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어휘력 - 말에 품격을 더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힘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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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과 말귀 못 알아듣게 말하는 사람이 만나 말해봐야 복장 터질 일밖에 없다. 어휘력이 부족해서일 뿐인데 '그 인간 문제 있다'로 비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어휘력과 인격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경우 어휘력 '부족'보다 '잘못'에 가깝다.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 느낌 등을 표현하는 데 자신감을 잃는다." p.6

이 책을 읽는 동안 앞에서 밝힌 저 문장이 탁 와닿았다. 직장생활을 하든, 사회생활을 하든, 또는 가정에서조차도 늘 왜 내 말을 못 알아듣느냐고!!! 열 받았던 일이 하루이틀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다음 '내가 못 알아듣게 말한'사람은 아니었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의사소통의 실패경험이 늘어나면 날수록 소심해지는 것은 어느 누구랄 것도 없다.

책에서는 어른다운 어휘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떤 말이나 글의 의미나 어감을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눈치'가 부족하다기보다 '어휘력'이 부족한 탓이 크다. 눈치 없이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척하면 척! 알아듣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갑갑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것도 어뤼혁이 부족해서 그렇단다. 어휘력은 개념이다. 그래서 그것이 어떤 필요로 등장하여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를 알게 되면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국어시간에 낱말 공부를 꽤 했었다. 비슷한 말, 반대말도 늘 시험을 쳤고, 낱말의 뜻을 찾아 공책에 쓰고 외웠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것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사전이라는 것이 낱말을 찾는 과정에서 다른 단어를 눈에 익히는 과정을 거쳐, 해당 낱말의 뜻을 알게 되는데, 요즘은 '낱말'을 써서 검색하면 바로 답이 나오는 시대다 보니 어휘력을 증진할 시간이나 과정이 없다.

그렇다면 정확한 어휘는 왜 필요한가? 우선은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이다. 즉, 해석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서다. ​그리고 언어의 한계는 상상과 인식의 한계상황을 불러온다. 어휘력은 낱말에 대한 지식의 총합이며, 문장을 낱말로, 서술을 명사나 형용사로 줄이는 기술이기도 하다. 또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간단한 표현이라도 고도의 두뇌활동이다.

"눈으로 읽은 적 없고 귀로만 들은 말을 손으로 적으려니 벌어지는 웃기는 맞춤법이다. 거의 책을 안 읽는 사람이라고 싸잡아 단정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p.117

"한쪽에서는 글자를 줄이다 초성으로까지 줄여 쓰는데 다른 쪽에서는 불필요한 경어와 존대로 문장이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p.119

"우리말은 형용사와 동사가 잘 발달해 구태여 피동형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p.120

"말과 글은 주어가 목적어를 하게 하는 것을 기본 구조로 파생한다. 그래야 목적과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p.120

"누군가의 생각이나 마음을 알고 싶다면 갖지도 않은 독심술을 부리지 말고 말(글)을 건네자. 그 말(글)이 가진 힘을 믿자. 우리가 어휘력을 키우고 싶은 궁극적인 목적도 결국 소통에 있지 않던가." p.133

그렇다 결국은 소통이다. 내 말을 잘 알아듣든, 못알아듣든 궁극의 목표는 의사소통이다.

모국어 사용자들은 언어를 온몸으로 흡수한다. 왜냐하면 말맛을 알기 때문이다. 말뜻과 말맛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말맛이 우선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텍스트보다 콘텍스트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요즘 회사에서 교정일을 조금 하고 있다. 문서 교정을 하고 있는데, 간혹 문법적으로는 틀리지 않았지만 뭔가 어색한 문장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는 아예 해체해 놓고 문장을 바꿔버리는데 소리내어 읽어본 후 어색한 것은 삭제하거나 조정을 한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방법을 이야기한다.

