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은 - 13일 동안 이어지는 책에 대한 책 이야기
요시타케 신스케.마타요시 나오키 지음, 양지연 옮김 / 김영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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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을 여러 권 읽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스타일은 아니다. 기존에 읽은 책들을 보면 처음엔 특이하기도 하고 짧으면서도 여운이 느껴졌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다. 다만, 이런 형식의 책에 익숙하지 않다면... 여운보다 여백이 신경쓰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요시타케 신스케와 마타요시 나오키가 함께 쓴 책이다. 


"그 책은 표지에 두 남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 책입니다. 어느 왕국에서 만든 책이죠. 그 책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요시카케 신스케와 마타요시 나오키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책을 좋아하는 두 남자에게 왕은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진귀한 책을 찾아와서 들려주기를 원한다. 두 남자는 경비를 받아들고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1년 후 돌아와서 그 책에 대해 들려준다. 


첫째날 밤 마타요시 나오키는 이런 책을 소개한다. 엄청나게 빨리 달려서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책, 경찰에 쫓기는 책, 책장을 넘길 때 팔락 소리가 조금 일찍 나고 어떨 때는 넘기지도 않앗는데 팔락 소리가 나서 짜증이 나는 책 등등. 


둘째날 밤에는 요시타케 신스케가 이어간다. 태어날 때 한 권씩 나라에서 주는 책,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이가 찢어버린 책, 어린 시절에만 읽고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책 등등.


두 남자는 상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책을 소개한다. 가끔은 호러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너무 재미가 없어서 책을 싫어하게 하기도 하고, 가끔은 읽지 않앗지만 새로운 나를 만들어줄 책이기도 하고, 연쇄살인만큼 섬뜩한 책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가 내가 빌려준 책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굳이 읽지도 않을 거면서 책을 빌려달라고 하기도 한다. 정말 읽고 싶으면 사서 읽으라고. 도서관 가서 빌리던가. 왜 굳이 나한테 빌려달라고 하고선, 돌려주지 않는거지? 아마도 그들은 그 책을 빌려와서 누구에게 빌렸는지, 왜 빌렸는지, 저걸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조차 모른 채 어느 구석에 처박아놓았을 터이다. 언젠가 내 책을 돌려달라고 말했다가, '빌린 적이 없다'는 대답을 듣기도 했고, '이 책은 내 책'이라며 자기가 돈 주고 샀다는 말도 들었다. 빌려준 나로서는 기암할 일이었지만, 그런 사람과는 다시 안 만나면 그만이었다. 가끔 책을 빌려주면서 인간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 책은 꽃밭에 두면 사랑스러워보인다. 콘크리트 위에 두면 고독해 보인다. 정글에 두면 야생 동물처럼 보인다. 싫어하는 사람이 들고 있으면 재미없어 보인다. 웃는 사람이 들고 있으면 왠지 재미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 책은 책장에 꽂아 놓으면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모든 순간, 책 내용은 똑같은데도." (p.58)


일곱째날 밤 마타요시 나오키의 책이야기는 기억에 꽤 오래 남을 것 같다. 다케우치 하루와 미사키 신이치가 그림과 말풍선의 글로 주고 받은 교환일기가 이어진다. 그 책은 아무도 죽지 않는 내용이라고 했다. 하지만 긴 여운이 남는다.


여덟째날 밤 요시타케 신스케는 표지에 자신의 얼굴이 실려 있고 주소가 있고 sns계정도 공개된 책을 보았다. 개인정보가 모두 까발려진 책. 공포에 휩싸인 날이었다. 그러나 진짜 공포는 3개월 후에 찾아왔다. 그 책이 출판된지 3개월이 지났지만 자신의 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아, 정말 공포스럽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나는 확실히 요시타케 신스케의 글보다 마타요시 나오키의 글이 더 마음에 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뭐랄까? 난 함축된 짧은 글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서툴다. 두가지 버전을 왔다갔다 하는 재미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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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TOMY가 알려주는 1초 만에 고민이 사라지는 말 - 일, 생활, 연애, 인간관계, 돈 고민에 대한 마음 치료제
정신과 의사 TOMY 지음, 이선미 옮김 / 리텍콘텐츠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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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었으며, 솔직하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챕터마다 만화 한 페이지와 토미의 상담실 두 페이지 정도가 줄글로 이어지지만 그 외 나머지는 모두 짧은 글이다. 저자는 정신과의사이자 트위터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책은 트위터의 짧은 문장 형식을 차용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짧은 문장인데 담아야 할 내용은 다 담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개인적인 성향 상 줄줄줄 줄글을 원하는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어쨌든 나와 같은 첫인상을 받을 독자도 있을 것이므로 먼저 이야기해둔다. 그런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누군가는 가슴에 와닿는 단어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001. '망각' 

