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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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한 바보'를 그만두기는 쉬웠다. '난 아는 게 별로 없어.' 그렇게 인정하고,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점검하는 습관을 익히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크게 나아진 건 없었다. ‘정직한 바보도 바보도 바보는 바보 아닌가. 나이 오십에 바보라니.’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래야 별건 아니었다. 과학교양서를 읽으면서 생각하고 느낀 게 다였다. 그래도 꾸준히 하니 바보는 면한 것 같다. 그게 자랑이냐고? 그렇다. 나는 ‘운명적 문과’다. 그 정도만 해도 뿌듯하다. 어디 자랑하고 싶다.(p.19~p.20)

유시민 작가의 새책을 읽었다. 제목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라니.... 평소 나 역시 완전 문과형이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어설픈 문과형이랄까? 문과로도 완벽하진 않지만 이과로는 완전 꽝이기에, 의도적으로나마 책을 읽을 때 과학 도서를 포함시키곤 하였다. 그렇지만 역시 이해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제법 쉽게 설명한 책이나 에세이처럼 스토리텔링된 책이 많아서 조금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유시민 작가가 문과의 마음을 대변하며(그러기를 바라며) 과학 공부를 하는 과정을 말하나 싶어 반가웠던 것이다. 유작가는 본인이 문과형이라 어려웠다고는 하지만 서울대를 나온 문과형은 그래도 좀 나을 것이다. --> 문과 이과 구분에 큰 영향이 있을까 싶은...

그런데 일반인인 우리를 떠올려보자면, 수학이나 과학 점수가 저 바닥에서 놀고 있거나, 노력하고 때로는 돈을 들여도 점수 향상이 없는 사람들이 문과를 많이 택하지 않았나싶다. 요즘이야 취업을 고려해서 이과를 더 많이 택한다고 하나... 어쨌든 나는 국어 점수 하나 믿고 살았던 문과형으로서... 음음.. 그래도 과학책을 읽을 때 제법 재미를 느끼곤 했는데 숫자만 안나오면 말이다.

유시민 작가가 말하는 과학공부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따라가보기로 했다.

"인문학이 진짜 위기에 빠지는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때다. 나는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닌지 의심한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굳이 과학 공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인문학 위기론을 꺼냈다. 나는 인문학자가 과학을 공부하지 않고 과학자들이 찾아낸 사실을 활용하지 않는 데서 인문학의 위기가 싹텄다고 본다. 운명적 문과로서 인문학 책만 읽으며 살았던 내가 요즘은 인문학 책이 재미없다. 강력한 지적 자극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무엇인가를 새로 아는 즐거움을 주거나 오래된 생각을 교정하도록 격려한 것은 과학 책이었다. 설마 나만 그랬겠는가?(p.27)

"어느 하나 쉬운 질문이 아니었지만 인문학자들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대답하려고 했다. 그게 과학자와 다른 점이다. 과학자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나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말하고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한다. 인문학자가 잘못한 건 없다. 인문학은 그런 학문이다. 과학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인문학에는 진리와 진리 아닌 것을 가르는 분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매우 그럴법하거나 그럴 것 같기도 한 주장과, 별로 그럴듯하지 않거나 아주 말이 안 되는 주장이 있을 뿐이다. (p.28)"

이 책을 읽으면서 유시민 작가의 오디오 팟캐스트를 들었다. 책을 읽고 난 뒤 들어서인지 내용이 이해가 쏙쏙 되면서 작가가 왜 이 책을 썼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겉만 그런 게 아니라 속도 달라졌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주제와 내용은 아는데 저자 이름과 책 제목을 떠올리지 못하는 때가 잦아졌다. 어떤 사건과 사람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화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내용은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가득 채운 주연배우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끙끙댄다.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짧아졌다. 예전에는 밤늦게까지 써도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오후만 되어도 속도가 느려진다. 세상에 대한 생각, 뉴스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 주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바뀌었는지 나도 다 헤아리지 못한다.

