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이불장 키다리 그림책 69
양선하 지음 / 키다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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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할머니집에 가면 이 그림책에 나오는 멋진 자개장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의 할머니집에 있던 자개장은 우리 아이의 할머니인 남편의 어머니와 나의 엄마집엔 없는 물건이다. 


자개장은 이제 공예작품 전시장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그림책이 반가웠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꽤 낯선 그림책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어쩌면, 옛날 책가도 보듯이, 옛날 병풍 보듯이 그렇게 볼지도 모른다. 


꽤나 화려한 이 자개장에는 온갖 동식물이 가득하다. 그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면 자개장보다 더 화려하고 울긋불긋한 이불과 베개를 만날수 있다. 내가 어렸던 그 시절 할머니의 자개장과 자개 화장대에는 할머니의 물건이 꽉 차 있었다. 그걸 다시 생각나게 하는 그림책이다. 채우고 있었다.


자개장보다 더 화려한 자개장 안쪽을 들여다보자. 알록달록한 이불과 배개가 가득한데 화려한 베갯모가 눈길을 끈다. 


아이들의 눈에는 이 이불장 속의 이불과 베개가 얼마나 신기할까? 거기다 이불과 베갯모에 수놓아진 다양한 문양은 그 상상력을 더 크게 확장시켜준다. 아이들은 십장생도, 영물인 호랑이도, 화려한 꽃과 식물들도 즐거운 놀잇감이다. 


이 그림책을 보고 난 후 할머니의 이불장을 열어볼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텐데, 요즘은 이런 이불장도, 이불장 안에 고이 모셔둔 전통 이불과 베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많이 아쉽다. 그림책으로나마 만나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가끔은 오래 전 물건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더 싸고 더 간편하고 더 가벼운 것들로 채울 수 밖에 없는 내 빈약한 공간에 언젠가는 추억과 그림움을 함께 채울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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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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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p.7)

전직 빨치산이었던 나의 아버지 고상욱 씨는 이십년 가까운 감옥살이를 마친 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초짜 농부가 되었다. 사회주의자답게 의식만 앞선 농부였던 아버지는 어머니로부터 '문자 농사'라 구박을 받으면서도 농사를 '글'로 배운다. 그러니 번번이 농사는 망했다. 아버지는 감옥살이를 마치고 현실로 복귀했지만 시도때도 없이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시작된다. 이 책은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아버지의 장례를 어떻게 치룰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장에는 하나 둘 사람이 모여든다. 장례식장 사장인 황사장은 '사촌오빠의 동창이자 아버지를 이곳으로 모시자고 극구 주장한 아버지의 정치적 동료인 박동식 씨의, 피를 나누지는 않았으나 피를 나눈 것과 진배없는 절친한 동생'이다. 어제 처음 만난 '박동식'씨는 자기가 내 아버지를 삼촌으로 모셨으니 '나'도 자기를 오빠로 모셔야 한다고 한다. 아버지와 연관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거나 친척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나'의 아버지 '고상욱'씨에 대해 하나둘 알아간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죽었다. 장례식을 준비하고 치루는 동안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된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때문에 연좌제에 묶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의 가족 또는 친척들도 그로 인해 고초를 겪을 것이다. 그 아품의 역사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하나 둘 밝혀진다. 아버지와 평생 원수처럼 살았던 작은아버지에게도 그 못지 않은 아픔이 있었다. 장례식장에 끝까지 안 올 줄 알았지만, 혈육의 죽음 앞에 많은 것들이 사라지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사투리가 참 정겨웠다. 그래 사투리는 이렇게 써야 제맛이지. 표준어로는 잘 느껴지지 않는 감정들이 사투리에 묻혀 살살 풀어진다. 이야기는 3일 간의 장례식 기간에 일어난 일이다. 문득 내 아버지의 장례식이 생각났다. 나는 그때 울지 않았다. 아버지와 딸 사이에 그리 애틋한 정도 없었고, 평소 공감하지 못하는 성격상 아버지의 장례였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장례식장을 찾아 온 친척이, 지인이 대성통곡을 해주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저들과 아버지 사이는 어떠했을까?'를 생각했다. 작가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온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를 이해한다. 나도 그랬을 수 있을까? 

