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하고 녹슬지 않는 위픽
이혁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제목은 "단단하고 녹슬지 않는"이다. 그러나 책의 전면에는 "어느 늙고 미친 여자가 이 하찮은 일에 자기 목숨을 걸었다고"라고 적혀 있어서, 그게 제목인 줄 알았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내 시선을 끈 셈이다. 게다가, 저 여자는 왜 그런 일에 목숨까지 건걸까? 궁금증이 생겼다. 


이 책은 위즈덤하우스의 위픽시리즈인데, 이 시리즈의 책들은 이런 표지를 갖고 있다. 그리고 하나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단편소설 시리즈인 위픽도, 이혁진 작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독서동아리 선생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전작들을 통해 작가는 계급적 차이에서 오는 개개인의 서로 다른 입장과 관계를 이야기해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서도 동일한 사건을 두고 각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사회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는 현실 세계에서도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소설에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해왔던 '윤리적 딜레마' 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완전자율주행 자동차 '슈마허'를 만든 자동차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세희와 그 자동차를 개발하기 위해 자신의 젊음과 모든 것을 바친 재호, 재호가 없는 가정을 지키며 아들 건주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아내, 딸 애나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며 돈을 벌고 있는 매튜, 남편과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학교의 이사장으로 재직하다 한 아이와 부딪쳐 교통사고를 당한 영인. 


모두의 입장에서 그들이 하는 행동은 정당성을 갖는다. 혹은 그렇게 해야 하거나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완전자율주행자동차를 만든 재호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다. 그는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동용 이동의자인 '무버'에 의존하여 살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세상의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다. 건주는 걷기를 포기하고 '무버'에게 완전히 의지하여 살아간다. 아내는 그런 건주가, 걸을 수 없을까봐 걱정을 한다. 그래서 건주와 아내 사이에 대립이 일어나고, 학교에서는 '무버'로 인해 온갖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다보니 이 이야기는 결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완전자율주행은 아니지만, 인간의 두 다리를 대신해서 이동하고 있는 '자동차'하고 하등 다를 것이 없다. 나는, 아직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뚜벅이이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임에도 '차'를 운전해서 가지 않으면 가지 않으려고 하거나, 걸어가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결국 아이들이 무버에 의존해서 걷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은 절대 낯설지가 않다. 


최근에 자율주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다보니, 자율주행으로 움직이는 이동수단들의 윤리적 선택과 윤리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 책에서 세희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슈마허의 기능을 데이터에 입각한 경제논리로 학습을 시키는 모습이 나온다. 특히 교통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인간이라면 자신의 의지로 어떤 선택을 하였을 것이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게 되지만, 자동차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목적으로 가지고 정해진 선택지를 따라 움직인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 데이터를 학습시킨 사람, 즉 회사의 책임이 아닐까? 


"이걸로 슈마허에게 가르쳐줘. 전봇대를 받아 탑승자를 다치게 할 바에야 길고양이를 치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는 걸. 애들한테 걷어차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가르쳐주듯, 세희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눈으로 볼 거 없어. 이미 다 있는 거, 우리 다 하고 있는 거야. 보험사에는 평가액, 은행에는 신용 점수가 있고, 결혼 정보 회사에도 입사 시험에도 학교 시험에도 다 있잖아. 등급, 석차, 점수. 우리 이마엔 이미 바코드가 찍혀있어. 리더기만 들이대면 '삑' 하고 얼마짜린지 다 나와. 모른 척하고 아닌 척할 뿐이지."(p.19)


슈마허가 사고를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직관이나, 돌발 상황에 따른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세희의 말대로 모른 척하고 아닌 척할 뿐이지 이미 급이 나눠져 있고, 그 잣대에 따라 많은 것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 데이터를 이용해서 그 데이터가 정해준대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 인간은 '양심'의 소리를 듣거나,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저자는 재호의 아내와 영인을 통해 다른 생각을 전한다.


