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술사 1 - 기억을 지우는 사람 아르테 미스터리 10
오리가미 교야 지음, 서혜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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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술사 1권은 오리가미 교야 작가가 일본호러소설 대상 독자상을 받은 책이다.

일본식 호러 소설은...뭔가 무섭다기보다 예전에 봤던 '환상특급' 분위기??

기억술사는, 지우고 싶은 기억을 지워주는 존재이다. 아무도 그를 본 사람은 없지만, 그 존재에 대한 소문은 있다. 누군가의 기억(지우고 싶은 그 사람의 기억)만 지우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기억을 갖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자신은 기억을 지웠으니 지우고 싶은 과거로부터 벗어났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든 기억을 갖고 있으니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나는 약간 이것이 일본답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기억이 사라진 채 살아가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의 기억과 세상의 괴리를 문제삼지 않는다. 왜일까? 그건 그 사람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기억을 지우고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살아간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한국이라면, 그들을 그냥 두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러나 이 사실에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기억술사를 찾으려고 하고, 기억술사로부터 기억이 지워진 사람을 찾아다닌다. 기억술사는 히어로인가? 아닌가?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기억을 지우고자 하는 이유에 독자들은 공감을 한다. 그리고 남은 이들에 대해서도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기억술사를 원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억술사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이라면, 당신의 기억을 지워주는 사람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싶은가?

책 속 주인공들에게 많은 부분 공감을 하긴 했지만,

나라면...기억술사를 찾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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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 세계를 담은 한 권의 책이 있다면
김운하 지음 / 필로소픽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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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제목이 주는 묘한 끌림과 '책에 관한 책'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입만 했을 뿐, 다른 책들에게 밀려 계속 책장 한편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는데, 이 책을 어서 해방시켜야겠다는 마음에 독서 동아리에서 읽을 책으로 추천을 했다.

내가 속한 독서 동아리는, 회원들이 추천한 책을 함께 읽는다. 오로지 자기만의 기준에 따라, 그리고 자기만의 취향에 따라. 그러다 보면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이나 절대 손에 잡지 않았을 책도 읽게 되고 의외의 발견도 하게 된다.

독서 취향이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기준'이 명확하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누군가가 줄 세워 놓은 필독서가 나에게는 아무 재미를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은 어쩌면 필연일 수도 있겠다.

독서동아리 선생님들과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하다 보니, 5명의 취향이 때로는 이쪽 저쪽으로 튀기도 하지만, 가끔은 한 방향을 보기도 한다. 내가 몰랐던 다른 책의 세계, 그러니까 저자가 말한 것처럼 평생을 읽다 죽어도 다 못 읽을 그 책들을 적어도 5배는 선택의 여지가 생긴다.

"내가 처음으로 책과 관계를 맺은 것은 나 자신의 존재와 삶, 그리고 이 세계를 둘러싼 온갖 의혹을 풀어보고 싶은 강렬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나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책을 읽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독서 행위 자체가 주는 재미와 기쁨, 그리고 행복을 위해 책을 읽는다."(p.10-11)

나는 저자처럼 멋있게 나의 독서의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 어린 시절의 독서는 세상과 만나는 길이었다. 독서하는 시간은 내가 처해있는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시간들이었고, 그 안에서 나는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나를 기대했다. 그 기대가 와장창 깨진 것은 대학생 때였는데, 내 독서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친구의 눈길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짧은 생을 살다 간 그 친구는 그 나름의 기준으로 나를 바라봤던 것이니... 그게 상처가 되어 내게 남아있지 않다.

지금의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유일한 내 휴식과 쉼의 시간을 채워주는 개인적 취향 때문이기도 하고, 번잡스러운 현실에서 눈 감고 귀 닫는 길이기도 해서다. ---> 한 번 더 고민해 봐야겠다. 나는 왜 이런 이유로 책 속으로 파고드는지.

책으로 읽기보다 연극으로 봐야 제맛을 알 수 있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p.30)를 나는 연극으로 두 번을 봤다. 책을 읽은 기억은... 음 없는 것 같다. 대학생 때 인문대학 안에서 만나는 수많은 문학도들 사이에서 그래서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소설 하나쯤은 입에 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쉽사리 책을 펼쳐보지 못했던 것은, 쉽지 않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일 것이다.

처음 연극을 봤을 때, 나는 멍해서 나왔다. ---> 왜 인지는 짐작하리라.

