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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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쯤 전에 읽은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이번주 독서동아리에서 함께 읽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역사를 왜 배우는가'에 대한 답을 하고자 한다. 역사 그 사실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배우면서 느꼈던 감정을 잊지 말자고 한다. 나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통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는 학창시절에는 역사를 역사로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암기해야 할 어렵고 복잡한 과거일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른이 되어 찾아보는 '역사'는 재미와 감동, 그리고 나의 삶을 좀더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역사는 아득한 시간 동안 쌓인 무수한 사건과 인물의 기록입니다.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지요."(p.28)

우리가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를 즐기는 것은, 그 신화 자체의 재미도 있지만 거기에서 따온 모티브가 문학으로, 영화로, 예술로 확장되어 나가는 것에서 더 재미와 의미를 느끼게 된다. 세계의 신화는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다양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나라의 옛 이야기들도 충분히 그런 가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더 확장되지 못하고 멈춰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인간이든 매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는 점, 그 선택은 때때로 예측 불가능할 만큼 기상천외한 결과를 불러온다는 점, 그리고 한 번 선택한 것은 되돌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선택을 한 이상 무를 수 없습니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선택한 자의 몫이에요. 그래서 후회는 늘 우리를 따라다닙니다."(p.53)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과거를 살펴볼 수는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렸고,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를 알 수 있다. 남이 아닌 내가 내렸던 결정은 더 잘 알 수 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앎으로써 그와 비슷한 결정을 다시 내리지 않을 수 있다. 과거를 통해 배우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험 문제를 잘 맞추기 위해서는 세세한 것까지 외워야 하지만, 우리 삶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억지로 외울 필요가 없다.

특히 저자는 지식인이나 오피니언 리더에게 역사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의도하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상관없이 누군가의 나쁜 선택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익히 이런 게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고 있다. 제대로 된 역사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이나 상대가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그런 가짜 뉴스를 퍼뜨리거나 왜곡된 사실을 퍼뜨리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역으로 우리에게 역사적 사고가 필요한 것은 그런 가짜들을 잘 걸러내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즉위 과정부터 순탄하지 않았던 선덕여왕은 비전을 세우고 혁신을 했다. 위기 상황 속에서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우고 1층부터 차례로 일본, 당, 오월, 탐라, 백제, 말갈, 거란, 여진, 고구려의 이름을 넣었다. 그들 나라를 신라의 발 아래에 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경주 사람들은 매일 황룡사 9층 목탑을 보면서 우리도 강해질 수 있다는 비전을 공유하였던 것이다. 조직이 움직이려면 비전이 있어야 하고, 그곳을 향해 함께 가자고 설득을 해야 한다. 저자는 선덕여왕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분명한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혁신도 가능했다고 말한다. 역사적 사실을 통해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을 반추하게 된다. 비전을 세우고 위기를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목표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다른 무엇보다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을 배우죠. 역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나라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시시때때로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중략) 역사는 그 어느 것도 영원할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그때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 수도 있어요.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어 현재를 점검하지 않으면 잉카의 마지막 황제나 연개소문과 같은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한 이유입니다."(p.104~105)

저자는 역사를 배우는 것이 왜 필요한가를 구석 구석 풀어놓고 있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철학'을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삶을 성찰하는 방법으로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인사동에서 조선시대 금속활자가 엄청 많이 출토된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활자를 통해 우리나라의 금속활자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이용해 만든 인쇄기술에 대해서 설왕설래 했던 것을 기억한다. 문화와 기술의 교류가 있었던 곳에서는 다양한 문물이 왔다 갔다 했을 것이다. 구텐베르크는 금속활자를 이용해 인쇄기를 발명한 사람이다. 즉 대량 인쇄 기술을 발명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인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직지심체요절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를 보면 프레스라는 기계의 원리에서 영감을 얻고, 이미 발명되어 있던 금속활자와 인쇄에 필요한 종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요즘 말하면 융합과학이라고 할까? 인쇄술의 발달은 누구나 책을 읽고 공부하고 사고하고 연구할 수 있는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정보 공유의 역사에 일어난 두 번의 변혁 중 하나라고 본다. 나머지 하나는 스티브잡스의 아이폰이다.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일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은 상대가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헤아려보는 것 아닐까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서로의 시대를, 상황을, 입장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관점도 달라질 겁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고 저는 믿습니다."(p.146)

