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 수 없는 미래 - 황폐한 풍요의 시대,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방식을 모색하다
마이클 해리스 지음, 김하늘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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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장 쓰레기언덕으로 시작한다. 산불이 나서 연기 기둥이 치솟고 재가 쏟아지는 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저자는 세상이 타들어가는 동안에도 태평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회상한다. 그만큼 무뎌졌기 때문일까?

하지만 점점 괴리감을 느껴가던 저자는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 도파민 시스템, 인류의 생존을 위해 성장만이 답이라는 주장 등과 같은 ‘소비문화’가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이클 해리스는 먼저 ‘성장'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날 것을 이야기한다. 1972년 MIT 연구팀이 발간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의 공동저자인 요르겐 랜더스를 찾아간다. 잘사는 국가에서 GDP가 상승하더라도 서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으며, 부유층에만 이득을 안겨주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도 오히려 소비자의 수요가 늘어나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 사이의 격차는 벌어지기만 한다.

그런가하면 우리 뇌의 도파민 시스템도 소비문화를 자꾸 강화하게 하는 요인이다. ‘광고’를 통해 필요해서 소비하는 것이 아닌 욕망에 의한 소비로 변질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솔직히 인플루언서들의 광고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지만, 나의 소비패턴을 읽고 그것을 사라고 부추기는 수많은 광고를 만나다보면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음에도 소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해리스는 그런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고 생각하는걸까? 2부로 넘어가면 수제, 숭고, 돌봄을 통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를 이야기한다. 소비가 아닌, 소비로 나를 정의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찾아간다.

손으로 자작나무 카누를 만드는 존 가드너.

그를 통해 직접 물건을 만들고 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물질에 대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소비문화는 우리를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의 지배자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저 거대한 자연의 아주 작은 일부임을 깨닫고 보면 물질과 소비에 더이상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이클 해리스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 세대가 겪어야 할 돌봄에 대해 생각할 것을 주문한다. 서로 보살핀다는 특징이 인간 문명을 정의할 수 있으며 앞으로는 더욱 더 확산될 것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물질과 소비 문화에 빠져 잊어버린 채 살고 있던 삶의 이야기에 대해 주목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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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들어가도 될까요? 똑똑그림책 3
녠왕판 지음, 쑨신위 그림, 강현욱 옮김 / 지구의아침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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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용 그림책인데, 한장 한장 넘겨보다 슬그머니 웃음이 지어졌다. 내용을 보면 전개가 뻔한데, 처음 거절 당했던 늑대의 활약이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제목이 좀 평이한 게 아쉬운 그림책이다. 


요즘 유행하는 모래 사장에서 사진촬영하기 기법이라고 해도 될까? 표지 그림 말이다. 


제일 먼저 늑대가 양들이 모여 있는 곳을 두드린다. 엄마 양은 양들에게 늑대는 들여보내서는 안된다고 당부를 하고 외출을 한다. 아기 양들은 아마도 절대 늑대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많다. 슬픈 표정으로 양들에게서 멀어지는 늑대의 모습 옆으로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들을 바라보며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본다. 뒷페이지를 넘겨보지 않아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미운오리새끼는 당연히 백조들에게 받아들려지지 않을 것이다.


이어지는 페이지에서는 토끼와 거북이, 기린과 사슴, 돼지와 멧돼지, 코끼리와 하마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의 대화는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능하다. 이 그림책은 전체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그림 아래에 늑대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늑대는 양들에게 거부당한 뒤 불을 피우고 차도 마시고 훌라후프도 하며 혼자 논다. 


다른 동물들의 이야기가 끝난 후, 곰이 찾아온다. 곰은 누구를 찾아갔을까? 바로 다른 동물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당한 동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들은 당연히 괜찮다고 들어오라고 한다. 모두 함께 놀면 더욱 즐겁고 재미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악어와 쥐도 오는데, 이제 그들이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동그라미를 그어놓고 그 안에 모여있던 동물들은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까? 혼자 놀던 늑대가 그들에게 가서 현명한 조언을 한다. 


