습이 그런 상상을 더 부추긴다.

어쨌든 저 동작들은 섹시함 그 자체이지 않는가?




바욘 사원의 회랑 역시 벽화로 뒤덮여 있다. 하지만 앙코르와트의 벽화와는 좀 다르다.
앙코르와트가 왕조의 신성성을 제시하기 위해 온통 신화와 왕조의 권위에 벽면을 할애하고 있다면 이곳은 당대 사회를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
벽화가 그대로 생활사 박물관이라고나 할까?

벽화는 3단으로 구성된다.
상단은 원경, 중단은 각종 동식물들의 문양, 하단은 가까이서 본 근경이라는데 역시 하단이 가장 흥미롭다.



 똔레삽 호수의 역사적인 해전을 그리고 있다.
자야바르만 7세에게는 이곳에서 침략자 참파를 물리침으로써 왕권을 쥐게 되었으니 기념비적인 전투였으리라...
당시의 해전상황을 그야말로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승리를 기리고 있다.

 






 전쟁의 상황 재현은 극도로 사실적이다.
적의 눈을 그대로 찌르는 저 창의 모습을 보라!!!

곳곳에 쌓여있는 시체들.
적의 배 아래편에 구멍을 뚫기 위해 무기를 들고 헤엄쳐가는 군인들의 모습...

벽화앞에 서면 그 생생한 사실성에 눈앞이 아찔해진다.




  그래도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 풍경을 그린 벽화들.
어디에서도 볼 수없는 이곳 바욘사원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사진은 당시 약재상의 모습.
당시의 약사가 약을 처방하기 위해 위쪽의 약통들을 가리키고 있고 사람들이 오리같은 것들을 약값대신 가져와 처방을 기다리고 있다.(가이드는 제자들이라는데 도저히 수긍이 안간다. 아니 제자들이 왜 오리를 들고 있냐고????)





의사가 처방을 내리면 제자들은 열심히 탕약을 짓는다.

그런데 이들의 머리 모양을 보면 캄보디아인이 아니고 중국인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당시 중국인들이 이곳에 와서 약재상을 여는 경우가 많았단다.
아무래도 중국의학이 유행이었던 듯....

 





 아이를 낳는 산모와 출산을 돕는 사람들.

 산모의 얼굴 부분은 지워져 알 수없으나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바구니 같은 것으로 산모를 기대게 하고 출산을 도왔나보다.

 

 





 장날일까?
이고 지고 어딘가로 가고 있는 행렬들.

필요한 뭔가를 사고 팔기위해 장으로 가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다.

 

 

 





 뭐니 뭐니 해도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은 싸움구경!!

그 때 사람들도 장날이면 이렇게 닭싸움을 시키며 내기돈을 걸고 승패에 목숨을 걸다시피 소리를 지르고 했겠지...

누군가는 이겼을 거고 누군가는 지고 집에 가서 마누라한테 뜯겼을거고....
시장의 떠들석함이 들리는 듯 하다.






  재밌는 싸움구경을 닭만 시켰을까?
개싸움 풍경!!

뭐 싸움 좋아하고 도박좋아하는건 인류 공통의 문화일듯.... ^^

 

 

 




  바욘사원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곳이다. 한낮에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흥미로운 벽화들을 찬찬히 둘러보는게 힘들었다. 언제 다시 가서 이곳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조각들의 돌틈 사이로는 오늘도 이름모르는 꽃이 피어오르고 있다.
사멸을 향해 가고 있는 조각과 새로이 탄생하는 생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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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12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멸해가는 조각과 새생명의 탄생. 감동입니다.
사원 곳곳에 새긴 저 조각들이 살아서 나올 것만 같네요.
좋은 사진과 글, 오늘도 감상 잘 하고 갑니다.

바람돌이 2007-02-12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욘사원의 조각들은 특히 당시 사람들의 삶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곳이었는데 꼼꼼하게 살피지 못해서 후회가 많이 남아요. ㅠ.ㅠ 늘 관심가지고 읽어주시고 글 남겨주시는 님이 계셔서 제가 힘이 나는걸요. ㅎㅎ

sooninara 2007-02-13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의 친절한 설명을 읽으니 벽화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네요^^
관음보살의 미소가 정말 푸근합니다.

바람돌이 2007-02-13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욘 사원은 아이들과 같이 가면 재밌을 것 같아요. 벽화를 보면서 어떤 장면일지 같이 상상하는 재미가.... 근데 그러고 있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ㅠ.ㅠ

무스탕 2007-02-1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것을 보아도 감탄이에요. 저렇게 벽화를 새겨넣은 당시의 사람들도.. 이렇게 자세히 사진과 설명을 해주시는 바람돌이님도요.. ^^

바람돌이 2007-02-1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스탕님/저야 제 공부구요. 당시의 사람들의 신앙심이 얼마였을지 상상해보는것도 재밌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