며칠 전 광복절을 앞두고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독립군이 먹은 음식을 다루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봉오동전투하면 홍범도 장군을, 청산리전투하면 김좌진 장군을 떠올리지만 그들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먹고 입고 하는 살림을 한 그녀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그 시절의 생활사와 독립군에게 먹였던 음식과 그 음식을 준비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다루어서 의미가 있었다.

저자는 학생들이 이 시기의 역사를 배울 때 외울 게 너무 많아서 역사과목을 포기하려고 하는데, 만약 이 시기에 외울 게 없다면 그 역사는 어떤 역사가 되었겠냐고 반문한다. 독립투쟁단체들의 수많은 항쟁과 투쟁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생각이 든다. 그동안 철학책도 좀 읽고 나름대로 나의 생각과 삶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두 번 세번 읽을 책은 아니지만, 우리가 왜 '역사'를 배우고 공부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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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는 생각들 - 유발 하라리부터 조던 피터슨까지 이 시대 대표 지성 134인과의 가장 지적인 대화
비카스 샤 지음, 임경은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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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기본은 우리 시대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준 인물들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저자가 초창기에 인터뷰한 위키피디아(Wilkipethia)의 창립자 지미 웨일스(Jimmy Wales)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저자가 보낸 질문에 대해 “전부 이미 대답한 적이 있는 질문입니다. 다른 질문을 해주세요.”라는 답장을 했던 것이다. 이후로 질문지를 보내기 전에 인터뷰이가 열정과 관심을 쏟고 있는 분야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관련 있는 질문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러한 저자의 노력은 유명 인물들로부터 의미 있는 답변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유명인은 134인에 이른다. 저자는 자신이 기록한 인터뷰들 중 애착이 가는 인터뷰를 중심으로 훑어보다가 그 답변들을 관통하는 공통 주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은 정체성(우리 자신에 대한 질문), 문화(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것들), 리더십(우리의 힘을 모으는 비전), 기업가 정신(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차별(타인의 눈으로 보는 세상), 갈등(전쟁과 평화 그리고 정의), 민주주의(2,500년간의 권력 실험)으로 구성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공통점은 정체성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나와 우리'가 누구인가에 관한 정체성의 문제는 세계를 얶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관한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철학이 '자기 자신의 이해, 자아의 발견'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듯이, '생각하는 방법, 생각의 힘'을 거론하면서 이 주제는 당연히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주제로 보인다. 이 책은 관련 주제 아래, 질문을 배열하고 그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한 유명인을 소개한다. 대략 하나의 질문에 3~4명의 인물들이 답을 한다.

1. 정체성은 우리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콰메 앤서니 아피아(가나계 영국인 작가, 문화이론가)는 "우리는 주로 다른 사람이 붙여준 꼬리표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또 이에 따라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한다"라고 말했다. (p.30) 그는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양극화, 성차별 등의 사회문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중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로즈 맥고완(배우, 사회활동가)은 "명함에 적힌 직업보다 자신이 스스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활동이 자신을 더 잘 규정한다"(p.35)고 말하기도 했다.