아버지의 이념이, 이데올로기가 실제로는 '현실'이었다고 한다. 어떤 이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내 삶이고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는 것같다. 나의 대학 시절만 해도 이런 저런 노선과 운동으로 꽤나 시끌시끌했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우리는 잘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삶으로서 부딪치지 않았으니 그것이 껍데기가 아니었을까?

이 책은 한편으로는 무거운데 한편으로는 즐겁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읽나보다. 단숨에 읽을만큼 속도가 붙는 책이다. 너무 어린 친구들은 오히려 이해 되지 않는 내용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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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마음 - 인간관계가 힘든 당신을 위한 유쾌한 심리학 공부
김경일.사피엔스 스튜디오 지음 / 샘터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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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많이 보지는 않지만, 가끔 보는 주제가 동일하다 보니 추천되는 영상들도 늘 어느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중에서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 동영상도 그렇게 해서 보게 되는 영상 중의 하나이다. 참 말씀을 잘하시고, 귀에 그리고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받았을 때 아무 고민 없이 손에 들었다.


나는,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들을 때 그들이 [마치 이것을 안 하면 큰일 난다]거나 [이걸 하는 네가 최고야]라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나의 불안감을 고조시켜 장사하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 책 [타인의 마음]의 첫 꼭지는 '누군가를 조종하는 사람의 심리'이다. 


가스라이트, 그루밍, 생각의 무기력, 의지 거세 ---> 주제마다 이런 해시태그를 붙여 놓아서 그 주제가 다루는 사회적 현상이나 사회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단어를 확인하게 하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음. 주제와 중심 단어를 알고 읽는 셈이다.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완뱍히 지배하는 것을 가스라이팅이라고 합니다."(p.20) 심리학에서는 '그루밍'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쓴다고 한다. 가스라이팅이나 그루밍은 모두 상대에게 '너는 이런 사람'이라는 암시를 준다. 이 암시는 대부분 부정적인 암시로 상대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회사 내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해 봐야 안 된다는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옮겨놓는다. 퇴직을 앞두고 있거나 커리어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이 경험 많은 사람, 사람 좋은 선배의 얼굴을 하고 후배들에게 부정적인 암시를 한다. 당연히 이들은 변화나 새로운 시도를 싫어한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나니까 이렇게 알려주는 거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친절로 포장한 말들 속에서 가스라이팅은 의외로 부드럽게 일어난다"(p.23)고. 정말 경계해야 할 일이다. 

어떤 지식을 알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그 지식이나 경험을 언제 했는가까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을 '소스 메모리'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이 소스 메모리이기도 하다. 이걸 이용해 가스라이터는 기억을 능숙하게 편집한다. "네가 내 말을 잘 들었을 때" 좋았다고 인식하게 하고 반복적으로 기억의 소스를 편집하여 상대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한다. 쓴소리와 가스라이팅을 구분할 수 없다면 그 말을 듣고 '뭘 해야겠다'는 대안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겠다'는 대안 없는 결론이 나온다면 가스라이팅을 의심해볼 만하다. 말하는 이가 의도를 분명히 전달하고 쓴소리를 하면 충고가 되지만, 감정을 드러낸 뒤 자기 입장을 합리화하면 가스라이팅 식의 대화가 되기 쉽다. (p.26~33 요약)

나는 첫 번째 주제에서 오랫동안 넘어가지 못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이 가장 흔하게는 연인이나 부부 사이, 혹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스라이팅은 어떤 특정한 사람이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라 누구나 자행할 수 있고,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데까지 생각이 이르지는 못했다. 짧은 내용이었지만 혹시 내가 직장에서, 사회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나를 기운 빠지게 하는 비관적인 사람의 심리

잦은 불행, 비관과 비판, 착한 얼굴 뒤 비관론자

비관은 성격이 아니라 습관에 가깝다고 한다. 심리검사에서 비판적 사고는 사실에 기초해서 타당한 대안을 선호하는 경향이지만, 비관은 항목 자체가 없다. 즉 비관은 출생 이후 형성된 습관이라는 것이다. 

