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서점 - 잠 못 이루는 밤 되시길 바랍니다
소서림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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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읽은 리빙스턴씨의 달빛서점에 이어 서점 책을 하나 구입했다. 등장인물들의 무대가 서점이거나 도서관이거나 하면 괜스레 반갑다. 읽을 틈이 나지 않아 계속 미루다, 친구를 만나러 진주에 가면서 들고 갔다. 버스를 기다리며 읽고, 버스를 타고 가며 읽었다. 그리고 친구를 기다리며 읽다보니 어느새 끝을 향하고 있었다.

잠 못 이루는 밤 되시길 바랍니다.

라는 부제가 탁 와닿았다.

전자책으로 먼저 나온 이야기인 것 같았다. 종이책으로도 발간해달라는 요청이 진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자책으로도 꽤 성공한 듯 보인다. 나는 아직 전자책은 잘 못 읽는다. 화면을 따라 뭔가를 읽는다는 것이 여전히 어색하고 낯설기 때문이다. 나도 얼른 익숙해져야 할텐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양반가에서 태어나 자란 한 소녀가 저잣거리에서 바닥에 떨어진 책을 한 권 발견한다. 주인 잃은 책을 찾아주려고 주위를 보니 신선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는 한 사내가 보인다. 소녀는 그 사내가 이 책의 주인이라 짐작하고 쫓아가다 귀신이 나온다는 숲 한가운데까지 가게 되었다. 스산한 숲 속에서 겁이 나 울음을 터뜨린 소녀 앞에 그 신선같은 남자가 다가온다. 시간이 흘러 그 둘이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얼핏 알려진 바로는 벼랑에서 둘이 꼭 껴안고 뛰어내려 비극으로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죽었다는 그 사내가 그 후에도 계속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몇 백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도깨비 같은 놈이 자기 신부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내와 소녀가 이어진 것이 한 권의 책이었다고 하는데 그 책은 무슨 책일까? 소녀와 함께 죽었다고 하는 계속해서 남자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왜일까? 문득 드라마 도깨비가 떠오르는 것은....음.... 이런 류의 환상 소설에 도깨비 같은 녀석이 나오면 이런 구조일 수밖에 없는가? 어쨌든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연서는 동화작가가 되고 싶어 회사를 그만 두고 글을 쓴다. 2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거절하는 이메일만 받고 있다. 오늘은 해피엔딩을 써보라는 편집자의 이메일을 받았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 다른데 왜 모두 해피엔딩이어야 할까. 연서는 송곳처럼 가슴을 찌르는 결말을 더 좋아한다. 약간은 잔혹하더라도 아름다운 찰나가 있는 그런 이야기. 연서는 산에 오르기로 하고 길을 나서는데, 그런 메일을 받아서일까?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길, 설정이 뻔한 결말을 향해 가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옆길로 빠졌다가 길을 잃었다. 꽤 높은 절벽까지 와서 구조도 바랄 수 없는 상태에서 날이 저문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연서는 물빛 도포를 입은 수상한 남자를 만난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외모, 낯선 장소에서의 우연한 만남, 강풍에 떠밀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그 이름 모를 남자의 품에 안겨 눈을 떴다. 연서를 데리고 간 곳은 남자의 가게, 즉 환상 서점이다. 그곳에는 어린 소녀도 한명 있었는데, 서점 주인인 남자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서점주인인 이 남자는 종종 손님들에게 책을 소개해줄 겸 직접 읽어준다고 한다. 그 서점에는 방문객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 산책길에 마주친 이야기, 어느샌가 날아든 이야기 등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모여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말이란 흩어지지만 글은 영원하다고 하던가.

동화작가를 꿈꾸는 연서와 이야기를 기록하고 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는 남자의 만남이다. 환상서점은 그 둘의 만남에 꽤 어울리는 장소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가끔 들리는 저승사자도 있다. 서점에서 만난 그 어린 소녀도 보통의 아이는 아니다. 그러고보니 등장인물도 묘하게 드라마 도깨비를 연상하게 한다. 불멸의 삶을 살며 정해진 삶이 다하면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을 바라보며 산다.