모든 면에서 오늘의 나는 10년 전과 다르다. 한 달 전과도 같지 않다. 어제의 나와 같은지도 의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언제나 나를 나로 여긴다. 남도 나를 변함없이 나로 대한다. 의사는 예전 진료기록을 보면서 오늘의 나를 진단하고, 국세청은 지난해 소득에 대한 세금 고지서를 올해의 나한테 보낸다. 법률적·생물학적으로는 내가 나라는 사실은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다. 손가락 지문은 흐려졌지만 형태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행정안전부 데이터베이스에 지문 정보가 들어 있다.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동일인임을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철학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나를 나로 인식하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자아'는 달라졌고 더 달라질 것이다. 내 철학적 자아를 어떻게 특정할 것인가. 어느 시점의 내가 다른 시점의 나와 다르다면 어느 것이 나인가? 오직 현재 시점의 자아만 의미가 있다면 과거에 내가 한 일을 이유로 지금의 나를 비판하거나 칭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라고 말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가?(p.44~45)"

과학공부를 하면서도 인문학자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솔직히 나는 그정도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명제는 사춘기 시절 이후 내게 영향을 끼친 적이 없다. 사는 게 뭔지 내가 누군지 이런 거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아니 그런거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나는 유시민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그가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과학적 사실이나 인문학적 소양을 발 뒤끝이나마 따라갈 능력도 없지만 나로 하여금 각성을 하게는 하였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50년쯤 남았다고 볼 때,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하지는 않갰나. 나 역시 지금까지 배척했던 과학에 조금은 더 관심을 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

팟캐스트에서 '인문학을 하다가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과학을 하다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많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문학에 매진하다 보면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에 쉽게 접근하기 쉽지는 않다. 그러나 과학을 한 사람들에게 '인간, 사람'을 공부하는 학문으로는 생각보다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공감을 하다가,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과학'을 오로지 돈벌이를 위한 기술'로만 치부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이 세태를... 인문학이 그래도 조금은 치유해줄 수 있지 않을까?

"자아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보다는 뇌의 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 때문에 달라질 가능성이 더 높다. 인문학보다는 뇌과학과 신경생리학이 전향이라는 행위를 더 잘 설명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p.93~p.94)"

"소프트웨어의 성능 개선과 데이터 증가 효과가 하드웨어 퇴화로 인한 기능 저하를 상쇄하는 동안은 더 지혜로워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화로 인해 하드웨어가 심하게 나빠지면 소프트웨어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한다. 기존 데이터를 상실하는 속도는 빨라지고 신규 데이터 유입은 줄어든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보다 덜 똑똑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덜 똑똑하다. 그렇지만 앞으로 더 어리석어질 것임을 알 정도로는 똑똑하다. 뇌과학자들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거꾸로 뉴런의 연결 패턴에 영향을 준다.' 자아가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는 말이다. 물질이 아닌 자아가 물질인 뇌를 바꾼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내 뇌는 매 순간 퇴화하고 있다. 내 자아는 날마다 어리석어지는 중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덜 어리석어지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세상과 연대하며 낯선 곳을 여행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뇌에 새로운 데이터를 공급하는 것뿐이다. 어리석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유일한 방법이다.(p.99~100)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이 준 이 질문에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생물학을 들여다보고서야 뻔한 답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았음을 알았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남한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 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p.127)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그동안 조금씩이라도 과학책을 읽으려고 노력했던 나를 칭찬한다. 그것이 실제로는 내 머리 속에서 지식으로 형성되어 있지는 않을지언정 조금이나마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는 않았을까?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다. 한편으로는 잘하는 것만 갈고 닦아도 모자랄 시간에 잘 못하고 어려운 것을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내가 진로를 정하고, 성과를 내야 할 때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딸아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고교학점제 때문에 지역 대학에 가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정말 재미가 있고 새로운 걸 알게 되어 즐겁다는 것이다. 그 공부가 왜 그렇게 즐겁고 재미있는지 알아? 시험을 치지 않기 때문이지. 아는 즐거움은 분명히 있고 그것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서는 테스트 같은게 없어야하니까^^ 이것과 같지 않을까? 내가 지금 과학 공부를 한다고 해서 (의외로 늦게 트인 머리로 세상에 일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달라질 건 거의 없겠지만 그동안 어렵다고 포기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시도해보는 것은 분명 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할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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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츠나구 1 - 산 자와 죽은 자 단 한 번의 해후 사자 츠나구 1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오정화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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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라고 해서 라이온인 줄 알았다. 이럴 때는 원제가 써 있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사자'라고 쓰고 '츠나구'라고 읽는다고 하는데, '사자'는 '使者' 이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연결해 주는 중개인 정도?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츠나구는 10대 소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츠나구를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그가 소년이라는 것에 놀라고, 진짜 죽은 자와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츠나구는 의뢰인의 부탁을 받고 의뢰인이 만나길 희망하는 망자와 교섭한다.(P.283)

