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어요 작은 곰자리 65
아멜리 자보 지음, 아니크 마송 그림, 이정주 옮김 / 책읽는곰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어요.

이 말을 부모에게 혹은 선생님에게, 또는 또래친구들에게 털어놓거나 고민상담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얼마나 될까? 많은 책과 상담자들이 주변 어른이나 또래 친구들과 상황을 공유하라고 전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부모에게 쫓아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보다 이 그림책 주인공처럼 혼자만 끙끙 앓는 아이가 훨씬 많다. 그림책에서만 보던 나쁜 늑대같은 친구가 샤를로트를 괴롭히고 못살게 굴지만, 그런 사실을 털어놓기엔 너무 부끄럽다. 샤를로트는 특별한 이유 없이 놀림을 당하고, 미움을 받고,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샤를로트의 배 속에 기분 나쁜 덩어리가 생겨나고 그것을 없애려고 애쓰지만, 덩어리는 점점 더 커질 뿐이다. 게다가,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들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어한다. '멋진'아이들이 친구를 괴롭힐 리 만무하지만 아이의 눈에는 그 무리에 끼지 못하는 것보다 똑같이 '늑대'같은 친구가 되어서라도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그림책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황을 대비하여 보여주며 이렇게 하라 가르치지 않고, '피해자'의 마음을 잘 표현하여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잘 그려내었다고 생각한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무리들 사이에서 나보다 더 약한 아이를 찾아내어 못된 늑대같은 행동을 해보지만,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 아이 또한 자기와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샤를로트'는 못된 늑대가 되기보다 "그냥 못된 늑대들을 신경쓰지 말자"고 말한다. 아이들은 서로의 무리가 있고 또 그 나름의 사회를 형성한다. 똑같은 못된 늑대가 되지 않고 자기만의 사회를 만들어가려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할까?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 그림책은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요즘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가해자에 대한 벌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지만 피해자의 마음을 어떻게 치유해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가해자를 어떻게 벌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피해자가 다시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자존감과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꿀벌의 예언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꽤 오랜만에 읽었다. 작가의 『개미』를 열광하며 읽었던 터라 그 뒤로 나온 책들을 계속해서 읽었다. 그러다 어느날부턴가 읽지 않게 되었는데, 꽤 오랜만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구입했다. 사실은 제목 역할이 컸다. 지금까지도 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중에서 『개미』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책은 이제 '꿀벌'을 다룰 것인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책 소개글을 읽었더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텐데... 하하.

이 책은 주인공인 르네가 꿀벌이 사라진 후 위기를 맞은 2053년의 지구에 다녀 온 뒤, 미래를 바꾸기 위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이다. 도대체 2053년은 어떤 지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미래의 지구는 겨울이지만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43도가 넘는다. 거기에 전 세계 인구는 150억 명에 달한다. 식량이 부족해 곳곳에서 폭동이 벌어지고 핵무기까지 동원해 세계 대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사태를 맞이하기까지 꿀벌이 사라진 영향이 크다는 미래의 르네. 미래의 나, '르네'는 <꿀벌의 예언>이라는 책을 찾아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현실의 '르네'는 퇴행최면이라는 방법을 통해 꿀벌의 예언이라는 책을 찾아 나선다.

과거의 우리 행동이 현재의 우리를 만들고, 현재의 우리는 미래를 만든다. 그렇다면 과거의 우리를 통해 지금 왜 이런 일들이 발생했는지를 알아본다면, 현재의 우리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행동할 수 있다.

꿀벌이 사라진 세계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인간이 소비하는 식물의 80퍼센트는 꽃식물이며, 꽃식물 수분의 80퍼센트를 담당하는 곤충이 바로 꿀벌이기 때문이다. 결국 꿀벌이 사라진 미래에는 식량난으로 인해 제3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는 것이다.

르네 63이 정원에 있는 나무를 손으로 가리킨다.