나는 망각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드라마 도깨비에서 저승이가 망자들에게 전해 주던 망각의 차를 떠올렸다. 이번 생을 잊고 떠나는 것은 어쩌면 신이 주신 선물일테고 어쩌면 신의 비정한 면모일지도... 저자는 '망각'이라는 단어와 함께 "최고의 복수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대체로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랬던 적이 있다.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 한시도 잊을 수 없던 그 문장을 정작 그 말을 한 당사자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경험. 알지만 쉽게 잊어버리기도 어려운 일이다. 


021. '지속성'

아무리 기운을 내고 집중하더라도 지속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일이든 공부든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쓸모 없는 데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고 할일에 집중하자. 


033. '사이'

직장 내 동료와의 인간 관계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은 침범할 수 없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귀는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약한 연결고리를 말하는건가. 하긴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오래 두고 깊이 사귄 사람을 찾기가 어렵긴 하다. 약한 연결고리라면 내가 상처 받는 일도 크지 않을 것 같다.


065. '친절'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친절하면 지쳐버리고, 자신에게는 친절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하면 갈등이 생길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할까? 저자는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친절하라고 말한다. 쉽진 않겠지?


148. '중단'

답을 내야 하는데, 바로 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중단'하세요. 컨디션이나 타이밍에 따라 바로 결정할 수 있는 일도 결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버텨도 결국 후회하게 된다. 저자는 5분 만에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은 일단 중지하라고 말한다. 어쩌면 '바로 그 순간'이기 때문에 답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한걸음 떨어져서 보거나, 잠깐 쉬엇다가 들여다보자. 의외로 정답은 쉽게 찾아질지도 모른다.


168. '뜻대로'

뜻대로 안 된다는 건 멋진 일입니다. 뭐라고? 그건 바로 우리가 소원이나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란다. 만약 모든 게 뜻대로 된다면, 현실이나 꿈이나 뭐가 다르겠는가라고. 그런가? 그래도 소심한 나는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이었으면....한다. 


177. '슬럼프'

뭘 해도 잘 안되는 시기를 슬럼프라고 한다. 저자는 이런 슬럼프 시기가 곧 번데기 시기라고 말한다. 방법을 바꾸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번데기는 움직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다이나믹한 변화가 생기고 나중에는 나비가 될 것이다. 


고민은 제로가 될 수 있을까? 살다보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의 시간, 선택을 위한 고민의 시간이 의미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민 속에 파묻혀 정작 자신의 일상을, 자신의 삶을 놓치는 일이 일어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이 제시한 단어와 그 해석들이 모두 내 맘에 와닿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언어'로 뭔가를 정의하거나 '상황을 정리'한다면 조금은 그 고민에서 가벼워질 수 있지는 않을까?


* 짧은 글 읽기가 익숙한 사람들이 좋아할 책이다.

* 수많은 고민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라면 방향을 살짝 바꿀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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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만 굉장한 어른의 뇌 사용법 - 깜빡하는 당신을 위한 효율적인 두뇌 습관
가토 토시노리 지음, 황세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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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어른에게 맞는 공부법을 쓰지 않으면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기억의 메커니즘이 학생 때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썼습니다)


결국, 이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뇌의 규칙에 따라 활용법을 바꾸면 어른도 공부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감퇴하고 노화가 되니 더이상 공부 같은 건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나이 탓'만큼 편리한 변명도 없는 셈이다. 