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죽은 자와의 만남을 원한다. 만약 나에게도 츠나구와 연락을 할 수 있는 연락처를 알게 된다면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주변에서 죽은 사람이라면 20대의 젊은 나이에 먼저 가버린 친구들이 있고, 그리고 가까운 가족들 중 몇 명. 하지만 나는 그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 책 속 의뢰인들은 각자의 이유로 죽은 자와 만나고 싶어한다. 갑자기 죽어버린 연예인 미즈시로 사오리를 만나고 싶었던 히라세 마나미는 낮은 자존감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생활하던 모습에서 조금은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세상이 불공평한 건 당연한 거야. 모두에게 평등하게 불공평해. 공평이라는 건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아."(P.42)

미즈시로 사오리가 했던 말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히라세에게 했던 이 말은 세상에서 자기만 불공평한 일을 당하고 있다 생각하던 히라세를 그래도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게 해준 힘이었을 것이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연결해주고 만나게 하는 츠나구지만, "츠나구가 된 사람은 자신이 만나고 싶은 망자와 스스로 교섭할 수는 없"고, "다른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는 있지만, 본인을 위한 의뢰는 누구도 이루어줄 수 없"다. 한 번 츠나구가 되면 다음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을 물려줄 때까지. (P.291)

츠나구 소년은 츠나구로서 일을 하면서 츠나구라는 존재에 대해 알아간다. 실제로 나타나는 망자를 '복제품'으로 생각했을 때, 그건 망자에 대한 모독이 아닌지 고민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AI로 되살려내어 VR로 만나는 죽은 이에 대한 TV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저렇게까지 해서 만나야 할 이유가 있냐며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츠나구 소년이 생각하는 의구심들에 공감할 수 있었다.

"길을 잃은 사람들이 길을 찾고 싶어 매달리는 게 점술이지."

"츠나구도 그런 목적을 위해 존재하면 된다는 말씀인가요? 그건 죽은 사람에 대한 모독 아닌가요? 실제로 죽은 사람은 그대로 잠들어 있는데 복제품이 자기를 대신한다는 거잖아요."(P.359)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츠나구란 무엇일까? 망자는 산 사람을 위해 존재해도 괜찮을걸까? 망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모두 산 사람의 이기적인 감정 아닐까? (P.374)

그것은 분명 누군가의 죽음을 소비한다는 의미에서 산 사람의 자기기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누구에게나 망자의 시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디에 있어도, 무엇을 해도, 신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때로는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과 같다. 본 적 없는 신에 대한 믿음보다 절실하게 구체적인 누군가의 모습을 항상 곁에 두는 것이다.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그들의 잔소리와 꾸짖음마저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P.375)

요즘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걸 보면 판타지적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고, 죽은 자와 산 자가 다시 만나는 내용도 많다. 인간이기에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그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회한으로,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으로,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그렇게 남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주변 사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여름 날 읽을만한 시간 순삭 소설이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서 읽었고, 솔직한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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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피스토
루리 지음 / 비룡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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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그림책은 아무래도 먼저 손이 간다. 이번에는 루리작가의 메피스토. 그림책과 그래픽노블의  중간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림책은 작가의 상상과 생각을 가장 다양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외형을 담아내는 형식도 내용을 드러내는 형식도 그림책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까. 메피스토는 다양한 레이아웃에 악마와 소녀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그림책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이 그림책의 화자인 메피스토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문학작품에서 메피스토를 변형하여 차용하고 있을 것이다. 떠돌이 개의 모습으로 지상으로 내려 온 메피스토는 귀가 들리지 않는 외톨이 소녀와 처음 마주하게 된다. 


"엣날 엣날에 신과 악마가 인간 하나를 두고 내기를 했어. 악마는 그를 타락시킬 수 있다고 했고, 신은 그를 구원할 수 있다고 했지. 악마나는 인간과 함께 온갖 못된 짓을 하고 다녔어. 이겼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신이 나타났어. 모두를 구하러 온 거야. 못된 짓을 한 인간도, 상처받은 인간도, 모두. 이야기는 그렇게 모두가 구원받고 행복하게 끝이 나는 듯했지. 악마 메피스토만 빼고." 


떠돌이개로 태어난 메피스토와 귀가 들리지 않는 외톨이 소녀의 만남. 이 둘은 서로의 마음을 열고 가까워진다. 그림책은 둘의 이야기를 보여 준 다음, 개의 이야기, 소녀의 이야기, 개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그들의 관계를 보여준다. 