「지금처럼 계속 미래에 관심을 가지게. 저 나무가 시간을 상징한다고 한번 생각해 봐. 뿌리는 과거를, 줄기는 현재를, 가지는 미래에 해당한다고 말이야. 과거는 땅에 묻혀 있어

보이지 않지. 그래서 우리가 실제로 보는 대상이 아니라, 머릿속에만 떠올리는 대상인 거야. 과거는 땅속 깊이 뻗어 있는 긴 뿌리들 속에 흩어져 있어. 이런 과거와 달리 현재는 단

단하고 선명하지. 하나의 줄기 속에 들어 있거든. 미래는 나뭇잎이 달린 무수한 가지들로 이루어져 있어. 실현 가능한 미래의 시나리오를 의미하는 무성한 나뭇잎들은 서로 경쟁하듯 자라나. 그러다가 햇빛과 수액이 부족한 나뭇잎은 말라죽게 되지. 나뭇가지 전체가 꺾여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이건 어떤 미래의 방향들이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지. 하지만 하나뿐인 줄기에서 뻗어 나와 살아남은 다른 나뭇가지들은 눈에 보이는 단단하고 통합된 현재의 연장선에서 계속 자라게 되네. 나무는 계속 자라나. 하지만 이 미래의 나뭇가지들은 굵고 단단해질 수도, 가늘어져 꺾일 수도 있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

「르네 33. 자네가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그 미래의 가지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야. 이번 짧은 방문에서 자네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게 있네. 우린 과거를 바꿀 수는없지

만 미래에는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 시간이 얼마 없군. 관객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돌아가야지.」

p.23-24

과거로 들어가 꿀벌의 예언을 찾기 시작한 르네와 알렉상드르가 과거의 어느 지점에서부터 서로 충돌하게 되는데 그것도 흥미진진하다. 르네와 알렉상드르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퇴행최면을 통해 과거로 들어간 두 사람의 행동은 묘하게 다르다. 현실에서의 성격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혹시나 알렉상드르의 무모한 행동이 문제를 일으키지나 않을지 걱정이 된다. 1권을 다 읽은 지금, 꿀벌 이야기는 겨우 시작만 한 상태이다. 그래서 2권을 빨리 읽고 싶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밑줄 독서 모임 - 세상에서 가장 쉽고 재미있게 책 읽는 법
여희숙 지음 / 사우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업무상 '독서지도'나 '독서동아리' 관련된 도서는 찾아서 읽는 편이다. 물론 나는 직장 내 독서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맞지 않는 부분도 많긴 하다. 그래도 독서 모임을 잘 하는 법이나 독서 모임 운영 방법 등 기본적인 활동 분야는 배워야 할 점들이 있기에 참고하는 편이다.

저자는 "요즘처럼 볼거리가 많은 시절에 독서를 한다는 것은 상당한 집중력과 의지가 필요"하다며 "정말 독서를 하고 싶다면 책 읽기가 습관으로 정착하기까지 억지로 해야 하는 시기, '무조건' 해야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p.19~20)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적극 찬성한다. 비단 독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육아를 할 때도, 학업을 할 때도,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해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습관을 만드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 때 꼭 필요한 것을 저자는 함께 하는 동반자를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함께 읽을 책을 정하고 언제까지 읽을지 약속을 하고 읽은 뒤 함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혼자라면 끝까지 읽지 못했을 책을 한권씩 한권씩 읽어나갈 수 있다. 나도 10년이 넘게 동일한 독서모임을 매주 참여하고 있는데 이렇게 읽은 책만 해도 엄청나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책들도 함께 읽음으로써 다른 관점과 관심없던 주제까지도 접할 수 있었기에 나 또한 추천하는 방법이다.

저자가 추천하는 '밑줄독서'에 대해 알아보자.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나만의 문장을 찾아낸다는 뜻이다. '나만의 문장'은 마음에 와닿는 글귀, 재미있는 내용, 몰랐던 사실 등 내가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말한다. 그런 문장을 찾으려면 꼼꼼히 읽어야 하고 정독을 해야 한다. 사실 정독하기가 어렵다는 분들이 많다. 이럴 때 독서모임을 하면서 정독을 하게 되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은 밑줄과 다른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은 밑줄이 어떨 때는 같지만 어떨 때는 다른 것을 보면서 같은 책을 읽었지만 마치 다른 책을 읽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각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특성에 따라 중요하게 여기거나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도 이 부분이 10년 이상 함께 할 수 있는 추진력이 되었다. 어떨 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함께 읽음으로써 이해할 수 있었던 적이 있다.