2.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샘 닐(배우, 작가, 감독, 제작자)은 "코로나19 팬데믹은 안 그래도 이미 불평등한 삶을 살던 사람들에게 더욱 잔인한 치명타를 안겨주었"(p.43)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렇다. 금방 벗을 줄 알았던 마스크를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벗을 수 없으며, 4차 대유행을 맞이하고 있다. 이 와중에 누군가는 삶을 지속할 수 없을만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가 하면, 누군가는 최대 매출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한다. 지금 다들 못 살겠다, 힘들다, 어렵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틈새를 파고 들어 어려움을 발판으로 삼는 이들도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아니어도 불평등한 사람을 살던 사람들이 더욱 힘든 상황에 내몰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은 어떻게 다루어 져야 할까?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 중 하나가 '도덕적 삶'이다. 스티븐 핑거(작가, 교수)는 "도덕성은 궁극적으로 공정성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p.44)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주제가 아닌가? 한국 사회에서 도덕적인 삶과 공정성에 관한 문제는 '선택적 분노 유발'과 함께 세대 간의 갈등으로까지 증폭되는 현상을 보인다.

3. 교육은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켄 로빈슨(교육 및 창의성 전문가)은 교육이 사회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4가지로 나누었다.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개인적 영역에서의 역할이다. 교육을 받으면 더 나은 경제적 우위를 점할 수 있으며, 각자의 공동체에 속하는 문화적 가치와 전통, 사고법을 배울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자신이 속한 사회가 어떻게 작동을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를 배운다. 마지막은 각 개인의 재능, 삶의 목표, 감수성, 관심사를 발견할 수 있게 하고 그 자체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잘못된 '사회적 조건화'를 통해 더 많은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 디팩 초프라(영적 지도자)는 사회적 조건화를 정보의 과부화로 보기도 한다.

4. 우리는 왜 이야기를 만들고 전하는가

에드윈 캣멀(픽사 공동 창립자)은 스토리텔링은 사람들 간에 소통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기본적 방법이라고 말하고, 마야 안젤루(시인, 소설가)는 "스토리텔링의 목적은 어떤 메시지를 널리 전달해서 우리 세대가 자의로든 타의로든 저질렀던 실수를 다음 세대가 똑같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것"(p.78)이라고 하였다.

5. 훌륭한 글의 조건은 무엇인가

마야 안젤루는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였으나 얀 마텔(작가)은 훌륭한 작품이라고 해서 모두 도덕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결국 훌륭한 글은 '진실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6. 리더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스탠리 매크리스털(매크리스털그룹의 창립자)은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여러 동료와 서로 협력해 일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p.129)이라고 하였다. 즉 리더십이란 조직 구성원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기 좋은 문화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리처드 마이어스(미국 합동참모본부의장)는 좋은 리더의 조건으로 설득과 협력으로 보았다. 많은 지도자들이 리더십을 구성원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공감능력, 진실성, 투명성, 신뢰 등이 강조된다.

7. 실패 경험은 리더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스탠리 매크리스털은 리더 입장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직과 구성원들의 부정적인 행동은 대개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책임과 결정을 화피한 결과"(p.157)로 나타난다.

"조직은 구성원들에게 실제 당면한 위기가 무엇인지, 그 위기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지 알려주고 훈련시켜야 합니다. 리더는 위기를 개인, 팀, 조직의 차원에서 각각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구성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조직에서 누가 몇 번 실패했는지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신 좋은 성과를 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성과에 도달하기까지 실패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했음을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p.157)

8. 장애는 왜 차별의 대상이 되었는가

필립 크레이븐(국제패럴림픽위원회 위원장)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특정 신념이나 행동 방식을 강요하는 대신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하였다.

"'장애 (disability)'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능력(ability)'이 '없음(dis-)'을 나타내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장애인(the disabled)'과 같이 두루뭉술하게 표현되는 건 훨씬 더 심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그런 꼬리표 없이도 한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어야 해요. 나이가 들어서 시각과 청각이 쇠퇴하고 거동이 불편해진 사람에게 장애인이냐고 물어보세요. 손사래를 치며 거부할 겁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장애인과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냥 필립 크레이븐이라는 한 개인으로 존재합니다."(p.255)