이 책은 '뇌의 규칙을 따르고, 뇌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라'고 조언한다. 우선 뇌의 전체 특성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장 39페이지에 등장하는 '브레인군의 성격' 그림을 보면 간단하게 뇌에 대해 알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아이

요령이 좋음

좋아하는 일은 열심히 연구함

싫증을 잘 냄

칭찬을 받으면 성장하는 타입

쉽게 영향을 받는다(세뇌당하기 쉽다)

정직함

마감이 정해져 있어야 의욕이 생기는 타입

기본적으로 게으름

편한 방법을 찾는 것이 특기

보상을 매우 좋아함

설명은 하지 않지만, 이 녀석은 '당'을 좋아한다. 브레인 군의 성격 그림에서도 '당'을 먹고 있는데 만화로 그려진 곳곳에서 당을 섭취하는 뇌를 볼 수 있다. 힘든 회의나 공부를 할 때 단거 찾게 되는 심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뇌의 최전성기를 40대 후반부터 50대까지로 본다. 노의 기본 특성은 위와 같지만 거쳐온 환경이나 직업, 인생 경험, 뇌활용법에 따라 뇌는 개성적으로 변화한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자주 사용하는 것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을 것이다. 뇌는 평생 성장한다고 하니 인생 절반을 산 지금 남은 50년을 위해 나의 뇌를 다시 훈련시켜 볼만하지 않는가. 


인간의 뇌는 새로운 자극을 받는 시기 그러니까 취직, 승진, 결혼 등의 인생 단계를 밟으면서 급격하게 성장한다고 한다. 40대 이후가 되면 뇌의 기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라는 것이다. 뇌 안에는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는 뇌세포의 영역이 있는데 저자는 이것을 초뇌야라고 부른다. 그 중 기억이나 이해를 담당하는 초측두야는 30대에 절정, 시각이나 청각 정보를 통해 부석하고 이해하는 초두정야는 40대에, 실행력이나 판단력을 관장하는 초전두야는 50대에 절정을 맞는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의 나의 뇌는 최전성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지금 더 철저하게 연습을 해둔다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더 똑똑해질 수 있다. 


우리는 노화가 되면 뇌의 기능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뇌세포 수가 아무리 많아도 뇌세포를 연결하는 정보전달회로가 발달하지 않으면 뇌는 기능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즉, 뇌세포 수가 아니라 정보전달회로 즉 네트워크가 중요한 셈이다. 


책에는 뇌를 각 부위의 역할에 따라 뇌번지라 명명하여 소개한다. 사고/의욕/상상력 등을 관장하며 무언가를 생각할 때 작용하는 사고계 뇌번지, 눈이나 귀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이해하고 모르는 내용을 추측해 이해하려 할 때 작용하는 이해계 뇌번지, 무언가를 외우거나 떠올릴 때 작용하고 정보를 축적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며, 해마 주위에 위치해 있는 기억계 뇌번지, 희로애락을 느끼고 표현하며 평생 계속 성장하고 늦게 노화되며 뇌의 여러 부위에 있는 감정계 뇌번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의사를 소통하는 전달계 뇌번지, 손/발/입 등 신체를 움직이는 일 전반에 관여하며 뇌 안에서도 가장 먼저 성장을 시작하는 운동계 뇌번지, 눈으로 본 영상이나 사진, 읽은 문장을 뇌에 축적하는 시각계 뇌번지, 귀로 들은 말이나 소리를 뇌에 축적하기 위해 작용하는 청각계 뇌번지가 그것이다. 


뇌에서도 사고계, 이해계, 기억계 뇌번지가 서로 기능적으로 작동하면 뇌 전체의 기능이 향상된다고 한다. 어른의 공부법도 마찬가지로 이 세 가지를 기능적으로 작동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단독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어른의 뇌에 맞는 기업력 향상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관련된 뇌의 시스템이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시스템에 맞게 공부법을 바꾸면 기억력을 탓할 일은 없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외우고 싶을 때는 이해를 해야 한다. 


해마는 장기기억과 연결된 길이다. 두근거리거나 긍정적인 상황에서 세타파라는 뇌파가 나와 해마가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장기기억으로 연결이 된다. 새로 들어 온 정보 중에 과거에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과 '아하 그렇구나'하고 이해한 것은 장기기억으로 연결된다. 어른의 뇌는 암기가 아니라 이해를 통해 정보를 기억한다는 것을 알아두자. 