"문제는 문장 자체는 번듯한데 무슨 말을 하려는지 종잡을 수 없는 글이다. 전체를 갈아엎어야 한다. 원고를 쓴 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냐고 묻는 것이다. 말하면서 생각났는지 생각해서 말하는지 몰라도 한결 명확한 내용으로 들려준다. 내용을 간략하게 줄이고 압축할 수 있는 것도 어휘력이다." p.183

나도 자주 하는 일이다. 최초 문서 작성자에게 연락해서 무엇을 전하고자 하였는지 묻는 것이다. 애초에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문장을 수정하는 것이 수월해진다. 수식어 없이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어휘를 찾고, 형용사를 용언으로 바꾸면 문장이 간결해지고 뜻이 분명해진다고 한다. 그렇다고 부사와 형용사를 모조리 걷어내자는 말이 아니다. 문장의 적재적소에 형용사를 다채롭게 구사하면 문장이 특별해 보일 수 있다.

"인간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은 것을 일어난 것처럼 상상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 이외의 것들을 상징을 통해 이해한다. 글자가 기호라면 글은 상징이다. 글자를 읽는 것과 글을 읽는 것은 다른 차원에 있다. 저자도, 독자도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글자가 아닌 글을 읽는 것, 상징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텍스트가 기대고 있는 콘텍스트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P.258

어른의 어휘력,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가 배우고 익히는 모든 것들을 학교만 졸업하면 싹다 잊어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책을 읽고 새로운 어휘를 습득하고, 사용하지만 쉽지 않다.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든다. '어른의 어휘력'. 대학입시가 아니라 살면서 우리가 필요해서 쓰는 어휘력이다. 가장 쉽게 익힐 수 있는 방법이라면 독서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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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 서가명강 시리즈 14
박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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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 라이벌의식을 갖는 '상대'가 있다. 다른 이가 했을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데 그 '상대'가 그렇게 했다고 하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한국과 일본이 그러하다. 스포츠에서 한일전이라도 벌어지면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응원을 하고, 지기라도 하면 역적이 되어버리는 분위기 말이다. 두 나라 사이에 얽힌 문제들은 언제쯤 풀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이 책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설계하고 이끈 사무라이에 관해 이야기한다. 내가 알고 있는 '사무라이'는 비열한 이미지가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사무라이에 관해 자세히 알지도 못했고 그나마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희화화된 사무라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물론 보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닌자들을 떠올렸을 정도로 나는 잘 알지 못하였다.

근대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부터 시작하였다고 한다. 나는 일본의 천황제라든가, 정치세습이라든가 하는 것이 참 독특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근대 일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서가명강 시리즈는 책을 읽기 전에 주요 키워드를 설명해준다. 이 키워드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연호(年號)는 특정 군주 즉위 후 통치 기간을 일컫는 용어다. 일본 역사상 천황의 가문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기에 천 년이 넘게 이어져오는 전통이라고 한다. 막부(幕府)는 12세기부터 19세기까지, 천황을 신앙적 존재로 두고 실질적으로 국가를 다스렸던 무사 정권을 말한다. 이 막부 시대가 끝나고 메이지유신이 선포되면서 근대 일본이 열리게 되었다. 근대 일본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천황의 존재는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 특이하다. 일본 봉건 시대의 무사계급을 사무라이라고 한다. 사무라이는 도쿠가와 시대에 이르러 농촌이 아닌 도시로 이동하여 살게 되고 주군에게서 봉록을 받는 존재로 바뀌었다.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고 왕정이 복고되면서 정치, 경제, 사회, 군사 전 분야에 걸쳐 서구화에 성공한 메이지유신은 지배 계급인 사무라이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개혁이다. 1853년과 1854년, 미국 동인도함대의 함선이 일본으로 와 미일화친조약을 맺었고, 이 사건을 기점으로 막부의 쇄국정책이 끝났다. 에도 막부 말기 메이지유신의 사상적 토대가 된 것은 '존왕양이'이다. 그리고 1867년 에도 막부의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국가통치권을 메이지 천황에게 반납한 대정봉환 사건은 에도 막부와 막부 시대의 끝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이 주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하여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를 소개한다.