9.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정치 참여는 왜 중요한가

국민투표는 여전히 유효한 정치 참여 방식이며, 국민에게는 통치권자를 선택할 권리, 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쫓아낼 권리가 있다. 그러나 국민투표에도 매우 위험한 측면이 있다. 대중의 선택은 때로 합리적 이성보다는 선동가들의 감정적 호소에 더 기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센테 폭스 케사다(55대 멕시코 대통령)는 정치에 훨씬 더 많은 교육 수준이 높은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권자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고 공부를 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터뷰이들의 생각을 읽는 것도 좋았지만, 저자가 목차와 소제목으로 뽑아놓은 질문에 대해 나만의 답변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비슷한 질문에 대해 각각의 인터뷰이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답변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얼마전 읽은 철학서에서는 '대화 중에서도 질문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내용이 있었다. 질문을 통해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생각을 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성장할 수 있다. 나의 삶을 바꾸는 힘, 그것이 바로 생각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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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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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기차는 서로 잘 어울린다. 기차 안에서 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버스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아주 조금도 불가능하다. 느껴지는 감각이 다르기 때문이거나, 어쩌면 연상 작용 때문일 수도 있겠다. 버스는 어린 시절에 갔던 수학여행이나 캠프처럼 내가 가기 싫었던 장소를 떠올리게 한다. 기차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나를 데려디준다. 그것도 생각의 속도로.

하지만 철학과 기차에는 퀴퀴한 느낌이 있다. 둘 다 한때는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였으나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유물이 되었다. 오늘날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도 일부러 기차를 타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부모님이 말리는데도 일부러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철학은 기차 타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뭘 모르던 시절에나 하던 것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p.10

나는 철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기차는 좋아한다. 기차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교통수단으로서의 기차를 좋아한다. 지방에 살고 있으면, 수도권 지역에 편중된 문화 시설과 컨텐츠를 즐기기 위해 적지 않은 교통비를 투자해야 한다. 버스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기차는 돈이 많이 든다. (요즘은 비행기가 더 싸긴 하다) 대신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 나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 기차를 선택한다. 주로 책을 읽거나 업무를 하게 되는데, 아주 편안한 프리미엄 우등고속버스라고 해도 기차만 못하다.

이 책의 저자는 기차와 철학이 참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한때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였지만 지금은 약간 낡아버린 유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한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굳이 기차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국이라면 다를 것 같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기차로도 충분히 1일 생활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우리야 그렇다 치고, 나는 저자의 기차여행에 함께 탑승을 해보기로 했다. 여행은 혼자 가는 것도 좋지만 동행이 있다면 더 재미있는 법이다.

철학이라 하면 아무래도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철학을 배울 때 '철학'을 배우지 않고 '철학에 대해' 배우기 때문이다. 철학적 사고를 키울 수 없는 철학 수업을 하니 철학이 재미있을 수 없다. 철학은 지식 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사고방식,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무엇을'이나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p.12).

저자가 선택한 철학자는 총 14명이다. 새벽부터 황혼에 이르기까지 14명의 철학자와 함께 일어나 궁금해하고, 걷고, 보고, 듣는다. 때로는 즐기기도 하고 관심을 기울여본다. 싸우기도 하고 베풀기도하며 감사하거나 후회한다. 역경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거나 늙어가거나 죽음을 준비하기도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레우스, 소크라테스, 루소, 소로, 쇼펜하우어, 에피쿠로스, 시몬 베유, 간디, 공자, 세이 쇼나곤, 니체, 에픽테토스, 보부아르, 몽테뉴를만날 수 있다. 이들은 익히 들어봤고 잘 아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들의 사고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볼 때 저자는 그들 중에서도 소크라테스를 좋아하는 것 같다. 계속해서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거나, 의심한다. 그래서 이 기차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일 거다. 우리의 인생을 관통하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 몸을 실어 본다.

마르쿠스는 철학자이자 왕인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저자는 마르쿠스처럼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이 철학을 공부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마르쿠스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아 아니라 망각이었기 때문에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독촉했다고 한다. 《명상록》을 통해 마르쿠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마르쿠스는 스스로에게 생각을 그만두고 행동에 나서라고 한다. 좋은 사람에 대한 설명을 하지 말고 좋은 사람이 되라.

