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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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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같은 산문으로 서술하고,
연극같은 이야기로 구성한다.

일몰같은 죽음으로 질문하고,
우연같은 ‘만약‘(if)으로 대답한다.

노래가 실린 종이배를 강물위에 던져놓은 듯하다.

˝신이 주셨고, 신이 거두워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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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5-21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있었군요. 읽어 보고 싶네요.
요즘 매일 글을 올리시네요.
어떻게 매일 글을 올리실까 놀랍기도 하고,
밥헬퍼님이 정말 책을 많이 읽으시는구 또 한번 놀라게 됍니다.
저도 한때 매일 글을 올리지 않으면 못 살 것 같은 때가 있었지만
돌아보면 낙서가 거의 대부분이었죠.
지금은 하루에 한 편은 고사하고 일주일에 한 편도 안 쓰는 게으름뱅이가
되었답니다. 물론 다른 글을 쓴다는 핑계가 있지만.
이렇게 쓰시는 분 계시면 도전이 되긴하죠.
저도 노력해 보겠습니다.ㅋㅋ

밥헬퍼 2020-05-2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모처럼 이 서재에서 여유롭게 즐기고 있습니다.^^책읽는 것은 고만고만합니다
 
꼬마 물고기 빤짝이 뜨인돌 그림책 46
폴 코르 지음, 부희령 옮김 / 뜨인돌어린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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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코르,『꼬마 물고기 빤짝이』, 뜨인돌 그림책 46, (부회령 역), 뜨인돌어린이 2015년 3월


I

할망바당


1.

겨울바다를 가 본 적이 있다. 그 바다는 삼색으로 조화로왔다. 검고, 희며, 푸르다. 용암바위가 바다 사이사이에 박혀 빛난다. 바람이 바다를 밀어 파도가 인다. 파도는 바위 사이를 흐른다. 다시 바람이 바다를 쓸어주면 포말은 밀리듯 사라진다. 바다에게 이름을 물었다. ‘할망바당’이다. 해녀들이 만나는 마지막 바당이라 한다. 얕고, 잔잔하다. 먼바다로 나갈 힘이 있는 강한 해녀들이 여린해녀들을 위해 배려하는 바당이다. 그 여린 해녀들 중에는 한때 상군을 거쳤으리라. 세월은 그 바당에서 그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파도에 실어 흘려보냈다. 이 할망바당은 공존마당이다.


2.

사진작가 유용예가 있다. 그녀는 가파도에서 ‘할망마당’을 드나드는 해녀들을 위해 사진을 남겼다. 그 작품들을 모아 2017년 가파도 하동마을 길에서 사진전을 열었다고 한다. 가파도 해녀들은 이 여린 사진작가를 마침내 해녀로 받아들였다. 아기해녀는 스스럼없이 할망해녀들과 나란히 걷는다. 그들을 위해 스스로 사진해녀가 되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았다. 그리고 해녀로서 같은 시공간을 산다. 하여 해녀는 이 이질적인 두 사람들을 위한 공존마당이다. 꽃테왁을 만들어 주고 집을 내어주었다. 바다로 한 걸음을 내딛으며 함께 들어갔다. 호맹이대신 카메라를 들어도 좋다고 했다. 그녀가 자기 물질을 담도록 했다. 사진은 공존이다.


3.

우연히 이 ‘할망바당’사진과 그 이야기를 다시 보았다. 최고 해녀가 마지막 만나는 이 바당은 낮고 얕다. 거친 숨을 내쉬며 깊은 바다 속을 내집처럼 물질하던 상군해녀들에게 마지막 바당은 어울리지 않는다. 다시 여린해녀다. 삶의 최고 지점에서 다시 낮고 얕은 세계로 기꺼이 되돌아갔다. 이 강하고 여린 해녀들이 만들어낸 ‘할망바당’은 가장 견고한 대동세계다.


II

그림책


1.

그림책을 펼쳤다. 이스라엘출신 폴 코르(1926-2001)의 작품이다. 그는 이스라엘 화폐를 도안했다. 자긍심이 높았다. 이스라엘인들의 주머니에 자기 그림이 들어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의 화려한 경력이 무르익어갈 즈음, 그는 가장 여리게 보이는 작품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그림책이다. 그는 삶이 끝나는 즈음에 그림책시리즈를 마감했다. 모두 세 권이었다. 1990년에 1권이 나온 이후 1999년 3권이 발간되었다. 10년이 걸렸다. 그의 책이 2015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히브리어 제목 그대로『꼬마 물고기 빤짝이』(뜨린돌어린이, 2015)다. 작가는 꼬마물고기가족에게 은광코팅을 입혀주었다. 거친바다 한 복판에서 이 꼬마물고기는 빛난다.


