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고전 읽기의 즐거움 서가명강 시리즈 15
홍진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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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일의 고전 명작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던 홍진호 교수가 그 답을 제시하기 위해 썼다.

첫 번째는 작품이 쓰인 시대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상세하게 소개함으로써 작품에서 얘기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전통적인 문학작품을 올바르게 감상하고 즐기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p.12~13)

어떤 해석이 작가가 의도한 것이었는지, 혹은 더 타당한 것인지는 여기에서 논할 바가 아니지만, 분명한 사실은 문학 작품은 그것이 시이든 소설이든 희곡이든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 뒤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줄거리가 전부인 소설도 많지만, 일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문학작품들, 특히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작품들은 줄거리 이면에 무언가 다른 것들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학작품들을 올바로 이해하고 즐기는 것은 이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 즉 우리가 '해석'이라 부르는 세심한 독서와 성찰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p.32)

우리는 대중문화라고 하는 것들을 접할 때 머리 속에서 이미 '해석'을 하고 있다. 미디어는 지금 우리의 현재를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그러니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즉각적이고 순간적인 반응이 따라오는 시대이다. 그러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해야 하고, 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고전문학이 어렵거나 지루할 수 밖에 없다. 거기에 고전이라 하면 서양의 고전이 대부분이다보니 한국 사람에게는 더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저자는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줄거리 이면에 무언가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루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줄거리 이면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세심한 독서가 필요하다. 대강의 줄거리만 알아서는 그 이면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해석을 위해서는 작가나 작품에 관련된 정보를 알아야 한다. 작가가 살던 시대나 개인적인 삶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다. 작가가 살던 지역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아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어떤 고전은 이런 정보가 있으면 이해할 수 있는가하면, 어떤 고전은 이런 정보가 주어져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선행 정보가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작품만 있다면, 그렇게 많은 서양 고전들을 우리가 좋아할 수 있었을까?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다루고 있거나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거나 해결되지 못한 사회적 상황이나 현실에 공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일의 소설을 소개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통』, 폰 호프만스탈의 『672번째 밤의 동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시골의사』 가 그것이다.

헤세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방황, 저항, 방랑과 같은 키워드를 만날 수 있다. 1919년에 헤세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판한 『데미안』은 독일문학의 오랜 전통인 '발전소설'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전통적인 인간관이나 가치체계는 파괴되었지만 새로운 인간관이나 세계관이 자리를 잡지 못한 시대였다. 헤세는 소설 곳곳에서 내면에 대해 언급한다. 철학이나 종교, 윤리나 관습 등과 같은 외부의 가르침이나 명령이 아닌 내면의 목소리를 따를 때 올바른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헤세의 삶을 이해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데미안』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꼭 그런 이유를 알아서였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데미안』을 중학생 때 처음 읽었고, 그때는 특별한 감동을 느끼지 못했는데 성인이 되어서야 내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는 것은 작가의 상황이나 그 이면의 내용을 알아서가 아니다. 이 책이 그렇게 감동을 받거나 공감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고전으로서 자리잡지 못했을 것이다.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괴테는 자신의 이야기와 예루살렘의 이야기를 엮어 『젊은 베르터의 고통』을 완성하였다. 괴테도 이 책을 출간할 당시 익명으로 출간을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일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독자의 감동을 이끌어내려는 전략이라고 한다.

이 소설이 출간된 후 베르터를 따라 자살한 남성들이 최소 12명이라고 한다. 오늘날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베르테르효과'라고 하는 이유다. 그래서 괴테는 두 편의 시를 삽입하여 자살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젊은이들은 그렇게 사랑하기를 갈망하고

모든 소녀들은 그렇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 욕망 중 가장 성스러운 것.

그런데 쓰디쓴 고통이 솟구쳐 나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걸까?

사랑스러운 영혼이여, 너는 눈물을 흘리고, 그를 사랑한다.