'신'이 정한 길을 가지 않으려고 자기 인생을 바꾸는 인간, 그런 인간을 벌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연민의 정을 느껴 도와주는 신, 그들의 삶은 돌고 돌고 다시 돌아 늘 그자리로 온다. 환생을 믿지는 않지만, 과거의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이승에서 다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야기는 과히 나쁘지 않다. 잠못 이루는 밤이 되라길래 무서운 이야기인가 했더니, 절절한 인연의 끈을 쥐고 있느라 잠들기는 어렵겠다. 전자책의 특성이 묻어있어서 그런가 술술 읽히는 책이다. 다만 자꾸 드라마 도깨비가 떠올라서... 신선함은 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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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가면을 쓰고 있나요 - 명랑한 척하느라 힘겨운 내향성 인간을 위한 마음 처방
양스위엔 지음, 박영란 옮김 / 미디어숲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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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


며칠 전 대학 동기들을 만나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었다. 30년 전 나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또 10년 전후로 오랜만에 만난 터라 서로의 안부를 묻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나마 그 10년이라는 시간도 경사보다는 주로 조사로 만났던 시간이기에 서로 웃고 떠들면서 안부를 묻기엔 마땅치 않았던 셈이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남 앞에 나서는 것이 쉽지 않은 성격이지만 많은 이들이 나의 성격과는 정반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학 동기들이 기억하는 나는 역시나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다들, 자신이 알고 있던 나의 모습과 실제 나의 성격이 다르다는 걸 알고 놀라워했다. 어쩌면 그 시절의 내 모습 중에서도 그들은 그들이 기억하고 싶은 모습만을 기억하는 지도 모른다. 물론 이 책 제목처럼 나 역시 그들 앞에서 가면을 쓰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내향성 인간을 위한 책들을 몇 권 읽었다. 대표적인 게 수잔 케인의 [콰이어트]였을 것이다. 어느 정도 내용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 일본인 저자의 책을 읽을 때 무거운 주제도 가볍게 다루고, 한 줄로 요약 가능한 주제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낸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딱 지하철에서 들고 읽을 만한 책이다. 그런데 최근 좀 접하게 되는 중국인 저자들의 책도 그런 경향이 있다. 주제는 가볍지 않지만 낯설지 않은 예화들이나 이론들을 자주 마주친다. 심각하게 주제를 파고드는 맛은 없지만 쑤욱 훑어가는 느낌이다. 이 책도 약간 그런 느낌이다. 


'외향성'은 심리학자 칼 융이 1912년에 펴낸 『심리유형』에서 '내향성'과 '외향성'의 개념을 처음 주장한데서 나왔다고 한다. 그는 '내향적'인 사람들은 에너지가 내부를 향하고, 혼자 있는 것으로 에너지를 얻기 때문에 조용한 것을 선호하는 반면, '외향적'인 사람들은 에너지가 외부를 향하고, 사람과의 교제를 통해 에너지를 얻기 때문에 대부분 밝고 활발하다고 했다. (p.10)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회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자연스레 외향적인 사람에 비해 내향적인 사람들이 설 곳이 좁아진다. 사회는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성격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고 애써서 외향적으로 바꾸고자 노력한다. 자신의 본성과는 다르게 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그런 척 하고 살아간다면 실제의 자신과 보여지는 나 사이의 간극은 더 커지고 힘들어진다. 


이 책은 그런 내향성 인간들에게 이야기한다. 당신의 진실한 감정을 무시하지 말라. 그리고 당신도 활짝 웃을 수 있다고.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예로 들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당신은 이들 중 어느 부류에 속하는가? 그 모습은 진짜 당신 모습인가하고.


누가 봐도 외향적이고 밝은 사람도 스스로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거나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하거나, 약에 취해 사는 모습 등을 보여줄 때 이런 걸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할까? 어쨌든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충만한 열정 이면에는 '감정 기여자' 또는 '감정 조력자'라고 하는 이미지가 겹쳐진다. 자기 감정의 필요는 무시한 채 다른 사람의 감정적 에너지원이 되는 것이다. 감정에 민감한 사람들은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디테일을 관찰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습관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감히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일부터 시작해보자."(p.29)라고.


