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짜장면 불어요! ㅣ 창비아동문고 224
이현 지음, 윤정주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평점 :
어릴 적 분명 짜장면은 내게 최고의 음식이었다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게는 막강 엄마의 팥칼국수가
있었으니까. 뜬금없는 팥칼국수 타령에 의아하시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 딱 그거였다.
뜬금없다는 느낌. 캐릭터도 주제도. 모든 것이 흠잡을데가 없는데 무언가 뜬금없이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
그것은 너무나 현실적인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였다.
우리의 주인공 둘은 기삼이의 대책없는 낙천주의와 자신의 직업에 대한 허황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그저 감탄만 하기엔 가슴이 쓰리다. 그것이 정말 청소년의 말일까? 그건 어쩌면 어른들의 이기적인
강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기삼이가 그렇게 느끼면서 산다면 그것은 행복한 것이라고 감히
말할 자신이 없다.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은 것을 아니까.
우리의 또 다른 주인공 용태는 어떤가. 집안형편상 어쩔 수 없이 중화요리집에 나이를 속이고 왔으면서도
어쩜 그리도 순박하고 순한지. 읽고 있는 나는 화가 날 지경이다.
그가 거기에서 못 벗어날까봐 조마조마해서 차마 아슬아슬해서 보기가 싫어진다.
표제작인 <짜장면 불어요!> 를 포함해서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性)><3일간><봄날에도 흰곰은 춥다><지구는 잘 있지?> 는 틀림없는 연작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 중에서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을 빼고는 아쉽게도 상당히 어두운 그림자를 깔고 있다.
깜짝 놀라울 정도로 우리 아이들의 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은 일견 친숙하고
일견 놀랍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진실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결말에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읽으면서 괜스레 두근두근 뛰었던 가슴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3일간>은 일견 익숙한 구도지만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작가의 결말이 어찌나 싫은지 ...
이게 동화가 맞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 봄날에도 흰곰은 춥다>도 일견 같은 구도인데 이 작품은 다른 작품보다 더 묘사력이 뛰어나서인지
아빠의 무능한 등이 곧바로 보일 듯 하다. 스스로는 열심히 산다 말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의 변화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무척 많다.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서 어느 정도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결국은 뒤쳐져서 허방을 딛게 되는 우리네삶을 아이의 눈으로 비춰주는데 아릴 정도로 정확하다.
그곳에서 만나는 친구는 꼭 용태같은 아이이다. 그리고 꼭 기삼이 같은 아이도 하나 있다.
씁쓰레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친구들이다.
마지막 작품을 보면서 이 작가에 대한 의심을 도대체 떨쳐낼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내가 책을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구는 잘 있지?> 를 읽으면서 다른 이들이 읽었다는 온기를
읽을 수가 없었다. 물론 사람만이 희망이며 그렇게 살아남아서 진실을 알게 되고., 결국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은 그곳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왜 이리 나는 비관적인 상상만을 하는 것인지
그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스스로가 안타까울 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읽혀질지는 모르겠다. 다 커버린 "어른"의 눈으로 보는 것을
"아이"들은 전혀 다른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종종 본 때문이다.
이상하게 슬프다. 내내 푸르둥둥한 느낌이 떠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