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원 올 에이지 클래식
수산나 타마로 지음, 김혜란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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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의 원’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 지도 며칠이 지났지만, 무슨 얘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를 고민했다. 한마디로 ‘마법의 원’은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 현대 사회의 문제들은 대부분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싸 안을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은 마치 종교와도 같은 힘을 발휘한다.

마법의 원 안에 존재하는 것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며 조화롭게 살아간다. 그런데 마법의 원 밖으로만 나서면 팔라치치아 일당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을 만나게 된다. 마법의 원 안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체들은 마법의 원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외부의 힘, 즉 팔라치치아 일당이 마법의 원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게 되자 현실의 세계로 나오게 된다. 늘 “왜?”라는 질문을 달고 다니던 아이 ‘릭’은 스스로를 늑대라고 생각한다. 인간들의 세상으로 나온 릭은 트리폰조라는 정치인의 정치적 야욕에 의해 인간교육을 받는다. 이 소설은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자면, 비인간화 된 세상, 환경파괴적인 세상, 텔레비전의 노예가 되어버린 세상을 풍자하고 비판하지만, 나는 자꾸 다른 생각이 든다.

마법의 원 안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은 자기들만의 안락함을 누리고 산다. 어찌 보면 그들은 선택받은 존재들인 것이다. 현실 속의 아이들은 텔레비전의 노예가 되어 쇠뇌당한 채 살아가지만, 마법의 원 안의 ‘릭’은 버려진 아이지만 늑대개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우르슐라를 통해 교육을 받았다. 자기 스스로 늑대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인간다운 아이로 자란 것이다. 어찌 보면 그는 선택받은 삶을 살았다. 팔라치치아 일당들이 불도저로 밀어버린 후 그 속에서 살아남은 ‘릭’이 우연히 트리폰조와 팔라치치아 일당의 음모를 알아차리고 고양이 도도아줌마와 치폴리니 아줌마의 도움으로 세상을 구하게 된다. ‘릭’은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영웅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는 팔라치치아 일당들에 의해 세뇌당하고 인간성을 잃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되찾게 되었지만. 아마도 그래서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망설였던 것 같다. 나는 이 세상을 뒤엎을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게다가 나는 트리폰조와 팔라치치아 일당들의 모습에서 현 정치인들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그것도 모자라 입도 막으려고 발버둥치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자꾸 겹쳐지는 것이었다. 결국은 그들도 트리폰조와 팔라치치아 일당들이 자신의 수에 넘어갔듯이 그렇게 쓰러질 날이 올 것이다. 어린 아이(릭)와, 고양이 한 마리(도도)와 아줌마(폴리치니)의 힘은 강하지도, 크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작은 힘들이 모여서 큰 힘이 되었던 것을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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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카프카 대표 단편선 클래식 보물창고 8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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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변신은,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읽어본다. 보통 어떤 책을 다시 읽을 일이 많지는 않다. 어떤 계기가 주어지거나, 엄청난 감동을 얻었을 때가 그렇다. 내가 청소년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바로 올 에이지 클래식 시리즈의 책들 때문이었는데, 이번에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읽게 되었다.

교과서를 통해 만나는 한국 근현대 단편소설처럼, 다시 읽을 필요를 못 느낄 만큼 그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소설 중에 하나가 [변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같은 소설임에도 내가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달리 읽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레고르 잠자는, 집안을 위해 희생하면서 살아 온 인물이다. 대부분의 가장들이 그러하듯 그레고르 역시 자신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늙으신 부모를 대신해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하고, 형제자매의 학업과 독립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우는 것에 대해 불평불만을 해본 적도 없다. 우리 시대의 가장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가끔 느껴지는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문득, 책을 읽다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 시대는 예전과는 달리 한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분위기다. 자기계발은, 현재의 업무에 국한되어 있지 않으며 의무에서 벗어나 한 개인으로서의 권리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분위기가 그렇다고 해서 덥석 편승하기도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혹여 의무를 소홀히 한 채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쉽기 때문이다.

그레고르의 변신은 ‘벌레’라는 형태로 표현되었다. 우리가 흔히 밥만 축내고 보탬이 되지 않는 인물을 ‘식충이’라 표현하듯, 아주 하찮은 인물을 ‘벌레’만도 못하다고 말하듯, ‘벌레’는 바로 인간 이하의 대상으로 지칭된다. 지금까지 가족과 가정을 위해 헌신한 결과치고는 너무 잔혹하다.