두 번째 연극을 본 것은 얼마 전이다. 내가 나이가 든 때문일 수도 있겠고, 수십 년 연기 내공이 쌓인 노배우들의 연기로 보아서 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책을 해석하기보다 책에서 자신의 고민을 발견하기(p.38)

우리는 여태 책을 해석하는 일을 해왔고, 그 해석의 정답을 정해놓고 얼마나 잘 맞추냐를 평가해왔다. 그러니, 책이 재미있을 리 없고, 읽고 싶을 리 없다. 수많은 도서 목록보다는 나의 취향에 맞는 책을 선호한다. --->이것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닌듯하다만...

마치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가 클릭하는 영상과 비슷한 것만 보여주듯, 온라인 서점의 추천 마법사는 내가 산 책과 비슷한 책을 자꾸 보여준다. 안다. 나는 또 지갑을 열 것이라는 것을.

"더욱이 한가롭게 고전만 파고들 경우, 당대의 과제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고전 독서는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독자 자신이 '지금 현재' 상황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개인적인 관심과 문제의식, 나아가 당대가 제기하는 문제와 대결하기 위한 사유의 연장에서 자신에게 필요할 때 찾아 읽어야 한다. 취향이 너무나 고전적이라 고전이 자신의 영혼에 딱 맞는 옷이라면 고전만 찾아 읽어도 된다."(p.40)

고전만 그러한 건 아니다. 그러나 고전만큼 오해를 받고 있는 책이 또 있을까? 고전 한 두 권쯤 읊어댈 수 있어야 책 좀 읽은 사람 티가 난다. 하지만 그 고전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고전이어서가 아니라, 그 책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것(그것이 재미든, 지식이든 간에)을 발견할 수 없다면 굳이 [억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자신이 책을 읽는 이유와 목적, 지금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들, 알고 싶은 것들, 즐기고 싶은 것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독서로 즐거움을 얻고자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이 더 나은 존재로 '변화'하기를 원한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야말로 모든 독서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독서가 주는 순수한 기쁨과 재미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기쁨이 자기 자신과 삶, 세계를 더 잘 이해하게 해주는 인식의 쾌락과 연결될 때 우리는 더 큰 기쁨을 얻는다. 독서에서 재미와 인식은 분리 불가능한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p.43)

"그럼에도 요즘도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다 밑줄을 긋고 싶어 펜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안절부절못할 때가 많다.

사실 책에다 밑줄을 긋는 습관은 고질병과 비슷하여 생각보다 고치기가 힘들다. '참아야지, 참아야 하느니라!' 하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지만, 끝내 밑줄을 긋고 싶은 욕망에 굴복하고 말 때도 있다. 도대체 나는 왜 이토록 집요하게 책에 밑줄을 긋고 싶어 할까? 밑줄을 긋는 습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나 참고서에 빨간 볼펜, 파란 볼펜으로 밑줄을 긋기 시작한 게 기원일 듯싶다.(p.163-164)

사실, 나도 밑줄 그으면서 낙서하면서 책을 읽는 편이라, 책을 빌려보지 못한다. 또 프래그 같은 걸 붙이는 것도 내게는 잘 맞지 않다. 그거 붙이고 있는 행위 자체가 내게는 불필요한 시간 낭비처럼 느껴져서이다. 그래서 나는 책에 밑줄을 긋는다. 빌리지 않고 사서 보는 책이 많은 이유도, 그 많은 책을 헌책방이나 중고로 팔아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는, 줄 긋지 않은 책(필시 읽지 않았던 책일 확률이 높다)을 온라인 중고서점에 내다 팔았다. 나머지 수천 권의 책은 종이쓰레기로 버려졌다.

버리면서도 이번에는 그다지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 내가 사야 할 책을 조금 더 신중하게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책에 관한 책, 독서에 관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다만,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읽은 책은 그들이 소개하는 책 중에 1%도 안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만큼 많은 책이 있고, 그만큼 각자의 취향에 맞는 책을 읽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 이 책을 덮으면서, [역시 사 놓았지만 읽지 않은 '돈키호테']를 마음 먹고 읽을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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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나는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
이서원 지음 / 나무사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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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에는 사십 대를 주제로 한 책만 보이더니 오십 대가 되니 오십 대를 주제로 한 책이 눈에 띈다. 연령으로 뭔가를 구분한다는 것이, MZ 세대니 뭐니 하며 세대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마는, 적어도 마케팅 타깃이 분명하다는 장점은 있어 보인다.

저자는 오십 이전엔 남의 얼굴로 살았다면 오십 이후엔 나의 얼굴로 산다고 말한다. 내가 볼 땐 저자도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남의 얼굴로 살았다 한들, 그 삶을 가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오십 이후의 삶을 살아야 하니, 지금보다 더 즐겁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 불가능하지만 되돌아갈 수 있다면 이십 대로, 찬란했던 나의 이십 대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 비록 남의 얼굴로 살았다 해도, 그때만큼 도전이 두렵지 않았던 때가 없기 때문이다.