2.

폴 코르는 암에 시달린 거친 삶을 살았다. 그도 생애 끝으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숨비는 잦아들고, 물질은 짧아졌다. 그 틈에 상상은 높아지고, 이야기는 깊어졌다. 그림책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생의 끝에서 파란 바다, 은빛 물고기, 검고 흰 줄을 가진 거대한 고래를 상상했다. 타인을 위한 따뜻한 만남을 생각했다. 서로 역경을 헤쳐 나가는 꿈을 떠올렸다. 마침내 행복한 공존을 완성했다. 그의 임종 세계는 이 꼬마물고기에서 더욱 빛난다. 어쩌면 그에게 이 그림책은 ‘할망바당’이었으리라. 책을 펼치면 그가 그려놓은 파란 바다 속을 꼬마물고기를 따라 유영하는 것 같다. 좋다.


III

음식공존


1.

요즘 음식을 선별하고 있다. 거창한 일은 아니다. 살아가는 한 방식이 달라지고 있을 뿐이다. 먹고 싶은 것을 대할 때마다 먹지 않아보려고 하는 정도다. 즐겨먹고 맛있게 살았던 것들이 많았기에 이런 과정이 쉽지는 않다. 절식하는 결단도 필요하다. 삶은 당연히 건조해지는 듯하다. 먹을 거리를 먹지 않을 거리로 만드니 오죽할까싶다. 어찌되었든 먹을 거리에 있어서 내 삶은 낮고 얕아지고 있다. 눈이 휘둥그래지는 식탁이 즐비하다. 손을 거둘 수 없을 만큼 맛깔스런 요리도 산처럼 쌓였다. 일부러 비껴나지는 않는다. 이런 삶이 가볍진 않지만 어렵진 않을 것 같다.


2.

삶은 늘 역설적이다. 몇 가지 좋은 변화도 있다. 이 틈에 맛있는 것을 찾아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좀 더 상상을 발휘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보려는 호기심도 생긴다.귤하나를 나눠먹는 재미가 크다. 고구마를 다양하게 맛보는 기쁨도 크다. 지금은 잘 못하고 있지만, 정시정량을 먹는 일까지 하게 된다면 그것도 즐거우리라. 하루 세 토막 사이사이 꼭 맞게 챙기는 간식도 흥미로울 듯하다. 나의 먹거리를 누군가 기억해주는 일도 기대가 된다.


3.

먹거리에 있어서 나는 이제 낮고, 앝은 세계로 진입한 것인지 모른다. 거칠지만, 여린 바다같은 세계다. 격동하지도 않고, 깊은 숨비를 내뿜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질이 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손에 잡히는 바당바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내세울 것 없는 할망바당같은 음식세계다. 이 세계에서 나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공존한다.


IV

공존세계


1.

삶은 시간이 흐르며 변화한다. 계절과 같다. 이변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변화는 오히려 즐거움이다. 그 낮은 세계를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적응해내야만 할 과제는 아니다. 삶은 끝으로 갈수록 자연스럽게 낮고 얕아진 세계로 들어간다. 그 속에서 새로운 역동성이 보인다. 할망바다가 그렇고, 한 작가의 그림책이 그렇다.


2.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침보다 하늘이 푸르다. 가벼운 책과 간단한 간식, 시원한 물, 포크와 발라드가 번갈아가며 나오는 노래, 맛깔스런 이야기들이 여전히 좋다. 평범한 것들이었지만 이젠 새롭다. 그것들과 함께 손을 움직이고, 마음을 다독여 맛깔스런 하루를 누린다. 시간은 한결같이 변화하며 실감나게 흐른다. 시간 창시자도 자유로우며, 일관되게 예측불가하게 자기 세계를 주도한다. 그림책 같다. 그 속에서 나도 할망바다를 유영하듯 뒤따른다. 


즐거운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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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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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파머(김찬호역),『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서울: 글항아리, 2012)(원제: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 2011)


I


1.