제이컵 니들먼의 《철학의 마음》 에 "우리 문화는 일반적으로 질문을 경험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질문을 경험한 철학자로 소크라테스를 든다. 소크라테스는 '무엇을'과 '왜'에 관한 질문에 관심이 없었다. 그가 관심을 가진 질문은 '어떻게'이다. 소크라테스는 지식보다 방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소크라테스에게 철학과 대화는 동의어였다. 삶을 성찰하거나 자기자신을 명확하게 들여다 보려면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며,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말을 남겼다. 나의 삶을 다시 한번 더 되돌아보게 된다.

장자크 루소는 산책자였다. 그는 자주 걸었고, 혼자서 걸었다.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한 그에게 '걷기'만큼 어울리는 것이 또 있을까. 저자는 루소의 철학을 '자연은 좋고 사회는 나쁘다.'라고 정리한다. 루소는 우리가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많은 것이 사회적 관습이라고 믿는다. 루소처럼 많은 철학자들은 걷기를 즐겼다고 한다. 걷기는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소크라테스도 아고라를 걷는 것을 즐겼고, 니체는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전부 걷기에서 나온다라고 하였다. 토머스 홉스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걷기를 즐겼다. 칸트는 엄격한 산책 일정을 고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느린 이동 수단인 걷기는 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소로는 숲속에서 홀로 자족하는 척하면서 몰래 엄마 집에 들러 파이를 먹고 빨래를 맡기는 등 위선적인 행동을 많이 했다고 비난받는다. 그러나 저자는 《월든》은 숲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즉 소로는 사회와 격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소로도 모든 철학은 궁금해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무엇이든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들이 붙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서로 견딜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거리"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우리 인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그리고 쇼펜하우어가 살던 시대에는 백과사전이 인터넷이었다. 그는 책만 열면 바로 해답이 있는데 골머리를 썩일 이유가 있겠는가.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내놓는 것이 100배는 더 가치있는 일인데 자기 생각을 하지 않고 책 앞으로 달려간다고 비판했다. (요즘은 그 책도 안 읽어서 문제~). 저자는 여기서 읽다를 클릭하다로 바꾸면 현재의 우리 모습이 나온다고 말한다.

1부를 통해 5명의 철학자를 만났다. 익히 잘 알고 있는 철학자지만, 저자의 생각과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그들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위선적이라는 소로나, 마조히스트 루소를 만나기도 했다. 이어지는 2부와 3부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내가 그나마 교과서에서조차 보지 못했던 철학자를 만난다는 것이다.

시몬 베유는 "가장 큰 희열은 가장 온전하게 주의를 기울였을 때 찾아온다"고 하였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을 떠올리게 한다. 관심은 집중이 아니다. 집중은 강제할 수 있으나 관심은 강제할 수 없다. 집중은 수축하지만 관심은 확장한다. 집중은 사람을 피로하게 하지만 관심은 피로를 회복시켜 준다. 집중은 생각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고 관심은 생각을 유보하는 것이다. 시몬 베유는 진정한 관심이란 기다림과 같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세이 쇼나곤은 낯설면서도 더 알고 싶은 철학자이다. 책에서 소개한 많은 철학자들 중에서 그의 생애와 철학을 상세하게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타고 철학자들과의 여행을 마친다. 철학이란 것이 늘 어렵게만 다가왓는데 조금은 편안하게 만나볼 수 있었던 책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한평생을 훑어내리면서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철학을 교양으로 읽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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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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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 작가의 '아몬드'가 유명하지만(부산에서는 원북원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나는 읽어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나와도 인연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 이 책 '타인의 집'을 읽게 된 것도 독서동아리에서 함께 읽어보자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8편의 단편 소설을 모은 소설집이다. 첫 번째 소설 '4월의 눈'을 읽는데 가슴이 탁 막히면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옴을 느꼈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상황'은 다르지만 '그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이 오롯이 나에게 전이되는 기분이 들었다. 사이다처럼 이혼을 하고 훨훨 날아다니는 여자의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일일드라마처럼 눈물 줄줄 흘리고 매달리고 얽히고 얽히는 이야기말고,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벗어나는 이야기. 처음 그들이 이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는 그런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아내의 아픔을 남편은 이해할 수 있을까?