"비관적인 사람은 결과가 어떻든 무작정 안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비판적인 사람은 '이렇게 하면 이런 과정을 거쳐 결과가 안 좋을 거야'라고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사람"(p.70)이라고 한다. "비관적인 사람은 지금 주어진 상태, 그다음의 과정,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의 노력, 이 세 가지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이 '해 봐야 안 돼'라고 말합니다. 반명, 비판적인 사람은 상태, 과정, 노력 등 여러 가지를 모두 고려한 뒤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어서 안 된다는 결론을 냅니다. 그래서 '비판적이다'의 반대말에는 낙관과 비관이 다 들어갑니다. 대책 없는 낙관과 대책 없는 비관은 모두 비판의 반대말인 것이지요."(p.70~71)


조직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도전하고자 제안하는 사람은 일정 부분 악역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악역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잔소리를 하는 사람과 쓴소리를 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잔소리는 주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을 때 듣고, 쓴소리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 듣는다. 그래서 지금껏 한 적 없는 새로운 것을 하자는 제안은 쓴소리에 해당한다. 조직에서는 이 두 유형이 모두 필요하다. 잔소리하는 사람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을 막아주고, 쓴소리하는 사람은 필요한 변화를 끌어낸다. "바꿔도 안 돼, 하던 대로 하자"며 편안함 뒤에 숨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착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그들을 욕하지 않는다. 욕하거나 비판할 일이 없으니 자주 만나고, 더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것이 착한 얼굴을 한 비관론자가 더 위험한 이유이다. 

사람들이 비관에 빠지는 이유를 저자는 '잦은 불행을 겪으며 자신의 비관적 예측이 맞았던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스스로 비관적으로 예측하고 최악의 자기 암시를 통해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한다. 


나르시시즘, 마키아벨리즘, 반사회적 인격장애, 정서 전이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크게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로 나눈다. 나르시시스트가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말에 의아했다. 그게 그렇게 나쁜 거야? 심리학에서는 자기애를 넘어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을 나르시시스트라고 하며,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관계가 있다면 끊어야 하는 사람 1순위라고 한다. 나르시시즘은 죄의식과 감정이 전혀 없는 사이코패스와 내 마음대로 사람을 조종하고 싶어 하는 마키아벨리즘과 함께 3대 인격 장애로 꼽힌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 잘나야' 하므로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저자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범죄로도 이어질 수 있어 격리되기도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멀쩡히 거리를 돌아다니므로 더 위험한 존재라고 말한다. 나르시시스트가 성취감을 느끼려면 '내가 잘했어야'하고 '남이 못했어야'한다. 그래서 자신과 대립하는 모든 사람을 나쁘다고 생각하고 또 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여론 선동하기도 한다. 

아, 여기까지 읽고 나니... 정말 위험한 나르시시스트들을 요즘 계속 보고 있다는데에 생각이 미쳤다. 특정 언론과 대립각을 세우고, 주변을 선동하여 고립시키고,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인간들 말이다. ---> 위험한 나르시시스트들... 반대되는 의견을 들어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릇된 생각이나 욕망에 물드는 자신을 경계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한다. 