어느 해 한 단식농성장. 드러날 듯 말듯 한 권의 책이 놓여있다. 삶의 곡기를 끊어내야 할 만큼 절실한 자리였다. 책은 죽음으로 삶을 말하려는 이와 죽어가는 세상을 이어주는 생존상징처럼 놓여있다. 삶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은근히 말하는 듯 하다. 시간이 흘렀다. 책과 함께 농성했던 그 정치인은 불의 향연을 거쳐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그는 죽음의 매듭을 풀었고 삶은 그렇게 다시 되살아났다. 그 책으로부터 희망이 흘러나왔다.

저자는 이 책을 ‘바다에 던져진 유리병’같다고 평했다. 쓰여지긴 했어도 읽힐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는 말이었다. 그는 농성장에 놓인 이 책을 보고 경이로운 심정으로 추억했다. 그 일 때문이었을까? 그는 어떤 자리에서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글쓰기)이 당장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글을 쓰라. 언젠가 누군가 손에 들려 그에게 용기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적절한 해석이며 권면이다.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명확하다. ‘마음’을 말하고 싶어했다. ‘마음’은 이 책이 지향하는 좌표이다. 마음(cor)이 있으니 용기(courage)도 담겼다. ‘마음의 힘, 용기’는 이 책이 도달하려는 정치 세계다. ‘마음’을 다뤄주는 일, 그는 그것을 정치라 부른다.


2.

이 책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책표지가 좋을 것 같다. 무채색 삽화다. 네 개의 손이 겹쳐졌다. 손 아래 손, 손 위에 손. 그렇게 뒤엉켜있다. 두 사람일지 모른다. 아니 더 많은 사람일 수도 있다. 아름답다. 그 손들 위로 번역된 제목이 걸쳐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표지디자이너는 손이 겹쳐진 곳에 마음을 걸쳐놓았다. 감성이 풍긴다. 손과 마음이 이 책 첫 인상이다. 나쁘지 않다.


원제목을 보자. 세 단어가 쓰였다.: Healing, Heart, Democracy. 생각보다 이성적이다. 어려운 단어들은 아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이해하는 뜻을 고려하면, 치유, 마음, 민주주의 정도가 될 것이다. 단어들을 이어보면, 이 책은 ‘민주주의, 마음의 치유’다. 혹시 ‘Healing’을 ‘치유’로 옮기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원어 그래도 읽는 게 요즘 시대에는 더 어울릴 거 같다고 생각한다면, 조금 다른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민주주의’를 ‘힐링’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 마음의 치유’라는 표현에서 보자면,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중추적 기제, 마음(Heart)를 제대로 다뤄보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힐링’이라는 단어에서 ‘어그러진 민주주의’가 연상된다. 자연스럽게 저자가 선택한 ‘마음(Heart)’에 눈이 간다. ‘힐링’과 ‘마음’은 적절하게 어울린다. 푸석해진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중추적 기제로서 마음(Heart)이 제대로 꿈틀거려야 한다. 되묻자면 ‘민주주의’의 마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왜 ‘힐링’이 필요한가? 이 둘 사이는 어떤 관계인가? 이 질문을 따라가는 것이 이 책의 주제에 다다르는 방식일 것이다. 번역자도 이 ‘힐링’에 주목한다. 그는 ‘마음’의 원초적 개념을 이렇게 일러준다.


“이 책의 원제는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이다. 민주주의 마음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가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왜 마음인가?(중략)(그러나) 마음은 훨씬 더 근원적인 차원에 있는 ‘자아의 핵심’을 가리킨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우리의 모든 앎의 방식들-지적, 정서적, 감각적,직관적, 상상적, 경험적, 관계적, 신체적-이 수립되는 중심부’를 말한다.(후략)” (역자 김찬호)


번역자의 말을 고려할 때, 저자 파커 파머의 말 속에서 ‘힐링’은 아픔을 전제한다. 그리고 건강한 치유는 적절한 긴장을 수반할 때 더욱 빛난다.


