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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기타
박가분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화장품이면서 동시에 공산품 1호로 등록되었다. 원래는 1916년 두산그룹의 모체가 된 종로의 포목전 박승직상점에서 덤으로 주던 상품이었으나,1922년 정식으로 제조허가를 받아 인기리에 팔렸다. 기록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하루 2만갑이 팔렸다고 하며 재래 백분에 비해 혁신적인 상품이었기에 서가분, 장가분, 부가분, 국분, 가정장분, 옥녀분, 금화분, 연미장분, 향화분, 설화분...등 유사 상품들이 앞다투어 쏟아져 나왔다. '귀부인화장품계패왕' '화장의변치안는박가분.귀부인항상
쥰비허실것'이라는 문구와 함께 전국의 돈이란 돈은 다 끌어모은다던 박가분은 1930년대 납파동과 함께 어려움을 겪다 결국 1937년 자진 폐
업하게 된다. 당시 20여년 동안 나온 박가분은 지금처럼 가루로 된 것이 아니고 덩어리로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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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이 박가분. 4.6cmx4.6cmx1.3cm 왼
쪽은 서가화장품본포근제의 가정장분, 오른
쪽은 국분
▲ 50~70년대 분통(粉匣) 지름6.5cm~9.5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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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어서 분접시에 놓고 분수기로 물을 따루어
살살 개어 얼굴에 펴 발랐다. 해방후 쏟아져 나온, 디자인이란 개념도 없이 코티분통의 유사품처럼만 보이는 많은 분통들도 다 모은다면 백여종이 훨씬 넘으리라 보여진다. 향미화학, 대지화학, 대도화학, 동광화학, 장미화장품본포, 빠삐ㆍ오케화장품본포, 로렉스화장품본포,크로바화장품제조본포, 평화화학공업사, 노블화장품본포, 777화장품본포...등 지금은 사라진 그 많았던 화장품회사의 분통을 보면 우리의 근대 장업사는 숱한 경쟁과 치열한 몸부림속에서 결국 살아남은 제품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자료문의 053)745-5373 이무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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