너는 그의 기억을 굴욕감으로부터 구한다.

보라, 그의 넋이 그의 동굴에서 네게 손짓하는구나.

남자가 되어라, 그리고 나를 따르지 말라고.

p.107~108

저자는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 18세기와는 완전히 다른 오늘날에도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바로 재미있는 줄거리때문이라고 말한다. 고전문학이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모든 작품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당대의 문화적 요구에 의해 쓰여진 책이니 우리가 그 시대를 알지 못하면 당연히 지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깊이 있고 좋은 내용을 담은 책이라도 재미있지 않다면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읽어온 고전이 되기는 어렵다. 드러난 줄거리 이면의 내용을 조금만 알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고전이 많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읽기 전에 해당 작품을 먼저 읽어보라고 하였다. 나는 이 책에서 소개한 소설 중에서 폰 호프만스탈의 『672번째 밤의 동화』를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래서일까.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책을 덮은 후 『672번째 밤의 동화』를 찾아서 읽을 확률은.... 낮다. 어쨌든 이 부분을 어렵게 넘기자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시골의사』 가 나온다. 역시 읽어본 책, 그리고 아는 내용이 나오니 더 술술 이해가 된다.

카프카의 작품은 해석을 하기가 어려운 작품이라고 한다. 그나마 『변신』은 아주 쉬운 편? 굳이 카프카가 살던 시기의 사회적 현상을 알지 못해도 지금의 우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착취와 인간소외로만 이 책을 읽었을 경우에 그러하다. 『시골의사』 는 그 내용만으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소설이다. 저자는 『시골의사』를 정신분석학의 측면에서 해석한 내용을 소개한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소설이다.

이 책에서 다룬 작가와 작품은 우리가 표면적으로만 이해했던 작품을 한번 더 생각하고 이해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회문화학적으로, 혹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또는 작가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작품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 이 도서는 21세기북스의 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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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리커버 개정판) - 국내 최초 수메르어·악카드어 원전 통합 번역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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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수메르와 우르에 관한 책을 연속해서 읽었던 적이 있었다. 수메르에 관해 알고 접했다기보다 고대의 신화와 미스터리에 관심을 갖다 보니 우르를 소개하는 책까지 읽었던 것이다. 그때, 계속해서 나왔던 이야기가 바로 길가메쉬였다. 언젠가는 길가메쉬 서사시를 한번은 읽어볼리라 생각을 했다. 책은 진작 구입해두었지만 읽지 못하다가 이번에 동아리에서 함께 읽게 되어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바벨탑의 신화가 쓰이기 전에 이미 약 4000년 전에 최초의 나라 수메르에는 우르라는 도시국가가 있었다고 이야기가 시작한다. 필경사가 수메르어로 쓴 점토서판에는 '세 역사'가 씌어있었다.

첫번째 '그때에'는 뱀, 전갈, 하이에나, 사자, 개, 늑대 같은 동물조차 없었던 시절이었고, 인간에게 싸움조차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두번째 '그때에'는 국가들이 생겨났다. (p.27) 세 번째 '그때에' 가서 문제가 발생했다. 충돌이었다! 외침과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수메르 신화의 가장 위대한 두 신은 엔릴과 엔키였다. 엔릴은 신들의 지배자였고, 엔키는 인간의 창조주였다. 둘의 대립과 화해는 곧 수메르 신화의 진수였다. (p.28)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이 수메르에서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 지식인들이 수메르의 '최초의 국가'의 '최초의 신화'를 접하면서 종교적인 전승을 섭렵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기사회생하기를 바라면서 엔릴과 엔키 같은 위대한 수메르 신들 대신 야붸를 옹립하였고, 이집트인들은 수메르로부터 문자에 대한 개념을 들여와서 독창적인 문자로 발전시켰다.

