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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킹메이커 - 8인8색 참모들의 리더십
박기현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작금의 상황은 관심을 넘어서 비판의 단계까지도 요구한다. 내 손으로 대통령 투표에 참여한 것이 벌써 4번을 넘어섰다. 나에게 투표권이 없었던 때를 제외하고서라도 4명의 대통령이 바뀐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말의 기대를 품어보지만 결국은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정치인들에게 신물이 날 지경이다. 결국 정권은 바뀌었어도 하는 짓은 똑같다는 말이다.
이럴 때, 조선의 킹메이커라는 책을 통해 조선의 왕과 역사를 바꾼 참모들의 리더십을 되돌아보는 것은 의미 있어 보인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고, 또 과거를 통해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고 또 그때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신 조선과 그 이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수가 있으므로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8명의 참모들을 이야기한다. 군주를 업고 새로운 세상을 꿈꾼 정도전, 스스로 군주를 선택한 하륜, 꼼꼼한 군주의 실무형 참모였던 황희, 세조의 오명을 치적으로 덮은 신숙주, 역량이 부족한 중종을 군주로 키운 조광조, 초유의 전란을 슬기롭게 극복해낸 유성룡, 실리추구로 절체절명의 조선을 구한 최명길, 군주의 든든한 보디가드가 되었던 채제공이 그 8명이다.
이들 중에는, 신숙주나 최명길처럼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인물도 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으되, 정권을 쥐고 나면 평가가 달라진다.’(p.132)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여러모로 심기를 불편케 한다. 도덕적 자질을 빌미로 그 사람의 능력을 깎아내리는 청문회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럴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데 그 업무에 적당한 사람인가 아닌가는 아예 거론도 하지 않은 채 도덕적 자질에만 매달리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터이다. 신숙주처럼, 당대로서는 엄청난 배신자요, 변절자였지만, 그가 세조와 함께 이룬 것들은 과히 업적이라 할 만한 것들이었다. 때로는, 털어서 나오는 먼지보다, 그의 능력이 우선될 필요도 있다. 세조가 그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가 청량리의 표본으로 알고 있는 황희에게도 허물이 많지 않던가? 물론 이렇게 결과만을 놓고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되기는 하나, 지나치게 강직하여 부러지느니, 조금은 완급을 조절하여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치 않을까?
이 책에서 제시한 인물들은, 왕의 권한을 넘어서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정치철학을 제대로 펼친 인물들이다. 왕들의 업적이라 칭해지는 것들 중 다수가 정치참모들의 협력과 실천이 없었더라면 이루지 못했을 일들이다. 믿고 맡겨주는 왕이 있었고, 왕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현해낼 수 있는 참모가 있었던 시기가 바로 태평천하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이 내 관심영역에 들어온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유성룡이다. 왕이 왕답지 못한 몽니를 드러내는데도 왕을 넘어서지 않으면서 자신의 역할을 해낸 인물이다. 때로는 대통령보다 인기 많은 정치인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가 바로 그런 인물이 아닐까? 천하가 태평스러운 시대였다면 그의 이러한 진가는 어떤 식으로 발현되었을지도 궁금하다. 물론 전란 속에서 그의 자질이 빛을 발한 인물이었지만. 또한 유성룡의 추천을 받은 이순신 역시 전쟁이 없었더라면 자신의 자질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자신이 행한(혹은 자신이 결정한)일에 대해 소신 있게 정당성을 밝히지 못하는 정치인이 많은 때에는 더욱 그렇다.
민생과 국제외교 모두 불안한 요즘이다. 정치인들이 정치적 소신도 없이 자신의 입지에만 신경 쓰느라 망쳐놓은 게 한둘이 아니다.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지 되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