이 책은 '굉장한'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해 뭔가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책 제목처럼 '사소하지만' 우리가 다시 한번 상기하면 좋을 내용들이 많다. 복습법이라든가 75시간 학습이라든가 정보를 출력하는 단계를 염두에 두라는 등의 방법적 측면 외에도 뇌번지의 특징을 이용한 다양한 방법을 소개한다. 


중간중간 4컷만화로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할 수도 있고, 한 꼭지 한 꼭지가 길지 않아서 쉽게 읽힌다. 뇌과학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뇌 이야기'이다. 고령화사회에 접어들면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하는 중장년층에게도 힘이 되는 내용이다. 가볍게 읽히는 책이니 교양 삼아 읽어둘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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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는 중이다. 토지 10권을 읽었다. 이제 딱 절반을 넘어왔다. 생각보다 쭉쭉 읽히기 시작해서 남은 책을 읽는데도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소설을 읽을 때는 한 자리에서 쭉쭉 읽어 마무리를 짓는 것이 나에게는 맞는 방법이다. 띄엄띄엄 읽으면 사람들도 기억이 안나고... 핫하...

'결혼문제만이 아니다. 정열이 모자라는 여자, 나는 정열이 모자라는 여자야. 오빠는 신여성에게 정열이 부족하면 죽도 밥도 아니라 했다. 그래, 죽도 밥도 아니야. 내가 처음 교단에 섰을 때 두려워서 떨었다.' (p.25)

'어쨌든 나는 죽도 밥도 아닌 것만은 확실해. (중략) 아버님이 살아 계실 적에 열심히 공부해서 칭찬받고 집에 들면 집안 살림 도와주어서 칭찬받고 그것이 내 전부였어. 그것이. 교장 선생님은 여성교육의 선구자라 하셨다. 여성교육의 선구자, 선구자 될 생각도 없으면서 뭘 여자가 시집이나 가지, 하면 불쾌해진다. 오라버니 말대로 자발적으론 아무것도 못하면서 최고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은 있어서, 그 무거운 짐짝 같은 선생, 직업, 여성교육의 선구자, 그걸 끌고 막연한 독신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역시 비참하다. '(p.26)

토지를 읽다보면 신여성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신여성'이라 불렸던 여성들의 자의식, 그리고 그녀들을 바라보는 조선 남성들의 시선들 말이다. 여성교육의 선구자가 될 생각은 없으면서 최고교육은 받았다는 자부심이 있어서라는 말은 명희의 생각에서 나왓다기보다 그 당시 신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교육을 받은 당사자들도 신념이나 학문에의 의지가 강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두가 그러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아니지요. 나는 분명히 지금 여자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신교육을 거부하고 용납하고 하는 데 있어서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달랐어요. 남자들에게는 일부 서민층을 제외하고 지식인은 남아도는 형편이었고 벼슬 못한 선비들이 우글거리던 것을 생각하면 납득이 갈 거요. 그러니만큼 남자들은 신교육 혹은 신학문을 거부하는 데도 그만한 명분이 있었을 것이요, 받아들이는 데도 그럴 만한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니 어느 편이든 자각하고 취한 행동이지 여자들같이 맹목적인 것은 아니었지요. 여자들의 경우는 지식의 바탕이 전혀 없이, 전통도 없이 바로 들이대었기 때문에 교육을 받았다. 하면은 그것을 곧 학문으로 착각을 한단 말입니다. 학문이 무엇인지 그 개념부터 모르거든요. 엄연히 말하여 오늘날 우리가 해외에서 받는 교육은 학문이기보다 태반이 기술인 겁니다. 착각을 하고 있어요. 모두가, 특히 여자들이 말입니다. 의사나 간호원이나, 재봉, 요리가 포함된 가사과나 심지어 하란사가 미국서 영문학을 했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영어로 시작한 그네들조차 학문으로까지 들어가기에는 아주 적은 몇 사람일 터인데, 솔직히 말하여 영어공부를 했다 하는 것이 옳아요."(p.38~39)