그런데도 우리는 수메로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수메르에 관해 배울 일이 거의 없었다. 1800년대에 길가메쉬 서사시의 수메르어 판본들이 발견되기 시작했으나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판본의 판독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메르어 판본의 해석을 통해 우리는 드디어 길가메쉬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길가메쉬 서사시의 주인공인 길가메쉬는 영웅이라기보다는 폭군에 가까웠다. 소란스럽고 거만한 길가메쉬! 인간을 창조한 신들은 우루크의 평화를 위해 그와 똑같은 모습을 지닌 자를 만들어 상대하게 하고자하였다. 그렇게 해서 엔키두가 창조되었다.

엔키두는 동물에 가까운 존재였는데, 샴하트가 '여자의 힘'으로 그를 개화시켰다. 동물과 같았던 엔키두를 '사람'처럼 만드는 데에 필요한 것은 '여자'였다. 그로 인해 그의 몸은 느려졌지만, '이해력'은 사람처럼 넓어지고 신처럼 지혜로워졌다. 폭군인 길가메쉬를 상대할 인간으로 창조된 엔키두는 길가메쉬와 만나다. 길가메쉬는 꿈에서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가 온다는 계시를 받는다.

엔키두를 만난 길가메쉬는 그와 함께 움직인다. 젊은 혈기에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이 자신의 '이름'을 위해 싸움을 하는 길가메쉬. '죽음'보다도 명성에 대한 욕망이 더 컸던 길가메쉬는 '죽음을 향한 원정'을 강행한다. 훔바바를 죽였고, 하늘의 황소를 죽였다. 길가메쉬를 상대하기 위해 신들이 보낸 엔키두였지만 길가메쉬를 벌하기 위해 엔키두의 목숨을 가져간다. "신들은 살아있는 존재에게 슬픔을 남기고, 꿈은 살아있는 존재에게 고통을 남긴다네."(p.363) 인간의 몸이었던 엔키두는 병상에 누운 지 열 이틀만에 죽고 만다. 가장 친한 친구인 엔키두의 죽음 이후 길가메쉬는 '죽음'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는데,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길가메쉬의 모습에서 영웅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은 영생할 수도 젊음을 유지할 수도 없다. 젊은 길가메쉬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권력을 쥐면 영생을 얻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인걸까? 권력의 맛을 본 자는 끊임없이 권력을 탐하고, 그 권력을 손에 쥔 자는 그것을 놓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그리고 영원히 살고자 한다. 인간의 욕심이 영생에 이르면 다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데..아마도 탐해서는 안될 것을 탐해서가 아닐까?

길가메쉬 서사시를 번역한 저자는, 이 서사시가 세계 최초의 신화였다고 이야기한다. 성경의 내용도 이 신화의 원형을 따른다고 본다. 엔릴의 전승은 후대에 이르러 그리스신화와 히브리신화로 연결되었고, 이는 히브리족의 창세기 <베레쉬트>로 이어진다. 저자는 최초의 신화의 주인공들은 수메르의 신이었고, '최초의 국가'를 건설하고 다스렸던 것은 수메르의 왕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록 폭력적이고, 미성숙한 인간이긴 했지만 최초의 영웅은 실존인물이었던 길가메쉬였다고 글을 맺는다.

수메르의 신화를 판독한 이후 수메르신화의 내용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보다 훨씬 앞선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신화 이전에 다른 신화가 있었고, 성경 이전에 대홍수와 인간의 창조에 관해 다룬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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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2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들한테 맞장뜨는 길가메쉬가 좋아요. ㅎㅎ

하양물감 2021-03-02 16:43   좋아요 0 | URL
젊은이의 치기라고 할까요?? ㅎㅎㅎ 뭐 그때는 그래도 되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예술과 풍경
마틴 게이퍼드 지음, 김유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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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집에 앉아서 이미지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는 작품에 담긴 방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 가상의 경험이 아닌 실제 경험, 즉 실제 작품을 감상하고 실제 사람과 만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깊고 풍요로운 경험이다." (p.14)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작품을 이해하고 제대로 감상하려면 실제로 그 장소에 가서 작품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을 읽는 동안 '작품의 완전한 효과를 느끼려면 그 존재와 함께 있어 봐야 한다"(p.14)는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 있다.