19세기는 일본에서 유학과 주자학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메이지유신은 서구의 문물에 자극받아 이루어졌지만, 유학, 그 중에서도 주자학과 같은 수준 높은 교육과 학습이 없었더라면 일본인들이 근대화로 나아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카모토 료마도, 이토 히로부미도 모두 '독서하는 사무라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오다 노부나가와는 종류가 다른 사무라이다. 유학이라는 건 사람을 정치에 관심 갖게 만든다. 유학에 접한 사무라이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전투 대신, 천하대사의 정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p.29

독서하는 사무라이. 이 책의 부제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에서도 강조하는 내용이다. 사실 칼을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책을 읽어서 사상의 토대를 튼튼하게 만들고,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혔기 때문에 변화의 시대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메이지유신은 지배층인 사무라이층 내부의 다툼과 그 영향으로 일어났다. 변혁은 이루어졌지만 보수세력이 점진적인 방법을 통해 수행하였기 때문에 사회질서가 무너지지 않고 안정성을 유지하며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일본 대중은 정치참여에 관심이 덜하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정치성향은 2명만 모여도 드러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요시다 쇼인은 서양 관련 서적을 구해 필사하고 읽었다. 주자학, 양명학, 국학, 미토학, 병학을 가리지 않고 섭렵했으며 서양 정보를 모았다. 그는 옥중에서도 죄수들을 상대로 [맹자]를 강의했고, 수감 기간 동안 독서에 열중해 554권의 책을, 1856년에 505권의 책, 1857년애 385권의 책을 읽었다. 고향에 돌아온 후 3년간 약 1500권의 책을 더 읽었다고 하니 독서광이라고도 부를만 하다. 요시다 쇼인은 학문은 곧바로 정치와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공부의 장을 정치토론의 장으로 만들고 이를 장려하곤 하였다.

인구 100만의 도시 에도는 수많은 사숙과 독서모임이 유명학자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사무라이들은 한학, 난학, 병학, 의학 등을 공부하였고, 이런 모임에서는 정치 얘기가 벌어졌다.

"현재 일본 사회가 국제적인 마인드를 중시하고 아시아와의 협력을 중시할 때는 료마가 곧잘 소환된다. 반대로 일본의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아시아에 대해 날선 자세를 보이는 정치세력은 요시다 쇼인을 즐겨 소환한다. 쇼인은 강렬하고 어둡지만 료마는 명랑하고 밝다." p.166

역사 인물을 지금의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은 다들 똑같은것 같다.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는 사후 우상화되었다. 메이지 정부에 반란을 일으킨 역적임에도 나라의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서구화를 추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발생하는 민족적 상실감을 사이고를 통해서 만회하려고 했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양명학과 주자학을 배웠다. 20세 무렵 공부 모임에서 주자학과 양명학의 대표적 고전을 학습했는데, 여기에는 역시 오쿠보 도시미치도 있었다고 한다. 사이고는 사숙을 열어 젊은이들을 가르쳤고, [한비자], [근사록], [자치통감강목] 등의 책도 반복해서 읽었다.

유학을 비롯한 학습활동이 활발해지고, 신분보다는 개인적 능력이 지위를 결정하면서 하급 사무라이 출신의 리더들이 정치적으로 대두되었던 것이다. 오쿠보는 왕정복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사이고가 무력 동원의 수훈갑이라면 그는 정치공작 면에서 일등공신이었다. 쿠데타 세력은 '유신'을 표방했다. 700년간 계속된 사무라이 지배를 무너뜨리고 신분제를 혁파하고 서양화를 추구하였지만, 유신으로 천황에게 대권을 돌려주었다.

