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접/경대




빗접은 거울이 나오기 전 화장품과 화장용구를 넣어두고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만든 일종의 함을 일컫는다. 그 종
류는 주칠빗접, 화각빗접, 나전빗접, 나무빗접 등 다양한데 서랍과 장을 붙여 좌경과 비슷한 크기로 만들었다. 빗접속에는 일반적으로 분이나 비녀, 빗, 빗치개, 분접시,
기름병, 분물연적, 쪽집개...등을 넣어두고 썼다. 그림의 빗접은 나무의 결을 충분히 살리고 사각 들쇠받침위에 ㄷ자형 들쇠를 달고, 견고한 부착성과 모서리 마무리의 미 관성을 위해 꺽쇠처럼 생긴 감잡이를 부착했다. 또한 전
면에는 새의 발처럼 생긴 ㅏ,ㅜ,ㅗ자형 새발 감잡이를 사용해 한껏 장식미를 겸하고 있다. 아래의 경대는 조선조 말 거울 보급과 함께 빗접을 대신하게 되었는데, 추자나
무와 배나무와 귀목을 부분별로 섞어 쓰면서 나무가 가진 재질을 유감없이 활용한 작품이다. 특히 경대 앞바탕에는 모든 덩굴 풀무늬를 통틀어 말하는 각종 당초문이 조그만 정으로 두드려 문양을 새기는 조이질 기법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또한 모서리는 고추잎 감잡이로 보강했으며,아랫서랍엔 장수, 수호, 복록을 상징하는 박쥐형 들쇠를 달고 윗면의 실패형 경첩과 어우러져 한껏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실패형 경첩을 재껴 뚜껑을 열고 거울앞에 마주한다면 상상컨대, 어느 이름모를 옛 여인 하나 섬섬
옥수 고운 분단장에 몰두했을 그 시간이 눈에 밟히지 않
을까?

♣ 자료문의 053)745-5373 이무열




▲ 빗접(조선시대) 가로25cm 세로23cm높이25cm


▲ 경대(조선시대) 가로18.5cm 세로27.5cm 높이1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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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기타

박가분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화장품이면서 동시에 공산품 1호로 등록되었다. 원래는 1916년 두산그룹의 모체가 된 종로의 포목전 박승직상점에서 덤으로 주던 상품이었으나,1922년 정식으로 제조허가를 받아 인기리에 팔렸다. 기록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하루 2만갑이 팔렸다고 하며 재래 백분에 비해 혁신적인 상품이었기에 서가분, 장가분, 부가분, 국분, 가정장분, 옥녀분, 금화분, 연미장분, 향화분, 설화분...등 유사 상품들이 앞다투어 쏟아져 나왔다. '귀부인화장품계패왕' '화장의변치안는박가분.귀부인항상
쥰비허실것'이라는 문구와 함께 전국의 돈이란 돈은 다 끌어모은다던 박가분은 1930년대 납파동과 함께 어려움을 겪다 결국 1937년 자진 폐
업하게 된다. 당시 20여년 동안 나온 박가분은 지금처럼 가루로 된 것이 아니고 덩어리로 된




▲중앙이 박가분. 4.6cmx4.6cmx1.3cm 왼
쪽은 서가화장품본포근제의 가정장분, 오른
쪽은 국분



▲ 50~70년대 분통(粉匣) 지름6.5cm~9.5cm
것이어서 분접시에 놓고 분수기로 물을 따루어
살살 개어 얼굴에 펴 발랐다. 해방후 쏟아져 나온, 디자인이란 개념도 없이 코티분통의 유사품처럼만 보이는 많은 분통들도 다 모은다면 백여종이 훨씬 넘으리라 보여진다. 향미화학, 대지화학, 대도화학, 동광화학, 장미화장품본포, 빠삐ㆍ오케화장품본포, 로렉스화장품본포,크로바화장품제조본포, 평화화학공업사, 노블화장품본포, 777화장품본포...등 지금은 사라진 그 많았던 화장품회사의 분통을 보면 우리의 근대 장업사는 숱한 경쟁과 치열한 몸부림속에서 결국 살아남은 제품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자료문의 053)745-5373 이무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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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화장용구ㆍ장신구 등
화장품전문점에 전시

화장품전문점 박가분은 1994년 11월
대구시 수성구 시지동에 첫 매장을 연 이래 현재 대구와 부산에 8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화장품 유통회사이다.
박가분은 지난 해 12월 수성점 매장을 80평으로 넓히면서 매장 한 켠에 아담
한 옛 화장용구 자료관을 갖게 되었다. 이번 일은 굳이 박물관에나 가야 접할