허나, 그것이 불가능하니 남은 인생을 어찌 살 것인가가 더 현실적이긴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 삶의 방향을 잡는데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

오늘 아침 독서 중

타인에게 관대하려면

나에게 먼저 친절해야 한다

오십 대가 되면서 급격한 노화의 징후를 느끼고, 아니 보고 있다. 병원비는 계속 증가하는데 나아지는 걸 기대하기보다 현상 유지를 기대해야 한다. 휴대폰이고 책이고 간에 이제는 안경의 도움 없이는 읽을 수 없다. 노안은 여러모로 불편하다. 출근 준비를 하며 화장을 하다 쪼글쪼글해진 목주름을 발견했다. 눈가 주름보다 더 충격적인 비주얼이다. 아쉬운 따나 아이크림을 듬뿍 발라 임시처방을 하고 목주름 관리 제품을 검색한다. 불과 일, 이년 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변했다.

저자는 나와 남과 세사에 친절할 때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에게 친절하기 위해서, 우선은 몸에 친절하고, 다음은 마음에 친절해야 한다. 저자도 나처럼 혈당관리를 하고 있다는데, 아, 나도 혈당과 몸무게를 재어 몸 일기를 써야겠다. 좋은 팁이다. 제대로 혈당관리 못한다고 의사선생님한테 매번 혼나는데 시도해 봄직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친절하려고 기념일 노트와 배움 일기를 쓰고 있다고 한다. 좋은 방법이다. 나도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좀 더 고민해 봐야겠고.

사람은 자신이 잘하는 것을 남에게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피해자가 된다. (p.56)

최악의 부모와 최고의 부모를 가르는 것은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특성이 아니다. 자신의 미덕을 자식에게 요구하느냐 요구하지 않느냐에 있다. 요구하는 부모는 통제하는 부모이며 요구하지 않는 부모는 관대한 부모다. 통제는 폭력의 주된 특징이고 관대는 비폭력의 주된 특징이다.(p.56)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들의 비밀

혼자 있을 수 있다면 외로움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혼자 있을 수 없는 이들에게 외로움은 괴로운 문제가 된다. 무엇이 혼자 있는 것을 즐겁게 할까. 그건 자기를 좋아하고 자기에 대해 궁금해하면 된다. 자기 자신은 평생 그 속을 들여다보아도 질리지 않는 유일한 존재다.(p.87)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어른과 꼰대의 차이

꼰대는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자기 이야기만 하고 남 이야기는 듣지 않는 사람, 입은 있는데 귀는 없는 사람의 다른 이름이다. 꼰대가 다른 사람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들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이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벽한 생각도, 존재도 없는 걸 생각하묜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꼰대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중략) 꼰대에서 벗어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과 다른 하나는 남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마음이다. (p.106~107)

돈도 안되는 모임을

왜 계속 만드냐고요?

모임을 만들 때마다 내가 세우는 원칙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나를 포함해서 두 명이면 한다'이고, 다른 하나는 '내일이라도 문을 닫을 수 있다'이다. (중략) 주위에서 모임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를 살펴보았더니 두 가지였다. 하나는 더 크고 화려하게 만들려는 욕심, 또 하나는 초심을 잃고 모임으로 이득을 보려는 사심 때문이었다. (p.159~160)

나도 11년이 넘게 매주 모임을 하고 있는 독서동아리가 있다. 그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세운 원칙 중 하나는 저자와 같다. '모임에 딱 두 사람만 나오면 모임은 무조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독서모임이 11년이라는 세월을 매주 하고 있는 원천이 되었다. 이제 독서동아리 선생님들에게 토요일 오전 시간은 당연히 모임에 참석해야하는 습관이 되었다.

오십이라는 나이가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결국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하거나, 아직 완성하지 못한 삶을 계속해서 걸어가거나 지금의 내 마음의 상태가 이후의 삶을 결정한다. 이쯤에서 한 번 정리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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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나일지도 몰라 - 지친 나에게 권하는 애니메이션 속 명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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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이 어린이용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림책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회자되는 애니메이션에는 곱씹어 볼 대사들이 많다. 이 책은 그런 명언들을 소개한다.

여러 애니메이션이 있을 테지만, 이 책에는 거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주를 이룬다. 일본 애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익숙한 대사를 만나게 된다.

メイはきっとこの森のヌシに会ったんだ。

それはとても運がいいことなんだよ。

でもいつも会えるとはかぎらない。

숲의 주인을 만났나 보다.