책 읽는 몸을 만드는 3가지 방법

1. 계획을 세워서 꾸준하게 실천한다.

2. 하루 중 언제 읽을 지 정해놓으면 좋다.

3. 틈날 때마다 읽는 방법도 좋다.

저자가 소개하는 밑줄 그을 문장은 다음과 같으니 참조해보자. 물론 이것은 저자의 생각이므로 우리는 각자 자기에게 필요한 문장을 찾으면 될 것이다.

  • 멋진 생각이 담긴 문장이 나왓을 때

  • 아름다운 문장이라 꼭 기억해두고 싶을 때

  • 감동을 주는 문장을 만났을 때

  • 특별한 경험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문장

  • 언젠가 인용하고 싶은 명언이나 잠언

  • 전에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 내 생각을 바꾸어주는 문장을 만났을 때

  •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을 때

  •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만났을 때

  • 저자의 중심 생각이 담긴 문장이라 여겨질 때

  • 잘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담겼을 때 (p.77)

책에는 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독서모임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고 독서모임에 알맞은 추천도서도 만날 수 있다. 처음 독서모임을 운영하려고 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독서모임을 운영해오고 있는 분들에게는 다른 독서모임은 어떻게 하고 있는데 참고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10년 넘게 독서모임을 매주 운영하고 있지만, 저자가 추천해준 도서 목록과 겹치는 도서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확실히 서로 간에 관심사나 상황에 따라서 책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개해주신 책 중에서 몇 권은 우리 모임에서도 한번 읽어볼까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 - 100일 후에는 나도 영어로 말한다!, 개정판
문성현 지음 / 넥서스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창시절 영어를 포기해버린 탓에, 늘 마음에 걸려있었다. 그러다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 이책을 갖고 서바이벌 챌린지를 한다고 해서 하루 한두페이지 정도 못할까 싶어서 도전하게 되었다.

사실 학습량이 적다고 해서 매일 지켜서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나는 매일 출퇴근 시간에 EBS 오디오어학당의 일본어와 중국어를 듣고 있는데, 그렇게 강제 습관을 만드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혼자 뭔가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영어학습을 인증하는 챌린지를 무리하지 않고 한 문장씩 외워보자 했던 것이 어느새 20일차를 넘겼다. 일단 이 책은 그 결심을 지켜내기 좋은 구성이다. 매일 학습하는 양이 적당하다. 그리고, 딱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문장들이다. 이번에 챌린지를 하면서, 해당 문장을 현실에서 적용하여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을 상정해보려고 애썼다.

지금 딱 20일이 지났기에 겨우 20문장 쯤 공부한 셈이다. 물론 그 20문장도 내 머리 속에서 휘발되었을 수 있지만, 나중에 다시 반복할지라도 시작으로선 성공적이었다.

QR코드로 MPS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유튜브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언어란 것이 눈으로 하는 공부만으로는 진척을 보일 수 없다. 귀로 듣고 입을 말을 해봐야 한다. 일단 잘 듣기 위해 애썼다. 첫 페이지의 회화에서 약간 동문서답같은 느낌이 드는 회화구성도 있긴 했지만, 미니다이얼로그에서 4~5개의 문장을 연습하면서 다른 회화사황을 상정해보기도 하였다. 기본적으로는 이렇게 두페이지가 하루 분량이다. 10일차가 끝나고 리뷰 퀴즈로 지금까지 배워본 것을 체크해볼 수 있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네가 20일동안 학습을 했다고 해서 지금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적당한 학습량과 회화 중심의 책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나처럼 작심3일을 넘기지 못하는 분들이라면, 함께 공부할 사람들과 챌린지를 해봐도 좋을 분량이다.

That's what friends are for.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이럴 때 같이 해보자.

You're a big fan of coffee. Go easy on it.