II

1

책은 모두 8장으로 구성되었다. 1-3장은 개념과 이론을 서술한다. 그가 말하고 싶었던 핵심단어는 ‘마음(cor)’과 그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용기(courage=Cor+age)’다. ‘용기’는 ‘마음’이 성숙되어 뿜어나오는 결실이라 할만하다. 저저는 그들이 어우러져 표출되는 힘을 ‘마음의 습관’이라고 말한다. 그 마음들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상태는 마음을 견고하게 하는 조력이다. 저자는 후반부 5-7장에서 좀 더 실천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타인(5장), 교실/종교(6장), 사이버공간(7장)이 그것이다. 이런 구성과 함께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읽어야 할 것은 4장과 8장이다. 4장은 이 책의 무게중심으로 볼 수 있다. ‘민주주의의 베틀(The Loom of Democracy)’이라는 관점에서 그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생겨나야하고 어떻게 자라가는가?를 논한다. 미국상황이라는 점이 다소 지리적 이질감을 주지만 지리를 뛰어넘어 ‘민주주의’가 발흥하는데 있어서 그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을 탐색하는 것은 중요해 보인다. 이 주장은 결국 1-3장과 5-7장을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저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을 때 제대로 태생하고 유지된다. 이로써 ‘힐링’은 ‘긴장’의 창조적인 해석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5-7장은 따라가기 쉽지 않지만 현장을 적절히 상상한다면 유익한 읽기가 될 것이다. 8장은 책의 결론이자 일종의 권면이다. ‘희망’이 이 책의 결론이다.


2.

좀 더 구체적으로 저자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들어보자. 일단 그는 민주주의의 갱신을 촉구하고 있다. 그에게는 민주주의에 기반한 정치가 그 갱신의 대상이자 목적이다. 정치는 ‘마음’을 주목할 때 비로소 정치가 된다. 저자는 ‘산산히 부서진 마음’을 ‘새로운 세계를 향해 열어주는’ 권면과 독려를 정치의 목적론으로 제시한다. 저자의 주장에 힘입어 신(God)의 정치이든, 인간의 정치이든 모든 정치는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한다. 본래 정치는 ‘마음이 무너져 비통해진 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물리적인 힘이다. 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현실 정치는 자기 이익에 기반하는 이기적인 행위로 점철되어왔다. 이익이 수반되지 않을 때 정치는 스스로 무기력해진다. 세속화된 정치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날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인간을 ‘한 표를 가진 도구’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아픈 이들이 병원을 찾듯이, 질병에 걸린 정치도 힐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저자의 말을 듣고 있으면 ‘민주주의의 마음’은 구체적으로 ‘정치’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금 늪에 빠진 세속‘정치’에서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운 시간에 맞딱뜨린 것이다. 겨우 허리춤에 닿을 물길 어딘가에 무슨 이유인지 한웅큼 파인 물바닥을 보지 못하고 바닥에 닿지 못한 내 발을 두렵게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현장’을 염두에 두고 전개한다. 세 개의 장을 언급한다.:낯선 자, 교실/종교공동체, 미디어공간 등이다. 그가 이처럼 공간/장소 문제를 언급하는 데에는 정치가 공적영역에서 발휘되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다음과 같은 글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한 사회가 권위주의적 통치체제로 흘러가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차단되는 장소는 공적인 삶이 영위되는 곳들이다.”


저자에 따르면, 정치가 굽어질 때, 가장 먼저 위협받는 곳은 ‘공간’이라는 말이다.


III

1.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궁금했다. 현장,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낯선 이’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의 글을 읽다보면, ‘낯선 이’는 공적 삶을 방해하는 요인일 때가 많다. 하지만 공적 삶을 활력있게 만드는 것 역시, ‘낯선 이’다. 적절한 긴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활력있는 공적인 삶은 민주주의의 열쇠다, 공적 영역에서 우리는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함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159쪽)


쉽지 않다.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공적 장소의 위태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그런 위험을 모르는 것 같지는 않다. 곳곳에서 공적 삶의 장소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을 저자는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공적인 삶(public life)’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적 삶(political life)라고 판단한다.(164쪽) 따라서 “낯선 사람을 적으로 여기는 한 시민사회는 존립할 수 없다”(166쪽)는 평가는 적합하다. “5장 낯선 자들과 함께 하는 삶”은 우리 시공간에도 시의적절하다.


2.

“6장 교실과 종교공동체”는 저자의 깊은 고민이 느껴지는 장이다. 그가 기독교종교교육관련 저서도 적지 않게 출판했다는 것도 이 6장의 무게감을 증폭시킨다. 그는 교실과 종교공동체를 동일선상에 둔다.