대부분 사람이 겪는 우울증은 실제로 자기억압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자기억압이란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성장기에 자기 표현이 항상 무시당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거부당하고 억압을 받으면 표현하지 않고 억압하게 된다.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고 취약성을 숨긴다. 저자는 우리가 먼저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후 자신을 담대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우리의 성장 과정을 단순하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포용적 환경과 파괴적 환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부모나 다른 양육자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관심, 호응과 지지를 받은 사람은 세상이 안전하고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거부와 미움, 다툼으로 가득한 환경에서 자라면 이유 없이 위축되고 두려움을 느낀다. 이러한 파괴적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다른 사람의 필요와 이익을 자신보다 우선시하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는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요구를 잘 거절하지 못하고, 갈등이 생길까봐 두려워한다. 성격이 예민하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까봐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 지 늘 신경 쓰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인간관계에서 주눅이 들어있어서 진짜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대인관계에서 '남의 기분을 맞추는 것'은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기분을 맞추는 것'은 사회적 관계를 맺는 수단으로 우리가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 사용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려는 동기가 자기계발이 아니라 두려움일 경우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정적인 사회적 평가에 직면한다. 내향적인 사람이 소수라면 '무리에 잘 어울리지 못한다', '독특하다', '친구가 없다', '심리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 같다'등과 같은 평가를 많이 받는다. 이런 부정적 꼬리표는 내향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압박을 느끼게 하고 자기계발을 이룰 많은 기회를 놓치게 한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내향적인 사람이 사는 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저자는 성격을 바꾸려고 하지 말라고 말한다. 실험에 따르면 내향적인 사람은 특정한 목적이나 필요에 따라 외향적인 사람의 일부 기술을 학습을 통해 완전히 습득해 환경에 잘 융화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빌 게이츠가 아무리 사교 기술을 갈고닦는다고 해도 빌 클린턴이 될 수는 없고, 빌 클린턴이 혼자 컴퓨터를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빌 게이츠가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격을 바꿀 수도 없고 바꿀 필요도 없다.(p.78) 두번째는 성격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내향적인 사람들이 가진 특징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분야의 직업에 유리하다. 세번째는 자신의 성격을 온전히 느끼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라고 한다. 더이상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증명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요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다. 나를 괴롭히고 공격하는 사람의 행동을 따라 하는 등 자기도 모르게 닮아가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대상의 특징을 따라 하여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미성숙한 방어기제 중 하나이다. (p.141)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공격자와 동일시'라고 한다. '공격자와 동일시'하는 방어기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뚜렷한 경계 의식을 구축하지 못하면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어진다. 심리적으로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현실에서 반복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고 한다. 경계의식을 뚜렷이 하기 위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알려준다. '아니요'라고 말하라. 외부에 투사되는 자신의 모습을 점검하라. 중요한 것은 '틀려도 괜찮다'는 신념이다.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심리적 욕구는 자기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삶과 자아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해여 내면의 활력과 창의력도 발현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부정적인 감정이 터져나오게 된다. 부정적인 감정은 억누를수록 반항심은 더욱 커진다. 직장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다. 좋은 상사, 좋은 동료가 되기 위해 'no'라고 말하지 않는다. 결국 곪을만큼 곪은 후에야 터져나오기 마련인데, 그때는 이미 관계 회복은 물론 업무에 있어서도 대책을 세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후이다. 


나의 감정을 잘 알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나답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만한 다양한 사례가 소개된 책이다. 사례별로 나뉘어 있어 어딜 펼쳐서 읽어도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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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 죽을 만큼, 죽일 만큼 서로를 사랑했던 엄마와 딸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진환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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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


'모성'이라는 단어를 듣거나 읽으면 나는 괜히 삐뚤어져보고 싶다는 생각부터 든다. '위대한 어머니'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나'가 아닌 '어머니'로 틀에 묶어버린 느낌이기 때문이다. '여성'이라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되어 봐야 마치 뭔가가 완성된 것처럼. 누군가는 그러한 자신이 자랑스럽고 멋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죽을 만큼 죽일 만큼 서로를 사랑했던 엄마와 딸"


1973년생인 저자 미나토 가나에는 나와 동년배이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가 쓴 작품 속 '모성'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까? 