칭찬 자린고비들을 위한 조언

과소평가, 의도하지 않은 칭찬, 자율성

사람들이 칭찬에 인색한 이유는 칭찬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칭찬하거나 칭찬받은 경험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하는 칭찬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얼마나 긍정적 감정을 느끼게 하는지 상상해보자. 칭찬이 어렵다면 그 또한 연습이 필요하다. 칭찬을 잘하는 방법은 그저 잘했다고 하지 말고,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면 구체적인 대화로 이어지기 쉽다. 또 상대가 의도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칭찬하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했을 때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언제 칭찬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을까? 그것은 칭찬을 많이 해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끌 만한 것이 있는데 바로 MBTI에 대한 것이다. 마치 MBTI가 만능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라 도대체 이 심리검사의 정체는 무엇인가 궁금했다. MBTI의 신뢰도나 타당도에 문제가 있음에도 이 심리검사에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데에는 게임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어쨌든 MBTI가 내 성격을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타인의 심리'를 알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 나가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저자가 말한 것처럼 '타인의 심리를 읽는 이 시간을, 내 입장이 아닌 그 사람의 관점에서 상대의 마음에 대해 다시 한번 들여볼 수 있는 계기'(P.303)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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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くて素敵なクラシック レコ-ドたち (Hardcover)
무라카미 하루키 / 文藝春秋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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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아주 오랜만에 읽었다. 한때(90년대 중후반) 일본 작가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하루키는 나의 취향이 아닌 편이었다. 나는 시마다 마사히코, 무라카미 류, 아사다 지로의 책을 더 읽었고, 그리고 온다 리쿠의 소설을 계속해서 읽기도 했다. 오히려 하루키의 책은 '노르웨이의 숲' 이후로 그다지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이 책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를 읽게 되었다. 아무래도 신간이 아니다보니 여기저기 있는 리뷰를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다지 좋은 평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과감하게 원서를 사버렸다.


그냥 간만에 일본어 공부한다 생각하고 원서를 산 것이다. ㅎㅎㅎ 다행스러운 점은 문장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고, 안타까운 건 음악 용어는 한글로 봐도 잘 모른다는 점이다. 어쨌든, 한 곡당 두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라 공부하면서 읽을만 했다.

이 책을 클래식 입문서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잘 버무려 놓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번역판 표지보다 원서 표지가 더 마음에 든다. 앨범 재킷은 그것 그대로 하나의 작품이다.


僕はいちおう物書きだが、 本にはなぜかそれほどの執着はない。 しかしレコードに関しては、 認めるのはどうも気恥ずかしいのだが、それなりの執着があるみたいだ。 (「なぜアナログ・レコードなのか」 p.10)


나는 일단 글을 쓰지만, 책에는 왠지 그만한 집착이 없다. 그러나 레코드에 관해서는 인정하긴 민망하지만그 나름의 집착이 있는 것 같다.([왜 아날로그 레코드인가] p.10)


나는 책 쓰는 사람도 아닌데 왜 책에 집착을 하는지(ㅎㅎ) 하루키는 소설가지만 책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레코드에 집착한다고. 어떻게 보면, 글을 쓰는 것과 음악을 듣는 것은 그리 괴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음악이란 어떤 것과도 어울리는 존재니까. 나는 하루키가 음악 아니 레코드에 대해 쓴 글에서 전문성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이 책이 의미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을 왜 선택했는지 그 목적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오랜만에 하는 일본어 공부에 딱 좋았다고 할까? 하루키의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그의 문장이 군더더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약간은 건조하고 약간은 메마른... 음반을 소개하는 글에서도 그런 느낌이 강하다.


하루키는 중고 레코드가게에 가서 좋아하는 재즈 음반을 찾아보고 그 다음에는 클래식 음반을 살펴본다고 한다. 레코드를 모을 때도 최애와 차애가 있는 법이다. 나 역시 서점에 갈 땐(아니 서점에서 검색할 때) 새로 나온 책 중에서 좋아하는 분야를 먼저 확인한다. 그리고나서 다른 분야로 옮겨간다. 결국 활자 중독인 최애가 아니면 차애라도 구입해서 들어오는 것이다. 내가 만약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면 책이 아닌 다른 것을 사다 모았을까?