책을 읽고 학습을 한다는 것은 사상적 기초를 튼튼히 하고, 국제 정세를 꿰뚫어볼 수 있는 시야를 확대할수 있다. 봉건제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커다란 변혁의 순간에도, 오도가도 못하는 코로나 정국에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 이 도서는 21세기북스의 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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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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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인데, 이번에 독서 동아리에서 마침 이 책을 선정했다. 교정 교열을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해 온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업무에서 관련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내가 아는 것은 확인을 하고, 내가 몰랐던 것은 다시 공부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은 함인주라는 작가와 주고받은 글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한 축에서 진행되고, 또 한쪽에서는 문장을 다듬기 위해 알아야 할 문법적 용례들을 설명한다. 나도 회사에서 직원들의 글을 교정하고 새로운 문장으로 바꾸거나 빨간 색으로 표시해서 넘기곤 한다. 그럴 때 한 번씩 듣는 말이 '굳이 이렇게 고쳐야 하나요?'이다. 즉, 그렇게 바꾸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는 문장 아니냐는 것이다. 보통은 그 분야의 사람들끼리만 알아듣는 단어를 사용해서 일반 사용자들에게 불친절한 문장을 쓰거나 사소한 맞춤법조차 신경 쓰지 않은 품격 없는 글을 보곤 한다. 교정을 해서 보내면 적어도 다음번에는 사소한 맞춤법 정도는 신경 써서 써 보내면 좋으련만. 아직은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별히 몰랐던 것을 처음 알게 된 내용은 없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제시된 비문을 직접 수정해보면서 읽었다. 저자가 교정한 문장과 조금 다른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동일했다. 이 책을 나처럼 늦게나마 읽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비문을 직접 교정해 보는 것도 좋겠다.

관형사 '모든'으로 수식되는 명사에는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 '-들'을 붙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 '무리'나 '떼'처럼 복수를 나타내는 명사도 마찬가지다. 이미 복수형을 하고 있는데 뭐 하러 '-들'을 또 붙인단 말인가. p.29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고 엉뚱한 자리에 끼어들어서 문제가 될 뿐이지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낱말이나 표현 같은 건 없다. p.47

블로그나 인터넷에 글을 쓸 때는 거의 퇴고를 거치지 않고 그냥 업로드해 버리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한 번 더 확인하고 업로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글은 나의 얼굴이다. 저자가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이라고 했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하다'의 활용형인 '대해(서)'나 '대한'만큼 문장 안에 자주 등장하는 낱말도 드물다. 문제는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까지 무슨 장식처럼 덧붙인다는 데 있다. 더구나 '맞선', '향한', '다룬', '위한' 등등의 표현들로 분명하게 뜻을 가려 써야 할 때까지 무조건 '대한'으로 뭉뚱그려 쓰면 글쓴이를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p.66-p.67

'-들 중 한 사람, -들 중 (가운데) 하나, -들 중 어떤'도 그렇다.

그녀는 전형적인 독일 여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정형적인 독일 여자였다. p.78

'가장'이라는 부사로 수식할 수 있는 대상은 하나뿐이다. 최고를 뜻하니 둘이 될 수 없는 건 당연하잖은가. 하지만 워낙 자주 쓰다 보니 '가장'이 여럿을 수식하는 표현이 이젠 입에도 익고 눈에도 익어버렸다.

그는 내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한 명이다.

그는 개 가장 친한 친구다. p.79

'-같은 경우'는 아래와 같이 바꾸는 것이 자연스럽다.

나 같은 경우에는, 중국 같은 경우는, 그 같은 경우

내 경우에는, 중국의 경우는, 그 경우에

나는, 중국은, 그는 p.85

'-에 의한, -으로 인한'도 '때문이다', '비롯되다', '빚어지다' 따위로 바꿔 쓸 만하다. '-에'와 '-으로', '-에'와 '-로'도 구분해 써야 한다. 자주 틀리는 조사 중에는 '-에'와 '-에게', '-에게서'가 있고, '-(으)로부터' 등이 있다. 책에는 다양한 예문이 나오는데, 스스로 수정해 보면 어떤 문장이 자연스러운지 알게 된다.

한때 나는 외국인 유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그때 외국인들이 자주 틀리거나 어려워하는 문법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이제는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도 그걸 어려워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외국어 실력을 키우느라 우리글과 말은 한쪽으로 제쳐 두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다. 한국어는 순우리말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한자어도 우리말이고, 외래어도 우리말이다. '시키다'를 붙이는 많은 낱말들이 한자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한자어의 정확한 뜻을 몰라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지 궁금하다.