동물들이 너와 내가 다른 이유를 댈 때 우리는 그것이 그리 큰 차이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사는 곳이 다르다고, 종교가 다르다고, 직업이 다르다고, 성별이 다르다고, 우리는 그들과 나 사이에 선을 긋는다. 이곳을 넘어오면 절대 안돼. 어린 시절 책상에 줄을 그어놓고 짝지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가 잘 아는 동화에서의 주인공들을 통해 익숙한 이야기에서 그것이 편견임을 인지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진행되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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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달걀의 비밀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101
하이진 지음 / 북극곰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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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달걀의 비밀, 이 그림책을 나는 자꾸 4번 방의 비밀로 읽었다. 표지 그림에서 보여지는 닭들의 스크림같은 얼굴, 과연 4번 방, 아니 4번 달걀의 비밀은 무엇일까? 


세 친구는 좀은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그림을 보니 보통 좁은 집이 아니다. 지나치게 좁은 집이다보니 날개를 움직여도, 입을 벌려도 배변활동을 해도 서로에게 영향을 끼칠 정도이다. 그래도 이들에게는 즐거운 시간이 있었는데 바로 달걀을 낳는 일이다. 


좁은 집에서 서로 싸우고, 밀치고, 마음에 상처가 갈 소리들을 턱턱 내뱉았던 그들치고는 이 달걀을 바라보는 눈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별 생각 없는 이들이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바로 그들의 알들이 항상 이름이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바로 '4'이다. 


4번 달걀? 


그들은 달걀이 항상 3개인데도 왜 4인지, 4시가 아니라 다른 시간에 낳는데도 왜 4인지, 혹시 암호가 아닌지 도대체 왜 4라는 이름을 항상 달고 있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보통 이야기 전개를 보면 누군가의 의문이나 각성에서부터 클라이막스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세 마리 닭들이 눈치 챈 이 비밀은 무엇일까? 그때, 그들의 집으로 부들부들 떨며 들어오는 검은 닭이 있다. 그는 4번 달걀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비밀을 아는 자, 쫓기는 자, 그리고 다시 잡혀가는 자... 


이 그림책은 짧지만 마치 스릴러물을 보는 느낌이 들게 한다. 4번 달걀의 비밀을 알고자 하는 닭들과 그 비밀을 알고 있는 닭의 출현, 그리고 다시 사라짐. 그리고 비밀을 아는 자가 다녀간 후 열린 문. 


과연 문밖으로 나간 닭들은 무엇을 보게 될까? 집밖으로 나갈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그들이 모험을 떠난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처음 마주친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자신들이 집이라고 여겼던 그 공간은 집이 아니라 농장이었다.


모두 4번 달걀을 낳고 있는 농장에서 그들은 탈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탈출 후 그들이 마주친 바깥 세상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곳과 다른 곳임을 알게 된다. 이들은 과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4번 달걀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한 편의 모험 애니메이션을 본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4번 달걀의 비밀을 설명해주는 글이 나온다. 나도 몰랐다. 4번 달걀이 그런 의미였는지. 


1번 달걀은 자연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자유롭게 사는 닭이 낳은 알이고 2번 달걀은 돌아다닐 수는 있지만 비존은 닭장에서 낳은 알, 3번 달걀은 4번보다는 넓지만 여전히 좁고 답답한 닭장에서 사는 닭이 낳은 알, 그리고 4번 달걀은 A4용지보다 좁은 케이지에 갇혀 사는 닭이 낳은 알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달걀의 96%가 해당한다고 하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 그림책을 통해 나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해야 할 아니 바꿔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자란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분명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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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방 찾기 - 세상 모든 먼산이들을 위한
오조 지음 / 마리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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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기대 없이 책을 펼쳤다가 마음을 홈빡 빼앗긴 책이다. 독서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책이 아닌가 싶다. 책 표지에 나온 '먼산이'는 자기를 느리고 약하다고 소개한다.  


먼산이는 누구보다 작게 태어났다. 생긴 모습도 그리 예쁘지 않다. 사람들은 먼산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느리고 약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엄마는 "너의 작고 귀여운 눈은 항상 생각에 잠긴 듯 먼 산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것 같아."라며 특별하다고 이야기해준다. 세상 밖이 궁금한 먼산이에게 엄마는 아직 세상은 위험한 곳이라며 준비가 되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언젠가 바깥으로 나갈 날을 기다리는 먼산이. 그러던 어느날, 엄마는 먼산이에게 멋진 나비넥타이와 모자를 씌워 주며 이제 세상 박으로 나갈 때가 되었다고 알려준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먼산이는 작가가 병원에서 만난 어느 다운증후군 남자아이를 생각하며 만들어낸 캐릭터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먼산이가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의 마음 속에 숨겨둔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말을 읽은 후 다시 책을 펼쳐 보니, 아, 그랬구나 싶은 장면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이건 우리의 이야기였다. 