미술에 관한 지식도, 경험도 적은 내가 작품에 관해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책과 이미지를 통해 접했던 작품을 실제로 만났을 때의 감동은 나도 안다. 그 경험은 나로하여금 다시 여러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장으로 이끈다.


저자는 미술작품을 보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난다. 나는 그의 직업상 이유로 우리보다 그런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직업상 이유라하더라도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많다. 직접 그 작품이 있는 곳을 찾아가서 바로 그 장소에서 만나는 작품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점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작품을 찾아나서는 저자의 기대, 그곳에서 만날 작품과의 낯선 만남, 작품이 있는 주변 환경, 작품과 만나지 못한 아쉬움과 짜증까지도 날것 그대로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미술가들과의 인터뷰를 하기 위해 새롭고 흥미로운 이들을 만나기 위해 늘 움직인다. 저자는 좋은 대화를 통해 지적디엔에이를 교환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듣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나누었던 좋은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미술가들이 나에게는 낯선 현대미술가들이었기에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언젠가 내가 그 곳에 가게 되면 그들 작품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몇 년전에 계획했던 유럽 여행을 접었다. 앞으로 몇 년은 더 지나야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가 20세기 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라고 했던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끝없는 기둥」(1938, 루마니아 트르구지우)을 직접 보지 않고 사진만으로 보아서는 왜 '가장 유명한 미술'인지 알 수 없다. "사진으로는 길고 얇은 물체가 공중을 향해 찌르듯 표현"되지만 "관객이 그 근처에 섰을 때는 이 작품이 위로 계속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p.33) 느껴진다.


브랑쿠시의 고향에서 저자는 브랑쿠시가 사용한 도구가 어린 시절부터 사용한 일반적인 도구였으며, 물건을 높고 삐죽하게 만드는 루마니아 공예의 특징을 알아차린다. 이는 이 작품이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면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사실이다. 우리가 사진(이미지)으로 보는 작품이 한정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직접 그곳에 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놓칠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저자는 "예술 작품에 관한 한, 바로 거기에서 작품을 앞에 놓고 감상하는 것의 대안은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p.35)고 말한다. 물론 기술의 발달로 이러한 경험도 어려운 것만은 아니지만, 저자가 하는 말의 의미에 공감하였다.


퍼포먼스의 미술의 대모라고 불리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인터뷰는 '퍼포먼스미술'에 대한 나의 생각을 조금 바꾸어주었다. "사람들은 사생활에서 연약함을 느끼고, '자존감이 낮은' 일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생활해요. 하지만 퍼포먼스를 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거대한 대중의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어요. 또한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죠."(p.61) 그녀는 관객을 움직이는 힘을 퍼포먼스 미술에서 느꼈다. 물론 작가가 스스로를 고문하는 작품을 하는 것에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그러한 작품활동을 통해 스스로 강해져가고 있다는 그녀의 말은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제니 새빌은 "아이가 네다섯 살 때 물감으로 마구 낙서를 하는 모습을 보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인간의 활동 중에서 가장 본능적인 것임"(p.89)을 깨달았다고 한다. 저자는 새빌을 회화라는 아름다운 매체에 미래가 있다는 징표로 보았다. 현대미술에 살짝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나로서는 새빌의 작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그녀의 말처럼 "관객이 회화와 같은 공간에 있"(p.96)다면 조금 달라질까? 복제본은 실제 회화와 크기, 색깔, 질감, 투명함의 정도, 붓 자국의 변화, 빛이 반짝이는 방식 등을 다 담아낼 수 없다. 결국은 회화 혹은 작품이 가진 전체적인 힘을 느끼기 위해서는 실물을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현대미술의 회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나 태피스트리도 어디에 놓여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작품의 위치나 배열도 작품에 관한 이해에 차이가 생겨나게 한다.