메이는 운이 좋은 거야.

숲의 주인을 항상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란다. p.16

이웃집 토토로 속의 대사들은 온 마을이 함께 아이를 키우던 그 시절로 데려간다. 어쩌면 허무맹랑한 소리일지도 모르는 메이의 이야기도 숲의 주인을 만났다며 운이 좋다고 토닥여준다.

むかしは木と人はなかよしだったんだよ。

옛날엔 나무와 사람이 친구였단다. p.16

아마도 그랬을 것 같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했을 테고...

人生は与えられたカードで繰り広げる真剣な勝負だ。

私がもらったカードに文句を言うよりは、

そのカードをどのように扱うか悩むことがもっと重要だ。

인생은 주어진 카드로 펼치는 진지한 승부야.

내가 받은 카드에 불평하기보다는,

그 카드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단다. p.28


포켓몬스터를 보면서는 나는 솔직히 동물 학대를 떠올렸는데... 뭐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이 포켓몬스터에서도 진지한 명언이 있다. 파트너로서의 포켓몬스터는 각각의 특성이 있고 개성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성향끼리 붙기도 한다. 자신이 가진 포켓몬스터의 능력을 최대치로 키우더라도 부족할 경우에는 남이 가진 포켓몬스터를 욕심 내게 된다. 로켓단처럼 말이다.

何もせずにすぐにうまくできると思う?

努力もしないで、ある日突然立派な人になるよか?

君の未来がどうなるかはこれからの君の努力次第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로 잘할 수 있겠어?

노력도 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훌륭한 사람이 되겠어?

너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앞으로 너의 노력에 달려있어! p.44

도라에몽과 진구의 대화도 새겨들을 만하다. 게으르고 진지함이라곤 없는 진구의 태도는 도라에몽을 화나게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잘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시 한번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You must try things that may not work.

And you must not let anyone define your.

you come from.

Your only limit is your soul.

Trust me. Anyone can cook.

But only the fearless can be great cook.

limits because of where

넌 효과가 없을지도 모르는 일을 시도해 봐야해.

그리고 네 출신이 어디던 간에 누구도 너의 한계를

정의하도록 해서는 안 돼.

너의 유일한 한계는 네 영혼일 뿐이야.

내 말을 믿어. 누구든 요리를 할 수 있어.

하지만 오직 두려움이 없는 사람만이 위대한 요리사가 될 수 있지. p.114

라따뚜이의 레미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요리사가 된다. 분명 현실 세계에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안 되는 일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 한계를 뛰어넘어 길을 만들어낸다.


I don't care! What they're going to say!

Let the storm rage on.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It's funny how some distance

Makes everything seem small.

And the fears that once controlled me

Can't get to me at all!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I'm free.

Let it go, Let it go!


나는 이제 사람들이 뭐라 하던 상관하지 않아.

폭풍우가 계속되도록 둬.

추위는 날 절대 상대하지 못하니까

참 우습네, 거리를 조금만 두니

모든게 다 작게 보여.

한때는 나를 조종했던 두려움도

이젠 날 괴롭히지 못해!

이제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 시간이야.

내 한계를 시험하고, 또 깨버려.

옳고 그름도, 어떤 규칙도 내겐 없어.

나는 자유야.

이제 놔, 모든 것을 놔! p.176~177

아이들 모두를 엘사 앓이에 빠지게 했던 그 애니메이션. 엘사가 각성하고 자신의 틀을 깨고 나오는 그 순간이다.

이 책에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도 나오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 대사들에서는 별다른 감동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이야기 전반의 흐름이 나에게는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이것이 애니메이션이든 소설이든 간에 사람마다 자기만의 감동 포인트는 같지 않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가 전해준 명언들 외에 나만의 명언을 찾아보자.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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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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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에 관한 글을 써보자고 생각한 후, 어느 날 문득 '내가 느끼고 있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을, 처음부터 그대로 꺼내 솔직하게 나 나름의 문장으로 써 보자.'라고 결심하고 조금씩 조금씩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사실 문장력을 인정 받고 있는 작가기에, 일상의 아주 가벼운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우리와는 다른 글을 써내겠지만, 어쩌면 이런 문장은 독자인 나도 '써 볼까'하는 마음을 먹게 만든다.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지금 당장은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

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장. 누가 믹 재거를 비웃을 수 있겠는가? p.18~p.19

하루키가, 그리고 헤밍웨이가 하는 저 말은 비단 소설 쓰는 작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각자 자기에게 대입하여 이해한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누구나 서툰 시기를 거치게 되어있다. 그 시기를 지나면 당연히 숙련된 작업 속도와 능률이 나타난다. 그러나, 서툴고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포기해버리거나 요령만 피워서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당장은 모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득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함께 일하는 직원에게 비슷한 조언을 한다. 그 조언을 받아들이느냐 마냐는 상대의 자유지만, 적어도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한 사람을 당하지는 못한다.