"지옥은 어떤 곳이냐고 네가 물었어. 그곳에 가면, 가장 미워했던 존재의 모습으로 평생을 지내게 돼. 그래, 지옥에 가면 너는 네 모습 그대로,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지내게 되겠지."


"천국은 어떤 곳이냐고 네가 다시 물었어. 나도 몰라. 가장 좋아했던 존재의 모습으로 살게 되려나. 그래, 그럼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될 거야… 인간이 되고 싶냐고 네가 물었어. 나는 어째서인지 고개를 끄덕였어."


그들이 했던 행동과 장난은 소녀가 사진을 찍어 붙인 사진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소녀는 늙어가고, 악마인 메피스토는 늙지 않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본다. 인간은 나이가 들고 늙어가면서 노화가 오고 치매가 오는 등 변화를 겪게 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메피스토는 괴롭다. 자신마저 잃기 시작한 소녀를 위해 메피스토는 금지된 마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소녀의 마음을 읽게 된 메피스토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악마인 메피스토가 떠돌이개로 태어났다는 설정을 떠나서 우리 곁의 반려견과 우리의 삶을 대입해볼 수도 있다. 깊은 울림을 주는 내용으로 생각꺼리가 많다. 어린이들과 읽어볼 수도 있지만, 어르신들과 함께 읽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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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고 다정하게 말 잘하는 아이들 - 어린이를 위한 똑똑한 말하기 동화, 2024 아침독서 추천도서 한경 아이들 시리즈
류윤환 지음, 김현영 그림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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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읽기를 가르친 적이 있다. 읽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말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코로나로 3년 가까이 비대면 상황에서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아이들도 많아졌다. 


이 책은 초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거절을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쓴 말하기 동화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달라지고, 친구의 반응이 달라지고 자존감과 생활이 달라진다.


20명 쯤 되는 아이들이 6년동안 학교를 다니다보면 어지간해선 거의 다 한 반이 될 것 같다. 6~70명이 한 반이면서도 14~5반씩 있었던 우리 때에는 같은 반은 아니어도 한 동네 살면서 마주치는 아이들이라 낯설 것도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윗동네 아랫동네 대결도 하고, 어우러져 놀던 그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니 이 책의 주인공인 서윤이도 5학년이 되어 처음 반에 들어섰을 때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없자 힘들어한다. 새학기 첫만남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다.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하고나 잘 어울리는 것 같은 친구도 어느 정도는 긴장을 한다. 이럴 때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가벼운 인사로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 처음 마났을 때는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까? 저자는 과거의 경험 묻기, 공통점 찾기, 이유 묻기, 감정 읽어주기 등을 제시한다. 


이 책에는 먼지요정이 등장한다.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방안도 제시하고 용기도 준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어울리는 무리가 달라지고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도 달라지자 민재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먼지요정은 민재에게 친구들과 대화할 때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고,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는 잘 듣고 있다가 참여하라는 것과 같은 조언을 한다. 


이 에피소드가 눈에 들어왔던 우리집 아이도 매년 겪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관계가 이전과 조금 달라지거나 대화가 불편해졌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럴 때 이렇게 시작해보자.


"요즘 우리 사이가 어색해진 것 같아."

"내가 너한테 실수한 게 있을까?"

"손흥민 선수 이야기하고 있었구나. 나도 골 넣는 장면 봤어."

"재미있게 들려서 옆에서 듣고 있었어. 나도 같이 이야기하자." (p.53)


친구 사이에도 '비교'는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단초가 된다. 일상에서 무심코 비교하는 말을 하게 되면 서로 상처를 주게 된다.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해보자.


"네가 한 말은 나랑 xx를 비교한 말이잖아.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고칠게. 하지만 내가 왜 xx와 비교당해야 하는지 알려줄래?"

"미안해. 내가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함부로 말했어. 비교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웟는데도 실수를 했어. 방금 한 말은 취소할게." (p.85)


아이들은 마음으로는 알지만 실제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때가 많다. 예전에는 형제들 사이에서 또는 이웃 간에 여러 경험을 하면서 몸으토 터득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아이들의 서투른 행동을 야단칠 게 아니라 잘 가르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친구가 기분 나쁘게 말했을 때나 실수를 했을 때, 자기 감정대로 말을 내뱉으면 결국 싸움이 나거나 관계가 훼손된다. 아이들끼리 해결이 되지 않을 때는 어른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그리고 친구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싶다면, 그때는 이렇게 해보자. 