이 책을 읽은 뒤 나는 내가 낯설어하는 현대미술에 조금은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었다. 비록 지금은 그 작품이 있는 곳을 찾아 떠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거기에서 그 작품을 만날 날을 기대한다. 지금은 우리 나라의 작가와 작품에 조금 더 다가가보는 선택을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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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산문집 (천줄읽기)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박지원 지음, 박수밀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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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활자본 17권 6책으로 간행된 박영철본 《연암집》에 실린 산문 237편 중 42편, 《열하일기》에 실린 글 중 10편이 실려 있는 책이다. 연암 박지원이라하면, 조선후기 실학자로 열하일기, 허생전으로 기억되며 정조의 문체반정과 연관하여 떠올리게 되는 인물이다.

이 책은 [사이에서 생각하기], [문장가의 마음], [생활의 발견], [현실과 사회]로 구분하여 글을 소개하고 있는데, 나는 이 중에서도 책읽기와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문장가의 마음]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127페이지까지 쑥쑥 읽히다가 이후부터 힘이 좀 빠진다.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읽히는 힘이 다르게 작용하는 듯하다.

"본 것이 적은 사람은 백로를 기준 삼아 까마귀를 비웃고 물오리를 기준 삼아 학의 긴 다리가 위태롭다고 생각한다. 사물 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는데 저 혼자 의심해 화를 내며 한 가지라도 생각과 다르면 만물을 모조리 비방한다. 아! 저 까마귀를 보라. 그 날개보다 더 검은 색이 없긴 하나 얼핏 옅은 황금색이 돌고, 다시 연한 녹색으로 반짝인다. 햇볕이 비추면 자주색으로 솟구치다, 눈이 어른어른하면 비취색으로도 변한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은 것이고 다시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상관없는 것이다. 저 사물은 본디 정해진 색이 없는데도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 버리는 것이다." p.16~17

고정관념을 꼬집고 있는 이야기이다. 학교에서 배울 때는 분명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한다'고 배우지만 사회에 나와서 보니 수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이 많은 것을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준이 모두의 기준이 될 수는 없는 데 말이다. 연암은 까마귀 날개의 진실을 알려주면서 사회적 모순과 고정관념을 비판하고 있다.

연암의 글을 읽다 보면 적절한 비유와 인용을 통해 상황에 맞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을 알게 된다. 연암 산문집의 많은 이야기가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라고 이야기한다.

"글이 잘되고 못되고는 내게 달린 것이고, 칭찬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남에게 달렸다. 비유하자면 귀울음이나 코골이와 같다. (중략) 자기 혼자만 아는 것은 언제나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한다. 또 자기가 깨닫지 못한 것은 남이 먼저 아는 것을 싫어한다. 귀울음은 병인데도 남이 알아주지 않을까 봐 걱정하니 하물며 병이 아닌 경우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코골이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일깨워주면 화를 내니, 하물며 병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귀울음은 듣지 못해도 내 코 고는 소리를 일깨워준다면 작가의 뜻에 가까우리라." p.85~87

연암의 비유가 돋보이는 글이다. 글을 쓰는 일과 독자의 비평을 비유하고 있다. 내 귓속에서 앵앵 우는 소리는 남이 들을 수 없다.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를 '나는 들리는데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코 고는 소리는 잠을 자는 나는 듣지 못하지만 곁에 있는 이들은 시끄러워한다. 옆 사람이 일깨워주려 하지만, 난 코를 곤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문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네는 물건 찾는 사람을 보지 못했나? 앞을 보면 뒤를 못 보고, 왼쪽을 돌아보면 오른쪽을 보지 못한다네. 왜 그럴까? 방 가운데 앉아 있으면 몸과 물건이 서로 가리게 되고 눈과 공간이 너무 가깝게 된다네. 차라리 방 바깥으로 나가 문에 구멍을 뚫고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다네. 한쪽 눈만을 집중하더라도 방 안의 물건을 죄다 볼 수 있지." p.94