나와 같은 나이에 접어든 사람이 새삼스럽게 이런 것을 쓴다는 것이 다소 어리석은 일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사실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혼자 있는 것을 별로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는 성격이다. 매일 1시간이나 2시간,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고 혼자 달리고 있어도, 4시간이나 5시간을 혼자 책상에 앉아 묵묵히 글을 쓰고 있어도 별로 고통스럽다거나 지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경향은 젊었을 때부터 한결같이 내 안에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하기보다는 혼자서 말없이 책을 읽거나, 집중해서 음악을 듣는 쪽을 좋아했다. 혼자서 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생각해낼 수 있었다.(중략)

사람의 기본적인 성격은 그다지 급격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항상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

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1장. 누가 믹 재거를 비웃을 수 있겠는가? p.34~p.35

나는 하루키의 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번씩 읽다보면(아, 독서동아리에서 추천하지 않았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키와 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소설가와 공통점이라니.. 하하.

예를 들자면 위에 인용한 저런 점이다. 나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선호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설마'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사람들과도 무리 없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은 사회생활을 위한 나의 최소한의 노력이고, 나는 고갈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나만의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있다. 혼자 있는 사람이 심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혼자 있어도 할 일이 엄청 많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꽤 많이 알고 있다.

내가 공부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소정의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든 마친 다음, 소위 '사회인'이 되고 나서부터다. 자신이 흥미를 지닌 분야의 일을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추구해가면 지식이나 기술을 지극히 효율적으로 몸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령 번역 기술도 그렇게 해서 나만의 스타일로, 내 돈을 들여가면서 하나씩 익혀 나갔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시간도 걸렸고 시행착오도 거듭했지만, 그런 만큼 배운 것은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었다.

2장. 사람은 어떻게 해서 달리는 소설가가 되는가 p.63

학교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부를 하는 것은 딱 그만큼의 기본을 익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는 그런 공부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최고의 성과를 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의 경험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사회인'이 되어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을 배우고 익힐 때,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의 노력과 연습을 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으니, 그만큼의 노력을 하게 된다. 당연히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일이니 그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고, 가끔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기초 지식이 되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루키는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다'"(p.75)라고 했지만, 나는 그래도 학교에서 배운 것이 우리 인생에 크고 작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하루키는 인생에는 우선순위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정하고 그것을 자기 안에 시스템화해놓지 않으면 뒤죽박죽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인생을 큰 동그라미로 친다면 그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일들이 모두 각각의 우선순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고 해도 좋아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오래할 수는 없다. 다만,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자신의 의지일 수 있다.

하루키의 달리기는, 그의 글쓰기와 닮아있다. 오랫동안 달리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그의 노력은, 그가 오랫동안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 것과 같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 분야의 대가가 될 수는 없다. 대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길은 절대 '연습량'이 충분해야 한다. 하루키가 마라톤에서 실패했을 때 그 원인이 '적당'히 했던 오만함때문이었다.

소설가로서 인터뷰를 하다 보면, "소설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소설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이다. 문학적 재능이 전혀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소설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필요한 자질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전제 조건이다. (중략)

재능 다음으로 소설가에게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질문받는다면 주저 없이 집중력을 꼽는다.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 붓는 능력. 그것이 없으면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힘을 유효하게 쓰면

재능의 부족이나 쏠림 현상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중략)

집중력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력이다.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의식을 집중해서 집필할 수 있었다고 해도, 일주일 동안 계속하니 피로에 지쳐버렸다고 해서는 긴 작품을 쓸 수 없다. 반년이나 1년이나 2년간 매일의 집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소설가에게는―적어도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에게는요구된다. (중략)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그 수치를 살짝 올려간다. 이것은 매일 조깅을 계속함으로써 근육을 강화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작업이다.

4장.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p.120~122

달리기는 결국 글쓰기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에 대해 말하지만 실상은 소설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싶은 것이다. 소설을 쓰는 것은 하루키에게 있어서 험준한 산의 암벽을 기어오르거나 길고긴 격투 끝에 정상에 오르는 작업이다. 그러한 내적 이미지를 갖고 장편소설을 쓴다.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어떤 목표가 있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알고보면, 그저 하루하루를 사는데 급급했는지도 모르겠다. 목표가 없이 그저 살아가는 나날이 오늘따라 한심해졌다. 뭔가 시작하기에 내 나이도 늦지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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