수 있었던 화장 관계 유물을 전문점에서, 그것도 지나가 다 쇼핑을 하며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하겠다.
박가분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은 필자가 화장품회사 영업사원 시절부터 십수년 개인적인 취미로 한 두점씩 모아온 것들로 이루어졌다. 또한 전문점 오픈후에는 우리 고유한 정서와 미의식에 바탕한 화장문화를 되짚어 보고 알리는데 조금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그런 소박한 바램의 결과이다. 자료관에는 소장품 중 일부인 300여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화장품 박가분을 비롯하여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각종 분합, 연지합, 청동이나 화각으로 된 거울 및 칠보비녀,경대,빗접,비치개,귀이개가 있는가 하면 신라나 고려시대의 팔찌와 귀거리 목걸이등 옛 여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을 접할 수 있다.
박가분에서는 늘 여성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꽃피우는데 열중해 오고 있는데, 여력과 기회가 닿는대로 옛 화장용구 수집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원컨데 많은 시간이 지나 보다 풍부하고 체계적인 박가분 화장용구 자료관을 열 수 있다면 지역사회를 위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 자료문의 053)745-5373 이무열

註) 박가분 수성점내에 있는 박가분 옛 화장용구 자료관에는 각종 화장용구를 비롯 다수의 여성관련 용품을 수집, 보관하여 진열중입니다. 시간을 두고 소개하면서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느끼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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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궁경(月宮鏡)

월궁경이라고 일컬어지는 동경은 일정한 구성과 주제를 갖고 있다.
보통 중앙에는 계수나무가 있고 좌우에는 공이로 불로 장생약을 찧고 있는 토끼와 긴 소매를 펄럭이며 달로 달아나는 항아(姮娥)가 있고 두꺼비(蟾 ?. 섬여)가 배치되었다.

중국 신화에는 영웅 예(?) 의 아내 항아가 약을 훔쳐 먹고 달로 도망가 미운 두꺼비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중국의 신화가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두꺼비는 달의 정령이 되어 달 자체를 표상하게 된 것 같다.

중국 '당나라' 동경에 이런 월궁경이 보이고'박가분자료관'의 월궁경은 손 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원형경이다.

동경의 꼭지(?)를 중심으로 꼭지 자리(?座)를 감싸고 있는 내구(內區)안에 배치된 문양은 빈틈없이 짜인 한편의 드라마이면서, 생생한 신화를 보는듯 하다.
특히, 경성여고보(京城女高普)라고 예리한 끌 같은 것으로 파놓아 일제시대 이동경을 소장했던 여인의 마음 한자락을 보는듯해 한결 애정이 간다.

어쩌다 우연히 이 동경을 구하고는 너무 기쁜 나머지 나는 늙도 젊도 않은 나이에 연애(?) 비슷한 감정까지를 느꼈었다. 그 결과 내 상상력은 '이바구 저바구'에 '돌의 꿈'이라는 제목의 동화를 한편 쓰게 되었는데 거기에서는 이 월궁경의 명칭을 '항아와 토끼가 있는 달나라 궁전무늬 고려동경'으로 명명해 보기도 했다.

내구(內區) 위쪽 자견(慈見)이라고 약간 도드라지게 나타낸(陽鑄.양주) 글씨는 늘 사랑스런 마음으로 보고 자신을 가꾸라는 의미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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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전서고사문경 (柳毅傳書故事文鏡)

역사상의 일화거나 전설의 내용 혹은 일상 생활을 소재로 나타낸 문양을 일컬어 인물화경(人物畵鏡)이나 인물고사문경(人物故事文鏡)이라고 부른다.
위의 동경은 동경의 연부(바깥 테두리)를 따라 중앙 상단에 커다란 귤나무가 한 그루 서있는데 이 나무는 동정호반(洞庭湖畔)의 귤나무라고 한다.
원래 용왕의 딸인 용녀가 지상에 있는 경천(經川) 신(?)의 둘째 아들에게 시집갔으나 남편의 도락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처해 길가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유의가 미천한 일을 하고 있는 용녀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편지를 받아 말을 타고 재빨리 동쪽으로 달려가 용왕에게 딸의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꼭지(?) 하단에 말을 잡고 있는 인물이 보이고 꼭지 오른쪽 선비는 예복을 갖춰 입고 예의를 갖춰 용왕에게 저간의 사정을 자세히 아뢰는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유의전서고사문경은 '마사박물관'(馬事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는데 연부가 넓고 큰 편에 속하는 것으로써 꼭지(?) 상단 휘늘어진 동정호반 귤나무 아래 명문이 없는 방형궤가 있다.
하단 말을 잡고 있던 인물은 오른쪽으로 배치되고 그 자리엔 선명한 물결무늬가 나타나 있다.
물결무늬 가운데는 꼬리를 치며 힘차게 노니는 두 마리 잉어가 보인다. 이런 무늬의 변천은 중국 금나라시대(金代)의 동경에도 보이는데 물결무늬가 있는 것은 시대가 내려오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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