섬으로 시집을 간 푸건이가 병에 걸려 엄마가 보고싶다고 울고 있다는 소식에 야무네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간다. 먹고 사는 일이 바쁘다보니 한번 들여다 볼 수도 없던 딸이기에 마음이 짠하다. 야무네는 뒷일이야 어찌 되건 푸건이를 데려가겠다는 생각을 한다. 먹을 것 없고 가족들 살기도 빠뜻하지만 그래도 딸을 데리고 가고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푸건이가 끝내 안가겠다고 하여 두고 오는데, 사위마저 병이 들고 결국 푸건이를 데려오게 된다. 푸건이네 시집에서는 아들이 병든 것조차 사람이 잘못 들어온 탓이라 하며 병에 들어 다죽게된 며느리를 데려가라 한다. 사람 사는 것이 참말로 냉정하다. 흔히 일일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이야기기도 한데.. 집안에 새 사람이 들어와서 집안이 펴면 자기들 잘나서 그렇고 집안에 변고라도 생기면 다 밖에서 들어온 새 사람 탓을 한다. 지독한 가족중심 이기주의다. 결국 그 가족이란 것이 밖에서 들어온 새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아니던다.

토지를 읽다보면 '시대적'인 특성이긴 하겠지만, (요즘도 아예 없어지지 않은) '결혼'을 했는가 안했는가, 누구와 혼인을 하는가, 못하는가, 좋아하는 이를 두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싶다.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사는 인물이 거의 없는데도 왜 다들 그렇게 결혼을 하라고 하라고 하는걸까?

임이네는 토지 10권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악착같이 모은 돈은 호강하며 사용하지도 못할 돈이었던 것이다. 병원에서도 악을 쓰며 삶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임이네. 남편도 자식도 모두 임이네를 멀리하지만 그런 악바리같은 심성이 아니었다면 그래도 웃으면서 살 수 있었을까? 결국 병원에서도 손쓸 수 없는 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임이네에게조차 나는 연민을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부여잡고 있는 끈이 썩은 동아줄이라면 진작 놓아야했지 않나...

홍이는 좋아하는 장이가 아니라 보연과 결혼한다. 어찌 된 것이 좋아하는 사람과 자연스레 이어져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없다. 다들 얽히고 엮이다 보니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평사리에서 오광대놀음 하던 날 의병으로 몰려 옥살이를 하고 나오면서 홍이는 사는 방법을 또 하나 배운다. 보연과의 결혼생활도 나쁠 것 없음에도 장이와 관계를 맺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런가하면 서희는 두 아들의 성장과정에서 길상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차갑고 냉정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이들을 지키고, 가족을 지켜내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 말 때문에 때린 거는 아니고요. 니 아부지는 종이라 했더니."

"그랬었구나. 말한 대로 들려주어 고마워."

서희의 음성은 잠긴 물처럼 조용했다.

"순철아."

"야."

"그랬다면 환국이 잘못한 것은 없구나. 네 잘못이야. 왜냐하면 환국이아버님은 종이 아니었거든. 그리고 나라 위해 몸 바친 분이었단다."

박의사는 눈길을 떨어뜨렸다. 강인한 억제, 마지막의 말은 모든 것을 건 모성의 승리였다.

강가까지 온 서희는,

"여보, 당신이 그곳에 남은 뜻을 이제 확실히 알겠소. 하지만 장하지 않아요. 당신 아들 환국이가?"

찬 바람 속에 서서 서희는 오랫동안 흐느껴 울었다.(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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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서점 - 잠 못 이루는 밤 되시길 바랍니다
소서림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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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읽은 리빙스턴씨의 달빛서점에 이어 서점 책을 하나 구입했다. 등장인물들의 무대가 서점이거나 도서관이거나 하면 괜스레 반갑다. 읽을 틈이 나지 않아 계속 미루다, 친구를 만나러 진주에 가면서 들고 갔다. 버스를 기다리며 읽고, 버스를 타고 가며 읽었다. 그리고 친구를 기다리며 읽다보니 어느새 끝을 향하고 있었다.

잠 못 이루는 밤 되시길 바랍니다.

라는 부제가 탁 와닿았다.