"난 단지 우리가 행복하길 바랐을 뿐이야."

내가 조용히 말했다.

행복, 아내가 그 단어를 중얼거렸다.

"난 차라리 우리가 처음부터 불행했길 바라." (P.36)

8편의 소설 중 '타인의 집'은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소설집에서 작가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타인의 집'은 쉐어하우스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지만,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직도 나의 집이 없는 내 모습이 묘하게 겹쳐졌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눈치싸움을 하고 결국엔 그들 모두 아무 힘이 없는 세입자일 뿐이라는 사실이 왜 그렇게 다 내 얘기 같은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족'도, '가정'도, 그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집'도 다 내게는 불안정하고 의미없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소설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같아서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그 반대였다.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거기에서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어서다. 나는 그들의 아픔에 지나치게 젖어들었고, 나만큼이나 대책 없는 그들에게 화가 났다. 끝까지 읽느라 조금 고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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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리커버)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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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호프 자런의 '랩 걸'을 떠올린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는 오히려 랩걸보다 더 공감하며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천문학자로서의 고민 속에 나와 혹은 우리와 공통되는 고민들이 살짝살짝 보인다. 거기에 연구만 하느라 연구실에 틀어박혀 자기 분야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답답한 학자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의 캐릭터가 보인다. 글 곳곳에 숨어 있는 문학과 영화와 음악과 대중문화가 좀더 가깝게 끌어당긴다.

참석자 중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사람은 유일한 학부생인 나뿐이었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외쳤다. 태양에서 IAU거리에 있는 지구에서부터 5AU거리의 목성으로 순간이동하는 주문을. 아주 짧고 간단한 문장이었다. "저요!" (P.19~20)

나는 언제나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고 믿는다. 나도 저자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들마다 손을 번쩍 들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저 순간 "저요!"하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는 다들 짐작이 갈 것이다. 그녀가 두번째 '저요!'를 외쳤던 것처럼 나 역시 그런 시간을 거쳐왔다. 내가 그녀처럼 대단한 과학자나 알아주는 유명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앞에 온 기회를 잡을 때가 있다. 나는 저자를 잘 모르지만, 어떤 성격일지 상상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참 쉽게 썼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만큼 이 책은 잘 읽힌다. 과학적 지식만을 다루지 않고 과학자로서의 삶과 짧지 않은 기간동안 한국에서 과학자로 살아가는 삶을 잘 그려놓았다. 특히 와닿았던 부분은 우리나라의 많은 기록에 남아 있는 천문학적 관찰 기록들을 이야기하는 부분과 이소연 우주인의 이야기, 그리고 학생들의 글쓰기에 관한 부분이었다.


학문은 정제된 기록에서 출발한다. 자신이 발견한 것이나 실험한 내용, 조사 결과와 그에 관한 생각 등을 잘 정리해서 이름, 날짜와 함께 기록해두면, 훗날 누구라도 그것을 참조해 재현해보고 거기에 새로운 부분을 더해 다시 자신만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다른 학자들이 따라 해보았을 때 같은 결과가 재현되도록 레고 조립 매뉴얼처럼 정확하고 자세해야 한다.

학자들은 교류를 통해 지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기록을 발표한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학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멀리 있는 학자들과도 교류하기 위해서 편지 형식을 취했던 것이 오늘날 논문의 전신이다. 논문에서는 과거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연구하고 논했던 내용을 정확히 밝히며 인용한다. 남의 업적을 내 것인 양하는 태도는 국가나 가족에 대한 긍지를 느낄 때나 쓰는 것이요, 남의 글 베끼기는 타자 연습할 때나 하는 일이다.