100개의 클래식 곡을 소개하면서 486장의 레코드를 소개한다. 하루키를 음악평론가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테니 이 책에서 그런 걸 기대하지는 말자. 소설가 혹은 글쓰는 사람이 자기가 애써 모은 보물을 자랑스레 펼쳐보여주는 책이다. 딱 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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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8 2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약간의 수집벽은 다 있는것 같아요. 이곳의 서재인들은 모두 책을 모으고, 어떤 사람은 그릇을 모으고 하루키는 음반을 모으겠죠. 그럼 뭐 당연히 자랑하고 싶어지잖아요. 작가는 좋겠다 싶을 때가 요럴 때, 자기가 자랑하고 싶은거 마음껏 자랑할 수 있는거 보면요. ^^

하양물감 2022-11-19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맞아요. 애지중지 모은거 자랑하고싶지요. 어떤건가 궁금하면 들여다보는거죠~~
 
파친코 1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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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드라마가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는 일본계 미국인인 남편과 함께 일본에 머물며 방대한 자료 조사를 했다고 한다. 4대에 걸친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 하니 가히 대하소설급이다 싶다. 

주인공인 선자가 태어난 곳은 부산 영도이다. 작가는 어떻게 해서 첫 무대를 영도로 잡았을까? 내가 20대일 때, 자갈치와 영도를 왔다갔다 하는 배가 있었다. 선자가 아버지와 함께 장을 보러 부산에 나올 때, 이삭이 영도로 들어올 때, 그렇게 그들은 그곳에서 배를 탔을까?

책을 읽는 첫머리에서 내가 잘 아는 곳의 지명을 보고, 내가 쓰는 사투리 억양을 떠올리며 읽기 시작해서인지(음...약간 사투리에서 삐걱대긴 했지만) 쉽사리 그 시절로 들어갈 수 있었다. 훈이는(선자의 아버지다) 조선어와 일본어를 배웠고, 글을 익히고 셈을 할 수 있을만큼 배웠다. 훈이는 양진과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낳았지만 모두 죽고 선자만 살아남았다. 훈이는 선자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했다. 그렇지만 선자가 열 세살 되던 해에 훈이는 결핵으로 죽었다. 

사랑을 받고 소중하게 자란 사람은 티가 나기 마련인 듯하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양진과 선자는 하숙을 치면서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하숙인을 대하는 양진과 선자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선하고 착한 사람인지, 사랑 받고 살고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라 자존감 또한 충만하지 않았겠나 싶다. 

얼굴이 예쁘고 미인이 아닐지라도 사람의 선한 성품은 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기 마련이다. 좋은 사람 곁에 좋은 이들이 모이는 게 아니겠나. 하숙인들이 그랬고, 식모들이 그랬다. 그런 선자에게 마음을 준 고한수도, 선자와 선자의 아이까지도 감싸안은 이삭도, 좋은 사람이었다.

물론 고한수는 일본에 처도 있고 자식도 있는 사람이었지만, 선자에 대한 마음만은 진심인 듯하였다. 나는 1권을 다 읽은 후에 이 책에는 빌런 같은 악인이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악덕 일본인 경찰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자기 일을 주어진대로 하는 경찰이 나올 뿐이었다. 조선인이 조선인을 미워하거나 무시하거나 괴롭히는 일도 있었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이들이 중심에 나서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작가가 참 담담하게 써내려갔구나. 어쩌면 경계인으로 살아온 그녀의 경험이 이 시대의 아픔을 악인 대 선인의 구조로 끌고 가지 않은듯도 하였다. 

선자가 고한수로 인해 임신을 하고, 이삭과 함께 일본으로 가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이런 삶도 있을 수 있구나 하였다. 이삭이 경찰에 끌려가 감옥에 있다 돌아온 뒤 죽고 난 후 요셉과 경희, 그리고 선자와 노아, 모자수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일본에서 인간 대접조차 받지 못한 채 살아가던 동포들의 흔적을 찾는다. 대하소설(^^)답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나는 이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그 시절의 아픔을 돌아보았다. 

나라를 잃은 국민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 자신을 믿어야 했고 사상이나 종교가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살아내는 것. 요즘 나는 무기력감을 느낀다. 국민을 보호하고 힘이 되어줘야 할 나라가 없다고 여겨지는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잠깐이나마 '자부심'으로 충만해졌던 그때가 너무 그리워진다. 

선자의 아들 노아와 모자수의 이야기는 아마도 2편에서 이어지나보다. 그 시절을 살아가야 했던 젊은 세대의 아픔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드라마로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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