10월 20일 오전 6시경, Y현 Y시의 공영주택 화단에 여학생(17세)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되었다. 신고자는 여학생의 어머니였다. 신고자의 어머니는 "모든 걸 바쳐 애지중지 키워온 딸이 이렇게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여학생이 투신을 한 사건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신고를 했던 어머니는 신부님의 조언을 받아 "자기 마음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생각나는 말을 그대로" 적어나간다. 애지중지 키운 딸, 모든 걸 바쳐 키운 딸이 투신을 했는데 신부님은 왜 그랬냐고 묻는다. 왜 그렇게 애지중지 키웠냐고? 아마도 누구든지 그리 생각하지 않을까? 어미라면 그렇게 자식을 키우는 게 당연한 거라고. 그렇게 당연한 걸 왜냐고 묻는다는 건 나쁜 짓을 왜했냐고 묻는 추궁이 아니라 확인하고 싶은 뭔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학생의 어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딸과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는 회사 동료의 권유로 들어간 시민문화센터의 회화교실에서 알게 된 타도코로 사토시와 결혼을 했다. 타도코로의 그림은 늘 어두침침했고 우울하고 답답했지만, 나의 그림은 사랑받으면서 컸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의 어머니는 진심을 담아서 칭찬을 해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가 좋아할 대답을 한다. 오로지 어머니로부터 칭찬 받고 어머니가 기뻐하길 바라며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그날 어머니는 '나'가 아닌 '타도코로의 그림'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분신이므로 어머니와 똑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로 간걸까? 어머니가 기뻐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타도코로와 결혼을 하는 나. 그런 나에게 히토미는 타도코로와의 결혼에 대해 충고를 한다. 결혼을 앞둔 사람에게 그런 충고가 얼마나 귀에 들어올 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당사자보다 제3자가 더 정확하게 꿰뚫어본다. 물론 히토미는 또다른 관계를 형성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오로지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한다. 음악이나 시, 영화까지도 취향이 맞았던 어머니와 타도코로, 어머니와 같은 전업주부가 되고 싶었던 나는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둔다. 임신을 했을 때는 두렵고 무서웠지만 어머니는 이런 말을 전한다. 


"무서워할 것 없단다. 엄마는 이 세상에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싶어. 널 낳았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몇 배는 더 기쁘거든 내 삶이 더 먼 미래로 이어져 나간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엄마가 어렸을 때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뭘까 계속 생각하곤 했어. 이대로 답을 찾지 못한 채로 죽더라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지.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특별히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대단한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니잖니? 나란 사람이 이 세상에 있든 없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지. 그런 존재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런데 널 낳았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난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더라도 내 아이는 무언가를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고. 이 아이가 못 하더라도 이 아이가 낳은 자식이 무언가를 남길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건 바로 나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잖니.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지. 그럼으로써 역사 속에 점이 아닌 선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거야. 이 정도로 멋지고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P.28


여기까지 읽었을 때, 투신한 여학생의 어머니 '나'의 삶의 방식에 동조할 수 없었다. 무엇이든 '어머니'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어머니'와 같은 삶을 동경하고 '어머니'와 같아지기를 원하는 '나'에게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딸에게 하는 모든 행동도 '나와 딸'의 관계가 아니라 '나의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한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사랑일까? '나'는 왜 '어머니'가 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딸'이어야 했을까? 


딸의 독백으로 이어지는 소설을 계속 읽어본다. 딸인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다. 어른들의 반응을 신경 쓰는 어린이, 용서받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어린이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기뻐할 만한 행동을 해야 한다.'(P.47)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아이. '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구했지만 그것을 받지 못했다. 어머니가 원하는 말만 했다. 외할머니에게서 받은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은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사랑'이었다. 


어머니의 고백과 딸의 독백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는다. 


"이러다가 늦겠어, 빨리."

"나 말고!"

"왜? 어째서?"

"네가 구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잖니."

"엄마는 나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날 낳고 길러준 사람이잖아."

"바보처럼 굴지마. 넌 이제 애가 아니야. 엄마란다."

"싫어, 난 엄마 딸이야."

"그만해. 그만하렴. 왜 엄마 말을 못 알아 듣니?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부터 구해야지."

"싫어요. 싫어. 난 엄마를 구하고 싶어. 자식은 또 낳으면 되잖아."

"부탁이니까 엄마 말 들어. 난 내가 살아남는 것보다 내 생명이 미래로 이어지는 게 더 기쁘단다. 그러니까.."

"싫어!"

"널 낳아서 엄마는 정말로 행복했어. 정말 고맙다. 네 사랑을 이번엔 이 아이에게 주렴 애지중지 아끼면서, 모든 걸 바쳐서 키워주렴."(P.79~81)


그것이었다. 이 날의 일로 '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사랑해주었던 사람과 작별하였고, 그날 차라리 내가 죽었더라면 엄마가 날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지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내리사랑이라고들 하는데, '나'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만이 있다. 그 사랑을 딸에게로 옮겨놓지 못한 채 여전히 '딸'인채로만 살아가는 '나'. 


