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김토끼 서재'에 들어와서 일 년 전에 쓴 글을 보았다.
겨우 두 편의 글이었지만
벌써 일 년 전이라니 새삼스러웠다.
그 때도 봄이었고, 조금 추웠고,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거나 미치도록 미워하지 않았다.
사람의 인생 그래프에서 얼마간 수평선을 그을 수 있는 시기가 있다면,
나에겐 지금이 그렇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일 년 전과 지금이 100% '똑'같지는 않다.
지난 일 년간 그 수평선 위를 걸어가며 나는
내가 항상 원치 않는다 여기던 경험들을 했다.
봄에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시를 정리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여름에는 냉장고 같은 도서관에서 5시간씩 노트정리를 하고
가을에는 실패할 것이 뻔한 시험에 목을 매며 조급해하고
겨울에는 영혼을 죽이고 학원가를 돌아다녔다.
그토록 파묻혀 살던 소설과 시는 거의 읽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정말 좋아했는데.
그리고 지금도 그 수평선이 끝나지 않았지만
그 사이 나는 크게 깨달은 게 있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는 것.
하여간 나란 사람은 불과 몇 개월전까지만 해도
'젊은 사람들이 취업준비로 청춘을 학원과 도서관에서 낭비한다'고 누가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대찬성하는 타입이었다. 나도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취업준비로 청춘을 골방에서 썩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 삶에 대한 책임감은 있다는 것이다.
안 떠지는 눈을 비비고 새벽에 일어나
도서관이나 학원으로 가서 종일 앉아 공부하고
집에 돌아오면 체력비축을 위해 또 운동 하고 숙제하고 잠들고
(물론 이렇게 계속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지만, 이것도 한 순간이니까)
그렇지만 그 와중에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고
'나도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면서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당장 현실을 바꿀 수는 없으므로 다음날이면 다시
안 떠지는 눈을 비비고 새벽에 일어나.......
(그러나 이런 사이클을 맹목적으로 돌고 있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여튼!!
이런 사람들의 인생을 재미없다고 함부로 요약하면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게 뭐든 이 시대가 토익을 원하니까 어학연수를 원하니까 좋은 학벌을 원하니까 아름다운 미모를 원하니까
그것을 얻고 싶어서 버둥거리는 사람들이, 완전히 무지몽매하고 자아를 잃어버려서
그렇게 휩쓸리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 그런 사람들중 대부분은 정말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지금'이라는 순간을 헌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도 그들도
언젠가 이 수평선을 수직선이나 위쪽으로 올라가는 사선으로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