전자책으로 먼저 나온 이야기인 것 같았다. 종이책으로도 발간해달라는 요청이 진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자책으로도 꽤 성공한 듯 보인다. 나는 아직 전자책은 잘 못 읽는다. 화면을 따라 뭔가를 읽는다는 것이 여전히 어색하고 낯설기 때문이다. 나도 얼른 익숙해져야 할텐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양반가에서 태어나 자란 한 소녀가 저잣거리에서 바닥에 떨어진 책을 한 권 발견한다. 주인 잃은 책을 찾아주려고 주위를 보니 신선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는 한 사내가 보인다. 소녀는 그 사내가 이 책의 주인이라 짐작하고 쫓아가다 귀신이 나온다는 숲 한가운데까지 가게 되었다. 스산한 숲 속에서 겁이 나 울음을 터뜨린 소녀 앞에 그 신선같은 남자가 다가온다. 시간이 흘러 그 둘이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얼핏 알려진 바로는 벼랑에서 둘이 꼭 껴안고 뛰어내려 비극으로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죽었다는 그 사내가 그 후에도 계속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몇 백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도깨비 같은 놈이 자기 신부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내와 소녀가 이어진 것이 한 권의 책이었다고 하는데 그 책은 무슨 책일까? 소녀와 함께 죽었다고 하는 계속해서 남자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왜일까? 문득 드라마 도깨비가 떠오르는 것은....음.... 이런 류의 환상 소설에 도깨비 같은 녀석이 나오면 이런 구조일 수밖에 없는가? 어쨌든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연서는 동화작가가 되고 싶어 회사를 그만 두고 글을 쓴다. 2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거절하는 이메일만 받고 있다. 오늘은 해피엔딩을 써보라는 편집자의 이메일을 받았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 다른데 왜 모두 해피엔딩이어야 할까. 연서는 송곳처럼 가슴을 찌르는 결말을 더 좋아한다. 약간은 잔혹하더라도 아름다운 찰나가 있는 그런 이야기. 연서는 산에 오르기로 하고 길을 나서는데, 그런 메일을 받아서일까?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길, 설정이 뻔한 결말을 향해 가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옆길로 빠졌다가 길을 잃었다. 꽤 높은 절벽까지 와서 구조도 바랄 수 없는 상태에서 날이 저문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연서는 물빛 도포를 입은 수상한 남자를 만난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외모, 낯선 장소에서의 우연한 만남, 강풍에 떠밀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그 이름 모를 남자의 품에 안겨 눈을 떴다. 연서를 데리고 간 곳은 남자의 가게, 즉 환상 서점이다. 그곳에는 어린 소녀도 한명 있었는데, 서점 주인인 남자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서점주인인 이 남자는 종종 손님들에게 책을 소개해줄 겸 직접 읽어준다고 한다. 그 서점에는 방문객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 산책길에 마주친 이야기, 어느샌가 날아든 이야기 등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모여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말이란 흩어지지만 글은 영원하다고 하던가.

동화작가를 꿈꾸는 연서와 이야기를 기록하고 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는 남자의 만남이다. 환상서점은 그 둘의 만남에 꽤 어울리는 장소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가끔 들리는 저승사자도 있다. 서점에서 만난 그 어린 소녀도 보통의 아이는 아니다. 그러고보니 등장인물도 묘하게 드라마 도깨비를 연상하게 한다. 불멸의 삶을 살며 정해진 삶이 다하면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을 바라보며 산다.

'신'이 정한 길을 가지 않으려고 자기 인생을 바꾸는 인간, 그런 인간을 벌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연민의 정을 느껴 도와주는 신, 그들의 삶은 돌고 돌고 다시 돌아 늘 그자리로 온다. 환생을 믿지는 않지만, 과거의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이승에서 다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야기는 과히 나쁘지 않다. 잠못 이루는 밤이 되라길래 무서운 이야기인가 했더니, 절절한 인연의 끈을 쥐고 있느라 잠들기는 어렵겠다. 전자책의 특성이 묻어있어서 그런가 술술 읽히는 책이다. 다만 자꾸 드라마 도깨비가 떠올라서... 신선함은 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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