"나한테는 어머니가 없는데, 이 아이에겐 있다. 엄마! 하고 부르면 대답해주는 사람이 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사람이 있다. 어째서 이 아이에겐 있고 나한테는 없는 걸까? 난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 아이는 어머니를 잃은 내 마음 따윈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나한테 어리광을 부리는걸까?" (P.105)


어머니는 자식을 지키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딸아이가 나를 위해 시어머니와 맞서는 것도 달갑지 않다. 오히려 그것이 더 불편하다. 딸은 '부모에게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안다. 딸인'나'는 다른 사람을 만지는 것, 다른 사람이 나를 만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외할머니를 잃은 그날 이후 엄마는 나를 거의 만져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를 대신해서 내가 엄마 편이 되어주자. 어머니를 지켜주자'(P.135)고 생각했던 '딸'과 그런 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엄마. 


과연 모성이란 것은, 엄마가 되면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일까? 요즘 미디어나 매체를 통해 '비정한 부모'에 관한 뉴스를 자주 접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부모가 저럴 수 있냐고, 특히 어머니를 향한 비난은 더욱 심하다. 굶어 죽거나, 맞아 죽거나, 버려지거나 하는 아이들 뒤에는 언제나 그 아이들을 지키지 않고 학대한 '어머니'만 있다. 자식을 키우고 사랑하고 길러야 하는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부모'이다. 이 이야기 속에도 타도코로는 무기력하다. 오히려 가족들에게서 도망을 치는 남자다. 이 여학생의 투신에 아빠인 타도코로의 책임은 없는가. 세상에는 모성만 존재하고 '부성'이란 건 아예 없는 것인가. 


"사쿠라를 잃으면서 제 자식은 세상에 오직 한 명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어머니의 핏줄을 이어줄 그 아이가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P.176)


둘째를 유산한 후 '나'가 하는 말이다.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어머니의 핏줄을 이어줄'대상일 뿐이다. 나는 이런 문장들이 가슴 아프다. 



'모든 걸 바쳐서'라는 말은 어째서 '어머니의 손맛'과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을까? 비유를 해보자면, 매일 고기감자조림과 고등어 된장조림 같은 요리를 만드는 어머니가 있다고 해보죠. 이 사람에게 평소에 아이에게 어떤 음식을 해주냐고 묻는다면,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요리를 해준다고 대답할까요? 아마도 그냥 평범한 음식을 해준다고 대답할 것 같은데요. 반면에 인스턴트 식품이나, 심한 경우 하루 세 끼도 제대로 먹이지 않는 부모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어머니의 손맛이라느니, 아이를 위해 균형 잡힌 건강한 식단을 만들어준다고 대답하지 않겠어요?"

"결국 네가 하고 싶은 말은,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수록 거창한 말로 둘러댄다는 거로군."(P.201)


이 이야기에는 제3자로서 신문기사를 읽은 사람들의 반응도 보여준다. 투신한 여학생의 어머니가 '모든 걸 바쳐서 애지중지 키웠다'는 말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 지나치게 독자에게 친절한 문장이긴 하지만, 그렇구나. 그 문장이 그래서 이상하게 느껴졌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를 칭찬해주고 내 존재를 인정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던 나, 엄마가 죽길 바란 적도 없고 싫었던 적도 없다. '나'는 엄마가 싫어하는 내가 싫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엄마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다. 


과연 모성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계속해서 그것을 생각해보라고 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저절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내가 갈구하고 바라는 것, 그것을 내 자식에게도 무조건적인 마음으로 줄 수 있는 것, 그것을 모성이라고 하면 될까?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독자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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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사라진 세계에서
댄 야카리노 지음, 김경연 옮김 / 다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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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야카리노 작가의 그림책을 몇 권 읽었다. 가장 최근에 읽은 그림책이 [폭풍이 지나가고]였다. [나는 이야기입니다]도 꽤 인상깊었던 걸로 기억한다. 앞의 그림책을 떠올려보면 댄 야카리노 작품의 성향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우리는 이미 그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지식과 정보, 감정과 생활사 등 모든 것을 후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이면서 보관이나 효율성에서도 뛰어난 책이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은 자주 들려온다. 플로피디스크나 테이프(비디오테이프 포함) 등 자료가 남아 있어도 재생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로 나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디지털에 의존하고 있다. 


지금은 '읽기'라는 개념을 종이로 된 책뿐만 아니라 디지털로 표현된 내용 읽기까지로도 넓혀야한다는 의견도 많다. 문자로 표현된 것뿐만 아니라 이미지나 영상 또한 제대로 읽지 못하면 정보의 왜곡이나 오류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사고력에서부터 오는 게 아닐까?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뿐만 아니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사고력도 필요하다. 디지털 자료들이 하이퍼링크로 이어져 자료를 찾거나 활용하기에 편리해졌다고는 하지만, 깊이 있는 탐색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기에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디지털화되어 (누군가에게) 공개되기도 하고, 나의 정보를 이용하여 (누군가는) 이익을 얻기도 한다.  