먼산이는 막상 세상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웠다. 집 안에 있으면 아늑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지 않아도, 내 방에서 세상을 상상만해도 재미가 있는데, 굳이 나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한다. 여기서 이렇게 주저앉아버리면 우리는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도퇴하고 만다. 늘 기다리던 순간이었는데 왜 이리 겁이 날까? 하지만, 이미 깨지고 부서진 나의 집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먼산이는 새로운 나의 방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우리가 세상 박으로 나와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어며 살아가는 것은 '여행'과 같다. 때로는 낯선 곳에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을 보며 불안해하기도 한다. 때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주저앉기도 하고 때로는 신나게 달려가기도 한다. 


먼산이는 새가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듯 그렇게 세상 밖으로 여행을 떠난다. 미련의 방에서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과거로 가득한 방에서 살아가는 미련씨를 만나고, 쇠사슬의 방에서는 나를 꽉 묶어 놓은 쇠사슬을 끊고 앞으로 나아간다. 개미의 방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찾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먼산이가 거쳐가는 곳은 모두 이렇게 우리 삶에서 우리가 부딪히거나 만나게 될 고난과 장애물들이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을 깨고 나와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먼산이는 그런 방들을 깨고 나와 드디어 바다로 나아간다. 지금까지 지나온 방들과 달리 이제부터는 나만의 방을 찾아갈 시점이다.


바다는 아무 일도 없는 듯 평온하다가도 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요동치기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기도 한다. 세상 밖을 여행하는 우리가 만나는 세상도 바다와 같다. 


바다에서 만난 문어는 먼산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의 멋진 모습을 발견하려면 나의 바닷속에 들어가 봐야겠지요? 용기를 내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그 안으로 풍덩 뛰어들어야 해요. 다른 사람을 알아 가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그 사람의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상대방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없어요."라고. 먼산이는 친구를 알고 싶으면 친구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관심을 표현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아가는 먼산이 앞에 나타나는 꼭대기의 방, 거울의 방, 애벌레의 방을 차레차례 지나가며 성장한다. 청소년기의 고민을 풀어나가는데 길잡이가 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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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미술관 - 당신의 기본 권리를 짚어주는 서른 번의 인권 교양 수업, 제10회 브런치북 특별상 수상작
박민경 지음 / 그래도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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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과 정치학을 공부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했던 저자는 그림에서 인권을 보기 시작했다. 들라크루아의 <키오스 섬의 학살>은 그리스 독립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프랑코 독재가 자행한 끔찍한 국가 폭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 저자는 인권을 어렵지 않게 설명하기 위해 그림 이라는 매개체를 선택했다. 


이 책은 인권의 주요 개념을 여성, 노동, 차별과 혐오, 국가, 존엄 등 크게 다섯 개의 카테고리로 나눈다.


제 1 부 여성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세계인권선언> 제 1 조 -


고문하는 바토리 백작부인

그녀는 정말 희대의 살인마였을까?

헝가리 화가 이슈트반 초크의 <고문하는 바토리 백작부인>이라는 작품의 배경은 '피의 백작부인'이라는 잔혹하고 무서운 이야기이다. 바토리 백작부인은 그녀의 젊음과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처녀의 피를 마시고 그 피로 목욕도 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 잔혹한 전설은 자극적인 소재와 비극적인 결말 덕분인지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어졌고 대부분의 작품에서 바토리 백작부인은 퇴폐적이고 욕망에 사로잡힌 주인공으로 묘사된다. 


저자는 중세 유럽이야 마녀사냥이 판을 치던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시대였다고 해도 오늘날에도 그런 시선으로 여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면 바토리가 마녀사냥의 타깃이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소문만 무성하고 실체가 없는 이야기들을 엮어서 한 여성을 미치광이이자 희대의 살인마로 만든 것은 아닐까? 문제는 여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편견이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있다는데 있다. 