그레고르는 벌레로서 삶을 마감하게 되었지만, 가족들은 또 다른 삶을 이어갈 것이다. 끔찍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변신’외에도 많은 단편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나는, 카프카의 다른 단편은 거의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읽어보게 되어 참 좋았다. ‘포세이돈’이나 ‘바다요정들의 침묵’, ‘법 앞에서’ 같은 단편들이 마음에 들었다.

카프카의 ‘변신’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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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법칙 메타포 9
낸시 월린 지음, 황윤영 옮김 / 메타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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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살 매슈가, 아홉살 동생 에미에게 쓰는 편지글의 형식을 띄고 있는 소설이다. 한편으로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 혹은 그런 아이들의 주변인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매슈는, '이 세상에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채 내둘려지는 폭력, 그리고, 그저 남의 일-혹은 남의 집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엄마 몰래 쿠키 하나를 먹었다고 목에 식칼을 들이대는 엄마의 모습은 극단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 아이들을 자동차에 태우고 광란의 질주를 하나는 엄마, 바닷가 바위 위에서 아이를 거꾸로 든 채 위험한 놀이(?)를 하는 엄마, 화장실을 사용못하게 하거나, 집안에 가둬놓는 엄마, 아이들은 원하지도 않는 엄마만의 재미를 위한 많은 행동들을 참고 견디는 것만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회복지사에게 털어놓을 수도, 주위 사람들(아빠나, 이모를 포함하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것은, 아니 그러지 못한 것은 그 결과를 뻔히 짐작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결과 더 나빠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동학대의 많은 부분이 가장 가까운 사람, 즉 부모들에게서 일어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가장 사랑하고 보호해 줘야 할 부모들이 '다 너를 위해서, 다 너를 사랑하기때문에'라는 말로 아이들을 향한 폭력의 칼을 휘두른다. 나는 이 폭력의 칼이 비단 니키(매슈의 엄마)의 행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제도(또는 교육제도)에 의해 과도한 경쟁으로 내몰린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니키의 폭력과 모습은 다르지만, 우리는 또다른 사회적 폭력을 아이들에게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어른들을 믿지 않는다.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는 어른들은 주위에 없다고 믿어버린 아이들이 살나남기 위해서 "엄마 마음대로 하세요."라며 엄마의 기분을 맞추고, 수많은 변명거리를 만들어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매슈가 에미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글도 있다. "모든 인간의 본능과 책임은 먼저 자신을 돌보는 것이라는 데에 다들 동의하는 것 같더라고. 사람은 자기를 방어할 권리가 있어. 사람은 생존할 권리가 있지. 하지만 어째서 다른 사람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법칙은 없는 것처럼 보일까? 그것이 위험을 무릅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아고 말해 주는 법칙은 왜 없는 걸까?"(p.112)라고.

매슈와 캘리는 엄마의 폭력에 대처하고 피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방법을 터득하여 살아간다. 그러나 아직 아기인 에미가 자신을 방어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에미를 보호하는데도 힘을 쓴다. 매슈와 캘리가 어른들로부터 실낱같은 희망을 본 것은 머독 아저씨의 행동을 통해서였다. 우연히 가게에서 보게 된 머독 아저씨는 자신들을 이해할 것 같았다. 아이들이 원한 것은 상황을 크게 바꿔놓을 수 있는 영웅이 아니라 작은 관심을 보여주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부탁했을 때 나서서 우리를 도와주는 어른'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그런 일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머독'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내게는, '뭔가 도움이 될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만 하느라 세월을 보내지 않고, 행동할 거'라는 매슈의 말이 가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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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수도, 베이징
조관희 글.사진 / 창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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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나의 관심은 [중국]이다. 곧이어 있을 올림픽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 반 이상이 중국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중국에서 온 학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에게 한국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내 의무이기도 한만큼 그들에 대해, 그들의 나라에 대해, 그들의 수도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창비 홈페이지에서 책소개를 보고 구입한 책이다. 내가 필요했던 책은, 중국을 관광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중국을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책이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세개인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로, 책읽기가 조금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너무 가벼운 책들을 최근에 많이 읽은 탓도 있을 것이고, 베이징이라는 도시를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이르기까지 소개하는 동안 약간은 지루함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지명이나 인명이 예전과는 달리 중국발음으로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아는 곳과 다른 곳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앞으로 점점 더 익숙해지겠지.

중국의 역사와 더불어 현재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만하다.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베이징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후퉁'과 '징항운하', 그리고 베이징 주변의 '장성'들에 대한 글이었다. 베이징의 생활공간이라고 말하는 뒷골목 후퉁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가장 좁은 후퉁이라는 '샤오랴바후퉁'의 사진을 보자마자 어렸을 때 보았던 우리동네 골목길을 떠올렸다. 후퉁은 재개발 등으로 많은 곳이 철거되고 있다고 한다. 개혁개방 이후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중국 사회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역사적 가치를 우선할 것인가, 지금 당장의 생활불편을 해소하는 것을 우선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어디서나 충돌을 일으키는 것같다.