"늘 그래, 사는 건 계획과 예상을 벗어나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아내는 재호를 봤다. 그러니까 가르쳐줘야 할 건 기준이야.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 이유가 어떻든 맞는 건 뭐고 틀린 건 뭔지. 이제 알겠어. 내가 제일 못했던 게 그거라는 걸, 그래서 애가 지금 이렇게 됐다는 걸. 아내는 후회스럽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니 나부터 해야지, 기준을 지켜야지. 아무리 울고 떼쓰고 날 미안하게, 아프게 해도 상관없어. 나쁜 엄마라 해도 괜찮아. 맞는 건 맞고, 틀린 건 틀려, 멀쩡한 두 다리로 태어난 건 고마운 일이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p.53)


"우리가 가르치는 것도,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것도 원칙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완전하다고 착각하도록 떠받들어주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아이들이 작고 불완전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끔 이끌어줘야 하는 사람들이죠."(p.78)


기준과 원칙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기준과 원칙, 우리는 그것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무엇인가를 남보다 더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남을 짓밟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잃은 부모와, 부모를 잃은 자식이 원하는 것이 다르다고 해서(물론 평균적으로) 좀더 쉬운 쪽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살면서 어떤 기준과 원칙을 정립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사람들 때문에 내 인생도, 세상까지도 사랑"(p.163)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고통을 알죠. 사랑만이 고통에도 의미를 주니까요. 그 고통엔 의미가 있어 더욱 고통스러우니까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고통을 견디는 것도 의미가 있는"(p.164)것이므로 단단하고 녹슬지 않는 그 마음, 사랑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더 붙인다면 "용기"일 것이다. 


"그게 뭐든, 할 수 있다는 건 능력이고 자기 자신의 일부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아무리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상황이 살다보면 생기니까. 할 수 있는 건 해야 해. 그걸 하지 않는 건 선택이 아니라 용기가 없는 거야." (p.195~1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가 병원에 간 날 - 어린이를 위한 암 이야기
다니엘라 로하스.이사벨 바예스 지음, 소피 알렉산드라 트레거 그림, 김정하 옮김 / 다봄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 뒤 학교에서 돌아왔더니

엄마, 아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나보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석 자리에 앉으라고 했어.

우리가 극장처럼 꾸며 놓고 팝콘도 먹는 자리야.

아빠가 엄마를 찾으러 급히 병원으로 달려간 날을

기억하냐고 물었어.

난 고개를 끄덕였어.

그때 엄마가 병원에서 어려운 검사를 했다.

무슨 검사인지 말해 줬는데, 내가 모르는 말이었어.

그런데 이제 그 검사 결과가 나와서

엄마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다.


2018년 5월 1일, 근로자의 날. 

나는 이 날을 잊지 못한다. 기억하기 좋은 날짜인 것도 한 몫 했겠지만...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국가 암검진을 함께 받았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암인 것 같으니 더 큰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초음파 사진으로 암 세포임을 찾았던 의사선생님은

암이라는 것은 좋지 않은 소식이지만,

지금 찾았고, 크기도 크지 않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라며 위로해주었다.

참 이상한게, 

나는 그날 슬프지도 괴롭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그냥 병원 가서 한 번 더 확인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대학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했고, 

물론 결과는 암이었다.


암환자가 된 나는, 

흔히들 미디어를 통해 보는 것과는 달리 굉장히 담담했고, 

치료 계획을 세웠으며, 

보험금을 확인하고, 

회사에 치료 일정을 알렸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암환자의 생활은, 많이 다르다. 

나는 그래서 이런 그림책이 나와 준 것이 참 반갑다. 

물론 암환자 중에는 손 쓸 수 없는 중병인 경우도 많지만, 

최근 의학의 발달로 초기 단계에서 암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러 단계의 증상을 볼 수 있으며 그들의 치료 방법 또한 다양하다.


이 그림책의 '나의 엄마'는 엄마에게 생긴 암에 대해 설명을 해 준다. 

우리가 보통 잘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간단하면서도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의 병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병을 고치기 위해서 어떤 단계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아이에게 설명을 한다.  

그러고 나면, 엄마는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엄마의 병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

엄마의 외모 변화나, 심리적 변화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아이가 느끼는 불안이나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항암치료를 하게 되면, 머리카락이 빠지고 손톱 같은 것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항암치료 동안 부작용이 있는 사람들은 식사도 잘 못하고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방사선 치료를 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방사선 치료를 먼저 하고 항암치료로 들어가는 경우도 보았다.