이 그림책은 마치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를 꺼낸 듯하지만, 어쩌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그림책 표지를 넘기면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생긴 작은 기기를 하나씩 들고 있다. 이것은 휴대폰이나 (크기가 작아진) AI 비서일지도 모른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기도 하다. 굳이 대중교통이 아니더라도 카페에서도, 식당에서도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에도 주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손에 든 그것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을 펼치면, 모두 똑같이 생겼던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하게 바뀌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손 안에 든 기계가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아니나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바뀐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고,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을 하는 것.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커다란 눈이 우리의 모든 생활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상황. 하품을 하거나 자고 있거나 또는 기계를 들여다보고 있어도 눈은 우리가 가야할 곳으로 데려다 준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 해야 할 일을 대신 처리해주고 읽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배워야 할 것까지도 모두 커다란 눈이 정해준다. 이 눈은 아마도 AI 인공지능이 아닐까싶다. 내가 선택하거나 고르거나 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나의 뇌와 몸은 특별한 노력이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즘 챗GPT를 비롯하여 AI, 인공지능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어서 그런지 이 그림책의 내용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나의 생활 중 많은 부분이 그림책과 같은 상황일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누군가는 거기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다. 이 그림책에서는 빅스이다. 커다란 눈이 데려다주는 곳, 대신 정해주는 것과 같은 모든 것이 재미가 없다. 왜일까? 왜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이 모든 것이 재미가 없을까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빅스는 세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지금의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찾아낸다. 원래부터 커다란 눈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 살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곳에서 찾아낸 다양한 삶의 모습은 지금의 내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직관적으로 그림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니 어린이가 읽어도 무방하다. 그림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생각하고 토론하기에는 청소년이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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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질문이 돈이 되는 세상 - 이미 시작된 AI의 미래와 생존 전략
전상훈.최서연 지음 / 미디어숲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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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어디 가서 아는 척 좀 할려면 이거 모르고는 안될 것 같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4차 산업혁명때문에 이러니저러니 하더니 이제는 온통 챗GPT 이야기다. 회사에서도 직원들이 기본 개념 정도라도 알고 있어야한다고 하여 몇 권의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챗GPT 질문이 돈이 되는 세상이라는 책을 읽었다. 챗GPT 관련하여 많은 책이 나오고 있는데 '돈이 되는'이라는 카피가 좀 직설적이기는 하다. -->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이 부제는 핵심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서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생성형 AI의 대표 아이콘이라 칭할 수 있는 챗GPT의 사용 방법을 알리는 단순한 사용서나 활용서가 아니다. 책GPT로 야기될 미래의 삶, 미래직업, 미래교육, 그리고 미래 사회의 변화를 속속들이 분석하여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생존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장 미래의 삶

2022년 12월 오픈AI에서 개발한 생성형 AI 챗GPT가 공개되었다. 이전에 AI라고 하면 알파고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나는 챗GPT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바로 사용해보기 위해 이것저것 검색해보았다. 이전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라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즉, 나와는 상관없고 사용할 일 없을 것 같던 AI를 직접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 말이다.

오픈AI는 테슬라,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와 Y콤비네이터의 CEO인 샘 올트먼 등이 2015년에 공동 설립한 인공지능 연구소인데, 챗GPT를 전 세계 유저들에게 오픈하였다. 챗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고 GPT는 오픈AI가 개발한 언어 모델이다.

GPT는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의 약어로, 'Generative'는 답변을 생성하고, 'Pre-trained'는 사전에 학습된, 'Transformer'는 인공신경망 모델 중 하나로 자연어처리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는 모델을 말한다. '트랜스포머 Transformer' 모델은 자연어 처리 분야NLP 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며, 기계 번역, 챗봇, 감성 분석, 요약 등 다양한 자연어 처리 작업에 적용되고 있다. 빠른 처리 속도와 더 긴 문장을 더욱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트랜스포머 모델의 셀프어텐션 메커니즘 Self-Attention Mechanism 덕분이다. 이 기술은 그동안 인공지능의 한계라 여겨지던 문장 내 단어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문맥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인공지능에 부여해 준다. 즉,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최대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해 주는 아주 획기적인 기술 모델이다. 이를 통해서 챗GPT는 자연어 처리 및 생성에 강점을 보이며 그동안 인공지능이 보여 주지 못했던 이해력과 더욱 명확하고 논리적인 답변을 해 줄 수 있게 됐다.