커피 정말 좋아하는 구나. 적당히 좀 마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만한 바보'를 그만두기는 쉬웠다. '난 아는 게 별로 없어.' 그렇게 인정하고,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점검하는 습관을 익히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크게 나아진 건 없었다. ‘정직한 바보도 바보도 바보는 바보 아닌가. 나이 오십에 바보라니.’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래야 별건 아니었다. 과학교양서를 읽으면서 생각하고 느낀 게 다였다. 그래도 꾸준히 하니 바보는 면한 것 같다. 그게 자랑이냐고? 그렇다. 나는 ‘운명적 문과’다. 그 정도만 해도 뿌듯하다. 어디 자랑하고 싶다.(p.19~p.20)

유시민 작가의 새책을 읽었다. 제목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라니.... 평소 나 역시 완전 문과형이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어설픈 문과형이랄까? 문과로도 완벽하진 않지만 이과로는 완전 꽝이기에, 의도적으로나마 책을 읽을 때 과학 도서를 포함시키곤 하였다. 그렇지만 역시 이해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제법 쉽게 설명한 책이나 에세이처럼 스토리텔링된 책이 많아서 조금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유시민 작가가 문과의 마음을 대변하며(그러기를 바라며) 과학 공부를 하는 과정을 말하나 싶어 반가웠던 것이다. 유작가는 본인이 문과형이라 어려웠다고는 하지만 서울대를 나온 문과형은 그래도 좀 나을 것이다. --> 문과 이과 구분에 큰 영향이 있을까 싶은...

그런데 일반인인 우리를 떠올려보자면, 수학이나 과학 점수가 저 바닥에서 놀고 있거나, 노력하고 때로는 돈을 들여도 점수 향상이 없는 사람들이 문과를 많이 택하지 않았나싶다. 요즘이야 취업을 고려해서 이과를 더 많이 택한다고 하나... 어쨌든 나는 국어 점수 하나 믿고 살았던 문과형으로서... 음음.. 그래도 과학책을 읽을 때 제법 재미를 느끼곤 했는데 숫자만 안나오면 말이다.

유시민 작가가 말하는 과학공부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따라가보기로 했다.

"인문학이 진짜 위기에 빠지는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때다. 나는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닌지 의심한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굳이 과학 공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인문학 위기론을 꺼냈다. 나는 인문학자가 과학을 공부하지 않고 과학자들이 찾아낸 사실을 활용하지 않는 데서 인문학의 위기가 싹텄다고 본다. 운명적 문과로서 인문학 책만 읽으며 살았던 내가 요즘은 인문학 책이 재미없다. 강력한 지적 자극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무엇인가를 새로 아는 즐거움을 주거나 오래된 생각을 교정하도록 격려한 것은 과학 책이었다. 설마 나만 그랬겠는가?(p.27)

"어느 하나 쉬운 질문이 아니었지만 인문학자들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대답하려고 했다. 그게 과학자와 다른 점이다. 과학자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나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말하고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한다. 인문학자가 잘못한 건 없다. 인문학은 그런 학문이다. 과학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인문학에는 진리와 진리 아닌 것을 가르는 분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매우 그럴법하거나 그럴 것 같기도 한 주장과, 별로 그럴듯하지 않거나 아주 말이 안 되는 주장이 있을 뿐이다. (p.28)"

이 책을 읽으면서 유시민 작가의 오디오 팟캐스트를 들었다. 책을 읽고 난 뒤 들어서인지 내용이 이해가 쏙쏙 되면서 작가가 왜 이 책을 썼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겉만 그런 게 아니라 속도 달라졌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주제와 내용은 아는데 저자 이름과 책 제목을 떠올리지 못하는 때가 잦아졌다. 어떤 사건과 사람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화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내용은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가득 채운 주연배우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끙끙댄다.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짧아졌다. 예전에는 밤늦게까지 써도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오후만 되어도 속도가 느려진다. 세상에 대한 생각, 뉴스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 주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바뀌었는지 나도 다 헤아리지 못한다.