연암이 알려주는 책읽기의 요령이다. 책의 내용을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요약하여 그 지식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면 글쓴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사심을 없앤 다음 깨달음을 얻는 독서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글쓰기에 있어서는 중국의 것을 모방하지 말고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곳의 삶과 정서를 노래해야한다고 알려준다. 이를 조선의 노래, 조선풍이라고 한다. 연암은 우리의 주체성을 높이는 발언을 한 것이다. 강정과 개암을 통해 일상적인 글이 더 참되고 훌륭한 글임을 밝힌다. 평범한 말이나 일상의 언어도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도 잘 알고 있지만 잘 지키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진부하게 쓰지 말고 진실되게 쓰는 것이다. 문장이 화려하고 눈길을 끈다고 해서 좋은 글이 아니다.

친구를 잃은 슬픔에 관해 쓴 글은 읽다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아아, 슬프다네! 내가 예전에 친구를 잃은 슬픔은 아내를 잃는 것보다 크다고 말한 적이 있네. 아내를 잃은 자는 그래도 두 번 세 번 재혼을 할 수 있고, 서너 차례 첩을 얻어도 안 될 것이 없네. 옷이 터지거나 찢어지면 깁거나 꿰매고, 그릇이 깨지거나 이지러지면 다시 새것으로 바꾸는 것과 같지. 혹 나중 아내가 전처보다 낫기도 하고, 혹 나는 늙었지만 새 아내는 예쁘고 어려 신혼의 즐거움이 초혼과 재혼 간에 차이가 없을 수도 있네. 친구를 잃은 아픔에 이르면, 내가 요행히 눈이 있긴 하나 내가 보는 것을 누구와 함께 할 것이며, 내 요행히 귀가 있긴 하나 내 듣는 것을 누구와 함께 듣겠는가? 내 요행히 코가 있긴 하나 내 냄새 맡는 것을 누구와 함께 맡겠는가? 내 요행히 마음이 있긴 하나 내 지혜와 깨달음을 누구와 더불어 같이 한단 말인가?"p.163~164

친구와는 할 수 있는 일을 왜 아내와는 같이하지 않는 것일까? 친구를 잃은 슬픔이 아내를 잃은 슬픔과 비할 것이 못된다고 하니 그저 헛헛할 뿐이다. 그래도 저 글에서 아내를 남편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생각하고 나니, 섭섭하던 마음도 사라진다.

연암의 글을 읽다보니 그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해제가 있어서 읽는데 도움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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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제국, 천황제의 형성
미타니 타이치로 지음, 송병권 외 옮김 / 평사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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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를 다룬 책을 연이어 읽게 되었다. 


앞서 읽은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박훈, 21세기 북스)은 메이지유신의 주역인 사무라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이 책은 유럽 열강을 모델로 한 일본의 근대화과정을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 천황제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저자는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영국 저널리스트 월터 바지호트가 시도한 성찰을 검토하여 이를 '일본 근대'가 무엇이었는지에 답을 하고 있다. 바지호트는 '전근대' 이후 영국의 국가구조를 둘러싼 자유로운 토의의 축적이 '토의에 의한 통치'를 강화하였고, '근대'개념은 '토의에 의한 통치'를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삼았고 인간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으로 전통과 습관을 중시했다고 말한다. 바지호트는 '낡은 동양의 관습적 문명'에서 '새로운 서양의 변동적 문명'으로 이행, 즉 '전근대'에서 '근대'를 향한 세계적 규모의 이행이 서양 문명권에 의한 동양 문명권의 식민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p.23)는 명제의 진실성을 믿었다. 영국에서 출현한 '토의에 의한 통치'를 지표로 하는 '근대'개념은 영국을 주동력으로 한 식민지화에 의한 '근대'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동양에 있으면서 서양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일본이 이웃 국가를 식민지화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아는 것이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식민통치와 해방 이후 계속된 양국의 갈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것이 많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 당시 일본이 국제 정세를 읽고 빨리 움직여 서구 열강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인 것이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시 국제 정세 속에서 일본이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일본보다도 훨씬 먼저 전 세계에 식민지제국을 건설하던 서구제국주의들 사이에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일본이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정책과는 다른 노선을 걷게 된 것은 왜인지, 식민지 정책을 펼치는데 있어 한반도와 그외 국가들 사이에 차이가 생긴 것은 왜인가에 대해 자세히 알아 볼 수 있었다. 