P.20

다만 챗GPT는 최신 정보는 학습하지 않아서 잘 알지 못하지만 추론을 하여 알려주기도 한다. 학습한 정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정보의 품질이 높으면 높을수록 추론의 정도도 그 정확도가 높아진다. 반대로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양질의 정보가 아니면 제대로 된 답변을 얻을 수 없다.

챗GPT의 발전은 미래의 일로만 상상하던 AI기술이 실제 기업에 적용되어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책에서는 교통수단의 변화와 네옴을 통해 본 미래 도시를 소개한다. 저자들은 스마트시티의 자율주행차와 도심항공 모빌리티를 미래를 이끌 산업으로 보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관심 있게 눈여겨 본 대목은 '데이터 배당 시대로의 대전환'이라는 꼭지이다.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활용해 수익 창출을 증대하는 플랫폼 기업은 데이터 경제 시대의 최대 수혜 기업(P.56)이다. 플랫폼 기업의 독점적인 부의 편증을 보완하기 위해 재난기본소득, 혹은 보편적 기본소득을 국가적인 시스템으로 보고 있다. 기본소득은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가 주장한 평등한 소득 분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AI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기본 소득을 지급하여 여가생활과 더 창의적인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공지능이나 기계로 자동화가 이루어지면 실업자가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기업의 이익도 증가하지만 소비의 여력이 사라지면 결국 가계도, 기업도, 국가도 붕괴될 수 있다. AI로 모든 일자리가 다 사라지지는 않지만 전체 총량으로 볼 때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챗GPT가 빠르게 발전하면 결국 챗GPT를 운영할 수 있는 1%의 자본가나 핵심기술자와 이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99%의 사람들로 나뉜다. 플랫폼 기업은 이용자의 데이터로 성장하므로 이용자는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이다. 따라서 기업이 소비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여 창출한 수입을 이에 기여한 소비자들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 데이터 배당이다. 챗GPT를 사용하면서 나와 나눈 대화와 그로부터 추출된 나의 잠재적인 성향까지도 데이터가 된다. 기업은 이 데이터를 수집, 저장, 분석 그리고 활용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 이 부가가치 창출의 시작점은 바로 원시데이터이다. 따라서 이는 원시데이터를 제공한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에게 배당을 지급해야 하는 근거가 된다.

물론 데이터 제공자의 관심이나 진실성과는 상관없는 거짓된 대화나 부적절한 질문, 비윤리적 질문 등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오류나 정보 오류로 인해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원시데이터의 진실성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2장 미래의 직업

2장에서는 GPT가 지식 기반의 일을 하는 지식 노동자들에게 큰 위기라고 평가하는 이유와 미래의 인재상에 대해 설명한다.

디지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2000년대 초반부터 (그 이전자료까지도) 지식 노동자들이 다루는 지식과 이론들은 문서화로 잘 정리되어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도록 디지털로 저장되어 있다. 지식 노동자들은 대개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하여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활동은 데이터로 기록되며, 이 데이터는 AI의 지능을 향상시키고 활동 영역을 넓히는 데 기여한다. 비숙련된 지식 노동자들은 AI에 의해 일자리를 잃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P.72

마이크로소프트가 발표한 2025년과 그 이후에 점차 떠오를 것으로 본 10가지 직업군은 다음과 같다. 가상 공간 디자이너, 윤리 기술 변호사, 디지털 문화해설가, 프리랜스 바이오해커, 사물인터넷 데이터 크리에이티브, 우주 여행 가이드, 개인 콘텐츠 제작자, 생태복원 전략가, 지속 가능한 전략 혁신가, 인체 디자이너. 여기에 저자들은 2가지를 더 소개한다. 프롬프트 엔지니어와 AI아티스트가 그것이다.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고, 더 이상 지금까지와 같이 살 수 없다면 나 역시도 준비를 해야한다. 챗GPT 등 AI의 기술력에 나의 어떤 능력을 융합할 수 있을까?

첫번째는 자동화된 업무 처리이다. AI를 이용하여 회의록 작성, 문서 번역, 기획서 및 보고서 작성, 자동화된 고객 지원을 할 수 있어 업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단, 자동생성된 결과물에서 누락된 부분이나 오류 등은 없는지 검증하고 확인해 보는 절차가 필요하다.