그 순서는 어떻든 간에, 방사선 치료를 하게 되면 그 부작용도 여러가지 증상이 있다.

그렇게 치료가 끝나고, 향후 5년 간 문제가 없으면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이 그림책의 엄마가 겪는 치료의 과정이 쉽게 이루어지는 과정은 아니다. 

치료를 받는 사람은 치료과정의 부작용, 수술로 인한 상실감이나 외상, 심리적 불안 등을 겪기도 한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지만, 적어도 이런 과정을 거쳐 치료를 할 수 있으며, 이 과정들이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보았던 최악의 상황만 있지 않다는 것도 알려 줄 수 있다. 


어린 자녀들에게 깊이 이해시킬 수는 없지만, 이러한 설명은 아이들의 정서에도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줌을 참는 기막힌 방법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126
차야다 지음 / 북극곰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니, 오줌을 왜 참아야 하냐고... ㅋㅋㅋ

이런 마음으로 그림책을 펼쳤다. 


차야다 작가의 그림책을 몇 권 읽었다. 그래서 약간 느낌이 왔다. 

역시나 이 그림책을 덮었을 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림책의 위트와 반전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긴 시간 움직일 수 없을 때는 미리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보고 와야 한다.

나는 아이에게 생리적 욕구는 특히 '참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미리 화장실도 다녀오고, 물도 적당히 마시고, 최대한 준비하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한 신호가 왔을 때는 주변 사람 또는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해결하라고 하였다.

미리 예측이 가능하다면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육아방식이었다.

규칙이 있고, 지켜야 할 약속이 있을 때는 특히 더!!

그래서 나는, 이 그림책 제목을 보고, 오줌을 왜 참아? 했던 것이다.


원숭이는, 아니, 동물들은 왜 오줌을 참아야 했을까? 

그것은 표지를 넘기자 마자 나온다.

뱀 한마리가 급하게 화장실에 갔는데, 화장실에 누군가가 사용 중이다.

그래서 그 앞에서 기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뒤를 이어, 원숭이 한마리가 뛰어온다.

급해 급해 급해... 이 단어의 움직임만으로도 원숭이가 얼마나 급한지 알 수 있다.

아이고, 진작진작 화장실 좀 다녀오지~~

원숭이의 급한 사정은 단어로도, 얼굴표정으로도 움직임으로도 전해진다.

그런데 원숭이 앞에 커다란 장애물이 두둥 등장하는데

4엑스라지 사이즈의 팬티를 입은 코끼리 엉덩이다.

팬티 그림을 보고 코끼리임을 알아챈다. 그리고, 커다란 코끼리 팬티 사이즈~~

부들부들 떨고 있는 코끼리, 코끼리도 급한 용무를 참고 기다리나보다.

빼꼼 내다 본 원숭이에게 '줄 서'라고 말하는 코끼리.


그렇다. 우리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칙 하나.

화장실에서 온 순서대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

때로는 문 밖까지 늘어서 있는 화장실 줄에 서서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순서가 쏙 쏙 빠져주면 견딜 수 있지.

학교나 유치원의 화장실에서도 그렇고, 

공연장이나 미술관 같은 공공장소, 대중교통 이용시에도 그렇다.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화장실 줄서기.


길게 늘어선 줄에는, 

코끼리, 악어, 치타, 양, 사자, 뱀까지... (음...양 빼고는 좀 힘 세고 무서운 아이들이다)

힘이 세든, 무서운 동물이든 간에 화장실 앞에서는 다같이 줄을 서자!!!

라는 걸 보여준건가? 

어쨌든, 어떤 존재래 해도 화장실 앞에서는 공평하게 온 순서대로 줄을 서야 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도 화장실에서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면, 오줌을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기다려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일을 봐야한다. 참아야지. 조금만 참으면 돼.


그림책은, 동물들이 오줌을 참는 모습을 보여준다. 각자의 방법대로 오줌을 참고 또 참지만, 그래도 화장실 문은 열리지 않고, 결국 모두 힘을 합쳐 화장실 문을 여는데...


마지막, 반전은 여기서 나타난다.


어쩌면, 우리가 자주 마주치는 상황(또는 가볍게 한번씩 경험하는 현상인데)을 이렇게 그림책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두니 더 재미나다.