모든 면에서 오늘의 나는 10년 전과 다르다. 한 달 전과도 같지 않다. 어제의 나와 같은지도 의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언제나 나를 나로 여긴다. 남도 나를 변함없이 나로 대한다. 의사는 예전 진료기록을 보면서 오늘의 나를 진단하고, 국세청은 지난해 소득에 대한 세금 고지서를 올해의 나한테 보낸다. 법률적·생물학적으로는 내가 나라는 사실은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다. 손가락 지문은 흐려졌지만 형태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행정안전부 데이터베이스에 지문 정보가 들어 있다.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동일인임을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철학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나를 나로 인식하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자아'는 달라졌고 더 달라질 것이다. 내 철학적 자아를 어떻게 특정할 것인가. 어느 시점의 내가 다른 시점의 나와 다르다면 어느 것이 나인가? 오직 현재 시점의 자아만 의미가 있다면 과거에 내가 한 일을 이유로 지금의 나를 비판하거나 칭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라고 말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가?(p.44~45)"

과학공부를 하면서도 인문학자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솔직히 나는 그정도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명제는 사춘기 시절 이후 내게 영향을 끼친 적이 없다. 사는 게 뭔지 내가 누군지 이런 거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아니 그런거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나는 유시민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그가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과학적 사실이나 인문학적 소양을 발 뒤끝이나마 따라갈 능력도 없지만 나로 하여금 각성을 하게는 하였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50년쯤 남았다고 볼 때,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하지는 않갰나. 나 역시 지금까지 배척했던 과학에 조금은 더 관심을 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

팟캐스트에서 '인문학을 하다가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과학을 하다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많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문학에 매진하다 보면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에 쉽게 접근하기 쉽지는 않다. 그러나 과학을 한 사람들에게 '인간, 사람'을 공부하는 학문으로는 생각보다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공감을 하다가,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과학'을 오로지 돈벌이를 위한 기술'로만 치부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이 세태를... 인문학이 그래도 조금은 치유해줄 수 있지 않을까?

"자아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보다는 뇌의 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 때문에 달라질 가능성이 더 높다. 인문학보다는 뇌과학과 신경생리학이 전향이라는 행위를 더 잘 설명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p.93~p.94)"

"소프트웨어의 성능 개선과 데이터 증가 효과가 하드웨어 퇴화로 인한 기능 저하를 상쇄하는 동안은 더 지혜로워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화로 인해 하드웨어가 심하게 나빠지면 소프트웨어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한다. 기존 데이터를 상실하는 속도는 빨라지고 신규 데이터 유입은 줄어든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보다 덜 똑똑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덜 똑똑하다. 그렇지만 앞으로 더 어리석어질 것임을 알 정도로는 똑똑하다. 뇌과학자들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거꾸로 뉴런의 연결 패턴에 영향을 준다.' 자아가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는 말이다. 물질이 아닌 자아가 물질인 뇌를 바꾼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내 뇌는 매 순간 퇴화하고 있다. 내 자아는 날마다 어리석어지는 중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덜 어리석어지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세상과 연대하며 낯선 곳을 여행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뇌에 새로운 데이터를 공급하는 것뿐이다. 어리석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유일한 방법이다.(p.99~100)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이 준 이 질문에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생물학을 들여다보고서야 뻔한 답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았음을 알았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남한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 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p.127)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그동안 조금씩이라도 과학책을 읽으려고 노력했던 나를 칭찬한다. 그것이 실제로는 내 머리 속에서 지식으로 형성되어 있지는 않을지언정 조금이나마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는 않았을까?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다. 한편으로는 잘하는 것만 갈고 닦아도 모자랄 시간에 잘 못하고 어려운 것을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내가 진로를 정하고, 성과를 내야 할 때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딸아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고교학점제 때문에 지역 대학에 가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정말 재미가 있고 새로운 걸 알게 되어 즐겁다는 것이다. 그 공부가 왜 그렇게 즐겁고 재미있는지 알아? 시험을 치지 않기 때문이지. 아는 즐거움은 분명히 있고 그것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서는 테스트 같은게 없어야하니까^^ 이것과 같지 않을까? 내가 지금 과학 공부를 한다고 해서 (의외로 늦게 트인 머리로 세상에 일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달라질 건 거의 없겠지만 그동안 어렵다고 포기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시도해보는 것은 분명 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할거라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