두번째는 빅데이터 분석이다. AI 툴을 이용하여 대량의 데이터 분석으로 얻은 결과로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거나, 시장 동향을 파악하여 경영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단, 현재 일어나거나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내외적 요인에 대한 개인의 통찰력이 필요하다.

세번째는 예측 모델링이다. 고객의 행동 패턴이나 심리를 AI 예측 모델링을 사용하여 고객의 행동 패턴이나 심리를 분석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예측 모델링 값에 대한 기준 설정, 검증, 현실화 여부 판단 같은 능력이 필요한 만큼 현장 경험이 풍부한 사람에게 유용하다.

네번째는 교육 및 역량 개발이다. AI 분석을 바탕으로 맞춤형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고, AI와 협업 기반의 직무 역량을 보다 전문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단, 정량적 수치로 파악하기 어려운 정성적 측면에서는 업무 담당자의 인사이트 능력이 요구된다.

다섯번째는 광고 및 홍보 전략이다. AI를 이용한 광고 및 홍보용 영상 혹은 포스터를 제작할 때 스토리 구성과 대본 등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서 시간과 노동력의 투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아이디어 도출도 가능하지만, 소속 기관의 경영철학이나 내부 상황에 맞는 방향을 설정하는 등의 담당자 능력이 요구된다.

P.93-94

따라서 미래가 원하는 인재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미래 직무 역량의 핵심 요소로 창의성, 융합, 트레일블레이저, 비전을 든다. 먼저 창의성 계발의 핵심은 질문이다. 대화형 AI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질문력이 필요하다. AI를 활용하기 위한 프롬프트뿐만 아니라 AI와 협업하거나 리딩하기 위해서 필요한 질문력이다. 평소 어떤 현상에 대해 의문을 갖고 비판적인 사고를 해왔다면 질문의 수준이 다를 것이다. 또한 챗GPT의 답변의 출처를 확인하거나 정보를 확인하는 능력도 다르다.

두번째는 업무를 통융합하는 능력이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전문가와 상호 소통해야 하며 꾸준한 학습이 필요하다.

세번째는 트레일블레이저가 되어야 한다. 트레일블레이저는 선구자, 개척자이다. 경험은 지식 이상으로 중요하다.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직무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쌓아야 한다. 경험 속에서 배워야한다. 새로운 혁신은 내가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는가에 달려있다.

네번째는 비전이다. 열정을 가진 인간은 현재의 능력 이상을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다.

3장 미래교육

IB의 글랜빌은 말한다.

"AI가 버튼만 누르면 작문을 해 줄 수 있는 시대를 맞아, 우리는 학생들이 다른 기술들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작문이 제대로 됐는지, 맥락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편향된 데이터를 썼는지, 창의성이 부족한지 등을 이해하는 능력이 작문 자체보다 훨씬 중요해질 것이다.”

챗GPT 답변의 정확성을 꾀하기 위해 출처를 확인하고 다양한 형태의 질문과 답변에서 나오는 공통점과 상이점을 찾아내며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여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낼 인재를 키우는 교육과 평가 시스템의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

P.136

AI와 차별화되는 인간의 상상력을 키우는 데는 사색, 토론, 휴식이 필요하다. 사색이란 주어진 문제나 상황을 깊이 생각하고 분석하는 것으로 데이터와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이다. 챗GPT는 모든 문제에 대해 완벽한 해결책을 제공할 수 없다. 챗GPT가 학습한 데이터가 제한적이고 데이터의 편향성과 문맥에 대한 이해 부족 등에 의한 오류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챗GPT의 답변을 분석하고,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하며,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결론을 도출하려면 인문학적 사색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문학적 사고의 핵심은 토론을 통해서 각자의 의견이 다른 것을 확인하고 그중에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확인하는 절차이므로 챗GPT와 토론은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기억과 암기를 넘어서는 고난이도의 사고를 해야 한다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므로 휴식은 필수이다.

4장 미래의 사회

챗GPT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있으나 개인의 판단력이 많이 필요한 분야는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용자는 챗GPT의 답변을 항상 검토해야 한다. 비판적 사고능력은 아직까지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챗GPT가 제공하는 정보가 가치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보가 필요한지 분별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깊은 사색, 독서, 활기찬 토론에서 얻은 논리성, 비평력, 창의성을 오랫동안 빌드업 해 온 사람에게는 챗GPT라는 신종 무기가 삶의 무기가 된다. (P.197)

챗GPT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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