"네 생각이 정리되면 천천히 말해 줘."

"조금 느려도 괜찮아. 나는 잠시 정리하고 있을게."

"나는 네 생각이 궁금해. 넌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뭐야?"(p.177)


한 반 아이들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에피소드들이 현장감 있고 현실에서 있음직하게 여겨진다. 친구와의 관계가 어려운 아이들이라면 이 책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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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 13일 동안 이어지는 책에 대한 책 이야기
요시타케 신스케.마타요시 나오키 지음, 양지연 옮김 / 김영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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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을 여러 권 읽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스타일은 아니다. 기존에 읽은 책들을 보면 처음엔 특이하기도 하고 짧으면서도 여운이 느껴졌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다. 다만, 이런 형식의 책에 익숙하지 않다면... 여운보다 여백이 신경쓰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요시타케 신스케와 마타요시 나오키가 함께 쓴 책이다. 


"그 책은 표지에 두 남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 책입니다. 어느 왕국에서 만든 책이죠. 그 책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요시카케 신스케와 마타요시 나오키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책을 좋아하는 두 남자에게 왕은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진귀한 책을 찾아와서 들려주기를 원한다. 두 남자는 경비를 받아들고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1년 후 돌아와서 그 책에 대해 들려준다. 


첫째날 밤 마타요시 나오키는 이런 책을 소개한다. 엄청나게 빨리 달려서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책, 경찰에 쫓기는 책, 책장을 넘길 때 팔락 소리가 조금 일찍 나고 어떨 때는 넘기지도 않앗는데 팔락 소리가 나서 짜증이 나는 책 등등. 


둘째날 밤에는 요시타케 신스케가 이어간다. 태어날 때 한 권씩 나라에서 주는 책,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이가 찢어버린 책, 어린 시절에만 읽고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책 등등.


두 남자는 상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책을 소개한다. 가끔은 호러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너무 재미가 없어서 책을 싫어하게 하기도 하고, 가끔은 읽지 않앗지만 새로운 나를 만들어줄 책이기도 하고, 연쇄살인만큼 섬뜩한 책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가 내가 빌려준 책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굳이 읽지도 않을 거면서 책을 빌려달라고 하기도 한다. 정말 읽고 싶으면 사서 읽으라고. 도서관 가서 빌리던가. 왜 굳이 나한테 빌려달라고 하고선, 돌려주지 않는거지? 아마도 그들은 그 책을 빌려와서 누구에게 빌렸는지, 왜 빌렸는지, 저걸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조차 모른 채 어느 구석에 처박아놓았을 터이다. 언젠가 내 책을 돌려달라고 말했다가, '빌린 적이 없다'는 대답을 듣기도 했고, '이 책은 내 책'이라며 자기가 돈 주고 샀다는 말도 들었다. 빌려준 나로서는 기암할 일이었지만, 그런 사람과는 다시 안 만나면 그만이었다. 가끔 책을 빌려주면서 인간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 책은 꽃밭에 두면 사랑스러워보인다. 콘크리트 위에 두면 고독해 보인다. 정글에 두면 야생 동물처럼 보인다. 싫어하는 사람이 들고 있으면 재미없어 보인다. 웃는 사람이 들고 있으면 왠지 재미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 책은 책장에 꽂아 놓으면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모든 순간, 책 내용은 똑같은데도." (p.58)


일곱째날 밤 마타요시 나오키의 책이야기는 기억에 꽤 오래 남을 것 같다. 다케우치 하루와 미사키 신이치가 그림과 말풍선의 글로 주고 받은 교환일기가 이어진다. 그 책은 아무도 죽지 않는 내용이라고 했다. 하지만 긴 여운이 남는다.


여덟째날 밤 요시타케 신스케는 표지에 자신의 얼굴이 실려 있고 주소가 있고 sns계정도 공개된 책을 보았다. 개인정보가 모두 까발려진 책. 공포에 휩싸인 날이었다. 그러나 진짜 공포는 3개월 후에 찾아왔다. 그 책이 출판된지 3개월이 지났지만 자신의 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아, 정말 공포스럽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나는 확실히 요시타케 신스케의 글보다 마타요시 나오키의 글이 더 마음에 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뭐랄까? 난 함축된 짧은 글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서툴다. 두가지 버전을 왔다갔다 하는 재미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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