잘 쓴 글은 읽기 쉽고 내용이 명확하게 전달된다. 요즘 우리는 말보다 글을 더 많이 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짧은 문장이라도 정확하고 분명하게 내용을 전달하려면 몇 번을 생각하고 살펴야 한다. 의사소통에 '말'만큼 '글'이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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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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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사피엔스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소통할 수 있고 정보 전달이 빨라져 정보 격차가 점차 해소되는 등 편리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지는 사람이 늘어나며 등장한 용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혜가 있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어 포노 사피엔스(지혜가 있는 폰을 쓰는 인간)라고 부른데서 나왔다." p.25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지만 읽어볼 생각을 안했었기에, 나는 포노 사피엔스가 최재붕 교수가 만든 단어인 줄 알았다. --;;

포노 사피엔스라는 명칭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스마트폰이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켰다는 것을 뜻한다. 스마트폰은 많은 것들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기고 있다. 2022년에는 전 인류의 80퍼센트가 스마트폰을 쓰게 될 거라고 하는데, 2020년을 마무리하는 지금 주위를 살펴보면 이미 그 시기에 와 있는 것 같다. 팬데믹으로 인해 학교와 직장이 온라인화되면서 그 시기를 앞당긴 것이다.

저자는 스마트폰이 만든 가장 큰 변화를 '인류의 생각'을 바꾼 것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뒤 사람들이 보는 정보가 달라지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또한 정보 전달 체계도 변화하여 언제 어디서든 정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기에게 즐거움을 주는 정보만을 보고 복제하게 되었다. 이것은 좋은 의미에서는 새로운 도덕적 기준이 마련되고 새로운 상식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요즘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뉴스' 또한 이러한 패러다임으로 인해 확산되고 있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인터넷과 컴퓨터를 경험하지 못한 기성세대와 태어나면서부터 기술적 이해는 물론 인터넷문명에 익숙한 밀레니얼세대 사이에 생각의 차이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자녀들을 보면서 고민하는 부모세대는 그로인해 일이나 공부를 할 시간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며, 내 자녀만큼은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 인식은 사회적으로 확장되어 사회적 규제로 나타나는데, 정작 스마트폰 이용자는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하며 새로운 비즈니스시장으로 부각되었다.

"새로운 변화는 항상 두 가지의 관점을 만들어냅니다. 엄청난 속도의 신산업이 만들어진 반면에, 게임 중독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등장한 것이죠. (중략) 특히 자아 형성이 미흡한 청소년에게는 더욱 큰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게임산업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규제 대상으로 지목됩니다.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에 더 민감한 우리 사회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p.73

사회적 규제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시대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확인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이해하지 못한 것들 중 하나는 '디지털 문명의 세계관'이라고 한다. 밀레니얼세대에 이어 나타난 z세대는 디지털 소비 문명에 더욱 익숙해질 것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기존 질서는 파괴되었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스마트폰이 만들어내는 디지털문명에 익숙해진 이들이다. 저자는 스마트폰의 부정적인 면이나 부작용이 떠오를 때마다 그만큼 좋아진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와 함께 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19년 3월에 나온 비교적 최신 서적임에도 벌써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많았다. 그만큼 세계가 빨리 변하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생각했든 그렇지 못했든 간에 이미 디지털 세계는 현실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이 일으킨 혁신이 불과 10여년 전의 일이라면, 지금은 코로나가 바꾼 새로운 세계를 마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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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 심윤경 장편소설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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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 작가의 글이라는 이유로 이 책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주인공 동구와 세상 아이들에게 가정의 행복을 위해 묵묵히 참고 견뎌야 한다고 말했다면, 이 책은 설이를 통해 세상을 향해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로 봐달라"고 소리친다.



설이는 예쁜 옷을 입고 바구니에 담겨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구출된 아이다. 설이는 그 잔인한 장면을 자신의 의지로 살아나왔다고 기억한다. 지금은 왜곡된 기억. 그 기억의 어디까지가 진실일걸까?