'여자는 아름다워야 한다', '여자는 남자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여자가 잘나가면 꼴사납다'와 같은 400여년 전의 시선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여자는 그 정도 돈만 받고 일해도 되지', '여자가 일해서 버는 돈은 반찬값 정도나 되지', '남성 관리자 말을 잘 들어야지', '여자는 감정적이고 지능이 부족해서 선거에 참여할 수 없어' 이제 '여자는 ~해야 한다'라는 시선을 거두어들일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p.19)


그림을 매개체로 하여 저자는 인권을 풀어낸다. 그리고 다음에는 관련 있는 키워드를 설명한다. <고문하는 바토리 백작부인> 그림 뒤에는 '마녀사냥'과 '성차별'을 소개한다.  


제 2 부 노동

모든 사람은 노동 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하여 휴식과 여가의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 제24조-


<볼가 강의 노동자들>은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이 볼가 강에서 배를 끌어내고 있는 인부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노동자들의 얼굴은 고단함으로 가득하고 그 사이에 아직도 10대로 보이는 소년도 힘겹게 일을 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노동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노동은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존엄한 가치를 가진 권리이다. <세계인권선언> 제23조와 제24조는 노동의 권리를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일, 직업의 자유로운 선택, 정당하고 유리한 노동조건, 그리고 실업에 대한 보호의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노동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하여 휴식과 야가의 권리를 가진다.' 한국의 노동 현실은 이러한 노동의 권리를 지키고 있는가?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한 가슴 아픈 사고들을 떠올려 보라. 저자는 이러한 노동의 권리를 국가가 헌법으로 보장해주기를 촉구한다.


제 3 부 차별과 혐오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세계인권선언> 제22조-


스웨덴 화가 다비드 클뢰거 에렝스트랄의 <흑인과 앵무새와 원숭이>는 평화로운 미소를 띠고 좋은 옷을 입은 흑인 소년의 행복한 모습이지만, 그 이면을 알면 그림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즉 이 그림이 그려진 17세기 유럽에서는 동물원이 유행처럼 번졌는데 그림 속 흑인 역시 수집된 동물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잇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물건처럼 매매 대상이 되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모두 사라지고 만다. 수백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저항하고 희생을 했어도 여전히 무고한 희생자들이 나오고 차별은 멈춰지지 않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그 선언의 적용 대상을 '모든 사람'이라고 명시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제 4 부 국가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세계인권선언> 제3조-


한국에서의 학살_파블로 피카소

피카소는 한국과의 인연이 있는 화가이다. 그가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은 1951년 미군이 개입해서 발생한 황해도 신천 양민 학살사건이다. 그림의 왼쪽에는 약자인 여성, 노인, 어린아이들이 배치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총칼로 무장한 남성들이 있다. 무방비상태의 한국인을 제국주의의 상징인 미군이 위협하고 있는 모습(p.194)이다. 피카소가 그린 작품임에도 2022년에서야 한국에서 최초로 전시가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메두사의 땟목>이라는 테오도로 제리코의 그림을 소개한다. 이 그림은 메두사호라는 실제 군함의 난파 사건과 당시 버려진 열 다섯 명의 생존자의 실화를 담은 그림이라고 한다. 메두사호는 국가가 관리하던 군함이었음에도 고위직 장교들만 살리고 나머지 선원들과 승객을 버렸던 것이다. 이후 열린 재판에서도 고작 3년 형만이 선고되었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보면 한국사람이라면 아마도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까?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확인하고 보장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재난 피해자들을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하고, 국가는 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당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국가의 책임은 무엇인가? 이는 비단 세월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 이후로도 굵직굵직한 사건 사고들이 있다.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국의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가 국가일 이유가 있는가? 그 선봉에 서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치인들의 행태가 토악질이 나올 것 같다. 


제 5부 존엄


이 선언의 어떠한 규정도 어떤 국가, 집단 또는 개인에게 이 선언에 규정된 어떠한 권리와 자유를 파괴하기 위한 활동에 가담하거나 또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아니 된다.-<세계인권선언> 제30조-


세계인권선언 제23조에서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나 첫번째 조항에서는 그에 앞서 '모든 사람의 존엄함'을 강조한다. 직업 선택의 권리와 존엄권 모두 중요한 권리이다. 그러나 제30조에 따르면 여기에 나열된 권리를 파괴하는 활동에 가담하면 그것은 권리가 아니라고 명시되어 있다. 어떠한 환경에서든 인간의 존엄은 가장 중요시되어야 한다. 


확실히 글로만 표현되어 있던 조항들을 그림과 연결지어 설명하니 이해가 잘 된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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