1장에서는 '토의에 의한 통치'로서 의회제와 정당정치가 어떻게 성립했는지를 다룬다. 


'입헌주의'는 메이지 헌법 하의 체제원리였으나 곧바로 정당정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바지호트는 '관습의 지배'에서 '토의에 의한 통치'로 정치의 형태가 이행하는 것을 근대라고 하였는데 일본의 선진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메이지헌법 하의 귀족원, 중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는 미국의 상하원 양원제에서 볼 수 있는 체제원리인 권력 분립제였다. 권력분립제는 막부적 존재의 출현을 방지할 목적으로 만든 제도적 장치로 왕정복고 이념에 적합하다고 여겼으며, 어떠한 국가 기관도 단독으로 천황을 대행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메이지헌법 하에서 일본정치는 체제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웠기때문에 체제를 전체적으로 통합하는 기능을 가진 비제도적인 주체가 필요하였다. 이로 인해 번벌과 정당이 나타났다. 


2장에서는 '무역'과 일본의 자본주의 형성을 살펴본다.


국민국가 형성을 목적으로 시작된 일본의 근대는 자립적 자본주의 형성을 불가결한 수단이었다. 이미 확립된 유럽 자본주의를 모델로 삼은 일본은 국가주의적 측면을 중시하였다. 정치적 리더가 동시에 경제적 리더가 되는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가 형성된 것이다. 일본은 유럽적 국민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전략적 수단으로서 유럽식 자본주의를 자주적으로 형성하였다. 선진산업기술, 자본, 노동력, 평화의 네가지 조건을 국가가 만들었고 이로 인해 자립적 자본주의가 형성될 수 있었다. 


3장에서는 '식민지화'와 관련하여 일본에서 그것이 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고찰한다.    


일본은 아시아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 식민지 영유 국가였다. '식민지'란 특정 국가 주권에 종속되면서도 본국과 달리 본국에서 시행되는 헌법, 기타 법률이 시행되지 않는 차별적인 영토(p.167)를 말한다. 랴오둥반도 반환 후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유럽열강과 함께 권력정치의 주체가 되고자 하였다. 청일전쟁이 초래한 국제정치상의 변화는 러인전쟁 이후 식민지 제국 일본의 팽창방향을 확정하게 된다. 일본의 식민지제국 구성은 경제적 이익보다 군사적 안전보장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유럽의 식민지와는 달랐다. 즉 식민지제국 일본의 팽창은 본국과 국경선이 연결된 남방 및 북방 지역의 공간적 확대로 이루어졌다. 러일전쟁 이후 한반도 식민지화의 시동이 걸린다. 


4장에서는 일본 근대에서 천황제는 무엇이었는가를 알아본다. 


유럽에서 기독교가 담당한 '국가의 기축'으로서 기능을 일본에서는 황실이라고 생각했다. '신'의 부재가 천화의 신격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으나, 근대 일본의 형성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문명개화', '부국강병'은 오로지 일본 국가의 대외강화를 목적으로 한 근대화 노선이었다.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시대에 세계가 자국중심주의로 치달아가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일본은 '안전 보장 환경'의 변화를 강조하고 군사력 강화의 필요성을 부르짖으며 '강병'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의 근대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잊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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