원장님이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나를 꺼낸 그 일에는 사람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중요한 지점이 있었다. 그때 내가 운 덕분에 반대로 세상은 부끄러움을 조금 덜었다는 점이다. 예쁜 옷을 입은 아기가 음식물 쓰레기통 속에서 얼어 죽은 채 발견되었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좀 더 부끄러운 곳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예쁘고 아무 생각 없는 별이 되는 대신 피곤하고 부끄러운 유기아동이 되어서 세상의 몫이 되어야 마땅할 창피함을 대신 짊어졌다. 과연 이 바보 같은 세상은 그런 생각을 해보기나 했을까? 자기들이 나에게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 알기나 하려는지. 세상이 나에게 그 빚을 갚을 리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나는 또 다시 그때와 똑 같은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을 듣지 않으려는 목구멍을 재촉해 소리를 쥐어짜내야 했다. 두터운 무감각의 장막을 뚫고 지겨운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질러야 하는 것이다. 창피함은 또 내 몫이 될 것이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P.26~27

설이는 세번의 파양을 겪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다. 지극정성으로 돌봐주는 이모가 있고, 비록 요양병원에서 살고 있지만 설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원장님도 있다. 설이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도록 공부를 하고 또 했다. 워낙 머리가 좋은 아이기도 했지만, 필요가 행동을 견인해내듯 노력을 통해 이뤄낸 성과였다.

설이가 아프거나 파양이 되어 마음의 병이 생겼을 때마다 늘 힘이 되어주는 곽은태 선생님은 설이가 좋아하는 의사선생님이다. 3번이나 파양되어 왔지만 곽은태 선생님의 집으로 입양을 가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할 정도이다.

“네, 감기도 그렇잖아요. 어떤 감기는 입원까지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그냥 잘 쉬면 낫기도 하니까요. 무엇이 필요한지는 설이가 가장 잘 알 거예요. 쉬고 싶으면 쉬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하고, 설이가 하고 싶은대로 두시면 돼요.”

“알았지 설아? 언제나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것, 제일 하고 싶은 것을 해라.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야 몸도 마음도 튼튼해.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힘든 줄도 모르고 아픈 것도 이겨내거든.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란다. 알겠지?” p.16

나중에 곽은태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나를 되돌아보았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설이가 보는 곽은태 선생님이면서 내 아이에게는 시현이가 보는 곽은태 선생님일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나쁜' 어른이 등장하지 않는다. 어떤 점에서는 모두들 '선한' 행동을 한다. 보육원의 원장님이 그러했고, 곽은태선생님이 그랬다. 우상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그랬고, 시현이 엄마가 그랬다. 설이를 입양하려했던 양부모님들도 그랬다. 그들은 모두 '설이'를 '진짜 내 아이'처럼 보지 않았다. 그랬기때문에 설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했으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내었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방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곽은태 선생님은 아들의 그 멋진 공연을 보러 오지 않았고 시현이 엄마는 그런 공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울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바닷가재 레스토랑에서 시현이 바닷가재가 맛없다고 삐죽거리는 것이 생각났다. 그들은 각각 최고의 것을 눈앞에 놓고도 그건 하나도 좋은 게 아니라고 손발을 내저었다. 가족이란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세상이다. p.177

가족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족'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내가 아프고 힘들 때 가족만큼 힘이 되어주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외동으로 키우는 아이를 보며 형제가 없어서 외롭겠다고 혀를 차는 어른들을 많이 만난다. 정말 그럴까? 그들은 가족이 있어서, 형제가 많아서 외롭고 쓸쓸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까? 즐겁고 행복한 일도 함께 나누면서 그렇게 하하호호 웃음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을까?

입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아이들에게 가족은 '힘'이 되어주지 않는다.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영재원으로,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래'는 아름다울 것이라고, 행복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물론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는 그런 아이들이 상류층이라는 이름으로 살 확률은 높다. 설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해주던 이모도 '문제집'을 풀게 하고 학원을 보내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지만 결국 설이는 그 모든 것을 마다하고 자신만의 방법대로 살아가기로 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설이'보다는 '시현이'에게 더 눈길이 갔다. 설이처럼 당차게 자기 인생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시현이의 부모처럼 살고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아이에게 모든 것을 다해줄 수 있는 능력을 부러워할 지도 모른다. 정작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작가는 진짜 부모의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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