학문할 때의 글은 형식도 갖추어야 한다. 다양한 공간과 시간을 넘어 그야말로 '누구나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쓴이가 이미 갖추고 있는 명성이나 영향력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읽히고 판단 받을 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용은 뛰어날지라도 형식만은 판에 박혀 있어야 한다. 이 연구를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혹은 마침내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는 적지 않는다. 시적 허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대학생이라면 학문적 글쓰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문적 글쓰기는 유려한 글 솜씨를 요구하지 않는다. 연구 내용이 별것 아니더라도, 글이 서툴더라도, 남의 것을 베껴 열 쪽짜리 보고서를 쓰는 것보다 한두 쪽이라도 자신이 행하고 생각한 내용을 형식에 맞게 쓰는 것이 더 지적인 활동이다. 그것이 대학의 모든 강의에서 공통으로 배우는, 혹은 배워야 할, 대학생으로서의 기본 소양이다. (P.58-60)

좀 길게 인용을 하였다. 비단 이 내용은 대학생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의 글쓰기 또한 이와 같다. 대내외 문서를 작성하면 그 문서는 누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애써 만들어 놓은 문서가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거나 현학적인 표현으로 인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된다. 학교에서부터 글쓰기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실수를 한다. 기안서나 제안서를 쓰고 계약서를 쓰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라 막막해한다. 이과생들의 글쓰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렇다고 문과생에게는 이런 문제가 없다고 할수는 없다. 막연하게 길어진 문장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고,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했듯) 시적허용이 필요없는 문장을 써야 함에도 감성적인 단어를 마구 섞어놓기도 한다. 보고서라고 하기에 애매한 글들, 무엇을 기안하는지 제안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글에서 벗어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대학원생들은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나도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제 막 집중을 좀 해 보려는데 집에 갈 시간이라는 알람이 울리면 선뜻 손놓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생각해보면 뛰쳐나가지 않은 날이 드물다. 왜 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야 일어서는지. 엄마는 늘 뛰어다닌다. 그렇게 퇴근한 날은 읽고 있던 논문이나 책이 가방 가득 들어 있다. 부모 노릇도 연구자 노릇도 절반쯤만 할 수 있는 날이다. (P.77)

이 글을 읽는데 어찌나 공감이 되는지. 읽다 만 책과 자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퇴근하느라 핸드백이 아니라 무거운 백팩이어야 했고, 예쁜 구두보다 투박한 운동화일 수 밖에 없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저자가 아이를 재우고 마저 하려던 바램과는 달리 잠들어버렸듯이, 나 역시 그러한 시간을 보냈다. 대한민국의 위킹맘은 크든 작든 비슷한 일들을 겪고 사는 듯하다. 우주인 이소연에 관한 평가는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일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소연이 남자였더라도 그런 평가를 받았을까? 부모 중 누군가가 본인의 일을 잠시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를 위해 달려가는 것은 양육자로서의 의무다.(P.107) 엄마의 의무가 아니라.

저자의 글에는 우리나라의 우주과학의 미래를 위한 애정이 마구 묻어난다. 우주 탐사에 관한 정책은 특별한 정치색을 띠지는 않는다고 한다. 정계에서 과학자 집단에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분야나 국민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분야를 선별해달라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과학이든 기술이든간에 자기네가 하지 않으면 다 혈세 낭비라고 몰아붙이고, 해 준것은 없으면서 공은 자기들에게로 돌리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의 억지 선동)가 자주 보이던데....나의 기우이길...

우주탐사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필수라고 한다. 저자는 비전을 제시하는 자문단도,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도, 그것을 승인하는 최고결정권자와 국회, 공무원들, 그리고 우주탐사를 지지하고 애정어린 눈길로 봐주는 국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우주탐사가 늦어지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제는 자신있게 발걸음을 더 떼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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