한번쯤 다들 경험했을 그 이야기.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이 그림책을 왜 화장실 근처에서 읽어야하는지 이유를 알게 된다. 재미있는그림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꽤 좋아하는 류의 책이다. 그래서일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후다닥 읽어버렸다.

과거의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 중 풍속화나 기록화 만큼 생생한 자료가 있을까? 사진이나 영상이 없었던 그 시절 이야기다. 


얼마 전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는데, 그 암각화의 그림을 통해 선사시대의 우리 조상들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듯이 조선의 풍속화와 기록화들도 그런 역할을 해낸다. 한국의 기록문화는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하는데, 그림이라고 덜할 리가 있나. 그러나,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듯이,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지면 이해도는 당연히 올라간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풍속화와 기록화들을 소개한다. 익히 알고 있는 그림들이지만 그 설명을 함께 읽으면서 그림을 보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도슨트 설명을 듣느라(설명 앱을 켜고) 그림 앞에 멈춰 있는 사람들 때문에 사실은 짜증이 날 때가 많다. 눈으로 보고 싶은 작품을 관람자의 머리만 보느라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런 공부라면 이렇게 책을 통해 먼저 공부를 하고 가면 어떨까? 미술관에선 누군가의 설명보다 마음이 이끄는대로 감상을 했으면 좋겠다. 아, 이건 나의 개인적인 의견^^


풍속화가 사생활이라면 기록화는 공공생활이고 풍속화가 드라마라면 기록화는 다큐멘터리이다. 그래서 조선미술관에서는 궁궐 밖의 사생활을 담은 1관과 궁궐 안의 공공 행사 기록을 담은 2관으로 나누어 전시를 기획했다. (p.9)


새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생각이 바뀌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하는 사람만이 새것을 만든다. (p.13)


놀이 장면을 그릴 때 '사람들을 다 앉히지는 않는다'는 법칙(p.20)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실제로 그런 법칙이 있다기보다 그런 구도와 구성을 통해 그림이 살아있는 현장을 보여주는 것 같다. 놀이하는 선비들을 그린 그림을 '현이도'라고 부른다. 조영석의 현이도는 이후 조선 양반 풍속과 평민 풍속화의 출발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김홍도가 그린 <귀인응렵>은 관복을 입지 않았으니 선비가 아닌 관료 신분이며, 매사냥을 떠나는데 사냥개와 함께 있지 않고 사슴이 그려져 있다. 언덕이 사슴 다리를 가리고 사슴 다리가 말 다리를 가리고 있어서 '다 그리면 재미없다'(p.35)는 법칙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 남자를 김홍도일 것이라고 말한다. 


겸재 정선의 <사문탈사>는 66세에 그린 것과 80세에 그린 작품이 있는데 저자는 이 두 그림을 비교하여 보여준다. 66세때 그린 그림을 뒤집으면 80세 때 그림의 구성이 되는데 이는 조선시대 화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방법이라고 한다. 그림의 좌우를 반전시켜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소를 탕 사람은 율곡선생이지만, 그림 속 배경은 정선이 살던 시절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름드리인 측백나무가 있다. 또한 정선은 중국물소를 그리던 66세 때와 달리 80세에 이르러서는 황소로 바꾼다.


이런 정보를 갖고 그림을 보면, 그림이 다시 달리 보인다. 


김득신의 <밀화투전>이라는 그림은 김득신이 그린 풍속화첩에서 유일하게 실내 장면이다. 아무래도 도박을 하는 장면이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김득신은 초상화에서 사용했던 명암법을 풍속화로 넓혀 사람들의 얼굴에 명암을 넣었다.  


신윤복의 그림에는 상류사회의 놀이장면이 나온다. 선비 숫자와 기녀 숫자가 짝이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임하투호>에서는 기녀가 한 명만 나와서 "짝 안 맞으면 결코 놀지 않으리'란 법칙에서도 예외가 있다고 알려준다. <납량만흥>을 설명하면서는 우리 민족의 음주가무에 대해서도 설명하는데, 덥지도 춥지도 않아야 술과 노래와 춤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다며 그러한 풍토적 차이에서 우리의 음주가무가 성행했으리라고 한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납량만흥>에서는 우리 춤이 하체가 아닌 상체 중심의 춤임을 설명해준다. 신윤복의 그림에서는 기녀와 선비의 놀이에서 늘 주인공은 기녀이며, 그림 속 주인공들의 시선을 통해 그날의 분위기를 짐작해본다.


