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2 어쨌든 시간은 지나간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PT도 벌써 몇 시간 전 일이 되어 있다. 오늘 첫 번째 발표를 담당한 동료(나는 두 번째 발표자)와 부실한 점심에 대한 보상으로 저녁에는 갈비탕을 먹고, 헤어지는 길에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맥주를 마실 거지요? 마시자!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속대로(?) 집에서는 카프리 한 병과 (드디어!) 삿포로 맥주 박물관에서 사온 맥주 잔을 개봉했고, 코코넛 크런치 한 봉을 안주 삼아 기분 좋게 마셨다. 뭐, 예상한대로 PT 심사에서는 떨어졌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난, 경쟁이 싫어요, 외치고 다니지만 어디 경쟁이 아닌 곳이 없다, PT 같이 남들 앞에 나서는 일에 익숙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어제부터 많이 들었다. 만약 그랬다면, 내 삶은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조금 욕심이 났다. 지금까지처럼 숨어 있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 노력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어 이제는 좀 나서볼까, 싶어졌다. 동료와 나는 '피티의 신이 되자, 피신이 되자, 피신하지 말고' 그런 따위 이야기를 했는데, 실은 '피신하지 말고'는 나중에 나 혼자 상상해서 덧붙인 말이다. 앞으로 읽어갈 책도 소설 뿐 아니라 업무와 관련된 마케팅이나 트렌드를 알려주는 책이나 그런 것들도 포함해야 하지 않나 싶다. 내 개인적인 욕심과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무엇을, 다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지금은 욕심이 가득차서 학교도 다시 다니고 싶다. 이렇게 무서울 정도로 의욕적인 봄이라니, 굉장히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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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1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카레을 먹고 아인슈페너를 마셨다. 마지막에는 동네 도서관 매점에서 보리차를 마시면서 긴 수다를 떨었다. 친구는 로스트 아크에 빠져 있었는데, 게임을 하면서 인생의 법칙 같은 걸 알아버린 듯 했다. 경청의 자세, 여유, 인내, 소신이 느껴졌다. 그 앞에서 나는 허덕이면서 생산적인 걸 해야해, 소리 높이는데 참..추하다 추해..결국 인간은 얼마나 정신적으로 평화로운가에서 승패가 갈리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도 로스트 아크를 하면 그렇게 되려나, 하지만 게임을 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집에 와서는 저녁 먹고 내일 발표 준비를 했고, 아버지께 호되게 코칭(?)을 받으면서 되는 대로 연습을 했다. 발표 준비 벼락치기는 일종의 가족 쇼처럼 변해서, 내일 도대체 어떻게 할런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야말로 기도와....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할 수 있다를 천 번 외쳐보는 것. 뭐 할 수 있겠지, 잘 하지는 못해도 사람이 할 수는 있는 거니까. (오늘의 독서 : 미용실에 앉아 기다리면서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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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30 사월 마지막 날. 아침에 진통제 두 알 먹고 나른해서 평소보다 늦게 출근. 이십여 분을 쓰다가 아홉시가 되어 일을 시작했다. 오늘은 일이 많지 않아서 유튜브로 다양한 영상 레퍼런스를 찾아본다는 핑계로 보고 싶은 것을 봤다. 소위 병맛 CF 모음과 브이로그와 강연과 짧은 애니메이션 등.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양세바리스타 맥심 디카페인 영상. 예전에도 재밌게 봤는데, 다시 봐도 같은 지점에서 웃게 된다. 디카페인이라는 포인트도 잘 들어온다. 회자되는 광고를 보면 한 눈에 각인시키는 것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광고 중 하나는 채수빈이 나오는 스니커즈 광고인데, 출출할 때 미숙이는 미숙이가 아니야, 시리즈. (이 광고 전에 스니커즈가 어떤 광고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퇴근 시간까지 영상 레퍼런스만 찾아봤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목요일 PT에 대한 걱정이 남아있다. 어쩌다보니 발표자가 되어버렸는데, 이게 인생 세 번째 PT이다. 일을 하다보면 사람들 앞에 나서야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번 일이 그렇고, 이럴 때는 차라리 이런 걸 즐기는 사람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어릴 때 많이 나서볼 것을, 그래서 이런 일이 익숙한 어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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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동안, 퇴근하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한 시간씩 소설을 읽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온전한 독서의 시간은 아니었다. 도서관은 조용했지만, 소설을 읽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보다는 교과서를 읽는 기분에 가까웠고, 그런 기분이 나를 빨리 지치게 했다. 장소의 문제였을까. 오늘은 집에 일찍 돌아와 저녁을 먹고 방에서 조용히 소설을 읽었다. 이기호의 ˝한정희와 나˝를 읽었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이 소설과 이별하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 있는데, 오늘 ˝한정희와 나˝가 그랬다. 나는 때로 소설에서 문자 그대로 ˝구원˝ 받는다. 6년 전, 본격적으로 밀어닥치는 사회생활, 그리고 인간관계에 지쳤을 때, 조경란의 소설집 <일요일의 철학>을 읽고 치유 되는 것 같았고, 바로 작년, 돌파구가 없다고 느끼던 생활에서도,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의 테두리가 따듯해지는 기운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은 ˝구원˝이라는 독서의 효능으로 분류할 수는 없지만, 이 소설의 다음 문장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만약 내 상황이 6년 전, 혹은 1년 전과 비슷했다면 이 소설이 마음을 예리하게 파고들었을 것 같다. 나는 이 기분을 간직하기 위해 뭔가를 글의 형태로 남기고 싶었다. 이 소설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렇게 써두었으니 다행이다. 소설의 줄거리와 인물,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며칠 지나지 않아 불완전하게 기억하다가 나중에는 아주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리더라도, 지금의 기분만큼은 여기 남아 있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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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9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20분 썼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작업속도가 더뎌지는 게 느껴진다. 생각할 부분들이 생겨서 앞으로 달려갈 수 없는 시기. 퇴근길에는 비가 왔고, 집에서 밥먹고 뉴스를 좀 보다가 리디북스에서 편혜영 단편 ‘우리와 가까운 곳에’ 읽고, 유난히 피로해서 여덟시 반에 이불 속에 들어가 쉬다가 잤다. 참 별 거 없는 하루였다 싶지만, 매일 매일 너무 많은 걸 할 필요는 없고 피곤할 때는 그냥 놓아버리고 쉬는 게 좋은 것 같다. 지금 내 목표는 하루 하루 내가 정한 몫을 하되 지칠 만큼 몰아세우지 않는 것, 스스로는 늘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빡센 하루보다 지속되는 일 년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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