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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거울 ㅣ 메타포 1
미하엘 엔데 지음, 에드가 엔데 그림, 이병서 옮김 / 메타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거울 속의 거울]을 본 적이 있는가. 거울 속의 거울은 끊임없이 똑같은 상을 보여줌으로써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현실이 아닌가를 구분할 수 없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이 그러하듯, 이 책의 내용이 바로 거울 속의 거울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맨 앞으로 돌리기를 수차례, 결국 맨 앞이라는 순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깨달은 다음에야, 편안하게 읽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끝까지 읽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포기했을 지도 모를 책이었다. 그러나, 순서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나자, 짧은 단편 읽듯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자, 희한하게도, 책 중반을 넘어서자 익숙한 인물들, 익숙한 소품들이 재차 등장하면서 책을 전체적으로 바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거기서부터 이 책은 재미를 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 순간부터 다시 그 인물과 소품을 찾아 앞으로 넘기지는 않았다. 그건 나를 또다시 지치게 할 게 뻔하니까. 그냥, 끝까지 읽어나가는 사이에 미하엘 엔데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기를 바랐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오, 매력적인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몇 번을 맨 앞으로 되돌리다 역자후기를 읽어보게 되었는데, 솔직히 소설보다 역자 후기가 더 어려웠다. 그것은, A부터 Z까지 퍼즐 맞추기를 하듯 읽기에는, 번역텍스트로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작품의 원문에 나오는 수많은 단어 가운데 'Y'로 시작하는 유일한 단어 'Ypsilon'을 내가 어떻게 찾아내겠는가. 원문에서 주는 묘미는 번역작을 읽는 사람이 감수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문학작품을 읽는데 있어서 그 감상 혹은 의미를 찾는 일은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가 의도한 바가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의도를 알아차림으로써 그 작품이 빛을 보겠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감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한 단어나 문장을 통해 의미를 찾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독자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18. 남편과 아내가 전시회에 가려고 한다 : 전시회에서 남편과 아내가 본 작품들을 한번 보자. [양, 총채, 사막의 모래, 불타는 횃불, 그물, 상자 모양 추시계, 비둘기 집, 시한폭탄, 문자, 물고기 눈, 양철통, 목발, 달걀, 이파리, 망원경, 서커스 채찍] 전시회의 작품들은 이 책의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중요한 소재들이다. 책 속 주인공들에게는 현실인 세계가 또 다른 책속 주인공들에게는 의미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는 전시회의 작품에 불과하다.
이 책 전반에 걸쳐 나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올바로 인식함으로써 과제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과제인 셈이었다. (p.19)
“모든 걸 다 놓아야 해!”, “억지로 하는 상황이 되기 전에, 너 스스로 자진해서 해. 그렇지 않으면 때를 놓치게 돼.”, “그 불안도 놓아야 해!”, “너 자신도 놓아야 해!”(p.116) “별들은 서로 부딪치는 일 없이 저마다 자기 궤도에서 서로서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 별들은 서로 피붙이기 때문이야. 우리 역시 그래야만 하는 거야. 나의 일부는 네 속에 있어. 우리는 서로서로 받혀주는 거야. 그것 말고 아무것도 우리를 받혀주지 않아. 우리는 원을 그리는 별이야. 그러니 모든 것을 버려라! 그리고 자유롭게 되라!” “너는 자유롭게 되거나, 아니면 너는 존재하지 않게 될거야.” (p.121-122)
“자신이야말로 이 세계가 존재하도록 자기 주변의 세계를 창조해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p.128)
24. 검은 하늘 아래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가 있다 : 무대 뒤의 피가드가 관객 중의 한 아이의 상상에 의해 엔데로 되살아나고, 엔데는 아이에게 미하엘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아버지는 아이의 상상에 의해 태어나고, 아버지는 아이를 구체화시켜준다. 내가 상상하고 창조해내는 것들이 나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그것이 나의 존재를 의미있게 만든다.
26. 교실에는 끊임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 24에 이어 역시 상상이 큰 역할을 하는 장이다. 교실에 갇혀서 빠져나가지 못하던 사람들이 상상을 통해 칠판 속으로 사라진다. 그들은 자신의 배역을 창조해내고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떠난다.
27. 우리는 배우들의 복도에서 몇 백 명이나 되는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 그들은 모두 자신의 배역을 연기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고 의상을 준비한다.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이 삶은 우리가 창조한 배역을 연기하고 있는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9. 서커스가 불타고 있다 : 꿈에서 깨어나라. 여기는 현실이 아닌 꿈일 뿐이다. “모든 것은 꿈. 모두 꿈이란 걸 난 알아. 내가 존재한다고 꿈꾸기 시작한 때부터 난 쭉 알고 있었어. 이 세계는 현실이 아니야.” (p.362)
거울 속의 거울은 이렇게 현실이 아닌 세계를 마구 만들어낸다. 결국은 어느 것이 현실인지 아닌지조차 구분되지 못하게 말이다. 결국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 육체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나 역시 아무도안, 아무도 아닌 사람일 뿐이다. 존재에 대해 끊임없는 물음을 던지는 책, 그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생각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묘한 매력으로 끌어당기는 책. 결코 한 번 읽어서는 그 맛을 모를 것이다. 입안에서 씹고 또 씹어서 넘긴 음식처럼 그렇게 책을 읽고 또 읽게 만든다.
덧붙임 : 번역자의 유머감각일까? “그건 그 때그 때 달라요.”(p.405) 띄어쓰기에 유의해 읽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