“두 영역 모두 우리를 내적으로 형성하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창조적인 역할을 하는 능력을 훼손할 수도 있고 신장시킬 수도 있다.”(201쪽)


교실이나 종교공동체는 모두 ‘내적 힘’을 향상시키는 공간이다. 중요한 것은 종교공동체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유효하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신본주의 사회에 비해 하등한 정치체계로 제시하려는 의도가 많지만, 저자는 민주주의가 신적 사회를 제대로 탐구해가는 한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동의하든 하지 않든, 이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만약 신본주의 사회가 ‘가장 여린 인간을 중심에 두고 그를 보살피는 사회’라는 것이 타당하다면, 민주주의는 가장 명확하게 신본주의를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무엇을’ 가르쳐야하는지가 ‘어떻게’라는 방법연구보다 절실하다고 피력한다.(219쪽)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교실과 대등한 위상으로서 종교공동체를 탐구한다. 종교공동체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구성원이 민주적인 마음의 습관을 키워가길 바라는 신도집단에 던지는 질문은 ‘성서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라고 쓰여 있는가?”라는 물음을 넘어선다. 더욱 심오하고 엄격한 질문은 이것이다. ’그런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관계를 우리 안에서 어떻게 창조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하나가 되는 길은 무엇인가?“(222쪽)


이것은 지리적 간극을 넘어서 우리 사회에서도 종교가 가져야 할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환대’ 역시 종교공동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라고 일갈한다. 그는 성경의 창세기18장과 누가복음24장을 토대로 ‘환대’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신앙인이 낯선 자를 환대하지 못하면, 영적인 여정은 갑자기 멈춰버린다.”(235쪽)


저자의 말을 유추하면, ‘환대’는 공적인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3.

저자는 또 하나의 공간을 제시한다. 그것은 미디어이다. 민주주의사회에서 미디어의 의의에 대한 다음 말을 생각해보자.


“디지털 미디어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정치적 견해와 정보의 소비자만이 아니라 생산자도 된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보탬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소비자로서 읽은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다른 자료들과 비교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저자는 비판과 질문이 수반될 때 비로소 미디어가 민주주의에 보탬이 된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미디어는 새로운 세계이다. 실제가 아니라 허구라고 해도 그것은 현실 삶과 분리될 수 없다. 인터넷의 영향력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세계는 이제 커다란 정보공동체가 되어버렸다.


“인터넷 덕분에 나의 말이 새로운 대화, 모임, 프로젝트, 프로그램 등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관심사에 대한 목소리를 더욱 분명하게 가다듬고 주체 감각을 심화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러한 결과들은 단지 내가 말을 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 목소리에 자신의 목소리를 보태주었기에 가능했다.”


저자는 이 말 속에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치가 더 이상 개인의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명시한다. 그것은 상호소통과 유대로부터 발전한다.


IV

1.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신앙언어를 원색적으로 드러내지 않고서도 신앙 가치관을 현실세계에 투영하는 저자의 기법이다. 신앙과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깊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유의해서 읽어야 할 요소도 있다. 이 책이 미국정치체계 속에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한국사회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미국 민주주의가 양질의 정치체계를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극적 의문이기도 하다. 또한 ‘민주주의의 마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추상성에 그칠 수 있다는 비판도 지나치기 어려워보인다. ‘마음’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기제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객관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설명은 이성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민주주의를 맹신하듯 모방습득하는 태도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자생적 훈련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이 점이 이 책의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디. 이 미국 민주주의를 한국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점 말이다.

책 구성에 있어서도, 이 책은 1-3장에 비해 5-7장이 밀도가 떨어진다. 이런 점들을 충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2.

개인적으로 이 책을 좀 더 유익하게 읽기 위해서 유의할 것이 있다. 우선 4장이 이 책의 중심이다. 사실, 책 전체로 볼 때 가장 핵심은 1-3장과 4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독자는 전반부를 집중해서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아울러 이 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 있다. 다섯 가지로 제시하는 ‘마음의 습관’이다.


(1)우리는 이 안에서 모두 함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한다.

(2)우리는 다름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3)우리는 생명을 북돋는 방식으로 긴장을 끌어안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4)우리는 개인적인 견해와 주체성에 대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5)우리는 공동체를 창조하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바라기는 우리 시대에 공동체성을 지향하는 교회라면 이 민주주의의 온전한 실현을 위해 좀 더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교회가 마땅히 가져야 할 정치성에 관한 고민을 함양하는데 일조할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 속에서 강건하게 살아가려는 신앙인들에게도 유익한 독서가 될 것이다.  

"활력있는 공적인 삶은 민주주의의 열쇠다, 공적 영역에서 우리는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함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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