징항운하는, 철도나 비행기 같은 교통수단이 없었을 때 남북을 잇는 대동맥 역할을 해 온 운하이다. 과거 중국의 물자수송을 위해 큰 일을 했던 징항운하도 현대에 와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된 듯하다. 문득 현 정부의 '대운하'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중국하면 떠오르는 '장성'도 요즘은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가끔은 지키고 보호해야 할 문화유산이란 게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지가 모호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생활에 큰 불편이 없는 한은 문화재로 보호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이라는 도시를 통해 중국이라는 나라를 둘러볼 수 있었던 책. 그리고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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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야곱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
캐서린 패터슨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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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이었던가,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탔는데 앞좌석에 쌍둥이 여자 아이 둘이 앉아있었다. 똑같은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똑같은 옷과 신발, 똑같은 머리 고무줄까지 뭐 하나 다른 게 없었던 아이들이었다. 나는 쌍둥이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선천적으로 똑같이 생긴 아이들인데 굳이 옷치장까지 똑같은 걸로 하는 이유가 뭘까 라고. 내가 그 부모라면, 안 그래도 똑같은 아이를 똑같이 만들고 싶지는 않을 텐데. 그런데 정작 쌍둥이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서로 다른 것을 입혀놓으면 질투를 하거나 서로 그 옷을 입으려고 싸우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국은 둘을 똑같이 입혀놓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사라와 사라의 질투를 온 몸에 받고 있는 캐롤라인도 쌍둥이다. 그런데, 남자 아이만큼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으며 가정 경제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사라와 달리 캐롤라인은 태어날 때부터 허약하여 부모와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았고, 자라면서는 그녀의 재능뿐만 아니라 그녀의 행동, 말 하나하나 모두 주위 사람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어 살아간다. 둘은 한날한시에(아니 사라가 조금 먼저) 태어났지만 너무나도 다르게 성장했다. 쌍둥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는 형제자매들 간에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만약 사라가 쌍둥이가 아니라 언니였다면 어땠을까? 조금은 사라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이 책은 전적으로 사라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사라의 입장에 동조하며 읽어야 할 것 같지만, 정작 읽다보면 사라가 조금 답답하게 여겨지는 면이 많다.




사라는, 자신보다 캐롤라인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으며 지금의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가정 경제를 돕고 있는 것도 사라 자신이고,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고 있는 것도 사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관심과 사랑은 캐롤라인이 받고 있다. 사라가 캐롤라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부정적인데도 불구하고, 독자인 내가 보기에 캐롤라인이 특별히 잘못하는 점은 별로 없다. 결국은 사라가 적극적으로 자기인생을 살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닐까?




물론 치매기가 있는 할머니의 말에는 사라를 향한 비수가 곳곳에 숨어있기도 하고,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했던 선장 할아버지나 콜까지도 캐롤라인을 향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느꼈을 사라의 심정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러나, 할머니를 향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것도 캐롤라인이었고, 선장할아버지와 콜과의 관계를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간 것도 캐롤라인이었다. 사라가 조금만 더 자기 자신의 인생에 적극적이었다면,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무관심 속에서도 사라는 한 사람의 몫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생각했다. 주어진 조건이 똑같더라도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주변은 바뀔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의 관심이 캐롤라인으로 향해 있는 가운데서도 사라는 사라 나름의 인생을 펼칠 가능성이 많은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라스섬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캐롤라인을 향한 불만과 질투가 쌓여가는 동안, 사라는 자기 자신을 위한 투자에 게을렀다. 그저 그러한 사실들에 화가 났을 뿐 정작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무관심한 사람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기란 쉽지 않다.

해군에 들어갔다 돌아온 콜이 사라에게 한 말, “넌 하나도 안 변했구나.”(p.259)는 사라를 한마디로 표현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사라는 그 시간동안 캐롤라인이, 콜이, 선장할아버지가 바뀌었듯이 변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사라가 그걸 깨닫는 순간 사라도 변화를 준비하고 자신의 인생을 바꿔가기 시작한다. 비록 사라 자신의 자각이 아니라 선장할아버지의 충고에 의해서였지만.




사라가 뒤늦게나마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새로운 세상을 위해 발걸음을 내디딘 것에 정말 안도했다. 사람의 인생은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어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 그 기회를 이용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사라가 간호사가 되어 산골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일부만 보았을 뿐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사라의 모습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런 사라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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