만약 내가 혼자서 그 그림들을 보았더라도 이런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쓰며 보지 못했을 것 같다. 알고 보면, 그림에서 이런 장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저자가 2관에 배치한 조선 궁중기록화는, 솔직히 말해서 내 관심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어서 앞부분에 비해 재미가 덜했다. 다만, 문화절정기인 숙종 때와 영정조 시절의 그림에서 디테일한 차이가 나타나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웜 특공대 북극곰 이야기샘 시리즈 12
김두경 지음, 이승아 그림 / 북극곰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꽤 오래된 이야기같은데, 밀웜...


미래 식량 자원으로 밀웜이 언급된 게 제법 예전부터 오가던 이야기인데, 이 밀웜이 다른 역할, 그러니까 단순 미래 식량자원에서 더 유용한 기능을 발견해서 쓰임새가 더 커졌다는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을 보면, 밀웜인 호이, 설이, 대장님이 보이고, 인간으로는 우표동과 신나나가 보인다. 각자의 역할은 명확하다. 


우레 같은 큰 목소리의 호이. 얼굴 표정만 봐도 꽤나 장난꾸러기이다. 누가 와도 친구가 될 수 있을만큼 사교적인 밀웜이다. 설이는순간에 재치가 반짝이는 밀웜이라 소개가 되어 있지만, 생각보다 그리 큰 역할은 하지 않는 것 같다. 대장님은 아무래도 밀웜들의 전투(^^)를 이끌다보니, 그 역할이 마을의 큰 어르신 같다. 


그런가하면 우표동은, 장난꾸러기이고 단순한 성격인데 호이와 비슷한 인물이다. 사실 우표동의 큰 역할이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함께 나오는 신나나가 오히려 호이의 활약을 위한 사건을 만드는 인물이다.  


밀웜이 배달된 상자 속에는 밀웜들이 곧 먹이가 될 상황을 앞두고 운반 중 일어난 흔들림에 비몽사몽인 상태를 보여준다. 그들은 밀웜으로 태어나 곧 먹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길쭉하고 홀쭉한 몸매

맵시 있고 선명한 마디

윤기 있고 매끈한 껍질

나는야 귀여운 밀웜이라네

그럼 뭐하나? 어차피 먹이일 뿐인데


자신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적극적인 삶의 의지를 잘 보여줄 수 없다. 애초에 본인들이 키워진 이유가 누군가의 먹이가 되기 위해서라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러나 항상 돌연별이 같은 존재가 있다. 그것이 바로 호이이다. 호이는, 우표동이 밟아서 부스러뜨린 스티로폼을 삼키게 된다. 밀원들도 스티로퐁들의 공격에 항상 속수무책일 장도로 이것은 골칫덩어리이다. 인간들에게도 편리한 물건이지만, 마지막 처리를 생각하면 꽤 골치아픈 물건이다. 


그런데 그것을, 우연히 호이가 꿀꺽 삼킨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도 몰랐지만, 밀웜은 스티로폼을 녹일 수 있는 침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된 밀웜특공대의활약을 이 책에서는 보여준다. 


그리고 패배에 젖어 있던 그들의 노래가 바뀐다. 


우리의 강력한 침방울 한 방에

놈들이 무서워 벌벌벌 떤다네

지구의 운명은 우리에게 달렸지

나는야 위대한 밀웜 특공대

실제로 밀웜은 스티로폼을 녹일 수 있다고 한다. 그 양이 적긴 하지만, 이 연구가 계속된다면 스티로폼도 지구환경을 나쁘게 하는 데서 조금 벗어날 수 있을 듯하다. 인간의 미래먹거리에서 지구환경을 구하는 역할까지 하게 된 밀웜특공대. 그 활약을 기대할 만하다.


다만, 이 책이 밀웜이 주인공인 상태에서 인간중심의 서술이 조금 아쉽긴 했다. 어차피 의인화를 하게 되면 인간의 생각대로 움직이긴 하겠지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